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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토피카

[허성원 변리사 칼럼]#221 인간의 선과 악은 어디서 오는가

by 변리사 허성원 2026. 6. 14.

인간의 선과 악은 어디서 오는가

 

여섯 시간 동안 벌어진 일

1974년, 세르비아 출신 행위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이탈리아 나폴리의 스튜디오 모라에서 미술사상 가장 위험한 실험 하나를 감행했다. 제목은 '리듬 제로(Rhythm 0)'. 리듬 연작의 마지막 작품이자, 인간 본성을 향한 일종의 임상 실험이었다.

방식은 단순했다. 아브라모비치는 여섯 시간 동안 갤러리 한가운데 움직임 없이 서 있기로 했다. 안내문에는 자신이 하나의 사물이며, 그 시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지든 어떤 책임도 묻지 않겠다고 적혀있고, 그 곁에는 관객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72가지 물건이 놓여 있었다. 장미, 깃털, 꿀 같은 무해한 도구도 있었지만, 가위, 채찍, 면도날, 장전된 권총 같은 위험물도 있었다. 사회적 제약과 법적 책임이 모두 걷힌 자리에서 인간이 무슨 짓을 하는지를 보려는 무대였다.

처음 몇 시간은 조심스러웠다. 사람들은 입을 맞추거나 자세를 바로잡아 주거나 손에 장미를 쥐어 주었다. 그러나 그녀가 저항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닫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옷이 잘려 나갔고, 면도날이 살갗을 그었으며, 누군가는 흐르는 피를 마시기도 했다. 심지어 장전된 권총을 그녀의 손에 쥐여 주고 손가락을 방아쇠에 감기게 한 채 총구를 머리로 향하게 한 사람마저 있어, 그걸 막으려는 관객들과 몸싸움까지 벌어졌다. 시간이 끝나 아브라모비치가 다시 움직이며 가해자들의 눈을 마주 보자, 군중은 자기들이 저지른 일을 차마 직시하지 못한 채 황급히 도망쳤다.

이 공연이 보여준 것은 인간 본연의 잔혹함이 아니라, 그 잔혹함을 드러내게 만드는 상황과 조건이었다. 저항이 사라지고, 책임이 면제되고, 보는 눈의 제약이 걷힐 때 인간의 공감 능력과 도덕감은 놀라운 속도로 무너졌다. 평범한 관객을 가해자로 바꾼 것은 내재된 악의가 아니라, 무슨 짓을 해도 안전하다는 확신이었다.

심리 실험이 확인해준 것

'리듬 제로'가 예술의 형식으로 드러낸 것을, 사회심리학도 거의 같은 시기에 실험으로 확인했다. 예일대의 스탠리 밀그램은 평범한 시민에게 교사 역할을 맡기고, 옆방의 학생이 틀릴 때마다 점점 강한 전기 충격을 가하게 했다. 충격이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경고에도 참가자의 약 3분의 2가 흰 가운을 입은 실험자의 지시에 따라 최고치까지 다이얼을 올렸다. "책임은 제가 집니다"라는 한 마디로 책임이 면제되는 순간 도덕의 제동이 풀린 것이니, 이는 아브라모비치의 안내문과 같은 메커니즘이다. 평범한 대학생이 간수 역을 맡자 며칠 만에 죄수를 학대한 짐바르도의 스탠퍼드 감옥 실험도, 살해당하는 여성을 두고 다수의 이웃이 신고하지 않았다는 제노비스 사건의 방관자 효과도 동일한 가르침을 준다.

예술가의 무대와 심리학자의 실험실이 반세기에 걸쳐 따로 도달한 결론이 같다면, 그것은 가설이 아니라 인간 속성에 관한 하나의 명료한 사실이다. 잔혹함은 인간 본성의 예외적 속성이 아니라, 특정한 조건이 주어지면 평범한 인간에게서도 쉽게 드러나는 반응이라는 것이다.

네 가지 통찰

'리듬 제로'는 우리에게 몇 가지 통찰을 남긴다.

첫째, 악이 상황과 조건의 산물이라면 선 또한 그러하다. 그날 갤러리에 모인 이들은 사디스트가 아니라 평범한 시민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저런 짓을 하지 않는다"는 확신보다 중요한 것은, 나를 어떤 상황에 두지 않아야 할 것인가라는 물음이다. 같은 논리를 뒤집으면 희망이 보인다. 잔혹함을 끌어낸 조건의 거울상, 곧 선을 끌어내는 조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리듬 제로에서 권총을 막아선 손들이 있었고, 밀그램의 실험에서도 끝까지 거부한 3분의 1이 있었다. 동료가 먼저 거부하는 것을 보았을 때 복종률은 급격히 떨어졌다. 침묵이 전염되듯 용기도 전염된다. 그러므로 선을 바란다면 양심에 호소할 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이 악을 기피하고 선을 행하지 않을 수 없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둘째, 상황을 결정짓는 핵심은 '타인의 보는 눈'이다. 관객이 잔혹해진 순간은 책임이 사라졌다고 믿었을 때였고, 그들이 도망친 순간은 아브라모비치가 눈을 떠 그들을 마주 본 때였다. 타인의 시선은 악을 억제할 뿐 아니라 선을 유발한다. 누군가 보고 있고 그 시선이 응답하리라는 사실 하나가, 평범한 사람을 망설이게도 하고 과감하게 나서게도 한다.

셋째, 그래서 행동을 규제하는 제도와 견제 장치가 중요하다. 제도라는 고삐는 인간을 불신해서가 아니라 제대로 이해하기 때문에 필요하다. 통제 시스템은 간혹 사람을 잠재적 악인 취급한다는 비난을 받지만, 그것은 악인을 막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이 악인이 되는 조건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다. 멀쩡한 인간이 저항할 수 없는 상대, 책임 없는 상황 앞에 섰을 때 무슨 짓을 저지를 수 있는지를 알기에 미리 고삐를 만들어두는 것이다.

넷째, 악을 키우는 것은 가해자의 손이 아니라 다수의 침묵이다. 부정에 침묵하는 것은 그 일에 가담하는 것과 같다. 다만 힘의 불균형 앞에서 약자에게 영웅적 저항을 요구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침묵을 깨는 일을 한 사람의 용기에만 떠맡기지 않도록, 구조적으로 저항의 수단을 남겨두는 설계가 필요하다.

갤러리 밖의 조직으로

이같은 통찰을 제공하는 '리듬 제로' 실험은 갤러리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인간이 모인 곳 어디에나, 악을 드러내는 세 조건, 즉 저항할 수 없는 상대, 책임이 면제된 권력, 보는 눈의 부재가 잠복해 있기 때문이다.

가장 위험한 것은 무책임 권한이다. 결정은 하되 그 결과를 떠안지 않는 자리가 생기면 도덕은 부식한다. 권한과 책임을 일치시키는 것은 윤리가 아니라 시스템 설계의 문제다. 힘을 가진 자의 윤리와 자제심을 그저 믿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휘발성이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익명 신고 채널이나 독립적인 감사 경로처럼, 약자의 용기에 기대지 않고도 저항과 시선이 작동하게 만드는 안전판이 필요하다. 리더가 주시할 것은 사고 뒤의 처벌이 아니라, 그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 쌓이고 있는지 여부다.

리더가 들어야 할 거울

우리는 악을 자신을 비추는 거울 속에서 찾으려 하지 않는다. 악인은 늘 저 바깥의 누군가, 뉴스 속의 얼굴, 역사의 괴물이라고 믿는 편이 마음 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듬 제로가, 그리고 그것과 한목소리를 낸 실험들이 가리키는 것은, 가해자가 따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조건 아래에서 만들어지며, 그 조건이 어느 날 문득 누구에게나 갖추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인간을 선하게 만들려는 노력은 번지수가 잘못되었을 수 있다. 다스려야 할 것은 사람의 마음이 아니라 그 앞에 놓인 상황이다. 악해질 조건을 닫는 일과 선해질 조건을 여는 일은 같은 작업의 양면이며, 그런 조건을 짓는 일이야말로 리더의 본령이다.

사람의 선의를 믿고 기다리는 자는 리더가 아니다. 좋은 사람을 뽑아 두는 것으로 제 책임을 다했다고 여기는 자도 리더가 아니다. 진정한 리더는 누구라도 악해질 조건을 부지런히 닫는 한편 선을 택하지 않을 수 없는 조건을 설계하여 실행하는 자다. 권한과 책임을 일치시키고, 약자에게 저항할 길을 열어 두며, 무엇보다 자신을 포함한 모두가 늘 누군가의 시선 아래 서도록 만들어야 한다. 손자가 '먼저 이겨놓고 싸우라(先勝而後求戰)'고 한 까닭이 여기 있으니, 리더의 일은 악을 사후에 벌하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그 설 자리를 없애는 것이다.

아브라모비치가 눈을 떴을 때 군중이 달아난 것은, 그 시선 속에서 자기 자신을 보았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이 우리의 거울이다. 리듬 제로가 반세기가 지나도록 섬뜩하게 가슴을 때리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것은 괴물을 보여주지 않았다. 우리 앞에 거울을 들어 올렸을 뿐이다.

"아브라모비치는 여섯 시간 동안 갤러리 한가운데 움직임 없이 서 있기로 했다. 안내문에는 자신이 하나의 사물이며, 그 시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지든 어떤 책임도 묻지 않겠다고 적혀있고, 그 곁에는 관객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72가지 물건이 놓여 있었다. 장미, 깃털, 꿀 같은 무해한 도구도 있었지만, 가위, 채찍, 면도날, 장전된 권총 같은 위험물도 있었다. 사회적 제약과 법적 책임이 모두 걷힌 자리에서 인간이 무슨 짓을 하는지를 보려는 무대였다. 처음 몇 시간은 조심스러웠다. 사람들은 입을 맞추거나 자세를 바로잡아 주거나 손에 장미를 쥐어 주었다. 그러나 그녀가 저항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닫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옷이 잘려 나갔고, 면도날이 살갗을 그었으며, 누군가는 흐르는 피를 마시기도 했다. 심지어 장전된 권총을 그녀의 손에 쥐여 주고 손가락을 방아쇠에 감기게 한 채 총구를 머리로 향하게 한 사람마저 있어, 그걸 막으려는 관객들과 몸싸움까지 벌어졌다. 시간이 끝나 아브라모비치가 다시 움직이며 가해자들의 눈을 마주 보자, 군중은 자기들이 저지른 일을 차마 직시하지 못한 채 황급히 도망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