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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천리마리더십

[낙동포럼] 물어봐라 제발!

by 변리사 허성원 2023. 3. 3.

물어봐라 제발!

 

반도체 검사용 프루브를 생산하는 부산의 초우량 기업 리노공업에 가면 특이한 문구의 스티커가 문이나 벽면 등에 군데군데 붙어있다. 그건 '물어봐라!'라는 구호이다. 좀 생뚱맞은 듯하지만 명료한 말이다. 모르거나 궁금한 게 있으면 그것을 알 만한 사람에게 물어 보고 배우라는 뜻임에 틀림이 없다.

우리는 대부분 자격지심 때문인지 남에게 물어보는 것을 은근히 꺼린다. 남에게 묻기를 주저하면 배움의 기회를 놓치게 될 뿐만 아니라, 잘 알지 못하면서 섣불리 예단하여 일을 망치게 되는 어리석음을 저지를 수 있음을 안다. 그래서 리노공업은 '물어봐라!'라는 명쾌한 구호를 통해 회사가 모든 소속원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구호를 방문객이 일견하는 것만으로도 그 통찰적 가르침을 금세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데, 하물며 회사에서 매일 보며 생활하는 사람들이라면 말할 것도 없이 온 몸과 마음으로 깊이 체화될 것이다. 서로 묻고 답하는 문화가 자연스레 회사 내에 깊이 정착되면, 모든 조직원들의 학습효과가 높아져 정보와 지식의 평탄화 및 집단지성의 고도화가 이루어질 것이고, 업무상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오류도 현저히 감소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구호는 필경, 리노공업이 영업이익 40% 이상의 경이로운 실적을 달성하는 초우량 기업이 된 데에 적잖은 기여를 했을 것이다.

물어보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하다 보니 금세 떠오르는 잊을 수 없는 장면이 있다. 2010G20 서울정상회의 폐막식 때, 오바마 전 대통령이 폐막 연설 후 한국기자들에게 우선적으로 질문하라고 하였다. 하지만 한국 기자들은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아 한참 어색한 정적이 흐르고, 급기야는 중국 기자가 대신 질문하겠다고 나서기도 한 황당한 웃지못할 해프닝이었다.

질문이 없는 조직이나 사회를 상상해본다. 자신이 모든 것을 안다고 믿는 사람들은 질문이 없을 것이다. 세상살이에 아무런 생각이 없는 사람도 궁금한 게 없을 것이고, 주변 사람이나 현상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질문할 게 없다. 질문이 없는 사회는 각자 제 혼자의 생각에 스스로 매몰되어 살아가니, 독선과 아집이 난무하고 소통과 조화가 뿌리내릴 수 없는 척박한 사회가 된다. 질문이 없으면 배움이 없고, 배움이 없으니 발전도 없다. 그래서는 변화나 혁신, 지속가능한 성장도 기대할 수도 없다. 결국 질문하지 않는 사회는 죽은 사회가 된다.

질문을 하더라도 그 내용이 중요하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당신의 실수는 답을 못 찾은 게 아냐. 자꾸 틀린 질문만 하니까 맞는 대답이 나올 수 없잖아. ‘왜 이우진은 오대수를 가두었을까가 아니라, ‘왜 이우진은 오대수를 딱 15년 만에 풀어주었을까?’란 말이야.” 초한대전의 라이벌 항우와 유방은 질문도 달랐다. 항우는 어떠냐?’라는 뜻의 하여(何如), 유방은 어찌할까?’라는 뜻의 여하(如何)를 자주 썼다고 한다. 항우의 하여(何如)는 자신의 능력이나 판단을 부하들에게 확인받거나 자랑하기 위한 물음이었고, 유방의 여하(如何)는 부하들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배움을 얻기 위한 물음이었다. 그 물음의 내용이 승자와 패자를 가름한 듯하다.

주자가훈(朱子家訓)에 이런 가르침이 있다. "배움은 의문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작은 의문은 작은 나아감을 가져오고, 큰 의문은 큰 나아감을 가져오며, 의문이 없으면 나아감도 없다(學貴有疑 小疑則小進 大疑則大進 不疑則不進)." 좋은 질문이 좋은 답을 이끌고, 큰 질문이 큰 성취를 가져온다.

최근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인공지능 챗GPT를 활용하는 데 있어서도 질문의 역량이 특히 중요하다. 인공지능에는 풍부한 정보나 지식이 저장되어 있으니, 질문의 경제성과 효율성이 답의 품질을 결정한다. 그래서 모범 질문 사례집이 돌아다니기도 한다. 가히 질문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할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말했다. "내가 1시간 내에 풀어야 할 어떤 문제가 있고 그 해답에 내 인생이 걸려 있다면, 나는 먼저 '적절한 질문'을 정하는 데 55분을 쓸 것이다. 적절한 질문을 알아내기만 하면, 나는 그 문제를 푸는 데 5분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최근 리노공업을 방문해보니 스티커의 구호가 달라졌다. 이제는 '제발'이라는 단어 하나가 붙어 '물어봐라 제발!'로 바뀌었다. 질문의 필요성을 더욱 강조하여 '물어보기'를 조직의 더 강력한 핵심가치로 삼고자 하는 듯하다. 더 절실히 더 좋은 질문을 하라는 회사의 의지가 가슴에 와닿는다. 혁신과 성장에 대한 간절함이 있는가. '물어봐라 제발!'


(230309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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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1시간 내에 풀어야 할 어떤 문제가 있고 그 해답에 내 인생이 걸려 있다면, 나는 먼저 적절한 질문(proper question)을 정하는 데 55분을 쓸 것이다. 적절한 질문을 알아내기만 하면, 나는 그 문제를 푸는 데 5분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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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은 의문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작은 의문은 작은 나아감을 가져오고,
큰 의문은 큰 나아감을 가져오며,
의문이 없으면 나아감도 없다

學貴有疑 小疑則小進 大疑則大進 不疑則不進 _ 朱子家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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