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빠진 개는 두들겨 패야 한다
제목의 문장은 개화기 중국의 작가 루쉰(魯迅, 1881~1936)의 수필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에 나오는 유명한 말이다.
1925년 중화민국 임시정부 당시 베이징여자사범대학교에서는 학교 측의 폭압에 맞서 학생들이 치열하게 저항 운동을 벌였다. 당시 교수로 재직 중이던 루쉰은 린위탕(林語堂, 1895~1976)과 함께 학생들의 편에 동참하였다. 결국 교육장관과 교장 등이 물러남으로써 마무리되었다. 그 후 린위탕은 ‘어사(語絲)’지에 실은 <온건함, 욕설, 그리고 ‘페어플레이’>라는 글에서, 패배한 자들의 ‘사상만을 비판하되 개인을 공격하지 말자’고 하면서, 물에 빠진 개를 패는 것에 비유하였다.
린위탕의 관용을 비판한 것이 바로 루쉰의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라는 글이다. 이 글을 읽은 린위탕은 자신의 인식이 그만큼 충분히 깊고 철저하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이후 루쉰의 충실한 지지자가 되었다. 이 명문장의 글을 감히 약간의 의역을 보태어 요약해보았다. 이욱연 역 '루쉰독본'을 참조하고, AI번역의 도움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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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
린위탕 선생이 '페어플레이(Fair play)'를 언급하며, 그 의미를 '물에 빠진 개를 패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하지만 나는 물에 빠진 개는 오히려 더 두들겨 패야 한다는 생각한다.
용감한 무술가는 넘어진 상대를 절대 때리지 않는다. 이는 본받아야 할 태도이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상대도 용감한 투사여야 한다는 점이다. 패배한 뒤 부끄러워하고 뉘우치면서 다시는 덤벼들지 않거나, 혹은 복수를 하더라도 정당한 방법으로 하려는 자라면 문제가 없다. 그런데 사람을 무는 개를 물에 빠트렸는데, 그런 개에게서 용감한 투사의 태도를 기대할 수는 없다. 개는 필시 헤엄을 쳐서 땅으로 기어 올라와, 몸을 털어 사람에게 물을 튀기거나 다시 덤벼들 것이다. 그러니 사람을 무는 개는 땅에 있건 물속에 있건 가리지 않고 두들겨 패야 한다.
특히 개 중에는 앞잡이 개라 불리는 발바리가 있다. 부자 집 마나님이나 벼슬아치들에게 아양을 떨며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면서 총애를 온몸으로 받는다. 이들이 하는 일이란, 영리해 보이는 외모로 귀한 사람의 손에 길러지며 여인들이 외출할 때 고리를 목에 매고서 졸졸 따라다니는 것뿐이다. 이런 앞잡이 개는 무조건 물에 빠뜨리고 계속 쫓아가며 때려야 한다.
사람을 무는 개가 물에 빠졌을 때, 그 개를 팰 것인지 말 것인지는 그 개가 땅에 올라온 뒤에 어떤 짓을 할 것인지를 예상해 보면 된다. 개의 본성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물에 한번 빠졌다 하여 그 본성이 변할 리 없다.
관료나 권력자들이 자기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모조리 빨갱이나 공산당으로 몰았던 적이 있다. 혁명으로 세상이 변할 때 그들은 바싹 엎드려 지내면서 다시 기어오를 날만 기다렸다. 그러다가 쑨원(孫文)이 황제 등극을 꿈꾸던 위안스카이(袁世凱)를 토벌하려고 2차 혁명을 일으키자, 그제서야 튀어나와 위안스카이에 붙어 많은 혁명가들을 물어 죽였다. 그로 인해 수많은 깬 청년들의 목숨이 소모되어야 했다.
"남이 내게 잘못을 해도 따지지 않는다(犯而不校)."는 것은 관용의 도(恕道)이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갚는다."는 곧음의 도(直道)다. 그러나 우리에게 흔한 것은 정의에 어긋난 ‘굽은 도(枉道)’이다. 착한 사람들은 사서 화를 불러들이기에, “착함은 무능함의 다른 표현이다"라는 말이 있다. 팰 힘이 없다면 어쩔 수 없지만, 어설픈 동정심 때문에 패야 할 때 패지 않는다면 그것은 굽은 도(枉道)가 되는 것이다.
물에 빠진 악인들이 있다. 불안한 정국에서 일어섬과 무너짐이 마치 수레바퀴처럼 급히 돌아가니, 권력에 기대어 거리낌 없이 악행을 저지르던 악인들이 실각하기도 한다. 그러면 그들은 곧바로 동정을 구걸한다. 선량한 이들은 물에 빠진 개의 곤궁한 입장을 배려하여, 때리지 않고 더 나아가 측은하게 여기기까지 한다. 정의가 이미 이겼으니 이제는 의협심을 보일 때가 되었다고 순진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착하고 순진한 사람들이 어찌 그들 속을 헤아릴 수 있으랴. 그 개들은 진정으로 곤경에 빠진 것이 아니라, 이미 안전한 보금자리와 넉넉한 먹을거리를 마련해두고 살며, 가끔 다리가 부러진 듯 절뚝거리는 시늉을 하며 사람들의 측은지심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다시 돌아오면 전과 다름없이 순진한 이들을 물어뜯는 등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것이다.
그 원인이 무엇이겠는가. 그 개가 물에 빠졌을 때 제대로 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착한 이들이 스스로 제 무덤을 판 꼴이니 하늘을 원망하거나 남을 탓할 것도 없다.
그렇다면 페어플레이가 필요 없다는 말인가?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아직은 이르다. 그들의 방식대로 똑같이 대해주어야 한다(請君入甕). 상대가 페어하지도 않는데 나만 페어하겠다고 고집한다면 결국 나만 손해를 본다. 그러므로 페어플레이를 하려면 먼저 상대의 실체를 똑똑히 보고, 페어를 나눌 자격이 있는 자에 대해서만 페어하게 대하면 된다. 페어플레이 정신이 보편화되려면, 적어도 물에 빠진 개들이 충분히 인간다워진 다음이어야 할 것이다.
선한 사람들이 외치는 ‘인륜의 도리(公理)’조차도 그들을 구원하기는커녕 오히려 악한 사람들을 보호한다. 악인들이 득세하여 선인들을 핍박할 때, 인륜의 도리를 아무리 외쳐도 그들은 전혀 듣지 않는다. 어쩌다가 선인들이 잠시 일어났을 때는 악인들을 모두 물에 빠트려야 마땅하지만, 인륜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보복하지 말라', '인자하고 관대하라', '악을 악으로 대하지 말라' 등의 말을 외치기 시작한다. 이때는 인륜의 효력이 멀쩡히 작동하여 악인들을 구제해준다. 그러면 그들은 그저 자신들의 복으로 이익을 본 것이라 여길 뿐 결코 뉘우치는 법이 없다. 모략에 능한 그들이기에 곧 다시 위세를 얻어 악행을 반복하고, 선인들은 다시 핍박을 받으면서 인륜의 도리를 공허하게 외칠 것이다.
그러니 그 사람의 도로써 그 사람을 다스려야 한다. 문명인에게는 문명의 도를 야만인에게는 야만의 도를 적용하라는 말이다. 이야말로 “인(仁)을 구하고자 해서 인을 얻었으니 여한이 있을 리 없다(求仁得仁何怨 _ 논어 述而).”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오직 자신을 기준으로 하여 남을 다스리려 한다. 이 때문에 페어플레이는 선한 이들의 약점이 되어 악한 세력에게 이익을 안겨주기도 하는 것이다.
이 나라를 바르게 개혁하려는 사람들에 대한 악랄한 박해는 잠시도 미뤄진 적이 없다. 그 수단의 극렬함도 이미 극에 달했다. 개혁가들은 여전히 꿈을 꾸고 있으며, 늘 손해만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이 나라는 아직도 온전한 개혁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 (덧붙인말)
"사람에 따라 다른 정의를 적용하자."
이 루쉰의 논조는 적잖이 위험한 인식이다.
정서적으로는 충분히 공감이 가지만, 현실적으로는 동조하거나 실행하기는 만만한 일이 아니다.
법철학의 관점에서나 깊이 다루어야 할 영역이니, 언젠가 이 부분에 대해 따로 연구해봐야겠다.
당시 중국의 혼란한 정국에서 국법이 제대로 질서있게 집행될 수 없던 상황이었기에, 세상은 온통 불공정으로 만연하였을 것이다.
그런 탁류 속에서 루쉰과 같은 문제의식을 가졌으나 힘이 없는 문필가는 진정한 '공정'을 찾아보고자 이렇게 외쳤던 것으로 보인다.
'법적 안정성'과 '구체적 타당성'의 미스 매치를 어떻게 메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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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 원문>
** <林语堂绘制“鲁迅打狗”漫画> _ 챗GPT 번역
1923년 여름, 린위탕(林语堂)은 독일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언어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귀국하여, 후스(胡适)의 추천을 받아 베이징대학교 영어과 교수로 임용되었다. 당시 신문화운동 진영은 이미 조용히 분화되어, 루쉰(鲁迅)과 저우쭤런(周作人)을 중심으로 한 ‘위스파(语丝派)’와 후스, 천위안(陈源)을 중심으로 한 ‘현대평론파(现代评论派)’가 각자의 입장을 구축하고 빈번히 논쟁을 벌이며, 서로 거친 언사로 비판을 주고받고 있었다. 서구에서 유학한 린위탕이 ‘위스사(语丝社)’라는 문학 단체에 가입하여 루쉰과 뜻을 같이한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뜻밖의 일이었다.
1925년 5월, 베이징 여자사범대학교(女师大)에서 학내 사태가 지속적으로 악화되었다. 학생들은 학교 측의 봉건적이고 전횡적인 운영에 반발하여 거리로 나서 시위를 벌였다. 이때 여사대(女师大) 영어과 교수였던 린위탕은 루쉰과 함께 학생들의 정의로운 행동을 지지하며, 진보적인 청년들을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심지어 학생들과 함께 거리로 나서 경찰 및 군대와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으며, 그 과정에서 이마에 상처를 입기도 했다.
이후 장스자오(章士钊)와 양인위(杨荫榆)가 자리에서 물러난 후, 린위탕은 *위스(语丝)*에 **《위스 문체에 대한 삽론(插论语丝的文体) – 온건함, 욕설, 그리고 ‘페어플레이(费厄泼赖)’》**라는 글을 발표했다. 이 글은 저우쭤런의 견해에 동조하는 내용으로, 페어플레이(fair play, 공정한 경쟁)의 중국식 음역인 ‘费厄泼赖’를 사용하여 ‘사상만을 비판하고 개인을 공격하지 말자’, 즉 **‘물에 빠진 개(落水狗)를 때리지 말자’**는 입장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12월 29일, 루쉰은 《‘페어플레이’는 천천히 시행해야 한다(论“费厄泼赖”应该缓行)》라는 글을 집필하여 1926년 1월 10일 망위안(莽原) 창간호에 게재했다. 그는 린위탕의 **‘패배한 자를 더 이상 공격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과, 저우쭤런의 **‘물에 빠진 개를 때리는 것은 죽은 호랑이를 때리는 것과 같으므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에 대해 완곡한 비판을 가했다.
이 글에서 루쉰은 **① 물에 빠진 개(落水狗)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으며, 대부분 공격해도 무방하다, ② 특히 ‘앞잡이 개(叭儿狗)’는 물속으로 빠뜨린 후 다시 때려야 한다, ③ ‘물에 빠진 개를 때리지 않는 것’은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이끄는 것이다, ④ 권력에서 밀려난 자들은 ‘물에 빠진 개’와 같지 않다, ⑤ 지금은 ‘페어플레이’를 논할 때가 아니다, ⑥ ‘상대의 방식대로 상대를 다뤄야 한다’**는 여섯 가지 측면에서 논리를 전개했다. 그는 물에 빠진 개를 패배한 적(敵)으로 비유하며, 날카로운 풍자로 이들을 철저히 타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린위탕은 루쉰의 글을 읽고 자신의 인식이 루쉰만큼 깊고 철저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이에 대해 그는 루쉰의 글에서 ‘앞잡이 개(叭儿狗)는 반드시 물에 빠뜨린 후 다시 때려야 한다’는 문장을 차용하여, 《루쉰 선생이 앞잡이 개를 때리는 모습(鲁迅先生打叭儿狗)》이라는 만평을 그려 1월 23일 징바오(京报) 부록에 게재했다.
이 그림에서는 루쉰이 모자를 쓰고, 짧은 수염을 기른 채, 긴 망치 같은 막대기를 들고 강가에 서서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개를 때리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왼쪽 위에는 **"모든 개는 반드시 물속에 빠뜨린 후 때려야 한다(凡是狗必先打落水里,而后从而打之)"**라는 문구가 적혀 있어, 루쉰의 ‘물에 빠진 개는 반드시 철저히 응징해야 한다’는 사상을 직관적으로 표현했다.
3월 10일, 린위탕은 다시 **《적화를 광범위하게 논하다(泛论赤化)》 및 《집 없는 개(丧家之狗)》**를 발표하여 루쉰의 *《페어플레이는 천천히 시행해야 한다》*와 논조를 맞추었다. 그는 ‘물에 빠진 개를 철저히 때려야 한다’는 입장을 강하게 주장하며, 루쉰의 논리를 지지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일주일 후인 3월 18일, ‘3·18 참사’(段祺瑞 군벌 정부의 평화 시위 학생 학살 사건)가 발생하자, 루쉰과 린위탕은 각각 **《류허전과 양더췬 여사를 추모하며(悼刘和珍杨德群女士)》와 《유허전군을 기리며(记念刘和珍君)》**를 집필하며, 반동 군벌들의 잔혹한 행위를 규탄하고 희생된 젊은이들을 추모했다.
이후에도 린위탕은 《개를 성토하는 글(讨狗檄文)》, 《‘발미(发微)’와 ‘고발(告密)’》, 《해명의 글(释疑)》 등을 연이어 발표하며, 당시의 ‘학자’와 ‘신사’라 불리는 자들을 ‘문학의 악마(文妖)’로 조롱했다. 그는 루쉰과 함께 북양 군벌과 그들의 위선적인 지식인들에 대한 공격을 적극적으로 전개했다.
1926년 4월 19일, 《해명의 글(释疑)》에서 린위탕은 다음과 같이 썼다.
"개는 때려야 한다는 데 인류 모두가 동의한다. 나는 예전에 ‘물에 빠진 개를 때리지 말라’고 말했지만...
이제 몇 개월이 지나면서, 나는 루쉰 선생이 ‘모든 개는 반드시 물속에 빠뜨린 후 다시 때려야 한다’고 말한 것이 더욱 옳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이로써 린위탕은 사상과 행동 면에서 루쉰의 일관된 투쟁 정신을 받아들이고 지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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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군입옹(請君入甕)>
'그대가 항아리 안으로 들어가시오'라는 뜻으로, 자기가 정한 규칙에 자신이 당하게 되는 경우를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자 황제인 측천무후(則天武后)는 주흥(周興)이 반란을 꾀한다는 밀고를 접하고 내준신(來俊臣)에게 그를 조사해 보라고 명하였다.
내준신은 주흥과 식사를 하면서 물었다. "어떤 죄인이 있는데 태도가 매우 완강하여 모반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에 주흥은 "그 자를 큰 항아리 안에 집어 넣고 사방에서 불을 때면 인정하지 않고서는 못 배길 걸세"라고 가르쳐 주었다.
내준신은 주흥의 말 대로 항아리를 설치하여 불로 달구어 놓고서 "그대가 모반을 꾀한다고 고발이 있어 내게 조사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네. 청컨대 주형이 이 항아리 안으로 들어가시게(請兄入此瓮)"라고 말하였다. 이에 주흥은 두려움에 떨며 죄를 자백하였다.
<자치통감(資治通鑑)> 〈당기(唐紀)〉편과 <신당서(新唐書)>의 〈혹리열전〉 등에 실려 있는 고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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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무는 개라면 땅에 있건 물 속에 있건 때려야 한다."
이 문장이 조국 정 조국혁신당 대표의 옥중 기고(25.02.21)에 등장한다.
조국 전 대표의 정서적 상황과 현 정국의 해법에 관한 그의 관점과 의지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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