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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

진문공의 논공행상

by 변리사 허성원 2022. 4. 6.

** 기업이 성장과 성공의 이면에는 각자의 분야에서 땀흘려 노력한 조직원들의 기여가 있다. 그들에게는 응분의 보상이 주어져야만 더 크고 더 지속적인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공평하지 않은 보상은 오히려 재앙이 될 수 있다. 공평한 분배는 각자의 기여도를 적절히 평가하여 그에 합당하게 차별을 두어 시행하는 것이다. 어떤 평가기준이어야 할 것인가. 2600년 전 춘추시대 진문공의 논공행상(論功行賞) 에피소드들로부터 그 지혜로운 판단 방법을 배워보기로 하자. **

 

1. 이끄는가 보좌하는가 지키는가 받드는가

 

논공행상(論功行賞)은 공()을 논하여 상()을 시행하는 일이다. 전쟁에서 승리하거나 정변 등으로 권력을 잡았을 때 상을 베풀어 공신들의 충성심을 고취시키고 권력의 유지와 강화를 도모한다. 그러나 논공행상이 공정과 적정에 실패하면 신뢰가 무너지고 분란이 일으켜 오히려 위기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스타트업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실적이 오르고 투자가 넉넉히 유치되면 경영자는 그동안 고생해온 팀원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베풀어야 한다. 다들 나름 기대한 바가 있을 것이고 사람마다 능력, 역할, 기여가 모두 달라 차등이 불가피하니 경영자들의 머리가 아프지 않을 수 없다. 고민하는 그들에게 진문공(晉文公, 재위 BC636~628)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진문공은 제환공(齊桓公)에 이어 춘추시대 두 번째로 패업을 이룬 진나라 군주다. 정치적인 핍박을 피해 19년 동안 근 1만 리에 이르는 망명의 유랑생활을 하며 파란만장한 역경을 겪고 62세가 되어서야 귀국하여 임금 자리에 올랐다. 고되고 긴 망명 생활을 함께 한 여러 충성스런 신하들에게 진문공은 즉위 후 논공행상을 시행하였다.

하급 관리 호숙(壺叔)이 공신록에서 빠져있음을 알고 진문공에게 나서 말했다. "신은 포 땅에서부터 주공을 따라 발꿈치가 모두 갈라지도록 천하를 뛰어다녔습니다. 머무르면 침식을 받들고 나서면 거마를 점검하며 잠시도 곁을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지금 주공께서 망명에 따랐던 사람들에게 상을 내리시면서 저에게만 미치지 않으니, 혹 신에게 잘못이 있어서입니까?"

이에 진문공이 대답했다. "가까이 오라. 과인이 잘 알게 해주리라. 나를 인의(仁義)로써 이끌어 나의 마음을 넓게 열어준 사람(肺俯開通者)에게 높은 상을 내렸다. 나를 지략으로 보좌하여 제후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해준 사람(不辱諸侯者)에게는 그 다음 상을 주었다. 화살과 돌을 무릅쓰고 창날을 막으며 온몸으로 나를 지킨 사람(以身衛寡人者)에게는 또 그 다음의 상을 내렸다. 그러니 높은 상은 덕()에 대한 상이며, 다음이 재()에 대한 상이고, 그 다음이 공()에 대한 상이다. 천하를 돌아다닌 수고로움()은 필부의 힘을 쓴 것이니 그 아래에 있다. 세 가지 상을 시행한 후에 너의 차례가 올 것이다." 호숙은 부끄러이 승복하며 물러났다.

동주열국지(東周列國志)에 나오는 대목이다. 사기(史記)의 기록과는 약간 다르지만, 이쪽이 가슴에 더 와 닿는다. 진문공의 포상 등급 기준은 덕(), (), (), ()의 순이다. 각 덕목에 대한 수식어만 보아도 각 상에 대한 의미의 차이가 확연히 느껴진다. () 마음을 열어준 사람’, () 부끄럽지 않게 한 사람’, () 창칼을 무릅쓴 사람’, () 뛰어다닌 사람이다. 혹은 이들은 각각 이끈 사람’, ‘보좌한 사람’, ‘지킨 사람’, ‘받드는 사람으로 표현되어 있다.

()'은 군주를 인의로서 이끌어 바른 인성 및 철학을 심어주고 포부를 키워 큰 비전을 가진 리더로서 성장시켜주었다. 가히 가장 높은 공적을 차지할 만하다. ‘()’는 지략으로 군주를 도와 조직의 생존과 자존심을 지켜주었다. 이는 타인이 만든 상황에 반응하거나 의존하지 않고 상황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힘 즉 생존역량을 제공한다. ‘()’은 주어진 의무를 다하는 충성과 용기에 기초한 덕목이다. 군주의 목숨을 구해주기도 하지만 상황 반응적인 개인의 헌신이기에, 리더십과 조직 역량의 기초가 된 덕()과 재()의 아래에 둔 것으로 보인다. 끝으로 ()’는 지시에 응하여 성실하게 자신의 힘을 다한 소극적 가치이니 가장 낮게 평가되었다.

이러한 덕목들을 스타트업의 업무에 적용해보자. ()은 기업의 존재이유 즉 비전을 구축하는 리더십의 요체다. 이는 주로 창업자의 몫이지만 멘토나 투자자 등이 기여할 수도 있다. 기업의 핵심역량을 구축하여 비즈니스 주도성과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연구개발이나 기획 분야는 ()’의 역할에 해당한다. 영업이나 생산 분야와 같이 실적을 중시하는 영역은 ()’의 몫이며, ‘()’는 지시받은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실무자의 것이다. 따라서 각 영역의 주요 가치는 각각 리더십(), 주도성(), 사명감(), 성실성()으로 규정할 수 있다.

이제 귀사의 논공행상의 잣대를 점검해보시라. 그대를 이끄는가, 보좌하는가, 지키는가, 혹은 받드는가.

 

2. 백세의 이로움인가 일시의 방편인가

 

최근 눈에 띄는 몇 가지 기사가 있다. 먼저, 우리나라 자동차 회사의 엔진 결함 은폐 사실을 고발한 내부고발자가 미국에서 280억 원이라는 거액의 포상금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개인은 횡재를 했지만, 거액의 벌금 및 이미지 실추와 함께 백수십만 대의 차량을 리콜한 기업의 입장은 무척이나 곤혹스러울 것이다.

입찰담합으로 인해 수백억 원의 과징금을 물었던 한 대기업 건설사의 주주들이 전직 대표이사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걸어 승소하였다. 특히 대표이사 외에 나머지 이사들에게까지도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되어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이사들은 담합 사실을 알지 못했거나 알 수 없었다고 항변했지만, 판결은 대표이사의 업무 집행을 적극적으로 감시하여야 할 이사회의 의무를 강조하면서 그 항변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한때 일본의 대표기업이었던 근 150년 역사의 도시바가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고 있다고 한다. 문어발식 사업 확장의 부담이 컸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수년 전에 발생한 회계부정이 몰락의 치명타가 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들 기사는 모두 윤리 혹은 준법을 어긴 경영 결과에 관련된 것으로, ‘이익 옳음 사이의 선택의 갈등에 기인한다. 이런 갈등에 시름하는 리더들은 진문공(晉文公, 재위 BC636~628)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여씨춘추(呂氏春秋) 효행람(孝行覽)에 나오는 기록이다.

진문공은 춘추시대 두 번째 패자다. 그의 패자 등극은 당시의 강대국인 초나라를 상대로 한 성복전투에서 크게 승리한 덕분이다. 이 전투를 앞두고 진문공은 측근의 충신인 구범(咎犯)을 불러 물었다. “초나라는 병력이 많고 우리는 적다. 어찌하면 좋겠는가?” 구범은 신이 듣기로는 예()를 좋아하는 임금은 겉치레를 지나치다 하지 않고, 전쟁을 자주 하는 임금은 속임수를 싫어하지 않습니다. 임금께서도 그런 속임수를 쓰는 것이 마땅합니다.”라고 답하였다. 그러자 구범의 말을 들은 옹계(雍季)가 말했다.

연못의 물을 다 퍼내어 고기를 잡는다면 어찌 고기를 잡지 못하겠습니까. 그러나 다음해에는 물고기를 보지 못할 것입니다. 숲을 불태워 사냥한다면 어찌 짐승을 잡지 못하겠습니까. 그러나 다음해에는 짐승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속이는 술책을 쓰면 비록 지금은 훔칠 수 있겠지만 다시는 되풀이할 수 없을 것이니, 올바른 방책이라 할 수 없습니다.”

옹계는 소위 갈택이어(竭澤而漁, 연못의 물을 말려 고기를 잡다)’의 비유를 들어 속임수를 쓰지 말고 정당하게 전쟁에 임할 것을 간언한 것이다. 하지만 진문공은 그 간언을 듣지 않고 구범의 말을 채택하여, 초나라를 성공적으로 무너뜨렸다. 그런데 예상을 뒤엎고 논공행상에서는 승리의 계책을 제언한 구범을 제쳐놓고 그 계책에 반대한 옹계를 으뜸 공신으로 올렸다. 그러자 좌우 신하들이 그 부적절함을 간하였다. 이에 진문공이 답하였다. “옹계의 말은 백세의 이로움이지만, 구범의 말은 일시의 방편이다. 어찌 일시의 방편 백세의 이로움에 앞설 수 있겠는가.”

옹계의 옳음 백세의 이로움(百世之利)’이고, 구범의 속임수 일시의 방편(一時之務)’이라 분별하였다. 전쟁에서는 이기거나 살아남기 위해 적을 기만하는 속임수를 쓸 수 있다. 손자병법에서도 전쟁은 속임수(兵者詭道也)’라고 하고, ‘정공법으로 대적하여 편법으로 승리하라(凡戰者 以正合 以奇勝)’고 가르친다. 하지만 속임 즉 일시의 방편은 임기응변의 불가피한 선택이어야 한다. 속임의 방편으로 만대에 이어져야할 나라의 사직을 지킬 수 없다. 그래서 진문공은 비록 옳음을 버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지만 그 옳음의 귀한 가치를 높이 존중하여 으뜸상을 내렸던 것이다.

기업의 결함 은폐, 담합, 회계부정은 순간의 이익을 구하는 속임’이다. 그것은 연못을 말려 고기를 잡는 일이다. 이제 갈수록 기업의 부정한 일시의 방편은 법률적 사회적 압박을 더 강하게 받게 되고, 그 지속가능성을 더욱 위협할 것이다. 이익은 눈앞에 있고 옳음은 멀리 있다. 그러나 기업의 지속을 원한다면, 가까운 이익에 마음이 흔들릴 때 반드시 멀리 있는 옳음을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見利思義).

그러니 모든 선택에 앞서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그것이 백세의 이로움인가 혹은 일시의 방편인가. 그리고 또 한 가지 꼭 물어보아야 할 것이 있다. 귀 조직에는 ‘그름’을 밝히며 ‘옳음’을 간하는 진정한 사람이 있는가.

(경남이노비즈협회 회보 원고. 2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