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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과 세상살이/지혜로운삶

파멸당할 수 있을지 몰라도 패배당할 수는 없다

by 변리사 허성원 2017. 8. 2.

파멸당할 수 있을지 몰라도 패배당할 수는 없다

 

_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중에서

 

 

 

늙은 어부 산티아고는 84일간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했다.

85일째가 되던날 자신의 배보다 큰 엄청난 크기의 청새치가 낚시에 걸려든다.

사흘 밤낮의 사투 끝에 낚아 올려 뱃전에 청새치를 매달고 항구로 향한다.

하지만, 피냄새를 맡고 몰려든 상어의 습격을 받아, 이제는 상어떼와 사투를 벌인다. 나이프와 몽둥이도 모두 부러질 정도로 싸웠지만, 청새치는 앙상한 가시만 남는다.

가까스로 항구에 도착한 산티아고는 지친 몸을 침대에 누이고 아무 일도 없던 듯 깊은 잠에 빠져든다.

 

 

 

 

여기서 헤밍웨이는 말한다.

 

"인간은 파멸당할 수 있을 지 몰라도 패배당할 수는 없다"

 

이 말에서,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파멸은 물질적 가치에 관한 것으로서, 소유한 것을 모두 잃게 되는 상황을 말한다. 

패배는 정신적 가치이다. 오로지 본인만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산티아고는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였기에 좌절하지 않는다. 노력하고 도전하는 것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휴식이 끝나면 일어나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것이다.

 

 

 


**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 중에서

수용소 내의 죄수들이 모두 새우등처럼 허리를 굽히고 있는 반면에, 이 노인은 유독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있다. 의자에 앉은 모습을 보니, 의자에 뭘 기대고 앉은 것처럼 꼿꼿하게 앉아 있다.

그는 끝이 다 닳은 나무 수저로 건더기도 없는 국물을 단정한 모습으로 먹는다. 다른 죄수들처럼 국그릇에 얼굴을 처박고 먹는 것이 아니라, 수저를 높이 들고 먹는다.

뼈처럼 굳은 잇몸으로 딱딱한 빵을 먹고 있다. 얼굴에는 생기라고는 하나도 찾을 수가 없다. 그래도 어딘가 당당한 빛이 있다.

출처: https://athenae.tistory.com/1770 [허성원 변리사의 특허와 경영이야기:티스토리]

 

**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