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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천리마리더십

[허성원 변리사 칼럼]#118 지게 일어서기와 역설적 개입

by 변리사 허성원 2023. 7. 8.

지게 일어서기와 역설적 개입

 

농가의 장남으로 태어난 덕에 어릴 때부터 지게를 져야할 일이 종종 있었다. 고등학교 다니던 어느 해 아버지는 양파 농사를 크게 지으셨는데, 수확을 할 때 마침 힘쓸 일꾼이 귀해서 어린 나도 지게짐에 나서야 했다. 가벼운 짐을 진 적은 많았지만, 제대로 일답게 지게를 져본 것은 그 때가 처음이다. 그런데 일단 지게에 남들만큼 양파 다발을 얹어 싣기는 했는데, 혼자서는 도저히 일어설 수가 없다. 일어나려 허리를 굽히면 짐이 머리 위로 쏟아지려 하고, 허리를 굽히지 않고서는 다리에 힘을 쓸 수가 없다. 그렇게 헤매고 있는 모습을 보고 아버지가 오셔서 도와주셨다.

아버지의 도움은 너무도 간단하면서도 신통한 방법이었다. 처음엔 그저 다리에 힘을 주고 사정없이 뒤로 뻗대라고만 하셨다, 하지만 뒤로 넘어질 게 두려운 나는 감히 다리에 힘을 주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러자 아버지는 뒤에서 지게와 짐을 마구 앞으로 밀어붙이셨다. 나는 앞으로 고꾸라지지 않으려고 어쩔 수 없이 뒤로 저항하며 뻗댔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거짓말처럼 금세 일어서 있는 것이다. 정말 짜릿한 경험이었다. 지나고 생각하니, 그건 바로 기초 물리에서 배울 수 있는 합력의 원리에 따른 것이었다. 앞에서 뒤로 뻗대는 힘과 뒤에서 앞으로 밀어주는 힘이 상호 작용을 하여, 위로 솟구치는 합력이 생성되는 이치였다.

그때 아버지는 지게질을 도울 때는, 힘을 보태주려고 해서는 절대 일으킬 수 없다. 지게꾼의 다리 반발력을 제대로 쓰게 해주기만 하면 된다."라고 말씀하셨다. 통상 다른 사람의 짐을 덜어주고자 할 때 그 사람이 힘을 쓰는 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힘을 보태주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방법은 그 반대였다. 도움이 필요한 방향에 거슬러 힘을 가해주어, 도움을 받는 사람이 최대한 저항하며 반발하게 하고, 그 반발력으로 스스로 일어서게 만드는 것이다. 기가 막힌 역설적인 일머리 지혜가 아닌가.

출근할 때 지하철역을 나오면 앞길을 막고 전단지를 내미는 소위 전단지 알바들이 있다. 바쁜 출근 걸음이라 그들의 간절한 손짓을 피하며 지나치기 일쑤다. 그런데 전단지 알바와 보행자의 입장이 완전히 뒤바뀐 동영상들을 SNS에서 볼 수 있다. 그 전단지 알바들은 굳이 전단지를 나눠줄 뜻이 없는 듯이 보이고, 오히려 보행자들 쪽에서 받아가려고 애를 쓰는 장면이다. 이들 알바는 대체로 전신 인형탈을 쓰고, 어떤 이는 이마를 벽에 대고 지나는 사람들을 바라보지도 않은 채 서있고, 어떤 이는 아예 드러누워 건방을 떨기도 한다. 그러고는 전단지를 뒤로 혹은 위나 옆으로 무심한 듯 슬그머니 쑥 내밀고 있다. 그러고 있으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일부러 다가와서 굳이 그 전단지를 사정하듯 받아가거나 뺏어가듯 낚아채간다.

인간의 심리는 참 역설적이고 미묘한 것이다. 받아 달라고 사정하면 피하고, 하라고 하면 하기 싫어하고, 말리면 더 하려든다. 그건 소의 경우도 비슷하다. 소가 외양간에 들어가지 않으려 할 때가 있다. 그저 앞에서 고삐만 당겨서는 소와의 실랑이 시간만 길어진다. 그럴 때 누가 소 뒤에서 소꼬리를 슬쩍 잡아당기면 소는 재빨리 안으로 들어간다. 지게 일어서기를 돕거나 소꼬리를 잡아당겨주듯, 조력자는 행위자가 가야할 방향에 역방향으로 조금 유도함으로써, 행위자에게 필요한 정방향의 효과를 얻거나 그 효과를 더 강화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심리학적으로는 '역설적 개입'이라 한다.

'역설적 개입'은 불면증, 우울증, 불안, 고소공포증 등을 심리적으로 치료할 때 종종 쓰인다. 예를 들어 불면증 환자에게 굳이 잠을 청치 말고 오히려 잠을 잊거나 참으라 하고, 고소공포증 환자에게 더 절박하고 불가피한 고소 상황에 노출시키고, 도벽을 가진 사람에게는 마음껏 훔칠 수 있도록 상황을 연출해주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의 무의식에 내재된 억압이나 욕구를 해방시킨다. 무의식 속의 억압이나 욕구를 인지하거나 충족하고 나면,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만들어낼 수 있고 그것을 변화시키거나 통제할 능력도 있음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역설적 개입의 핵심은 조력자의 유도와 행위자의 반발력의 조화에 있다. 유도력과 반발력은, 지게 밀어주기 혹은 소꼬리 당기기처럼, 알이 부화할 때 병아리와 어미닭이 동시에 알을 쪼듯, 줄탁동시(啐啄同時)로 작용하여야 한다. 이때 특히 조력자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행위자의 성향과 나아가야할 방향을 고려하여, 행위자의 탄력적 반발력을 최적으로 이끌어낼 있는 역설적 유도 전략을 슬기롭게 정하고 효과적으로 시행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자 그럼 이제, 변화시켜야 할 상대를 찾아 멋진 역설적 개입 전략을 구상해보시라. 그런데 혹 그 변화시킬 상대가 본인은 아닌가. 그렇다 하더라도 셀프 역설적 개입도 충분히 유효하다 하니 스스로 생체실험해보시길.

 

 

** 셀프 역설적 개입

건강검진을 받으러 갈 때마다 만만찮은 필기시험을 거쳐야 한다. 바로 문진표다. 보유 질병이나 가족력, 흡연, 음주 등에 관한 기본 사항은 별 어려움이 없다. 
가장 망설이게 만드는 문항들은 운동에 관한 질의내용이다. 첫 문항은 이렇다. "최근 1주일간, 평소보다 숨이 훨씬 더 차게 만드는 격렬한 활동을, 하루 20분 이상 시행한 날은 며칠이었습니까?(예: 달리기, 에어로빅..)" 그 아래에서는 운동의 강도가 단계적으로 낮은 것들에 대한 질문한다.

이런 질문을 보면 뜨끔하다. 질문들이 마치 나의 게으름을 질책하는 것 같다. 항상 여기서 답안 작성이 망설여진다. 한 달에 아니 몇 달에 어쩌다 한두 번 등산을 했다면, 어떻게 답해야 하나.
그러다 보면 어느새 거짓말을 답하고 있다. 사실이 아니라 상당 부분 희망을 적고 있는 것이다. 약간의 양심의 저항을 느끼지만, 내 손은 이미 그렇게 답을 달고 있다.

두어 달 전 건강검진에서 그렇게 허위 답안을 제출하고 난 뒤, 머릿속에서 그게 잘 떠나지 않았다. 거짓 답안을 쓴 데 대한 죄책감은 그다지 느끼지 않지만, 현실과 이상, 진실과 거짓 사이의 괴리가 영 께름직한 것이다. 그 께름직함이 끝내 내가 운동을 시작하도록 작동했다.

열흘 전부터 줄넘기를 시작했다. 줄넘기는 내가 좋아하는 운동이다. 짧은 시간 내 큰 운동량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장점이 있다. 코로나 전에는 아침에 수시로 1단 뛰기 1천개, 2단 뛰기 50개 정도는 적절히 해냈었다.
그런데 코로나 팬데믹을 핑계(줄넘기는 코로나와 아무 관련이 없는데.. ㅜㅜ..)로 푹 쉬고 났더니, 영 만만치가 않다. 1단 뛰기는 한 번에 200개도 숨이 차서 겨우 해내고, 2단 뛰기는 첫날 수십번 시도 끝에 겨우 6개를 해냈다. 근 열흘 동안 매일 꾸준히 했더니 조금씩 좋아졌다.

드디어 열흘 때인 오늘(230711) 아침에 1단 430개, 2단 16개를 해냈다. 갈수록 탄력이 붙는 듯하다. 시큰거리던 무릎도 많이 좋아지고, 허벅지 근육과 복근에 탄력이 느껴진다.
이제 가능성은 확실히 확인했다. 100일 내에 1단 1천개, 2단 50개를 목표로 설정했다.

나의 운동에 대해 한 거짓말은 진실에 거스르는 말이다. 나 스스로가 나의 의식에 역설적으로 개입한 것이다. 그 역설이 결국 내재된 반발력을 일깨워 나를 운동하게 만든 셈이다. 이제 어떤 일에 이런 역설을 개입시켜 볼까..

https://realworldtherapy.com/using-paradoxical-interventions-for-fun-and-change/

 

Using Paradoxical Interventions for Fun and Change – Real World Therapy

Thanks to Paul Leslie for contributing this delightful guest post about paradoxical interventions. Paul just released a wonderful new book called, Potential not Pathology based on how to incorporate techniques […]

realworldtherapy.com

https://www.youtube.com/shorts/M-xnv6xY7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