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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토피카

조영남의 대작 사기 건 무죄 기사에 부쳐

by 변리사 허성원 2018. 8. 18.

[180818 페이스북 게재]

 

고등학교 때 미술 선생은 화가였다.
국전에서 몇 번 상을 받았대나..

그런데 그 수상 작품들에 대해 진정한 작가는 사실 자신이라고 우기는 친구들이 몇 있었다. 그 중에 나도 포함되어 있었고.
언젠가 그 이야기가 나오니까, 선배와 후배들 중에서도 몇몇이 '그거 사실은 내 작품이었어'라고 이구동성으로 주장했다.
이 글을 보는 선후배들이 있으면 필경 이 글에다 '내가 정말 그 사람이다'라고 댓글을 다는 사람이 있을거다.

그렇게 자신이 작가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그 선생이 자신의 그림을 아이들에게 그리게 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많은 점을 찍어 완성하는 유화인데, 미술 준비를 해오지 않은 학생들을 자기의 작업실로 끌고 가서 그가 원하는 대로 점을 찍게 했다.
나는 집이 시골이어서 등교하는 데에만 근 2시간이 걸렸었고, 미술 준비와 같은 사치를 누릴 수 없었기에, 그 작품활동의 단골 사역병이었다. 그 점 찍는 작업에 숙달되어 나중에는 다른 친구들에게 점찍는 요령을 가르치는 조교노릇까지 하기도 했다.

당시 그림 사역을 하면서 진정으로 진정한 작가가 자신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그저 시키는 대로 주어진 영역에 주어진 색상의 점을 찍는 단순 노동을 한 것으로 밖에 기억하지 않는다.

조영남 사건이 처음 터졌을 때에도 나는 그 생각을 하였다. 화투를 모티브로 한 그의 작품에서 창작적 오리지날리티는 조영남의 것이다. 조영남의 지시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그 구체적인 부분에서 아무리 자신의 화가적 숙련을 발휘했다고 해도, 그는 작가가 될 수 없다. 그저 남의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도구로서 이용된 보조자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조영남과 개인적으로 아무런 친분도 없고 오히려 그의 캐릭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1심 판결에 수긍이 되지 않았다.

항소심에서 내 정서와 같은 판결이 나와서 나름 다행으로 생각한다.

 

"자신의 꿈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남의 꿈을 실현하는 도구가 될 뿐이다."
_ 토니 개스틴스
꿈은 상상력이고, 상상력이 아이디어로서 창의력이다.

 

**

2020년 6월 30일 
 
공유 대상: 전체 공개
 
창작의 의미
조영남 사건을 계기로 '창작'의 의미에 대해 가볍게 생각해본다.
이 사건은
조영남은 다른 작가에게 그리게 한 그림에 일부 덧칠만 하여 수집가들에게 팔았고,
검찰은 자기 창작품이 아닌 것을 자신의 작품인 것처럼 판 것이 사기행위라고 하였으나,
대법원은 조수가 그렸다는 사실을 고지할 의무가 없다고 하여, 조영남이 사기혐의로부터 벗어나게 된 것이 전체 개요이다.
실질적으로는 조수가 그림의 대부분을 그렸기에 그의 창작이 아니라고 본 것이 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창작의 개념을 생각해보자.
창작은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첫째는 내심의 창작 동기 혹은 욕구를 유발시키는 '감수성(상상력)'이다. 창작자의 '감수성'은 남들이 보지 못한 어떤 모티브로부터 자신만의 창의적 개념 즉 아이디어를 관념적으로 구체화하여 표현한다.
둘째는 그 감수성을 실현할 수 있는 '해결역량'이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촉발되더라도 그것을 실제로 구현할 기술적, 경험적 혹은 전문적 역량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끝으로 셋째 요소는 '실행'이다. '실행'이 없다면, '욕구'와 '역량'은 뒷날에 그저'하고 싶었는데' 혹은 '할 수 있었는데'와 같은 회한의 언어를 남길 뿐이다.
이처럼 '창작'은 '감수성(상상력)', '역량' 및 '실행'이라는 3가지 필수요소의 교집합 영역에서 성립된다.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창작은 나올 수 없다.
아무리 아이디어(상상력)가 좋아도 해결역량과 실행 의지도 없으면 몽상꾼에 불과하고, 뛰어난 역량을 가지고 있어도 아이디어가 없으면 남의 하수인으로 살아야 한다. 실행력이 뛰어나도 아이디어나 역량이 없으면 헛된 삽질꾼의 삶이 될 것이다.
보통의 창작자들은 창작의 세 가지 필수 덕목을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일부 요소를 타인들에게 의존하기도 한다. 소위 조수를 써서 작품을 만드는 경우이다. 작가들의 세계에서도 조수를 활용한 창작은 상당 부분 인정되고 있는 듯하다.
조수의 조력은 그 정도에 따라. 조영남 사건과 같이, 창작자의 지위를 위협하여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
그렇다면 창작자가 되려면 최소한 어떤 역할을 하여야 하고, 조수는 어디까지 조력을 하여야 조수의 지위에 머물게 되는가.
우선 '감수성(상상력)'은 창작을 유발시키는 방아쇠이니 조수에게 맡길 수 없다. '감수성(상상력)'은 오로지 작가의 것이어야 적절해보인다. '실행력'은 창작 결과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의지이다. 이 역시 조수의 것이라기보다는 작가에게 귀속되어야 적절하다. 그런데 '역량'은 조수에게 맡기기 매우 적절한 요소이다. 작가는 조수를 지휘하여 작품의 전체 혹은 부분에 그의 역량을 쓰게 할 수 있다. 그 역량이라는 것은 대체로 다른 조수에 의해 대체 가능하기도 하다.
결국, 작가 즉 창작자가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감수성'을 갖추고 '실행력'을 행사하는 주체이어야 할 필요가 있고,
조수라 불리기 위해서는 '작가의 지휘'를 받는 한 기관으로서 오로지 자신의 '역량'만을 제공하는 위치에 머물러야 한다.
이제 조영남 사건을 다시 생각해보자.
조영남이 '창작'의 3가지 필수요소 중 어느 부분을 조수에게 맡겼는가.
그림의 기본 컨셉을 정하여 의뢰하였을 테니, 감수성 즉 아이디어는 조영남에게서 나온 것 같다.
의뢰와 함께 댓가를 지불하여 작품이 만들어지게 하였으니 '실행력'도 조영남의 것이라 보아야한다.
그리고 조수는 의뢰받은 아이디어를 자신의 재능으로 그려 그림을 완성하고 납품을 하였으니, 조영남의 지휘를 받아 조영남의 '역량'을 대신하였다.
따라서 조영남은 창작자로서의 최소한의 필수요소를 수행하였고, 그의 조수는 조수로서의 역할에 머물러 있은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나는 조영남의 창작자 지위는 인정되어야 마땅하고 그는 무죄라고 생각한다.

 

 

** 페이스북 댓글들 중에서..

장진규

변리사가 작성하는 서류(명세서 소장 감정서 등)의 대부분을 스탭이 작성하고 변리사는 리뷰를 보았을 때, 처음 작성방향을 지시하지 않았다면 창작여부가 모호해지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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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성원

창작은 스탭이 한 거지요. 다만 스탭은 직무상 서류 작성 임무가 부여되어 있고, 그 업무 성과물을 제출하여야 하는 의무가 있지요.
저작인격권은 존재할 수 있지만, 저작물을 처분할 수 있는 저작재산권은 사무소에 원천적으로 양도되어 있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개작권, 동일성유지권 등의 저작인격권도.. 우리 업무의 특성상 개인이 주장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니까 별 문제가 안된다고 봐야겠습니다.

      이진수

      허성원 저작권으로 접근하면 스탭의 저작물은 업무저작물로 평가되어 저작권법 제9조에 따라 사용자 명의로 공표되었다면 저작자가 사용자 법인이 되는 것으로 법문화 되어 있기는 합니다. 따라서 직원의 직무상 이루어진 창작물의 저작자(창작자)는 법률상 사용자 법인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업무저작물이 되기 위해서는 사용자관계에 있을 정도로 종속적인 관계에 있어야 하고 위탁용역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류토니

돈으로 실행력을 샀다면 예술품이 제품의 영역으로 진입한 것이 분명한데, 그 제품의 제조 과정 기여도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는 제품이라면 원산지를 밝히듯이 제품 판매 과정에서 기여도를 밝혀주는 과정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법적으로 소명 여부가 없으니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겠지요.

      허성원

류동헌 돈으로 실행력을 샀다기보다는.. 조수의 '역량'을 산 것이지요. 돈으로는 실행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면 되겠습니다.하나 혹은 다수의 조수가 그들의 '역량'을 조력하여 새로운 창작품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건축이나 요리를 생각해보시면 됩니다.
작가의 지시에 따라 일하는 조수들을 각자의 기여도와 함께 공개하는 것은 아름다운 모습일 수는 있어도 당연히 옳은 일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진수

마치 OEM의 법적 책임에서 제조사는 단순한 설계자의 팔다리에 불과하다는 것과 같은 논리인데, "창작"의 경우도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는 것에 생각이 많아집니다. 현대 미술계 관행이 이렇다니 참 그렇네요....창작도 대량생산하는 시대... 앞으로 AI를 이용한 발명의 창작자는 AI 설계자이거나 AI에게 해당 아이디어에 대한 작업을 지시한 자가 될 수도 있겠네요. 머 AI는 인간이 아니니까 그렇다해도 인간의 창작행위는 누가 대신할 수 있는 사실행위도 아닌데...아무튼.. 무엇이 옳고 그름을 떠나 생각이 복잡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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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례와 겹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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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athenae.tistory.com/2333

사냥개의 공과 사람의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