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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토피카

친구를 떠나보내며..

by 변리사 허성원 2025. 2. 3.

조사(弔辭)

 

친구야..
설날 전후에 그렇게도 눈이 탐스럽게 내리길래
올해에는 풍년이 들고 우리가 하는 일 만사가 술술 풀리려나 했더니
아닌 정초에 난데없이 자네 부고를 받고는,
놀람과 황망함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네.

이 사람아~
어찌해서 무슨 뜻으로 이리 급히 가는가
이렇게 허무하게 가버리려거든 차라리 그 놈의 정이나 남기지 말지
황망히 자네를 보내고 뻥 뚫린 가슴을 안고 넋이 빠진 채 남아 있어야 할 우리는 모두 어쩌란 말인가

준근이 이 사람아~
보름이 좀 지났던가..
문득 새해 들어 자네와 소주나 한잔 할까 해서 연락했더니
어깨를 다쳐 병원에 가는 중이라 했었지.
~ 그 엄살처럼 들리던 앓던 소리가 자네의 마지막 목소리가 되고 말 줄이야.
그 끙끙대던 소리마저 이렇게 감사하고 귀할 줄이야.

이 친구야~
이제는 어찌 해야 하는가.
날이 좋으면 좋다고,
꽃이 피면 피었다고,
비가 오면 비 온다고,
그런 저런 핑계로 술잔 기울이며 세상일을 함께 떠들어대던 우리가 아니었나
이제 저 대로변에 벚꽃이 온통 흐드러지게 피는 봄이 오면
나는 어쩌란 말인가.
가슴을 촉촉히 적시는 여름비가 내리는 저녁이 되면
또 나는 어떡하란 말인가
저 매타셰콰이어가 서서히 갈색으로 변해가는 늦은 가을이 되면..
자네가 보고파서 어쩌란 말인가~ 이 친구야
내 마음이 우울할 때 내 몸이 지쳤을 때 내 가슴이 허전할 때
그때는 누구에게 내 빈 가슴을 달래달라고 해야 하는가

~ 여보게 준근이~
자네와 함께 할 수 있던 많은 시간은 행복했고 고마웠네.
자네의 그 가슴은 항상 따뜻했고,
말은 언제나 재치 넘치고 유쾌했었지.
그리고 자네의 태도는 누구에게나 겸손하고 부드러웠지.
그러기에 자네를 아는 모든 사람은 자네를 진심으로 좋아했었다네.
이제 우린 그런 자네를 더 이상 볼 수가 없게 되었네.
하지만 자네의 그 고운 심성만은 우리 가슴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네.

부디 편히 떠나게.
그동안 자네가 힘들어 했던 온갖 시름과 미련은
이제 여기 버려두고 훌훌 벗어두고
깃털처럼 가볍게 가볍게 떠나도록 하게
.
애도 탈도 없는 그곳에서 평온히 영면하시게.
우리 모두 언젠가는 그곳으로 갈 터이니 그곳에서 자리를 잘 닦아두시게.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겠네.

잘 가게.
부디 잘 가시게.
무척이나 정이 많았던 내 좋은 친구
많이 그리울 거네.
끝으로 한 번 더 그 이름 불러보네.

준근아~

_ 을사년 정월 초닷새, 허성원이 <벗 준근을 떠나보내며>..

(* 내 좋은 술 친구 차준근은 을사년 새해들어 초사흘(2025. 01. 31.)에 갑작스런 합병증으로 우리 곁을 떠났다. 사정을 자세히 듣지는 못했지만 식중독에서 기인한 폐혈증이라고 하는데 평소의 지병인 당뇨도 영향이 컸던 듯하다. 아직도 마음 속 한 구석에 구멍이 뻥 뚫려있다. 아까운 친구를 보내며 발인제에서 이 조사를 읊었다. 조사를 읊는 중에 잠시 온몸이 부르르 떨리는 희한한 경험을 했다. 아마 이 친구가 내 조사에 응답을 해준 것 같았다. 친구야~ 그 세상에서 평온하게 영원을 누리시게.)

 

왼쪽에서 세 번째..
조사 for 차준근 _250202.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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