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시아스, 오만의 가죽을 벗어라
올림포스 신들의 연회가 벌어졌다. 아마도 아킬레우스의 부모가 될 펠레우스와 메티스의 결혼식이었을 것이다. 제우스와 헤라, 포세이돈, 아테나를 포함한 12주신들뿐만 아니라 인간 세상의 소소한 일을 관장하는 온갖 신들이 모두 모였다. 그리고 신들만이 즐길 수 있는 그들 고유의 음식과 음료인 암브로시아와 넥타도 풍성히 마련되어 있어 신들은 먹고 마시며 연회를 즐겼다.
그런데 지혜의 여신 아테나는 그 넉넉한 연회장에서 무언가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곧 그것은 음악임을 깨달았다. 잔치 상이 아무리 풍성하여도 음악이 없으니 도통 흥이 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아테나는 그녀 특유의 지혜와 창의력을 발휘하여 연회를 더욱 흥겹게 만들고 싶었다. 식탁에 버려진 사슴의 넓적다리뼈로 그 속을 파내고 바람구멍을 적절히 내어 멋진 피리를 하나 만들었다. 피리 소리는 고왔다. 하지만 단조로웠다. 여기에다 고음으로 화음을 이룰 수 있다면 더욱 멋진 음악을 연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테나는 문득 고르곤 자매의 울음소리를 떠올렸다. 영웅 페르세우스가 아테나의 도움을 받아 괴물 고르곤 세 자매 중 하나인 메두사를 처형할 때, 그녀들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통곡하였다. 가슴으로 토해내는 그 날카로운 통곡 소리는 무척이나 슬펐지만 그래서 너무도 아름다웠었다. 아테나는 그 소리를 재현하는 고음용 피리를 하나 더 만들었다. 그러고는 두 개의 피리를 더블 리드로 결합하여 동시에 불어 보았더니, 고음과 저음이 서로 화음을 맞추어 지극히 조화로운 아름다운 곡이 연주되었다. 크게 만족한 아테나는 그것을 아울로스라 이름 붙였다.
아테나는 아울로스를 연회에 모인 신들 앞에서 불어 여러 신들을 감동시키고 연회의 즐거움을 더했다. 그런데 유독 헤라와 아프로디테는 그녀의 연주 모습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하는 것이었다. 서로 미모를 다투는 경쟁자인 여신들이 자신을 보고 웃는 이유가 너무도 궁금하였다. 그래서 아테나는 개울물에 자신의 연주하는 모습을 비춰보았다. 아울로스를 불기 위해 더블 리드를 입속에 넣어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볼이 불룩하게 부풀어 올라 얼굴이 보기 싫게 일그러졌던 것이다. 그로 인해 웃음거리가 된 데에 화가 난 아테나는 아울로스를 인간세계인 지상으로 던져버렸다. 그러면서 경고를 덧붙였다. “누구든지 이 아울로스를 가져가 부는 자는 끔찍한 저주의 벌을 받게 될 것이다.”
지상으로 버려진 아울로스는 마침 그곳을 지나던 마르시아스의 눈에 띄었다. 마르시아스는 사티로스 종족이다. 사티로스는 상체는 인간이고 하체는 염소인 반인반수의 모습을 한 숲의 정령으로서, 인간과 동물의 본능을 동시에 지녔다. 이성보다는 감성을 따르고 절제보다는 쾌락을 추구하는 종족이었기에, 술과 여자, 춤과 노래 등을 항상 동반하는 디오니소스 신을 따라 다녔다. 유흥에 능한 마르시아스는 아울로스의 가치를 금세 알아보고 소리를 내보았다. 그는 단번에 그 조화로운 음률에 매료되었다.
고귀한 여신의 발명품으로서 천상의 신들에게 아름다운 소리를 들려주었던 아울로스가 동물적 본능을 가진 사티로스인 마르시아스의 손에 들려 이제는 그의 소리를 내게 된 것이다. 아울로스의 매력에 흠뻑 빠진 마르시아스는 음악에 대한 태생적 재능을 발휘하여 열심히 연습하였다. 마르시아스의 감성적 본능과 결합된 아울로스의 신비한 음률은 온갖 짐승들의 영혼을 홀려서 짐승들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었다. 그림 형제의 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에 나오는 마술피리는 이 마르시아스의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일취월장으로 숙련된 마르시아스의 아울로스 연주 실력은 널리 알려져 이윽고 올림포스의 신들에게까지 그 명성이 전해졌다. 그러한 성취는 곧 강한 자부심이 되었고, 자부심은 도를 넘어 오만(Hubris)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오만은 마르시아스를 신에게 도전하도록 부추겼다. 음악의 신인 아폴론은 그의 교만을 응징하기 위해 도전을 받아들였다. 아폴론이 사용하는 악기는 헤르메스로부터 얻은 '리라'라는 현악기였기에, 관악기와 현악기 사이의 경연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승부가 가려지면 패자는 승자의 처분에 따르기로 하였다.
심판으로 프리기아의 왕 마이다스가 선정되었다. 그는 바로 '마이다스의 손'으로 알려진 그 마이다스이다. 디오니소스의 은총을 받아 손을 대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변하게 만드는 능력을 가졌다가, 그로 인해 너무도 아끼던 딸마저 황금으로 변하게 되자, 자신의 탐욕을 깊이 뉘우친 후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었던 그 신화의 주인공이다. 마이다스는 심판의 입장에서 양쪽의 음악을 골고루 들어보았다. 하지만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 그가 판정을 제대로 내리지 못하자, 아폴론은 음악을 좀 더 잘 들을 수 있게 해주겠다며 그의 귀를 잡아당기는 바람에, 그의 귀는 당나귀 귀가 되어 버렸다. 그로 인해 마이다스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동화에서도 등장한다.
승패가 명쾌하게 가려지지 않으니 최종적으로 한판 연주로 승부를 가리기로 하였다. 아폴론은 각자의 악기를 거꾸로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자고 제안하였다. 마르시아스는 그 제안이 부당하다 여겼지만, 자신과는 비할 바 없이 강한 올림포스 주신 중 하나의 주장이었기에 거부할 수 없었다. 결과는 당연히 마르시아스의 패배였다. 리라는 현악기이기에 거꾸로 잡고 연주하고 노래도 부를 수 있지만, 피리는 연주는 물론 노래는 더더욱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패배한 마르시아스에게 아폴론이 내린 형벌은 가혹했다. 마르시아스를 나무에 묶어두고 산채로 살가죽을 벗기도록 한 것이다. 감히 사티로스의 가죽을 쓰고 신의 음률을 흉내 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마르시아스는 참을 수 없는 고통에 한껏 비명을 질렀고, 그의 가족과 동료 사티로스들은 그 고통을 공감하면서 함께 아픔의 눈물을 흘려야 했다.
마르시아스의 시련은 그의 오만이 가져온 비극이다. 아테나 여신의 저주는 바로 그 오만이었다. 오만은 그의 성취에서 왔고, 그의 성취는 아울로스를 줍는 행운에다 자신의 재능과 노력이 더해져 이룩된 것이니, 결국 그의 축복받은 행운, 재능, 노력이 오만을 낳아 그를 파멸로 이끈 것이다. 그러니 아폴론이 그에게서 벗겨낸 것은 바로 그의 온몸을 감싸고 있던 오만의 가죽이었다. 오만의 가죽을 벗어던진 그는 이제 겸허한 모습으로 새로이 태어날 것이다.
그래서 단테는 '신곡'에서 천국에 올라 이렇게 기도하였다. "오~ 아폴론이여~ 내 가슴 속에 들어와 그대의 영감을 불어넣어 주소서. 마르시아스를 그 가죽 속에서 벗겨냈을 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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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의 신곡 중에서>
(천국에 오른 단테는 뮤즈와 아폴론에게 도움을 청한다.)
"오~ 아폴론이여~
내 가슴 속에 들어와
그대의 영감을 불어넣어 주소서.
마르시아스를 그 가죽 속에서 벗겨냈을 때처럼."
_ 신곡 천국편 제1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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