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學而/토피카

[칼럼 초안]# 정말 힘들 땐 욕을 하라

by 변리사 허성원 2025. 12. 21.

정말 힘들 땐 욕을 하라

 

무거운 가구를 옮기다 문지방에 발가락을 찧었을 때, 혹은 꽉 막힌 도로에서 누군가 갑자기 끼어들 때를 떠올려 보자. 입에서 욕설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 욕설은 단순한 분노의 표출이었을까? 우리는 흔히 욕설을 교양의 부재나 인격의 미성숙함으로 치부하곤 한다. 하지만 최근 발표된 심리학 연구는 이 '불온한 언어'가 사실은 우리 안에 잠든 초인적인 힘을 깨우는 열쇠일지도 모른다고 한다.

최근(25년 12월 18일), 미국심리학회(APA) 학술지에 실린 영국 킬 대학교(Keele University) 리처드 스티븐스 박사팀의 연구 결과는 꽤 흥미롭다. 연구진은 참가자들에게 의자 위에서 팔로만 몸을 지탱하는 '의자 푸시업' 과제를 수행하게 했다. 한 그룹은 평범한 단어를, 다른 한 그룹은 자신이 평소 즐겨 쓰는 찰진 욕설을 내뱉으며 버티게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욕설을 내뱉은 그룹이 평소보다 무려 10% 이상 더 오래 버틴 것이다.

스포츠 과학에서 10%의 향상은 엄청난 수치다. 엘리트 선수들이 기록을 1% 단축하기 위해 쏟아붓는 피땀을 생각하면, 단지 입으로 험한 말을 뱉는 것만으로 이런 효과를 낸다는 건 거의 '마법'에 가깝다. 도대체 우리 뇌와 몸 사이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기존 학계에서는 욕설이 우리 몸에 '비상벨'을 울려 위기 대처 능력을 끌어올린다는 '투쟁-도주 반응(Fight or Flight Response)' 가설이 지배적이었다. 이는 포식자나 위협적인 상황에 직면했을 때 신체가 생존을 위해 즉각적으로 취하는 생리적 방어 기제와 같이, 욕설이 교감신경을 흥분시켜 아드레날린을 뿜어내게 만든다는 설명이었다. 그런데 이번 연구는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욕설을 한 실험 참가자들의 심박수나 자율신경계 반응에는 큰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연구진은 '상태 탈억제(State Disinhibition)'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참아라’, ‘조용히 해라’, ‘점잖게 행동하라’는 교육을 받으며 철저히 사회화된다. 이 과정에서 우리 뇌에는 행동을 제어하는 강력한 '브레이크'가 설치된다. 이는 사회적 안전과 조화를 위해 필수적이지만, 때로는 우리의 물리적 한계까지도 억제해 버린다. 내가 낼 수 있는 힘이 100이라면, 부상이나 체면을 우려한 뇌의 '중앙 통제자'가 출력을 70 정도로 제한해 두는 셈이다.

욕설은 바로 이 브레이크를 파괴하는 망치다. 금기시된 단어를 입 밖으로 내뱉는 행위 자체가 사회적 규범에 대한 작은 반란이기 때문이다. ‘이런 금기어를 써도 된다’는 심리적 도전은 곧 ‘좀 더 막 나갈 수 있다’, ‘더 버틸 수 있다’는 신체적 도전으로 전환된다. 우리가 쓰고 있던 '착한 아이' 혹은 '점잖은 신사'의 가면을 벗어던지는 순간, 억눌려 있던 야성이 깨어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상태 탈억제'의 경지이다. 탈억제 상태에 진입하면 두려움은 작아지고 통증에 대한 감각도 무뎌진다. 잡념이 사라지고 오직 눈앞의 당면한 과제에만 집중하는 몰입, 즉 '플로우(Flow)'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원리는 거리의 폭력배들이나 불량 청소년들이 싸움을 앞두고 험악한 욕설을 쏟아내는 심리와도 맞닿아 있다. 그들이 욕을 하는 것은 단순히 분노의 표현이거나 상대방을 위협하기 위함만은 아니다. 무의식적으로 그들은 욕설을 통해 자신들의 내면에 있는 '타인을 해치면 안 된다'는 사회적 제동 장치를 끄고 있는 것이다. 욕설이라는 언어적 폭력을 통해 스스로를 흥분시키고,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기 직전의 심리적 장벽을 허무는 과정인 셈이다. 이는 욕설이 왜 폭력의 전주곡으로 사용되는지, 그 심리적 배경을 명쾌하게 설명해 준다.

하지만 욕설의 힘은 그것이 '금기(Taboo)'일 때만 유효하다. 욕설이 습관이 되어 일상화되면 뇌는 더 이상 그것을 금기로 인식하지 않고, 따라서 '상태 탈억제' 효과도 사라진다. 그래서 욕설은 아껴두었다가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벽이나 한계 앞에서 사용하여야만, 마법과 같은 결정적인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스티븐스 박사는 이를 두고 욕설을 "칼로리도 들지 않고, 약물도 아니며, 돈 한 푼 들지 않는 가장 효율적인 수행 보조 도구"라고 정의했다.

실제로 이 연구 결과는 스포츠나 군사 훈련을 넘어 재활 의학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연구팀의 니콜라스 워시머스(Nicholas Washmuth) 박사는 이 기제가 재활 환자들에게 유용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부상 후 환자들은 통증에 대한 두려움(Kinesiophobia) 때문에 몸을 움직이는 것을 주저하는데, 욕설을 통한 탈억제는 이러한 '운동 공포'를 깨고 필요한 강도의 재활 운동을 수행하도록 돕는 용기를 제공할 수 있다.

신체적 수행뿐만 아니라, 욕설이 주는 자신감은 인지적, 사회적 과제에도 적용될 수 있다.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이나 연설을 앞두고 극도의 긴장을 느낄 때, 사적인 공간에서의 욕설은 긴장을 이완시키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기도 한다. 협상 테이블에서 심리적으로 위축될 때, 마음속으로 외치는 거친 한마디가 자기주장적 태도를 강화하는 방패가 될 수도 있다.

이 연구는 인간이 평소 사회적 규범과 안전에 대한 무의식적 계산 때문에 자신의 잠재력을 얼마나 억제하고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욕설은 이 견고한 '억제의 빗장'을 일시적으로 풀고, 우리 내면의 힘을 깨워 몰입과 자신감이라는 날개를 달아준다.

물론 욕설은 양날의 검이다. 남용은 품격을 떨어뜨리고 관계를 해친다. 그러나 그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전략적으로 활용한다면, 욕설은 우리가 가진 한계를 확장시켜주는 주머니 속의 숨겨진 슈퍼파워가 될 수 있다. 자신의 한계를 부수고 어제보다 더 강한 나를 만들고 싶다면, 가끔 이 '불온한 에너지'를 빌려 써 볼 필요가 있다. 정말로 힘이 부칠 때, 아무도 없는 곳에서 한번 외쳐보라. "욕이여 나를 구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