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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천리마리더십156

[허성원 변리사 칼럼]#86 우리는 왜 바르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왜 바르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왜 바르게 살아야 하는가. 이 주제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이 있다.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의 '국가' 제1권에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두고 폴레마르코스와 트라시마코스 등과 논쟁을 벌인다. 케팔로스가 먼저 정의에 대한 논제를 촉발하고 떠나자, 그의 아들 폴레마르코스가 이어받아 '정의란 친구에겐 이익을 주고 적에겐 해악을 주는 것'이라고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그러면 악한 자에게 이득을 주고 선한 자에게 해를 끼치는 일도 발생할 수 있음을 지적하면서, 정의란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폴레마르코스는 즉각 수긍한다. 이어서 트라시마코스가 '정의란 강자의 이익'이라고 하며 논쟁을 이어간다. 그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의사의.. 2022. 10. 25.
[허성원 변리사 칼럼] #84 지불의 고통 지불의 고통 '골프 내기에서 돈을 잃는 건 매우 안 좋은 일이지만, 내기 없는 골프는 더 안 좋은 일이다.' 전 윔블던 챔피언 바비 릭스의 말이다. 적절한 내기는 골프의 즐거움을 더해주는 양념과 같다. 우리 친구들의 모임에서도 홀마다 성적에 따라 1~4천원을 내는 착한 내기를 한다. 적은 돈이지만 모이면 캐디피 정도는 충당할 수 있고, 각자에게 돌아가는 부담도 비교적 고르다. 그런데 이 착한 푼돈 내기도 막상 해보면 더 큰 내기들에 비해 은근히 마음이 불편하여 체감 스트레스가 더 큰 듯하다. 어느 날 댄 애리얼리의 '부의 감각'이라는 책을 보고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바로 '지불의 고통' 때문이다. 사람들은 소비를 위해 돈을 지불할 때 현실의 물리적 통증과 유사한 고통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실제로.. 2022. 10. 3.
[허성원 변리사 칼럼]#85 태도 선택의 자유 태도 선택의 자유 군대 이야기다. 좀 고약한 선임하사가 있었다. 어느 휴일에 무슨 심사 꼬인 일이 있었는지 쉬고 있는 중대원들을 모두 연병장에 집합시켜 얼차려를 주기 시작했다. 축구장의 중앙선에서 한쪽 골대 쪽을 향해 달리게 하고 얼마쯤 가고 있으면 호각을 불어 반대방향으로 달리게 한다. 그렇게 오가는 짓을 반복하게 하면서, 빨리 달리라거나 선착순이라든가 어디까지 가라거나 등의 요구는 없었다. 이유도 모르고 목적도 알 수 없으니, 애써 빨리 달릴 필요도 남보다 멀리 가야 할 동기도 없다. 그렇다고 멈춰 있을 수도 없다. 그저 호각소리에 따라 반사적으로 뛰어야 한다. 얼마 지나고 나자 모두들 중앙선 부근에 몰려 엉거주춤 뛰는 척하고 있었다. 호각 소리는 계속 들려오고, 그 소리가 좀 커졌다 싶으면 조금 더.. 2022. 10. 2.
[허성원 변리사 칼럼]#83 생업인가 직업인가 소명인가 생업인가 직업인가 소명인가 지난 번 칼럼 '조용한 사직'을 본 지인들로부터 반론이 있었다. 그 칼럼에서 '조용한 사직'이 추구하는 소극적인 업무태도는 자신의 ‘일의 의미’를 스스로 버리거나 박탈하며 자해적으로 자존을 파괴하는 노릇이라 했었다. 반론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실제로 많은 직장인들이 그저 먹고살기 위해 꾸역꾸역 직장을 다니고 있고, 우리도 다들 그렇게 살았던 적이 있지 않은가. 먹고사니즘보다 더 중요한 게 어디 있으며, 그것을 넘어 고상한 '일의 의미'를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맞는 말이다. 그런데 되묻고 싶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도 계속 그렇게 살 것인가. 17세기 런던 대화제가 있은 후 당시 최고의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에게 성 바오로 대성당을 재건축하는.. 2022. 9.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