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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천리마리더십

[낙동포럼] 실패로부터 살아 돌아온 자

by 변리사 허성원 2023. 6. 24.

실패로부터 살아 돌아온 자

 

친구 박사장을 오랜만에 만났다. 가끔 안부 전화를 나눈 적은 있지만, 이렇게 마주보고 앉아보기는 10수년은 된 듯하다. 그는 여전히 술과 함께 사업이나 발명 이야기를 즐긴다. 하지만 많이 변했다. 다소 과장된 제스처와 큰 목소리로 열정과 자신감을 숨기지 않았던 예전에 비해 이제 많이 진중해졌다. 거칠고 거침없던 그 언어도 많이 겸허하게 정제되어 나온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구나. 좀 안쓰럽다.

그는 2천대 초 벤처 러시의 시기에 창업을 하였다. 내 부추김의 역할이 컸다. 사실 그의 발명은 지금 보아도 그 업계에서는 혁명이었다. 수십 년의 고정 관념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대단히 파괴적인 혁신이었다. 나만 그렇게 본 게 아니었다. 국내 굴지의 창투사들도 확신을 가졌다. 큰 자금이 투자되어 공장을 짓고 직원이 금세 수십 명이 되었다. 나는 그 회사의 주요 주주 중 한 사람이었다. 개인적으로도 다소 무리한 투자였지만, 나를 믿은 여러 지인과 VC들까지도 동참하였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 사업은 채 5년을 넘기지 못하고 접게 되었다. 기술, 경영, 마케팅, 자금 등 여러 복합적인 문제가 한꺼번에 터지면서 그 위기의 무게를 감당 못하고 주저앉은 것이다. 장밋빛 꿈을 함께 꾸었던 여러 투자자들은 큰 충격을 받고 조용히 흩어졌다. 가끔 그 당시의 투자자와 VC들을 만나면 아직도 그 이야기는 차마 삼가할 정도로 다들 그 아픔은 컸다. 박사장의 충격은 투자자들에 비할 바가 아니었을 것이다.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분노와 격정에 차있었던 듯하다. 그는 자존심 때문인지 자신의 잘못이나 부족함을 적어도 겉으로는 인정하거나 표현하지 않았다. 그 상황으로부터 도망치듯이, 아니 자신을 옥죄어오는 그 사업 상황에 보복이라도 하듯이 모든 것을 내던져버렸다.

그랬던 그가 내 앞에 다시 왔다. 세월이 흐른 만큼 좀 지쳐 보이지만, 뼛속 깊이 엔지니어인 그답게 기술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식지 않았다. 그런데 그에게서 좀 특별한 점이 느껴졌다. 그 이야기, 그 실패의 이야기를 스스로 꺼낸 것이다. 실패의 원인을 이것저것 파편적으로 언급하며 자신의 오판과 실수를 말한다. 그리고 피해를 입고 고통을 겪은 투자자와 직원들에 대해서도 미안함을 표한다. 물론 본인이 가장 큰 고통을 겪었다. 전 재산을 날리고 부모님 집으로 들어가고, 생활을 위해 대리운전과 택시기사를 하면서, 건강 문제로도 한동안 큰 고생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실패에 대한 반성과 그로부터 얻은 가르침, 사과의 뜻, 그 동안의 가족과 삶 등 많은 이야기를 술안주 벌리듯 차분하게 객관적인 관점으로 늘어놓는다.

그제서야 그의 자유가 보였다. 그는 이제 그 실패의 덫에서 온전히 벗어난 것이다. 우리가 만나지 못했던 그 긴 기간은 그 덫에서 벗어나기 위한 처절한 투쟁의 시간이었다. 분노하고 좌절하는 과정을 거쳐 되돌려 반성하면서 깨우침을 얻고, 그렇게 절망을 넘으면서 자신의 삶에 대한 참된 애정까지도 회복한 듯하다. 이제 온전하게 더욱 성숙해진 모습으로 돌아와, 새로운 미래를 의논하러 내 앞에 섰다. 그럴 자신을 찾은 것이다. 고마웠다. 나는 친구에게 정성스레 두 손으로 소주를 한 잔 따라주었다.

실패는 많은 좋은 사람들을 우리에게서 빼앗아가 그 덫에 가두었다. 실패의 덫은 사람을 어둠속에 붙잡아두지만, 밝은 곳에 드러나면 드라큘라처럼 힘을 쓰지 못한다. 그래서 실패를 밝은 곳에서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드러내어 말할 때 비로소 그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숨기거나 부정하거나 부끄러워하는 자는 여전히 그에 갇혀 허우적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실패를 과감히 자인하고 드러내어 말하라. 그리하여 온전히 자유를 찾으라. 죽음과 같은 실패에서 돌아오는 자들을 더 많이 반기고 싶다.

 

삶에 대한 절망이 없이는 삶에 대한 애정도 없다. _ 알베르 카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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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몇 년 전에 써놨던 것이다. 이번에 조금 다듬어서 뉴스원의 낙동포럼(20230629)에 실었다.

박사장은 그 특유의 창의력과 추진력으로 그 전에 실패했던 기술 분야에서 업계의 오랜 숙원을 해결한 몇 가지 탁월한 해결책을 새로이 발명해냈다. 그 발명들에 대해 모두 특허 등록을 받고, 중국의 큰 제조업체들과 협업하여 화려한 부활의 시동을 걸고 있다. 중국 업체들과의 진행 과정을 수시로 알려오고, 협상 등 구체적인 실무에 대해 나의 조언도 구해오고 있다. 머잖아 좋은 성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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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란 그런 것이다.
실패란 것에 그에 그저 저항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그 덫을 벗어나지 못한다. 오직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만이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실패의 덫을 벗어나지 않고서는 다른 성공을 꿈꿀 수도 없다.

실패 외에도 죽음, 갈등, 절망 등과 같은 많은 난관들도 그렇다. 그들은 스스로 인정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극복할 수 없다.
'죽음'을 생각해보라. 그것은 인간의 숙명이다. 인간의 수명을 꾸역꾸역 늘린다 해도 그 숙명을 온전히 극복하지 못한다. 단지 조금 더 삶을 연장할 수 있을 뿐이다. 아무리 오래 살더라도 여전히 죽음은 버젓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을 인정하고 언제라도 기꺼이 맞을 마음을 가져야만 비로소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죽음을 벗삼아 마음을 차분히 가다듬고 평온한 노을과 같은 모습의 어른들을 본 적이 있는가.

절망도 마찬가지다.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들을 온갖 새로운 희망을 가져다 줄 수 있다. 하지만 그 희망들은  절망의 상태를 잠시 동안만 마취시킬 수 있을 뿐이다. 절망 그 자체가 근원적으로 소멸되지는 않는다. 절망의 실체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희망조차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많은 아픔은 일단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만이 그것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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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서 돌아온 자> 

                                                  _ 박 노 해

진실은 사과나무와 같아
진실이 무르익는 시간이 있다

눈보라와 불볕과 폭풍우를
다 뚫고 나온 강인한 진실만이
향기로운 사과 알로 붉게 빛나니

그러니 다 맞아라
눈을 뜨고 견뎌내라
고독하게 강인해라.

거짓은 유통기한이 있다
음해와 비난은 한 철이다
절정에 달한 악은 실체를 드러낸다

그대 아는가
세상의 모든 거짓과 악이 총동원되었어도
끝까지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온 자는
그 존재만으로 저들의 공포인 것을.

진실은 사과나무와 같아
진실한 사람의 상처 난 걸음마다
붉은 사과알이 향기롭게 익어오느니

자, 이제 진실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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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

칼럼 제목을 빌려온 영화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는,
오스카 상 12개 부문에 후보로 오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대단한 명작이다.
다소 잔혹하고 야만적인 폭력이 나오는 복수 이야기가 주제이지만,
설경을 포함한 전반적인 영상은 너무나도 아름다웠고,
주인공 디카프리오와 상대 악역 톰 하디의 연기가 압권이었다.

"서부 개척시대 이전인 19세기 아메리카 대륙, 사냥꾼인 휴 글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아들 호크를 데리고 동료들과 함께 사냥하던 중 회색곰에게 습격 당해 사지가 찢긴다. 비정한 동료 존 피츠 제럴드(톰 하디)는 아직 살아 있는 휴를 죽이려 하고, 아들 호크가 이에 저항하자 호크 마저 죽인 채 숨이 붙어 있는 휴를 땅에 묻고 떠난다. 눈 앞에서 하나뿐인 아들의 죽음을 목격한 휴는 처절한 복수를 위해 부상 입은 몸으로 존의 뒤를 쫓기 시작하는데.."

영화를 보지 못하신 분은 아래 요약편이라도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