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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아버지

아버지와 어머니 산소

by 변리사 허성원 2018. 9. 2.

아버지와 어머니 산소


오늘 아버지를 모시고 어머니 산소에 가서 여러가지 꽃나무를 심었다.

다음 주가 되면 어머니가 가신지 만 1년이 되기에, 아버지는 묘목을 미리 준비해두시고는 날을 잡아 우리 형제들을 불러 따르게 하셨다.

묘목은 거의 30포기 정도에 종류도 참 다양하게도 골라 오셨다. 산수유, 앵두, 석류, 대추나무, 철쭉 등

봄부터 가을까지 꽃이 끊어지지 않게 하시고 싶으시단다.

앵두나무는 벌써 몽우리가 벌어져 있으니, 내년부터 해마다 이맘 때 어머니 기일(음력 3월 초이틀)이 다가오면 앙증맞은 앵두꽃이 만개하게 될거다. 앵두꽃 옆에는 참꽃과 개나리도 함께 필테고, 몇 년 지나면 산수유도 껑충히 한몫 거들게 될 거니까, 그 땐 환상적인 꽃의 오케스트라를 연출하게 될 것 같다.

그리고 이 초봄 꽃들의 향연이 조금 시들해지고 어머니 생신(음력 4월 11일)이 다가올 때 쯤이면 아마도 철쭉과 석류꽃이 바통을 이어서 한동안 주위의 녹음과 어우러져 어머니 산소를 장식해 주게 되겠지.

아버지는 나무들 사이에 국화를 심으시겠다고 하신다. 당연히 가을의 외로움을 덜어주시려는 배려이신 거지.

옛날, 어머니는 아버지에 대해 불만이 많으셨다.
특히 지지리도 정도 없는 양반이라고.. 사실 좀 그렇긴 하셨다. 대부분의 경상도 남자가 그러하듯..

하지만 지나고 보니 어머니의 투정은 맞지 않은 것 같다.
어머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누우신 후, 동생 내외가 모시고 살면서 무척이나 고생도 하고 정성을 들이긴 했지만, 그래도 한 방의 한 침대에서 생활하시는 아버지 당신께서 정작 직접 하셨던 긴 병치레의 온갖 궃은 수발은 어느 자식도 대신하지 못할 일이었다. 그리고 돌아가신 후 이토록 이 산소를 공단같이 꾸미시는 애틋한 정성을 보면 누가 정이 없는 양반이라 할 수 있을까.

어머니는 6남매의 장녀로 태어나 어린 동생들을 사실상 키우시다가, 7남매의 장남이신 아버지에게 시집을 오셔서, 대가족을 수발하며 우리 5남매를 낳아 기르셨다. 5척 단구의 갸날픈 체구의 약한 몸으로 작지 않은 규모의 농가 살림을 단손으로 감당해내셨지. 어린 우리가 봐도 너무도 눈물겹게 힘든 일생을 보내셨다. 그런데 자식들이 그나마 세상에 나가서 사람 행세를 하는 듯할 즈음에 덜컥 쓰러지셔서 근 7~8년 이상을 자리보전하시다 돌아가셨다.

그런데 어쩌면 어머니는 자리에 누우신 이후의 기간이 오히려 평생에 가장 행복했던 때였을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벽창호 같은 아버지께서 24시간 대소변 수발을 포함해서 지극 정성으로 수발을 들어주시고, 온갖 역정이며 투정도 조금도 거리껴하시지 않았으니까. 어쩌면 젊을 때 무심했던 남편에게 제대로 충분히 보복을 하시고 덤으로 보상을 받으신 셈이다. 그리고 돌아가신 이후에 산소를 저토록 정성으로 꽃단장을 해드리고 계시니, 저 세상에 계신 어머니의 기분은 어떠하실까.

아버지는 산에서 내려오시면서 항상 듣던 그 말씀을 섞어서 심계를 드러내 놓으신다.

“범을 청치 말고 숲을 짙게 하라는 말처럼,
앵두가 열리고 석류가 익으면
자손들에게 오라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찾아오고 싶어지지 않겠나”

[2011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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