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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천리마리더십

[허성원 변리사 칼럼]#120 목 놓아 울기 좋은 곳이로다

by 변리사 허성원 2023. 7. 22.

목 놓아 울기 좋은 곳이로다

 

목 놓아 울기 좋은 곳이로다. 가히 울어 볼 만하구나(好哭場 可以哭矣).” 이 말은 조선 후기 문인이며 실학자인 연암 박지원이 사신 일행을 따라 청나라의 수도 연경으로 가는 도중에, 광활한 요동 벌판을 보고 느낀 충격적인 감회를 이같이 표현한 것이다. 열하일기(熱河日記) 중 도강록(渡江錄) 78일자 일기의 내용이다. 그 유명한 호곡장론(好哭場論)이다.

연암의 뜬금없는 말을 듣고, 그의 좋은 말벗인 정진사가, "천지간에 이렇게 대단한 안계(眼界)를 만나서, 별안간 목놓아 울 생각을 하다니 무슨 말씀이오?"하니, 연암이 천고의 영웅은 잘 울고 미인은 눈물이 많소. 그러나 그런 울음은 불과 몇 줄기 소리 없는 눈물이 옷깃에 굴러 떨어질 뿐이지요. 쇠나 돌에서 나온 듯이 천지를 가득 채우는 소리는 아직 들어 보진 못했소. 사람들은 칠정(七情, 喜怒哀樂愛惡欲) 중에서 '슬픔()'만이 울음을 내는 줄만 알지, 칠정 모두가 울 수 있는 줄은 모릅니다.”라고 하며, 말을 잇는다.

기쁨()이 극에 이르면 울고, 노여움()이 극에 이르면 울고, 즐거움()이 극에 이르면 울고, 사랑()이 극에 이르면 울고, 미움()이 극에 이르면 울고, 욕심()이 극에 이르면 웁니다. 가슴이 답답할 때 그것을 풀어 버리는 데에는 소리쳐 우는 것보다 더 빠른 방법은 없지요. 울음은 천지(天地)에 있어서의 우레에 비할 수 있는 것이니, 지극한 감정이 터져 나오는 것, 이것이 이치에 맞는다면, 웃음과 어찌 다르다 하겠습니까? 사람들이 살면서 여러 감정을 만나더라도 그 지극한 경지를 겪어 보지 못하고, 칠정을 교묘히 늘어놓고는 그 중에서 '슬픔'에게만 울음을 부여하였지요. 그러니 사람이 죽어 상을 치룰 때 억지로라도 곡소리를 부르짖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칠정에서 우러나오는 지극하고 진실된 소리는 참고 억눌리어 천지 사이에 쌓이고 엉켜서 감히 터져 나오지도 못합니다.”

이에 정진사가 "그래, 지금 울 만한 자리가 저토록 넓으니, 나도 당신을 따라 한 바탕 울고자 하는데, 칠정 가운데 어느 '()'이라 해야 할까요?"하니, 연암이 답한다.

갓난아이에게 물어 보시오. 아이가 처음 배 밖으로 나오며 어떤 ''을 느꼈겠습니까? 처음에는 명암을 보고, 다음에는 부모 친척들이 눈앞에 가득 있으니 기쁘고 즐겁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이 같은 기쁨과 즐거움은 늙을 때까지 두 번 다시없을 일인데 슬프거나 노여워할 까닭이 없지요.” “아이가 어미 태속에 있을 때 어둡고 갑갑하고 얽매이고 비좁게 지내다가 하루아침에 탁 트인 넓은 곳으로 빠져나와 팔을 펴고 다리를 뻗을 수 있어 마음이 시원하게 될 터이니, 어찌 감정이 다하도록 참된 소리를 질러 보지 않을 수 있으리오! 그러니 갓난아이를 본받아야만 거짓으로 지어내지 않은 소리를 낼 수 있지요.”

참된 울음은 갓난아이에게서 배워야 한다. 갓난아이가 인간의 칠정을 알 리가 없다. 그저 좁고 어둡고 갑갑한 어미 태속으로부터 탁 트인 이 세상에 나올 때 팔다리를 뻗으면서 주체할 수 없는 본능의 참된 울음이 저절로 나오는 것이다. 연암이 조선이라는 작은 나라를 벗어나 탁 트인 광활한 요동 들판을 맞닥뜨렸을 때 느끼는 감정이 바로 그러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연암은 좋은 울음터로서, 금강산의 비로봉과 황해도 금사 해변을 예로 들고는, "오늘 요동 벌판에 이르러 여기로부터 산해관 일천이백 리에 이르기까지 사방에 도무지 한 점 산을 볼 수 없고 하늘가와 땅 끝이 풀로 붙인 듯 실로 꿰맨 듯, 옛날의 비와 지금의 구름이 이 속에서 창창할 뿐이니, 이 역시 좋은 울음터가 될 만하오."라고 한다.

연암이 서두에서 말한 영웅은 잘 울고 미인은 눈물이 많다(英雄善泣 美人多淚)’는 말을 다시 들여다본다. 여인들의 눈물이 많음은 다들 아는 바이지만, '영웅이 잘 운다'는 말에 대해서는 숨은 깊은 뜻이 있으리라. ‘()’은 소리 내어 우는 것이고, ‘()’은 소리 없이 우는 것이다. 영웅은 ()’으로 운다. 영웅은 왜 소리를 삼키며 울까. 영웅이란 남다른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가혹한 시련을 통해 다듬어지며, 많은 추종자들을 위해 그 능력을 쓰는 사람들이다. 고된 시련을 맞아 그것을 극복하고자 결단할 때 혹은 따르는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들을 위해 분연히 일어설 때, 그들에게 고뇌와 결의에 찬 영웅적인 울음이 없을 리 없다. 그래서 영웅이란 꼭 필요한 때에 잘 우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 시대의 영웅은 크든 작든 나름의 조직을 이끄는 리더들이다. 리더는 수도 없이 소리 죽여 운다. 하지만 그들도 마음껏 소리 질러 울어야 할 때가 어찌 없겠는가. 희노애락애오욕 칠정이 지극한 경지에 이르렀을 때에는, 쇠나 돌에서 나온 듯이 천지를 가득 채우는 울음을 터뜨려, 억눌린 가슴을 시원히 풀어주어야 한다. ~ 그대는 '목놓아 울기 좋은 울음터'를 가졌는가.

통영 미륵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아름다운 한려수도의 풍경이다. 매년 해가 바뀔 때마다 한 번은 꼭 여기에 오른다. 가히 목놓아 울기에 너무도 좋은 울음터이다. 그런데 여길 오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마음껏 울어 보기에는 많이 민망하다. 다른 울음터를 알아봐야겠다.

* 열하일기 도강록 번역문

* 熱河日記 渡江錄 원문 7월8일

初八日甲申晴/與正使同轎渡三流河/朝飯於冷井/行十餘里/轉出一派山脚/泰卜忽鞠躬過馬首/伏地高聲曰/白塔現身謁矣/泰卜者鄭進士馬頭也/山脚猶遮不見白塔/趣鞭行不數十步/脫山脚/眼光勒勒忽有一團黑毬/七升八落/五今日始知/人生本無依附/只得頂天踏地而行矣/立馬四顧不覺擧手加額/曰好哭場可以哭矣/鄭進士曰/遇此天地間大眼界/忽復思哭何也/余曰唯唯否否/千古英雄善泣美人多淚/然不過數行無聲眼水轉落襟前/未聞聲滿天地若出金石/人但知七情之中惟哀發哭/不知七情都可以哭/喜極則可以哭矣/怒極則可以哭矣/樂極則可以哭矣/愛極則可以哭矣/惡極則可以哭矣/欲極則可以哭矣/宣暢壹鬱莫疾於聲/哭在天地可比雷霆/至情所發/發能中理/與笑何異/人生情會未嘗經此極至之處而巧排七情配哀以哭/由是死喪之際/始乃勉强叫喚喉苦等子/而眞個七情所感至聲眞音/按住忍抑蘊鬱於天地之間而莫之敢宣也/彼賈生者/未得其場忍住不耐忽向宣室一聲長號/安得無致人驚怪哉/鄭曰/今此哭場如彼其廣/吾亦當從君一慟, 未知所哭. 求之七情所感, 何居/余曰: “問之赤子. 赤子初生, 所感何情? 初見日月, 次見父母, 親戚滿前, 莫不歡悅 如此喜樂, 至老無雙, 理無哀怒, 情應樂笑, 乃反無限啼叫, 忿恨弸中 將謂人生神聖愚凡, 一例崩殂 中間尤咎, 患憂百端, 兒悔其生, 先自哭弔 兒胞居胎處, 蒙冥沌塞, 纏糾逼窄 一朝迸出寥廓, 展手伸脚, 心意空闊, 如何不發出眞聲盡情一洩哉故當法嬰兒, 聲無假做 登毗盧絶頂, 望見東海, 可作一場, 行長淵金沙, 可作一場 今臨遼野, 自此至山海關一千二百里, 四面都無一點山 乾端坤倪, 如黏膠線縫, 古雨今雲, 只是蒼蒼, 可作一場

** 이 시가 이 글에 어울리는 듯하다.

<장마>

                                      _ 최욱


일년에 한 번은
실컷 울어버려야 했다

흐르지 못해 곪은 것들을
흘려 보내야 했다
부질없이 붙잡고 있던 것들을
놓아버려야 했다

눅눅한 벽에서
혼자 삭아가던 못도
한 번쯤 옮겨 앉고 싶다는
생각에 젖고
꽃들은 조용히
꽃 잎을 떨구어야 할 시간

울어서 무엇이 될 수 없듯이
채워서 될 것 또한 없으리

우리는 모두
일년에 한 번씩은 실컷
울어버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