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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토피카

'정의란 무엇인가' _ 마이클 샌델

by 변리사 허성원 2026. 2. 10.

'정의란 무엇인가' _ 마이클 샌델

_ 진짜 정의는 행복인가, 자유인가, 미덕인가

(*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 하버드 대학교 교수의 저작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는 현대 정치철학의 난해한 쟁점들을 일상적인 도덕적 딜레마와 결합하여 대중적 반향을 일으킨 학술적 역작이다.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20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단순한 베스트셀러를 넘어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 잡았는데, 이는 공정성과 정의에 대한 한국 사회의 깊은 갈망을 반영한 결과로 해석된다. 샌델이 제시한 정의를 이해하는 세 가지 접근 방식인 행복(공리주의), 자유(자유주의), 미덕(공동체주의)을 중심으로 각 이론의 핵심 논리와 한계를 심층적으로 고찰하며, 샌델이 지향하는 공동선(Common Good)의 정치가 현대 사회에 던지는 시사점을 분석한다.)

정의의 지형학: 세 가지 접근 방식의 구조적 이해

샌델은 정의로운 사회인지 판단하기 위해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재화들인 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공직과 영광 등을 어떻게 분배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6 그는 철학사적 흐름에 따라 정의를 바라보는 시각을 크게 세 가지 범주로 분류한다. 첫째는 '행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공리주의적 관점이며, 둘째는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는 자유주의적 관점(자유지상주의와 평등주의적 자유주의 포함), 셋째는 '미덕의 배양과 공동선'을 중시하는 공동체주의적 관점이다.5 이 세 가지 관점은 각각 정의의 본질을 다르게 규정하며, 현대 사회의 다양한 갈등을 해석하는 강력한 사고의 틀을 제공한다.

정의의 접근 방식 핵심 원칙 대표 철학자 주요 가치 및 지향점
공리주의 (Welfare)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공리 극대화) 제레미 벤담, 존 스튜어트 밀 행복, 복지, 효용, 사회적 효율성
자유주의 (Freedom) 개인의 선택의 자유와 권리 보호 로버트 노직, 이마누엘 칸트, 존 롤스 자유, 자기소유권, 공정성, 기회의 평등
공동체주의 (Virtue) 미덕의 배양과 공동선 추구 아리스토텔레스,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 미덕, 텔로스(목적), 영광, 공동체적 연대

이러한 접근 방식의 차이는 단순히 학술적 논쟁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현실의 문제와 직결된다. 예를 들어, 재난 발생 시 가격 폭리 처벌 문제에서 공리주의자는 시장의 효율성과 행복 증진을 근거로 처벌에 반대할 수 있고, 자유주의자는 개인 간의 자유로운 거래를 옹호하며, 공동체주의자는 공동체의 도덕적 가치를 훼손하는 탐욕을 비판하며 규제를 주장한다.1 샌델은 이러한 구체적 사례들을 통해 독자들이 자신의 정의관을 성찰하게 유도하며, 정의로운 사회는 단순히 공리를 계산하거나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을 넘어,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가'에 대한 도덕적 담론을 필연적으로 수반해야 함을 역설한다.3

행복의 극대화와 공리주의의 명암

제레미 벤담(Jeremy Bentham)에 의해 정립된 공리주의는 도덕의 최고 원칙이 행복을 극대화하는 것, 즉 쾌락의 총량이 고통의 총량보다 많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7 벤담은 공동체란 허구의 집단이며 개인들의 총합에 불과하다고 보았기에, 정책을 결정할 때 총이익에서 총비용을 뺀 결과가 가장 큰 것을 선택해야 한다는 도덕 과학을 주창했다.6 이러한 사고방식은 현대의 정책 결정 과정에서 비용-편익 분석(Cost-Benefit Analysis)이라는 형태로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다.6

하지만 샌델은 공리주의가 지닌 두 가지 결정적인 약점을 지적하며 그 한계를 비판한다. 첫째는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공리주의적 계산 아래에서는 다수의 더 큰 행복을 위해서라면 소수의 희생을 정당화할 위험이 상존한다.2 고대 로마에서 기독교인을 사자 우리에 던져 군중의 즐거움을 극대화했던 행위나, 폭탄 테러범을 잡기 위해 무고한 가족을 고문하는 문제 등은 공리주의적 논리로는 정면으로 반박하기 어려운 도덕적 난제들을 발생시킨다.6

둘째는 도덕적 가치를 측정하는 단일 통화의 문제이다. 벤담은 모든 가치를 쾌락과 고통이라는 하나의 저울로 측정하려 했으나, 인간의 생명이나 존엄성, 혹은 고귀한 미덕을 비용-편익 분석의 수치로 환산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용납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6 예를 들어, 폐암 환자가 늘어나는 것이 국가 재정에 이득이 된다는 담배 회사의 보고서나, 부품 결함으로 인한 사망 사고 배상금이 리콜 비용보다 저렴하다는 이유로 결함을 방치하는 기업의 사례는 공리주의가 인간의 생명 가치를 어떻게 훼손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6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은 벤담의 이론을 보완하여 공리주의를 더 인간적인 얼굴로 바꾸려 노력했다. 밀은 쾌락에도 질적 차이가 있다고 주장하며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는 유명한 격언을 남겼다.6 그는 고급 쾌락과 저급 쾌락을 구분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 사회 전체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길이라고 보았다.6 그러나 샌델은 밀이 자유를 옹호하면서도 결국 '장기적 공리'라는 기준에 호소함으로써, 개인의 권리를 그 자체로 절대적인 존엄성을 가진 것으로 보호하는 데 실패했다고 비판한다.14 결국 공리주의는 행복이라는 목적을 위해 개인을 도구화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못한다는 것이 샌델의 분석이다.14

선택의 자유와 자유지상주의의 권리 논리

자유주의적 접근 방식의 한 축인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는 개인의 자유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며,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개인은 자신의 몸과 재산에 대해 절대적인 권리를 가진다는 '자기소유권' 원칙을 내세운다.14 로버트 노직(Robert Nozick)과 같은 사상가들은 국가의 역할을 치안 유지와 계약 집행에 한정하는 '최소국가'를 주장하며, 부의 재분배를 위한 조세 정책을 강제 노동이나 다름없다고 강력히 비판한다.2

자유지상주의자들의 논리는 매우 선명하며 현대 사회의 시장 중심적 사고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들은 온정주의적 법률(안전벨트 착용 의무화 등), 도덕법(성매매나 동성애 금지 등), 그리고 소득과 부의 재분배 정책에 일관되게 반대한다.9 특히 과세에 대해 노직은 국가가 개인의 노동 결과물을 가져가는 것은 곧 그 개인에게 그만큼의 시간을 강제로 일하게 만드는 것과 같으며, 이는 결국 노예제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펼친다.2

자유지상주의가 반대하는 국가 개입 반대 근거 및 철학적 함의
온정주의 (Paternalism) 개인이 스스로를 해칠 권리 또한 자유의 영역에 포함됨
도덕법 (Moral Legislation) 다수의 도덕적 신념을 소수에게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폭력임
소득 재분배 (Redistribution) 소유권은 정당한 획득과 이전의 결과물로, 침해할 수 없음

샌델은 이러한 자유지상주의적 논리가 일관성을 유지할 때 도달하게 되는 충격적인 사례들을 통해 그 허점을 파고든다. 장기 매매, 자발적 노예 계약, 조력 자살, 심지어 합의된 식인 행위까지도 자기소유권 원칙에 따르면 국가가 금지할 근거가 희박해지기 때문이다.9 샌델은 우리가 정말로 우리 자신을 전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존재인지, 아니면 공동체에 대한 의무나 생명의 존엄성이라는 더 큰 도덕적 틀 안에 놓여 있는 존재인지 질문을 던진다.8 이는 정의의 문제가 단순히 선택의 자유를 넘어, 인간이라는 존재가 갖는 본질적인 가치와 목적에 대한 논의로 이행되어야 함을 암시한다.

시장의 도덕적 한계와 비시장적 가치의 훼손

샌델은 『정의란 무엇인가』의 중반부에서 시장 논리가 도덕적, 시민적 영역으로 침범할 때 발생하는 문제들을 집중적으로 분석한다. 그는 모든 것을 돈으로 사고팔 수 있는 시장 만능주의가 인간의 존엄성을 어떻게 훼손하고, 공동체적 가치를 어떻게 변질시키는지를 징병제와 자원군제, 그리고 대리 출산의 사례를 통해 고찰한다.8

징병제와 자원군제의 논쟁에서 자유지상주의자와 공리주의자는 모두 자원군제(모병제)를 옹호한다. 전자는 개인의 선택권을 존중하기 때문이고, 후자는 사회적 효율성이 높기 때문이다.7 그러나 샌델은 이것이 과연 진정으로 '자유로운' 선택인지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8 경제적으로 어려운 계층의 젊은이들이 생계를 위해 군입대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면, 이는 자유로운 선택이라기보다 경제적 압박에 의한 강요에 가깝다는 것이다.8 실제로 미국의 자원군제 사례에서 저소득층 자녀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고 사회 지도층 자녀의 입대율이 매우 낮다는 사실은 시장 거래가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11

더욱이 샌델은 국방이라는 시민의 의무를 시장의 거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것이 애국심과 공동체적 헌신이라는 가치를 훼손한다고 주장한다.6 루소의 견해를 빌려 샌델은 공공 서비스가 시민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이를 돈으로 해결하려는 순간 국가의 몰락이 가까워진다고 경고한다.6 이러한 비판은 대리 출산 사례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상업적 대리모 계약을 단순히 자발적인 합의로만 볼 수 있는지, 아기를 낳는 숭고한 행위를 상품화하는 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행위는 아닌지에 대한 도덕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8 샌델은 돈으로 살 수 없는, 혹은 사서는 안 되는 재화가 분명히 존재하며, 시장의 역할에 대해 사회적이고 도덕적인 한계를 설정해야 한다고 역설한다.8

의무의 도덕과 인간의 존엄성: 칸트의 정언명령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는 정의와 도덕의 기초를 행복이나 결과가 아닌, 인간의 이성적 능력과 자율성에서 찾은 사상가다.21 그는 인간을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 취급해서는 안 되며, 그 자체로 '목적'으로 대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6 이러한 칸트의 철학은 현대의 인권 개념과 헌법적 가치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토대를 마련했다.21

칸트에게 있어 도덕적 행위란 오로지 '의무감'에서 비롯된 행위만을 의미한다. 어떤 행위가 나에게 이익이 되거나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도덕 법칙에 부합하는 옳은 일이기 때문에 행하는 '의무 동기'만이 도덕적 가치를 부여받는다.6 예를 들어, 정직한 장사꾼이 평판을 관리하기 위해 손님을 속이지 않는 것은 도덕적 가치가 부족하지만, 그것이 당연한 의무이기에 정직을 지키는 것은 진정으로 도덕적인 행위가 된다.21

칸트의 도덕 법칙은 '정언명령'이라는 형식을 취한다. 이는 어떤 조건이나 목적에 따라 달라지는 가언명령("X를 원한다면 Y를 하라")과 대조적으로, 모든 인간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절대적인 명령이다.21

  • 보편법칙의 형식: "너의 행동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되기를 바랄 수 있는 대로 행위하라." 8
  • 목적의 형식: "인간을 언제나 목적으로 대하고, 결코 수단으로만 대하지 마라." 6

샌델은 칸트의 철학이 개인의 권리와 존엄성을 지키는 데 있어 매우 강력하고 정교한 틀을 제공한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 특히 칸트가 말하는 '자율'은 단순히 내 욕망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이성이 나에게 부여한 법칙에 따라 스스로를 통제하는 높은 차원의 자유를 의미한다.14 그러나 샌델은 칸트의 엄격한 도덕적 원칙(예를 들어 선의의 거짓말조차 거부하는 태도)이 실제 현실의 복잡한 딜레마 속에서 작동할 때 발생하는 한계와 의문들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6

공정함으로서의 정의와 롤스의 평등주의적 자유주의

존 롤스(John Rawls)는 현대 자유주의 정치철학의 거두로, 샌델이 가장 비중 있게 다루는 비판적 대화의 상대 중 한 명이다.18 롤스는 우리가 '무지의 장막(Veil of Ignorance)' 뒤에서, 즉 자신의 지능, 재능, 사회적 지위, 부를 전혀 모르는 가상의 '원초적 입장'에서 합의할 원칙이 진정한 정의의 원칙이 될 것이라고 보았다.2 이러한 가상적 계약은 계약 당사자들 사이의 힘과 정보의 불균형을 제거하여 가장 공정한 결과를 도출하게 한다.25

롤스는 이 장막 뒤에서 사람들이 두 가지 핵심적인 정의 원칙에 합의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첫째는 모든 시민에게 언론, 종교의 자유와 같은 기본적 자유를 평등하게 보장하는 것이다.6 둘째는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을 인정하되, 그 불평등이 사회의 가장 어려운 사람(최소 수혜자)에게 최대의 이익이 돌아갈 때만 허용된다는 '차등의 원칙'이다.2

롤스의 정의론은 특히 '도덕적 임의성'을 배제하려는 시도에서 그 독창성이 빛난다. 그는 타고난 지능이나 부유한 가정환경, 심지어 성실함조차도 개인의 노력보다는 '자연적 로또'나 운의 결과일 수 있다고 보았다.6 따라서 이러한 우연적인 요소로 인해 더 많은 보상을 받는 것은 공정하지 않으며, 재능 있는 사람들이 그 재능을 발휘하여 얻은 이익의 일부를 공동체 전체, 특히 약자를 위해 환원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6

롤스의 정의 구현을 위한 핵심 개념 주요 내용 및 의의
무지의 장막 (Veil of Ignorance) 자신의 특수성을 모르는 공정한 합의를 위한 가상적 장치
차등의 원칙 (Difference Principle) 불평등의 정당화 조건으로 최소 수혜자의 이익 극대화 제시
도덕적 임의성 배제 타고난 우연성을 분배의 정당한 근거로 보지 않음

샌델은 롤스의 이론이 현대 복지국가의 도덕적 기반을 마련하고 능력주의의 어두운 이면을 예리하게 통찰했다는 점을 인정한다.16 하지만 샌델은 롤스가 인간을 자신의 역사, 전통, 공동체적 유대와 분리된 '무연고적 자아'로 설정했다는 점을 비판의 시작점으로 삼는다.18 샌델에게 정의는 단순히 중립적인 절차를 넘어서, 공동체의 목적과 선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를 포함해야 하기 때문이다.2

목적론적 정의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 철학

샌델은 자유주의적 정의관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의 고전적 정의관으로 회귀할 것을 제안한다.2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정의란 사람들에게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몫(Desert)을 주는 것이며, 이는 재화나 활동의 목적, 즉 '텔로스(Telos)'를 파악하는 것과 직결된다.2

아리스토텔레스의 유명한 플루트 사례는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최고의 플루트는 부유한 사람이나 잘생긴 사람이 아니라, 플루트를 가장 잘 부는 사람에게 돌아가야 한다.8 플루트의 존재 목적은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8 이처럼 정의에 관한 논의는 해당 재화나 사회적 역할이 추구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탁월함(미덕)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쟁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8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정치의 목적은 단순히 경제적 이익이나 안전 보장이 아니라, 시민들에게 미덕을 가르치고 좋은 삶을 살게 하는 데 있다.8 따라서 정치적 권위와 영광은 공동체의 선에 가장 크게 기여하고 시민적 미덕이 뛰어난 사람에게 주어져야 한다.8 샌델은 이러한 목적론적 사고가 현대 사회의 논쟁적 이슈들을 해결하는 데 있어 핵심적이라고 주장한다.2 예를 들어, 동성 결혼을 허용할 것인가의 문제는 결혼이라는 제도의 목적(텔로스)이 단순히 출산과 번식에 있는지, 아니면 두 사람 사이의 독점적인 배타적 사랑과 헌신에 있는지에 대한 도덕적 논의를 피하고는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다.8

서사적 존재로서의 인간과 연대 의무의 도덕

샌델은 근현대 자유주의가 인간을 단순히 '독립적이고 자발적인 선택의 주체'로만 보는 것에 반대하며,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Alasdair MacIntyre)의 개념을 빌려 인간을 '서사적 존재(Narrative Being)'로 규정한다.11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특정 가족, 도시, 국가, 역사의 맥락 속에 놓여 있으며,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는 어떤 이야기의 일부인가?"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11

이러한 서사적 자아 관념은 자유주의적 개인주의로는 설명하기 힘든 '제3의 의무'인 '연대 의무(Obligation of Solidarity)'를 도출한다.2 샌델에 따르면 우리의 도덕적 의무는 크게 세 가지 범주로 나뉜다.

  1. 자연적 의무: 합의가 필요 없는, 모든 인간에게 공통으로 지는 의무 (타인을 해치지 않을 의무 등). 2
  2. 자발적 의무: 계약이나 약속 등 나의 선택과 합의에 의해 발생하는 의무. 2
  3. 연대 의무: 나의 선택과는 무관하게 내가 속한 공동체의 역사와 정체성에서 비롯되는 의무 (가족에 대한 책임, 조국의 과거사에 대한 집단적 책임 등). 11

샌델은 연대 의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왜 오늘날의 세대가 과거 조상들이 저지른 잘못(노예제, 일제 강점 등)에 대해 사죄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설명한다.11 만약 우리가 순수한 자유주의적 개인이라면 내가 저지르지 않은 잘못에 대해 사죄할 이유가 없지만, 서사적 존재로서의 우리는 우리 공동체의 역사가 남긴 빚과 자부심을 동시에 짊어지는 존재이기 때문에 집단적 사죄와 배상이 도덕적 정당성을 갖는다는 것이다.11 이는 정의의 문제가 단순히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넘어, 공동체적 정체성과 책임의 문제와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공동선과 새로운 정치의 제안: 도덕적 참여 정치

샌델은 정의를 이해하는 세 가지 방식 중 미덕을 기르고 공동선을 추구하는 방식을 가장 강력하게 옹호하며, 책의 마지막 장에서 새로운 정치의 비전을 제시한다.8 그는 정부가 도덕적, 종교적 문제에 대해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자유주의적 신조가 오히려 시민들의 공적 담론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도덕적 공백을 초래했다고 비판한다.8

샌델이 제안하는 '공동선의 정치'는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방향성을 가진다.

  1. 시민의식과 봉사 정신의 함양: 정의로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공동체에 대한 헌신이 필수적이다. 교육과 공공 정책은 이러한 시민적 미덕을 기르는 데 집중해야 한다.7
  2. 시장의 도덕적 한계에 대한 사회적 숙의: 돈으로 살 수 없는 재화가 무엇인지, 시장 논리가 침범해서는 안 될 영역이 어디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토론해야 한다.7
  3. 불평등의 해소와 사회적 연대 강화: 빈부격차가 심해지면 부자와 가난한 자가 서로 다른 삶의 공간에 갇히게 되어 공동체적 유대가 끊어진다. 공공 인프라(학교, 공원, 도서관)를 확충하여 계층 간 소통과 만남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11
  4. 도덕적 참여 정치의 활성화: 종교적, 도덕적 신념을 사적 영역에만 가두지 말고, 공적 영역으로 끌어들여 상호 존중과 비판을 바탕으로 한 치열한 토론을 장려해야 한다.8

샌델은 오바마 전 대통령이 진보주의자임에도 불구하고 공적 영역에서 신앙과 도덕적 언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며 시민들의 가치 체계를 포용했던 사례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8 정의로운 사회는 중립이라는 이름 아래 도덕적 갈등을 회피하는 사회가 아니라, 서로 다른 가치관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경청하며 공동의 선을 찾아가는 역동적인 사회라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3

한국 사회의 '정의 열풍'과 샌델 신드롬의 배경 분석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유독 한국에서 이례적인 흥행을 기록한 현상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분석 대상이다.2 2010년을 전후하여 한국 사회를 강타한 '정의 열풍'은 당시 우리 사회가 직면했던 심각한 공정성의 결핍과 능력주의에 대한 환멸을 반영하고 있다.4

한국 사회의 사회적 맥락 샌델 정의론의 시사점 및 반응
심화되는 양극화와 부의 대물림 롤스의 차등 원칙과 부의 재분배 논의에 대한 높은 관심
'금수저' 담론과 기회의 불평등 타고난 재능과 배경의 임의성에 대한 철학적 위안과 비판
천민자본주의와 갑질 문화 시장의 도덕적 한계와 인간의 존엄성 강조에 대한 공감
갈등 공화국이라 불리는 이념 대립 공동체적 연대와 도덕적 참여 정치라는 대안적 비전 제시

한국인들은 샌델이 던진 "무엇이 옳은 일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자신들이 느끼는 부당함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적 가치가 무엇인지를 성찰할 기회를 가졌다.4 이는 단순히 지적 호기심을 넘어,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철학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민들의 집단적 열망이 투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3

비판적 고찰: 샌델의 정의론은 완벽한가?

샌델의 이론은 대중적인 성공과 별개로 학계의 날카로운 비판을 받기도 했다. 특히 한국의 법학자 이한은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를 통해 샌델의 정치철학이 지닌 위험성을 경고한다.17

이한의 비판 중 핵심적인 지점은 샌델이 주장하는 '미덕이 지배하는 공동체'가 자칫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권위주의적 공동체주의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다.17 샌델이 말하는 '본질'이나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한 객관적 기준이 부족하며, 이는 결국 다수의 횡포나 지배적인 전통의 이름으로 소수자의 권리를 억압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17 또한 샌델이 자유주의 사상가들의 주장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거나 왜곡하여 비판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17

 

샌델 정의론에 대한 주요 비판 지점 비판의 구체적 내용
다수의 횡포 위험성 공동체의 '좋은 삶' 규정이 소수자의 권리를 억압할 우려 28
기준의 모호성 무엇이 '미덕'이고 '본질'인지에 대한 보편적 합의가 불가능함 28
순환 논법의 오류 본질을 미리 정해놓고 그것을 미덕이라 부르는 논리적 결함 30
보수주의적 경향 전통과 공동체를 강조하다 보면 사회적 변화와 진보를 저해함 28

이러한 비판은 샌델의 공동체주의가 자유주의적 기반 위에서 보완되어야 할 가치인지, 아니면 자유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독립적인 체계인지에 대한 중요한 철학적 논쟁을 촉발했다.2 샌델 본인은 자신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권위주의적 공동체주의자'로 오해받는 것을 경계하며,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통한 '공화주의적 전통'을 옹호한다고 해명한 바 있다.2

결론: 정의를 향한 끊임없는 여정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우리에게 정의에 대한 확고부동한 정답을 내려주지 않는다. 대신 그는 독자들을 철학적 성찰의 장으로 초대하여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원칙들에 의문을 던지게 만든다.3 샌델의 분석을 통해 우리는 공리주의의 효율성, 자유주의의 권리 보호, 그리고 공동체주의의 미덕 배양이 각기 나름의 논리를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된다.2

결국 정의로운 사회란 완벽하게 설계된 정적인 사회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 일인가"를 두고 시민들이 끊임없이 논쟁하고 고민하는 역동적인 사회다.3 샌델은 이러한 논쟁이야말로 건강한 민주주의의 상징이며, 우리가 편견의 타래에서 벗어나 공동체의 선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확신한다.3

현대 사회의 시민으로서 우리는 샌델이 제시한 정의의 세 가지 지도를 들고 각자의 길을 찾아야 한다. 때로는 개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투쟁하고, 때로는 사회적 약자를 위해 효율성을 포기하며, 때로는 공동체의 미덕을 기르기 위해 헌신해야 할 것이다. 샌델의 강의가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정의라는 이름의 목적지가 아니라, 그 목적지를 향해 함께 토론하며 걸어갈 수 있는 사유의 힘과 시민적 용기일 것이다.3 샌델의 여정은 책의 마지막 장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책을 덮고 현실의 문제에 맞서는 시민들의 삶 속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참고 자료

  1. 정의란 무엇인가 | 마이클 샌델 - 교보문고, 2월 10, 2026에 액세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0595634
  2. 정의란 무엇인가 - 나무위키, 2월 10, 2026에 액세스, https://namu.wiki/w/%EC%A0%95%EC%9D%98%EB%9E%80%20%EB%AC%B4%EC%97%87%EC%9D%B8%EA%B0%80
  3. 정의란 무엇인가 | 마이클 샌델 - 알라딘, 2월 10, 2026에 액세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8988418
  4.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요약: 정의를 이해하는 세 가지 관점, 2월 10, 2026에 액세스, http://cdde.or.kr/board_NImY23/293
  5. #4 [Sandel's Theory of Justice] Virtue is Justice! | What is Justice? | Justice and the Common Good - YouTube, 2월 10, 2026에 액세스, https://www.youtube.com/watch?v=p_TutqIqISQ
  6.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고, 2월 10, 2026에 액세스, https://favor15.tistory.com/18288643
  7. 정의란 무엇인가 - 상상독서 - 한성대학교, 2월 10, 2026에 액세스, https://book.hansung.ac.kr/%EC%A0%95%EC%9D%98%EB%9E%80-%EB%AC%B4%EC%97%87%EC%9D%B8%EA%B0%80-3/
  8. 정의란 무엇인가 - CoolJune's 기록물 저장소 - 티스토리, 2월 10, 2026에 액세스, https://skidrow6122.tistory.com/18
  9. [풀버전]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크 샌델 (유영근 변호사), 우리 사회는 얼마나 공정한가?, 2월 10, 2026에 액세스, https://www.youtube.com/watch?v=oRyagDO-cqc
  10. [마이클 샌델] 한국 사회를 뒤흔든 '정의란 무엇인가' 핵심 분석 | 불공정 논란, 당신의 답은?, 2월 10, 2026에 액세스, https://www.youtube.com/watch?v=OLxvA9fK1T8
  11. [전민용의 북카페 -16]화제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 - 건치신문, 2월 10, 2026에 액세스, https://www.gunch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8363
  12. 정의란 무엇인가 by 마이클 샌델. 인지, 판단, 차별적인 감정, 정신 활동 ..., 2월 10, 2026에 액세스, https://medium.com/@khjin1002/%EC%A0%95%EC%9D%98%EB%9E%80-%EB%AC%B4%EC%97%87%EC%9D%B8%EA%B0%80-by-%EB%A7%88%EC%9D%B4%ED%81%B4-%EC%83%8C%EB%8D%B8-6604ac03a62c
  13. [벤담과 밀의 공리주의] 소수자의 권리를 무시하는가? #6 - YouTube, 2월 10, 2026에 액세스, https://www.youtube.com/watch?v=OKAunR2xdOU
  14. 정의란 무엇인가 | 성균관대학교 오거서, 2월 10, 2026에 액세스, https://book.skku.edu/%EC%A0%95%EC%9D%98%EB%9E%80-%EB%AC%B4%EC%97%87%EC%9D%B8%EA%B0%80-21/
  15. [풀버전] 그 유명한 〈정의란 무엇인가〉, 설민석이 엑기스만 뽑아 읽어드립니다 - YouTube, 2월 10, 2026에 액세스, https://www.youtube.com/watch?v=CIVRhOM33NQ
  16. 마이클 샌델은 좌파? [정의란 무엇인가] 핵심 요약과 마이클 샌델의 사상! - YouTube, 2월 10, 2026에 액세스, https://www.youtube.com/watch?v=80TIm2c1Pnw
  17.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 나무위키, 2월 10, 2026에 액세스, https://namu.wiki/w/%EC%A0%95%EC%9D%98%EB%9E%80%20%EB%AC%B4%EC%97%87%EC%9D%B8%EA%B0%80%EB%8A%94%20%ED%8B%80%EB%A0%B8%EB%8B%A4
  18.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Justice; What is the right thing to do ..., 2월 10, 2026에 액세스, http://weekly.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13950
  19. 자유지상주의와 재분배 | 로버트 노직 | 3분 정치철학 - YouTube, 2월 10, 2026에 액세스, https://www.youtube.com/watch?v=aZUe5zHRSiM
  20. [학술]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 원대신문, 2월 10, 2026에 액세스, http://www.wk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13122
  21. 책을 읽고 나서 -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센텔/김영사) - 해오름평생교육원, 2월 10, 2026에 액세스, http://heorum.com/zbxe/teenager_HighEssay_BookReview/54669
  22. 마이클 샌델 “내 철학은 민주적 시민정신…” - 한겨레, 2월 10, 2026에 액세스,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535899.html
  23. '정의란 무엇인가'(5강-중요한 것은 동기다) - 미주 한국일보, 2월 10, 2026에 액세스, http://www.koreatimes.com/article/20161112/1023277
  24. [5분철학] “착하게 사는 것, 그것은 곧 인간의 의무이다” 의무론, 2월 10, 2026에 액세스, https://www.ij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20610
  25. 무지의 장막 2 (존 롤스의 정의론) - YouTube, 2월 10, 2026에 액세스, https://www.youtube.com/watch?v=ebZHmfM51go
  26. 롤스와 샌델, 공동선과 정의감, 2월 10, 2026에 액세스, https://files-scs.pstatic.net/2025/02/05/G5Zo9ryUbf/%EB%A1%A4%EC%8A%A4%EC%99%80%EC%83%8C%EB%8D%B8%EA%B3%B5%EB%8F%99%EC%84%A0%EA%B3%BC%EC%A0%95%EC%9D%98%EA%B0%90.pdf
  27. 롤스의 정의론 쉽게 이해하기 - YouTube, 2월 10, 2026에 액세스, https://www.youtube.com/watch?v=kVbpLowcOKc
  28.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공동체주의적 접근과 현대사회에서의 의미 - 재능넷, 2월 10, 2026에 액세스, https://www.jaenung.net/tree/28207
  29. [칼럼으로 독백하기]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에 기대어 - 중앙뉴스, 2월 10, 2026에 액세스, https://www.eja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8207
  30.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신간 소개 - 미지북스, 2월 10, 2026에 액세스, https://mizibooks.tistory.com/19
  31. 자유주의에 대한 공동체주의 비판 이해하기 : r/askphilosophy - Reddit, 2월 10, 2026에 액세스, https://www.reddit.com/r/askphilosophy/comments/7t177i/understanding_communitarian_critiques_of/?tl=ko
  32. 한국 『정의란 무엇인가』 열풍에 저자 본인도 당황 - 채널예스, 2월 10, 2026에 액세스, https://m.ch.yes24.com/Article/Details/165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