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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기술 _ 김형철의 분노 수업 분노의 기술 _ 김형철의 감정수업, 「실컷 화내고도 존경받는 법」 분노는 대개 두려움, 수치, 질투가 입는 옷이다. 그러므로 화를 내기 전 먼저 가면을 벗겨야 한다. 화가 날 때는 물어야 할 것이 있다. 안전을 계산하는가, 목격자가 없어도 났을까, 상대가 실패했어도 났을까. 아리스토텔레스는 화를 없애라 하지 않고 겨냥하라 했다. 마땅한 대상, 정도, 때, 목적, 방식이라는 다섯 좌표를 통과한 분노는 폭발이 아니라 경영 행위가 된다. 세네카는 하룻밤의 지연을 처방하고, 마키아벨리와 손자는 리더의 화가 침묵과 아첨을 사육함을 경고한다. 누스바움은 과거의 보복이 아닌 미래의 시정을 향한 이행-분노만을 인정한다. 남의 화는 접속사 없는 인정으로 받고, 잘못 낸 화는 다음 날 구체적 인정, 능동태, 상대의 영향.. 2026. 11. 1.
궁수저서(窮愁著書) _ 곤궁과 시름은 글로 승화하라 궁수저서(窮愁著書) _ 곤궁과 시름은 글로 승화하라 사마천은 궁형의 치욕을 견디며 살아남아 『사기』를 완성했다. 그는 친구 임안에게 보낸 편지에서 문왕, 공자, 굴원, 한비를 들며, 이들은 모두 막힌 길 앞에서 지난 일을 쓰며 미래에 올 사람을 생각했다고 했다. 의리 때문에 몰락한 우경을 두고는 곤궁과 시름이 아니었다면 책을 남기지 못했으리라 했다. 궁수저서라는 말은 여기서 나왔다. 窮은 가난이 아니라 길이 막힌 것이다. 행동의 길이 막힐 때 사람은 글의 길로 돌아선다. 붓으로 하는 복수의 진짜 상대는 원수가 아니라 망각이다. 그러나 오늘의 울분은 댓글과 게시글로 곧장 새어 나가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울분을 흘려보내지 않고 오래 품어 무언가를 지을 때, 비로소 곤궁과 시름은 글로 승화한다. I. 친.. 2026. 11. 1.
질투의 반대말 _ 수희(隨喜), 따라서 기뻐하는 마음 질투의 반대말 _ 수희(隨喜), 따라서 기뻐하는 마음 질투의 반대말은 무덤덤함이 아니다. 불교는 그 자리에 수희(隨喜), 곧 남의 기쁨을 따라서 기뻐하는 마음을 두었다. 붓다고사는 이 마음이 하는 일을 시기하지 않음이라 정의하고, 가장 가까운 벗의 기쁨부터 함께 기뻐하는 연습을 하라고 했다. 질투가 가까운 데서 시작되니 해독제도 가까운 데서 길러야 한다. 『법화경』은 전해 들은 쉰 번째 사람이 한 번 따라 기뻐한 공덕이 80년간의 큰 보시보다 크다고 말한다. 남의 공덕을 기뻐하면 나도 얻고 상대는 잃지 않는다. 질투는 남의 것을 탐내고 내 것을 움켜쥐는 두 손의 병이지만, 수희는 그 두 손을 풀어 합장하게 한다. 함께 우는 것보다 함께 웃는 것이 더 어렵다. 그래서 수희는 질투가 없는 사람의 덕이 아니라.. 2026. 10. 31.
쇼펜하우어의 연민론 쇼펜하우어의 연민론_ 마음 다 쓰고도 안 지치는 법 쇼펜하우어는 삶이 고통이라 보았고, 바로 그래서 연민을 도덕의 유일한 토대로 세웠다. 우리가 남의 고통을 지나치는 것은 시간과 공간이 하나를 여럿으로 쪼개 보이게 하는 착시, 곧 마야의 베일 때문이다. 연민은 그 베일을 꿰뚫는 가장 높은 인식이며, 타인의 고통을 막거나 없애는 데 참여하는 것이다. 순서는 해치지 않기가 먼저, 돕기가 나중이다. 사람을 태우는 것은 연민이 아니라 연민으로 전환되지 못한 공감적 고통이다. 따라서 리더는 주어를 "나"에서 "그"로 바꾸고, 대상을 판별해 불운에는 연민을, 부도덕에는 정의를 주어야 한다. 연민은 결정의 내용이 아니라 방식을 바꾼다. 결심은 꺼지지만 구조는 남으니, 연민을 제도로 설계하고 자기 자신도 돌보라. 자기.. 2026. 1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