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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천리마리더십

<아테나이26> 이 시대의 아르크네들, 호루라기를 불다

by 변리사 허성원 2026. 5. 2.

 

이 시대의 아라크네들, 호루라기를 불다

아라크네의 비극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아라크네라는 처녀가 등장한다. 그녀는 베틀 앞에 앉아 천에 수를 놓는 솜씨가 비범하였다. 사람들은 지혜와 기술의 여신 아테나에게 직접 배운 것이라 칭송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솜씨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이 아니라며, 여신과 겨루어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큰소리쳤다. 그 말을 들은 아테나가 노파로 변신하여 찾아가 경고하였으나 아라크네는 듣지 않았다. 결국 아라크네는 아테나 여신과 베짜기 시합을 벌였다.

아테나 여신이 짠 수에는 올림포스의 위엄과 신에게 도전하였다가 형벌을 받은 인간들이 새겨졌다. 산이 된 자, 새가 된 자, 돌이 된 자 등이다. 메시지는 분명했다. 너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경고였다. 그런데 아라크네의 수에는 전혀 다른 그림이 수놓아져 있었다. 신들의 추문에 관한 내용이었다. 제우스가 백조로, 황소로, 황금비로 변신하여 인간 여인들을 능욕한 일들, 포세이돈, 아폴론, 디오니소스가 저지른 음란한 일들 등 모두 스물한 가지의 추문이 정밀하게 짜이고 수놓아져 있었다.

오비디우스는 이 대목에서 결정적인 한 줄을 남겼다. '시기와 질투의 여신조차 그 수에서 한 올의 흠을 찾지 못하였다'고. 어떤 신도 트집을 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아테나는 신의 오류를 폭로한 것에 분노하여, 베틀의 북으로 아라크네의 머리를 세 번 내리쳤다. 모욕을 견디지 못한 아라크네는 목을 매었다. 여신은 마지막 자비로 그녀를 거미로 변신시켜 주었다. 아라크네는 이제 영원히 베를 짜되, 신전에는 다시 걸리지 못할 수를 놓는 운명이 되었다.

이 신화의 냉정함은 한 곳에 있다. 아라크네의 그 신랄한 폭로는 신들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였다는 점이다. 추문이 정확히 폭로되었어도 제우스는 신들의 왕이었고, 포세이돈도 아폴론도 자기 신전을 그대로 지켰다. 무너진 것은 그 베를 짜고 수를 놓은 아라크네뿐이었다. 진실이 폭로되었으나 그 대상은 여전히 권력을 누리고 있었고, 진실을 짠 자만이 신전 바깥으로 쫓겨나 기괴한 몰골로 영원히 거미줄을 짜야 했다.

그렇다고 이 결말이 신화의 어느 한 모서리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신화에서 한 발자국만 내려와도 우리 시대에서 같은 풍경을 종종 만날 수 있다. 거대한 침묵을 깨고 권력의 추문을 온 세상에 알렸으나, 그것을 이유로 자기 자리에서 쫓겨나고 박해를 받고 고난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을 이 시대의 아라크네라 부를 수 있다. 그들을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 있다. 영어권에서 그들을 '호루라기 부는 사람(Whistleblower)'이라 부른다.

호루라기 부는 사람들

호루라기 부는 사람이라는 표현은 영국의 옛 경찰관이 거리에서 범죄를 발견하면 호루라기를 불어 동료와 시민에게 알리던 데서 왔다. 한 사람의 짧은 호루라기 소리로 거리 전체에 경고가 퍼지는 것이다. 조직 안에서 위법이나 부정을 발견한 자가 그 사실을 외부에 알리는 행위를 거기에 빗대어 부른 것이다.

그들의 호루라기 소리는 사회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거대한 조직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부정과 위해는 그 안에 속하지 않은 외부인이 발견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회계 장부의 어디에 분식이 숨어 있는지, 어느 약품의 어떤 부작용이 은폐되었는지, 어느 엔진의 어느 결함이 묵살되었는지. 이 모든 것은 그 안에서 일하는 자만이 본다. 만약 그가 호루라기를 불지 않으면, 사회는 영원히 알지 못한다. 결함이 있는 약이 처방되고, 결함이 있는 차가 운행되고, 분식된 회계 위에 투자가 이루어진다. 호루라기 한 번이 수많은 환자와 운전자와 투자자를 구하는 셈이다.

그러나 호루라기를 부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대단한 용기와 각오가 필요한 일이다. 그것은 자기 조직에 대한 배신으로 여겨지고, 동료들의 외면을 부르고, 권력자의 보복을 부른다. 거의 모든 호루라기 부는 자가 직장을 잃고, 평판을 잃고, 정상의 자리로 다시 돌아가지 못한다. 그러니 호루라기를 분다는 것은 거의 자기 자신의 인생을 거는 일이다. 사회가 받는 혜택은 그가 잃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런 풍경을 몇 사람의 모습을 통해 들여다보자.

1990년 봄, 한국 감사원의 한 감사관이 한겨레신문에 자료를 건넸다. 그는 50대 중반의 31년 차 공무원 이문옥이었다. 1959년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세무직으로 시작했고, 1972년부터 감사원에서 근무했다. 그가 속한 감사반이 23개 재벌 계열사의 비업무용 부동산 보유 비율이 은행감독원 발표 1.2%가 아니라 43.3%에 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는데, 재벌의 로비로 감사가 중단되었다. 그가 신문에 건넨 것은 그 묻혀버릴 운명의 수치였다. 보도가 나간 닷새 뒤 그는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로 구속되었고, 곧 파면되었다.

그가 짠 베에 그려진 수에 한 올의 흠도 없었음을 대법원이 확정한 것은 6년 뒤의 일이다. 한국 사회에서 '내부고발자' 또는 '공익제보자'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대중에게 각인시킨 사건이었으며, 이 사건 이전과 이후로 한국의 호루라기 풍토는 갈라진다고 평가된다. 그가 호루라기를 불지 않았다면 재벌의 부동산 매집 실태는 그대로 묻혔을 것이고, 그 시기 한국 부동산 정책의 향배는 달라졌을 것이다.

26년이 지난 2016년, 또 한 명의 한국인이 같은 자리에 섰다. 현대차 품질전략팀에서 일하던 부장 김광호였다. 그가 본 것은 자신의 회사가 자체 개발한 세타2 엔진의 결함, 그리고 그 결함을 알면서도 적절히 조치하지 않은 정황이었다. 그는 같은 해 8월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과 한국 정부에 잇따라 제보 자료를 보냈다. 한국에서 그를 기다린 것은 해고와 업무상 비밀 누설 혐의의 고발이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공익신고자로 인정해 해고가 무효화되어 6개월 만에 복직하였으나, 회사 안에서의 자리는 이미 사라진 뒤였고 그는 곧 명예퇴직을 선택해야 했다.

그러는 사이 미국에서는 다른 응답이 왔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이 5년에 걸친 조사 끝에 2021년 11월, 약 280억 원 정확히는 2,400만 달러 이상의 보상을 결정한 것이다. 2015년에 미국 의회를 통과한 자동차 안전 내부고발자법(Motor Vehicle Safety Whistleblower Act)이 시행된 이래 사상 첫 보상이었다. 같은 폭로 그림을 두고 한국은 그를 처벌하였지만, 미국은 그 보상금을 지급하였다. 그 차이가 의미하는 바는 무겁다.

비슷한 풍경은 미국에서도 종종 일어났다. 1996년 2월의 어느 일요일 저녁, CBS 시사 프로그램 '60분'에 한 남자가 출연하였다. 미국 3대 담배회사 브라운앤윌리엄슨의 연구개발 부사장 출신이자 생화학 박사인 제프리 와이건드였다. 그는 회사가 더 안전한 담배를 만든다는 명목으로 자신을 고용해 놓고는, 실제로는 니코틴 중독성을 의도적으로 강화하기 위해 암모니아를 배합하고 FDA가 식품에서 퇴출한 발암 물질 쿠마린을 향료로 사용해 왔다는 사실을 카메라 앞에서 폭로하였다. 회사는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사찰업체를 고용해 그를 추적하였고, 그를 "거짓말쟁이, 아내 학대자, 좀도둑"으로 그린 500쪽짜리 사찰 보고서를 만들어 언론에 배포하였다. 익명의 살해 협박이 집으로 날아들었다.

그러나 그의 폭로는 아라크네의 베에 짠 수처럼 진실임이 밝혀졌다. 1998년 11월, 미국 4대 담배회사가 46개 주와 체결한 마스터 합의 협정, 첫 25년간 최소 2,060억 달러를 지불하기로 한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기업 합의의 결정적 토대가 그의 증언이었다. 한 명의 중간급 임원이 한 산업의 규제 궤도를 통째로 바꾸어 놓은 사례다. 그가 호루라기를 불지 않았다면, 미국의 담배 규제는 수십 년이 더 늦었을 것이고, 그 사이 많은 희생자들이 나타났을 것이다.

화이자에는 존 코프친스키가 있었다. 웨스트포인트 출신 걸프전 참전 군인으로, 외판원으로 입사한 그가 직면한 것은 진통제 벡스트라가 약효를 인정받지 못한 분야에 처방되도록 회사가 의사들에게 50달러 수당까지 주며 권유한 정황, 허용량의 최대 8배까지 처방되도록 유도한 판촉 전술이었다. 그가 BBC 인터뷰에서 그날의 결심을 한 마디로 요약한 표현이 있다. "군에서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인명을 보호하라고 배웠다." 그의 고발은 부정주장법(False Claims Act) 소송으로 이어져 화이자에 23억 달러의 벌금이 가해졌다. 당시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의료 사기 합의금이었다. 그에게는 5,150만 달러의 보상금이 매겨졌다. 그가 호루라기를 불지 않았다면, 그 잘못된 처방을 받은 환자들이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을 것이다.

레이첼 카슨이 1962년 '침묵의 봄'을 썼을 때, 그녀가 짠 수에는 DDT를 비롯한 합성 살충제가 새와 물고기, 그리고 결국 인간에게까지 미치는 영향이 정밀하게 새겨져 있었다. 화학업계는 격분하여 그녀를 "히스테릭한 여성"이라 불렀고, 그녀의 전문성을 부정하는 인신공격이 그녀를 따라다녔다. 그녀가 공개한 정보는 미국 환경보호국(EPA) 창설과 DDT 금지의 사상적 트리거가 되었다. 그녀가 호루라기를 불지 않았다면, 화학 살충제의 시대는 더 길게 이어졌을 것이고, 우리가 지금 누리는 환경 의식은 한 세대쯤 늦게 왔을 것이다.

호루라기 부는 자들의 시련

앞의 사례는 모두 그들의 용감한 호루라기 불기가 그나마 성공한 경우다. 호루라기를 힘차게 불었지만, 권력과 재력의 벽에 굴복하고 좌절하여 제대로 드러나지 못한 사례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역사의 아라크네들은 누구도 그 이후의 자기 운명을 약속받지 못한다. 그 냉혹함은 신화에서처럼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로 작동한다.

이문옥은 6년 법정 투쟁 끝에 무죄를 확정받았으나 자기 자리로 돌아가지 못하였다. 정년퇴임 때 33년 봉직자에게 주어지는 녹조근정훈장을 거부하였고, 이후 경제정의실천연합과 참여연대, 공익제보자모임에서 자기 같은 거미들을 거두는 일에 여생을 바쳤다. 김광호는 미국에서 280억 원을 받았으나 한국에서 그가 평생 일해 온 산업계로 돌아갈 자리는 없었다.

와이건드의 운명은 더 가혹하였다. 사찰과 협박과 인신공격 속에 결혼이 무너졌고, 박사학위와 부사장 자리를 잃은 그는 한동안 고등학교에서 화학을 가르치며 생계를 이었다. 그가 미국 시민의 영웅으로 자리잡은 것은 1999년 영화 '인사이더'에서 러셀 크로가 그를 연기해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뒤의 일이다. 그러나 그가 잃은 것, 즉 30만 달러 연봉의 부사장 자리, 결혼 생활, 평온한 일상은 돌아오지 않았다.

코프친스키도 5,150만 달러의 보상금을 받기 전에 고통스런 6년을 견뎠다. 해고 직후 옮긴 보험회사의 연봉은 화이자 시절의 3분의 1이었다. 어린 아들이 있었고, 아내는 쌍둥이를 임신 중이었다. "강을 거슬러 수영하는 것 같았다. 주변의 모든 사람이 흐름을 따를 때 옳은 일을 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그의 한 마디는 모든 호루라기 부는 자의 마음을 대변한다. 카슨은 '침묵의 봄' 출간 2년 뒤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56세였다. 그녀의 수가 환경 운동의 시조로 자리매김한 것은 그녀가 죽고 한참 뒤의 일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고발의 대상이 된 이들은 치명적인 영향을 받지 않았다. 화이자도, 브라운앤윌리엄슨도, 화학업계도, 현대차도 자리에서 무너지지 않았다. 벌금을 냈고 합의금을 냈고 대표가 한 번 바뀌었을 뿐, 그대로 살아남았다. 거대 합의 협정 이후에도 미국 담배 회사들은 영업을 이어갔고, 23억 달러 벌금을 낸 화이자는 글로벌 1위 제약사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 명의 거미가 짠 거미줄로 그들이 구축한 거대한 성곽과 도도한 흐름을 막을 수는 없는 법이다.

호루라기를 분 자들은 늘 자신의 자리에서 쫓겨나 새로운 모습으로 새로운 곳에 자리를 구해야 했다. 아라크네가 기괴한 모습으로 변신하여 어수룩한 곳에서 거미줄을 엮고 있어야 하듯이.

다행히도 용기있는 고발자들은 적어도 거미가 거미답게 살 수 있도록 사회가 제공하는 약속의 시스템에 기댈 수 있다. 그 보상 시스템의 역사는 우리가 흔히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고 오래되었다.

그들에게 보상한 역사

이 보상 시스템의 가장 오래된 흔적은 7세기 말 영국의 한 켄트 왕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695년 켄트의 위트레드 왕이 한 가지 공포를 내렸다. 안식일에 일하는 자에게 벌금을 매기되, 그 사실을 신고한 자에게 벌금의 절반과 그 노동에서 나온 이득을 함께 준다는 것이었다. 단순한 처벌 규정이 아니다. 이것이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내부고발자 보상 입법으로 알려진 사례다.

그 뒤 14세기에 이르러 영국 의회가 정식으로 퀴탐(qui tam) 법령을 입법하기 시작하였고, 그 후 수백 년 동안 영국 법체계 안에서 이 제도가 발달하였다. 곡물 측량 부정을 막기 위해서, 왕실의 공적 임무를 맡은 자가 뇌물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세관 공무원이 사익을 추구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1444년 한 해에만 의회가 다섯 개의 퀴탐 법령을 한꺼번에 통과시킨 일이 있을 정도로, 중세 후기 영국에서 이 제도는 권력 감시의 핵심 도구였다.

이 모든 입법의 뿌리에는 단 하나의 통찰이 있었다. 권력은 모든 곳을 감시할 수 없다는 자각이다. 어떤 왕도, 어떤 정부도, 거대한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일어나는 모든 부정과 위해를 다 잡아낼 수 없다. 중세 영국에는 정식 경찰 조직이 없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은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의 눈을 빌리는 것이다. 그 눈을 그저 빌리는 것이 아니라, 합당한 값을 매겨 사들이는 것이다. 시민의 양심에 무임승차하지 않고 그것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 이 통찰이 무려 1,300년 전부터 인류 사회에 존재했다는 사실은 결코 가벼운 무게가 아니다.

이 옛 법리를 미국 연방법에 다시 심은 것이 1863년의 일이다.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때였다. 북군에 군수품을 납품하던 업자들의 행태가 도를 넘고 있었다. 화약 대신 모래를 섞어 팔고, 죽은 노새와 병든 말을 군마라고 속여 팔고, 좀먹은 담요와 구멍 난 군화를 새 물품이라며 넘겼다. 한 군납업자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배짱만 있으면 정부에 무엇이든 어떤 값에든 팔 수 있다." 군대가 부실 군수품으로 무너지면 전쟁은 패한다. 그러나 정부가 일일이 모든 납품을 검사할 수는 없었다. 1863년 3월 2일, 에이브러햄 링컨이 한 장의 법안에 서명하였다. 바로 '허위청구법(False Claims Act)'으로서 '링컨 법'이라고도 불린다. 시민 개인이 정부를 대신해 소송을 제기하고, 회수된 금액의 일부를 보상으로 받는 제도. 영국 중세의 옛 법리가 그렇게 대서양을 건너 새로운 자리를 잡은 것이다.

허위청구법은 라틴어에 기초한 것으로 "왕을 위해, 또한 자신을 위해 이 사건에서 소송하는 자(Qui tam pro domino rege quam pro se ipso in hac parte sequitur)"라는 뜻이다. 줄여서 퀴탐(qui tam)이라 한다. 이 한 줄이 호루라기 부는 자의 자리를 정확히 정의한다. 그는 권력을 위해서만 일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를 위해서만 일하는 것도 아니다. 권력과 자기를 동시에 위해 일하며, 그 양쪽 모두에게서 합당한 대가를 받는 자다.

링컨 법은 한동안 잊혔다. 1943년의 개정으로 보상이 거의 없어지면서 사실상 사문화되었다. 그러다가 1986년, 아이오와주 출신의 공화당 상원의원 찰스 그래슬리가 이 법을 다시 살려내었다. 그는 군수 업계의 비리를 폭로한 한 호루라기 부는 자의 이야기를 들은 뒤, 이 법을 부활시키는 일에 매달렸다. 1986년 개정안은 보상 비율을 회수금의 15%에서 30% 사이로 보장하고, 호루라기 부는 자에 대한 보복을 처벌하며, 시민이 직접 소송을 끌고 갈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때부터 허위청구법은 진정한 고발자의 비빌 언덕이 되었다.

그 이후의 실적은 경이롭다. 1987년부터 2019년까지 미국 정부가 허위청구법으로 회수한 금액이 621억 달러에 달하였고, 그중 447억 달러가 호루라기 부는 자가 시작한 사건에서 나왔다. 2024년 기준 허위청구법 사건의 83%가 호루라기 부는 자에 의해 시작된다. 그래슬리 의원이 회고하며 한 말이 있다. "호루라기 부는 자 없이 낭비와 부정을 잡아내는 것은, 녹슨 가위로 옥수수밭을 추수하는 것과 같다."

이 통찰은 다른 영역으로 번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메이도프 폰지 사기 사건이 잇따라 터지면서, 미국 사회는 금융 영역에도 같은 도구가 필요함을 절감하였다. 2010년 도드-프랭크 월스트리트 개혁법이 통과되면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산하에 호루라기 부는 자 보상 프로그램이 신설되었다. 증권법 위반 정보 제공자에게 환수 금액의 10%에서 30%까지를 보상으로 지급한다. 2023년 5월, SEC는 사상 최대 규모인 약 2억 7,9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3,700억 원을 단 한 명의 호루라기 부는 자에게 지급하였다. 2024 회계연도 말 기준 SEC가 호루라기 부는 자에게 누적으로 지급한 금액은 22억 달러를 넘으며 444명에게 돌아갔다. 이 보상금은 위반자에게서 거둬들인 과징금에서 나오므로 납세자에게는 한 푼의 부담도 가지 않는다.

이 거대한 보상의 배후에는 아주 단순한 셈법이 있다. 한 사람의 호루라기로 사회가 환수한 부정 이득이 수십억 달러라면, 그중 일부를 그에게 보상으로 주는 것이 사회 전체로 보아 남는 장사다. 호루라기를 분 자가 적어도 자기 직장을 잃은 만큼은 보상받아야 다음 호루라기 부는 자가 나타날 것이고, 그래야 다음 부정도 잡힐 것이다. 호루라기 부는 자에 대한 보상은 시혜가 아니라 사회의 자기 보호 비용이다. 1,300년 전 위트레드 왕이 안식일 노동의 신고에 벌금의 절반을 약속한 그 통찰이, 21세기 SEC의 3,700억 원 보상으로 이어진 것이다.

한국의 제도, 더디게 자라난 그늘

한국에도 비슷한 제도가 있다. 다만 그 출발이 늦었고 자라난 그늘이 옅다. 한국에서 내부고발자를 보호하는 첫 본격적인 입법은 2001년의 부패방지법이었다. 미국이 1863년 링컨 법을 가진 것에 비하면 138년이 늦은 셈이다. 부패방지법은 공직자의 부패 행위에 한정된 보호 제도였고, 일반 기업이나 사적 영역의 호루라기까지 보호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였다. 이 한계를 메우기 위해 2011년에 새로 제정된 것이 공익신고자 보호법이다. 국민의 건강과 안전, 환경, 소비자 이익, 공정 경쟁이라는 다섯 분야에서 일어난 위반행위를 신고한 자를 보호하고 보상하는 법이다.

법의 골격은 이렇다. 호루라기 부는 자가 신원을 드러내지 않고 변호사를 통해 비실명으로 신고할 수 있고, 신고 때문에 받은 해고나 징계는 무효가 되며, 권익위원회가 보호 조치를 명할 수 있다. 그 신고로 정부가 환수한 금액이 있으면 그 금액의 4%에서 20%까지를 보상금으로 받을 수 있다. 2024년 8월에 시행된 개정법은 그 보상금의 상한선마저 폐지하였다. 2011년 법 시행 이후 권익위원회에 접수된 공익신고는 첫해 292건에서 2022년에는 3,266건으로, 10여 년 만에 10배 이상 늘었다.

그러나 법조문이 단단해졌다고 해서 한국 사회의 호루라기 풍토가 미국이나 유럽처럼 단단해진 것은 아니다. 이문옥과 김광호의 사례가 그것을 정확히 가리킨다. 이문옥은 1990년에 호루라기를 불었고 6년 법정 투쟁을 거쳐서야 무죄를 확정받았다. 그가 호루라기를 분 시점은 한국에 아직 어떤 보호법도 없던 때였으나, 보호법이 제정된 2011년 이후의 사례인 김광호 역시 한국에서는 해고와 기소를 당하였다. 권익위의 개입으로 해고가 무효화되고 6개월 만에 복직한 것이 그가 한국 제도에서 받은 보호의 전부였다. 회사가 만들어 놓은 사내의 자리는 이미 사라진 뒤였으니, 그는 명예퇴직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받은 진짜 보상은 미국 NHTSA가 결정한 280억 원이었다.

법은 있으나 그 법이 호루라기 분 자를 권력의 보복으로부터 진짜로 떼어 놓지 못하는 풍경이 한국에서 반복된다. 보호법이 있어도 회사가 그들에게 다시는 일할 자리를 주지 않으면 그것은 보호법이 아니다. 보상금이 있어도 자기 산업계에서 영구히 퇴출되면 그것은 보상이 아니다. 한국 사회가 미국이 1863년부터 쌓아 온 제도의 두께를 따라잡으려면, 법조문 하나의 개정으로는 부족하다. 회사가 그들을 다시 받아들이는 풍토, 사회가 영웅으로 보는 시선, 그 두 가지가 함께 자라야 비로소 법이 작동한다. 한국 사회에 들어찬 부패와 부실의 수많은 정황을 생각하면, 더 단단한 제도와 더 너른 안목이 절실한 때이다.

제도의 그림자

그러나 이 제도가 밝은 면만 가진 것은 아니다.

허위청구법과 SEC 프로그램이 만든 거대한 보상금 체계는 의도하지 않았던 그림자도 함께 키웠다. 2012년 미국 국세청은 스위스 최대 금융 그룹 UBS의 거대한 탈세 방조 사건을 폭로한 자에게 1억 400만 달러, 약 1,130억 원을 보상으로 지급하기로 결정하였다. 그 호루라기를 분 자는 그 회사의 전 직원이었던 브래들리 버켄펠드였다. 그가 어떤 인물인가. UBS의 개인 재무상담사로 일하며 미국 부유층 1만 7천 명이 200억 달러의 세금을 포탈하도록 도운 당사자였다. 그는 미국에 입국하다가 탈세 혐의로 체포되었고, 그 자리에서 폭로자로 변신하였다. 40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아 2년 6개월을 복역하고 가택연금 중에 보상금이 결정되었다. 호루라기를 분 것은 양심의 결단이 아니라 자기가 잡혔기 때문이었다.

미 국세청 내부에서는 죄인에게 보상금을 지급해야 하느냐를 두고 격론이 벌어졌다. 그러나 보상을 거부하면 다음 호루라기가 끊긴다는 우려 때문에 결국 지급이 결정되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그림자가 자라고 있다. 2012년 한 해 32건이던 공익 신고가 2016년에는 2,647건으로 늘었다. 5년 만에 80배가 된 것이다. 보상금이 제도화되자 호루라기 불기의 동기가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양심의 호루라기가 있고, 직업적 양심의 호루라기가 있고, 보상금을 노린 호루라기도 함께 들어오게 된 것이다. 권익위 공무원들이 어느 해 제보자에게 4억에 가까운 보상금이 신청되어 깜짝 놀랐는데, 정작 결정적 제보를 한 당사자는 그런 보상금 제도가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일화가 언론에 보도된 일이 있다.

그러나 이 한계가 제도를 부정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양심의 호루라기 백 명을 키우려면 보상금을 노린 호루라기 열 명도 함께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사회의 현실이다. 그 열 명을 두려워해 백 명의 양심을 외면한다면 사회는 다시 침묵의 바다로 돌아간다. 부정이 들끓고 결함이 묻히고 분식이 쌓이는 그 바다로. 그러니 그림자가 있어도 제도는 가야 한다. 다만 사회는 그 그림자를 의식하면서, 양심의 호루라기를 알아보는 안목을 함께 길러야 한다. 결국 짜는 자의 마음을 알아보는 일은 제도의 일이 아니라 사회의 눈이 하는 일이다.

압살할 것인가 포용할 것인가

여기까지가 사회와 제도의 자리였다. 그렇다면 기업은 이 풍경 앞에서 어떤 자리에 서야 하는가.

호루라기 소리에 직면한 기업 앞에는 오랫동안 두 갈래의 길이 놓여 있었다. 압살의 길과 포용의 길이다. 응당 고발자가 지극히 미울 것이다. 하지만 기업은 이 두 가지 길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압살의 길은 호루라기 부는 자를 짓밟는 길이다. 그를 해고하고 기소하고 평판을 무너뜨려 다시는 같은 일을 반복할 사람이 나오지 못하도록 본보기로 삼는다. 브라운앤윌리엄슨이 와이건드에게 했던 일이 그러하였다. 그러나 그 압살의 끝은 무엇이었던가. 2,060억 달러 합의 협정이었다. 미국 4대 담배회사가 함께 짊어진 그 거대한 합의는 한 명의 호루라기를 압살하려 한 산업의 자업자득이었다.

압살의 길이 늘 더 큰 패배로 돌아오는 이유는 단순하다. 호루라기 부는 자를 짓밟아도 호루라기가 멈추지 않는 것이다. 한 명을 압살하면 다음 호루라기가 더 큰 매체로, 더 결정적인 시점에 분다. 와이건드를 짓밟은 결과로 담배 산업은 그가 짠 수의 정확한 내용을 모두 공식 합의 협정의 내용으로 받아들여야 하였다. 한 명의 호루라기를 인정하고 받아들였다면 들지 않았을 비용은 대단히 크다. 그래서 압살은 비싸다. 단기에는 기업을 보호하는 듯하지만, 장기에는 기업을 더 큰 위기로 끌고 간다.

다른 갈래에 포용의 길이 있다. 호루라기 부는 자가 외부로 나가기 전에, 그가 회사 안에서 안전하게 호루라기를 불 수 있는 통로를 만드는 길이다. 이를 위해 발달한 제도가 윤리 핫라인(Ethics Hotline)이다. 회사가 외부 독립 기관을 통해 익명의 제보 채널을 운영하고, 제보자에게 어떠한 보복도 없을 것을 약속하며, 제보된 사안을 진지하게 조사하여 시정하는 시스템이다. 미국 사베인-옥슬리법은 2002년부터 상장 기업에 이러한 비밀 보고 채널의 의무화를 도입하였다. 미국 공인부정조사관협회(ACFE)의 '2024 부정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조직에서 일어난 부정행위의 적발 경로 중 가장 큰 비중인 43%가 내부 제보로부터 시작된다. 다른 어떤 적발 방법보다 세 배 이상 많은 비중이다. 그리고 익명 제보 핫라인을 운영하는 조직의 부정 손실은 그렇지 않은 조직에 비해 절반 수준에 그친다. 핫라인 하나의 유무가 그토록 큰 차이를 만드는 것이다.

이 차이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어차피 호루라기는 누군가가 불 것이다. 부정이 있으면 그것을 본 사람이 있고, 본 사람은 언젠가 어디선가 그것을 발설한다. 차이는 그것이 어디서 발설되느냐이다. 회사 안의 안전한 통로에서 발설되면 회사는 외부에 알려지기 전에 시정할 기회를 갖는다. 회사 밖의 매체나 정부 기관에서 발설되면 회사는 외부의 처벌과 평판 추락을 피할 수 없다. 같은 호루라기인데 어디서 부느냐에 따라 결과가 천양지차이다.

그래서 지혜로운 기업은 외부에 폭로되기 전에 내부에서 호루라기가 불릴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 놓는다. 윤리 핫라인을 운영하고, 제보자 보호를 명문화하며, 경영진이 제보를 진지하게 다룬다는 신호를 조직 전체에 보낸다. 이런 기업은 호루라기 부는 자를 적이 아니라 경고등으로 본다. 경고등이 켜지면 그것을 끄려 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이고, 경고등이 가리키는 곳을 살피는 자는 지혜로운 자이다. 호루라기 부는 자도 그러하다. 그가 부는 호루라기는 회사를 무너뜨리려는 적의 신호가 아니라, 회사가 미처 보지 못한 곳에 무엇이 있다는 경고이다. 그 경고를 받아들이는 회사가 무너지지 않고, 그 경고를 짓밟는 회사가 결국 무너진다.

기업의 태도라는 점에서 본다면, 호루라기 부는 자는 사실 적이 아니라 동지에 가깝다. 회사의 이름과 평판이 외부에서 무너지기 전에, 회사 안의 어둠을 누군가가 비추어 주는 것이다. 회사가 그 호루라기를 받아들이면 회사는 살고, 호루라기를 부수면 회사도 함께 부서진다. 와이건드를 압살한 브라운앤윌리엄슨이 결국 마스터 합의 협정의 무게를 짊어졌듯이.

물론 모든 호루라기가 진실은 아니다. 어떤 호루라기는 개인의 원한에서, 어떤 호루라기는 보상금에 대한 욕심에서, 어떤 호루라기는 단순한 오해에서 불릴 수 있다. 그러므로 기업은 모든 호루라기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모든 호루라기를 일단 진지하게 듣고, 수의 흠을 검증하는 절차를 마련하는 일, 그것이 기업이 갖추어야 할 자세이다. 그것이 압살의 길과 포용의 길을 가르는 분수령이다.

거미는 익충이다

다시 신화로 돌아가 본다.

아라크네는 거미가 되었고 그녀가 짠 베와 수는 신들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였다. 한 올의 흠도 없는 수를 짰음에도 짠 자가 처벌받은 그 결말은 냉혹하다. 그러나 신화의 차가움이 우리 시대의 결론이어야 할 까닭은 없다. 인류는 그 차가움을 그대로 두지 않고, 1,300년 전 위트레드 왕의 작은 공포에서 시작해 1863년 링컨의 서명을 거치고 1986년 그래슬리의 부활을 지나 2010년 도드-프랭크의 확장에 이르기까지, 거미에게 합당한 자리를 마련하는 도구들을 발명해 왔다. 이 도구들이 완벽하지는 않다. 그림자도 있고 한계도 있다. 그러나 도구가 있는 사회와 없는 사회는 다르다. 도구가 있는 사회에서는 짠 자가 거미가 되는 비율이 줄어들고, 도구가 없는 사회에서는 짠 자가 그대로 거미가 된다.

여기서 거미라는 존재를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신화는 거미를 처벌의 결과로 그렸으나, 현실의 거미는 그저 처벌받은 존재가 아니다. 거미는 우리 집과 우리 들판에서 모기와 파리와 진딧물을 잡아 청결을 지키는 익충(益蟲)이다. 거미가 없는 집은 곧 해충이 들끓는 집이 된다. 거미가 거미줄을 친다는 것은 우리 일상의 위생을 누군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떠받치고 있다는 뜻이다.

호루라기 부는 자들도 그러하다. 그들이 짜는 거미줄은 권력자에게는 거추장스러운 것이지만, 사회의 위생을 지키는 보이지 않는 그물이다. 그들이 없는 사회는 곧 부패가 들끓는 사회가 된다. 결함이 은폐되고, 분식이 쌓이고, 부작용이 묻힌다. 그러니 거미를 없애면 주변이 깨끗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더러워진다. 이 깨달음 위에서 사회는 호루라기 부는 자에 대한 보호와 보상의 제도를 마련해야 하고, 기업은 호루라기 부는 자에 대한 압살이 아닌 포용의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그것이 신들도 거미도 함께 사는 길이다.

옛 사람들은 충언역이이리어행(忠言逆耳而利於行)이라 하였다. 충성된 말은 귀에 거슬리지만 행함에는 이롭다는 뜻이다. 같은 책 같은 자리에 또 한 줄이 있다. 양약고구이리어병(良藥苦口而利於病). 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병에는 이롭다는 것이다. 호루라기 소리는 그러한 약이며, 그러한 충언이다. 약을 거부하는 환자가 병으로 무너지듯이, 충언을 거부한 임금이 나라를 잃듯이, 호루라기를 압살한 기업은 끝내 자신을 잃는다.

그렇다면 호루라기를 부는 자만이 영웅인가. 그렇지 않다. 호루라기를 부는 자가 있어도, 그 소리를 들을 귀가 없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신화의 비극이 그것이었다. 아라크네는 한 올의 흠도 없는 수를 짰으나, 그것을 들어줄 귀가 신들에게는 없었다. 그래서 짠 자만 거미가 되었다. 우리 시대의 비극도 같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호루라기를 부는 자가 적어서가 아니라, 그 소리를 듣고 받아들일 귀가 사회와 기업에 없을 때, 거미는 거미로 남는다.

호루라기 부는 자가 있고, 그것을 들을 사회의 귀가 있고, 그것을 받아들일 기업의 마음이 있을 때, 비로소 신화의 차가운 결말은 우리 시대 바깥으로 밀려난다. 부는 자와 듣는 자, 그 두 사람이 함께 사회를 짠다. 한 사람만으로는 짤 수 없는 수가 그 두 사람의 손에서 비로소 짜인다.

거미는 거미줄을 친다. 그러나 거미를 익충이라 부를 줄 아는 눈이 있어야, 거미줄도 비로소 우리 집을 깨끗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