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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285

모호함의 미학 모호함의 미학 .. 내가 변리사로서 첫 실무를 시작했던 그 사무소의 대표 변리사는 군산 출신이셨다. 그 지방 출신답게 불특정 대명사인 '거시기'라는 말을 자주 쓰셨다. 가끔 내 자리에 어슬렁어슬렁 오셔서는 뜬금없이, '허변, 거시기 그거.. 거시기 하고 있는가?'라고 물으셨다. 처음에는 질문하시는 진의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어느 사건 말씀인가요?'라고 되묻기도 하고, 어떤 땐 최근에 함께 협의하였던 사건에 대해 물어보시는 거라 여기고 그 사건의 진행 상황에 대해 상세히 보고드리기도 했었다. 그런데 좀 지나고 보니 그 질문에는 별 뜻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저 '별 일 없지?' 혹은 '열심히 하고 있는가?' 정도의 인사말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래서 좀 익숙해진 후에는 대화가 매우 순조로워졌다."허변,.. 2018. 10. 21.
아버지와 어머니 산소 아버지와 어머니 산소 오늘 아버지를 모시고 어머니 산소에 가서 여러가지 꽃나무를 심었다.다음 주가 되면 어머니가 가신지 만 1년이 되기에, 아버지는 묘목을 미리 준비해두시고는 날을 잡아 우리 형제들을 불러 따르게 하셨다. 묘목은 거의 30포기 정도에 종류도 참 다양하게도 골라 오셨다. 산수유, 앵두, 석류, 대추나무, 철쭉 등봄부터 가을까지 꽃이 끊어지지 않게 하시고 싶으시단다.앵두나무는 벌써 몽우리가 벌어져 있으니, 내년부터 해마다 이맘 때 어머니 기일(음력 3월 초이틀)이 다가오면 앙증맞은 앵두꽃이 만개하게 될거다. 앵두꽃 옆에는 참꽃과 개나리도 함께 필테고, 몇 년 지나면 산수유도 껑충히 한몫 거들게 될 거니까, 그 땐 환상적인 꽃의 오케스트라를 연출하게 될 것 같다.그리고 이 초봄 꽃들의 향연이 .. 2018. 9. 2.
아버지의 여행 소동 아버지의 여행 소동 아버지가 혼자서 여행을 가시겠다고 한다. 동생들이 말리다 도저히 어찌 할 수 없다고 연락이 왔다. 그 말을 듣고 부리나케 아버지에게 달려갔다. 곧 아흔이 되실 상노인이 우찌 그리 가당찮은 생각을 하셨을까. 어딜 그렇게 가시고 싶습니꺼? - 새만금도 들러보고 청주에도 가보고, 서울에 너그 집에 가서도 며칠 있다 올란다.제가 모시고 가겠습니더. - 안된다. 니하고 댕기믄 싸워싸서 재미엄따. 그라믄 애미하고 다니시지예. - 며느리하고 다녀도 재미엄따. 내 마음 내키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다니고 싶다. 밥은 우짜고예. - 컵라면 사먹으면 된다. 잠은요? - 여인숙에 가서 자믄 되지. 요즘 여인숙 없습니더. - 그라믄 유곽에라도 가서 잘끼다. 유곽이라는 거 없어진지 수십년도 더 됐습니더. -.. 2018. 9. 2.
똥장군 똥장군 ** 옛날 변소는 대소변을 구덩이에 그대로 가둬두었다가 양이 차면 퍼내야 하는 소위 푸세식이다. 양이 충분히 쌓이고 거름으로 쓸만큼 적절히 삭으면 푸어야 한다. 이를 '변소 친다'라고 한다. 우리집에는 나란히 두 개의 구덩이가 있었는데, 아마도 거름으로 잘 삭히기 위해 교대로 썼던 듯하다. 경상도에서 변소를 '통시'라 불렀다. '통시'는 변소나 화장실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지만, '변소'는 뒷간 전체의 공간적 개념이 강하다면, '통시'는 똥통 구덩이의 의미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변소에 빠졌다'라는 말보다 '통시에 빠졌다'라는 말을 더 쉽게 썼으니까. 어릴 때 변소는 매우 불편한 곳이었다. '통시' 위에 평행하게 걸쳐둔 판자에 쪼그리고 앉아서 볼일을 봐야 하는데, 애들에게는 아래의 깊고 넓은.. 2018. 8.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