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중에서
솔제니친의 소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중에서 기억해둘 문장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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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 작업>
주인공 슈호프가 속한 반이 벽돌 쌓는 일에 투입된다. 슈호프는 반장과 함께 벽돌을 쌓기로 하고, 다른 사람들은 모르타르를 반죽하여 올려준다. 강추위에 모르타르가 얼어버릴 수 있기에 각 작업조는 손발을 맞춰 신속히 진행해야 한다. 그렇게 은근히 모르타르 팀과 벽돌쌓기 팀의 경쟁이 시작되었다.
"이제 슈호프의 눈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는다. 눈부신 햇살을 받고 있는 눈 덮인 벌판도, 신호를 듣고 몰려나와 작업장을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는 죄수들도, 아침부터 파고 있던 구덩이를 아직껏 파지 못하고 또 그곳으로 걸어가는 죄수들도, 철근을 용접하러 가는 녀석들이며, 수리공장 건물에 마루를 얹으려고 가는 죄수들도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슈호프는 오직, 이제부터 쌓아올릴 벽에만 온 신경을 집중했다." "슈호프와 다른 벽돌공들은 아예 추위도 잊어버렸다. 빨리 일을 하느라고 서두르다 보니 몸에 땀이 다 날 정도로 더워진다. 이것이 첫 번째 더위다. 보온용 덧옷과 겉옷, 그리고 위아래 속옷까지 모두 땀에 젖었다. 그러나 잠시도 쉬지 않고 일을 하는 동안, 두 번째 더위가 온다. 이번에는 젖었던 땀이 마르기 시작한다. 발가락이 시린 것도 잊어버릴 정도다. 이 사실은 아주 중요하다. 다른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바람이 강하게 분다고는 하지만 벽돌 쌓는 일을 방해하지는 못한다."
"반장은 짬짬이 ‘모르~타르!’ 하고 고함을 치곤 한다. 그러면 슈호프도 질세라 '모르~타르!' 하고 고함을 친다. 누구든지 작업을 하면서 주동이 되어 일하는 반원은 그와 한 팀이 된 다른 반원들의 반장이 되어 일하게 되는 법이다. 슈호프는 반장 팀에 뒤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다. 지금 같아서는 친형제라도 불러다 모르타르 통을 나르는 일을 시키고 싶을 정도다." "슈호프는 하늘을 한번 쳐다본다. 어느덧 해가 지고 있다. 잿빛 안개 속으로 붉은빛이 점차 사그라져가고 있다. 오늘은 더이상은 불가능할 정도로 일을 해냈다." " 그런데, 슈호프는 지금 경비대가 군견을 데리고 수색을 하러 나온다 해도 쌓아 놓은 벽을 살펴보지 않고는 그냥 갈 수가 없는 성미다. 그는 몇 걸음 뒤로 물러서서 쑤욱 훑어본다. 그만하면 괜찮다. 이번에 벽을 따라서 왼쪽, 오른쪽을 번갈아 가며 휜 곳이 없나를 살핀다. 그의 눈 한쪽은 수준기나 진배없다. 반듯하다! 솜씨가 예전 그대로다."
그 절망과 죽음의 소용소에서 벽돌공 슈호프와 그 반원들은 신명을 바쳐 혼신의 노력으로 작업에 임한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팀 간의 보이지 않는 경쟁이 있긴 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의 자존감이다. 벽돌공으로서 혹은 반죽공으로의 자기 존재에 대한 그리고 그 행위의 결과에 대한 애정과 존중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슈호프는 작업 시간이 초과하였음에도 마지막까지 철저히 일의 결과를 점검하고 자리를 뜬다. 그러기에 비록 강제 노동이었지만, 그 노동은 잠시나마 그들을 해방시켜 자유를 안겨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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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다움을 지키는 법>
만약 어느 날 내가 내 뜻이 아닌 남의 지시를 반복해서 따라야 살 수 있다면, 더 나아가 죽그릇을 핥으면서라도 살아야 한다면, 나는 과연 그것을 견뎌낼 수 있을 것인가. 견뎌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수용소 내의 죄수들이 모두 새우등처럼 허리를 굽히고 있는 반면에, 이 노인은 유독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있다. 의자에 앉은 모습을 보니, 의자에 뭘 기대고 앉은 것처럼 꼿꼿하게 앉아 있다.」
「그는 끝이 다 닳은 나무 수저로 건더기도 없는 국물을 단정한 모습으로 먹는다. 다른 죄수들처럼 국그릇에 얼굴을 처박고 먹는 것이 아니라, 수저를 높이 들고 먹는다.」
「뼈처럼 굳은 잇몸으로 딱딱한 빵을 먹고 있다. 얼굴에는 생기라고는 하나도 찾을 수가 없다. 그래도 어딘가 당당한 빛이 있다.」
수용소 내에서도 가장 오래 있었다는 노인의 식사 모습이다. 단 한 번의 특사도 없이, 오히려 십 년의 형기가 끝나면 또다시 십 년의 형기가 추가되어 지금까지 살았다는 노인의 모습이다. 단순한 묘사이지만 이 노인의 식사 모습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묘한 감동을 우리에게 준다. 어쩌면 이 감동이 우리가 찾고 있는 ‘비참한 인생을 견디는 방법’의 실마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것이다. ‘인간다움’이란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자신이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농부들은 지독한 흉년 속에서도 다음 해 봄에 뿌릴 씨앗을 먹지 않는다. 인간답게 살 수 없는 비참함 속에서도 마지막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지켜나가는 것, 그것이 비참한 인생을 견디는 유일한 방법임을 수십 년의 세월을 수용소에서 보내고 있는 저 꼿꼿한 노인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인간다움을 포기하는 것, 그것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 강을 건너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전에 한 번만 더 생각해 볼 것을 권유하고 싶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충고의 말을 전하고 싶다.
“삶에 대한 절망 없이는 삶에 대한 희망도 없다.”
이 말은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청각장애자인 어머니와 가난에 힘겨워했고, 그 가난 때문에 영양실조와 폐결핵까지 앓아야 했으나 끝내는 44세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알베르 카뮈’의 충고이다. 카뮈의 충고를 음미하며 열 번째 인생 탐구를 마무리한다.
https://www.ddanzi.com/ddanziNews/740933937
기사 - 책에서 마주친 100개의 인생 10: 소설 수용소의 하루 - 비참한 인생을 견디는 법
지난 기사 (5) 위대한 개츠비 :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인생 (6) 채식주의자 : 브래지어를 벗은 영혜 (7) 노인과 바다 : 파멸하되 패배하지 않는 인생 (8) 그리스인 조르바 : 신을 죽여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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