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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스 동굴의 아이들 _ 적대는 누가 설계하는가 로버스 동굴의 아이들 _ 적대는 누가 설계하는가 1954년, 아르메니아인 학살과 전쟁을 목격한 망명 심리학자 무자퍼 셰리프는 오클라호마 로버스 동굴 캠프에 열한 살 소년 스물두 명을 모았다. 무작위로 나뉜 두 팀은 일주일 만에 깃발과 은어를 갖춘 나라가 되었고, 나눌 수 없는 주머니칼 하나가 걸린 토너먼트가 시작되자 며칠 만에 깃발을 태우고 숙소를 습격했다. 화해를 위한 즐거운 자리는 모두 실패했다. 물이 끊기고 식량 트럭이 멈춘 뒤에야 아이들은 줄다리기 밧줄을 같은 방향으로 당겼다. 적대는 인성이 아니라 설계에서 나오고, 화해는 만남이 아니라 공동의 곤경에서 온다. 감춰진 1953년 미들그로브 실험은 한 가지를 더 알려준다. 판을 짠 어른이 보이는 순간 아이들은 서로 미워하기를 그만두었다. 물어야 할 .. 2026. 8. 28.
호모 데우스 _ 신이 되려는 인간, 자리를 잃는 인간 호모 데우스 _ 신이 되려는 인간, 자리를 잃는 인간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는 기아와 역병과 전쟁을 관리 가능한 과제로 격하시킨 인류가 다음 의제로 불멸과 행복과 신성을 택한다는 전망에서 출발한다. 인간 지배의 비밀은 화폐와 특허 같은 상호주관적 이야기를 믿는 능력이었고, 근대는 의미를 포기하는 대가로 힘을 얻는 계약 위에서 인본주의라는 종교로 그 공백을 메웠다. 그러나 생명과학은 자유의지와 단일한 자아를 해체하고, 인공지능은 지능과 의식을 분리해 무용 계급의 출현을 예고한다. 그 자리를 노리는 데이터교는 만물의 가치를 데이터 처리 기여로 평가하며 권위를 인간에서 알고리즘으로 옮긴다. 하라리는 이를 예언이 아닌 경고로 제시한다. 쓸모가 유일한 척도가 되는 시대에 계산에 잡히지 않는 의식의 주관적 경험.. 2026. 8. 23.
체홉의 세 갈래 길 체홉의 세 갈래 길_ 늑대에게 먹히는 삶, 늑대를 먹는 삶, 나를 먹는 삶 체홉은 열여덟에 쓴 희곡 「플라토노프」에서 인생의 세 갈래 길을 그렸다. 오른쪽은 늑대에게 먹히는 길, 왼쪽은 늑대를 먹는 길, 곧장 가면 자신을 먹는 길이다. 순응의 오른쪽 길에서는 이용만 당하다 빈손으로 죽은 테슬라처럼 이빨 없는 결백이 포식자의 초대장이 된다. 포식의 왼쪽 길에서 공포 마케팅과 특허 트러스트로 경쟁자를 사냥한 에디슨은 인간됨을 잃었고, 그 판에는 이사(李斯)처럼 늘 더 큰 늑대가 있다. 곧장 가는 양심의 길에서는 이빨이 안으로 향해 자신을 갉아먹는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한 윤동주가 그 초상이다. 다만 자기 먹기에는 파먹기와 소화가 있다. 체홉은 자기 안의 노예를 매일 짜내며 그 소모를 사할린행과 문학.. 2026. 8. 22.
얼굴은 가면에 맞게 자란다 _ 오웰의 '코끼리를 쏘다' 얼굴은 가면에 맞게 자란다 _ 오웰의 '코끼리를 쏘다' 조지 오웰은 1936년 버마에서 경찰로 있던 시절, 쏘고 싶지 않은 코끼리를 군중의 기대에 떠밀려 쏘아야 했다. 그 순간의 깨달음이 한 문장에 담겼다. 지배자는 가면을 쓰고, 얼굴은 그 가면에 맞게 자라난다. 타인이 발주한 배역을 반복해 연기하며 살다 보면 연기가 본성이 되고, 연기가 끝나도 배역을 벗을 나조차 남지 않는다. 폭군이 가장 먼저 희생시키는 것은 폭군 자신의 자유다. 그날의 진짜 지배자는 오웰도 군중도 아닌 제국이라는 연극 자체였다. 뒤집으면 군중이 얼굴이고 오웰이 가면이며, 대중 또한 저희가 세운 지도자를 닮아 간다. 얼굴은 가면에 맞서는 저항의 최전선이니, 배역 앞에서 저항감을 느끼는 한 얼굴도 살아 있다. 어떤 가면을 쓰더라도 그 .. 2026. 8.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