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다른 해석
임금이 말하기를,“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무슨 말인가?”하니,
이유경이 말하기를,“옛 글을 익혀 새 글을 아는 것을 말합니다.”라고 하자,
임금이 말했다.
“그렇지 않다. 초학자(初學者)는 이렇게 보는 수가 많은데, 대개 옛 글을 익히면 그 가운데서 새로운 의미를 알게 되어 자기가 몰랐던 것을 더욱 잘 알게 된다는 말이다.”
上曰: “溫故知新, 何謂也?”
儒慶曰: “溫故書而知新書之謂也。”
上曰: “不然。 初學之人, 多如此看得, 而蓋謂溫故書, 則知新味於其中, 益知其所不知之謂也。”
_ <朝鮮王朝實錄> 正祖 1年(1777) 2月 1日 丁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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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글은 정조 1년 2월의 경연(經筵)을 기록한 글이다. 경연(經筵)은 학식이 높은 신하가 임금에게 경서를 강독하는 것을 말한다. 이 날의 경연관은 시독관 이재학과 선전관 이유경이었고, 정조가 즉위(1776년 3월)한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정조(1752년생)의 나이 겨우 26살 때의 일이다.
20대의 새파랗게 젊은 신참 임금이 강의를 맡은 비교적 고령이었을 경연관을 가벼이 초보 학자 수준으로 다루면서, 고전에 대한 자신의 새로운 해석을 거침없이 설파한다. 이 글의 앞부분에는 당나라 군대의 연패에 대해 경연관과 논하는 대목이 있는데, 여기서도 경연관들의 부족한 식견을 꾸짖고 자신이 파악한 당나라의 연패 원인을 첫째, 둘째로 꼽아가며 논리정연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정조의 영민한 조리에 시독관 이재학이 “참으로 성교(聖敎)와 같습니다”라고 조아린다.
이 짧은 기록에서 정조의 학문에 대한 열정과 강한 소신, 거침없고 직설적인 성격, 강력한 카리스마 등을 잘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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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는 논어(論語)의 위정편(爲政篇)에 나온다. 이 문구는 학창시절에, 선전관 이유경의 해석과 같이 “옛 것을 알고 새 것을 알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로 해석하여야 한다고 배웠다. 옛 것이나 새 것 어느 한 쪽에만 치우치지 말고, 전통적인 것이나 새로운 것을 고루 알아 신구 지식에 대한 균형을 잘 이루어야만 남의 스승 노릇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에 대해 정조는, 옛 것과 새로운 것의 균형을 유지하여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초학자들이나 하는 말이고, ‘옛 것’을 익히다 보면 그 ‘옛 것’ 속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해석한다.
그런데 어느 해석이든 썩 가슴에 와닿지 않는다. 공자님께서 남의 스승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 규정하여 가르침을 주고자 하신 뜻이 과연 그러할까 의문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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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온고이지신’의 해석에 관련하여 한 가지 의문을 오랫동안 품어왔다 ‘온고이지신’에서 ‘옛 것’의 의미로 ‘옛 고(古)’자가 아닌 ‘까닭 고(故)’가 사용되어 있다. 왜 ‘까닭 고(故)’가 쓰였고 그것을 왜 ‘까닭’이 아닌 ‘옛 것’으로 해석하여야 하는가. 공자께서는 멀쩡히 ‘옛 고(古)’라는 글자가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다른 자를 갖다 써서 후학을 헷갈리게 하셨을까? 어릴 적 한문을 가르쳐주시던 동네 어른에게 그 점을 여쭤본 적이 있다. 물론 속 시원한 답을 듣지 못했다.
정조의 새로운 해석방식을 보게 된 김에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을 내 생각대로 새로이 해석해보았다. 그냥 그 본래의 자의(字意)대로, “까닭(故)을 익혀(溫) 새로운 것(新)을 알다(知)”로 해석하고, 이를 뒷 문장과 함께 풀어서 보면 “'까닭'을 알아내어 새로운 깨달음을 얻어야만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로 적을 수 있다.
‘까닭“이 무엇인가? 모든 결과의 원인이고 이유이며, 나타난 현상의 원리이고, 문제의 근원이기도 하다. 원인, 원리, 근원은 대부분의 경우 사안의 파악이나 해결을 위한 열쇠가 된다. 노자의 '도(道)'나 이기론(理氣論)에서의 '이(理)'가 이에 해당한다.
또한 ‘까닭’은 ‘Why'이며, 이는 ’How'나 ‘What'에 대응하는 개념이다. 'Why'(이유)의 규명은 존재나 행위의 근원적 의미를 파악하는 상위개념적인 접근방법이지만, 'How'(절차)나 'What'(결과)는 방법 혹은 결과 중심적 사고가 추구하는 하위개념적인 접근방법이다. ’Why'를 추구하는 소위 근원적 사고는 손가락이 달을 가리키는 의미를 찾고자 하지만, 'How'적 사고는 그 손가락을 지켜볼 뿐이고, 'What'적 사고는 그저 달을 바라본다.
그래서 스티븐 코비는 "이유(why)를 가진 자는 어떤 목표(what)나 어떤 수단(how)도 감당할 수 있다"고 가르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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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Why)?'를 추구하는 근원적 사고 방법은 모든 창의력의 출발점이다. ‘
왜?’라는 의문이 없는 창조는 존재하지 않는다. ‘왜?’는 기존 지식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그런 도전을 통해 ‘왜?’는 하달식, 주입식 지식 전달을 거부하고 상향적, 창출적, 파괴적 지식을 창조한다. 그리고 ‘왜?’는 문제 해결의 수단이다. 미국 제퍼슨 기념관이나 도요타가 다섯 번의 ’왜?‘(5Why?)라는 질문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 사례는 잘 알려져 있다.
이같이 ‘왜?’를 통한 ‘까닭’의 규명은 필연적으로 많은 외부 지식의 습득과 깊은 사유 과정을 거치게 되며, 그런 과정을 통해 대량의 새로운 지식이 생성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왜?'는 지식의 습득과 새로운 지식의 창출 수단이다.
또한 ‘왜?’는 존재나 행위의 이유 내지는 의미를 나타내며, 궁극적으로는 가치관이나 비전에 연결된다. 가치관이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사람이 남의 스승이 될 리 없고, 비전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국가나 기업이 민심을 얻을 리 없다.
이와 같이 새로운 해석에 따른 ‘온고이지신’은 세상을 보는 사고의 프레임을 원리 중심적, 의미 중심적으로 설정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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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공자께서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라고 하여 가르침을 주시고자 했던 것은
다음과 같은 말씀이었음에 틀림이 없을 것이라고 이 말단 후학이 감히 재해석하여 본다.
(** 이런 발칙한 해석은 공자 이후 2500년 동안 처음일 것으로 여겨진다. 너그러이 보아주시길.)
'까닭'을 알아내어
새로운 깨달음을 얻어야만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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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교황청에는 라파엘로(Rafael Sanzio, 1483~1520)가 벽과 천장을 장식한 방들이 있다.
그 중에서 '서명의 방((Stanza della Segnatura)'이 가장 유명하다. 이 방의 네 벽면은 신학, 법학, 철학, 예술에 관한 주제가 각각 그려져있다. 각 벽면의 천장에는 해당 주제와 관련된 알레고리 그림들이 있다.
철학을 주제로 한 동쪽 벽면은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수십명의 철학자들을 모아놓은 소위 '아테네 학당'이 있다.
아테네 학당의 천장화는, 가운데의 여신이 'NATURALIS'(자연)와 'MORALIS'(도덕)라는 이름의 책을 들고 있고, 양측의 천사는 'CAUSARUM'(원인, 이유)과 'COGNITIO'(인식, 지식)이라는 글자판을 각각 들고 있다.
'CAUSARUM COGNITIO'는 '인과의 인식’ 혹은 ‘원인에 대한 지식’ 등으로 해석되고 있다.
철학이한, 나타난 현상에 대한 '이유' 즉 'Why'를 탐구하여 깨닫고자 하는 노력임을 가르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이 문장은 ‘까닭에 대한 깨달음'으로 표현하여도 되겠다.
동서양의 철학이 이처럼 공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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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닭(Why)'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Simon Sinek의 강의 동영상.
"모든 위대한 지도자의 공통점은 'WHY'를 잘 전달하는 능력을 가졌다"
** 5 Why 분석법
문제해결의 한 방법이다.
문제가 발생한 이유를 연속적으로 5회 이상 질문해 나가다 보면, 문제의 근원에 이르게 되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 'Why'는 많은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Why'와 관한 매우 재미있는 동영상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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