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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

일본 가마쿠라 여행(22년10월)

by 변리사 허성원 2022. 10. 13.

일본 가마쿠라 여행(22년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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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설렘이다. 설렘으로 준비하고 설렘으로 새로움을 만나고 돌아다니며, 설렘을 가슴에 안고 돌아온다.
그 설렘을 시간과 돈으로 구입하는 일이 여행이다. 어릴 때는 그토록 흔하고 값쌌던 그 감정이 이제는 많이 비싸졌다. 그래도 나이가 들어 그 정도 비용으로 무엇을 해야 그런 귀한 정서을 누릴 수 있겠는가. 여행은 그나마 설렘을 가장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고마운 경험이다.

오랜만의 해외 여행이다. 창원대학교 박물관대학의 좋은 분들과 함께 하였다. 다들 소유를 위한 소비가 아닌 설렘이라는 경험을 위해 기꺼이 돈을 쓸 수 있는 고상한 분들이다.
그 중에 동년배 혹은 연장자들이 여럿 계셨다. 다들 체력이 떨어진 것을 이구동성으로 말하며, 과거의 여행 무용담을 추억한다. 젊은이는 미래를 말하고 노인은 과거를 이야기한다고 했던가. 나도 그랬다. '가슴이 떨릴 때 여행하라. 다리가 떨릴 땐 이미 늦었다'라는 금언을 절감했다. 일정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오면 거리로 나가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앞장서서 사람들을 끌어모아 술판을 벌였을텐데 이제는 절로 몸을 사리게 된다. 여행을 인솔하신 박물관장님의 은근한 유혹에 한번도 응해드리지 못한 것이 아직도 마음에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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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람들의 문화는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친숙한 듯하면서도 생소하다.
특히 그들의 '
과도한 친절'이 그렇다.

여행 셋째 날 지인의 점심 초대가 있어 긴자에 가야했다. 동경대에서 일행과 헤어져 지하철을 타러 갔다. 안내 팻말만 보고 근거없는 자신감만으로 씩씩하게 걸어갔는데, 한참 가도 역이 보이질 않는다. 그제서야 쎄~한 느낌이 들어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역시나 많이 지나쳤다. 아내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이제 더 잘못되면 생존이 위태로울 수 있다. 다시 길가는 사람을 붙잡고 꼼꼼히 물어봤는데, 그 사람이 보기에 내가 영 미덥지 않은 모양이다. 아예 우리를 데리고 역이 보이는 곳까지 데려다주고 떠난다.

긴자역에 도착해서도 같은 경험을 했다. C3출구로 나오라기에 표식을 보고 가는데, 세 갈래 길에서 갑자기 C3표식이 보이지 않는다. 지나가는 여성분에게 물어 설명을 듣고 있는데, 일행인 남자가 가까이 와서 보고는 답답했는지 함께 가자며 우리를 이끈다. 긴 계단을 올라 바깥으로 나와 이리저리 몇 번 길을 꺽어 가더니, 이제 이길로 죽 가면 보일 거라고 하고는 제 갈길로 돌아간다.

하~ 일본인들의 이 과도한 친절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일본이라는 나라 혹은 그 정치인은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도저히 좋아할 수 없다.
하지만 일본 사람들은 그들의 몸에 밴 친절과 겸손, 배려를 생각하면 결코 미워할 수 없다.
'친절은 최고 경지의 지혜다(Kindness is the highest form of intelligence)'라는 말이 있다. 친절은 상대의 어떤 마음도 완전히 무장해제시켜버리는 엄청난 파워를 가졌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그런 관점에서 대단한 지혜를 태생적으로 무장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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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 일본인들이 가진 큰 장점은 참을성이다.

약속한 긴자의 식당에 도착하니 11시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그 식당 앞에 수십명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일요일이니 회사 일 걱정 없이 느긋하게 줄을 서는 모양이다. 우리를 초대한 지인은 우리보다 30분 일찍 도착하여 대기 번호표를 받았다는데, 그럼에도 우리는 30분 정도 기다려서야 입장할 수 있었다. 그 줄은 우리가 식사를 다 하고 나와도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아마도 많이 기다리는 사람은 두 시간 이상 대기하지 않았을까?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식당에서 줄서는 일이다. 차라리 굶었으면 굶었지 식당 앞에 줄서기는 싫다. 겨우 배를 채우기 위해 혹은 입의 얄팍한 즐거움을 위해 귀한 시간을 소모하는 것은 고귀한 인간의 품격에 맞지 않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그들은 식사를 위해 인내하고 기다린다. 내가 견디기 싫어하는 그 경험을 위해 그들은 그 긴 시간을 기다릴 줄 안다. 그 참을성은 무서운 것이다. 그 참을성이 국가적으로 모여 에너지로 집결되면 국가는 앞뒤 가리지 않고 무슨 일이든 저지를 수 있게 된다. 그게 바로 파시즘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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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미호다이(飲み放題)를 처음 가봤다.

술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일종의 술 뷔페라는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예 가볼만한 곳이 못된다고 생각하고 오랫동안 일본을 다녔어도 일부러 피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가보니 그저 기피할 곳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1인당 2천몇백엔을 내면 다양한 음식이 연이어 나온다. 음식은 대체로 괜찮았다. 물론 술은 종류대로 골라서 마음껏 마실 수 있다. 와인, 소주, 사께, 진토닉 등 거의 모든 술을 갖추고 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최고의 선택일 것 같다.
가게 입장에서는 손님들에게 시간을 무한정으로 허용할 수 없다. 그래서 음식이 나오는 속도로 손님이 머무르는 시간을 통제를 하는 듯하다. 마지막 음식이 나오고 나면, 안주가 없어서라도 더 앉아 있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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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가지 일본인들에게 독특한 문화는 '예(禮)'다.

가마쿠라역에서 5분 정도 걸어가면 츠루가오카 하치만구(鶴岡八幔宮) 신사(神社)가 있다. 마침 그곳에서 결혼식하는 장면을 보았다. 대충 보았지만 예식 절차가 보통 복잡하고 까다로운 게 아닌 듯했다. 전통 의상을 입은 신랑 신부가 한참을 꼼짝 하지 않고 신관이 읊조리는 소리를 듣고 있고, 그 이후에도 지겨운 동작들을 한참 주고받았다. 웬만한 참을성으로는 견디기 어려울 것 같다.

그들만의 예(禮)이고 전통 문화다. 예(禮)라는 것은 원래 인위적인 형식이고 겉치례다. 하위징아가 '호모 루덴스'에서 말하는 '놀이'이기도 하다. 인간은 예나 놀이를 만들어 서로의 동질감을 공유하고 그들끼리 한 패거리임을 거듭 확인한다. 
그래서 예(禮)는 사람들을 카테고리화하는 틀이 되며, 동시에 외부사람들을 진입을 방해하는 문턱이나 벽이 되기도 한다. 그들이 전통의 예 혹은 놀이에 집착하는 것은 외부의 것을 거부하는 웅변적인 몸짓일 수도 있다.

노자 도덕경 제38장에 이런 말이 있다.
"도를 잃은 후에 덕(德)이 나타나고, 덕을 잃은 후에 인(仁)이 나타나고, 인을 잃은 후에 의(義)가 나타나고, 의(義)를 잃은 후에 예(禮)가 나타난다(
失道而後德, 失德而後仁, 失仁而後義, 失義而後禮).'
예(禮)는 도, 덕, 인, 의가 무너졌을 때, 인간 집단을 지배하거나 통제하는 마지막 수단이 된다.

일본인들은 그런 예(禮)에 매우 잘 교화되어 있다.
예(禮)는 견고하다. 좀처럼 무너지지 않는 성과 같은 것이다. 무너지지 않는 성에 갖히면 자기 파괴적인 생각이 나올 수 없다. 그래서 예(禮)는 창의력의 반대말이 된다. 그러기에 일본은 상대적으로 예에 덜 구속되는 우리나라를 이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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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 절, 박물관 등 많은 곳을 다니며 많은 것을 보았다.
국가든 도시든 그 곳의 가치는 그 곳이 지탱하고 있는 이야기의 무게에 비례한다.
그런 관점에서 도쿄는 충분히 무거울 것이다.
하지만 그 무게에는 우리에게 많은 부정적인 요소가 있다. 그래서 썩 높은 가치를 쳐주기 어렵다.

그래서 그런지 눈으로 본 사물에 대해서는 특별한 감흥이 없다. 그저 기억을 연결해주는 매개체가 될 뿐이다. 사진으로나 잘 저장해두고 필요할 때나 열어볼 일이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함께 다닌 사람들이다. 그들과의 인연은 귀한 것이다. 만나는 모든 사람은 내게 좋은 거울이 될 수 있다. 좀더 시간이 있었다면 서로를 더 잘 알고 나의 모습을 그들에 더 맑게 비추어볼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있다. 다음 기회가 기다려진다.

 

도착한 첫날은 비가 많이 와서 관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연인의 섬 에노시마의 등대 위에 올라 후지산을 배경으로..

 

후지산 모습. 높이 3776m의 후지산은 웬간한 날씨에도 그 자태를 온전히 보기 어렵다. 운좋게 이런 모습을 촬영하였다.
동경 긴자의 유명 스시집 미도리에 앞에 대기중인 사람들의 모습.
츠루가오카 하치만구(鶴岡八幔宮)  신사(神社)에서의 결혼식 장면

 

** 사진 자료

(구글 드라이버에 저장된 내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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