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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토피카

길을 내는 자 흥한다

by 변리사 허성원 2019. 4. 25.

길을 내는 자 흥한다

 

자동차 대기업 회사로부터 강의 요청을 받고 수락을 했다.
강의 날을 며칠 앞두고
담당자가 전화상으로 출입 등록 절차와 주차 위치 등을 친절히 알려주었다.
안내를 받고 나니, 순간 주차와 관련하여 오래전의 별로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서 타사의 차도 내부에 들어갈 수 있는지 물었다.
아니나 다를까 타사 차량의 주차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담당자는 당연히 자기 회사차를 탈 것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그러면서 외부 주차장을 알려주며 그곳에 대고 셔틀로 들어와야 한다고 한다.
나는 즉시 강의를 취소하겠다고 말했다.

5~6년 전 쯤에 그 대기업의 대기업 급 계열사에서 대표이사로 계신 선배의 요청으로 강의를 하러 갔던 적이 있다.

그 때 황당한 취급을 당한 적이 있다.
정문 경비는 그 회사의 모기업에서 제조된 차가 아니라는 이유로 내 차의 입장을 저지하였다.
그럼 어디다 대느냐고 물으니
외부 아무 곳에나 주차를 하고 들어오라고 했다.
그 때 경비의 표정과 태도는.. 여기가 감히 어디라고 타사
차를 타고 들어오려느냐는 모습이었다.
기가 찼다. 그냥 가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선배와 약속과 그 분의 체면 등을 생각하고 바깥 인도 옆에다 개구리 주차를 하고 들어가 강의는 무사히 마쳤다.

두 번 다시 이 따위 회사에는 강의를 하지 않겠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그걸 깜박하고 강의 요청을 덜렁 수락해버렸던 것이다. 담당자의 간곡한 부탁으로 불쾌와 불편을 무릅쓰고 강의를 나가기로 하고, 강의는 무사히 끝냈다.

그런 콱막힌 정책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30년 쯤 전의 기업 환경이라면 수긍할 수 있다.
그 당시에는 비슷비슷한 국내 제조사가
워낙 경쟁이 치열하였으니, 자사의 제품을 하나라도 더 팔고 싶은 욕구가 강하였을 것이고, 들락거리는 대부분의 차량은 외주 협력업체의 것일테니, 아무리 오만하게 강요하여도 먹혀들어갔을 것이다.
당시엔 실제로 그러했다. 외주업체들은 자동차 회사별로 납품 차량을 달리하여 장만해두어야 했다.
그러고 싶지 않아도 수시로 할당하여 강매하거나, 심지어는 납품 대금 대신에
 자동차를 안겨주기도 했었으니까.

시대가 바뀌어도 한참 바뀌었다. 그런데도 저런 정문 출입 갑질을 유지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먼저 '오만'이 떠오른다. 자신들은 수퍼갑의 위치에 있으니 그 회사에 들어오는 외부 사람들은 누구나 그들에게 머리를 조아려야만 생존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그 오만이 얼마나 더 오래 지속될지는 누가 알겠는가.

그리고 무지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자동차는 실제로 우수하다. 내장재나 차량의 기능 등은 세계적인 브랜드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 우리는 항상 그걸 느낀다. 그런데도 세계적인 브랜드들에 비해 적잖이 디스카운트되어 팔리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미묘한 차이점은 비교해서 타본 사람들은 다 안다. 그런데 그 이유를 얼마나 처절하게 알려고 하고 학습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적어도 타사 차량의 정문 출입을 배척하는 모습을 보면 그들은 잘 모르거나 그다지 알려고 애쓰지 않는 듯하다.

강의 자리에 여러 임원들이 참석해 있었다. 나는 강의 중에 그들에게 그 유쾌하지 않은 주차 경험과 함께 감정 섞인 말을 몇 가지 해주었다.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라면 경쟁사들의 차도 잘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엔지니어들이 벤치마킹을 충실히 하고 있겠지만, 왜 외제차들이 더 잘 그리고 더 비싸게 팔리는지 절실히 알고자 한다면, 회사의 임원들은 모두 고급 외제차를 타면서 그들이 우리 것과 얼마나 어떻게 다른지 깊이 체험해봐야 할 거다.
그리고 회사에 타사 차를 타고 들어오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을 더 특별히 대접해야 한다. 그들이 이 회사 차를 사지 않고 다른 차를 사게 된 고객 경험은 얼마나 귀중한 정보가 되겠나? 그리고 그들도 잠재고객이니까 친절히 대해주면 진심 고객이 더 늘어날 수도 있는 거 아니냐?' 등등

그렇게 주제넘은 소리를 떠들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돌궐의 명장 톤유쿠크는 말했다. '길을 내는자 흥하고 성을 쌓는 자 망한다.' 자동차 회사의 배타적 폐쇄적 행태는 성을 쌓는 짓이다. 타사 차량 운전자에 대한 우호적인 태도는 길을 내는 일이다. 어찌 이 훤한 개방과 공유의 시대에 기를 쓰고 길을 내려해도 부족할 텐데, 어찌 성을 쌓아 막으려 하는가?'

그렇게 떠들었더니, 전무 한 분이 대답한다. 자기들도 잘 알고 있다고 하면서, 그걸 개선하려고 해도 노조를 강경하다며 그들 핑계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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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저께 신문 기사를 보니 현대차 임원들이 벤틀리, 롤스로이스 등을 시승했다고 한다. 물론 내가 한 말을 듣고 나서 그들이 통렬히 반성하여 이런 시도를 한 것은 아니겠지만, 이 기사를 보니 생각나서 오래전에 끌적여놨던 글을 다시 꺼내어 수정하고 정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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