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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초안] 마음속 객석에 의자 하나를 두라 마음속 객석에 의자 하나를 두라 _ 리더와 배우의 역설 리더는 상황에 따라 장수, 스승, 감독의 얼굴을 바꿔 써야 하는 연기자다. 디드로는 『배우에 관한 역설』에서 위대한 배우는 감정에 빠지는 사람이 아니라 냉정한 판단으로 연기를 통제하는 사람이라 했다. 감정에 기대는 연기는 날씨를 타고, 판단에 기대는 연기는 날씨를 타지 않는다. 리더도 분노와 연민에 휩쓸리면 판단이 흐려진다. 감정은 재료일 뿐 감독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리더의 무대에는 박수만 있고 야유가 드물다. 그래서 마음속 객석에 정직한 관객의 의자 하나를 두어야 한다. 애덤 스미스의 공정한 관찰자, 선비들의 신독이 같은 의자다. 얼굴을 바꾸는 이유가 나를 위한 것이면 위선이고 조직을 위한 것이면 책임이다. 한비자는 백 걸음 밖은 보아도 .. 2026. 10. 29.
폴 블룸의 『공감의 배신』 폴 블룸의 『공감의 배신』 1987년 텍사스의 우물에 빠진 아기에게 온 미국이 함께 울며 성금을 보냈지만, 같은 해 이름 없이 죽어 간 수천 명의 아이에게는 카메라도 성금도 없었다. 폴 블룸은 『공감의 배신』에서 이 장면을 묻는다. 남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정서적 공감은 스포트라이트처럼 눈앞의 한 사람만 비추고, 숫자를 세지 못하며, 닮은 얼굴과 내 편에게만 흐르고, 피해자의 사연으로 복수의 칼을 쥐여주며, 돕는 사람마저 소진시킨다. 그래서 블룸은 고통을 함께 앓지 않으면서도 상대의 안녕을 바라는 이성적 연민을 도덕의 길잡이로 내세운다. 맹자는 일찍이 제 선왕이 끌려가는 소는 보고 양은 보지 못했다고 짚으며, 그 마음을 저울질해 보이지 않는 백성에게까지 미루어 넓히라 했다. 공감은 마음을 움직이는 엔진이.. 2026. 10. 29.
[허성원 변리사 칼럼] #230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리새인들이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에게 나타나 물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기묘한 동행이었다. 바리새인은 율법을 지키며 이방의 통치를 못마땅해하던 이들이고, 헤롯 당원은 로마가 세운 헤롯 왕가를 떠받치던 이들이다. 평소에는 서로 등을 돌리던 두 무리가 예수를 제거한다는 목적 하나로 손을 잡고는, 예수를 말로 옭아매기로 한 것이다. 가이사는 로마 황제의 칭호 카이사르를 가리킨다. 그러니 세금은 유대인이 로마의 속국 백성임을 확인시키는 상징이었다. 그 무렵 이 세금에 맞서 봉기한 이들이 죽임을 당한 일도 있었다. 그 질문은 잘 짜인 덫이었다. 옳다고 하면 로마의 압제에 굴종한 자가 되어 민심을 잃게 될 것이고, 옳지 않다고 하면 반역자로 몰.. 2026. 10. 24.
그 노인이 잃은 것과 얻은 것 _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그 노인이 잃은 것과 얻은 것 _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84일 만에 거대한 청새치를 잡은 노인은 상어 떼에 고기를 다 빼앗기고 뼈만 끌고 돌아온다. 그 뼈를 상어 뼈로 오해하는 이도 있다. 결과만 보면 또 빈손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잃은 것은 고기와 작살, 찢긴 손처럼 모두 바깥의 것이다. 얻은 것은 파괴되었으되 패배하지 않은 자기 자신, 너무 멀리 나갔다는 한계의 깨달음, 다시 함께 나가자는 소년, 뼈의 길이를 재며 침묵으로 경의를 표한 동료들, 그리고 꺼지지 않은 사자의 꿈이다. 카뮈가 시시포스를 산을 내려오는 의식의 시간에서 보았듯, 노인도 빈 배로 돌아오는 밤바다에서 자신을 똑바로 본다. 잃은 것은 상어의 이빨이 닿는 곳에, 얻은 것은 닿지 않는 곳에 있다. .. 2026. 10.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