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券七 政理)_설원(說苑) _ 유향(劉向)
** 역문은 동양고전DB에서, 원문은 說苑에서 가져옴.
** 〈政理〉篇은 국가를 다스리는 도리를 闡明한 내용이다. 정치에는 王道와 霸道가 있는데 왕도는 重하고 패도는 輕하다는 思想에서 출발하고 있다.
왕도의 핵심은 仁政과 敎化로써 君子의 德은 바람과 같고 小人의 德은 풀과 같아서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이 쓰러지는 것처럼 교화의 作用을 提高하였다. 한편 패도는 刑法을 중시하고 교화를 輕視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刑法을 否定하는 것이 아니다. 형법의 重要性을 인정하면서도 다만 先後와 主客의 문제로 보았다. 이는 先王이 德敎를 편 뒤에 刑罰은 부차적으로 사용하여 ‘가르치지 않고 형벌하는 것을 포학이라 한다’는 孔子의 사상과 부합하는 것으로 인식하였다.
국가를 다스리는 요건으로 백성의 생활이 보장되어야 하고, 賞罰을 實情에 맞게 시행해야 하며, 자신의 德을 수양해야 됨을 밝혔다. 그래서 賢君이 나라를 다스릴 적에 정치가 淸明하고, 관리는 가혹하지 않으며, 세금을 절약하고 자신의 봉양은 薄하게 하여 좋은 治世를 이룬다는 것이다.
1. 王者之政化之,霸者之政威之,強者之政脅之
政有三品:王者之政化之,霸者之政威之,強者之政脅之,夫此三者各有所施,而化之為貴矣。夫化之不變而後威之,威之不變而後脅之,脅之不變而後刑之;夫至於刑者,則非王者之所得已也。是以聖王先德教而後刑罰,立榮恥而明防禁;崇禮義之節以示之,賤貨利之弊以變之;修近理內政橛機之禮,壹妃匹之際;則莫不慕義禮之榮,而惡貪亂之恥。其所由致之者,化使然也。
政治에는 세 등급이 있으니, 王者의 정치는 德으로 백성을 敎化하고, 霸者의 정치는 威力으로 백성을 두렵게 하며, 强國의 정치는 刑罰로 백성을 威脅한다.
이 세 가지 정치 형태는 각기 시행하는 방법이 있으나 덕으로 교화하는 정치가 가장 귀중한 것이다. 교화하여도 백성들이 변하지 않으면 그 다음에 위력을 쓰고 위력을 써도 변하지 않으면 그 다음에 형벌로 위협하는 방법을 써야 한다. 형벌을 쓰는 데까지 이르는 것은 王者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때문에 聖王은 덕으로 교화하는 일을 먼저 하고 형벌은 어쩔 수 없게 된 뒤에 쓰며, 榮光과 恥辱의 표준을 세우고 防備와 禁止하는 일을 밝히며, 禮義의 節度를 존중하여 제시하고 財物과 利益을 천시하여 백성의 마음을 변화시키며, 신변을 닦고 마음을 다스려 집 안의 禮를 바르게 하고 后妃의 관계를 전일하게 한다.
그러면 義禮의 영광됨을 사모하고 탐욕과 혼란을 수치로 여기지 않는 백성이 없을 것이다. 이런 현상을 이루는 원인은 덕으로 베푼 교화가 그렇게 하는 것이다.
2. 如殺無道,以就有道,何如?
君子之德,風也;小人之德,草也;草上之風必偃
季孫問於孔子曰:「如殺無道,以就有道,何如?」孔子曰:「 子為政,焉用殺,子欲善而民善矣。君子之德,風也;小人之德,草也;草上之風必偃。」言明其化而已矣,
季孫이 孔子께 물었다. “만일 無道한 사람을 죽여서 道義 있는 사람을 오게 하면 어떻습니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그대는 정치를 하면서 어찌 죽이는 방법을 쓰려 합니까? 그대가 善을 행하려고 하면 백성들도 善을 행하는 법입니다. 君子의 德은 바람과 같고 小人의 덕은 풀과 같으니,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쓰러집니다.”
이것은 敎化를 밝게 시행해야 할 뿐임을 말한 것이다.
3. 治國有二機,刑德是也;王者尚其德而布其刑,霸者刑德並湊,強國先其刑而後德
治國有二機,刑德是也;王者尚其德而布其刑,霸者刑德並湊,強國先其刑而後德。夫刑德者,化之所由興也。德者,養善而進闕者也;刑者,懲惡而禁後者也;故德化之崇者至於賞,刑罰之甚者至於誅;夫誅賞者,所以別賢不肖,而列有功與無功也。故誅賞不可以繆,誅賞繆則善惡亂矣。夫有功而不賞,則善不勸,有過而不誅,則惡不懼,善不勸而能以行化乎天下者,未嘗聞也。書曰:『畢協賞罰』,此之謂也。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는 두 가지 중요한 조건이 있으니 刑罰과 德敎가 이것이다. 王者는 덕교를 숭상하고 형벌은 적게 쓰며, 霸者는 형벌과 덕교를 아울러 쓰고, 强暴한 나라는 형벌을 먼저 쓰고 덕교는 뒤에 쓴다. 형벌과 덕교는 敎化가 일어나는 근본이니, 덕교는 善을 길러 缺點을 補完하여 나아가게 하는 것이고, 형벌은 惡行을 懲戒하여 뒷사람의 악행을 금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德化를 숭상하게 하는 방법은 賞을 주고, 형벌을 심하게 하는 방법은 誅罰하는 것이다. 주벌하고 상을 주는 것은 어진 이와 어질지 못한 이를 구별하고 功이 있는 이와 공이 없는 이를 나누어 세우는 방법이다. 그 때문에 주벌하고 상을 주는 일을 잘못 시행해서는 안 되니, 주벌하고 상을 주는 일을 잘못 시행하면 善과 惡이 혼란해진다. 공이 있는데도 상을 주지 않으면 善한 사람이 권장되지 않고, 잘못이 있는데도 주벌하지 않으면 惡한 사람이 두려워하지 않는다. 善한 사람이 권장되지 않고 惡한 사람이 두려워하지 않고서 천하에 교화를 잘 행했다는 사람은 일찍이 듣지 못했다.
《書經》에 “상과 벌을 모두 합당하게 한다.” 하였으니, 이를 두고 이른 말이다.
4. 故曰急轡御者非千里御也。
水濁則魚困,令苛則民亂,城峭則必崩,岸竦則必。故夫治國,譬若張琴,大絃急則小絃絕矣,故曰急轡御者非千里御也。有聲之聲,不過百里,無聲之聲,延及四海;故祿過其功者損,名過其實者削,情行合而民副之,禍福不虛至矣。詩云:「何其處也,必有與也;何其久也,必有以也。」此之謂也。
물이 흐리면 물고기가 살기 어렵고, 法令이 가혹하면 백성이 난을 일으키고, 城이 높으면 반드시 무너지며, 언덕이 높이 솟아 있으면 반드시 무너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나라 다스리는 일은 琴의 絃을 조절하는 것과 같아서 큰 絃을 지나치게 팽팽히 당기면 작은 絃이 끊어지게 된다.
그래서 “말고삐와 재갈을 팽팽히 당기며 빨리 모는 자는 천 리를 잘 달릴 수 있는 마부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들리는 소리가 있는 소리는 백 리에 지나지 못하고, 들리는 소리가 없는 소리는 온 四海에 퍼져 미친다. 그래서 功勞보다 祿俸을 많이 받는 자는 결국 損害를 받게 되고, 實際보다 名聲이 지나치게 높은 자는 끝내 깎이게 된다. 실제 정황과 행위가 부합해야 명성이 부응하는 것이니, 禍福은 공연히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詩經》에 “어떻게 편안히 사시는가? 반드시 돕는 자가 있네. 어떻게 오래 머무는가? 반드시 원인이 있네.”라 하였으니, 이런 경우를 두고 이른 말이다.
5. 嚴則下喑,下喑則上聾,聾喑不能相通,何國之治也?
公叔文子為楚令尹三年,民無敢入朝,公叔子見曰:「嚴矣。」文子曰:「朝廷之嚴也,寧云妨國家之治哉?」公叔子曰:「嚴則下喑,下喑則上聾,聾喑不能相通,何國之治也?順針縷者成帷幕,合升斗者實倉廩,并小流而成江海;明主者有所受命而不行,未嘗有所不受也。」
公叔文子가 楚나라의 令尹이 된 지 3년이나 되었으나 감히 朝廷에 들어와 의견을 말하는 사람이 없으니, 公叔子가 만나서 말했다. “너무 嚴합니다.” 공숙문자는 대답하였다. “조정이 엄한 것을 어찌 국가를 다스리는 일에 방해가 된다 하겠소.”
이에 공숙자가 말했다. “엄하면 아랫사람들이 입을 다물고, 아랫사람들이 입을 다물면 윗사람은 귀머거리가 됩니다. 귀머거리와 벙어리는 서로의 생각을 통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국가가 다스려지겠습니까? 저는 들으니, 바늘과 실을 순서대로 사용하는 자는 帳幕을 만들 수 있고, 한 되나 한 말의 곡식을 모으는 자는 倉庫를 가득 채울 수 있으며, 작은 물이 모여 쌓여야 강과 바다를 이룬다고 합니다. 賢明한 임금은 의견을 받아 실행하지 못하는 경우는 있을지언정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는 없습니다.”
6. 不出於環堵之室而知天下者,知反之己者也
衛靈公謂孔子曰:「有語寡人為國家者,謹之於廟堂之上而國家治矣,其可乎?」孔子曰:「可。愛人者,則人愛之;惡人者,則人惡之;知得之己者,亦知得之人;所謂不出於環堵之室而知天下者,知反之己者也。」
衛 靈公이 孔子께 말했다. “어떤 이가 寡人에게 ‘국가를 다스리는 사람이 廟堂에서 삼가고 조심하면 국가는 잘 다스려진다.’고 하는데, 이 말이 가능합니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가능합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남도 그 사람을 사랑하고, 남을 미워하는 사람은 남도 그 사람을 미워하며, 자신에게 有益함을 얻는 도리를 아는 사람은 남의 유익함을 얻는 도리도 압니다. 이른바 ‘사방을 흙담으로 둘러친 작은 집에서 나오지 않고서도 천하의 일을 안다.’는 것이니, 자신에게 돌이켜볼 줄을 아는 것입니다.”
7. 懍懍焉如以腐索御奔馬
子貢問治民於孔子,孔子曰:「懍懍焉如以腐索御奔馬。」子貢曰:「何其畏也!」孔子曰:「夫通達之國皆人也,以道導之,則吾畜也;不以道導之,則吾讎也,若何而毋畏?」
子貢이 孔子께 백성을 다스리는 법을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썩은 새끼줄로 달리는 말을 다루는 것처럼 조심하고 두려워해야 된다.”
자공이 또 여쭈었다. “어찌 그렇게 두려운 것입니까?” 공자께서 다시 일러주셨다. “四通八達의 國都는 도처에 모두 사람이니 道義로 그들을 인도하면 나를 좋아하고, 도의로 인도하지 않으면 나를 원수로 여길 것이니 어떻게 두렵지 않겠느냐?”
8. 夫短綆不可以汲深井,知鮮不可以與聖人言
齊桓公謂管仲曰:「吾欲舉事於國,昭然如日月,無愚夫愚婦皆曰善,可乎?」仲曰:「可。然非聖人之道。」桓公曰:「何也?」對曰:「夫短綆不可以汲深井,知鮮不可以與聖人言,慧士可與辨物,智士可與辨無方,聖人可與辨神明;夫聖人之所為,非眾人之所及也。民知十己,則尚與之爭,曰不如吾也,百己則疵其過,千己則誰而不信。是故民不可稍而掌也,可并而牧也;不可暴而殺也,可麾而致也;眾不可戶說也,可舉而示也。」
齊 桓公이 管仲에게 말했다. “나는 국내에서 일을 처리하되 마치 日月처럼 밝게 하여 어리석은 남자와 여자 할 것 없이 다들 ‘잘한다.’라고 말하게 하고 싶은데 가능하겠소?”
관중이 말했다. “가능합니다. 그러나 聖人의 도리는 아닙니다.” 환공이 말했다. “무엇 때문이오?” 관중은 대답하였다.
“짧은 두레박줄로는 깊은 샘물을 길어올릴 수 없고, 知識이 적은 사람은 聖人과 말할 수가 없습니다. 聰明한 사람은 함께 사물을 변별할 수 있고, 智慧로운 사람은 함께 한정 없는 사물을 변별할 수 있으며, 聖人은 함께 神明을 변별할 수 있습니다. 성인이 하는 일은 일반 사람이 미치지 못합니다. 일반 사람은 남이 자기보다 열 배 나은 것을 알면 오히려 그와 다투면서 ‘나보다 못하다.’라 하고, 자기보다 백 배 나은 것을 알면 그의 허물을 들추어내며, 자기보다 천 배 나으면 대답만 하고는 믿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일반 사람은 칭찬하여 상을 줄 수 없습니다. 모두 합병하여 관리할 수는 있으나 폭력을 행사하여 죽일 수는 없으며, 지휘하여 불러 쓸 수는 있으나 많은 사람을 집집마다 설득할 수는 없으니, 일의 정황을 들어 보여주어야 합니다.”
9. 去民之所事,奚獄之所聽?兵革之不陳,奚鼓之所鳴?
衛靈公問於史曰:「政孰為務?」對曰:「大理為務,聽獄不中,死者不可生也,斷者不可屬也,故曰:大理為務。」少焉,子路見公,公以史言告之,子路曰:「司馬為務,兩國有難,兩軍相當,司馬執枹以行之,一鬥不當,死者數萬,以殺人為非也,此其為殺人亦眾矣,故曰:司馬為務。」少焉,子貢入見,公以二子言告之,子貢曰:「不識哉!昔禹與有扈氏戰,三陳而不服,禹於是修教一年而有扈氏請服,故曰:去民之所事,奚獄之所聽?兵革之不陳,奚鼓之所鳴?故曰:教為務也。」
衛 靈公이 史鰌에게 물었다. “정치에는 무엇을 가장 힘써야 되지요?” 사추가 대답하였다. “司法에 가장 힘써야 합니다. 재판의 판결이 公正하지 않으면 죽은 사람은 다시 살릴 수가 없고, 四肢가 잘린 사람은 다시 이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법에 가장 힘써야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잠시 뒤에 子路가 靈公을 뵈었는데 영공이 사추가 한 말을 말해주자 자로는 말했다. “軍政에 가장 힘써야 합니다. 두 나라에 전쟁이 일어나 두 나라의 군대가 서로 대치하면 司馬가 북채를 잡고 진격시켜야 되는데, 한 번의 전투에서 당해내지 못하면 수만 명이 죽게 됩니다. 사람을 죽이는 일이 잘못된 것이라면 이것은 수많은 사람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군사 문제에 가장 힘써야 된다고 말한 것입니다.”
잠시 뒤에 子貢이 들어와 뵈었는데 영공이 두 사람이 한 말을 말해주자 자공은 말했다. “저들은 識見이 없군요. 옛날 禹王과 有扈氏가 전쟁할 때 세 차례 공격했으나 복종하지 않았는데, 우왕이 1년 동안 敎化를 시행하자 유호씨가 복종하겠다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싸울 일을 없애면 무슨 訟事를 판결할 일이 있으며, 武器를 늘어놓지 않으면 무슨 진격하는 북을 울릴 일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교화에 가장 힘써야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10. 公知獄訟之不正,故與之耳,請退而修政
齊桓公出獵,逐鹿而走入山谷之中,見一老公而問之曰:「是為何谷?」對曰:「為愚公之谷。」桓公曰:「何故?」對曰:「以臣名之。」桓公曰:「今視公之儀狀,非愚人也,何為以公名?」對曰:「臣請陳之,臣故畜牛生子而大,賣之而買駒,少年曰:『牛不能生馬。』遂持駒去。傍鄰聞之,以臣為愚,故名此谷為愚公之谷。」桓公曰:「公誠愚矣,夫何為而與之?」桓公遂歸。明日朝,以告管仲,管仲正衿再拜曰:「此夷吾之愚也,使堯在上,咎繇為理,安有取人之駒者乎?若有見暴如是叟者,又必不與也,公知獄訟之不正,故與之耳,請退而修政。」孔子曰:「弟子記之,桓公,霸君也;管仲,賢佐也;猶有以智為愚者也,況不及桓公管仲者也。」
齊 桓公이 사냥을 나가 사슴을 쫓아 산골짜기 안으로 들어갔다가 한 노인을 만나서 물었다. “이곳을 무슨 골짜기라고 하오?” 노인은 대답했다. “愚公골짜기라고 합니다.” 환공은 다시 물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부르오?” 노인은 대답했다. “저 때문에 이렇게 부릅니다.” 환공은 다시 물었다. “지금 그대의 모습을 보니 어리석은 사람이 아닌데 무엇 때문에 그대의 이름으로 命名하였다는 것이오?”
노인은 대답하였다. “臣이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신은 원래 어미 소를 한 마리 길렀는데 송아지를 낳아 크게 자랐기에 송아지를 팔아서 망아지를 한 마리 샀습니다. 그랬더니 少年이 말하기를 ‘소는 망아지를 낳지 못한다.’ 하고는 마침내 망아지를 끌고 가버렸습니다. 이웃 사람들이 이 일을 듣고는 저를 어리석다고 여겼기 때문에 이 골짜기의 이름을 愚公골짜기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환공은 말했다. “그대는 참으로 어리석구려. 무엇 때문에 망아지를 주었단 말이오?” 환공이 마침내 돌아와서 이튿날 아침에 이 일을 管仲에게 말해주었다. 관중은 옷깃을 여미고 두 번 절을 하면서 말했다. “이것은 저 夷吾가 어리석어서 생긴 일입니다. 만일 堯 같은 聖君이 위에 계시고 咎繇 같은 분이 法을 맡아 다스렸다면 어떻게 남의 망아지를 빼앗아가는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만일 이 노인처럼 능멸을 당하는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주지 않을 것입니다. 愚公은 訟事의 판결이 공정하지 못함을 알았기 때문에 망아지를 주고 말았을 뿐이니, 저는 물러가서 정치하는 도리를 밝게 닦겠습니다.”
이 말을 들은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제자들아, 기록하라. 桓公은 霸業을 이룬 군주이고 管仲은 훌륭한 보좌이건만 도리어 지혜로움을 가지고도 어리석은 사람이 되었는데, 더구나 환공과 관중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겠느냐!”
11. 夫一仞之牆,民不能踰,百仞之山,童子升而遊焉,陵遲故也
魯有父子訟者,康子曰:「殺之!」孔子曰:「未可殺也。夫民不知子父訟之不善者久矣,是則上過也;上有道,是人亡矣。」康子曰:「夫治民以孝為本,今殺一人以戮不孝,不亦可乎?」孔子曰:「不孝而誅之,是虐殺不辜也。三軍大敗,不可誅也;獄訟不治,不可刑也;上陳之教而先服之,則百姓從風矣,躬行不從而后俟之以刑,則民知罪矣;夫一仞之牆,民不能踰,百仞之山,童子升而遊焉,陵遲故也!今是仁義之陵遲久矣,能謂民弗踰乎?詩曰:『俾民不迷!』昔者君子導其百姓不使迷,是以威厲而不至,刑錯而不用。」於是訟者聞之,乃請無訟。
魯나라에 父子간에 訴訟을 벌이는 사람이 있었는데, 康子가 “죽이라.”고 말했다. 이에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죽여서는 안 됩니다. 백성들이 부자간에 소송하는 일이 좋지 않은 것임을 모른 지 오래되었으니, 이는 윗사람의 잘못입니다. 윗사람이 道義가 있었다면 이런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강자는 다시 말했다. “백성을 다스리는 일은 孝道로 근본을 삼아야 되니 만일 不孝한 것 때문에 한 사람을 죽인다면 옳지 않겠습니까?”
공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가르치지 않고 죽이면 이는 無辜한 사람을 虐殺하는 것입니다. 三軍이 크게 패배했다 하여 그들을 죽일 수 없고, 訴訟을 잘못 판결했다 하여 그 사람을 刑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윗사람이 가르침을 베풀면서 자신이 먼저 실행하면 백성들은 바람에 풀이 쓰러지듯이 따를 것입니다. 윗사람이 몸소 실행하는데도 백성들이 따르지 않거든 그런 뒤에 형벌로 대비하고 있으면 백성들이 자기의 죄를 알 것입니다. 한 길 되는 담을 사람들은 넘지 못하지만 백 길이나 되는 산을 어린아이가 올라가서 노는 것은 경사가 완만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仁義가 쇠퇴한 지 오래되었으니 백성들에게 넘지 말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詩經》에 ‘백성들이 미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하였으니, 예전에 君子는 그의 백성을 인도하여 미혹하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威嚴이 있어도 미치게 하지 않았고, 刑罰을 버려두고 쓰지 않았습니다.” 이리하여 소송하는 사람이 이 말을 듣고는 소송을 않겠다고 요청하였다.
12. 未見其子富而父母貧者也
魯哀公問政於孔子,對曰:「政有使民富且壽。」哀公曰:「何謂也?」孔子曰:「薄賦斂則民富,無事則遠罪,遠罪則民壽。」公曰:「若是則寡人貧矣。」孔子曰:「詩云:『凱悌君子,民之父母』,未見其子富而父母貧者也。」
魯 哀公이 孔子께 정치에 대하여 묻자, 공자는 대답하셨다. “정치란 백성들을 富裕하고 長壽하게 하는 데 달려 있습니다.”
그러자 哀公이 말했다. “어떻게 해야 된다는 말씀입니까?” 공자는 대답하셨다. “세금을 적게 거두면 백성이 부유해지고, 일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백성이 죄를 범하는 데에서 멀어지게 되니, 죄를 범하는 데에서 멀어지면 백성들이 장수하게 됩니다.” 애공은 다시 말했다. “이렇게 하면 寡人이 가난해집니다.”
공자는 이렇게 해명하셨다. “《詩經》에 ‘화락한 군자여! 백성의 부모일세.’라 하였으니, 그 아들이 부유한데 부모가 가난한 사람은 보지 못했습니다.”
13. 王國富民,霸國富士;僅存之國,富大夫;亡道之國,富倉府
文王問於呂望曰:「為天下若何?」對曰:「王國富民,霸國富士;僅存之國,富大夫;亡道之國,富倉府;是謂上溢而下漏。」文王曰:「善!」對曰:「宿善不祥。是日也,發其倉府,以賑鰥、寡、孤、獨。」
文王이 呂望(太公)에게 물었다. “천하를 어떻게 다스려야 합니까?”
여망이 대답하였다. “王道로 다스리는 나라는 백성이 부유하고, 霸道로 다스리는 나라는 武士가 부유하고, 겨우 존재하는 나라는 大夫가 부유하며, 無道한 나라는 국가의 창고만 부유하니, 이를 일러 윗사람은 재물이 넘치고 아랫사람은 물이 새듯이 아무것도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문왕이 말했다. “좋은 말이오.” 그러자 여망은 다시 대답하였다. “좋은 일인 줄 알면서 묵혀두고 행하지 않으면 좋지 않습니다.” 그날로 창고를 열어서 홀아비‧과부‧고아‧자식 없는 노인을 구제하였다.
14. 利之而勿害,成之勿敗,生之勿殺,與之勿奪,樂之勿苦,喜之勿怒
武王問於太公曰:「治國之道若何?」太公對曰:「治國之道,愛民而已。」曰:「愛民若何?」曰:「利之而勿害,成之勿敗,生之勿殺,與之勿奪,樂之勿苦,喜之勿怒,此治國之道,使民之誼也,愛之而已矣。民失其所務,則害之也;農失其時,則敗之也;有罪者重其罰,則殺之也;重賦斂者,則奪之也;多徭役以罷民力,則苦之也;勞而擾之,則怒之也。故善為國者遇民,如父母之愛子,兄之愛弟,聞其饑寒為之哀,見其勞苦為之悲。」
武王이 太公에게 물었다.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은 어떠해야 합니까?” 태공이 대답하였다.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은 백성을 사랑하는 것일 뿐입니다.” 무왕이 다시 물었다. “백성을 어떻게 사랑해야 합니까?”
태공이 대답했다. “이롭게 하고 해롭게 하지 말며, 成功하게 하고 失敗하게 하지 말며, 살게 하고 죽이지 말며, 필요한 물품을 주고 빼앗지 말며, 즐겁게 해주고 괴롭게 하지 말며, 기쁘게 해주고 怒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이고 백성을 부리는 적절한 도리이니 백성을 사랑하는 것일 뿐입니다. 백성이 本業을 잃으면 해롭게 하는 것이고 농사지을 때를 잃으면 실패하게 하는 것이며, 죄 있는 사람에게 무거운 형벌을 내리면 죽이는 것이고 세금을 무겁게 부과하면 빼앗는 것이며, 徭役을 많게 하여 백성의 힘을 피곤하게 하면 괴롭히는 것이고 피로하게 하고서 소란하게 하면 노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라를 잘 다스리는 사람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처럼, 형이 아우를 사랑하는 것처럼 백성을 대우하여 굶주리고 추위에 떤다는 말을 들으면 안타깝게 여기고 勞苦하는 것을 보면 슬퍼하는 것입니다.”
15. 賞賜不加於無功,刑罰不施於無罪,不因喜以賞,不因怒以誅
武王問於太公曰:「賢君治國何如?」對曰:「賢君之治國,其政平,其吏不苛,其賦斂節,其自奉薄,不以私善害公法,賞賜不加於無功,刑罰不施於無罪,不因喜以賞,不因怒以誅,害民者有罪,進賢舉過者有賞,後宮不荒,女謁不聽,上無婬慝,下不陰害,不幸宮室以費財,不多觀游臺池以罷民,不彫文刻鏤以逞耳目,宮無腐蠹之藏,國無流餓之民,此賢君之治國也。」武王曰:「善哉!」
武王이 太公에게 물었다. “賢明한 君主는 나라를 어떻게 다스립니까?” 태공이 대답하였다.
“현명한 군주가 나라를 다스릴 적에 정치는 公平하고 관리는 苛酷하지 않으며 세금 징수는 절제하고 자신을 받드는 비용은 적게 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것 때문에 국가의 法을 해치지 아니하여 공로가 없는 사람에게 상을 내리지 않고 죄 없는 사람에게 형벌을 시행하지 않으며, 기쁨 때문에 상을 주지 않고 노여움 때문에 죽이지 않습니다. 백성을 해친 자는 죄를 주고 어진 이를 추천하거나 잘못을 적발한 자는 상을 내리며, 後宮의 荒淫에 빠지지 않고 寵愛하는 여인의 請託을 따르지 않습니다. 윗사람은 邪惡한 행위가 없고 아랫사람은 남을 陰害하지 않으며, 宮室을 화려하게 꾸미기 위해 재물을 허비하지 않고 遊興을 위한 누대나 연못을 많이 만들어 백성을 피곤하게 하지 않으며, 눈과 귀를 즐겁게 하기 위해 화려한 조각을 하지 않고 官衙에 썩거나 좀이 먹는 물건이 없으며, 나라 안에 떠돌아다니며 굶주리는 백성이 없어야 합니다. 이것이 현명한 군주가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입이다.” 말을 듣고 난 무왕은 말하였다. “훌륭한 말입니다.”
16. 為國而數更法令者,不法法,以其所善為法者也;故令出而亂
武王問於太公曰:「為國而數更法令者何也?」太公曰:「為國而數更法令者,不法法,以其所善為法者也;故令出而亂,亂則更為法,是以其法令數更也。」
武王이 太公에게 물었다. “나라를 다스리면서 여러 차례 法令을 바꾸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태공이 대답하였다. “나라를 다스리면서 여러 차례 법령을 바꾸는 것은 법령을 법령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니, 자기가 좋게 여기는 것으로 법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법령이 나오면 昏亂해지고 혼란해지면 법령을 고쳐 만드는 것이니, 이 때문에 법령을 여러 차례 고치는 것입니다.”
17. 如臨深淵,如履薄冰
成王問政於尹逸曰:「吾何德之行而民親其上?」對曰:「使之以時而敬順之,忠而愛之,布令信而不食言。」王曰:「其度安至?」對曰:「如臨深淵,如履薄冰。」王曰:「懼哉!」對曰:「天地之間,四海之內,善之則畜之,不善則讎也;夏、殷之臣,反讎桀、紂而臣湯、武,夙沙之民,自攻其主而歸神農氏。此君之所明知也,若何其無懼也?」
成王이 尹逸에게 政治에 대해 물었다. “내가 무슨 德을 시행하여야 백성들이 윗사람을 친근히 하겠소?” 윤일이 대답했다. “백성을 때에 맞게 부리고 恭敬하여 따르며 忠心으로 사랑하며 반포하는 命令을 믿게 하여 약속한 말을 어기지 않아야 합니다.” 성왕이 다시 말했다. “그 정도는 어디까지로 해야 합니까?” 윤일이 대답하였다. “깊은 연못가에 도달한 듯, 얇은 얼음을 밟은 듯이 조심해야 합니다.” 성왕이 다시 말했다. “두렵군요!” 윤일이 대답했다.
“天地 사이와 四海 안의 백성을 잘 대해주면 기뻐하고, 잘 대해주지 않으면 怨讐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夏나라와 殷나라의 백성이 도리어 桀王과 紂王을 원수로 여기어 湯王과 武王에게 臣服하였고, 夙沙國의 백성이 스스로 그의 임금을 공격하여 神農氏에게 귀순하였으니, 이는 임금께서도 분명히 아시는 일입니다. 어찌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18. 吾欲長有國,吾欲列都之得
仲尼見梁君,梁君問仲尼曰:「吾欲長有國,吾欲列都之得,吾欲使民安不惑,吾欲使士竭其力,吾欲使日月當時,吾欲使聖人自來,吾欲使官府治,為之奈何?」仲尼對曰:「千乘之君,萬乘之主,問於丘者多矣,未嘗有如主君問丘之術也,然而盡可得也。丘聞之,兩君相親,則長有國;君惠臣忠,則列都之得;毋殺不辜,毋釋罪人,則民不惑;益士祿賞,則竭其力;尊天敬鬼,則日月當時;善為刑罰,則聖人自來;尚賢使能,則官治。」梁君曰:「豈有不然哉!」
仲尼께서 梁君을 만나셨는데 양군이 중니께 물었다. “나는 길이 이 나라를 보유하며, 나는 여러 都城을 얻으며, 나는 백성이 안정되어 미혹되지 않도록 하며, 나는 士人들이 그들의 능력을 다하도록 하며, 나는 日月이 때에 맞게 運行하도록 하며, 나는 聖人이 스스로 찾아오게 하며, 나는 官府가 잘 다스려지게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중니께서 대답하셨다. “千乘의 諸侯와 萬乘의 天子가 저 丘에게 묻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임금처럼 저 丘에게 그 방법을 세세히 묻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두 다 이룰 수가 있는 일입니다. 저 丘는 들으니, 이웃의 두 임금과 서로 친하면 길이 나라를 보유하고, 임금은 은혜를 베풀고 신하는 충성하면 여러 都城을 얻고, 죄 없는 사람을 죽이지 않으며 죄 있는 사람을 놓아주지 않으면 백성이 미혹되지 않고, 士人에게 祿俸과 賞을 더 많이 주면 그들의 능력을 다하게 되고, 하늘을 尊崇하고 귀신을 恭敬하면 日月이 때에 맞게 운행하고, 刑罰을 꼭 맞게 잘 집행하면 성인이 저절로 오고, 어진 이를 존경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임용하면 官府가 잘 다스려질 것입니다.” 다 듣고 난 뒤, 양군이 말하였다. “어찌 그렇지 않겠습니까?”
19. 察此三者之所欲,政其同乎哉!
子貢曰:「葉公問政於夫子,夫子曰:『政在附近來遠』,魯哀公問政於夫子,夫子曰:『政在於諭臣』。齊景公問政於夫子,夫子曰:『政在於節用』。三君問政於夫子,夫子應之不同,然則政有異乎?」孔子曰:「夫荊之地廣而都狹,民有離志焉,故曰在於附近而來遠。哀公有臣三人,內比周公以惑其君,外障諸侯賓客以蔽其明,故曰政在諭臣。齊景公奢於臺榭,淫於苑囿,五官之樂不解,一旦而賜人百乘之家者三,故曰政在於節用,此三者政也,詩不云乎:『亂離斯瘼,爰其適歸』,此傷離散以為亂者也,『匪其止共,惟王之邛』,此傷姦臣蔽主以為亂者也,『相亂蔑資,魯莫惠我師』,此傷奢侈不節以為亂者也,察此三者之所欲,政其同乎哉!」
子貢이 孔子께 여쭈었다. “葉公이 夫子께 政治에 대하여 묻자, 부자께서는 ‘정치는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은 歸附하게 하고 먼 곳에 사는 사람은 스스로 오게 하는 데 달려 있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魯 哀公이 부자께 정치에 대하여 묻자, 부자께서는 ‘정치는 신하를 가려 뽑는 데 달려 있다.’ 하셨습니다. 또 齊 景公이 부자께 정치에 대하여 묻자, 부자께서는 ‘정치는 支出을 절약하는 데 달려 있다.’ 하셨습니다. 세 君主가 부자께 정치에 대하여 물었는데, 부자께서 대답하신 말씀은 다 같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정치는 각각 다른 것입니까?”
공자께서 설명하셨다. “楚[荊]나라는 땅은 넓은데 都市는 협소하여 백성들의 마음이 흩어져 있다. 그래서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은 귀부하게 하고 먼 곳에 사는 사람은 스스로 오게 하는 데 달려 있다고 하였다. 哀公은 세 사람의 신하가 있어서 안으로는 作黨하여 임금을 미혹시키고 밖으로는 諸侯들이 보내는 賓客을 막아서 임금의 聰明을 가리고 있다. 그래서 정치는 신하를 가려 뽑는 데 달려 있다고 하였다. 齊 景公은 樓臺와 亭子를 사치스럽게 짓고 苑囿에서 향락에 빠져서 五官의 즐거움을 게을리 하지 않고 하루아침에 百乘의 벼슬을 받은 사람이 셋이나 된다. 그래서 정치는 지출을 절약하는 데 달려 있다고 하였다. 이 세 가지는 다 정치하는 방법이니, 《詩經》에 이렇게 말하지 않았더냐? ‘난리를 만나 고통스러우니, 내 어디로 가야 하나?’라고 하였으니, 이는 흩어져서 혼란하게 된 것을 슬퍼한 것이다. 또 ‘맡은 職分을 수행하지 않는지라, 왕을 근심스럽게 하네.’라 하였으니, 이는 奸臣이 임금의 총명을 가려 혼란을 일으킨 일을 슬퍼한 것이다. 또 ‘혼란한 세상을 만나 재물이 없어졌건만, 우리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는 사람이 없구나.’ 하였으니, 이는 사치하여 재물을 절약하지 않아 혼란을 일으킨 일을 슬퍼한 것이다. 이 세 임금의 慾望을 관찰하면 정치하는 방법이 같겠느냐?”
20. 吾已閉心矣!何閉於門哉?
公儀休相魯,魯君死,左右請閉門,公儀休曰:「止!池淵吾不稅,蒙山吾不賦,苛令吾不布,吾已閉心矣!何閉於門哉?」
公儀休가 魯나라의 재상이 되었을 때 노나라 임금이 죽었는데 측근들이 대문을 잠그자고 요청하자 공의휴는 말했다.
“그만두시오. 나는 못에서 나오는 이익에 세금을 징수하지 않았고 蒙山에서 나오는 이익에 세금을 부과하지 않았으며, 가혹한 法令을 반포하지 않았소. 나는 이미 私心을 닫고 욕심을 버렸는데 무엇 때문에 문을 닫는단 말이오.”
21. 內政毋出,外政毋入。夫衣裘之不美,車馬之不飾,子女之不潔,寡人之醜也;國家之不治,封疆之不正,夫子之醜也
子產相鄭,簡公謂子產曰:「內政毋出,外政毋入。夫衣裘之不美,車馬之不飾,子女之不潔,寡人之醜也;國家之不治,封疆之不正,夫子之醜也。」子產相鄭,終簡公之身,內無國中之亂,外無諸侯之患也;子產之從政也,擇能而使之:馮簡子善斷事,子太叔善決而文,公孫揮知四國之為而辨於其大夫之族姓,變而立至,又善為辭令,裨諶善謀,於野則獲,於邑則否,有事乃載裨諶與之適野,使謀可否,而告馮簡子斷之,使公孫揮為之辭令,成乃受子太叔行之,以應對賓客,是以鮮有敗事也。
子産이 鄭나라에서 재상 노릇을 할 때 簡公이 자산에게 말했다.
“宮中에 관한 일은 밖에 내어다 처리하지 말고, 궁중 밖의 政務는 궁중에 들여서 처리하지 마시오. 衣服이 아름답지 못함과 車馬가 잘 꾸며지지 않은 것과 子女의 品行이 高潔하지 않은 것은 寡人의 수치가 될 것이오. 國家가 잘 다스려지지 못함과 領土의 경계가 바르게 지켜지지 못함은 그대의 수치가 될 것이오.”
자산이 정나라의 재상이 되어 간공이 죽을 때까지 안으로는 國內에 혼란한 사태가 없었고, 밖으로는 諸侯가 침입하는 환난이 없었다. 자산이 정사를 처리할 때 賢能한 사람을 뽑아서 일을 시켰다.
馮簡子는 큰일의 결단을 잘하고, 子太叔은 판결을 잘하면서 文辭가 있고, 公孫揮는 사방 諸侯國의 정황을 알며 게다가 그 나라 大夫의 가족 성씨와 관직‧작위와 재능 따위를 명백히 알고 또 外交의 應對를 잘하였다. 裨諶은 계책을 잘 내었는데 野外에서 계책을 세우면 딱 들어맞고 북적대는 邑에서 계책을 세우면 맞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으면 비심을 수레에 태우고 함께 야외에 가서 계책의 可否를 정하여 풍간자에게 말해주어 결단하고 공손휘에게 외교의 응대를 정하게 하였다. 이것이 완성되면 마침내 자태숙에게 주고 집행하여 外國의 賓客을 응대하게 하였다. 이 때문에 실패하는 일이 드물었다.
22. 忠、信、敢
董安于治晉陽,問政於蹇老,蹇老曰:「曰忠、曰信、曰敢。」董安于曰:「安忠乎?」曰:「忠於主。」曰:「安信乎?」曰:「 信於令。」曰:「安敢乎?」曰:「敢於不善人。」董安于曰:「此三者足矣。」
董安于가 晉陽을 다스릴 때 蹇老에게 政治하는 방법을 묻자, 건로는 말했다. “忠과 信과 敢이라는 것이오.”
동안우는 다시 말했다. “어떻게 하는 것이 忠이오?” 건로는 대답했다. “임금에게 忠誠하는 것이지요.” 동안우는 다시 물었다. “어떻게 하는 것이 信이오?” 건로는 대답했다. “政令을 백성들이 믿게 하는 것이지요.” 동안우는 다시 물었다. “어떻게 하는 것이 敢이오?” 건로는 대답했다. “나쁜 사람을 제거하는 데 과감히 하는 것이지요.” 이에 동안우는 말했다. “이 세 가지면 충분합니다.”
23. 人始入官,如入晦室,久而愈明,明乃治,治乃行
魏文侯使西門豹往治於鄴,告之曰:「必全功成名布義。」豹曰:「敢問全功成名布義為之奈何?」文侯曰:「子往矣!是無邑不有賢豪辨博者也,無邑不有好揚人之惡,蔽人之善者也。往必問豪賢者,因而親之;其辨博者,因而師之;問其好揚人之惡,蔽人之善者,因而察之,不可以特聞從事。夫耳聞之不如目見之,目見之不如足踐之,足踐之不如手辨之;人始入官,如入晦室,久而愈明,明乃治,治乃行。」
魏 文侯가 西門豹를 鄴에 보내 다스리게 하고 당부했다. “반드시 완전한 功을 세우고 좋은 이름을 이루며 道義를 펼치시오.” 서문표는 말했다. “감히 여쭙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완전한 공을 세우고 좋은 이름을 이루며 도의를 펼칠 수 있습니까?” 문후는 말해주었다.
“그대는 가시오. 어느 고을이건 어질고 호걸스럽고 말 잘하고 博識한 사람이 없지 않소. 또 어느 고을이건 남의 나쁜 점을 들추어내고 남의 좋은 점을 은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지 않소. 그곳에 가거든 반드시 어질고 호걸스런 사람을 물어서 그대로 친근히 지내고 말 잘하고 박식한 사람은 그대로 스승으로 삼으며, 남의 나쁜 점을 들추어내고 남의 좋은 점을 은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물어서 그대로 자세히 살펴야 하고 단지 소문만 듣고 일을 처리해서는 안 되오. 귀로 듣는 것은 눈으로 직접 보느니만 못하고, 눈으로 보는 것은 발로 밟아 經驗하느니만 못하며, 발로 밟아 경험하는 것은 손으로 자세히 辨別하는 것만 못한 것이오. 사람이 처음 벼슬길에 들어가는 것은 마치 어두운 방에 들어가는 것과 같아서 오래되어야 더욱 밝게 보게 되니, 밝게 보아야 다스리게 되고 다스려야 위에서 말한 목표를 실행할 수 있다오.”
24. 我之謂任人,子之謂任力;任力者固勞,任人者固佚。
宓子賤治單父,彈鳴琴,身不下堂而單父治。巫馬期亦治單父,以星出,以星入,日夜不出,以身親之,而單父亦治。巫馬期問其故於宓子賤,宓子賤曰:「我之謂任人,子之謂任力;任力者固勞,任人者固佚。」人曰宓子賤,則君子矣,佚四肢,全耳目,平心氣而百官治,任其數而已矣。巫馬期則不然,弊性事情,勞煩教詔,雖治猶未至也。
宓子賤이 單父를 다스릴 때 그저 琴만 타고 몸이 公堂에서 내려오지 않았는데도 선보가 잘 다스려졌다. 巫馬期도 선보를 다스릴 때 별이 지지 않은 새벽에 나오고 별이 뜨는 저녁에 들어가 밤낮으로 쉬지 않고 몸소 일을 처리하였는데 선보가 역시 잘 다스려졌다. 무마기가 복자천에게 그 까닭을 묻자, 복자천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나의 방법은 남에게 맡겼다는 것이고, 그대의 방법은 자기의 힘에 맡겼다는 것이니, 자기의 힘에 맡긴 사람은 본래 疲困하고, 남에게 맡긴 사람은 본래 便安한 것이지요.”
사람들은 이렇게 평하였다. “복자천은 君子라서 온몸이 편안하고 귀와 눈이 온전하며 心氣가 평안하면서도 모든 관리들이 잘 다스려졌으니, 다스리는 規律에 맡겼을 뿐이다. 무마기는 그렇지 않아서 性情을 損傷시키고 고달프게 직접 敎化하였으니, 다스려지기는 하였으나 그래도 지극한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다.”
25. 夫舉賢者,百福之宗也,而神明之主也
孔子謂宓子賤曰:「子治單父而眾說,語丘所以為之者。」曰:「不齊父其父,子其子,恤諸孤而哀喪紀。」孔子曰:「善小節也小民附矣,猶未足也。」曰:「不齊也,所父事者三人,所兄事者五人,所友者十一人,」孔子曰:「父事三人,可以教孝矣;兄事五人,可以教弟矣;友十一人,可以教學矣。中節也,中民附矣,猶未足也。」曰:「此地民有賢於不齊者五人,不齊事之,皆教不齊所以治之術。」孔子曰:「欲其大者,乃於此在矣。昔者堯、舜清微其身,以聽觀天下,務來賢人,夫舉賢者,百福之宗也,而神明之主也,不齊之所治者小也,不齊所治者大,其與堯、舜繼矣。」
孔子께서 宓子賤에 말씀하셨다. “자네가 單父를 다스릴 적에 모든 사람들이 즐거워하였다 하니 나 丘에게 그렇게 된 원인을 말해보게.” 복자천은 대답했다. “저 不齊는 남의 아버지를 제 아버지처럼 섬기고 남의 자식을 제 자식처럼 사랑하며 모든 고아를 위로하여 돕고 喪事를 당하면 슬퍼하였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좋기는 하나 이는 작은 사항이라, 일반 백성들만 따를 것이니 아직 부족하다.”
복자천은 다시 말했다. “저 不齊는 아버지처럼 섬긴 이가 세 사람이고, 형처럼 섬긴 이가 다섯 사람이며, 벗으로 대한 이가 열한 사람입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아버지처럼 섬긴 이가 세 사람이면 孝를 가르칠 수 있고, 형처럼 섬긴 이가 다섯 사람이면 友愛를 가르칠 수 있으며, 벗으로 대한 이가 열한 사람이면 學問을 가르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중간 정도의 사항이라, 중간 정도의 사람이 따를 것이니 아직 부족하다.”
복자천은 또 말했다. “이곳의 백성 중에 저 不齊보다 어진 이가 다섯 사람이 있어서 저 부제가 섬기니 모두들 저 부제에게 다스리는 방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큰일을 하기를 원한 것이 바로 여기에 있다. 예전에 堯‧舜이 자기의 몸을 청렴하게 하고 낮추어 천하의 일을 듣고 관찰하여 賢人이 오게 하는 데 힘썼다. 어진 이를 등용하는 것은 모든 福을 얻는 근본이고, 神明에 이르는 主體이다. 不齊가 다스리는 곳이 單父처럼 작은 고을이니, 부제가 다스리는 곳이 천하처럼 컸으면 堯‧舜의 다스림을 이었을 것이다.”
26. 毋迎而距也,毋望而許也;許之則失守,距之則閉塞
宓子賤為單父宰,辭於夫子,夫子曰:「毋迎而距也,毋望而許也;許之則失守,距之則閉塞。譬如高山深淵,仰之不可極,度之不可測也。」子賤曰:「善,敢不承命乎!」
宓子賤이 單父의 수령이 되어 孔子께 하직 인사를 하자, 공자는 다음과 같이 당부하셨다.
“맞이하고서 마구 拒絶하지 말며, 바라보고서 마구 許諾하지 말아야 된다. 마구 허락하면 지켜야 할 原則을 잃게 되고, 마구 거절하면 아랫사람의 實情이 막히게 된다. 비유하면 마치 높은 산과 깊은 연못 같아서 우러러보아도 다 볼 수 없고 헤아려보아도 헤아릴 수 없다.” 복자천은 말했다. “좋은 말씀이니, 감히 가르침을 받들지 않겠습니까!”
27. 若存若亡,若食若不食者,魴也,其為魚也博而厚味
宓子賤為單父宰,過於陽晝曰:「子亦有以送僕乎?」陽晝曰:「吾少也賤,不知治民之術,有釣道二焉,請以送子。」子賤曰:「釣道奈何?」陽晝曰:「夫扱綸錯餌,迎而吸之者也,陽橋也,其為魚薄而不美;。」宓子賤曰:「善。」於是未至單父,冠蓋迎之者交接於道,子賤曰:「車驅之,車驅之。」夫陽晝之所謂陽橋者至矣,於是至單父請其耆老尊賢者而與之共治單父。
宓子賤이 單父의 수령이 되어 陽晝를 방문하여 말했다. “그대도 나를 餞送하며 해줄 말이 있소?” 양주는 말했다. “내가 어릴 적에 微賤하여 백성을 다스리는 방법은 알지 못하지만 낚시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이걸로 그대를 전송하려고 하오.” 복자천은 물었다. “낚시하는 방법은 어떻게 하는 것이오?” 그러자 양주는 말했다.
“낚시줄에 미끼를 꿰어 물에 드리우면 바로 미끼를 무는 것은 陽橋라는 물고기입니다. 그 물고기는 살이 적고 맛이 좋지 않지요.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으며 미끼를 문 것 같기도 하고 물지 않은 것 같기도 한 것은 魴魚라는 물고기입니다. 그 물고기는 살이 두텁고 맛이 좋습니다.”
복자천은 말하였다. “좋은 말이오.” 이렇게 하여 길을 떠나 아직 선보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官服을 입고 수레를 타고 맞이하는 官吏들이 길에 이어져 있었다. 복자천은 말했다. “수레를 빨리 몰아라. 수레를 빨리 몰아라. 양주가 말한 양교라는 물고기가 오는구나!” 그렇게 하여 선보에 도착하여 德望이 많은 老人과 尊貴하고 어진 이를 초청하여 그들과 함께 선보를 다스렸다.
28. 自吾之仕,未有所亡而所得者三
孔子兄子有孔蔑者,與宓子賤皆仕,孔子往過孔蔑,問之曰:「自子之仕者,何得、何亡?」孔蔑曰:「自吾仕者未有所得,而有所亡者三,曰:王事若襲,學焉得習,以是學不得明也,所亡者一也。奉祿少鬻,鬻不足及親戚,親戚益疏矣,所亡者二也。公事多急,不得弔死視病,是以朋友益疏矣,所亡者三也。」孔子不說,而復往見子賤曰:「自子之仕,何得、何亡也?」子賤曰:「:始誦之文,今履而行之,是學日益明也,所得者一也。奉祿雖少鬻,鬻得及親戚,是以親戚益親也,所得者二也。公事雖急,夜勤,弔死視病,是以朋友益親也,所得者三也。」孔子謂子賤曰:「君子哉若人!君子哉若人!魯無君子也,斯焉取斯?」
孔子 형의 아들에 孔蔑이란 사람이 있어서 宓子賤과 함께 벼슬하고 있었다. 공자께서 공멸이 있는 곳을 방문하시어 물으셨다. “네가 벼슬을 한 이후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느냐?”
공멸은 대답했다. “제가 벼슬한 이래로 얻은 것은 없고 잃은 것이 세 가지입니다. 公務가 옷을 껴입은 듯 쌓였으니 배운 것을 어떻게 익히겠습니까? 이 때문에 배운 것을 밝게 터득하지 못하였으니, 첫 번째 잃은 것입니다. 받는 祿俸이 적어서 멀건 죽도 親戚에게 공급하기 부족하여 친척들이 더욱 멀어졌으니, 두 번째 잃은 것입니다. 급히 처리할 공무가 많아서 죽은 이를 弔喪하고 병든 이를 問病하지 못하여 이 때문에 벗들이 더욱 멀어졌으니, 세 번째 잃은 것입니다.”
공자는 이 말을 듣고 기쁘지 아니하여 가서 복자천을 보고 물으셨다. “자네가 벼슬을 한 이후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느냐?”
복자천은 대답하였다. “제가 벼슬한 이래로 잃은 것은 없고 얻은 것이 세 가지입니다. 전에 읽었던 글을 지금 이행하여 시행하니 이 때문에 배운 것이 더욱 밝아졌으니, 첫 번째 얻은 것입니다. 받는 녹봉이 적기는 하지만 멀건 죽이라도 친척들에게 공급하여 이 때문에 친척들이 더욱 친해졌으니, 두 번째 얻은 것입니다. 급히 처리할 공무가 많기는 하나 밤에도 부지런히 죽은 이를 조상하고 병든 이를 문병하여 이 때문에 벗들이 더욱 친해졌으니, 세 번째 얻은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공자는 복자천에게 말씀하셨다. “君子로구나, 이 사람은. 군자로구나, 이 사람은. 魯나라에 군자가 없었다면 어디서 이런 德을 얻었겠는가!”
29. 屬託不行,貨賂不至,陂池之魚,以利貧民,當此之時,民無飢者,而君反以罪臣
晏子治東阿三年,景公召而數之曰:「吾以子為可,而使子治東阿,今子治而亂,子退而自察也,寡人將加大誅於子。」晏子對曰:「臣請改道易行而治東阿,三年不治,臣請死之。」景公許之。於是明年上計,景公迎而賀之曰:「甚善矣!子之治東阿也。」晏子對曰:「前臣之治東阿也,屬託不行,貨賂不至,陂池之魚,以利貧民,當此之時,民無飢者,而君反以罪臣. 今臣之後治東阿也,屬託行,貨賂至,並會賦斂,倉庫少內,便事左右,陂池之魚,入於權家。當此之時,饑者過半矣,君乃反迎而賀臣,愚不能復治東阿,願乞骸骨,避賢者之路,再拜便辟。」景公乃下席而謝之曰:「子強復治東阿;東阿者,子之東阿也,寡人無復與焉。」
晏子가 東阿를 다스린 지 3년이 되었을 때 齊 景公이 불러서 죄를 꾸짖었다. “내가 그대를 가능하다고 생각하여 그대를 보내 동아를 다스리게 하였는데, 지금 그대가 다스리면서 어지러워졌으니 그대는 물러나 스스로 살펴보시오. 寡人이 그대에게 큰 벌을 내릴 것이오.”
안자는 대답하였다. “臣은 다스리는 방법을 바꾸어 동아를 다스려보겠으니, 3년이 되어도 다스려지지 않거든 신은 죽음을 요청하겠습니다.” 경공은 이를 허락하였다. 이렇게 하여 이듬해에 다스린 결과를 보고하자, 경공은 안자를 맞이하여 祝賀하여 말했다. “그대가 동아를 다스린 결과가 매우 좋군요.”
이에 안자는 대답했다. “전번에 신이 동아를 다스릴 적에는 請託도 행해지지 않고 賂物도 오지 않았으며, 못의 물고기로 얻는 利益은 가난한 백성들이 차지하였습니다. 이때에는 굶주리는 백성이 없었는데 임금께서는 도리어 신에게 죄를 주셨습니다. 현재 신이 다음번에 동아를 다스릴 적에는 청탁이 횡행하고 뇌물이 들어오며, 게다가 稅金을 더 많이 징수하고 國庫에 들어오는 수입은 감소되었으며, 임금의 측근을 阿諂으로 섬기고 못의 물고기로 얻는 이익은 모두 權勢 있는 집에 들어갔습니다. 이때에는 굶주리는 사람이 반을 넘었는데 임금께서는 도리어 신을 맞이하면서 축하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신은 다시는 동아를 다스리지 못하겠으니, 辭職하고 고향에 돌아가서 어진 이의 진출할 길을 비켜주고 싶습니다.” 그러고는 두 번 절하고 바로 자리를 떠났다. 경공은 곧 자리에서 내려와 사과하였다. “그대는 다시 힘써 동아를 다스리시오. 동아는 그대의 것이니, 과인은 다시 간여하지 않을 것이오.”
30. 恭以敬,可以攝勇;寬以正,可以容眾;恭以潔,可以親上
子路治蒲,見於孔子曰:「由願受教。」孔子曰:「蒲多壯士,又難治也。然吾語汝,恭以敬,可以攝勇;寬以正,可以容眾;恭以潔,可以親上。」
子路가 蒲를 다스리려고 할 적에 孔子를 뵙고 말했다. “저 由는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蒲에는 壯士가 많고 또 다스리기 어렵다. 그러나 내 너에게 말해주마. 일을 恭遜하고 恭敬하게 하면 勇猛한 사람을 두렵게 하고, 너그럽고 바르게 하면 많은 사람을 包容하며, 공손하고 潔白하게 하면 윗사람과 親近해질 수 있다.”
31. 夫以不肖伐賢,是謂奪也;以賢伐不肖,是謂伐也;緩其令,急其誅,是謂暴也;取人善以自為己,是謂盜也。君子之盜,豈必當財幣乎?
子貢為信陽令,辭孔子而行,孔子曰:「力之順之,因子之時,無奪無伐,無暴無盜。」子貢曰:「賜少日事君子,君子固有盜者邪!」孔子曰:「夫以不肖伐賢,是謂奪也;以賢伐不肖,是謂伐也;緩其令,急其誅,是謂暴也;取人善以自為己,是謂盜也。君子之盜,豈必當財幣乎?吾聞之曰:知為吏者奉法利民,不知為吏者,枉法以侵民,此皆怨之所由生也。臨官莫如平,臨財莫如廉,廉平之守,不可攻也。匿人之善者,是謂蔽賢也;揚人之惡者,是謂小人也;不內相教而外相謗者,是謂不足親也。言人之善者,有所得而無所傷也;言人之惡者,無所得而有所傷也。故君子慎言語矣,毋先己而後人,擇言出之,令口如耳。」
子貢이 信陽令이 되어 孔子께 하직인사를 하고 떠날 적에 공자께서 당부하여 말씀하셨다.
“힘써서 하고 順理대로 하며 天時를 따르고 强制로 빼앗지 말며 武力으로 討伐하지 말고 사납게 굴지 말며 도둑질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자 자공은 말했다. “저 賜가 어릴 적부터 君子를 섬겼는데 군자도 본래 도둑질하는 일이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不肖한 사람으로 어진 이를 공격하는 것을 ‘빼앗는다[奪]’ 이르고, 이진 이로 불초한 사람을 공격하는 것을 ‘친다[伐]’ 이르고, 命令은 느슨하게 해놓고 誅殺하기를 긴급히 하는 것을 ‘사납다[暴]’ 이르고, 남의 잘하는 것을 가져다가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을 ‘도둑질[盜]’이라 이른다. 군자의 도둑질이 어찌 꼭 財物에만 해당되겠느냐? 나는 들으니 관리 노릇하는 도리를 아는 자는 法을 奉行하여 백성을 이롭게 하고, 관리 노릇하는 도리를 모르는 자는 법을 歪曲하여 백성의 이익을 侵害한다고 하였다. 그러니 이것은 백성의 모든 怨望이 따라 일어나는 것이다. 관리가 되어서는 公平보다 더 나은 것은 없고 재물을 대해서는 淸廉보다 더 나은 것이 없으니, 청렴하고 공평을 지키는 사람은 공격할 수가 없다. 남이 잘하는 것을 숨기는 것을 ‘어진 이를 가린다[蔽賢]’ 이르고, 남의 나쁜 점을 들춰내는 것을 ‘小人’이라 이르고, 내면으로는 서로 訓戒하지 않고 외부에서 誹謗하는 자를 ‘친하지 못할 사람’이라 이른다. 남이 잘하는 일을 말하는 사람은 나에게 얻는 것은 있고 잃는 것은 없으며, 남의 나쁜 일을 말하는 사람은 나에게 얻는 것은 없고 잃는 것만 있다. 그래서 君子는 말을 愼重히 하는 것이니, 자기를 앞세우고 남을 뒤에 두지 말며, 잘 골라 말하여 말하는 입과 듣는 귀가 일치하도록 하라.”
32. 將治大者不治小,成大功者不小苛
楊朱見梁王,言治天下如運諸掌然,梁王曰:「先生有一妻一妾不能治,三畝之園不能芸,言治天下如運諸手掌何以?」楊朱曰:「臣有之,君不見夫羊乎,百羊而群,使五尺童子荷杖而隨之,欲東而東,欲西而西;君且使堯牽一羊,舜荷杖而隨之,則亂之始也。臣聞之,夫吞舟之魚不遊淵,鴻鵠高飛不就汙池,何則?其志極遠也。黃鐘大呂,不可從繁奏之舞,何則?其音疏也。將治大者不治小,成大功者不小苛,此之謂也。」
楊朱가 梁王을 만나 말했다. “天下를 다스리는 일은 마치 物件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움직이는 것처럼 쉽습니다.” 양왕은 대꾸하였다. “한 명의 아내와 한 명의 첩이 있으나 그도 다스리지 못하고 3畝의 園地가 있으나 그곳의 풀도 매지 못하면서 천하를 다스리는 일은 물건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움직이는 것처럼 쉽다고 하니, 무슨 말이오?”
양주는 대답하였다. “臣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임금께서는 양 치는 일을 보지 못했습니까? 백 마리쯤 되는 양떼를 키가 다섯 자밖에 안 되는 어린아이에게 막대기를 메고 따르게 하여 동쪽으로 가고 싶으면 동쪽으로, 서쪽으로 가고 싶으면 서쪽으로 가게 할 수 있습니다. 임금께서 만일 堯에게 양 한 마리만 끌게 하고 舜에게 막대기를 메고 따르게 하면 昏亂이 시작될 것입니다. 신은 들으니, 배를 삼킬 만한 큰 물고기는 연못에서는 헤엄치지 않고, 鴻鵠은 높이 날 때 웅덩이 근처에는 내려앉지 않는다 합니다. 이는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그 뜻이 지극히 遠大하기 때문입니다. 黃鐘과 大呂는 번잡한 춤을 따라 연주할 수 없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그 音節이 느리고 크기 때문입니다.
큰 일을 다스리려는 사람은 작은 일은 다스리지 않고, 큰 功을 세우는 사람은 자질구레한 일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하니, 이를 가리켜 한 말입니다.
(* 苛 : 가혹하다. 번거롭다)
33.
景差相鄭,鄭人有冬涉水者,出而脛寒,後景差過之,下陪乘而載之,覆以上衽,晉叔向聞之曰:「景子為人國相,豈不固哉!吾聞良吏居之三月而溝渠修,十月而津梁成,六畜且不濡足,而況人乎?」
景差가 鄭나라 宰相이었을 때 정나라 사람 중에 겨울에 물을 건넌 사람이 물에서 나와 종아리가 시려 떨고 있었다. 조금 뒤에 경차가 그곳을 지나다가 陪乘을 내리게 한 뒤 그를 태우고 겉옷을 벗어 덮어주었다.
晉나라 叔向이 그 所聞을 듣고 말하였다. “景子는 남의 國相이 되었는데 어찌 固陋하지 않은가! 나는 들으니, 훌륭한 관리는 국상의 자리에 있으면, 3개월이면 도랑을 수리하고 10개월이면 나루와 다리를 완성하여 六畜도 발에 물을 적시지 않게 한다는데, 하물며 사람이랴?”
34. 奪淫民之祿以來四方之士
魏文侯問李克曰:「為國如何?」對曰:「臣聞為國之道,食有勞而祿有功,使有能而賞必行,罰必當。」文侯曰:「吾嘗罰皆當而民不與,何也?」對曰:「國其有淫民乎?臣聞之曰:奪淫民之祿以來四方之士;其父有功而祿,其子無功而食之,出則乘車馬衣美裘以為榮華,入則修竽琴、鍾石之聲而安其子女之樂,以亂鄉曲之教,如此者奪其祿以來四方之士,此之謂奪淫民也。」
魏 文侯가 李克에게 물었다. “나라는 어떻게 다스리는 것이오?” 이극은 대답했다. “臣은 들으니,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은 수고한 사람은 밥을 먹여주고 功勞가 있는 사람은 祿俸을 주며, 能力 있는 사람은 부리되 賞을 줄 경우는 반드시 시행하고 罰을 줄 경우는 반드시 합당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문후는 물었다. “나는 상과 벌을 모두 합당하게 시행하는데 백성들이 따르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이오?”
이극은 대답했다. “나라에 놀면서 享樂을 탐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신은 들으니 ‘놀면서 향락을 탐하는 사람의 녹봉을 빼앗아 그걸로 四方의 人材를 오게 하면 된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국가에 공로가 있어서 녹봉을 받으면 그의 아들은 아무 공로도 없이 이를 누리면서 외출할 때는 車馬를 타고 좋은 갓옷을 입어 榮華로 여기며, 집에 들어와서는 악기를 연주하여 음악 소리를 들으면서 子女들과 편안한 즐거움을 누려 鄕里의 敎化를 어지럽힙니다. 이와 같은 자는 그 녹봉을 빼앗아 그걸로 사방의 인재를 오게 해야 되니, 이것이 놀면서 향락을 탐하는 사람의 녹을 빼앗는다는 것입니다.”
35. 左右為社鼠,用事者為猛狗,則道術之士不得用矣,此治國之所患也
齊桓公問管仲曰:「國何患?」管仲對曰:「患失社鼠。」桓公曰:「何謂也?」管仲對曰:「夫社束木而塗之,鼠因往託焉,燻之則恐燒其木,灌之則恐敗其塗,此鼠所以不可得殺者,以社故也。夫國亦有社鼠,人主左右是也;內則蔽善惡於君上,外則賣權重於百姓,不誅之則為亂,誅之則為人主所察,據腹而有之,此亦國之社鼠也。人有酤酒者,為器甚潔清,置表甚長而酒酸不售,問之里人其故,里人云:『公之狗猛,人挈器而入,且酤公酒,狗迎而噬之,此酒所以酸不售之故也。』夫國亦有猛狗,用事者也;有道術之士,欲明萬乘之主,而用事者迎而齕之,此亦國之猛狗也。左右為社鼠,用事者為猛狗,則道術之士不得用矣,此治國之所患也。」
齊 桓公이 管仲에게 물었다. “나라를 다스리는 데 무엇을 걱정해야 되는지요?” 관중이 대답하였다. “祠堂에 사는 쥐를 걱정해야 됩니다.” 환공은 다시 물었다. “이 말은 무슨 뜻이오?”
관중은 대답하였다. “사당은 나무를 묶고 흙을 발라 만들어서 쥐가 거기에 의탁해 살고 있습니다. 불로 지지자니 나무가 탈까 걱정되고 물을 부어 쫓자니 바른 흙이 무너질까 걱정됩니다. 이 쥐를 잡아 죽이지 못하는 까닭은 그곳이 사당이기 때문입니다. 나라에도 사당의 쥐 같은 사람이 있으니, 바로 임금의 측근에 있는 사람이 이것입니다. 안으로는 임금이 善惡을 분별하지 못하게 聰明을 가리고, 밖으로는 백성에게 자기가 가지고 있는 權力을 팔아먹습니다. 이들을 죽이지 않으면 禍亂을 일으키고 죽이려고 하면 임금이 이들의 의지가 되어 감싸 길러주니, 이들 역시 나라의 사당에 사는 쥐 같은 존재입니다.
술을 파는 사람이 있어서 술그릇을 깨끗이 닦고 술집을 표시하는 깃발을 길게 걸었으나 술이 팔리지 않아 쉬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에게 술이 팔리지 않는 까닭을 묻자, 마을 사람은 이렇게 일러주었습니다. ‘당신 집의 개가 사나워서 사람이 그릇을 지니고 들어가 당신의 술을 사려고 하면 개가 먼저 맞이하여 물어버리니, 이것이 술이 쉬어지도록 팔리지 않는 까닭이오.’라 하였습니다. 나라에도 사나운 개가 있으니 바로 權力을 장악한 자입니다. 道德과 學問이 있는 사람이 萬乘의 帝王에게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를 밝히고자 하되 권력을 장악한 자가 먼저 맞이하여 물어버리니 이 역시 나라의 사나운 개입니다.
측근의 신하는 사당의 쥐가 되고 권력을 장악한 자는 사나운 개가 되면 도덕과 학문이 있는 사람은 등용되지 못할 것이니, 이것이 나라를 다스리는 데 걱정해야 될 일입니다.”
36. 善言進,則不善無由入矣;不進善言,則善無由入矣
齊侯問於晏子曰:「為政何患?」對曰:「患善惡之不分。」公曰:「何以察之?」對曰:「審擇左右,左右善,則百僚各得其所宜而善惡分。」孔子聞之曰:「此言也信矣,善言進,則不善無由入矣;不進善言,則善無由入矣。」
齊侯가 晏子에게 물었다. “政治를 할 때 무엇을 걱정해야 하오?” 안자는 대답했다. “善한 사람과 惡한 사람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을 걱정해야 합니다.” 公이 다시 물었다.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어떻게 살펴야 하오?”
안자는 대답했다. “측근을 자세히 살펴 가려야 되니 측근이 선하면 百官이 각기 알맞은 職務를 얻게 되어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구분될 것입니다.”
孔子는 이 말을 듣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말이 명확하구나. 한 사람을 등용하면 선하지 못한 사람이 들어올 길이 없고, 선한 사람을 등용하지 않으면 선한 사람이 들어올 길이 없게 된다.”
37. 循口操衿抑心
復槁之君朝齊,桓公問治民焉,復槁之君不對,而循口操衿抑心,桓公曰:「與民共甘苦饑寒乎?」「夫以我為聖人也,故不用言而諭。」因禮之千金。
復槀의 임금이 齊나라에 朝見하였는데 齊 桓公이 백성을 다스린 실정을 물었다. 복고의 임금은 대답을 하지 않고 입을 쓰다듬으며 옷깃을 잡고 가슴을 눌렀다. 환공은 말했다. “즐거움과 괴로움, 굶주림과 추위를 백성들과 함께했다는 것인가? 저 사람은 나를 聖人으로 여겼기 때문에 말을 하지 않아도 내가 이해한다고 여기는구나!” 그러고는 千金을 禮物로 주었다.
38. 地廣而不平,人將平之;財聚而不散,人將爭之
晉文公時,翟人有封狐、文豹之皮者,文公喟然嘆曰:「封狐文豹何罪哉?以其皮為罪也。」大夫欒枝曰:「地廣而不平,財聚而不散,獨非狐豹之罪乎?」文公曰:「善哉!說之。」欒枝曰:「地廣而不平,人將平之;財聚而不散,人將爭之。」於是列地以分民,散財以賑貧。
晉 文公 때에 翟人 중에 큰 여우 가죽과 표범 가죽을 바친 자가 있었다. 文公이 한숨을 쉬고 탄식하면서 말했다. “큰 여우와 표범은 무슨 죄가 있겠나! 좋은 가죽 때문에 죄가 된 것이지.”
그러자 大夫 欒枝가 말했다. “땅이 넓은데도 고루 分配하지 않고 財物이 모였는데도 흩어주지 않으면 어찌 여우와 표범이 당한 죄와 같지 않겠습니까?” 문공은 말했다. “훌륭하구나. 그 말이.”
그러자 난지는 다시 말했다. “땅이 넓은데도 고루 분배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고른 분배를 요구할 것이고, 재물이 모였는데도 흩어주지 않으면 백성들이 爭奪하려고 할 것입니다.” 이에 땅을 分割하여 백성들에게 나누어주고 재물을 흩어서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였다.
39. 上得地而民知富,上失地而民知貧
晉文侯問政於舅犯,舅犯對曰:「分熟不如分腥,分腥不如分地;割以分民而益其爵祿,是以上得地而民知富,上失地而民知貧,古之所謂致師而戰者,其此之謂也。」
晉 文侯가 舅犯에게 政治에 대하여 묻자, 구범은 대답하였다. “익힌 음식을 나누어주는 것이 날곡식을 나누어주는 것만 못하고, 날곡식을 나누어주는 것이 땅을 나누어주는 것만 못하니, 땅을 쪼개 백성에게 나누어주고 그들의 爵祿을 늘려주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임금이 땅을 얻으면 백성은 자기들도 富裕해질 것을 알고, 임금이 땅을 잃으면 자기들도 가난해질 것을 알게 됩니다. 예전에 이른바 용감히 도전하여 싸웠다는 것은, 바로 이런 방법을 이르는 것입니다.”
40. 政有三而已:一曰因民,二曰擇人,三曰從時
晉侯問於士文伯曰:「三月朔,日有蝕之,寡人學惛焉,詩所謂:『彼日而蝕,于何不臧』者,何也?」對曰:「不善政之謂也;國無政不用善,則自取謫於日月之災,故不可不慎也。政有三而已:一曰因民,二曰擇人,三曰從時。」
晉侯가 士文伯에게 물었다.
“3월 초하루에 日蝕이 일어났는데 寡人은 學問이 흐려서 이해하지 못하겠소. 《詩經》에서 ‘이 일식을 함이여, 어찌하여 좋지 못한가?’라고 한 것은 무엇 때문이오?”
사문백은 대답하였다. “政治를 잘하지 못한 것을 이른 것입니다. 나라에 좋은 정치가 없고 좋은 사람을 등용하지 않으면 스스로 日月의 견책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치를 신중히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정치에는 세 가지 중요한 것이 있을 뿐이니, 첫째는 백성의 뜻을 따르고, 둘째는 어진 이를 가려서 쓰고, 셋째는 天時를 따르는 것입니다.”
41. 吾立其朝,君能視而不下問,其臣善伐而不上諫,吾是以知其國之亂也。
延陵季子游於晉,入其境曰:「嘻,暴哉國乎!」入其都曰:「嘻,力屈哉,國乎!」立其朝曰:「嘻,亂哉國乎!」從者曰:「夫子之入境未久也,何其名之不疑也?」延陵季子曰:「然,吾入其境田畝荒穢而不休,雜增崇高,吾是以知其國之暴也。吾入其都,新室惡而故室美,新牆卑而故牆高,吾是以知其民力之屈也。吾立其朝,君能視而不下問,其臣善伐而不上諫,吾是以知其國之亂也。
延陵季子가 晉나라를 유람할 적에 國境에 들어가서는 “아, 暴惡하구나! 이 나라는.” 이라 하고, 都城에 들어가서는 “아, 民力이 다했구나! 이 나라는.” 이라 하고, 朝廷에 들어가 서서는 “아, 어지럽구나! 이 나라는.” 이라고 하였다. 그러자 시종하는 사람이 물었다. “선생님께서 晉나라 경내에 들어오신 지 오래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전혀 의심도 없이 이렇게 평가하십니까?”
연릉계자는 대답했다. “그렇다. 내가 이 나라의 국경에 들어왔더니, 農土가 거칠게 묵었는데도 김을 매지 않아 잡초가 번성하여 크게 자랐기에 나는 이 때문에 이 나라가 포악한 줄을 알았다. 내가 도성에 들어갔더니 새로 지은 집은 열악한데 옛날에 지은 집은 아름답고, 새로 친 담은 낮은데 예전에 친 담은 높으니, 나는 이 때문에 이 나라의 민력이 다한 줄을 알았다. 내가 이 나라의 조정에 서보니 임금은 臣下를 보기만 하고 신하들에게 묻지 않으며, 신하들은 자기의 자랑만 하고 임금에게 諫言을 올리지 않으니, 나는 이 때문에 이 나라가 어지러운 줄을 알았다.”
42. 齊之所以不如魯也,太公之賢不如伯禽也
齊之所以不如魯者,太公之賢不如伯禽,伯禽與太公俱受封,而各之國三年,太公來朝,周公問曰:「何治之疾也?」對曰:「尊賢,先疏後親,先義後仁也。」此霸者之跡也。周公曰:「太公之澤及五世。」五年伯禽來朝,周公問曰:「何治之難?」對曰:「親親者,先內後外,先仁後義也。」此王者之跡也。周公曰:「魯之澤及十世。」故魯有王跡者,仁厚也;齊有霸跡者,武政也;齊之所以不如魯也,太公之賢不如伯禽也。
齊나라가 魯나라보다 못한 것은 太公의 賢明함이 伯禽보다 못했기 때문이다. 백금과 태공이 함께 封地를 받아 각기 자기 나라에 가서 다스린 지 3년 만에 태공이 天子에게 朝見하러 왔다. 그때 周公이 물었다. “어찌 이렇게 빨리 다스리셨소?”
태공은 대답했다. “어진 이를 尊敬하며, 疏遠한 사람을 먼저 쓰고 친한 사람을 뒤에 쓰며, 道義를 먼저 시행하고 仁德을 뒤에 행하였으니, 이는 霸者의 남긴 자취입니다.” 그러자 주공은 말하였다. “태공의 恩澤은 5代까지 이어지겠구나.”
5년이 지난 뒤에 백금이 朝見하러 오자, 주공이 물었다. “어찌 다스림이 그렇게 어려웠느냐?” 백금은 대답하였다. “자기의 親族을 먼저 친애하며, 안을 먼저 다스리고 밖을 뒤에 다스리며, 仁德을 먼저 행하고 道義를 뒤에 행하였으니, 이는 王者의 남긴 자취입니다.” 이에 주공은 말하였다. “魯나라의 은택은 10代까지 이어지겠구나.”
그래서 노나라에는 仁厚한 王道政治의 자취가 있고, 제나라에는 武事를 힘쓰는 霸道政治의 자취가 있게 되었다. 제나라가 노나라보다 못한 까닭은 태공의 현명함이 백금보다 못했기 때문이다.
43. 猶懸牛首於門而求買馬肉也
景公好婦人而丈夫飾者,國人盡服之,公使吏禁之曰:「女子而男子飾者,裂其衣,斷其帶。」裂衣斷帶相望而不止,晏子見,公曰:「寡人使吏禁女子而男子飾者,裂其衣,斷其帶,相望而不止者,何也?」對曰:「君使服之於內而禁之於外,猶懸牛首於門而求買馬肉也;公胡不使內勿服,則外莫敢為也。」公曰:「善!」使內勿服,不旋月而國莫之服也。
齊 景公이 宮中의 婦女들이 男子처럼 차리는 것을 좋아하니, 나라의 여인들이 모두 남자 옷을 입자 景公이 관리를 시켜 禁止하게 하면서 말하였다. “여자이면서 남자처럼 차린 사람은 그 옷을 찢고 띠를 잘라버리라.” 그러자 옷이 찢기고 띠가 잘린 여자들이 거리에 이어졌는데도 남자의 차림은 금지되지 않았다.
晏子가 경공을 뵙자 경공이 물었다. “寡人이 관리를 시켜 여자이면서 남자처럼 차린 것을 금지하여 그 옷을 찢고 그 띠를 잘라버리라고 하였더니, 옷이 찢기고 띠가 잘린 여자들이 거리에 이어졌는데도 금지되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이오?”
안자는 대답하였다. “임금께서 宮內의 여자들은 입게 하시고 宮外의 여자들은 금지하시니, 이는 마치 門에 소머리를 달아놓고 말고기를 팔려는 것과 같습니다. 公께서는 어찌 궁내의 여자들부터 입지 말도록 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시면 궁외 사람은 감히 하지 못할 것입니다.”
경공은 “좋은 말씀이오.” 하고는 궁내에서 남자차림의 옷을 입지 말게 하자, 한 달이 안 되어 나라 안에 남자 옷을 입는 여자가 없었다.
44. 故化其心莫若教也
齊人甚好轂擊相犯以為樂,禁之不止,晏子患之,乃為新車良馬出與人相犯也,曰:「轂擊者不祥,臣其察祀不順,居處不敬乎?」下車棄而去之,然後國人乃不為。故曰:「禁之以制,而身不先行也,民不肯止,故化其心莫若教也。」
齊나라 사람들이 수레바퀴의 굴대를 서로 부딪치며 즐기는 것을 매우 좋아하여 禁止하여도 그치지 않았다. 晏子가 이를 근심하여 새로 수레 한 채를 만들고 좋은 말이 끌게 하여 몰고 나가 남의 수레와 부딪치게 하고는 말했다.
“수레바퀴의 굴대가 부딪친 것은 祥瑞롭지 못하니, 내가 祭祀를 잘 지내지 못하고 평소의 생활을 恭敬히 하지 못해서 생긴 일인가 보다.”
그러고는 수레에 내려서 수레를 버리고 가버렸다. 그러고 난 뒤에 나라 사람들이 마침내 수레바퀴 굴대를 부딪치며 즐기는 일을 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금지하여 억제하되 몸소 먼저 행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중지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 마음을 感化시키는 데에는 직접 敎化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45. 見小曰明
魯國之法,魯人有贖臣妾於諸侯者,取金於府;子貢贖人於諸侯而還其金,孔子聞之曰:「賜失之矣,聖人之舉事也,可以移風易俗,而教導可施於百姓,非獨適其身之行也。今魯國富者寡而貧者眾,贖而受金則為不廉;不受則後莫復贖,自今以來,魯人不復贖矣。」孔子可謂通於化矣。故老子曰:「見小曰明。」
魯나라의 法令에, 노나라 사람이 諸侯 나라에 臣妾이 된 사람을 贖還하는 일이 있는 경우는 官府에서 贖錢을 수령하게 되어 있다. 子貢이 제후 나라에서 사람을 속환하고 그 속전을 관부에 반납하자, 孔子께서 이를 들으시고 말씀하였다.
“賜(子貢의 이름)는 잘못을 저질렀구나! 聖人은 어떤 일을 처리할 때 風俗을 좋게 바꿀 만하고 백성에게 敎化하여 啓導할 만한 일을 베풀었지, 단지 자기의 몸에만 맞게 행하지는 않았다. 지금 노나라는 富者는 적고 가난한 사람이 많다. 신첩을 속환하면서 관부의 속전을 받으면 淸廉하지 못한 행위가 되고, 받지 않으면 이후로는 다시 속환하는 사람이 없게 된다. 지금 이후로 노나라 사람은 더 이상 속환하지 않을 것이다.”
공자는 神化에 통했다고 이를 만하다. 그 때문에 老子는 “작은 것을 살펴보는 것을 明이라 한다.”라 하였다.
46. 違山十里,蟪蛄之聲猶尚存耳,政事無如膺之矣。
孔子見季康子,康子未說,孔子又見之,宰予曰:「吾聞之夫子曰:『王公不聘不動。』今吾子之見司寇也少數矣。」孔子曰:「魯國以眾相陵,以兵相暴之日久矣,而有司不治,聘我者孰大乎?」於是魯人聞之曰:「聖人將治,何以不先自為刑罰乎?」自是之後,國無爭者。孔子謂弟子曰:「違山十里,蟪蛄之聲猶尚存耳,政事無如膺之矣。」
孔子께서 季康子를 만나려고 하셨는데 계강자가 기쁘게 여기지 않았으나 공자는 다시 만나려고 하셨다. 그러자 宰予가 여쭈었다. “제가 선생님께 들으니 ‘王公이 招聘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선생님께서 司寇를 만나시려는 것이 조금 빈번한 듯합니다.”
그러자 공자는 말씀하였다. “魯나라는 大衆의 힘을 믿고 서로 凌蔑하며 武力을 믿고 서로 暴力을 쓴 지가 오래되었는데도 관리가 이를 다스리지 않는다. 나를 초빙하여 다스리게 하는 일보다 무엇이 더 크겠느냐?”
이에 노나라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말하였다. “聖人이 앞으로 다스리실 것이니 어찌 스스로 먼저 刑罰을 멀리하지 않겠는가?” 이 이후로부터 나라 안에 다투는 일이 없게 되었다. 공자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산에서 10리를 벗어나도 매미 우는 소리가 아직 귀에 남아 있는 법이니, 政事는 백성들이 받아들이게 하는 일보다 나은 것이 없다.”
47. 塗里之間,羅門之羅,收門之魚,獨得於禮
古之魯俗,塗里之間,羅門之羅,收門之魚,獨得於禮,是以孔子善之夫塗里之間,富家為貧者出;羅門之羅,有親者取多,無親者取少;收門之漁,有親者取巨,無親者取小。
옛날 魯나라의 風俗에 塗里의 마을문을 지키는 일과, 羅門의 사냥감을 나누는 방식과, 收門의 잡은 물고기를 나누는 방식만이 禮에 맞았다. 이 때문에 孔子께서 이를 좋다고 여기셨다.
도리의 마을문을 지키는 일은 富裕한 집이 가난한 집을 위해 내었으며, 나문의 사냥감을 나누는 방식은 父母가 있는 사람은 많이 가져 가고 부모가 없는 사람은 적게 가져 가며, 수문의 잡은 물고기를 나누는 방식은 부모가 있는 사람은 큰 것을 가져 가고 부모가 없는 사람은 작은 것을 가져 가는 것이다.
48. 四民均則王道興而百姓寧;所謂四民者,士、農、工、商也。
春秋曰:四民均則王道興而百姓寧;所謂四民者,士、農、工、商也。婚姻之道廢,則男女之道悖,而淫泆之路興矣。
《春秋》에 말했다. “四民이 均等하면 王道가 興盛하고 百姓이 便安해지니, 四民이란 士‧農‧工‧商이다. 婚姻의 禮法이 폐기되면 남녀 사이의 規範이 어그러져서 淫亂하고 放蕩한 풍조가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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