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弔辭)
친구야..
설날 전후에 그렇게도 눈이 탐스럽게 내리길래
올해에는 풍년이 들고 우리가 하는 일에 만사가 술술 풀리려나 했더니
아닌 정초에 난데없이 자네 부고를 받고는,
놀람과 황망함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네.
이 사람아~
어찌해서 무슨 뜻으로 이리 급히 가는가
이렇게 허무하게 가버리려거든 차라리 그 놈의 정이나 남기지 말지
황망히 자네를 보내고 뻥 뚫린 가슴을 안고 넋이 빠진 채 남아 있어야 할 우리는 모두 어쩌란 말인가
준근이 이 사람아~
보름이 좀 넘었던가..
문득 새해 들어 자네와 소주나 한잔할까 해서 연락했더니
어깨를 다쳐 병원에 가는 중이라 했었지.
아~ 그 엄살처럼 들리던 앓던 소리가 자네의 마지막 목소리가 되고 말 줄이야.
그 끙끙대던 소리마저 이렇게 감사하고 귀할 줄이야.
이 친구야~
이제는 어찌 해야 하는가.
날이 좋으면 좋다고, 꽃이 피면 피었다고, 비가 오면 비 온다고,
그런 저런 핑계로 술잔 기울이며 세상일을 함께 떠들어대던 우리가 아니었나
이제 저 대로변에 벚꽃이 온통 흐드러지게 피는 봄이 오면
나는 어쩌란 말인가.
가슴 적시는 여름비가 내리는 저녁이 되면
또 나는 어떡하란 말인가
저 매타셰콰이어가 서서히 갈색으로 변해가는 늦은 가을이 되면..
자네가 보고파서 어쩌란 말인가~ 이 친구야
내 마음이 우울할 때 내 몸이 지쳤을 때 내 가슴이 허전할 때
그때는 또 어쩌란 말인가.
하~ 여보게 준근이~
자네와 함께 할 수 있던 많은 시간은 행복했고 고마웠네.
자네의 그 가슴은 항상 따뜻했고,
말은 언제나 재치 넘치고 유쾌했었지.
그리고 자네의 태도는 누구에게나 겸손하고 부드러웠지.
그러기에 자네를 아는 모든 사람은 자네를 진심으로 좋아했었지.
이제 우린 그런 자네를 더 이상 볼 수가 없게 되었네.
하지만 자네의 그 고운 심성만은 우리 가슴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네.
부디 편히 떠나게.
그동안 자네가 힘들어 했던 온갖 시름과 미련은
이제 여기 버려두고 훌훌 벗어두고
깃털처럼 가볍게 가볍게 떠나도록 하게.
애도 탈도 없는 그곳에서 평온히 영면하시게.
우리 모두 언젠가는 그곳으로 갈 터이니 그곳에서 자리를 잘 닦아두시게.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겠네.
잘 가게.
부디 잘 가시게.
무척이나 정이 많았던 내 좋은 친구
많이 그리울 거네.
끝으로 한 번 더 그 이름 불러보네.
준근아~
_ 을사년 정월 초닷새, 허성원이 <벗 준근을 떠나보내며>..
(* 내 좋은 술 친구 차준근은 을사년 새해들어 초사흘(2025. 01. 31.)에 갑작스런 합병증으로 우리 곁을 떠났다. 사정을 자세히 듣지는 못했지만 식중독에서 기인한 폐혈증이라고 하는데 평소의 지병인 당뇨도 영향이 컸던 듯하다. 아직도 마음 속 한 구석에 구멍이 뻥 뚫려있다. 아까운 친구를 보내며 발인제에서 이 조사를 읊었다. 조사를 읊는 중에 잠시 온몸이 부르르 떨리는 희한한 경험을 했다. 아마 이 친구가 내 조사에 응답을 해준 것 같았다. 친구야~ 그 세상에서 평온하게 영원을 누리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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