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學而/토피카

기적이 재앙으로

by 변리사 허성원 2026. 6. 20.

기적이 재앙으로

_ 기적의 얼굴로 온 위험 _ 검증 없이 퍼진 물질들의 연대기

라듐과 석면, 담배, DDT, 탈리도마이드, 바이옥스, 트랜스지방, 프레온가스, 가습기 살균제 등을 기억할 것이다. 이들 새로운 물질은 초기에 기적의 물질로 환영받았다. 뛰어난 효용을 가지고 거기다 값싸고 편리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서 치명적인 재앙임을 깨닫는다. 많은 희생자를 내고 역학 연구와 소송 기록이 쌓인 뒤에야 규제가 따랐다.
위험은 적이 아니라 친구의 얼굴로 온다. 만성적이고 지연된 피해는 구조적으로 사후에만 보이기에 완전한 예방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통제할 수 있는 것은 그다음에 있다. 신호를 얼마나 빨리 인정하고 멈추는가, 되돌릴 여지를 남겨 두었는가, 위험의 부담을 누구에게 지우는가. 효용은 다수가 누리고 대가는 약한 소수가 먼저 떠안는다. 바꿀 것은 열광하는 본성이 아니라 그것을 담는 제도다. 화 속에는 늘 복이, 복 속에는 늘 화가 엎드려 있다.

I. 하나의 각본: 기적의 신물질은 어떻게 재앙이 되는가

인류가 새로운 물질과 기술을 받아들이고 다시 그것을 두려워하기까지의 과정에는 거의 동일한 각본이 반복된다.

처음에는 값싸고 편리하고 효과적이라는 이유로 새로운 물질이 빠르게 퍼진다. 곧 국지적 피해나 직업병의 신호가 나타나지만, 경제적 이해관계와 사회적 낙관, 과학적 불확실성을 명분으로 그 신호는 묵살되거나 축소된다. 시간이 흐르고 역학 연구와 집단소송과 사회적 스캔들이 쌓이고 나서야 통계적으로 분명한 위해성이 모습을 드러내고, 그제야 규제와 금지와 대체가 황급히 진행된다. 다음 세대는 "그때 사람들은 어떻게 저런 걸 아무 생각 없이 썼을까"라고 회고하면서, 정작 자기 시대의 또 다른 신물질에 대해서는 똑같은 각본을 다시 쓴다.

석면, 담배, 라듐, DDT, 트랜스지방, 프레온가스, 탈리도마이드, 바이옥스, 가습기 살균제, PFAS가 모두 이 하나의 각본 안에 들어간다. 위험은 적의 얼굴로 오지 않는다. 그것은 늘 기적이라는 친구의 얼굴로 온다.

II. 빛나던 것들: 라듐과 방사능

19세기 말 X선과 방사능이 발견되었을 때, 방사선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신비의 에너지였다. 장기 피폭이라는 개념 자체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마리 퀴리와 피에르 퀴리는 라듐과 폴로늄을 보호장비 없이 맨손으로 다뤘고, 시료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어두운 곳에서 그것이 빛나는 모습을 아름답다고 기록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마리 퀴리는 이동식 X선 장비를 끌고 다니며 부상병을 직접 진단했는데, 당시의 미비한 방호 개념 속에서 반복적으로 상당량을 피폭당했다. 퀴리는 끝내 골수 기능이 무너지는 재생불량성 빈혈로 사망했다. 그녀의 실험 노트와 도구는 지금도 고선량 방사능 때문에 납으로 차폐된 채 특수 관리되고 있다.

활력을 파는 상품이 된 라듐

노벨상의 후광과 함께 라듐은 활력을 주는 물질로 포장되었다. 라듐을 넣은 물, 화장품, 온천, 건강보조제가 쏟아졌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초록빛은 그 자체로 건강과 젊음의 상징처럼 소비되었다.

라듐 걸즈

미국 뉴저지의 라듐 공장에서 시계 야광판에 페인트를 칠하던 여성 노동자들은 붓끝을 뾰족하게 다듬기 위해 입술로 붓을 모으는 작업을 강요받았다. 그 과정에서 치사량에 이르는 라듐이 몸에 들어갔고, 라듐은 뼈에 축적되어 턱뼈 괴사와 골육종과 빈혈을 일으켰다. 초기에 회사는 히스테리나 개인 체질 탓으로 돌렸고, 노동자들이 사용한 페인트의 성분 공개조차 거부했다. 그레이스 프라이어를 비롯한 노동자들은 1925년 소송을 제기했고, 14년에 걸친 법정 공방 끝에 1939년 승소했다. 그사이 50여 명이 넘는 여성이 이미 세상을 떠났다.

그들의 죽음은 미국 노동법 개정과 산업재해 보상의 길을 열었고, 방사능의 위험성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빛나는 것을 아름답다고 적었던 한 시대의 무지가, 가장 약한 자리에 선 노동자들의 뼈에 새겨진 뒤에야 비로소 지식이 되었다.

구두 가게의 X선 기계

방사선에 대한 무지는 공장 담장 밖 일상으로도 흘러나왔다. 192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미국과 유럽의 구두 가게에는 X선 신발 측정기가 놓여 있었다. 손님이 발을 넣으면 신발 속 발뼈의 위치를 비춰 주는 장치였고, 신발이 잘 맞는지 보여 주는 첨단 서비스로 환영받았다. 호기심에 발을 여러 번 들이미는 아이들, 하루 종일 그 앞에 선 점원들이 일상적으로 피폭당했다. 신비한 신기술이 위험을 가린다는 점에서, 그것은 라듐 걸즈의 작업장과 같은 무지를 공유하고 있었다.

III. 불에 타지 않는 마법: 석면

석면은 불에 타지 않고 단열과 방음과 내구성이 뛰어났다. 20세기의 건축과 공업은 석면 없이 설명되지 않는다. 건물 단열재, 배관, 선박, 방화복, 브레이크 라이닝, 심지어 무대 위에 뿌리는 인공 눈에까지 석면이 들어갔다.

영화 오즈의 마법사 촬영장에서 인공 눈으로 석면을 뿌린 것도 이 분위기의 산물이었다. 가볍고, 불에 타지 않고, 무해해 보인다는 인식이 그 결정을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20세기 초부터 광산과 공장 노동자들 사이에서 폐가 굳어가는 석면폐증과 중피종 같은 희귀암이 보고되었다. 그러나 한동안 그것은 특정 작업 환경에서만 생기는 문제로 축소되었다. 대규모 역학 연구와 소송을 통해 위험성이 확증되고 나서야 다수 국가가 생산과 사용을 금지하고 건축물 제거 규제를 도입했다. 늘 그렇듯 규제는 피해보다 한참 늦게 도착했다.

IV. 의사가 권하던 담배

담배의 해악은 20세기 중반부터 통계로 드러났다. 1950년대에 이미 흡연과 폐암, 심혈관 질환의 상관관계는 뚜렷했다.

그러나 담배 회사와 일부 전문가들은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았다는 논리로 그것을 논쟁 중인 이슈로 묶어 두었다. 그 사이 광고에서는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특정 브랜드를 권했다. 안전하고 세련된 기호품이라는 이미지가 적극적으로 유포되었다. 공중보건 캠페인과 경고문과 광고 제한, 공공장소 금연 정책이 도입되어 담배가 위험 기호품으로 재정의되기까지, 그 지체의 시간 동안 쌓인 피해는 헤아리기 어렵다. 불확실성은 때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제조된다.

V. 들판과 식탁과 하늘에 퍼진 것들

DDT

DDT는 말라리아 모기를 잡고 농업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기적의 살충제로 격찬받았고, 인체에 거의 무해하다고 광고되었다. 생물 농축과 조류 번식 장애, 잠재적 발암성이 제기되고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 환경 차원의 위해성을 공론화하고 나서야 사용 제한과 대체 물질 개발이 시작되었다.

미나마타병과 유기수은

공장에서 배출된 유기수은이 해양 생태계를 통해 축적되어, 어패류를 먹던 주민들에게 심각한 신경계 질환을 일으켰다. 초기에 기업과 당국은 인과관계를 부정하며 풍토병이나 식습관의 문제로 돌리려 했다. 환자 단체와 연구자들의 끈질긴 문제 제기 끝에 미나마타병은 국제적 공해병의 상징이 되었다.

유연휘발유

테트라에틸납은 엔진 노킹을 막는 첨가제로 자동차 연료에 광범위하게 쓰였다. 그것은 도시의 대기를 오염시키고 어린이의 인지 발달을 저해하는 신경독성을 통해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남겼다. 적정선 이하에서는 괜찮다는 논리가 오래 유지되다가, 어린이에 대한 영향이 분명해진 뒤에야 단계적 퇴출이 이루어졌다.

BPA, 프탈레이트, PFAS

비스페놀 A와 프탈레이트는 편리하고 튼튼한 플라스틱의 상징이었다. 내분비계 교란 가능성과 생식 독성이 논의되면서 유아용품과 식품 용기에서 규제가 강화되었고, BPA-free라는 표시 자체가 마케팅 요소가 되었다. PFAS는 발수와 발유 코팅, 소방 폼, 프라이팬에서 산업의 기적으로 쓰이다가, 분해되지 않는 영원한 화학물질로서 환경과 인체에 축적된다는 사실이 드러나 지금도 진행형 논쟁의 한가운데 있다.

트랜스지방

식탁 위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식물성 기름에 수소를 첨가해 굳힌 부분경화유는 버터를 대체하는 값싸고 안정적인 기름으로, 식감을 좋게 하고 보존 기간을 늘린다는 이유로 20세기 내내 마가린과 과자와 가공식품에 널리 쓰였다. 포화지방의 대안이라는 인식까지 더해져 오히려 건강한 선택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1999년 하버드 연구팀이 트랜스지방과 동맥경화의 관련성을 발표한 뒤 위해성 논의가 본격화되었고, 미국 FDA는 2015년 부분경화유를 일반적으로 안전하다고 인정되는 목록에서 제외하여 2018년 6월부터 가공식품 사용을 사실상 금지했다. 한때 더 나은 선택으로 권해지던 것이 한 세대 만에 퇴출 대상이 되었다.

프레온가스

위험은 사람의 몸을 넘어 행성의 보호막에까지 닿았다. 염화불화탄소, 곧 프레온가스는 냄새가 없고 독성도 없으며 불에 타지도 않는 안정된 물질이라 냉장고와 에어컨의 냉매, 정밀부품 세척제, 분무제로 완벽해 보였다. 그러나 1985년 영국 남극 조사단이 오존층에 구멍이 커지고 있음을 밝히고 그것이 프레온가스와 관련된다는 가설을 제시하면서, 이 완벽한 물질의 다른 얼굴이 드러났다. 성층권까지 올라간 염소 원자 하나가 오존 분자 수만 개를 파괴했다. 국제사회는 비교적 빠르게 움직여 1987년 몬트리올 의정서를 채택했고, 프레온가스는 단계적으로 퇴출되었다. 늦게나마 작동한 국제 공조가 오존층을 회복 궤도에 올려놓은, 드물게 희망적인 사례다.

VI. 안전한 약이 낳은 비극

탈리도마이드

독일 그뤼넨탈은 1957년 탈리도마이드를 콘테르간이라는 이름으로, 의사 처방 없이도 살 수 있는 수면제로 내놓았다. 동물실험에서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독성을 전면에 내세웠고, 입덧 완화에 효과가 있다 하여 수많은 임산부가 복용했다. 당시 의학계는 태반이 태아를 외부 물질로부터 완벽하게 보호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 약을 복용한 임산부에게서 사지가 없거나 짧은 해표지증 신생아가 태어났다. 1961년 렌츠 박사가 탈리도마이드를 원인으로 지목했고, 5년간의 판매 기간 동안 전 세계 약 48개국에서 1만 2천여 명 이상의 기형아가 태어났다. 이 사건은 20세기 의약품 안전 체계 전체를 뒤흔들었다. 1962년 미국의 식품의약품화장품법 개정으로 체계적 신약 허가 제도가 확립되었고, 1964년 헬싱키 선언과 임상시험심사위원회, 사후 약물감시 체계가 뒤따랐다. 비극이 기준을 만들었다.

디에틸스틸베스트롤(DES)

DES는 유산 방지와 임신 유지를 위해 오래 처방되었으나, 투약받은 여성의 딸 세대에서 생식기 암과 기형이 증가하는 세대 간 영향을 통해 위해성이 드러났다. 노출과 결과 사이의 시간 간격이 길어, 인과관계 입증과 책임 규명이 한층 어려웠던 사례다.

바이옥스

탈리도마이드가 허가 이전의 검증 실패를 보여 준다면, 바이옥스는 허가 이후의 감시 실패를 보여 준다. 머크가 만든 성분명 로페콕시브의 이 진통소염제는 아스피린 이후 가장 획기적인 진통제라는 평가를 받으며 연 25억 달러의 블록버스터로 미국에서 가장 많이 처방되었다. 그러나 장기 임상에서 심근경색과 뇌졸중 위험을 높인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머크는 2004년 9월 전 세계 자진 회수를 발표했다. 복용으로 심장질환을 일으켜 사망한 사람이 약 2만 7천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소송 과정에서 회사가 위험을 이미 인지하고도 적절히 대응하지 않았다는 점이 쟁점이 되었다. 정식 허가를 받고 시판된 약조차 시판 후 감시 체계가 작동하지 않으면 재앙이 된다는 사실을, 이 사건은 가장 비싼 값으로 증명했다.

VII. 현대판 탈리도마이드: 가습기 살균제

가정용 가습기 물에 넣는 살균제가, 흡입할 경우 폐포를 직접 공격하는 독성을 지녔음에도 흡입 독성 시험 없이 인체에 무해하다고 광고되어 판매되었다.

그 결과 영유아와 성인 수천 명이 폐 손상과 죽음에 이르렀다. 화학물질 관리, 제품 책임, 정부의 사전 검증 의무를 둘러싼 법적, 사회적 논쟁이 촉발되었다. 구조를 들여다보면 편리한 생활용품, 규제의 공백, 기업과 정부의 위험 인식 부재, 피해자에게 떠넘겨진 입증 부담이라는 점에서, 석면과 라듐과 탈리도마이드가 그렸던 각본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VIII. 왜 같은 일이 반복되는가

규제와 과학의 시차

새로운 물질은 먼저 쓰이고 나중에 연구된다. 장기 독성과 환경 영향에 관한 지식이 쌓이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특히 암, 생식력 저하, 다음 세대에 미치는 영향처럼 만성적이고 저농도이며 지연된 형태의 피해는 인과관계를 역학적으로 입증하는 데 긴 시간과 방대한 데이터를 요구한다.

이해관계와 합리적 무지

기업과 정부와 전문가 집단은 경제적 이익과 산업 성장과 국가 경쟁력을 앞세우며, 초기 경고에 대해 아직 불확실하다, 더 연구가 필요하다는 말로 대응을 미룬다. 그동안 피해자는 개별적으로 흩어져 있고, 통계적 신호를 읽어낼 제도적 인프라도 부족하기에 집단적 문제 제기가 늦어진다.

위험 인식의 편향

인간은 눈앞의 이익을 과대평가하고 확률적이고 장기적인 위험을 과소평가한다. 천연이나 친환경 같은 언어는 과학적 안전성과 무관하게 심리적 안전감을 주어, 오히려 위험 인식을 흐린다.

IX. 예방 원칙과 입증 책임의 전환

이 역사적 경험에서 자라난 개념이 예방 원칙이다.

핵심은 이렇다. 해로움의 가능성이 심각하고 되돌릴 수 없을 수 있다면, 과학적 확실성이 완전하지 않더라도 사전에 규제하고 제한해야 한다. 전통적 규범이 위험하다는 것이 입증되기 전까지는 허용이었다면, 예방 원칙은 충분히 안전하다는 것이 입증되기 전까지는 신중하게 보거나 제한하자는 방향으로 입증 책임의 무게중심을 옮긴다.

실제 제도는 물질 등록과 평가, 사전심사제, 위해성 평가와 관리, 정보 공개와 표시 의무 강화를 통해 사용 전에 먼저 검증하고 사용 후에도 계속 감시하는 체계를 지향한다.

X. 막을 수 없다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정직하게 말하면 예방은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는 다음에 등장할 신물질 앞에서도 또 열광할 것이다. 새로움과 효용에 끌리는 마음은 결함이 아니라 인류를 여기까지 데려온 동력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 본성을 바꾸려는 기획은 실패한다. 그러나 예방의 실패가 곧 재앙의 불가피를 뜻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은 신물질의 등장과 그에 대한 열광이지만, 통제할 수 있는 것은 그다음에 있다.

먼저 인식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만성적이고 지연되고 저농도인 피해는 우리가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사후에만 보인다. 라듐의 골독성도 트랜스지방의 동맥경화도, 노출과 결과 사이의 긴 시간 때문에 당대에는 통계로 잡히지 않았다. 그렇다면 목표는 무지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무지를 무지로 인정하고 되돌릴 여지를 남겨 두는 것이다. 가역적으로 도입된 것은 재앙이 되어도 회복되지만, 한 번 퍼지면 거둘 수 없는 것은 그렇지 못하다. PFAS가 영원한 화학물질이라 더 두려운 까닭이 여기 있다.

다음은 속도의 문제다. 미리 막을 수 없다면 남는 변수는 인정과 중단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같은 각본 안에서도 결말의 무게는 그 시차가 가른다. 라듐 걸즈는 제소에서 승소까지 14년이 걸렸고 그사이 50여 명이 죽었다. 가습기 살균제는 더 길었다. 반면 프레온가스는 남극 오존홀 관측에서 몬트리올 의정서까지 2년 남짓이었다. 그 차이를 만든 것은 과학의 명확성만이 아니라 신호를 묵살할 이해관계가 얼마나 강했는가였다. 문명의 성숙도는 재앙을 0으로 만드는 능력이 아니라, 신호를 빨리 읽고 빨리 멈추는 능력으로 측정된다.

그리고 정의의 문제가 남는다. 효용과 위험은 같은 사람에게 분배되지 않는다. 신물질의 편익은 다수가 즉시 누리지만, 위험은 가장 약한 자리의 소수가 먼저, 늦게, 홀로 떠안는다. 야광 페인트의 편리함은 시장 전체가 누렸으나 그 대가는 붓을 입에 문 여공들의 턱뼈에 쌓였다. 가습기 살균제의 편의는 온 가정의 것이었지만 폐는 영유아가 먼저 잃었다. 재앙을 피할 수 없다 해도, 그 부담을 누가 떠안는가는 운명이 아니라 제도의 선택이다. 입증 책임을 피해자에게서 공급자에게로 옮기자는 예방 원칙의 요구는 바로 이 분배의 불의에 대한 응답이다.

프로메테우스가 훔쳐 온 불은 문명을 데우는 동시에 태운다. 빛과 그림자는 떼어 낼 수 없는 한 쌍이고, 인간이 불을 포기할 수 없는 한 화상도 운명의 일부다. 그러나 신화는 불을 돌려주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룰 줄 알라고 말한다.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열광하는 본성이 아니라 그 본성을 담는 그릇, 곧 제도다. 개인은 늘 새것에 끌리겠지만, 사회는 그 끌림에 안전장치를 채워 두도록 설계할 수 있다. 사후 감시, 가역적 도입, 입증 책임의 위치, 피해 신호를 읽어 내는 인프라가 그 그릇이다. 체념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책임으로 바뀐다.

노자는 말했다. 화는 복이 기대는 곳이고, 복은 화가 엎드려 있는 곳이다(禍兮福之所倚 福兮禍之所伏). 우리가 기적이라 부르며 손에 쥔 것들 안에는 늘 그 반대편이 엎드려 있었다. 다만 너무 늦게 보았을 뿐이다. 막을 수 없음을 아는 것이 무력함은 아니다. 지금 우리가 기적이라 부르는 것 안에는, 지금 무엇이 엎드려 있는가..

1920년대 미국 시계 공장에서 야광 페인트로 시계 숫자판을 칠하던 여성 노동자들. 라듐의 초록빛 야광은 당시 활력과 첨단의 상징이었다. 미국 뉴저지의 라듐 공장에서 시계 야광판에 페인트를 칠하던 여성 노동자들은 붓끝을 뾰족하게 다듬기 위해 입술로 붓을 모으는 작업을 강요받았다. 그 과정에서 치사량에 이르는 라듐이 몸에 들어갔고, 라듐은 뼈에 축적되어 턱뼈 괴사와 골육종과 빈혈을 일으켰다. 초기에 회사는 히스테리나 개인 체질 탓으로 돌렸고, 노동자들이 사용한 페인트의 성분 공개조차 거부했다. 그레이스 프라이어를 비롯한 노동자들은 1925년 소송을 제기했고, 14년에 걸친 법정 공방 끝에 1939년 승소했다. 그사이 50여 명이 넘는 여성이 이미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