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통수권⑮> 특허 경영, 정사마(正邪魔)가 있다
특허 경영에도 정사마(正邪魔)가 있다. 왕년에 무협지를 좀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정사마(正邪魔)라는 말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바로 무협지의 세계관을 구성하며 주도권을 서로 다투는 정도(正道), 사도(邪道) 및 마도(魔道)를 가리킨다. 기술 기업들의 특허 정책을 들여다보면, 그들이 특허를 활용하는 방법이나 철학에 따라 정도, 사도, 마도의 갈래로 분류해볼 수 있다는 말이다.
무협지에 등장하는 정도 혹은 정파(正派)는 대체로 인의(仁義)를 숭상하여 협(俠)을 실천하는 무리들이다. 이에 반해 마도(魔道) 혹은 패도(覇道)는 힘의 논리에 따라 강자존과 약육강식의 정글 룰을 받든다. 사도(邪道) 또는 흑도는 사술로 속이거나 훔치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천시 당하는 것을 무릅쓰고서라도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한다. 무협지에서의 정사마는 선악이 비교적 분명히 구분되지만, 특허 경영에서는 반드시 그런 의미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 업무 특성을 비유하기 위해 잠시 끌어왔을 뿐이다.
특허 경영의 정사마 분류는 아마도 특허제도가 생겨날 때부터 예견된 것일지도 모른다. 특허제도가 존재하는 이유 즉 특허법의 목적을 규정한 특허법 제1조에는 이렇게 명시하고 있다. "이 법은 발명을 보호, 장려하고 그 이용을 도모함으로써 기술의 발전을 촉진하여 산업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즉 특허제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국가의 기술발전과 산업발전에 있음을 분명히 하면서, 기술과 산업의 발명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 발명의 보호, 장려 및 그 이용을 도모한다. 여기에 발명의 '장려', '이용', '보호'라는 세 가지 개념이 등장하고 이들에 의해 정사마의 개념이 갈라져 나온다.
특허제도는 신규하고 진보적인 발명에 대해 국가가 '특허'라는 독점배타적인 권리를 창설적으로 부여하는 제도이다. 특허권자는 그 특허의 배타적 권리를 가지고 자신의 발명이 타인에 의해 모방되는 것으로부터 지키며 독점적으로 실시할 수 있다. 그래서 특허 부여는 그 자체만으로도, 한편으로는 강력한 '발명 보호' 수단이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발명자들의 발명 의지를 고취하는 매우 효과적인 '발명 장려' 수단이 된다. 이처럼 '특허 부여'라는 하나의 돌로 발명의 보호와 장려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절묘한 시스템이 특허제도이다.
그런데 특허제도가 진정으로 노리는 복안은 사실 '발명의 이용'에 있다. '이용'은 일차적으로 특허권자가 자신의 발명을 실시하여 그 이익을 누리는 데에서 이루어지지만, 특허제도는 그 정도에 그치지 않고, 훨씬 더 폭넓은 범위의 '이용'을 안배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발명 공개 제도'이다. 특허 출원된 발명은 일정 기간(1년6월)이 지나면 거의 예외 없이 일반에 공개되기에, 누구나 그 출원 내용을 보고 그 기술을 습득할 수 있다. 그래서 해당 기술 분야의 후속 발명은 그 선행 발명보다 더 진보된 기술이어야만 특허를 취득할 수 있으니, 경쟁 기업 등은 앞선 발명들을 깊이 분석하고 배우고 그것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기술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그에 따라 기술은 가속적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다. 특허제도는 그 존재만으로도 기술 발전을 사정없이 가속하여 밀어붙이는 강력한 무동력 추진 엔진인 셈이다.
이러한 특허제도가 추구하는 발명의 장려, 이용, 보호 중 어느 개념에 더 치중하는가에 따라, 특허 경영은 정도(正道), 마도(魔道), 사도(邪道)로 구분된다. 특허제도의 '장려' 분야에 충실한 특허 정책을 채택한 쪽은 정도(正道)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새롭고 참신한 아이디어들을 널리 창출하여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그와 달리 특허 경영의 마도(魔道)는 특허의 배타적 지배권에 집중한다. 그 배타적 권능을 마음껏 휘둘러 경쟁자들을 배제하거나 압박하고 그를 통해 시장지배력 혹은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패도적 권능을 즐긴다. 사도(邪道)는 공개된 발명의 이용에 가장 주목한다. 다른 기업들이 개발해놓은 우수한 기술들을 모아서 그것을 학습한 다음 자신의 아이디어를 반영하여 자신의 새로운 발명을 창출하는 것이다.
이처럼 특허 경영에 있어서의 정사마(正邪魔)는 그 업무 특성의 비유일 뿐, 선악이나 옳고 그름의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단지 특허제도가 추구하는 분야 중 어디에 중점을 두는 가에 따라 정도적 활용, 마도적 활용 혹은 사도적 활용으로 구분되는 것이다. 실제에 있어서는 어느 한 분야를 더 중시하는 경영 방향을 가질 수는 있지만, 대체로 상이한 특성들이 혼재된 복합적인 형태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 가령 정도적 활용에 충실한 기업도 불가피한 상황이 닥치면 거침없이 사도나 마도의 행태를 드러낼 수도 있으며, 사도나 마도의 특성에 치중하여 특허 경영을 시작하였다가 점차 정도의 특허 경영 기업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다만 특허 정책이 너무 한쪽으로만 치우칠 때 문제가 된다. 예를 들어 정도(正道)에 집착하여 연구개발에만 몰두하면, 기술 환경의 변화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부족하거나, 연구 성과에 대한 타인의 모방을 효과적으로 예방하는 전략적 대비가 미흡할 수 있다. 그러면 사도나 마도 영역을 소홀히 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때론 과도히 마도적인 정책을 추구하여 특허 분쟁을 즐기다가 정작 가장 중요한 비즈니스 기반이 망가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도의 길도 마찬가지다. 공개된 남의 특허를 보고 그 기술을 모방하는 것은 영리한 방법이긴 하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남의 건물 옥상에 옥탑방을 지어 셋방살이 하는 꼴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니 만사가 그러하듯 특허 경영에 있어서도 균형 잡힌 정책이 중요하다. 정도적 특허경영에서도 마도적 권리 보호와 사도적인 기술환경의 이해라는 전술적 안배를 갖추어야 하고, 마도와 사도적인 특허 활용을 즐기더라도 정도를 통한 핵심역량의 구축을 소홀히 하면 그 기업은 사상누각이 되고 만다. 이처럼 정도적 역량이 없는 마도나 사도는 공허하며, 마도와 사도만이 결탁되면 특허괴물처럼 사악한 방향으로 흐른다. 정도적 정책에서 마도적 전략이 빠지면 위태롭고, 사도적 기법을 기피하면 효율을 놓치게 된다. 결국 우수한 특허 경영의 요체는 정사마를 고루 배려한 정책적 조화에 있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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