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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아버지

모호함의 미학

by 변리사 허성원 2018. 10. 21.

모호함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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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변리사로서 첫 실무를 시작했던 그 사무소의 대표 변리사는 군산 출신이셨다. 그 지방 출신답게 불특정 대명사인 '거시기'라는 말을 자주 쓰셨다. 가끔 내 자리에 어슬렁어슬렁 오셔서는 뜬금없이, '허변, 거시기 그거.. 거시기 하고 있는가?'라고 물으셨다. 처음에는 질문하시는 진의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어느 사건 말씀인가요?'라고 되묻기도 하고, 어떤 땐 최근에 함께 협의하였던 사건에 대해 물어보시는 거라 여기고 그 사건의 진행 상황에 대해 상세히 보고드리기도 했었다. 

그런데 좀 지나고 보니 그 질문에는 별 뜻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저 '별 일 없지?' 혹은 '열심히 하고 있는가?' 정도의 인사말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래서 좀 익숙해진 후에는 대화가 매우 순조로워졌다.

"허변, 거시기 그거.. 거시기 하고 있는가?"
"예. 거시기는.. 별 거시기 없습니다."

이런 희안한 우리 대화를 듣는 주변의 팀원들은 웃음을 참느라 애를 먹었다고 한다.

영화 '황산벌'에서 이문식의 '기시기' 관련 코메디 연기는 압권이었다. 신라의 첨자가 염탐해온 백제군들의 대화는 모두 거시기로 시작해서 거시기로 끝나니, 제대로 염탐은 했으되 아무 것도 알게 된 게 없었다. 

'거시기'는 아무것도 뜻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많은 것을 의미한다. 때론 그 모호함이 참 유용하다. 그 모호함 속에는 항상 명확한 메시지가 있다. 단순한 말문을 트는 인사이거나, 정서적 공감에 대한 확인이거나, 난감한 구체적인 상황을 우회하기 위해서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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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작은아버지는 
각자 적잖은 농사를 지으셨다. 항상 여러 일꾼들의 도움을 받았는데, 두 분의 일꾼 다루는 방식이 판이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방식에 불만이 많으셨고, 항상 작은아버지의 방식을 부러워하셨다.

아버지는 성격이 곰꼼하신 분이라, 어떤 일이든 나름의 표준을 정하고 그것을 모두가 알 수 있도록 하여 빈틈없이 뜻한 대로 이루어지도록 하시는 분이었다. 비닐 하우스를 지을 때에도 재료를 정확히 설계하고 재단하여 제자리에 어김없이 적용되도록 하셨고, 종이나 노끈 하나를 자르더라도 허투루 남거나 행여 모자라지 않아야 한다. 훌륭한 엔지니어로서의 자질이라 할 수 있다. 가끔 너무 여유없이 설계를 했다가 아까운 비닐 등 재료를 통째로 못쓰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성정을 가진 분이시니, 일꾼들을 다룰 때에도 그랬다. 까다로운 당신의 방식을 사전에 세세히 전수하였고, 그들이 하는 일을 일일이 확인하셔야 직성이 풀리셨다. 그러니 일하는 사람도 주인의 지적을 염두에 두면 여간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런 신경 씀이 일하는 맛을 떨어뜨렸을 것이고 일의 효율에도 보탬이 될 리가 없었다. 특히나 곁에서 수발하는 어머니에게는 융통성 없는 숨막힘이었을 것이다. 
이에 반해 작은아버지는 아버지보다 대범하고 거친 편이었다. 아버지 말씀에 따르면 일 재주가 무뎠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일을 잘 가르치지도 못하셨다. 그저 총괄적인 목표만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부분은 막연히 일꾼들에게 맡겼다. 목표가 주어지면 일꾼들은 그 일을 효율적으로 끝내기 위해 스스로 일을 할당하고 일하는 방식도 스스로 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나면 이제 그 일은 자신들의 것이었다. 스스로 일을 설계하고 시작하니, 충만한 성취동기를 가지고 즐겁고 효율적으로 일에 임하였을 것이다. 지시의 모호함은 자발성을 유발시키고, 자발성은 동기 부여와 성취의 즐거움을 가져다 준다.

어릴 때 아버지의 지시를 받아 일을 하면 어쩐지 즐겁지가 않았다. 시시콜콜 시키는 대로만 하여야 하고, 시킨 대로 하지 못하거나 조금이라도 내 나름의 요령을 부렸다가는 호통이 떨어진다. 내가 일을 하면서도 내 일을 한다는 성취감이 없으니 일의 재미가 있을 리 없었다. 내가 한 일이 잘 마무리 되면 그건 아버지가 시킨대로 한 결과이니 칭찬받을 이유도 없다. 아버지와의 일의 결과는 당연한 결과이거나 잘못을 지적당하는 것뿐이다. 그래서 어릴 때 칭찬을 받아본 기억이 거의 없다.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세심함은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 특히 복잡한 상황이나 민감한 기계장치에 관련하는 일에서는 생명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사람을 다루는 데 있어서는 미묘한 사람의 심리를 고려한 세심함이 필요한 때가 있는가 하면, 디테일을 완전히 배제하고 큰 그림만을 가지고 모호하게 지시하여 내적 동기를 촉발시켜야 할 때가 있다. 
그러니 모든 리더는 세심함과 모호함이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두 덕목을 한 몸에 무장하여, 상황에 따라 크고 작은 인간적 모습을 선택적으로 구사할 수 있어야 하는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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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리사가 되어 사무소를 개업하고 나니 직원들을 교육시키고 일을 검수할 일이 내 일을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우리 업무의 특성상 오류가 허용되지 않으니 꼼꼼한 검수가 불가피하다. 워낙 다부지게 가르치니 한 때 우리 사무소는 변리사 업계의 사관학교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아버지를 그대로 닮아있는 나를 발견하였다. 모든 메일과 문서 등의 작성에 있어 그 디테일에 집착하여 빈틈없이 검수한다. 내게 결재 올라온 서류에 칭찬은 없다. 가차없는 지적 사항들로 넘쳐난다. 최근에야 그 지적질 버릇을 좀 줄이긴 했지만 내 속의 '디테일의 악마'로 인해 그동안 적잖은 내상을 입은 수많은 영혼들에게 그저 미안할 따름이다.
오래 전에 우리 사무실에서 실무 수습을 하였던 변리사를 얼마 전에 만났더니, 그 당시에 내가 지적해주었던 초안들을 아직 간직하고 가끔 들여다 본다고 한다. 낯이 화끈거렸다. 설마 내가 가르쳐준 것을 복습하기 위해 볼 것 같지는 않다. 무슨 생각을 하며 그 지적질 투성이 초안을 다시 들여다 보았을까? 자신의 상처를 어루만지기 위해서는 아닌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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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에 아들 방에서 모자 간의 대화가 좀 날카로워지더니,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는 내게까지 거슬리게 들려왔다. 대충 상황을 보니, 한참 정신 없을 고3 아들이 인터넷으로 딴 짓을 좀 하고 있었고, 그걸 본 아내는 더 빡세게 수험 준비를 하지 않는다고 이것저것 지적한 듯하다. 아들은 엄마의 지적하는 언어나 내용이 너무 불편하다고 그렇게 기분 나쁘게 말할 거 뭐 있냐고 반발하고 있다. 한참을 듣다가 둘다 불러서 잠시 이야기를 함께 하면서 아들의 태도를 중점으로 지적하며 어찌 풀리기는 했지만, 나는 사실 아내의 지적(질책) 방법이 영 마음에 불편하다. 그냥 '수험 준비 좀더 집중해서 노력해야지?' 정도로만 말하면 아들은 혼쾌히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들에게, 지난 모의고사에서 어느 과목은 몇 등급이고 전체는 어떻게 되는데 지금 그런 식으로 긴장을 풀고 있으면 결과가 어찌 되겠냐는 식으로 바늘로 찌르듯 콕콕 집어서 말하면, 설사 그 말이 아무리 옳은 말이라 하더라도 듣는 아이의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설사 어찌 좀 해봐야겠다는 마음이 촛불만큼 있었다 하더라도 그 질책에 훅 꺼져버리고 말지 않겠는가. 
고3은 지금 한창 피말리게 경기를 하고 있는 라운딩 중의 골프 선수와 같다. 그런 선수에게는 그저 총괄적인 상위개념으로 간단히 말하는 게 좋다. 이렇게.. "아들아~ 잘 하고 있나?" 혹은 "힘들재? 쉬엄쉬엄해라~ 인생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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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런 격언이 생각난다.

'악마는 디테일 속에 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과도한 디테일은 인간관계를 근본적으로 망가뜨리는 악마가 될 수 있다. 악마는 그냥 디테일 속에 숨겨서 드러내지 말고, 그저 상위 개념만 언급하는 것이 평화와 사랑을 유지하는 최고의 지혜이다.

여하튼 이것저것 생각해보면, 우리 전라도 말 속의 '거시기'라는 표현이 그렇게 신통할 수가 없다.

'여러분들~ 경기가 어려운 요즘 다들 거시기 하고 하고 계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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