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의 비르투, 그 구체적인 덕목들
(* 마키아벨리의 비르투는 로마의 비르투스도 기독교적 덕성도 아니다. 포르투나에 맞서 자기 운명을 주조하는 실효성의 덕이며, 도덕과 비도덕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역량이다. 이 개념은 결단의 신속함, 과감함, 프루덴차, 아스투치아, 포르차, 유효한 잔혹함, 유연성, 자립, 그란데차의 아홉 덕목으로 분해된다. 각 덕목은 『군주론』과 『로마사 논고』의 구체적 장에 뿌리내리고 있으며, 『전술론』과 『피렌체사』, 『카스트루치오 카스트라카니의 생애』가 이를 보강한다. 페르난도, 카스트루치오, 세베루스, 히에론은 여러 덕목을 동시에 구현한 초상이며, 근대에 이르러 카보우르와 리콴유로 재현된다. 『군주론』의 개인적 비르투와 『로마사 논고』의 시민적 비르투는 배타적이지 않고 창설기와 보존기로 단계적으로 결합한다. 덕목의 목록은 고정된 교리가 아니라 포르투나와 대면할 때마다 재조립해야 하는 장비의 총체이며, 이 재조립의 능력이 비르투의 핵심이다.)
1. 비르투라는 용어의 위치
마키아벨리가 사용하는 이탈리아어 virtù는 로마의 virtus에서 유래했으나 그 의미를 크게 벗어나 있다. 로마적 비르투스는 전장에서의 남성적 탁월함, 곧 용기를 중심으로 구축된 개념이었다. 키케로와 세네카를 거치며 이것은 실천적 지혜와 정의, 용기, 절제라는 네 기본 덕목으로 체계화되었고,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에 이르러 신학적 덕목인 믿음, 소망, 사랑이 그 위에 얹혔다.
마키아벨리는 이 두 전통 모두와 거리를 둔다. 그는 덕이라는 말로 선함이나 도덕적 완성을 지시하지 않는다. 『군주론』 15장의 유명한 구절에서 그는 군주가 모든 덕을 실제로 갖추는 것은 오히려 해로우며, 덕처럼 보이는 것들이 파멸을 부를 수 있다고 말한다. 비르투는 선의 총합이 아니라 성공의 조건이며, 역사의 무대에서 자기 운명을 주조해내는 자의 역량이다.
2. 결단의 신속함
비르투의 첫 번째 덕목은 결단의 신속함이다. 마키아벨리가 체사레 보르자에게서 발견한 핵심이 바로 이 신속성이었다. 기회가 나타났을 때 지체하지 않고, 판단이 선 순간 실행까지의 간격을 최소화하는 능력이다. 『군주론』 7장에서 그는 보르자가 부친 알렉산데르 6세의 갑작스러운 죽음이라는 단 하나의 변수 외에는 모든 일을 신속히 처리했다고 평가한다. 로마냐 평정, 반란 주모자들의 제거, 대리인 레미로 데 오르코를 통한 질서 수립이 모두 같은 속도감을 공유했다. 마키아벨리가 여기서 쓰는 말이 celerità, 곧 속도다.
『로마사 논고』 3권 6장의 음모론은 같은 덕목을 뒤집어 보여준다. 마키아벨리는 음모가 실패하는 가장 흔한 원인이 실행 지연이라고 분석한다. 결정과 실행 사이의 시간이 길수록 누설과 반전의 가능성이 커진다. 음모라는 극단적 정치 행위에서 속도는 성공의 절반 이상을 결정한다. 『로마사 논고』 1권 33장은 이를 공화국 차원으로 확장한다. 사태가 작을 때 처리하지 않으면 커져서 감당할 수 없게 된다는 구절은 정치적 지체가 가진 비용을 명확히 드러낸다. 신속함은 개인 군주의 기질을 넘어 정치체 전반의 운영 원리다.
3. 과감함
두 번째 덕목은 과감함이다. 이 덕목의 대표 구절은 『군주론』 25장 후반부에 있다. 마키아벨리는 포르투나를 범람하는 강에, 그리고 여성에 비유한 뒤, 신중한 자보다 과감한 자가 포르투나를 장악한다고 단언한다. 포르투나는 여성이므로 소심한 자보다 과감한 자에게 복종한다는 그의 수사적 주장은 당대의 감수성을 그대로 반영한 비유이지만, 말하려는 바는 분명하다. 보수적 계산과 안전한 수에만 의존하는 자는 역사의 결정적 국면에서 패배한다.
『로마사 논고』 3권 44장은 이 명제를 로마사의 여러 사례로 뒷받침한다. 스키피오와 한니발, 파비우스 막시무스 같은 상반된 기질의 장군들을 비교하면서 마키아벨리는 대담한 결단이 결정적 국면에서 왜 우위에 서는지 설명한다. 예측과 방비를 넘어서는 돌발성이 적의 계산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다만 이 덕목은 독립적으로 기능하지 않는다. 과감함이 시대적 국면과 맞지 않을 때 오히려 파멸을 부를 수 있다는 경고가 같은 장에 공존한다. 과감함은 프루덴차의 통제 아래 있을 때만 비르투가 된다.
4. 프루덴차
세 번째 덕목은 실천적 지혜로서의 프루덴차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프로네시스와 닿아 있으나 더 냉혹하다.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읽고, 자기 수단과 적의 수단을 정확히 가늠하며, 여러 악 가운데 덜한 악을 고르는 능력이다. 프루덴차의 성격을 가장 분명히 드러내는 대목은 『군주론』 15장이다. 마키아벨리는 여기서 존재해야 할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을 따라가는 자가 몰락을 피한다고 선언한다. 이상주의에 대한 결별 선언이며, 프루덴차를 현실 인식의 덕목으로 정의하는 출발점이다.
『군주론』 21장은 프루덴차의 실천적 측면을 보여준다. 중립을 택하는 군주가 양쪽 모두에게 버림받는다는 논의에서, 마키아벨리는 현명한 군주라면 모든 선택에 불편이 따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덜한 악을 고른다고 말한다. 『군주론』 3장에도 같은 인식이 반복된다. 모든 불편을 피하려 하는 것이 오히려 가장 큰 불편을 부른다는 것이다. 『로마사 논고』 1권 38장은 이를 공화국 차원으로 옮긴다. 결정을 미루고 중도에 머무르는 공화국은 결국 자기 파멸에 이른다는 경고다. 프루덴차는 낙관적 설계가 아니라 차악의 식별이며, 그 능력은 개인과 정치체 양쪽에 동시에 적용된다.
5. 아스투치아
네 번째 덕목은 교활함, 곧 아스투치아다. 『군주론』 18장의 사자와 여우 비유에서 여우에 해당하는 덕목이다. 함정을 간파하고, 약속을 상황에 따라 해석하며, 외관과 실체의 간극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운용한다. 마키아벨리는 약속을 지키는 것이 해로울 때 그것을 어기는 것이 현명함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이를 결코 경멸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인간이 선하기만 하다면 교활함은 악덕이겠으나 인간은 선하지 않으므로 교활함은 필수다.
같은 덕목이 『군주론』 19장에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사례로 구체화된다. 세베루스가 페스켄니우스 니게르와 클로디우스 알비누스를 차례로 제거하는 과정은 아스투치아가 실제 정치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주는 교과서적 장면이다. 『로마사 논고』 2권 13장은 이 덕목을 한층 노골적으로 정식화한다. 마키아벨리는 낮은 신분에서 높은 지위로 올라가는 자들은 힘보다 사기로 올라간다고 쓴다. 역사 속 창업자들이 공공연한 폭력보다 은밀한 계략에 더 의존했다는 관찰이다. 『로마사 논고』 3권 40장은 전장에서의 기만을 혐오스러운 일이 아니라 영예로운 일로 규정한다. 윤리적 평가의 영역을 이동시키는 이 구절이 아스투치아의 규범적 정당화를 제공한다.
6. 포르차
다섯 번째 덕목은 힘, 포르차다. 사자의 덕목이다. 법이 통하지 않는 지점에서 물리적 결정력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이자 그 의지다. 이 덕목의 선언적 구절은 『군주론』 6장에 있다. 마키아벨리는 무장한 예언자는 모두 승리했고 무장하지 않은 예언자는 모두 파멸했다고 단언한다. 사보나롤라의 실패가 동시대의 생생한 증거로 제시된다. 말의 힘은 칼의 힘 없이는 유지되지 않는다.
『군주론』 12장부터 14장까지는 이 덕목의 제도적 구현을 다룬다. 용병의 무용성, 원조군의 위험성, 자국군의 필수성이 순차적으로 논증된다. 14장에서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본업은 전쟁술이며 다른 어떤 직무도 이보다 앞서지 않는다고 쓴다. 포르차는 군주의 부차적 수단이 아니라 군주됨 자체의 조건이다. 24장은 이탈리아 군주들이 모두 같은 결함, 곧 자국군의 부재를 공유했다고 지적한다. 포르차의 결핍이 반도 전체의 비극을 설명하는 원인이다. 『로마사 논고』 2권 10장은 돈이 전쟁의 힘줄이라는 통념을 반박하고 병사의 질이야말로 전쟁의 실질이라 주장한다. 포르차는 경제력이 아니라 조직된 인간의 의지다. 『전술론』 전체는 이 덕목에 바쳐진 전문 저작이며, 마키아벨리가 평생 품었던 민병제의 꿈은 포르차를 시민적 기반 위에 세우려는 정치적 기획이었다.
7. 유효한 잔혹함
여섯 번째 덕목은 유효한 잔혹함, 곧 크루델타 베네 우사타다. 이 까다로운 덕목의 핵심 출처는 『군주론』 8장이다. 마키아벨리는 여기서 잔혹함을 잘 사용된 것과 잘못 사용된 것으로 명시적으로 구분한다. 한 번에 단행되어 더 큰 폭력의 재발을 막는 잔혹함은 비르투에 속하며, 시간을 두고 반복되는 잔혹함은 파멸로 이어진다. 시라쿠사의 아가토클레스와 페르모의 올리베로토 사례가 이 구분의 교보재로 등장한다.
『군주론』 17장은 잔혹함의 심리학을 다룬다. 두려움이 사랑보다 안전하다는 유명한 명제가 여기서 나오며, 동시에 증오는 반드시 피해야 한다는 경고가 덧붙는다. 잔혹함이 비르투가 되려면 증오의 문턱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여기서 정식화된다. 『군주론』 7장의 레미로 데 오르코 일화는 이 덕목의 연출법을 보여준다. 체사레 보르자가 로마냐의 질서를 세우기 위해 레미로에게 잔혹한 권한을 위임한 뒤, 질서가 잡히자 그 레미로를 광장에 토막 내어 세워두었다는 서술은 유효한 잔혹함의 가장 강렬한 장면으로 남았다. 가혹함의 책임은 대리인에게 돌리고 질서의 수혜는 군주가 거둔다.
『로마사 논고』 3권 1장은 이를 공화국 차원으로 확장한다. 마키아벨리는 모든 정치체가 주기적으로 초기의 엄격함으로 되돌아가는 충격을 필요로 한다고 본다. 유효한 잔혹함은 개인 군주의 기술만이 아니라 공화정의 자기 갱신 메커니즘이기도 하다. 『로마사 논고』 1권 9장은 같은 논리로 로물루스의 형제 살해를 변호한다. 창설자가 혼자 권력을 쥐기 위해 저지른 이 살해를 마키아벨리는 결과의 선함으로 정당화한다. 유효한 잔혹함은 창설 행위의 구조적 요소다.
8. 유연성
일곱 번째 덕목은 유연성, 곧 시대에 따라 자기 방식을 바꾸는 능력이다. 이 덕목의 고전적 출처는 『로마사 논고』 3권 9장이다. 마키아벨리는 시대에 따라 자신의 처신을 바꾸는 법을 아는 자에게는 운이 언제나 따른다고 쓴다. 이 구절은 『군주론』 25장의 비관적 결론과 짝을 이룬다. 25장에서 마키아벨리는 인간이 자신의 타고난 기질을 바꾸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한 번은 시대와 어긋날 수밖에 없다고 인정한다. 같은 문제를 두 저작이 정반대의 어조로 다루는 셈이다.
『로마사 논고』 3권 8장은 만리우스 카피톨리누스의 사례로 이를 구체화한다. 동일한 방식이 시대에 따라 영웅을 만들기도 하고 반역자를 만들기도 한다는 분석이다. 개인의 방법이 고정되어 있을 때 시대의 변동이 그를 배반한다. 『군주론』 18장 역시 유연성의 다른 얼굴이다. 상황에 따라 신의를 지키거나 어기는 군주의 태도는 윤리적 변덕이 아니라 시대와의 호흡이다. 유연성은 원칙 없음이 아니라 원칙이 상황에 종속되는 방식이다.
9. 자립
여덟 번째 덕목은 자립이다. 이 덕목의 선언적 출처는 『군주론』 6장이다. 모세, 키루스, 로물루스, 테세우스가 여기서 가장 위대한 창설자로 거론된다. 마키아벨리는 이들이 포르투나로부터 받은 것은 오직 기회뿐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자기 비르투로 만들어냈다고 강조한다. 자기 군대, 자기 제도, 자기 권위를 스스로 세운 자들의 계보다.
『군주론』 7장은 이 덕목을 반대 방향에서 조명한다. 프란체스코 스포르차는 자기 비르투로 밀라노의 군주가 되었고, 체사레 보르자는 부친의 힘과 운으로 지위를 얻었다. 마키아벨리는 두 사례를 나란히 놓고 후자가 전자보다 근본적으로 취약함을 지적한다. 타인의 무력과 운으로 얻은 권력은 그 기반이 사라질 때 함께 무너진다. 『군주론』 13장은 자립을 군사적으로 번역한다. 자국군 없는 군주국은 모두 허약하며, 원조군과 용병은 언제나 배신할 준비가 되어 있다. 24장은 자립한 군주가 포르투나의 변덕에 가장 덜 흔들린다는 명제로 논의를 매듭짓는다. 외부 요인에 의존하는 비중이 클수록 운명의 타격에 더 크게 흔들린다.
10. 그란데차
아홉 번째 덕목은 위대함에의 갈망, 그란데차다. 이것은 단순한 야심과 다르다. 자기 이름을 역사에 새기겠다는 의지이며, 동시에 자기 정치체를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충동이다. 그란데차의 비전은 『군주론』 마지막 장인 26장에 가장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이탈리아 해방을 호소하는 이 장에서 마키아벨리는 단순히 권력을 유지하는 군주가 아니라 이탈리아 전체를 외세로부터 구해낼 창설자를 부른다. 개인의 생존이 아니라 정치체의 위대함이 비르투의 궁극적 지향이다.
『군주론』 6장에서 거론된 네 창설자의 목록은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그들이 비르투의 모범인 이유는 단순히 성공했기 때문이 아니라 지속되는 정치체를 세웠기 때문이다. 8장의 아가토클레스가 끝내 비르투의 인물로 인정받지 못한 까닭도 여기 있다. 그는 권력을 얻었으나 영광을 얻지 못했고 창설자의 반열에 들지 못했다. 『로마사 논고』 1권 서문은 그란데차를 역사적 과제로 제시한다. 고대의 위대함을 다시 가르치기 위해 이 책을 쓴다는 선언이 그 과제의 정식화다. 『로마사 논고』 1권 6장은 그란데차의 정치적 귀결을 다룬다. 영토를 확장하는 공화국과 보존에 머무는 공화국을 비교하면서, 마키아벨리는 결국 확장하는 공화국만이 장기적으로 살아남는다고 결론짓는다. 로마와 스파르타, 베네치아의 비교가 이를 뒷받침한다. 개인 군주의 그란데차와 공화국의 그란데차는 결국 같은 원리의 두 표현이다.
11. 덕목들이 결합된 역사적 초상
개별 덕목은 실제 역사 속에서 홀로 작동하지 않는다. 여러 덕목이 한 인물에게 포개져 나타날 때 비르투가 가장 선명하게 현현한다.
아라곤의 페르난도는 마키아벨리가 『군주론』 21장에서 거의 당대 유일의 위대한 군주로 거론한 인물이다. 그는 종교를 명분 삼아 그라나다 원정을 일으켰고, 그 기간 내내 자국 귀족들을 자기 주위에 묶어두었다. 무어인을 카스티야에서 추방했으며, 아프리카와 이탈리아로 전쟁을 확장했다. 마키아벨리는 그의 모든 행동이 외견상 경건하고 정의로워 보였으나 실상은 끊임없는 권력 확장의 연속이었다고 평가한다. 종교적 외피와 정치적 실체의 분리, 이것이 아스투치아의 정점이었다. 동시에 그는 자기 군대를 육성했고 결단의 속도를 잃지 않았다.
카스트루치오 카스트라카니는 14세기 루카의 참주로, 마키아벨리가 별도의 전기를 쓸 정도로 애호한 인물이다. 가난한 출신에서 루카의 지배자로 올라섰고, 피렌체를 여러 차례 격파하며 토스카나 전체를 장악하기 직전까지 갔다. 그의 상승 과정은 마키아벨리에게 순수한 비르투의 표본처럼 보였다. 기회를 포착하는 감각, 군사적 과감성, 정치적 교활함, 인간에 대한 냉정한 인식이 모두 결합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는 젊은 나이에 역병으로 죽었고, 마키아벨리는 이를 포르투나가 비르투에 가하는 최종적 한계의 사례로 제시한다. 허구에 가까운 일화들로 장식된 이 전기에서 마키아벨리는 카스트루치오를 개인적 비르투의 화신인 동시에 루카라는 정치체의 공적 비르투를 되살리려 한 인물로 그린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는 『군주론』 19장에서 사자와 여우를 가장 완벽하게 결합한 황제로 상찬된다. 그는 디디우스 율리아누스를 제거하기 위해 니게르를 지원하는 척했고, 니게르가 자신감을 얻어 움직이자 그를 분쇄했다. 이어 동맹이었던 알비누스를 같은 방식으로 처리했다. 세베루스는 약속과 배신, 관용과 잔혹을 상황에 따라 자유자재로 운용했으며 죽을 때까지 권력을 유지했다. 마키아벨리는 새로 즉위한 군주라면 반드시 세베루스를 모방해야 한다고까지 말한다.
시라쿠사의 히에론 2세는 『군주론』 6장에서 자립의 교과서적 사례로 간략히 언급된다. 시민에서 군주로 올라선 그는 옛 군대를 해체하고 새 군대를 조직했으며, 옛 동맹을 끊고 새 동맹을 맺었다. 자기 기반을 처음부터 다시 세운 것이다.
보다 근대에 가까운 사례로 카밀로 카보우르를 들 수 있다. 19세기 중반 피에몬테-사르데냐 왕국의 수상이었던 그는 이탈리아 통일이라는 마키아벨리의 오랜 꿈을 실질적으로 수행한 인물이다. 그의 수법은 마키아벨리적 비르투의 근대적 번역처럼 읽힌다. 크림 전쟁에 참전하여 프랑스와 영국의 환심을 샀고, 플롱비에르에서 나폴레옹 3세와 밀약을 맺어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을 유도했다. 적절한 순간에 가리발디의 비정규군을 묵인하면서도 동시에 견제했으며, 남부 왕국을 병합할 때는 주민투표라는 외피를 씌웠다. 명분과 실리의 분리, 기회의 포착, 동맹의 유연한 재편이 모두 구현되어 있었다.
리콴유 또한 비르투의 20세기적 변형으로 읽을 여지가 있다. 말레이시아 연방에서의 축출이라는 포르투나의 타격을 오히려 독립국가 건설의 계기로 전환했고, 법치와 규율을 앞세운 잔혹함을 초기에 단행하여 이후의 질서를 구축했다. 반대파를 명예훼손 소송으로 제거하는 방식은 세베루스적이라기보다 페르난도적이었다. 외견의 합법성 아래 실질의 권력을 관철한 것이다.
12. 비르투와 포르투나의 변증법
비르투의 모든 덕목은 결국 포르투나라는 상대를 전제로 한다. 『군주론』 25장에서 마키아벨리는 포르투나를 두 가지 비유로 묘사한다. 하나는 범람하는 강이다. 평소에 제방을 쌓아둔 지역은 홍수가 와도 견디지만, 방비하지 않은 땅은 휩쓸린다. 다른 하나는 여성이다. 마키아벨리 당대의 수사적 관습을 그대로 반영한 이 비유는 오늘의 감수성으로는 불편하지만, 그가 말하려 한 것은 포르투나가 기계적 법칙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작동한다는 점이었다. 주체가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응답이 달라진다.
이 변증법에서 비르투는 단순한 대응 능력이 아니라 포르투나의 영역을 축소시키는 능력이다.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예비와 과감성과 유연성을 통해 운의 지분을 반으로 줄일 수는 있다는 것이 마키아벨리의 계산이다. 반은 여전히 운이 지배하지만 반은 인간이 장악할 수 있다. 이 반을 장악하는 능력이 비르투다.
13. 개인적 비르투와 시민적 비르투
아홉 덕목의 출처 분포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사실이 드러난다. 『군주론』은 개인 군주의 비르투에 집중되어 있어 결단, 과감, 교활, 잔혹, 자립의 출처가 이 저작에 몰려 있다. 반면 유연성, 프루덴차의 공적 차원, 그란데차의 공화국적 확장은 『로마사 논고』에서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포르차는 두 저작에 걸쳐 있으며 『전술론』이 그것을 기술적으로 보강한다.
이 분포는 마키아벨리 안에 두 개의 비르투 개념이 공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나는 창설기의 비르투, 곧 비상한 개인이 혼란 속에서 질서를 세우는 능력이다. 다른 하나는 보존기의 비르투, 곧 시민 다수가 공유하는 기질로서의 공공심이다. 『군주론』은 전자를, 『로마사 논고』는 후자를 중심에 두지만 두 저작은 서로를 배제하지 않고 보완한다. 마키아벨리는 로마가 위대했던 이유를 개별 영웅이 아니라 시민 다수가 공유한 비르투에서 찾는다. 이것은 공공의 일에 자기 이익을 종속시키는 능력이며, 군복무와 정치참여를 기피하지 않는 기질이며, 부패를 경계하는 도덕적 긴장이다.
두 비르투는 모순되지 않고 단계적이다. 정치체가 창설되거나 위기에 처할 때는 개인의 비르투가 필요하다. 로물루스의 형제 살해가 정당화되는 지점이 여기다. 그러나 정치체가 안정된 뒤에는 시민의 비르투가 지속적 생명력을 공급한다. 어느 한쪽만으로는 오래가지 못한다. 『피렌체사』는 이 관점에서 다시 읽힌다.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의 내분과 파당 정치가 도시의 위대함을 어떻게 잠식했는지 서술하며, 그 반대편에 로마 초기의 통합된 비르투를 배치한다. 역사 서술 자체가 그란데차의 회복을 위한 정치적 기획이다.
14. 비르투의 역설
마키아벨리의 비르투에는 전통적 도덕이 악덕이라 부르는 것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다. 기만, 잔혹, 배신이 상황에 따라 비르투의 요소가 된다. 이것이 그를 악의 교사로 만든다는 고발은 르네상스 이래 지금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마키아벨리 자신은 비르투와 순수한 악행 사이에 분명한 선을 긋는다. 시라쿠사의 아가토클레스는 쿠데타로 권력을 잡고 유지했지만, 마키아벨리는 그를 비르투의 인물이라고 부르기를 끝내 주저한다. 『군주론』 8장에서 그는 아가토클레스가 권력은 얻을 수 있으나 영광은 얻을 수 없다고 평가한다. 비르투는 단순한 성공이 아니라 창설적 성공이며, 역사가 기릴 만한 성공이다. 무의미한 잔혹과 배신의 축적은 비르투가 아니다.
이 구별선은 흐릿하고 논쟁적이다. 마키아벨리는 이 흐릿함을 해소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정치의 실상이라고 본다. 덕과 악덕은 상황 속에서만 판별되며 절대적 기준으로 미리 정해둘 수 없다. 비르투의 덕목들은 그러므로 고정된 목록이 아니라, 포르투나와 대면한 주체가 매번 다시 조립해야 하는 장비의 총체다. 이 재조립의 능력 자체가 어쩌면 비르투의 핵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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