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역병을 보낸 건 신이지만, 기근을 만든 건 영국인이었다.
"150만의 남성, 여성, 그리고 어린이들이
영국 정부에 의해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그리고 평화적으로 살해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만들어낸 풍요로움 속에서 굶주림으로 죽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감자역병을 보내셨지만, 영국인이 기근을 만들었다."
"the almighty indeed sent the potato blight but the english created the famine.
- John Mitchel"
존 미첼(John Mitchel, 1815-1875)의 이 유명한 말은 1861년 그의 저서 『아일랜드의 마지막 정복 (아마도)』(The Last Conquest of Ireland (Perhaps))에서 나온 것으로, 아일랜드 대기근에 대한 가장 영향력 있는 비판 중 하나가 되었다.
미첼은 이 말을 통해 자연재해와 인재의 구분을 명확히 했다. 감자역병(Phytophthora infestans)은 분명히 자연현상이었지만, 그로 인한 대량 기아사는 영국 정부의 정책적 선택의 결과라는 것이다.wikipedia
감자역병의 실상
1845년부터 1849년까지 아일랜드를 강타한 감자역병은 실제로 유럽 전역에서 발생했다. 그러나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는 기근이 발생하지 않았다. 벨기에 같은 나라는 식량 수출을 금지하고 수입을 늘려 피해를 최소화했다.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기근 기간 중에도 아일랜드에서 막대한 양의 식량이 영국으로 수출되었다는 점이다:
- 1847년 한 해 동안만 4,000척의 선박이 아일랜드에서 브리스톨, 글래스고, 리버풀, 런던으로 식량을 운송했다.
- 같은 해 40만 명의 아일랜드인이 굶주림과 관련 질병으로 사망하는 동안에도 말이다.
- 월평균 10만 파운드 스털링 상당의 식량이 수출되었다
- 9,992마리의 송아지, 4,000마리의 말과 조랑말, 82만 갤런의 버터가 수출되었다usbornefamilytree
영국 정부의 자유방임주의 정책
'찰스 트레벨리언(Charles Trevelyan)'이 주도한 영국 정부의 정책이 기근을 악화시켰다:
- 로버트 필 총리가 사임한 후, 1846년 자유방임주의를 신봉하는 휘그당 정부가 집권했다.
- 트레벨리언은 "아일랜드인들이 영국 정부에 습관적으로 의존하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식량 창고를 폐쇄했다.
- 그는 "아일랜드 재산으로 아일랜드 빈곤을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historyplace
존 미첼의 주장과 영향
존 미첨은 장로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프로테스탄트 아일랜드 민족주의자였다. 그는 법무관이었고, 영 아일랜드 운동(Young Ireland Movement)의 핵심 인물이었다.spikeislandcork+3
크리스틴 키닐리(Christine Kinealy) 박사 같은 현대 학자들의 연구는 미첼의 주장을 뒷받침한다:usbornefamilytree
- 아일랜드는 기근 기간 중에도 전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충분한 식량을 생산했다
- 문제는 식량 부족이 아니라 접근권과 분배의 문제였다
미첼의 이 말은 아일랜드 민족주의 의식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faithinireland.wordpress+1
- 패트릭 피어스는 미첼의 『감옥 일기』를 "아일랜드 민족성의 신약성경 중 마지막이자 가장 격렬하고 숭고한 복음서"라고 평가했다belfastmedia
- 에이먼 데 발레라도 미첼을 존경했으며, 그의 사상에 깊이 영향받았다belfastmedia
역사적 논란
일부 역사학자들은 미첼의 "의도적 집단학살" 주장이 과도하다고 비판한다. 제임스 퀸 같은 학자는 미첼의 수사학이 대부분 틀렸다고 평가하기도 한다.faithinireland.wordpress
미첼의 모순적 면모
미첨은 아일랜드 민족주의자였으면서도 미국 남북전쟁에서 노예제를 지지했다는 모순적 면모를 보였다. 이는 그의 사상의 복잡성을 보여준다.wikipedia+1
현대적 의미
미첼의 이 명언은 자연재해가 사회적 재난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정치적 선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기근이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정치적, 경제적 구조의 산물이라는 인식은 현대의 재해 대응에서도 중요한 교훈을 제공한다.mises+1
특히 자유방임주의 경제 정책이 위기 상황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로서, 정부의 적극적 개입 여부가 생사를 가를 수 있음을 시사한다.

'學而 > 토피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분석 정리 (1) | 2025.09.09 |
|---|---|
| 스타트업 투자에서의 주요 옵션들 _ 풋옵션과 콜옵션 등 (0) | 2025.09.09 |
| 오디세우스의 귀향 여정 _ 오디세이아 (1) | 2025.09.08 |
| 엘리자베스 홈즈와 테라노스 사기극 (0) | 2025.09.07 |
| 아리스토텔레스의 에네르게이아(energeia) (1) | 2025.09.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