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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토피카

변호한 죄를 묻는 사회

by 변리사 허성원 2026. 5. 23.

변호한 죄를 묻는 사회

2026년 5월, 55개 여성단체가 국회의원 보궐 선거에 출마한 한 의원이 성범죄 사건 변호 이력을 들어 "국회의원 자격 없다"는 공동성명을 냈다. 그러나 이 성명의 논리는 위험하다. 사회적 비난을 받는 피고인을 변호한 자에게 자격이 없다는 명제는 성범죄에서 멈출 수 없다. 모든 형사 피고인은 법의 언어로 '비난받는 행위'로 기소된다. 그들 주장이 일관성을 가지려면 살인·사기·마약 변호인도 모두 결격이 되고, 군사독재 시절 시국사건 인권변호사도 결격이 된다. 헌법 제12조는 죄질을 가리지 않고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보장한다. 변호인은 의뢰인이 아니며, 미움받는 피고인을 변호하는 일은 곧 형사사법 제도 자체를 옹호하는 일이다. 변호 이력 자체를 결격 사유로 들이미는 방식은 법치주의를 흔드는 일이다. 변호는 죄가 아니다. 변호를 죄로 묻는 일이 죄다.

2026년 5월 19일, 한국여성단체연합과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성폭력상담소를 포함한 55개 여성단체가 공동성명을 냈다. "선거 때마다 드러나는 후보자의 성범죄자 변론 실태에 분노한다. 성폭력 2차 피해 일삼는 자, 국회의원 자격 없다." 경기 평택을 재선거에 출마한 김용남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변호사 시절 30여 건의 성범죄 피고인을 변호했다는 보도가 나온 직후였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24년 22대 총선 당시 서울 강북을에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공천된 조수진 변호사 역시 성범죄 사건 변호 이력이 문제가 되어 사퇴한 바 있다. 같은 해 곽규택 후보도 유사한 비판에 직면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2021년 12월 1일 논평을 통해, 변호인의 변론권과 피고인의 변호인 조력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과도한 논란에 우려를 표한 적이 있다.

성명은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표면적으로는 성범죄에 한정된 비판처럼 보이지만, 그 논리를 한 발짝만 끌고 가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형사 피고인은 정의상 모두 '비난받을 짓'을 한 것으로 기소된 사람들이다. 사회적 비난을 받는 피고인을 변호한 자에게 자격이 없다는 명제는, 성범죄에서 멈출 수 있는 명제가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한 후보의 자격이 아니다. 한 직업의 존재 이유다. 변호인은 왜 미움받는 자의 곁에 서는가. 이 물음에 답하지 못하면, 형사사법의 토대 자체가 흔들린다.

I. 성명이 침식하는 헌법적 가치

대한민국 헌법 제12조 제4항은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에는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이 권리는 죄질의 경중을 가리지 않는다. 살인범에게도, 성범죄 피고인에게도, 내란범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오히려 사회적 비난이 거센 피고인일수록 이 권리는 더 절실하다.

변호사법 제1조 제1항은 변호사가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고 선언한다. 여기서 인권은 피해자의 인권만이 아니라 피고인의 인권을 포함한다. 둘은 대립 관계가 아니라 동일한 헌법 질서의 두 축이다.

성명은 변호 사실 자체를 결격 사유로 들이민다. 이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사실상 부정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미움받는 피고인을 변호하면 정치적 자격을 잃는다는 메시지가 일반화되면, 어떤 변호사가 그런 사건을 맡으려 하겠는가. 변호인을 구하지 못한 피고인은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실질적으로 박탈당한다.

보스턴의 교훈

1770년 보스턴 학살 사건이 일어났다. 영국군 병사들이 식민지 시민들에게 발포해 다섯 명이 사망했다. 보스턴은 분노로 끓었고, 어떤 변호사도 영국군을 변호하려 하지 않았다. 그때 존 애덤스가 변론을 맡았다. 훗날 미국 제2대 대통령이 된 그 애덤스다.

애덤스는 정치적 자살을 무릅쓰고 변호에 나섰다. 배심원을 설득해 무죄 또는 감형을 끌어냈다. 훗날 그는 이 변론을 자기 인생에서 가장 사심 없고 가장 가치 있는 봉사 중 하나라고 회고했다. 영미 법조의 정신적 토대가 여기서 만들어졌다. 가장 미움받는 피고인에게도 변호인이 있어야 한다는 원칙.

II. 변호인은 왜 의뢰인이 아닌가

성명의 가장 큰 논리적 결함은 변호인을 의뢰인과 동일시한다는 점이다. 살인 사건을 변호한 변호사를 살인 동조자로 보지 않는다. 의료과실 사건에서 의사를 변호했다고 의료과실 옹호자가 되지 않는다. 왜 성범죄 사건만 다르게 취급하는가.

미국 변호사 협회 모범규칙은 변호인이 의뢰인을 대리한다는 사실이 그 의뢰인의 견해나 활동을 변호인이 승인하는 것으로 간주되지 않는다고 명문으로 규정한다. 보편적 원칙이다. 변호인은 의뢰인의 행위를 옹호하는 자가 아니라, 의뢰인이 적법한 절차를 거쳐 재판받을 권리를 옹호하는 자다.

이 구분이 무너지면 형사변호 제도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변호인이 의뢰인과 동일시되는 사회에서는 누구도 미움받는 사건을 맡지 않으려 한다. 그 끝에 기다리는 것은 변호인 없는 피고인이고, 그것은 법치주의의 종언이다.

비대칭의 평형추

형사재판은 대등한 당사자의 다툼이 아니다. 한쪽에는 수사권, 기소권, 강제처분권을 손에 쥔 국가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자유를 박탈당할 위험에 처한 한 사람이 있다. 검사는 법률 전문가다. 경찰은 수사 기법과 정보망을 가지고 있다. 법원은 권위를 가지고 판결한다.

피고인은 무엇을 가졌는가. 두려움, 혼란, 빈약한 법지식. 이 압도적 비대칭을 그대로 두면 재판은 사냥이 된다. 변호인은 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최소한이나마 평평하게 만드는 장치다. 무죄추정 원칙도, 위법수집증거 배제 법칙도, 자백의 임의성 보장도, 모두 변호인이 곁에 있어야 작동한다.

III. 성명이 뭉뚱그리는 두 차원

성명이 정교하게 비판받아야 할 지점은 따로 있다. 그것은 변론 사실과 변론 방식의 혼동이다.

성범죄 사건을 맡았다는 사실과 그 사건에서 부적절한 변론을 했다는 사실은 별개의 문제다. 피해자의 인격을 모독하거나 사생활을 부당하게 폭로하는 방식의 변론은 변호사법상 품위유지의무 위반이 될 수 있고, 그것이 사실로 입증된다면 별도의 비판 대상이다. 재판부가 2차 피해를 지적한 구체적 사례가 있다면, 그 행위를 정확히 적시하고 비판해야 한다.

성명은 이 둘을 의도적으로 뭉뚱그린다. 30여 건이라는 수치를 앞세우고 2차 피해라는 표현을 뒤에 붙여, 양적 규모가 곧 도덕적 문제인 것처럼 인상을 만든다. 수임 건수와 변론 방식의 적정성은 별개의 문제다. 이를 구분하지 못하면 비판은 정확성을 잃고 선동으로 흐른다.

구체성의 윤리

만약 김 후보의 변론 중 특정 사건에서 피해자의 인격권을 명백히 침해한 행위가 있었다면, 그 행위를 사건명과 함께 적시하고 비판하는 것이 옳다. 어떤 사건의 변호인의견서에 어떤 표현이 있었는지, 어느 법정에서 어떤 신문이 있었는지, 그것이 어떻게 부적절했는지를 짚어야 한다.

그런 구체성 없이 성범죄 변호 이력 자체를 결격 사유로 들이미는 방식은, 비판의 정당성을 스스로 무너뜨린다. 비판은 정확할 때 힘을 갖는다.

IV. 확대 해석의 함정

도토마리가 처음 느낀 불편함의 근원은 여기에 있다. 성명의 표면 주장은 성범죄에 한정되어 있다. 그러나 그 논리 구조를 해부하면, 그것은 성범죄에만 머무를 수 없는 형태다.

성명이 작동하는 논리를 한 줄로 풀면 이렇다. 사회적으로 비난받는 행위를 한 피고인을 변호한 자는 정치적 자격이 없다. 이 명제에서 성범죄는 우연한 사례일 뿐, 명제 자체의 본질이 아니다. 본질은 사회적 비난과 변호의 결합이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어떤 범죄가 사회적으로 비난받지 않는가. 살인, 강도, 사기, 횡령, 마약, 폭력, 음주운전, 아동학대. 모든 형사 피고인은 정의상 비난받는 행위로 기소된 사람들이다. 비난받지 않는 행위는 애초에 기소되지 않는다.

이 점이 결정적이다. 성명의 논리는 성범죄에서 멈출 수 있는 논리가 아니다. 일관성을 가지려면 모든 형사변호로 확장되어야 한다. 살인범을 변호한 자도 자격이 없고, 사기범을 변호한 자도 자격이 없고, 마약사범을 변호한 자도 자격이 없다. 그렇게 확장하면 형사변호사 출신은 누구도 공직을 맡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부조리로의 환원

물론 성명 작성자들이 이 결론을 의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의도하지 않은 결론을 함축하는 명제는, 그 자체로 결함이 있는 명제다. 법학에서 말하는 reductio ad absurdum, 부조리로의 환원 검증을 통과하지 못한다.

여기서 성명 작성 측이 직면해야 할 곤란이 발생한다. 그들은 사실상 두 가지 입장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

첫째, 일관성을 유지해 모든 형사변호를 결격 사유로 본다. 그러면 군사독재 시절 시국사건 변호인들도 결격이고, 양심수를 변호한 인권변호사들도 결격이다. 이 입장은 자기모순이다.

둘째, 성범죄만 예외적으로 다룬다. 그러면 왜 성범죄만 예외인지 설명해야 한다. 죄질의 경중인가. 그렇다면 살인이 성범죄보다 가벼운가. 사회적 비난의 강도인가. 그것은 시대와 여론에 따라 변하는 가변적 기준이다. 어느 답을 골라도 원칙으로 작동하지 못한다.

결국 이 성명은 원칙에 기반한 비판이 아니라, 특정 시점의 정치적 정서에 기반한 비판이다. 그것이 잘못은 아니지만, 그렇다면 자격 없다는 헌법적 어휘를 빌려 와서는 안 된다. 자격은 원칙의 언어다. 원칙 없이 자격을 박탈하는 시도는, 결국 자격이라는 개념 자체를 부식시킨다.

적은 시대마다 바뀐다

칼 슈미트가 짚었듯이, 정치적 적은 시대마다 바뀐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고, 오늘의 적이 내일의 동지가 된다. 그러나 적을 변호한 자를 영구히 자격 없는 자로 낙인찍는 사회에서는, 적이 바뀔 때마다 변호인은 한 세대씩 사라진다. 그 끝에 남는 것은 변호인 없는 피고인의 사회, 즉 모두가 잠재적으로 변호받을 수 없는 사회다.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사회가 덜 미워하는 피고인에게만 적용된다면, 그것은 권리가 아니라 시혜다. 권리는 가장 미움받는 자에게 적용될 때 비로소 권리다. 군사독재 시절 간첩 혐의자에게도, 1970년대 미국의 흑인 피고인에게도, 1930년대 독일의 유대인에게도 변호인이 필요했다. 그때 그 사회의 다수는 그들을 변호하는 행위 자체를 결격 사유로 보았다.

V. 진보 진영이 잊어선 안 되는 역사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역사적 환기가 필요하다. 군사독재 시절, 시국사건 피고인을 변호한 인권변호사들은 간첩 옹호자, 반체제 동조자로 몰렸다. 그때 그들을 지킨 것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라는 헌법적 원칙이었다. 미움받는 피고인을 변호한다는 것은 그 피고인을 옹호하는 일이 아니라, 형사사법 제도 자체를 옹호하는 일이라는 원칙.

이 원칙은 진보 진영이 오랫동안 옹호해온 가치다. 그때 그 논리를 거부했다면, 지금도 같은 논리를 거부해야 한다. 미움받는 피고인의 변호를 결격 사유로 들이미는 순간, 우리는 우리 자신의 변호받을 권리를 스스로 깎아내리는 셈이다. 권력이 미워하는 사람, 다수가 혐오하는 사람부터 변호인 없이 재판받기 시작하면, 그 다음 차례는 누구인가.

VI. "자격 없다"는 단정의 위험

마지막으로, 자격 없다는 표현 자체가 문제다. 국회의원의 자격은 헌법과 공직선거법이 정한다. 시민단체가 도덕적 평가를 내릴 수는 있다. 그러나 자격 없다는 단정은 법적 자격 박탈을 연상시키며, 선거에서의 선택을 시민단체의 도덕적 선언으로 대체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선택은 유권자의 몫이다. 시민단체의 역할은 정보를 제공하고 쟁점을 환기하는 것이지, 자격 여부를 선언하는 것이 아니다. 후보가 어떤 사건을 어떻게 변호했는지, 그 변론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알리는 것이 시민단체의 본분이다. 그 정보를 받아 판단하는 것은 유권자다.

자격 없다는 표현은 강한 정치적 위력을 갖지만, 동시에 시민단체의 권위를 정치의 영역으로 끌어내린다. 비판이 정확할 때 비판자도 권위를 얻는다.

VII. 베카리아의 경고

체사레 베카리아는 1764년 『범죄와 형벌』에서 한 사람의 무고한 처벌은 모두에게 가해진 위협이라고 썼다.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는 바로 이 위협을 막기 위한 제도다. 피고인을 위한 것이면서 동시에 모두를 위한 것이다. 미워하는 피고인에게도 변호인을 허락할 때, 비로소 우리 자신도 언젠가 부당한 혐의를 받게 되었을 때 변호받을 수 있다.

성명이 침식하는 것은 한 후보의 정치적 자격이 아니다. 변호인의 자리, 그리고 그 자리가 지키는 모두의 권리다. 변호인이 미움받는 피고인의 곁에 설 수 없는 사회에서, 안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가장 미움받는 자의 곁에 변호인이 있을 때, 비로소 가장 평범한 자도 보호받는다.

좋은 변호사는 자기가 미워하는 피고인을 변호할 수 있어야 하고, 좋은 시민은 자기가 미워하는 피고인이 변호받는 모습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법치주의의 가장 어려운 부분이고, 동시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비판할 지점이 있다면 구체적 변론 행위의 부적절성을 입증하고 그 부분을 비판해야지, 성범죄 변호 이력 자체를 결격 사유로 들이미는 방식은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든다. 한비자는 법은 사사로운 감정에 흔들리지 않을 때 비로소 법이라고 했다. 분노는 정당할 수 있다. 그러나 분노가 헌법적 원칙을 넘어설 때, 그 분노는 자신이 지키려던 가치마저 무너뜨린다.

변호한 죄를 묻는 사회에서는 결국 변호받을 사람도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