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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과 세상살이/설원(說苑)_유향(劉向)

정간(券九 正諫)_설원(說苑) _ 유향(劉向)

by 변리사 허성원 2022.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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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說苑) 정간(正諫)편은 여러 바른 간언(諫言)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해설은 주로 동양고전 종합 DB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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諫言을 올리는 것은 신하 된 사람의 큰 책무로, 국가와 임금에게 忠誠을 體現하는 중요한 방법이다. 간언을 올리는 행위를 正諫‧降諫‧忠諫‧戇諫‧諷諫의 다섯으로 나누고 있다. 임금을 향해 諫하는 일은 회피해서는 안 되는 신하의 책무로, 이를 통해 忠誠과 姦佞을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進諫하는 사람은 殺身의 위험이 수반되기 때문에 세 번을 간해도 임금이 따르지 않으면 벼슬을 버리고 떠나는 원칙도 세워놓았다.

이 篇에서 임금의 잘못을 諫해야 하는 조목으로, 攻伐‧淫游‧聲色‧玩物‧土木‧賦稅‧濫殺‧違禮 등에 대한 사례를 모아 제시하고 있다. 임금이 간언을 따르지 않다가 초래한 엄중한 결과를 보여줌으로써 後人을 깨우치는 효과를 기대하는 동시에, 進諫하다가 成功하지 못하는 사례도 함께 들고 있다.

 

1. 是故諫有五:一曰正諫,二曰降諫,三曰忠諫,四曰戇諫,五曰諷諫

易曰:「王臣蹇蹇,匪躬之故。」人臣之所以蹇蹇為難,而諫其君者非為身也,將欲以匡君之過,矯君之失也。君有過失者,危亡之萌也;見君之過失而不諫,是輕君之危亡也。夫輕君之危亡者,忠臣不忍為也。三諫而不用則去,不去則身亡;身亡者,仁人之所不為也。是故諫有五:一曰正諫,二曰降諫,三曰忠諫,四曰戇諫,五曰諷諫。孔子曰:「吾其從諷諫乎。」夫不諫則危君,固諫則危身;與其危君、寧危身;危身而終不用,則諫亦無功矣。智者度君權時,調其緩急而處其宜,上不敢危君,下不以危身,故在國而國不危,在身而身不殆;昔陳靈公不聽泄冶之諫而殺之,曹羈三諫曹君不聽而去,春秋序義雖俱賢而曹羈合禮。

<<간하는 방식에는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正諫이요, 둘째는 降諫이요, 셋째는 忠諫이요, 넷째는 戇諫이요, 다섯째는 諷諫이다.>>

 周易王臣이 어려움을 피하지 않고 忠誠을 하는 것은 자신을 위하는 것 때문이 아니다.”라 하였다. 신하가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그의 임금에게 하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임금의 過誤를 바로잡고 임금의 잘못을 교정하기 위해서이다.

임금에게 過失이 있는 것은 나라가 危亡할 징조이니 임금의 과실을 보고서도 간하지 않으면 이는 임금의 위망을 경시하는 것이다임금의 위망을 경시하는 행위를 忠臣은 차마 하지 못한다.

세 번 간하여 따르지 않으면 떠나야 된다떠나지 않으면 몸이 죽는 화를 당하니, 몸이 죽는 것은 仁人이 하지 않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간하는 방식에는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正諫이요, 둘째는 降諫이요, 셋째는 忠諫이요, 넷째는 戇諫이요, 다섯째는 諷諫이다.

孔子나는 諷諫을 따를 것이다.” 하셨다간하지 않으면 임금이 위험해지고 고집스럽게 간하면 자신이 위험해지나, 임금이 위험해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자신이 위험해지는 것이 낫다.

자신을 위험하게만 하고 끝내 채용되지 않으면 간해도 아무 공효가 없다지혜로운 사람은 임금의 마음을 헤아리고 時宜를 참작하여 緩急을 조절하고 적당하게 처리하여, 위로는 감히 임금이 위험해지지 않게 하고, 아래로는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는다그러므로 그 나라는 나라대로 위험에 빠지지 않고, 자신은 자신대로 위태로워지지 않는다.

옛날 陳 靈公 泄冶 諫言을 따르지 않고 그를 죽였으며曹羈는 세 번이나 曹君에게 간하여 따르지 않자 떠나버렸다春秋의 의리를 서술한 데에 둘 다 현명하다 하면서도 조기의 행위가 에 맞는다.

 2. 以臣參此二人者,不亦可乎?

齊景公遊於海上而樂之,六月不歸,令左右曰:「敢有先言歸者致死不赦。」顏斶趨進諫曰:「君樂治海上而六月不歸,彼儻有治國者,君且安得樂此海也!」景公援戟將斫之,顏斶趨進,撫衣待之曰:「君奚不斫也?昔者桀殺關龍逢,紂殺王子比干,君之賢非此二主也,臣之材,亦非此二子也,君奚不斫?以臣參此二人者,不亦可乎?」景公說,遂歸,中道聞國人謀不內矣。

 齊 景公이 바닷가에서 놀면서 즐거움에 빠져 6개월 동안 돌아가지 않고 측근들에게 명령하였다.“감히 돌아가자고 먼저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용서하지 않고 죽이겠다.” 

이때 顔燭趨 하였다. “임금께서 바닷가에서 노는 일만 즐거워하시고 나라 다스리는 일은 즐거워하지 않으시어 6개월 동안 돌아가지 않으시니, 저 궁중 안에서 혹 나라를 다스리는 자가 나와 나라를 잃으면임금께서 장차 어떻게 이 바닷가의 즐거움을 누리시겠습니까.”

경공이 창을 잡고 쳐 죽이려고 하자, 안촉추가 달려 나가 옷을 여미고 찌르기를 기다리며 말하였다.
임금께서는 어찌 치지 않으십니까. 옛날  關龍逢을 죽였고 王子 比干을 죽였습니다. 임금님의 현명함은 이 두 임금()만 못하고의 재주 역시 이 두 사람(關龍逢比干)만 못합니다. 임금께서는 어찌 저를 쳐 죽이지 않습니까臣을 이 두 사람에게 끼게 하신다면 어찌 좋지 않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경공은 기뻐하여 마침내 돌아가다가 중도에서都城 사람이 경공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모의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3. 愛其死而不諫其君,則非忠臣也

楚莊王立為君三年不聽朝乃令於國曰:「寡人惡為人臣而遽諫其君者今寡人有國家立社稷有諫則死無赦。」蘇從曰:「處君之高爵食君之厚祿愛其死而不諫其君,則非忠臣也。」乃入諫莊王立鼓鐘之間左伏楊姬右擁越姬左裯衽右朝服:「 吾鼓鐘之不暇何諫之聽!」蘇從曰:「臣聞之好道者多資好樂者多迷好道者多糧好樂者多亡荊國亡無日矣死臣敢以告王。」王曰善左執蘇從手右抽陰刃刎鐘鼓之懸明日授蘇從為相

楚 莊王이 임금이 되어 3년 동안 조정에 나가 政務를 처리하지 않고, 나라에 명령을 내렸다. “寡人은 남의 신하가 되어 갑자기 자기 임금에게 諫하는 자를 미워한다. 지금 과인이 나라를 소유하여 社稷을 세웠으니 간하는 사람이 있으면 용서하지 않고 죽일 것이다.”

그러자 蘇從이 말했다. “임금이 임명한 높은 벼슬에 있고 임금이 주는 많은 녹봉을 먹으면서, 죽음을 아껴 임금의 잘못을 간하지 않으면 忠臣이 아니다.” 그러고는 곧 궁중에 들어가 간하였다. 장왕이 북과 종 사이에 서 있으면서, 왼쪽은 楊姬에게 기대고 오른쪽은 越姬를 껴안으며, 왼쪽에는 이불과 요를 펴놓고 오른쪽에는 朝服을 두고서 말했다. “나는 종을 울리는 소리를 듣기에도 겨를이 없는데 무슨 시간이 있어 간하는 말을 듣겠느냐.”

소종은 말했다. “臣은 듣자니 道義를 좋아하는 사람은 재물이 많고 享樂을 좋아하는 사람은 미혹됨이 많으며, 도의를 좋아하는 사람은 良識이 많고 향락을 좋아하는 사람은 敗亡하는 일이 많다고 합니다. 楚나라는 망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죽음을 무릅쓴 신은 감히 大王께 말씀을 드립니다.”

듣고 난 장왕은 “좋은 말이오.” 하였다. 그러고는 왼손으로는 소종의 손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속에 지녔던 칼을 꺼내어 매달았던 종과 북의 끈을 잘라버리고, 이튿날 소종을 임명하여 國相으로 삼았다.

4. 近臣不敢諫,遠臣不敢達

晉平公好樂多其賦斂下治城郭:「敢有諫者死。」國人憂之有咎犯者見門大夫曰:「臣聞主君好樂故以樂見。」門大夫入言曰:「晉人咎犯也欲以樂見。」平公曰:「內之。」止坐殿上則出鐘磬竽瑟坐有頃平公曰:「客子為樂?」咎犯對曰:「 臣不能為樂臣善隱。」平公召隱士十二人咎犯曰:「隱臣竊顧昧死御。」平公諾咎犯申其左臂而詘五指平公問於隱官曰:「占之為何?」隱官皆曰:「不知。」平公曰:「歸之。」咎犯則申其一指曰:「是一也便遊赭盡而峻城闕二也柱梁衣繡士民無褐三也侏儒有餘酒而死士渴四也民有饑色而馬有栗秩五也近臣不敢諫,遠臣不敢達。」平公曰善乃屏鐘鼓除竽瑟遂與咎犯參治國

晉 平公이 음악을 좋아하여 세금을 많이 걷고 성곽은 수리하지 않으며 말했다. “諫하는 사람이 있으면 죽일 것이다.” 그러자 나라 사람들이 근심하였다. 咎犯이라는 사람이 있어서 門大夫를 보고 말했다. “나는 主君께서 音樂을 좋아하신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음악을 가지고 뵈려고 합니다.” 문대부가 들어가 평공에게 말했다. “구범이라는 晉나라 사람이 음악을 가지고 뵙기를 원합니다.” 평공은 말하였다. “들어오게 하라.” 구범이 殿 위에 가서 앉으니 鍾‧磬‧竽‧瑟 등의 악기를 내어왔다.

자리에 앉고 나서 잠시 뒤에 평공이 말하였다. “손님은 음악을 연주하라.” 이에 구범이 대답하였다. “臣은 음악을 연주하지는 못하고 수수께끼는 잘합니다.” 그러자 평공이 열두 사람의 수수께끼를 잘하는 사람을 불러왔다. 구범이 말했다. “수수께끼를 잘하는 신은 죽음을 무릅쓰고 작은 재주지만 바치기를 원합니다.” 평공은 “좋다.”라고 하였다. 이에 구범이 자기의 왼팔을 뻗어서 다섯 손가락을 굽히자, 평공이 隱官에게 물었다. “무슨 뜻인지 알아맞혀 보라.” 은관들이 모두 “알지 못하겠습니다.”라고 하자, 평공은 “너희들은 돌아가라.”고 하였다. 구범은 한 손가락을 펴고는 말하였다.

“이것은 하나이니, 임금께서 遊樂하는 곳의 기둥에는 붉은 칠을 하여 꾸미고 성곽과 망루는 수리하지 않음을 이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둘이니 기둥과 들보에는 수놓은 비단을 입혔는데 선비와 백성들은 거친 베옷도 입지 못함을 이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셋이니 배우와 악공들은 남는 술이 있는데 죽음을 무릅쓰는 勇士는 목말라 함을 이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넷이니 백성들은 얼굴에 굶주린 기색이 있는데 임금의 말[馬]은 곡식을 먹는 녹봉을 받음을 이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섯이니 임금의 신변에 가까이 있는 신하는 감히 간하지 못하고 먼 곳에 있는 신하는 의견을 전달할 수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듣고 난 평공은 “좋은 말이다.” 하고는, 곧 종과 북을 철거하며 竽와 瑟을 제거하고 마침내 구범과 함께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 참여하였다.

5. 我沮乃反吾真耳,今子,東園之桃也,刻子以為梗,遇天大雨,水潦並至,必浮子,泛泛乎不知所止

孟嘗君將西入秦賓客諫之百通則不聽也:「以人事諫我我盡知之若以鬼道諫我我則殺之。」謁者入曰:「有客以鬼道聞。」:「請客入。」客曰:「臣之來也過於淄水上見一土耦人方與木梗人語木梗謂土耦人曰:『子先土也持子以為耦人遇天大雨水潦並至子必沮壞。』應曰:『我沮乃反吾真耳,今子,東園之桃也,刻子以為梗,遇天大雨,水潦並至,必浮子,泛泛乎不知所止。』今秦四塞之國也有虎狼之心恐其有木梗之患。」於是孟嘗君逡巡而退而無以應卒不敢西嚮秦

孟嘗君이 서쪽의 秦나라에 들어가려고 할 적에 賓客들이 백 번이나 諫하였건만 듣지 않고 말했다. “사람의 일을 가지고 나에게 간한다면 내가 다 아는 일이지만, 만일 鬼神의 도리를 가지고 나에게 간한다면 내가 살펴볼 것이다.”

謁者가 들어와서 말하였다. “어떤 사람이 귀신의 도리를 가지고 들려드릴 말씀이 있다고 합니다.” 맹상군은 말하였다. “그 사람을 들어오게 하라.”

그 사람이 들어와서 말했다. “제가 올 적에 淄水 가를 지나다가 흙으로 만든 한 偶人이 나무로 만든 우인과 막 이야기하는 광경을 만났습니다. 나무로 만든 우인이 흙으로 만든 우인에게 말했습니다. ‘이 앞의 그대는 흙이었다. 물과 흙을 섞어 우인을 만들었으니 큰비가 내려 평지에 물이 흘러넘치는 경우를 만나면 그대는 틀림없이 허물어질 것이다.’ 그러자 흙으로 만든 우인은 대꾸했습니다. ‘나는 허물어지면 바로 나의 참모습으로 돌아갈 뿐이지만 지금 그대는 東園의 복숭아나무였다. 너를 새겨 우인을 만들었으니 큰비가 내려 평지에 물이 흘러넘치는 경우를 만나면, 틀림없이 그대를 띄워 멈출 곳을 모른 채 둥둥 떠내려가게 하고 말 것이다.’ 지금 진나라는 사방이 요새로 된 나라입니다. 호랑이와 이리처럼 탐욕스럽고 포학한 마음을 가졌으니, 〈秦나라에 들어갔다가는〉 나무로 만든 우인 같은 환란이 있을까 걱정됩니다.”

그러자 맹상군은 머뭇거리며 물러나서 대답을 하지 못하더니, 마침내 감히 서쪽의 진나라로 향해 가지 못하였다.

 6. 당랑규선(螳螂窺蟬)

吳王欲伐荊,告其左右曰:「敢有諫者,死!」舍人有少孺子者,欲諫不敢,則懷丸操彈,遊於後園,露沾其衣,如是者三旦,吳王曰:「子來何苦沾衣如此?」對曰:「園中有樹,其上有蟬,蟬高居悲鳴飲露,不知螳螂在其後也!螳螂委身曲附,欲取蟬而不顧知黃雀在其傍也!黃雀延頸欲啄螳螂而不知彈丸在其下也!此三者皆務欲得其前利而不顧其後之有患也。」吳王曰:「善哉!」乃罷其兵。

()나라 왕이 형()나라를 치려하면서, 신하들에게 말했다. "감히 나를 말리려 간하는 자는 죽이리라."  신하 중에 소유자라는 자가 있어, 왕에게 간하고 싶었으나 감히 그러지는 못하고, 활을 가지고 후원을 돌아다니며 이슬에 옷이 젖었다. 그러한지 사흘째 아침이 되자 오왕이 물었다. '너는 어찌 그렇게 힘들게 옷을 적셔 다니느냐?' 이에 대답하였다.

"후원에 나무가 한 그루 있고, 그 위에 매미가 앉아 있습니다. 매미는 높은 곳에 앉아 슬피 울며 이슬을 마십니다. 그런데 그 뒤에 사마귀가 노리고 있는지를 모릅니다. 사마귀는 몸을 굽혀 엎드려 매미를 잡으러 합니다만참새가 그 가까이에서 노리고 있는 줄을 모릅니다. 참새는 목을 늘어뜨려 사마귀를 쪼려 하면서, 그 아래에 활이 노리고 있음을 모릅니다. 이 세 놈은 모두 눈앞의 이로움을 취하려 할 뿐 그 뒤에 도사린 위험을 돌아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왕은 "훌륭한 말이로다"라고 말하고는, 전쟁을 그만두기로 하였다.

(* https://athenae.tistory.com/1718?category=1056604 )

7. 不穀知詘強之可以長諸侯也,知得地之可以為富也;而忘吾民之不用也

楚莊王欲伐陽夏師久而不罷群臣欲諫而莫敢莊王獵於雲夢椒舉進諫曰:「王所以多得獸者馬也而王國亡王之馬豈可得哉?」莊王曰:「不穀知詘強之可以長諸侯也,知得地之可以為富也;而忘吾民之不用也。」明日飲諸大夫酒以椒舉為上客罷陽夏之師

楚 莊王이 陽夏를 정벌하여 군대가 출정한 지 오래되었는데도 중지하지 않으니, 群臣이 諫하고 싶었으나 감히 하지 못하였다. 장왕이 雲夢에서 사냥할 때 椒擧가 간하였다.

“왕께서 많은 짐승을 잡을 수 있는 것은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왕의 나라가 망한다면 왕께서는 말을 어떻게 얻을 수 있겠습니까?”

이에 장왕이 말하였다. “좋은 말이오. 나는 강한 나라를 굴복시키면 諸侯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땅을 얻으면 부유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은 알았으나, 우리 백성을 잘 쓰지 못한다는 것은 잊고 있었소.” 장왕은 이튿날 大夫들과 술을 마실 적에 초거를 上客으로 삼고 양하의 군대를 철수하였다.

8. 夫有生者不諱死,有國者不諱亡;諱死者不可以得生,諱亡者不可以得存

秦始皇帝太后不謹幸郎嫪毐封以為長信侯為生兩子毐專國事浸益驕奢與侍中左右貴臣俱博飲酒醉爭言而鬥瞋目大叱曰:「吾乃皇帝之假父也窶人子何敢乃與我亢!」所與鬥者走行白皇帝皇帝大怒毐懼誅因作亂戰咸陽宮毐敗始皇乃取毐四肢車裂之取其兩弟囊撲殺之取皇太后遷之于萯陽宮下令曰:「敢以太后事諫者戮而殺之!」從蒺藜其脊肉幹四肢而積之闕下諫而死者二十七人矣齊客茅焦乃往上謁曰:「齊客茅焦願上諫皇帝。」皇帝使使者出問客得無以太后事諫也茅焦曰然使者還白曰:「果以太后事諫。」皇帝曰走往告之若不見闕下積死人邪使者問茅焦茅焦曰:「臣聞之天有二十八宿今死者已有二十七人矣臣所以來者欲滿其數耳臣非畏死人也。」走入白之茅焦邑子同食者盡負其衣物行亡使者入白之皇帝大怒曰:「是子故來犯吾禁趣炊鑊湯煮之是安得積闕下乎!」趣召之入皇帝按劍而坐口正沫出使者召之入茅焦不肯疾行足趣相過耳使者趣之茅焦曰:「臣至前則死矣君獨不能忍吾須臾乎?」使者極哀之茅焦至前再拜謁起稱曰:「臣聞之夫有生者不諱死,有國者不諱亡;諱死者不可以得生,諱亡者不可以得存死生存亡聖主所欲急聞也不審陛下欲聞之不?」皇帝曰:「何謂也?」茅焦對曰:「陛下有狂悖之行陛下不自知邪!」皇帝曰:「何等也願聞之。」茅焦對曰:「陛下車裂假父有嫉妒之心囊撲兩弟有不慈之名遷母萯陽宮有不孝之行從蒺藜於諫士有桀紂之治今天下聞之盡瓦解無嚮秦者臣竊恐秦亡為陛下危之所言已畢乞行就質。」乃解衣伏質皇帝下殿左手接之右手麾左右曰:「赦之先生就衣今願受事。」乃立焦為仲父爵之上卿皇帝立駕千乘萬騎空左方自行迎太后萯陽宮歸於咸陽太后大喜乃大置酒待茅焦及飲太后曰:「抗枉令直使敗更成安秦之社稷使妾母子復得相會者盡茅君之力也。」

秦始皇帝의 어머니 太后는 몸을 단속하지 아니하여, 郎官 嫪毐를 사랑하여 長信侯에 봉하고 두 아들을 낳았다. 노애는 국가의 정사를 전횡하여 점점 더욱 교만하고 사치하여 侍中 등 황제 측근의 존귀한 신하와 함께 도박하며 술을 마셨다. 술에 취하여 言爭하며 싸우게 되면 눈을 부릅뜨고 크게 꾸짖었다. “나는 황제의 義父이거늘 가난뱅이 주제에 감히 나와 대항하느냐!”

그와 싸우던 사람이 달려가서 진시황제에게 이 사실을 아뢰자 진시황제가 크게 노하였다. 그러자 노애는 誅殺될까 두려워서 곧장 반란을 일으켜 咸陽宮을 공격하였다가 패배하였다. 진시황제는 즉시 노애를 잡아다가 四肢를 수레에 묶어 찢어 죽이고, 두 아우를 잡아 자루에 넣어 때려 죽였다. 그러고는 皇太后를 데려다가 萯陽宮에 옮겨 유폐시키고는 명령을 내렸다.

“감히 태후의 일로 간하는 자는 斬殺하여 가시나무로 등줄기와 사지를 꿰어 대궐 아래에 쌓아둘 것이다.” 그래도 간하다가 죽은 사람이 27명이었다. 齊 지방에서 온 나그네 茅焦가 宮에 가서 이름을 말하고 뵙기를 청하였다. “齊 지방에서 온 나그네 모초는 황제께 諫言을 올리기 원합니다.” 진시황제가 使者를 보내 나그네에게 묻게 하였다. “太后의 일을 간하려는 것이 아니냐?” 이에 모초는 대답하였다. “그렇소.” 사자는 돌아가서 보고하였다. “정말 태후의 일을 간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진시황제가 말했다. “빨리 가서 그에게 말해주되 ‘너는 대궐 아래에 쌓여 있는 죽은 사람을 보지 못했느냐?’라고 하라.”

사자가 가서 모초에게 묻자 모초는 말하였다. “臣은 들으니 하늘에는 二十八宿가 있는데 지금 죽은 사람이 이미 27인이오. 신이 여기 온 까닭은 그 28이라는 숫자를 채우려는 것이오. 신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니 빨리 들어가서 그렇게 아뢰시오.” 그러자 모초와 함께 밥을 먹던 同鄕 사람들이 모두 자기의 옷가지와 器物들을 짊어지고 도망쳐버렸다. 사자가 들어가 이 말을 아뢰자 진시황제는 크게 노하여 말하였다. “이 사람이 고의로 와서 내가 금지한 명령을 어겼으니 속히 가마솥에 불을 지피고 물을 끓여 삶아 죽여라. 이 사람의 시체를 어찌 대궐 아래에 쌓아두랴. 속히 불러들여라.”

진시황제가 劍을 잡고 앉아 있는데 입에는 거품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자가 불러 들어오게 하자 모초는 빨리 가려고 하지 않으면서 한 걸음씩 발을 서로 스치며 걸을 뿐이었다. 사자가 재촉하자 모초는 말했다. “저는 황제의 앞에 나가면 죽을 텐데, 그대는 다만 나를 위해 잠깐의 시간조차 참지 못하는가?” 그러자 사자가 몹시 측은히 여겼다. 모초가 황제 앞에 이르러 두 번 절하고 알현한 뒤 일어나 말했다. “신은 들으니 살아 있는 사람은 죽음에 대한 말을 꺼리지 않아야 하고, 나라를 소유한 사람은 나라가 망하는 데 대한 말을 꺼리지 않아야 한다고 합니다. 죽음에 대한 말을 꺼리는 사람은 삶을 얻을 수 없고, 나라가 망하는 데 대한 말을 꺼리는 사람은 나라를 보전할 수 없는 법입니다. 死生存亡에 대한 말을 거룩한 君主는 시급히 듣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모르겠습니다만 陛下께서는 그 말을 듣기 바라십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듣고 난 진시황제는 말했다.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냐?” 모초는 말했다. “폐하에게는 狂亂하고 悖逆스런 행위가 있는데 폐하께서는 자신이 이를 모르십니까?” 진시황제는 말했다. “어떤 것들이냐? 들어보련다.” 이에 모초는 대답하였다. “폐하께서 義父를 車裂刑에 처하셨으니 질투하는 마음이 있음을 보인 것이며, 두 아우를 자루에 넣어 때려 죽였으니 仁慈하지 못하다는 이름이 있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를 萯陽宮에 옮겨 유폐시켰으니 不孝한 행위가 있게 되었고, 간하는 人士를 가시나무로 등줄기를 꿰었으니 桀‧紂와 같은 暴政이 있음을 보인 것입니다. 지금 천하의 사람들이 이를 듣고 모두 마음이 瓦解되어 秦나라로 향하는 사람이 없게 되었습니다. 신은 진나라가 망하여 폐하께서 위험해질까 걱정됩니다. 할 말을 이미 마쳤으니 작두 위에 나아가 형을 받겠습니다.”

그러고는 곧 옷을 벗고 작두 위에 엎드렸다. 이에 진시황제가 殿에서 내려와 왼손으로는 모초를 잡아 일으키고, 오른손은 주변 사람들에게 내저으며 말하였다. “사면하라. 선생은 옷을 입으시오. 지금 가르쳐주는 일을 듣고 싶소.” 곧 모초를 仲父로 삼고 벼슬을 내려 上卿으로 삼았다.

진시황제는 즉시 수많은 수레와 말을 준비시켜 왼쪽 자리를 비워두고, 직접 萯陽宮에 가서 太后를 맞이하여 咸陽에 돌아왔다. 태후는 크게 기뻐하여 곧 크게 酒宴을 베풀어 모초를 대접하였다. 술을 마실 때에 태후는 말했다. “잘못된 일에 항거하여 바르게 하고 실패한 일을 고쳐 성공으로 만들어, 진나라의 社稷을 안정시키고 나의 母子가 다시금 서로 만나게 한 것은 모두 茅君의 공이다.”

9. 此三天子,六諸侯,皆不能尊賢用辯士之言,故身死而國亡

楚莊王築層臺延石千重延壤百里士有三月之糧者大臣諫者七十二人皆死矣有諸御己者違楚百里而耕謂其耦曰:「吾將入見於王。」其耦曰:「以身乎吾聞之說人主者皆閒暇之人也然且至而死矣今子特草茅之人耳。」諸御己曰:「若與子同耕則比力也至於說人主不與子比智矣。」委其耕而入見莊王莊王謂之曰:「諸御己來汝將諫邪?」諸御己曰:「君有義之用有法之行且己聞之土負水者平木負繩者正君受諫者聖君築層臺延石千重延壤百里民之釁咎血成於通塗然且未敢諫也己何敢諫乎顧臣愚竊聞昔者虞不用宮之奇而晉并之陳不用子家羈而楚并之曹不用僖負羈而宋并之萊不用子猛而齊并之吳不用子胥而越并之秦人不用蹇叔之言而秦國危桀殺關龍逢而湯得之紂殺王子比干而武王得之宣王殺杜伯而周室卑此三天子,六諸侯,皆不能尊賢用辯士之言,故身死而國亡。」遂趨而出楚王遽而追之曰:「己子反矣吾將用子之諫先日說寡人者其說也不足以動寡人之心又危一作色加諸寡人故皆至而死今子之說足以動寡人之心又不危加諸寡人故吾將用子之諫。」明日令曰:「有能入諫者吾將與為兄弟。」遂解層臺而罷民楚人歌之曰:「薪乎萊乎無諸御己訖無子乎萊乎薪乎無諸御己訖無入乎!」

楚 莊王이 여러 층의 높은 누대를 지을 적에 천 리 밖에서 돌을 운반해 오고 백 리 밖에서 흙을 운반해 왔는데, 노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3개월 치의 양식을 휴대하였다. 이를 諫하던 大臣 72인이 모두 죽었다.

諸御己라는 사람이 있어서 楚나라 도성에서 백 리쯤 떨어진 곳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함께 밭을 갈던 사람에게 말했다. “내 들어가 왕을 뵈어야겠다.” 그러자 함께 밭을 갈던 사람이 말했다. “자네의 신분으로 말인가? 나는 들으니 임금에게 遊說한 사람은 모두 한가한 사람이었네. 그런데도 가자마자 죽었는데 지금 자네는 단지 시골 사람일 뿐이네.”

이에 제어기는 말했다. “만일 자네와 함께 밭을 갈 경우에는 힘을 나란히 써야 되겠지만, 임금에게 유세하는 일은 자네와 智慧를 나란히 쓰지 않아도 된다네.” 그러고는 농사일을 버려두고 궁궐에 들어가 장왕을 뵈었다. 장왕이 말했다. “제어기 네가 왔으니, 너도 나에게 간하려는 것이냐?” 이에 제어기는 말했다.

“임금은 義를 따라 시행하고 法을 따라 집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또 저는 들으니 위에서 물이 씻어간 땅은 평탄해지고, 먹줄을 받은 나무는 곧게 다듬어지며, 諫言을 수용하는 임금은 슬기롭게 된다고 합니다. 임금께서 여러 층의 높은 누대를 지으시어 천 리 밖에서 돌을 운반해 오고 백 리 밖에서 흙을 운반해 왔습니다. 백성들이 죄를 얻어 피가 큰길에 흐르고 있는데도 감히 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어찌 감히 간언을 드리겠습니까. 다만 어리석은 저는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예전에 虞나라는 宮之奇의 간언을 듣지 않았다가 晉나라에게 倂呑되었고, 陳나라는 子家羈의 간언을 듣지 않았다가 楚나라에 倂呑되었고, 曹나라는 僖負羈의 간언을 듣지 않았다가 宋나라에 병탄되었고, 萊나라는 子猛의 간언을 듣지 않았다가 齊나라에 병탄되었고, 吳나라는 伍子胥의 간언을 듣지 않았다가 越나라에 병탄되었으며, 秦나라는 蹇叔의 간언을 듣지 않았다가 秦나라가 위험해졌습니다. 桀은 關龍逢을 죽여 湯王이 천하를 차지하였고, 紂는 왕자 比干을 죽여 武王이 천하를 차지하였으며, 周 宣王은 杜伯을 죽여 周나라 王室이 미약해졌습니다. 이 세 天子와 여섯 諸侯는 모두 賢人과 辯士의 말을 重用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은 죽고 나라는 멸망했던 것입니다.” 말을 마치고 빠른 걸음으로 나가버리자 초 장왕이 황급히 따라가며 말했다.

“제어기야! 그대는 돌아오라. 내 그대의 간언을 채용하련다. 지난날 寡人에게 유세한 사람은 그 말이 과인의 마음을 감동시키기에 부족하였고, 또 과인에게 위험을 가중시켰다. 그 때문에 모두 오자마자 죽었다. 그런데 지금 그대의 말은 과인의 마음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하고, 또 과인에게 위험을 가중시키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앞으로 그대의 간언을 들을 것이다.” 

그러고는 이튿날 명령하였다. “궁궐에 들어와 간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앞으로 그 사람을 형제로 삼을 것이다.” 그런 다음 마침내 높은 누대 짓는 공사를 중지하고 백성들을 해산시켰다. 이에 초나라 사람들은 노래를 불렀다. “나무를 할까? 풀을 벨까? 제어기가 없었다면 지금 우리 자손이 없었으리. 풀을 벨까? 나무를 할까? 제어기가 없었다면 지금 초나라에 사람이 없었으리.”

10. 寡人有過乎?幸記之,是社稷之福也,子不幸教,幾有大罪以辱社稷

齊桓公謂鮑叔曰:「寡人欲鑄大鐘昭寡人之名焉寡人之行豈避堯舜哉?」鮑叔曰:「敢問君之行?」桓公曰:「昔者吾圍譚三年得而不自與者仁也吾北伐孤竹剗令支而反者武也吾為葵丘之會以偃天下之兵者文也諸侯抱美玉而朝者九國寡人不受者義也然則文武仁義寡人盡有之矣寡人之行豈避堯舜哉!」鮑叔曰:「君直言臣直對昔者公子糾在上位而不讓非仁也背太公之言而侵魯境非義也壇場之上詘於一劍非武也姪娣不離懷衽非文也凡為不善遍於物不自知者無天禍必有人害天處甚高其聽甚下除君過言天且聞之。」桓公曰:「寡人有過乎?幸記之,是社稷之福也,子不幸教,幾有大罪以辱社稷

齊 桓公이 鮑叔에게 말했다. “寡人이 큰 鍾을 주조하여 과인의 명성을 드러내려 하니, 과인의 品行이 어찌 堯舜에 미치지 못하겠는가?” 포숙은 말했다. “감히 묻습니다. 임금님의 행적이 어떤 것인지요?”

이에 환공은 말했다. “옛날 내가 譚나라를 3년 동안 포위하여 얻었지만 스스로 차지하지 않은 것은 仁이고, 내가 북쪽의 孤竹國을 토벌하고 令支를 멸망시키고 돌아온 것은 武의 표현이고, 내가 葵丘에서 제후들과 會盟하여 천하의 전쟁을 멈추게 한 것은 文이고, 제후들 중에 美玉을 가지고 나에게 朝見한 나라가 아홉 나라였지만 과인이 이를 받지 않은 것은 義에 맞는 일이오. 그렇다면 文‧武‧仁‧義를 과인이 모두 가지고 있는 셈이니, 과인의 행위가 어찌 堯‧舜에 미치지 못한단 말이오.”

이에 포숙은 말했다. “임금께서 솔직히 말씀하시니 臣도 솔직히 대답하겠습니다. 옛날 公子 糾가 형의 윗자리에 있었는데도 君位를 양보하지 않은 것은 仁이 아니며, 太公의 말을 저버리고 魯나라 강토를 침입한 것은 義가 아니며, 회맹하는 壇上에서 劍 한 자루에 굴복한 것은 武가 아니며, 姪娣의 품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文이 아닙니다. 일마다 두루 좋지 못한 행위를 하고 스스로 이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이 내리는 災殃이 없으면 반드시 사람이 부르는 災害가 있는 법입니다. 하늘은 아주 높은 곳에 있지만 아주 낮은 곳까지 들으니, 임금이 잘못한 말을 버리고 고치면 하늘이 장차 들을 것입니다.”

그러자 환공은 말했다. “과인이 잘못이 있으면 그대가 다행히 기억하고 있으니 이는 社稷의 福이오. 그대가 만일 가르쳐주지 않았다면 하마터면 큰 죄를 지어 사직을 욕되게 했을 것이오.”

11. 諫之於十里之前,而權之於百世之後者也

楚昭王欲之荊臺游司馬子綦進諫曰:「荊臺之游左洞庭之波右彭蠡之水南望獵山下臨方淮其樂使人遺老而忘死人君游者盡以亡其國願大王勿往游焉。」王曰:「荊臺乃吾地也有地而游之子何為絕我游乎?」怒而擊之於是令尹子西駕安車四馬徑於殿下曰:「今日荊臺之游不可不觀也。」王登車而拊其背曰:「荊臺之游與子共樂之矣。」步馬十里引轡而止曰:「臣不敢下車願得有道大王肯聽之乎?」王曰:「第言之。」令尹子西曰:「臣聞之為人臣而忠其君者爵祿不足以賞也為人臣而諛其君者刑罰不足以誅也若司馬子綦者忠君也若臣者諛臣也願大王殺臣之軀罰臣之家而祿司馬子綦。」王曰:「若我能止聽公子獨能禁我游耳後世游之無有極時奈何?」令尹子西曰:「欲禁後世易耳願大王山陵崩阤為陵於荊臺未嘗有持鐘鼓管絃之樂而游於父之墓上者也。」於是王還車卒不游荊臺令罷先置孔子從魯聞之曰:「美哉令尹子西諫之於十里之前,而權之於百世之後者也。」

楚 昭王이 荊臺에 가서 놀려고 했는데, 司馬子綦가 소왕을 향해 諫하였다. “형대의 유람지는 왼쪽에 洞庭湖가 있고, 오른쪽에 彭蠡湖가 있으며, 남쪽으로 獵山을 바라보고, 아래로 方淮를 굽어보고 있습니다. 그곳의 즐거움은 사람이 늙고 죽는 것조차 잊게 하여, 이곳에서 놀이를 즐기던 임금은 모두 나라를 망치고 말았습니다. 大王께서는 그곳에 가서 유람하지 마십시오.”

그러자 왕은 말했다. “형대는 내 땅이오. 소유한 땅이 있어 가서 유람하려는데, 그대는 무엇 때문에 나의 유람을 막는 게요?” 그러고는 노하여 사마자기를 때려주었다. 이때에 令尹 子西가 네 마리 말이 끄는 安車를 갖추어 곧장 궁전 아래로 와서 말했다. “오늘 형대의 유람을 가서 구경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왕은 수레에 올라 자서의 등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형대의 유람을 그대와 함께 즐기겠소.” 말을 천천히 몰아 십 리쯤 가서 영윤 자서는 고삐를 당겨 말을 멈추고 말했다.

“臣은 감히 수레에서 내려 禮를 올리지는 못하지만 말씀드릴 기회를 얻기 바라는데, 대왕께서는 들어주시겠습니까?” 소왕은 말하였다. “일단 말해보시오.” 이에 영윤 자서는 말했다. “臣은 들으니 신하가 되어 그 임금께 忠誠하는 사람은 官爵과 祿俸으로는 상을 주기에 부족하고, 신하가 되어 그 임금께 阿諂하는 사람은 刑罰로는 處罰하기에 부족하다고 합니다. 사마자기 같은 사람은 충성하는 신하이고, 臣 같은 사람은 아첨하는 신하입니다. 대왕께서는 臣의 몸을 죽이시고 臣의 집안에 벌을 내려주십시오. 그리고 사마자기에게는 관작과 녹봉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소왕은 말했다. “만일 내가 여기서 유람을 그친다면 〈이는 司馬의 간하는 말을 따른 것이오.〉 公子는 내가 이곳을 유람하는 것만을 그치게 한 것뿐이니, 나의 후세들이 끝없이 형대를 유람한다면 어쩌지요?” 이에 영윤 자서는 대답했다. “후세들이 유람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쉽습니다. 대왕께서는 별세하신 뒤 형대에 王陵을 조성하시기 바랍니다. 鐘‧鼓‧管‧絃 등의 온갖 악기를 소지하고 와서 父祖의 무덤 곁에서 노는 자는 없었습니다.” 이에 소왕은 수레를 돌려 마침내 형대의 유람을 그만두고 미리 설치했던 준비물을 철거하게 하였다.

孔子께서 魯나라에서 이 소문을 듣고 말씀하였다. “훌륭하구나. 영윤 자서여! 십 리 앞에서 諫하는 말로 멈추게 하여 백 대 이후까지 고려하였구나.”

12. 君子恥之,小人痛之;恥之不變,痛之何益?

荊文王得如黃之狗,箘簬之矰,以畋於雲夢,三月不反;得舟(一作丹)之姬,淫期年不聽朝。保申諫曰:「先王卜以臣為保吉,今王得如黃之狗,箘簬之矰,畋於雲澤,三月不反;及得舟之姬,淫期年不聽朝,王之罪當笞。」匍伏將笞王,王曰:「不穀免於襁褓,託於諸侯矣,願請變更而無笞。」保申曰:「臣承先王之命不敢廢,王不受笞,是廢先王之命也;臣寧得罪於王,無負於先王。」王曰:「 敬諾。」乃席王,王伏,保申束細箭五十,跪而加之王背,如此者再,謂王起矣。王曰:「有笞之名一也。」遂致之。保申曰:「臣聞之,君子恥之,小人痛之;恥之不變,痛之何益?」保申趨出,欲自流,乃請罪於王,王曰:「此不穀之過,保將何罪?」王乃變行從保申,殺如黃之狗,折箘簬之矰,逐舟之姬,務治乎荊;兼國三十,令荊國廣大至於此者,保申敢極言之功也。蕭何王陵聞之曰:「聖主能奉先世之業,而以成功名者,其惟荊文王乎!故天下譽之至今,明主忠臣孝子以為法。」

<<君子는 태형을 당하면 부끄러워하고小人은 그저 아픔을 느낄 뿐이라고 합니다. 부끄러워하면서 잘못을 고치지 않는다면, 아프게 한들 무슨 유익함이 있겠습니까?>>

 楚 文王이 사냥개 如黃 箘簬로 만든 주살을 얻어 雲夢에서 사냥하면서 3개월 동안 돌아가지 않았고丹姬를 얻어 음란한 향락에 빠져 1년이나 朝會를 보지 않았다. 그러자 保申 하였다.

先王께서 저를 太保를 삼으려고 점을 쳤는데 하였습니다. 지금 왕께서 사냥개 如黃 箘簬로 만든 주살을 얻어 雲夢에서 사냥하면서 3개월 동안 돌아오지 않으시고丹姬를 얻어 음란한 향락에 빠져 1년이나 조회를 보지 않으시니, 왕의 죄는 笞刑에 해당합니다. 엎드리십시오. 왕께 태형을 집행하겠습니다.”

문왕은 말했다. “나는 이미 포대기를 벗어난 나이이고諸侯에 기탁된 몸이니 방법을 변경하여 태형은 하지 말기 바라오.” 보신은 대답했다. “은 선왕의 명을 받았으니 감히 폐기할 수 없고, 왕께서 태형을 받지 않으면 이는 선왕의 명을 폐기하는 것입니다. 은 차라리 왕께 죄를 얻을지언정 선왕을 저버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자 문왕은 말하였다. “삼가 허락하겠소.” 

마침내 왕에게 자리를 펴주니 왕이 엎드리자, 보신은 가는 화살대 50개를 묶어서 꿇어앉아 왕의 등에 올려놓기를 두 번 하고는 왕에게 말하였다. “일어나십시오.” 왕은 말했다. “태형을 받았다는 이름은 같으니 끝까지 아프게 쳐주시오.” 이에 보신은 말했다은 들으니 君子는 태형을 당하면 부끄러워하고, 小人은 그저 아픔을 느낄 뿐이라고 합니다. 부끄러워하면서 잘못을 고치지 않는다면, 아프게 한들 무슨 유익함이 있겠습니까?”

그러고는 보신이 빠른 걸음으로 나가 스스로 流刑을 받고자 왕에게 죄를 청하였다그러자 문왕은 말했다. “이는 나의 잘못이니 太保야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문왕은 마침내 나쁜 행위를 고치고 보신의 말을 따라 사냥개 如黃을 죽이고菌簬로 만든 주살을 꺾었으며丹姬를 추방하고 초나라를 잘 다스리는 데 힘써 작은 30국을 겸병하였다.

초나라가 이렇게 광대한 나라가 되도록 한 것은 보신이 감히 直言을 다해 간한 공이다蕭何 王陵이 이 일을 듣고 이렇게 하였다. “聖主가 능히 선대의 基業을 받들어 功名을 이룬 사람은 오직 초 문왕뿐일 것이다그 때문에 천하 사람들이 지금까지 기리고 있으니明主忠臣孝子의 모범이 되는 것이다.”

13. 奚以敬臺,奚以敬民

晉平公使叔向聘於吳吳人拭舟以逆之左五百人右五百人有繡衣而豹裘者有錦衣而狐裘者叔向歸以告平公平公曰:「吳其亡乎奚以敬舟奚以敬民?」叔向對曰:「君為馳底之臺上何以發千兵下何以陳鐘鼓?」諸侯聞君者亦曰奚以敬臺,奚以敬民所敬各異也。」於是平公乃罷臺

晉 平公이 叔向을 보내어 吳나라에 聘問하게 하자, 오나라 사람이 배를 장식하여 숙향을 맞이하면서 왼쪽에 5백 명, 오른쪽에 5백 명을 도열시켰다. 그들 중에는 수놓은 옷에 표범가죽 갖옷을 입은 이와 비단옷에 여우가죽 갖옷을 입은 이도 있었다. 숙향이 돌아와서 이런 실상을 평공에게 보고하자 평공은 말했다. “오나라는 장차 망할 것이다. 어찌 이렇게 배를 존중하는가? 이래서야 어떻게 백성을 존중하겠는가?” 그러자 숙향은 대답하였다.

“임금께서 馳底의 누대를 지으시니 위에는 천 명의 군사를 징발해둘 수 있고, 아래에는 鐘鼓를 진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후들이 임금님의 이 일을 들으면 그들도 ‘어찌 이렇게 누대를 존중하는가? 이래서야 어떻게 백성을 존중하겠는가?’라고 할 것이니, 존중하는 바가 각기 다를 뿐입니다.” 이에 평공은 곧 누대 짓는 일을 그만두었다.

 14. 今吾伐國失國,是吾曠也

 趙簡子舉兵而攻齊,令軍中有敢諫者罪至死,被甲之士,名曰公盧,望見簡子大笑;簡子曰:「子何笑?」對曰:「臣有夙笑。」簡子曰:「有以解之則可,無以解之則死。」對曰:「當桑之時,臣鄰家夫與妻俱之田,見桑中女,因往追之,不能得,還反,其妻怒而去之,臣笑其曠也。」簡子曰:「今吾伐國失國,是吾曠也。」於是罷師而歸

<<남의 것을 탐내다 가진 것마저 잃게 된다>>

趙簡子가 군대를 일으켜 나라를 공격할 때 軍中에 명령을 내려 감히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죄는 사형에 처할 것이다.’ 하였다갑옷을 입은 군사 중에 公盧라는 자가 있었는데 조간자를 바라보고 크게 웃었다.

이에 조간자가 물었다. “그대는 왜 웃는가?” 그 군사는 대답했다. “저는 평소에 웃는 버릇이 있습니다.” 조간자는 말했다. “이를 해명할 말이 있으면 괜찮겠지만, 해명할 말이 없으면 죽일 것이다.” 이에 공로는 대답하였다.

뽕을 딸 때를 당하여 저의 이웃집 사내가 그의 아내와 함께 밭에 갔습니다사내가 뽕밭 안의 여자를 보고 그대로 따라갔다가 그 여자를 얻지 못하고 돌아오자, 그의 아내는 노하여 그만 떠나버렸습니다저는 사내의 황당한 행위를 웃은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조간자는 말하였다. 지금 내가 남의 나라를 치다가 내 나라를 잃는다면 이는 나의 황당함이다.” 그리고는 이에 군대를 해산하고 돌아왔다.

15. 君不勝欲為臺今復欲為鐘是重斂於民民之哀矣

景公為臺臺成又欲為鐘晏子諫曰:「君不勝欲為臺,今復欲為鐘,是重斂於民,民之哀矣夫斂民之哀而以為樂不祥。」景公乃止

齊 景公이 樓臺를 지어 누대가 완성되자 또 鐘을 만들려고 하니, 晏子가 諫하였다. “임금께서 慾望을 누르지 못해 누대를 지으시고, 지금 다시 종을 만들려고 하시니, 이는 백성에게 세금을 가중시키는 일이라, 백성은 반드시 고통스럽게 됩니다. 세금을 가중시켜 백성을 고통스럽게 하면서 자기는 즐기면 이롭지 않습니다.” 듣고 난 경공은 바로 이 일을 중지하였다.

16. <<안자논죄(晏子論罪)>>

 齊 景公에게 말이 있었는데, 그 말을 기르는 사람이 그 말을 죽이자 景公이 노하여 창을 잡고 직접 찌르려고 하니晏子가 말했다이 사람은 그의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죽게 됩니다이 임금님을 위해 그의 죄를 열거하여, 그의 죄를 알게 하고 죽이겠습니다.” 이에 경공은 좋소.” 하고 허락하였다.

안자는 창을 들고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너는 우리 임금을 위해 말을 기르다가 죽였으니 네 죄는 죽음에 해당한다. 너는 우리 임금이 말 때문에 말을 기르는 사람을 죽이게 하였으니 네 죄는 또 죽음에 해당한다. 너는 우리 임금이 말 때문에 사람을 죽여 사방 이웃의 諸侯들에게 알려지게 하였으니 네 죄는 또 죽음에 해당한다.”

그러자 경공이 말했다. “선생은 그를 놓아주시오. 선생은 그를 놓아주어 나의 仁德이 손상되지 않게 하시오.”

景公有馬其圉人殺之公怒援戈將自擊之晏子曰:「此不知其罪而死臣請為君數之令知其罪而殺之。」公曰:「。」晏子舉戈而臨之曰:「汝為吾君養馬而殺之而罪當死汝使吾君以馬之故殺圉人而罪又當死汝使吾君以馬故殺人聞於四鄰諸侯汝罪又當死。」公曰:「夫子釋之夫子釋之勿傷吾仁也。」

17. <<안자논죄(晏子論罪)>>

景公好弋,使燭雛主鳥而亡之,景公怒而欲殺之,晏子曰:「燭雛有罪,請數之以其罪,乃殺之。」景公曰:「可。」於是乃召燭雛數之景公前曰:「汝為吾君主鳥而亡之,是一罪也;使吾君以鳥之故殺人,是二罪也;使諸侯聞之以吾君重鳥而輕士,是三罪也。數燭雛罪已畢,請殺之。」景公曰:「止,勿殺而謝之。」

齊 景公이 주살로 새 잡기를 좋아하여 잡은 새를 顔燭雛에게 관리하게 하였는데 그 새를 놓쳐버리자, 경공이 노하여 죽이려고 하였다이에 晏子는 말했다. “안촉추는 죄가 있으니 그의 죄를 열거하고 바로 죽이겠습니다.” 경공은 좋소.” 하였다. 그리하여 곧 안촉추를 불러와 경공 앞에서 그의 죄를 열거하였다.

너는 우리 임금을 위해 새를 관리하다가 놓쳤으니 이것이 첫 번째 죄이다. 우리 임금이 새 때문에 사람을 죽이게 하였으니 이것이 두 번째 죄이다. 諸侯들이 이를 듣고 우리 임금이 새는 重視하고 사람은 輕視한다 여기게 하였으니 이것이 세 번째 죄이다.”

이렇게 안촉추의 죄를 열거한 뒤에 죽이자고 요청하였다이에 경공은 그만 중지하라.” 하고는 죽이지 않고 사과하였다.

(** 이 에피소드는 안자춘추에도 나온다.)

景公 好弋 使燭鄒主鳥 而亡之. 公怒 詔吏殺之. 晏子曰 燭鄒有罪三 請數之以其罪而殺之. 公曰:“可 于是召而數之公前 曰 燭鄒 汝為吾君主鳥而亡之 是罪一也 使吾君以鳥之故殺人 是罪二也 使諸侯聞之,以吾君重鳥以輕士 是罪三也 數燭鄒罪已畢 請殺之. 公曰 勿殺 寡人聞命矣. _ [晏子春秋, 外篇]

(경공(景公)이 사냥을 좋아하여, 촉추(燭鄒)라는 사람에게 새를 기르게 하였는데 그가 새를 잃어버렸다. 공이 화가 나서 그를 죽이라고 하였다.  이에, 안자가 "촉추는 죄가 셋 있으니, 그를 그의 죄에 맞게 논죄한 후에 죽이도록 해주십시오." 라고 하였다. 공이 "그리 하라."라고 하였고, 이에 안자가 그를 불러내어 공의 앞에서 죄를 물었다.

"촉추! 너는 군주의 새를 관리하면서 그것을 잃어버렸으니 이것이 첫번째 죄다.우리 군주로 하여금 새 때문에 사람을 죽이게 하니 이것이 두번째 죄다.제후들로 하여금 우리 군주가 새는 중하게 여기고 선비는 가볍게 여긴다는 소리를 듣게 하니 이것이 세번째 죄다." 라고 하고,"이제 촉추의 논죄가 끝났으니 이를 죽이도록 해주십시오"라고 하자,제경공은 "죽이지 말라! 과인이 그 가르침을 듣겠다." 하였다.    
출처: https://athenae.tistory.com/901 [허성원 변리사의 특허와 경영이야기:티스토리]

18. 下無直辭,上無隱君;民多諱言,君有驕行
今君有失行,而刖跪有直辭,是君之福也

景公正晝被髮乘六馬御婦人出正閨刖跪擊其馬而反之:「爾非吾君也。」公慚而不朝晏子睹裔敖而問曰:「君何故不朝?」對曰:「昔者君正晝被髮乘六馬御婦人出正閨刖跪擊其馬而反之曰:『爾非吾君也。』公慚而反不果出是以不朝。」晏子入見公曰:「昔者寡人有罪被髮乘六馬以出正閨刖跪擊其馬而反之:『爾非吾君也。』寡人以天子大夫之賜得率百姓以守宗廟今見戮於刖跪以辱社稷吾猶可以齊於諸侯乎?」晏子對曰:「君無惡焉臣聞之下無直辭,上無隱君;民多諱言,君有驕行古者明君在上下有直辭君上好善民無諱言今君有失行而刖跪有直辭是君之福也故臣來慶請賞之以明君之好善禮之以明君之受諫!」公笑曰:「可乎?」晏子曰:「。」於是令刖跪倍資無正時朝無事

齊 景公이 대낮에 머리를 풀어헤친 채 여섯 마리 말이 끄는 수레에 부인을 데리고 궁중의 작은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刖跪가 말을 쳐서 수레를 궁중으로 되돌아가게 하면서 말하였다. “너는 우리 임금이 아니다.” 그러나 경공은 이를 부끄럽게 여겨 朝會를 열지 않았다. 晏子가 裔敖를 보고 물었다. “임금께서 어찌하여 조회를 열지 않는가?”

이에 예오는 대답하였다. “지난번에 임금께서 대낮에 머리를 풀어헤친 채 여섯 마리 말이 끄는 수레에 부인을 데리고 궁중의 작은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습니다. 월궤가 말을 쳐서 수레를 궁중으로 되돌아가게 하면서 ‘너는 우리 임금이 아니다.’라 하니, 公이 부끄럽게 여기고 돌아와서 과감히 외출을 못하기 때문에 조회를 열지 않는 것입니다.”

안자가 들어가 경공을 뵙자 경공이 말했다. “지난번에 寡人이 죄를 지었소. 머리를 풀어헤친 채 여섯 마리 말이 끄는 수레에 부인을 데리고 궁중의 작은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었다오. 월궤가 말을 쳐서 수레를 궁중으로 되돌아가게 하면서 ‘너는 우리 임금이 아니다.’라 하였소. 과인이 그대 大夫가 준 은덕으로 백성을 통솔하여 宗廟를 지키다가 지금 월궤에게 모욕을 당하여 社稷을 욕보였으니, 내가 그러고도 제후들과 나란히 설 수 있겠소?”

이에 안자는 대답하였다. “임금께서는 이를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臣은 들으니 아래에 바른말하는 신하가 없으면 위에 어두운 임금이 있고, 백성들이 기피하는 말이 많으면 임금은 교만한 행동이 있다 하였습니다. 옛날 현명한 임금이 위에 있으면 아래에 바른말하는 신하가 있고, 임금이 善을 좋아하면 백성들은 기피하는 말이 없었습니다. 현재 임금에게 잘못된 행위가 있자 월궤가 바른말을 하였으니 이는 임금님의 복입니다. 그래서 臣이 와서 慶賀를 드리오니, 그에게 상을 주시어 임금께서 善을 좋아함을 밝히시고, 그를 예우하시어 임금께서 諫言을 받아들임을 表明하십시오.”

그제야 경공은 웃으면서 말하였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안자는 대답했다. “됩니다.” 이에 월궤에게 곱절의 재물을 상으로 주었으며 세금을 징수하지 말도록 하니, 당시에 조정이 太平無事하였다.

19. 景公弗能及,故兩用之,僅得不亡

景公飲酒,移於晏子家,前驅報閭曰:「君至」。晏子被玄端立於門曰:「諸侯得微有故乎?國家得微有故乎?君何為非時而夜辱?」公曰:「酒醴之味,金石之聲,願與夫子樂之。」晏子對曰:「夫布薦席,陳簠簋者有人,臣不敢與焉。」公曰:「移於司馬穰苴之家。」前驅報閭曰:「君至」。司馬穰苴介冑操戟立於門曰:「諸侯得微有兵乎?大臣得微有叛者乎?君何為非時而夜辱?」公曰:「酒醴之味,金石之聲,願與夫子樂之。」對曰:「夫布薦蓆,陳簠簋者有人,臣不敢與焉。」公曰:「移於梁丘據之家。」前驅報閭曰:「君至」。梁丘據左操瑟,右挈竽,行歌而至,公曰:「樂哉!今夕吾飲酒也,微彼二子者何以治吾國!微此一臣者何以樂吾身!賢聖之君皆有益友,無偷樂之臣。」景公弗能及,故兩用之,僅得不亡

<<안자와 사마양저 두 사람이 있지 않으면 어떻게 내 나라를 다스리며, 이 양구거 같은 한 신하가 있지 않으면 어떻게 내 몸을 즐겁게 하겠는가?>>

 齊 景公이 술을 마시다가 晏子의 집으로 옮겨 술을 더 마시려 할 적에, 앞서서 길을 인도하는 사람이 문앞에서 임금께서 오십니다.” 하고 알렸다안자는 玄端服을 입고 문앞에 서서 말했다.
諸侯들 사이에 무슨 變故가 있는 것은 아닙니까? 국가에 무슨 변고가 있는 것은 아닙니까? 임금께서 무슨 일로 정상이 아닌 밤 시간에 저희 집을 찾으셨습니까?”

그러자 경공은 말했다. “맛있는 술과 좋은 음악소리를 그대와 함께 즐기려고 왔소.” 안자는 대답하였다. “자리를 깔고 簠簋 같은 그릇을 진열하는 일은 맡아 하는 사람이 있으니은 감히 참여하지 않겠습니다.”

이에 경공은 말하였다. “司馬穰苴의 집으로 옮기겠다.” 앞서서 길을 인도하는 사람이 문앞에서 임금께서 오십니다.” 하고 알렸다. 사마양저는 갑옷과 투구를 착용한 채 창을 들고 문앞에 서서 말했다諸侯들 사이에 戰爭이 있는 것은 아닙니까大臣 중에 叛亂을 일으킨 자가 있는 것은 아닙니까? 임금께서 무슨 일로 정상이 아닌 밤 시간에 저희 집을 찾으셨습니까?”

그러자 경공은 말했다. “맛있는 술과 좋은 음악소리를 그대와 함께 즐기려고 왔소.” 사마양저는 대답하였다. “자리를 깔고 簠簋 같은 그릇을 진열하는 일은 맡아 하는 사람이 있으니은 감히 참여하지 않겠습니다.”

이에 경공은 말하였다. “梁丘據의 집으로 옮기겠다.” 앞서서 길을 인도하는 사람이 문앞에서 임금께서 오십니다.” 하고 알렸다. 양구거는 왼손에는 을 잡고 오른손에는 를 잡고서 노래를 부르며 나왔다. 이를 본 경공은 말했다즐겁구나. 오늘밤 나의 술 마신 일이여! 저 안자와 사마양저 두 사람이 있지 않으면 어떻게 내 나라를 다스리며, 이 양구거 같은 한 신하가 있지 않으면 어떻게 내 몸을 즐겁게 하겠는가?”

현명하고 슬기로운 임금에게는 모두 有益한 벗이 있고享樂을 탐하게 하는 신하가 없었다. 그런데 경공은 이런 임금에 미치지 못하였다. 그래서 이 두 종류의 신하를 다 임용하여 겨우 멸망하지 않은 것이다.

 

20. 吾以不用子胥之言至於此;令死者無知則已,死者有知,吾何面目以見子胥也

吳以伍子胥孫武之謀西破強楚北威齊晉南伐越越王句踐迎擊之敗吳於姑蘇傷闔廬指軍卻闔廬謂太子夫差曰:「爾忘句踐殺而父乎夫差對曰:「不敢。」是夕闔廬死夫差既立為王以伯嚭為太宰習戰射三年伐越敗於夫湫越王句踐乃以兵五千人一作入棲於會稽山上使大夫種厚幣遣吳太宰嚭以請和委國為臣妾吳王將許之伍子胥諫曰:「越王為人能辛苦今王不滅後必悔之。」吳王不聽用太宰嚭計與越平其後五年吳王聞齊景公死而大臣爭寵新君弱乃興師北伐齊子胥諫曰:「不可句踐食不重味弔死問疾且能用人此人不死必為吳患今越腹心之疾齊猶疥癬耳而王不先越乃務伐齊不亦謬乎?」吳王不聽伐齊大敗齊師於艾陵遂與鄒魯之君會以歸益疏子胥之言其後四年吳將復北伐齊越王句踐用子胥之謀乃率其眾以助吳而重寶以獻遺太宰嚭太宰嚭既數受越賂其愛信越殊甚日夜為言於吳王王信用嚭之計伍子胥諫曰:「夫越腹心之疾今信其游辭偽詐而貪齊譬猶石田無所用之盤庚曰:『古人有顛越不恭』。是商所以興也願王釋齊而先越不然將悔之無及也。」吳王不聽使子胥於齊子胥謂其子曰:「吾諫王王不我用吾今見吳之滅矣女與吳俱亡無為也。」乃屬其子於齊鮑氏而歸報吳王太宰嚭既與子胥有隙因讒曰:「子胥為人剛暴少恩其怨望猜賊為禍也深恨前日王欲伐齊子胥以為不可王卒伐之而有大功子胥計謀不用乃反怨望今王又復伐齊子胥專愎強諫沮毀用事徼幸吳之敗以自勝其計謀耳今王自行悉國中武力以伐齊而子胥諫不用因輟佯病不行王不可不備此起禍不難且臣使人微伺之其使齊也乃屬其子於鮑氏夫人臣內不得意外交諸侯自以先王謀臣今不用常怏怏願王早圖之。」吳王曰:「微子之言吾亦疑之。」乃使使賜子胥屬鏤之劍:「子以此死。」子胥曰:「 嗟乎讒臣宰嚭為亂王顧反誅我我令若父霸又若立時諸子弟爭立我以死爭之於先王幾不得立若既立欲分吳國與我我顧不敢當然若之何聽讒臣殺長者!」乃告舍人曰:「必樹吾墓上以梓令可以為器而抉吾眼著之吳東門以觀越寇之滅吳也。」乃自刺殺吳王聞之大怒乃取子胥屍盛以鴟夷革浮之江中吳人憐之乃為立祠於江上因名曰胥山後十餘年越襲吳吳王還與戰不勝使大夫行成於越不許吳王將死曰:「吾以不用子胥之言至於此;令死者無知則已,死者有知,吾何面目以見子胥也遂蒙絮覆面而自刎

吳나라가 伍子胥와 孫武의 계책을 써서 서쪽으로는 강력한 楚나라를 격파하고, 북쪽으로는 齊나라와 晉나라를 위협하였으며, 남쪽으로는 越나라를 토벌하였다. 越王 句踐이 오나라를 맞아 싸워 姑蘇에서 오나라 군대를 패배시키고 闔閭의 엄지발가락에 부상을 입히자, 오나라 군대는 퇴각하였다. 합려가 太子 夫差에게 말했다. “너는 구천이 네 아비를 죽인 일을 잊겠느냐?” 부차는 대답하였다. “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 이날 밤에 합려는 죽고 말았다.

부차는 즉위하여 왕이 되고 나서, 伯嚭를 太宰로 삼아 전쟁과 사격훈련을 하였다. 3년 뒤에 오나라는 월나라를 토벌하여 夫湫에서 越나라 군대를 패배시켰다. 월왕 구천은 곧 군사 5천 명을 거느리고 會稽山 위에서 머물렀다. 그러고는 大夫 文種을 보내어 오나라 태재 백비에게 많은 뇌물을 주어 講和하기를 요청하고, 나라의 통치권을 바치며 자신은 신하가 되고 아내는 侍妾이 되기를 원하였다. 

오왕 부차가 허락하려고 하자 오자서는 諫하였다. “월왕 구천은 사람됨이 어렵고 괴로움을 잘 참아내니, 지금 왕께서 없애지 않으면 후일 반드시 뉘우칠 것입니다.” 吳王은 이 말을 따르지 않고 태재 백비의 계책을 채용하여 월나라와 和平하였다. 그 뒤 5년에 오왕은, 齊 景公이 죽고 大臣들은 총애받기를 다투며 새로 즉위한 임금은 어리다는 소문을 듣고, 군대를 일으켜 북쪽을 향하여 齊나라를 토벌하려고 하였다. 오자서는 다시 간하였다.

“안 됩니다. 구천이 두 가지 이상의 반찬을 먹지 않고 죽은 이를 弔問하며 병든 이를 問病하고, 또 人才를 잘 임용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죽지 않으면 반드시 오나라의 근심거리가 될 것입니다. 지금 월나라는 뱃속의 병이고, 제나라는 옴 같은 피부병과 같습니다. 그런데 왕께서는 월나라를 먼저 토벌하지 않으시고, 제나라 토벌하는 일에 힘쓰시니 잘못된 일이 아니겠습니까?”

오왕은 오자서의 諫言을 따르지 않고 제나라를 토벌하여 艾陵에서 제나라 군대를 크게 패배시키고, 마침내 鄒‧魯의 임금과 會盟을 하고 돌아와 더욱 오자서의 말을 멀리하였다. 그 뒤 4년에 오나라는 다시 북쪽으로 제나라를 토벌하려고 하였다.

월왕 구천은 子貢의 계책을 채용하여, 마침내 그의 군대를 이끌고 오나라를 돕고 많은 보물을 태재 백비에게 바쳤다. 태재 백비는 이미 여러 차례 월나라의 뇌물을 받고는 월나라를 사랑하고 신임하는 마음이 매우 심하여 밤낮으로 월나라를 위해 오왕에게 좋게 말하니, 오왕은 백비의 계책을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보다 못한 오자서는 간했다.

“저 월나라는 뱃속의 병인데 지금 근거 없는 들뜬 말과 거짓된 계책을 믿고 제나라에 대한 이익을 추구하시니, 비유하면 돌밭과 같아서 쓸모가 없습니다. 《書經》 〈盤庚〉에 ‘교훈을 失墜하여 공손히 따르지 않는 자가 있으면 코를 베거나 죽여서 남겨두어 기름이 없게 하여 그 종자를 이 도읍에 옮겨 살지 못하게 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이것이 商나라가 興盛하게 된 원인이니, 왕께서는 제나라는 버려두고 월나라를 먼저 공격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장차 뉘우쳐도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오왕은 이 말도 따르지 않고 오자서를 제나라에 使臣으로 보냈다. 오자서는 그의 아들에게 말했다. “내가 왕에게 간하였으나 왕이 나의 말을 채용치 않으니, 나는 이제 오나라가 멸망할 것을 보았다. 네가 오나라와 함께 멸망하는 것은 아무 의의가 없다.” 그러고는 마침내 그의 아들을 제나라의 鮑氏에게 맡기고 돌아와서 오왕에게 사신으로 갔다온 일을 보고하였다.

태재 백비는 이미 오자서와 서로 꺼리는 틈이 있었는데, 이 기회를 이용하여 오자서를 참소하였다. “오자서의 사람됨은 강퍅하고 사나우며 恩情이 적으니, 그가 원망하고 陰險한 敵意를 품으면 깊은 禍亂이 될 것입니다. 지난날 왕께서 제나라를 토벌하려 하실 때 오자서가 안 된다고 하였으나 왕께서 끝내 제나라를 토벌하여 큰 공을 거두셨는데, 오자서는 자기의 계책이 채용되지 않으니 도리어 원망하였습니다. 지금 왕께서 또다시 제나라를 토벌하려 하시는데 오자서는 제멋대로 강퍅하게 간하며, 왕께서 하시는 일을 저지하고 훼방하면서 오나라가 실패하여 스스로 자기의 계책이 우월했음을 바라고 있습니다. 지금 왕께서 직접 출정하시어 나라 안의 모든 무력을 징발하여 제나라를 토벌하려 하시는데, 오자서는 자기의 간언이 채용되지 않자 그대로 나오지 않고 거짓으로 병을 핑계대어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왕께서는 이를 대비하지 않으시면 안 되니, 이 사람은 왕에게 禍亂을 일으키는 일을 어렵게 여기지 않습니다. 또 臣이 사람을 보내 몰래 엿보게 했더니, 그가 제나라에 사신 갔을 때 마침내 그의 아들을 鮑氏에게 맡겼습니다. 신하가 되어 국내에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하여 밖에서 제후와 교제하고, 자신은 先王의 謀臣으로서 지금 자기의 건의가 채용되지 않는다 하여 언제나 야속하게 여기고 있으니, 왕께서는 일찌감치 도모하시기 바랍니다.”

이에 오왕은 말하였다. “그대가 이렇게 말하지 않더라도 나 역시 의심하고 있었소.” 그러고는 사람을 보내 오자서에게 屬鏤劍을 주면서 말하였다. “그대는 이 劍으로 자결하시오.” 그러자 오자서는 말했다. “아, 참소하는 신하 태재 백비가 禍亂을 조장하고 있는데 왕은 도리어 나를 誅殺하는구나. 나는 너의 아버지를 霸者가 되게 하였고, 또 네가 太子가 될 때 여러 子弟들이 태자가 되려고 다투었는데 나는 선왕께 죽음을 무릅쓰고 너를 위해 간하였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너는 하마터면 태자가 되지 못할 뻔했었다. 네가 이미 태자가 되어 오나라를 나누어 나에게 주려고 하였으나 나는 도리어 감히 받지 않았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참소하는 신하의 말을 듣고 이 어른을 죽이는가?”

마침내 舍人에게 당부하였다. “나의 무덤가에는 반드시 가래나무[梓]를 심어 그 나무가 커서 기물을 만들 만하게 되거든, 나의 눈알을 파내 오나라 都城 東門에 걸어두어 월나라의 침략군이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을 보게 해다오.” 그러고는 마침내 스스로 찔러 죽었다. 오왕은 이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바로 오자서의 시체를 가져다가 가죽으로 만든 자루에 담아 강물에 띄워버렸다. 오나라 사람들이 불쌍히 여겨 바로 강가에 사당을 세우고 이름을 胥山이라 하였다.

그 뒤 10여 년에 월나라가 오나라를 습격하니 오왕은 〈北方에 가서 제후들과 회맹하던 중에〉 군대를 돌이켜 돌아와서 싸우다가 이기지 못하자, 大夫를 월나라에 보내 講和를 요구하였으나 월나라는 허락하지 않았다. 오왕은 자살하려고 하면서 말했다. “내가 오자서의 말을 채용하지 않아 이 지경에 이르렀구나! 죽은 자가 지각이 없다면 그뿐이지만, 죽은 자가 지각이 있다면 내가 무슨 면목으로 오자서를 만나랴!” 그러고는 마침내 솜을 얼굴에 덮고는 스스로 목을 찔러 자살하였다.

21. 故忠臣之言不可不察也

齊簡公有臣曰諸御鞅諫簡公曰:「田常與宰予此二人者甚相憎也臣恐其相攻相攻雖叛而危之不可願君去一人。」簡公曰:「非細人之所敢議也。」居無幾何田常果攻宰予於庭賊簡公於朝簡公喟焉太息:「余不用鞅之言以至此患也故忠臣之言,不可不察也。」

齊 簡公에게 신하가 있으니 諸御鞅이라고 한다. 그는 간공에게 諫하였다. “田常과 宰予 이 두 사람은 서로 몹시 미워하니, 臣은 그들이 서로 공격해 죽일까 봐 걱정됩니다. 서로 공격하여 離叛하면 임금께서 위태로워질 것이니, 그래서는 안 됩니다. 임금께서는 한 사람을 제거하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간공은 말하였다. “미천한 사람이 감히 의론할 일이 아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상이 정말로 朝廷의 뜰에서 재여를 공격해 죽이고, 간공을 조정에서 시해하였다. 당시에 간공은 한숨을 쉬며 탄식해 말했다. “내가 제어앙의 말을 듣지 않았다가 이런 환란에 이르렀구나!” 그러므로 忠臣의 말은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22. 若從君而致患,不若違君以避難

魯襄公朝荊至淮聞荊康王卒公欲還叔仲昭伯曰:「君之來也為其威也今其王死其威未去何為還?」大夫皆欲還子服景伯曰:「子之來也為國家之利也故不憚勤勞不遠道塗而聽於荊也畏其威也夫義人者,固將慶其喜而弔其憂況畏而聘焉者乎聞畏而往聞喪而還其誰曰非侮也𦬒姓是嗣王太子又長矣執政未易事君任政求說其侮以定嗣君而示後人其讎滋大以戰小國其誰能止之若從君而致患,不若違君以避難且君子計而後行二三子其計乎有御楚之術有守國之備則可若未有也不如行!」乃遂行

魯 襄公이 楚나라로 朝見하러 갈 때 淮水 가에 이르러 楚 康王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양공이 돌아가려고 하였다. 그러자 叔仲昭伯이 말했다. “임금께서 초나라에 가시려는 것은 초나라의 위세 때문이니, 지금 그 왕은 죽었으나 그 위세는 없어지지 않았는데 어찌 돌아가려 하십니까?” 大夫들이 모두 돌아가려고 하자 子服景伯은 말했다.

“그대들이 가는 것은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요. 그 때문에 수고로움을 꺼리지 않고 가는 길을 멀다 여기지 않으며, 초나라의 명을 따르는 것은 그 위세를 두려워하기 때문이오. 의로운 사람은 본디 남의 慶事에는 기뻐해주고 喪事에는 弔問하는 법인데, 더구나 두려워서 聘問하는 대상이겠소? 두려운 위세가 있음을 듣고 가다가 喪事가 있음을 듣고 돌아간다면, 그 누가 모욕을 주는 것이 아니라고 하겠소. 羋姓이 王位를 계승하고 王太子가 또 장성하였으며, 執政大臣이 바뀌지 않았소. 그들이 임금을 모시고 정치를 담당하여 이 모욕을 제거하여 즉위한 임금을 안정시키고 후대 사람에게 보이기를 구한다면, 우리에 대한 원한을 더욱 크게 갚을 것이오. 우리 같은 작은 나라와 전쟁을 한다면 그 누가 막아내겠소. 임금의 뜻을 따르다가 患難을 부르는 것보다는 임금의 뜻을 어겨 환난을 피하는 것만 못하오. 또 君子는 계획을 정한 뒤에 실행하는 것인데 그대들은 계획을 정하였소? 초나라를 막을 방도가 있고 나라를 지킬 방비가 있다면 돌아가도 괜찮겠지만, 만일 이런 방책이 없다면 초나라로 가는 것만 못하오.” 그러자 마침내 초나라로 갔다.

22-1. 欲湯之冷,令一人炊之,百人揚之,無益也;不如絕薪止火而已

孝景皇帝時,吳王濞反,梁孝王中郎枚乘字叔聞之,為書諫王,其辭曰:「君王之外臣乘,竊聞得全者全昌,失全者全亡。舜無立錐之地,以有天下;禹無十戶之聚,以王諸侯。湯武之地,方不過百里;上不絕三光之明,下不傷百姓之心者,有王術也!故父子之道,天性也,忠臣不敢避誅以直諫,故事無廢棄而功流於萬世也,臣誠願披腹心而效愚忠,恐大王不能用之;臣誠願大王少加意念惻怛之心於臣乘之言。夫以一縷之任,係千鈞之重,上懸之無極之高,下垂不測之淵,雖甚愚之人,且猶知哀其將絕也。馬方駭而重驚之,係方絕而重鎮之;係絕於天,不可復結;墜入深淵,難以復出;其出不出,間不容髮!誠能用臣乘言,一舉必脫;必若所欲為,危如重卵,難於上天;變所欲為,易於反掌,安於太山。今欲極天命之壽,弊無窮之樂,保萬乘之勢,不出反掌之易,以居太山之安;乃欲乘重卵之危,走上天之難,此愚臣之所大惑也!人性有畏其影而惡其跡者,卻背而走無益也,不知就陰而止,影滅跡絕。欲人勿聞,莫若勿言;欲人勿知,莫若勿為欲湯之冷,令一人炊之,百人揚之,無益也;不如絕薪止火而已。不絕之於彼,而救之於此,譬猶抱薪救火也。養由基,楚之善射者也,去楊葉百步,百發百中,楊葉之小,而加百中焉,可謂善射矣,所止乃百步之中耳,比於臣未知操弓持矢也。福生有基,禍生有胎;納其基,絕其胎;禍何從來哉?泰山之溜穿石,引繩久之,乃以挈木;水非石之鑽,繩非木之鋸也,而漸靡使之然。夫銖銖而稱之,至石必差;寸寸而度之,至丈必過;石稱丈量,徑而寡失。夫十圍之木,始生於,可引而絕,可擢而拔,據其未生,先其未形;磨礱砥礪,不見其損,有時而盡;種樹畜長,不見其益,有時而大;積德修行,不知其善,有時而用;行惡為非,棄義背理,不知其惡,有時而亡。臣誠願大王孰計而身行之,此百王不易之道也。」吳王不聽,卒死丹徒。

<<끓는 물을 차게 하려고 하면서 한 사람은 불을 때게 하고 백 사람으로 물을 젓도록 하면 도움이 되지 않으니, 다만 섶을 치우고 불을 끄는 것만 못합니다. >>

孝景皇帝  吳王 가 반란을 일으키자 梁孝王 中郞으로 있던 梅乘  인데, 이 소식을 듣고 글을 지어 吳王에게 하였다. 그 글은 다음과 같다.

君王 外臣 매승은 적이 임금에 대한 가 완전한 자는 완전히 昌盛하고, 임금에 대한 가 완전하지 못한 자는 완전히 敗亡한다.’고 들었습니다. 임금은 송곳 하나 꽂을 땅도 없었으나 천하를 소유하셨고禹王은 열 집의 무리도 없었으나 제후들에게  노릇하였습니다. 湯王 武王의 땅은 사방 백 리도 안 되었지만 위로 三光의 빛을 끊지 않았고, 아래로 백성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았던 것은 王道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父子간의 도리는 天性으로 이루어진 것이지만忠臣은 죽음을 피하지 않고 直諫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王業이 폐기되지 아니하여 功業 萬世에 전해지는 것입니다. 은 진실로 뱃속에 든 마음을 쪼개내어 어리석은 忠誠을 바치고 싶지만, 대왕께서 채용하지 않을까 봐 걱정이 됩니다. 은 진실로 대왕께서 신 매승의 말에 좀 더 유의하시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주시기를 바랍니다.

한 올의 실이 감당하는 힘으로 千鈞의 무거운 물건을 매어 위로는 끝없이 높은 곳에 매달아놓고, 아래로는 헤아릴 수 없이 깊은 못에 늘어뜨려 놓으면,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일지라도 오히려 그것이 끊어질까 봐 안타까워할 줄 압니다. 말이 지금 막 놀라는데 거듭 놀라게 하고, 매어놓은 실이 막 끊어지려 하는데 거듭 누르고 있습니다. 공중에 매단 것이 끊어지면 다시는 잡아매기 어렵고, 깊은 못에 떨어지면 다시는 꺼내기 어렵습니다. 꺼내고 꺼내지 못하는 것은 그 사이가 머리카락 한 올만큼의 차이도 없습니다.

진실로 신 매승이 드리는 말씀을 채용하시면 단번에 반드시 위험에서 벗어나겠지만, 만일 하고 싶은 대로 하시면 계란을 쌓아놓은 것처럼 위태롭고, 하늘에 오르는 것처럼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하고 싶은 일을 변경하시면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쉽고太山보다 안전할 것입니다. 지금 天命 를 다 누리고 無窮한 즐거움을 다하며 萬乘 權勢를 보전하고자 하십니다. 그런데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쉬우며 태산처럼 안전한 방도를 하지 않으시고, 마침내 계란을 쌓은 것처럼 위태로운 형세를 타며 하늘에 오르는 것처럼 어려운 데로 달려가시니, 이것이 어리석은 신은 크게 당혹스럽게 여기는 것입니다.

자기의 그림자를 두려워하여 자기의 자취를 싫어하는 성품을 가진 사람이 있어서 뒤로 걸어보았지만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늘 속에 들어가 멈추면 그림자는 없어지고 자취가 끊어짐을 몰랐던 것입니다. 남이 듣지 못하게 하려면 말하지 않는 것만 못하고, 남이 알지 못하게 하려면 하지 않는 것만 못합니다.

끓는 물을 차게 하려고 하면서 한 사람은 불을 때게 하고 백 사람으로 물을 젓도록 하면 도움이 되지 않으니, 다만 섶을 치우고 불을 끄는 것만 못합니다. 저곳의 불을 끄지 않고 이곳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비유하건대 섶을 안고 불을 끄려는 것과 같습니다.

養由基 나라의 활쏘기 명수입니다. 버들잎과의 거리가 백 보나 떨어진 곳에서 활을 쏘아 百發百中하였습니다. 그 작은 버들잎인데 백발백중하였다면 활을 잘 쏘는 사람이라고 할 만하지만 백 보 안에 국한될 뿐입니다. 신에게 견준다면 양유기는 활을 잡고 화살을 겨누는 방법을 모르는 것입니다.

은 쌓은 바탕에서 생기고는 잉태한 근원에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 복이 오는 바탕을 받아들이고 화를 잉태하는 근원을 끊는다면, 화가 어디를 따라 오겠습니까. 태산의 작은 물방울이 돌을 뚫고, 가는 노끈을 오랫동안 당기면 나무를 자르는 법입니다. 물은 돌을 뚫는 송곳이 아니고, 노끈은 나무를 베는 톱이 아닌데, 차츰차츰 스며들어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저울의 눈금 하나씩을 가지고 달면 1에 이르러 반드시 差異가 나고, 자의 한 치를 가지고 재면 1에 이르러 반드시 錯誤가 생기게 됩니다. 으로 달고 으로 재어야 빠르고 착오가 적은 법입니다한 아름이 되는 큰 나무도 처음에는 연한 싹에서 생기니, 이때에는 당겨서 끊을 수 있고, 잡아당겨 뽑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직 크게 자라지 않았고 완전한 형태를 이루기 전이기 때문입니다숫돌에 물건을 갈 때에는 그것이 닳는 것을 보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다 닳아 없어질 때가 있고, 나무를 심어 커갈 때에 커가는 것을 보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크게 됩니다.

德行을 쌓고 品行을 수양할 적에는 그의 함을 알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쓸 때가 있고惡行과 잘못을 저지르고 道義를 버리며 義理를 위배할 적에는 그의 함을 알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멸망하는 법입니다신은 진실로 대왕께서 자세히 살피시어 몸소 실행하기를 바라오니, 이는 역대의 수많은 이 바꾸지 않았던 準則입니다.” 吳王은 이 말을 따르지 않았는데, 마침내 丹徒에서 죽었다.

 

23. 魚固人之所射也;若是,豫且何罪?

吳王欲從民飲酒,伍子胥諫曰:「不可。昔白龍下清冷之淵,化為魚,漁者豫且射中其目,白龍上訴天帝,天帝曰:『當是之時,若安置而形?』白龍對曰:『我下清冷之淵化為魚。』天帝曰:『魚固人之所射也;若是,豫且何罪?』夫白龍,天帝貴畜也;豫且,宋國賤臣也。白龍不化,豫且不射;今棄萬乘之位而從布衣之士飲酒,臣恐其有豫且之患矣。」王乃止。

<<‘물고기는 본디 사람들이 쏘아 잡는 것이다. 네가 이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예저에게 무슨 죄가 있느냐?’ >>

吳王이 백성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려고 하자 伍子胥 하였다.

안 됩니다. 옛날 白龍 淸泠의 연못에 내려와 물고기로 변하였는데, 어부 豫且가 그 눈을 쏘아 맞히자 백룡은 하늘에 올라가 天帝께 이를 하소연하였습니다. 천제는 당시에 너는 어디에서 무슨 형체를 하고 있었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백룡은 대답했습니다. ‘저는 청령의 연못에 내려가 물고기로 변해 있었습니다.’ 그러자 천제는 물고기는 본디 사람들이 쏘아 잡는 것이다. 네가 이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예저에게 무슨 죄가 있느냐?’ 하였습니다.

백룡은 천제가 귀중하게 기르는 물건이고, 예저는 나라의 미천한 백성입니다. 백룡이 물고기로 변하지 않았다면 예저가 쏘아 맞히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 萬乘의 지위를 버리시고 布衣의 백성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면 은 예저 같은 재앙이 있을까 걱정됩니다.” 그러자 왕은 이내 그만두었다.

 

24. 良藥苦於口,利於病;忠言逆於耳,利於行

 孔子曰:「良藥苦於口,利於病;忠言逆於耳,利於行。故武王諤諤而昌,紂嘿嘿而亡,君無諤諤之臣,父無諤諤之子,兄無諤諤之弟,夫無諤諤之婦,士無諤諤之友;其亡可立而待。故曰君失之,臣得之;父失之,子得之;兄失之,弟得之;夫失之,婦得之;士失之,友得之。故無亡國破家,悖父亂子,放兄棄弟,狂夫淫婦,絕交敗友。」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좋은 藥은 입에는 쓰지만 病에는 이롭고, 忠直한 말은 귀에는 거슬리지만 行事에는 이롭다. 그래서 武王 直言으로 하게 하여 昌盛하였고紂王은 입을 닫고 말하지 못하게 하여 敗亡하였다임금에게 직언하는 신하가 없고, 아버지에게 직언하는 아들이 없고, 형에게 직언하는 아우가 없고, 남편에게 직언하는 아내가 없으며, 선비에게 직언하는 벗이 없으면 그의 패망을 즉시 기다리는 것과 같다그 때문에 ‘임금의 잘못을 신하가 바로잡아주고, 아버지의 잘못을 아들이 바로잡아주고, 형의 잘못을 아우가 바로잡아주고, 남편의 잘못을 아내가 바로잡아주며, 선비의 잘못을 벗이 바로잡아준다.’고 하는 것이다그러므로 망한 나라와 파괴된 집悖逆한 아버지와 亂倫의 아들放蕩한 형과 버림받은 아우, 미치광이 남편과 淫亂한 아내交際를 끊는 友情과 잘못된 벗이 없는 것이다.”

 

25. 下無言則謂之喑,上無聞則謂之聾

晏子復於景公曰:「朝居嚴乎?」公曰:「朝居嚴,則曷害於國家哉?」晏子對曰:「朝居嚴,則下無言,下無言,則上無聞矣。下無言則謂之喑,上無聞則謂之聾;聾喑則非害治國家如何也?具合菽粟之微以滿倉廩,合疏縷之緯以成幃幕,太山之高,非一石也,累卑然後高也。夫治天下者,非用一士之言也,固有受而不用,惡有距而不入者哉?」

<<아랫사람이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을 벙어리[喑]이라 하고, 윗사람이 듣지 못하는 것을 귀머거리[聾]라고 합니다. >>

晏子 齊 景公에게 여쭈었다. “朝廷에 계실 때 嚴肅하게 하십니까?”

경공은 대답하였다. “조정에 있을 때 엄숙하면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 무슨 해로움이 있소?”

이에 안자는 대답했다. “조정에 계실 때 엄숙하면 아랫사람들이 말을 하지 못하고, 아랫사람들이 말을 하지 못하면 윗사람이 나라의 實情을 듣지 못합니다아랫사람이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을 벙어리[喑]이라 하고, 윗사람이 듣지 못하는 것을 귀머거리[聾]라고 합니다. 귀머거리와 벙어리가 되면 나라를 다스리는 데 해가 되지 않고 어찌되겠습니까? 콩과 좁쌀의 작은 것이 모두 모여서 창고를 가득 채우고, 성긴 실들이 합쳐져서 장막을 이루는 것입니다. 太山이 높은 것은 돌 하나로 된 것이 아니고, 낮은 곳에 많은 돌이 쌓인 뒤에 높아진 것입니다. 천하를 다스리는 일은 한 사람의 말만을 채용해서는 안 됩니다. 진실로 받아들이고 채용하지 않을지언정 어찌 막아서 들어오지도 못하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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