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전학자 박황희 교수님의 페이스북 게재(250201) 글입니다. 워낙 재미있는 주제라 여기 옮겨왔습니다.)
(* 꿈이 거래 대상이었다는 사실만로도 무척 흥미롭지만, 조선시대의 계약 문화가 매우 보편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어 더욱 관심이 갑니다. 계약 내용이 요건을 잘 갖추고 있네요. 양 당사자와 거래대상 특정, 거래 조건, 대금 지불 시기, 효력 발생 요건, 증인 등등.. 이 정도 계약이면 거의 다툼의 여지가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선의 계약 문화 수준이 상당히 높았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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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몽 매매문서]
조선시대에 꿈을 사고팔았던 실제 매매 문서가 최초로 공개됐다. 길몽을 사고파는 일은 삼국시대 김유신의 누이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는 매우 친숙한 풍습이다. 그러나 꿈의 매매는 통상 구두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실제적 근거를 고증할 수가 없었는데, 이번에 국학진흥원에서 발견된 ‘꿈 매매 문서’는 그런 의심을 불식시킬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이러한 고문서를 통해 길몽은 과거에도 선조들이 특별한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중히 여겨서 상호 간에 매매가 되기도 하였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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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사진은 ‘순천박씨 충청공파’ 문중에서 기탁한 자료이다. 비록 노졸한 솜씨이지만 내가 직접 탈초와 번역을 하였다.
[사진 - 1]
‘1814년 2월에 친척 동생 용혁에게 주는 문서’
위 문서는 지난달 그믐날 밤, 내가 꿈에 청색과 황색 두 마리 용이 변화하여 하늘에 오르는 것을 보았는데, 사흘 뒤 3월 3일에 친척 동생이 정시(庭試)를 보러 가면서 두 마리 용꿈을 사기를 원하므로 이에 돈 일천 냥으로 가격을 정하여 영원히 판매한다. 과거 급제 후 읍재(邑宰)가 되었을 때 위 가격을 준비하여 갚기로 한다. 모쪼록 이 문서로서 훗날 이 일을 증빙한다.
꿈 주인 – 박기상(朴基相)
작성자 꿈을 사는 사람 - 박용혁
증인 - 친척 동생 박기상(朴基祥)
증인 - 친척 동생 박광섭
嘉慶拾玖年 族弟 龍赫前 明文
右明文事段, 去月晦日夜, 夢見靑黃兩龍, 變化升天, 而越三日三月三日, 族弟發去庭試, 而願買兩龍, 故玆以価折錢文一千兩, 永永放賣爲去乎. 登科後, 作宰時, 右価文濟濟備償. 須此文記道良以爲, 日後憑考之此事.
夢主 朴基相
筆執 買夢主 朴龍赫
證人 族弟 朴基祥
族弟 朴光燮
이들이 남긴 길몽 매매 문서에는 ‘몽주(夢主-꿈 주인)’ 박기상, ‘매몽주(買夢主-꿈을 산 사람)’ 박용혁과 두 당사자 말고도 친척 두 명이 ‘증인’으로 참석했다. 날인으로 참석자들의 수결[sign]이 있다. 문장은 ‘이두 문자’와 ‘갖은자(字)’가 섞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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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사진은 ‘진주강씨 도은공파’ 문중에서 기탁한 자료이다.
[사진 2]
‘1840년 2월 22일 진주강씨 강만에게 주는 문서’
위 문서는 나에게 청색과 황색 두 마리 용꿈이 있었는데 상전의 친척 동생 총각 강만 씨가 청·홍·백 삼색의 실로써 사 가고자 하는 것이다. 이에 문서를 작성하여 위 총각에게 영원히 받들어 줄 일이다.
꿈의 주인 양반의 하녀 신(辛)
증인 남편 박충금
太淸道光二十年 庚子二月二十二日 晉山姜鏋氏前 明文
右明文段, 矣身有二龍靑黃之夢是如矣. 上典之族弟, 總角姜鏋氏, 以靑紅白三吐絲, 買去爲去乎.
玆以成文記, 右總角前, 永永奉給事.
夢主 班婢 辛
證人 夫 朴忠金
위의 꿈 매매 문서에는 ‘몽주’인 양반의 하녀(班婢) 신(辛) 씨와 ‘증인’인 그녀의 남편 박충금의 수결이 들어 있다.
한자가 부담스러운 사람에게는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겠으나 국학이나 고문서를 전공하는 사람에게는 매우 귀중하고 흥미로운 자료이다. ‘노비 매매문서’, ‘이혼 증서’, ‘분재기’ 등과 함께 강의 시간에 우려먹을 일이 많은 자료이다. 페친 제위께도 흥미와 관심을 함께 나누고자 공개한다.
霞田 拜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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落張 ;
이 문서를 보고 지난 정월 초하룻날 꿈을 꾸었다. 꿈에 어린 시절 살던 마당 너른 집이 나왔다. 그 너른 마당에 ‘황금빛용’이 ‘여의주’를 물고 무릎을 꿇고 있었다. 내가 올라탔더니 미동도 없이 고속 엘리베이터처럼 순식간에 구름 위로 올랐다. 구름 위에서 햇살에 비치는 영롱한 여의주가 너무나 신비하여 그것을 만지려고 용의 머리 쪽으로 기어가다 그만 턱밑에 있는 역린을 건드리고 말았다.
不入 ;
역린을 건드리자 놀란 용이 입을 벌리고 수직으로 승천하였다. 동시에 여의주와 나는 용에서 떨어져 한참을 추락하였다. 마침내 내가 떨어진 곳은 어느 산골 집의 ‘돼지’ 막사였다. 다행히 토실토실한 돼지우리 속에 떨어져 다친 데는 없었다. 그러나 그 영롱한 여의주는 돼지 막사 앞 둔덕에 떨어져 산비탈을 굴러가고 있었다.
一手 ;
여의주가 멈춘 곳은 어느 노파가 홀로 사는 집 마당의 ‘개’집 앞이었다. 나는 죽을힘을 다하여 좇아갔다. 그런데 그 누렁이가 여의주를 보더니 낼름 입에 물고 만 것이다. 나는 필사적으로 그 누렁이와 싸웠다. 내가 누렁이와 싸우는 사이 그 여의주는 또다시 데굴데굴 굴러갔다. 그때 집에 들어오던 노파가 길에서 여의주를 주웠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마침 집 앞을 지나던 엿장수에게 ‘엿’ 두 가락과 바꾸었다.
不退 ;
두 손에 엿가락을 든 노파는 개와 싸워 피투성이가 된 내가 절뚝거리며 나오는 것을 보더니 안 됐다고 엿가락 한 개를 주었다. 꿈에 나는 징징 울면서 하염없이 엿을 빨다가 깨었다.
落穗 ;
이 꿈이 ‘용꿈’일까요~, ‘돼지꿈’일까요~, 아니면 ‘개꿈’일까요~, 그도 저도 아니면 ‘엿 먹는 합격 꿈’일까요~, 한방에 맛보기 어려운 이 종합세트 선물 꿈을 ‘설맞이 특별 할인가’로 강호의 페친 제위께 한정 판매하고자 합니다. 수량이 한정되었으므로 서두르셔야 합니다. 이 꿈이 꼭 필요하신 분은 반드시 현금을 지참하시고 법원 앞으로 나오시길요~, 제가 직접 매매문서 작성하고 공증도 해드리겠습니다. 특별히 자칭 노파라고 생각되시는 분은 반액 할인이 가능합니다. 꿈에 엿가락 한 개를 준 것에 대한 보은입니다.
ㅎㅎ~,
餘滴 ;
긴 연휴 동안 혼자 집을 지키며, 낮에는 책보고 밤에는 혼·술로 지내다 보니 현실과 꿈이 구분이 잘 안되어 마침내 돌아이가 된 것 같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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