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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천리마리더십

[낙동포럼] 미용실 언니

by 변리사 허성원 2024. 4. 26.

미용실 언니

 

"오늘 강의를 해주실 강사님을 저는 '미용실 언니'라 부릅니다. 왜 '미용실 언니'일까요?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최종적으로 선발된 미스코리아에게 지금 누가 생각나느냐고 물으면 미용실 언니가 생각난다고 하는 사람이 많잖아요? 저는 오랫동안 사업을 해오면서 분쟁 해결, 인증 통과 등 수많은 난관을 만났습니다. 그 난관들을 하나씩 무사히 넘길 때마다 이 분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겁니다. 그렇게 날아갈 듯 기쁜 순간에 왜 항상 이 분이 생각났을까요?"

지난 주 논산에서 열린 그린푸드조합의 행사에 강의를 요청받았었다. 강의에 앞서 조합의 김동환 회장이 청중들에게 인사를 하면서 나를 '미용실 언니'라 소개한 것이다. 그 설명을 듣고 보니 그건 너무도 황송한 별호다. 고객과 대리인으로 만나 인연을 맺은 게 30년도 더 되었는데, 그동안 수많은 크고 작은 일을 가지고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며 공감하고 격려를 주고받다보니 그렇게 쌓인 정과 의리가 그렇게나 두터워졌나 보다.

살아오면서 사람들이 나를 평가한 여러 가지 호칭을 들어본 적이 있다. 잡다한 지식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 잡학다식이라 불리기도 하고, 젊은 시절에 특허 소송에서 워낙 치열하게 덤벼들었기에 '백전불패 싸움닭'이라고 불리기도 했었다. 하지만 고객의 성공을 돕는 일을 존재이유로 하는 우리 같은 전문직에게는 '미용실 언니'라는 호칭만큼 영광스런 평가는 없을 것 같다. 

이와 달리 가끔 가슴 뜨끔한 소리를 들을 때도 있다. 우리 사무실에서 실무를 하다 오래 전에 개업한 변리사가 찾아와 소주를 마시면서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제가 사무실 담당자들을 사정없이 혼내고 있을 때, 문득 허 변리사님이 생각났습니다. 허 변리사님에게 혼날 때는 나는 훗날 절대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 다짐했었는데, 어느새 허 변리사님과 똑같이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놀라곤 합니다." 술자리에서 편하게 웃으며 한 말이긴 하지만, 듣는 내 가슴은 서늘했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고 내가 그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불리는가에 대해 가급적이면 신경을 쓰지 않으려 애써왔다. 내 개인이나 내 삶을 어떻게 정의하고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는 오직 나의 권리에 속하는 것이라 믿으며 그렇게 낯 두껍게 살면 된다고 여겼다. 그런데 '미용실 언니' 혹은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 등과 같은 나에 대한 평판을 듣고 보면, 내 삶의 질이나 행복이 혹은 내 삶의 의미가 타인의 시선이나 판단에 심대한 영향을 받는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아는 나보다 남이 보는 내가 진정한 '나'가 아닐까, 내가 꾸준히 노력하는 이유는 남이 보는 나를 더 좋게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닐까. 나를 바라보는 타인들이 없어도 내 삶의 모슴은 지금과 같을까. 사실 많이들 그러하겠지만 남들이 내게 내린 판단이나 평가에 쉬이 휘둘린 적이 적지 않다. 남의 작은 비판에 분노하여 유리그릇처럼 깨져버리기도 하고, 따뜻한 격려 한 마디에 종일 눈 오는 날 강아지처럼 촐싹대며 좋아하고, 뻔한 입 발린 칭찬에 교만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기도 했다. 이런 걸 보면, 내 정체성을 결정할 전권이 오직 나에게만 있는 것이니 타인의 평가는 의미가 없다고 아무리 우겨본다 하더라도, 그건 역시 모두 나의 오만이고 나의 게으름이다.

인간이라면 진정 탈속한 성인이 아닌 다음에야 타인의 평가에 어찌 무심할 수는 있겠나. 인간(人間)이란 말 자체가 '사람 사이'라는 뜻이니, 사람은 누구나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사람됨이 결정되며, 타인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또 영향을 주면서 살 수밖에 없다. 나도 지금까지 많은 이들로부터 영향을 받아 나름 이만큼 성장해왔고,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좋든 나쁘든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미용실 언니’처럼 긍정적인 영향이라면 너무도 다행하고 감사한 일이다. 그 반면에 나를 부정적인 이미지로 기억하거나 연상하는 사람도 필시 적지 않을 터, 그건 부끄럽고도 미안한 일이다. 

맛있는 음식을 봤을 때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 증거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진정 기쁜 일이 있을 때 생각나는 사람은 그 일에 가장 좋은 영감을 준 사람일 것이다. 어쩌다 그런 사람이 잠시 되어보니 그건 더없이 행복한 경험이더라. 그런 행복을 더 많이 경험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 낙동포럼에 240502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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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의 낙동 포럼에는 제목을 달리하여 실렸네요.

 

[낙동포럼] 기쁜 일이 있을 때 생각나는 사람

(부산ㆍ경남=뉴스1) 허성원 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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