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2284

날실과 저울추 _ 경(經)과 권(權)의 윤리학 날실과 저울추 _ 경(經)과 권(權)의 윤리학 경(經)은 베틀의 날실이고 권(權)은 대저울의 추다. 날실은 움직이지 않아야 쓸모가 있고, 추는 움직여야 무게를 잰다. 공자는 권을 배움의 가장 높은 단계에 두었다. 원칙 위에 먼저 서 본 자만이 저울질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맹자는 물에 빠진 형수를 손으로 건지는 것이 권이라 했고, 중간을 붙들어도 권이 없으면 하나를 붙드는 고집과 같다고 했다. 『공양전』은 권에 울타리를 쳤다. 죽고 망하는 자리에서만, 자기를 깎으며, 남을 해치지 않고 쓰라는 것이다. 이 울타리가 무너지자 권은 권모술수가 되었고, 정이는 권이 곧 경이라며 이를 바로잡았다. 주희는 경은 이미 정해진 권이고 권은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경이라 했다. 어제의 권이 오늘의 경이 된다. 오늘 내가 둔 .. 2026. 11. 4.
가난을 축하하라 _ 숙향하빈(叔向賀貧) 가난을 축하하라 _ 숙향하빈(叔向賀貧) 춘추시대 진나라의 경 한선자가 가난을 근심하자 숙향은 오히려 축하를 건넸다. 공족이 사라진 진(晉)에서는 육경이 서로를 지우며 살아남았고, 재산은 곧 사병이자 목숨이었다. 숙향은 지워진 가문들을 본보기로 설명했다. 가난했으나 덕을 쌓은 난무자는 화를 면했고 그 덕은 방탕한 아들까지 지켰지만, 아들의 죄는 행실을 고친 손자를 쳤다. 나라의 절반을 가졌던 극씨는 하루아침에 멸문되었으나 슬퍼하는 이가 없었다. 숙향의 축하는 조건문이었다. 근심할 것은 재물이 아니라 덕이며, 덕 없는 부는 성벽이 아니라 과녁이다. 한씨는 살아남아 한나라를 세웠으나 숙향의 가문은 아들의 선택으로 끊겼다. 덕은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세대마다 새로 닦아야 한다. 선을 쌓은 집에 남는 경사가 있듯.. 2026. 11. 3.
군자는 본래 궁하다(君子固窮) 군자는 본래 궁하다(君子固窮)들판에서 양식이 떨어지자 자로가 노여운 얼굴로 물었다. 군자도 궁할 때가 있습니까. 공자가 답했다. 君子固窮 小人窮斯濫矣. 궁은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높은 뜻을 품은 이가 마땅히 거쳐 가는 과정이다. 固 한 글자는 네 칸의 사다리로 읽힌다. 첫째는 인정이다. 궁을 부당한 예외로 여기지 않고 본래의 몫으로 받아들인다. 둘째는 직시다. 헛된 낙관 없이 냉혹한 현실을 정확히 본다. 셋째는 평정이다. 길은 막혀도 마음은 막히지 않으며 두려움에 휘둘리지 않는다. 넷째는 통제다. 궁의 원인은 어쩔 수 없어도 자기에게 달린 것은 다스린다. 소인은 위기가 닥치면 곧바로 무너지고 남 탓을 한다. 군자는 궁을 제 크기대로 떠안는다. 궁은 군자를 만들지 않는다. 다만 드러낸다. 날이 추워진 뒤에.. 2026. 11. 3.
레스보스의 자 _ 아리스토텔레스의 형평론 레스보스의 자 _ 아리스토텔레스의 형평론 레스보스의 석공들은 곡면 장식을 재려고 납으로 만든 자를 썼다. 돌의 굴곡을 따라 휘면서도 길이를 재는 일은 멈추지 않는 자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납자로 형평을 설명했다. 법은 보편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어 개별 사안에서 틀리기 마련이고, 그때 입법자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했을 판단으로 법을 바로잡는 것이 형평이다. 형평은 법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법이 하려던 말을 끝까지 해 주는 정의다. 형평한 사람은 법이 자기편이어도 덜 가지려 한다. 그러나 너무 무르면 대법관의 발처럼 제멋대로가 되고, 너무 굳으면 다시 쇠자가 된다. 동양의 권(權)과 혈구(絜矩)가 그 답을 보탠다. 저울추는 움직이며 무게를 재고, 곱자는 휘지 않는 내 마음으로 남의 자리에 서 보게 한다. .. 2026. 1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