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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천리마리더십

[허성원 변리사 칼럼] #183 <아테나이24>마르시아스를 예찬하라

by 변리사 허성원 2024. 12. 1.

마르시아스를 예찬하라

 

"아폴론이여, 내 가슴 속으로 들어와 그대의 영감을 불어 넣어 주소서. 마르시아스를 그 가죽 속에서 벗겨 냈을 때처럼!" _ 단테의 '신곡' 천국편.

마르시아스는 아테나 여신이 천상에서 지상으로 던져버린 아울로스를 운 좋게 주웠다. 아울로스는 고음과 저음의 두 피리를 더블 리드로 결합한 것이다. 마르시아스는 그것을 자신의 재능과 노력으로 연마하여, 동물들을 음악으로 홀려 마음먹은 대로 조종할 수 있는 탁월한 경지에까지 이른다. 하지만 그 성취로 인해 그는 오만의 덫에 걸려든다. 오만은 그를 음악의 신 아폴론에게 도전하도록 유혹하고, 결국 신에게 패배하여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지는 끔찍한 형벌을 받게 된다.

이 마르시아스의 이야기는 고대로부터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어 수많은 그림이나 조각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마르시아스와 아폴론의 승부 장면은 고대 토기의 그림이나 무덤의 부조에 널리 그려지고 새겨졌다. 그리고 마르시아스가 아폴론에 의해 살가죽이 벗겨지는 형벌 장면은 티치아노, 라파엘로를 비롯한 여러 화가나 조각가들에 의해 그림과 조각 등 많은 예술작품으로 남아있다.

예술가들은 왜 그토록 마르시아스의 이야기에 끌릴까? 아마 그들도 마르시아스처럼 신에 도전할 수 있는 탁월한 경지를 추구했을지 모른다. 자신들의 성취가 신의 경지를 범볼 수만 있다면 껍질이 벗겨지는 형벌마저도 감수할 수 있다는 유혹을 받아보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 예술가들보다 더 마르시아스를 닮고자 애쓰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바로 기업인, 창업가와 같은 현대의 리더들이다.

기업인들은 우연히 창업의 기회를 얻고 그 기회를 자신의 재능과 노력으로 비즈니스를 성장시켜 나간다. 그 과정은 마르시아스가 길을 가다 아울로스를 줍게 되고, 그것을 자신의 재능과 노력으로 연마하여 탁월한 경지에 오르게 되는 과정과 흡사하다. 그리고 성취를 이루었을 때 어김없이 교만이 찾아오고, 그로 인해 지독한 고통과 파멸을 경험하게 된다는 점에서도 유사하다. 그래서 리더들은 마르시아스에게서 가르침을 얻어야 한다. 그의 행운과 성취, 도전과 좌절, 혁신과 갱생을 통해 리더들에게 알려주는 그 가르침들을 주목하여야 한다. 마르시아스의 가르침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먼저 마르시아스는 조화의 성취를 이루었다. 마르시아스가 운 좋게 주운 아울로스는 고음과 저음의 소리를 내는 두 개의 피리가 하나로 결합된 것이다. 아울로스를 정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 상이한 두 음의 조화 즉 하모니를 깨쳐야 한다. ‘조화’는 리더의 가장 기초적인 미션이 아닌가. 높고 고귀한 비전을 설정하고 그것을 아래의 조직원들에게 공유하여야 하니, 높고 낮은 두 상이한 과업의 조화를 이룰 수 있어야만 리더가 될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귀밝음(聰)과 눈밝음(明)을 가진 지적능력 즉 문재(文才)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것을 실행할 무재(武才) 즉 용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문재와 무재, 이 역시 적절한 조화를 요구한다. 그래서 모든 성취한 리더는 조화의 전문가다. 마르시아스는 그런 조화의 성취를 증명해보였다.

그리고 마르시아스는 도전하였다. 신을 상대로 자신의 성취를 시험하려 대든 것이다. 비록 오만의 유혹에 따른 것이라 하더라도, 모든 도전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것이며 뜨거운 영혼의 작용이다. 도전할 줄 모르는 미지근한 영혼은 리더가 될 수 없다. 신에 도전하여 비참한 결말을 겪어야했던 이카로스, 시지포스, 아라크네 등의 이야기를 마르시아스는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신곡'에서 단테의 스승 베르길리우스는 미지근한 영혼은 지옥에조차 들어갈 수 없다고 하였다.

단테가 지옥의 문을 통과하려고 할 때 어디선가 고통스럽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단테는 스승 베르길리우스에게 물으니, 스승이 대답했다. "이 불쌍한 영혼들은 불쌍한 방식으로 세상을 살았다. 그들은 오명도 없고 명성도 없는 미지근한 영혼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인생의 최우선으로 삼았기에, 아무 일도 시도하지 않았다. 좋은 일도 하지 않고 나쁜 일도 도모하지 않았다. 살아있을 때에도 살아본 적이 없는 자들이니 죽음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니 지옥에도 들어갈 수 없다."

마르시아스는, 지옥의 문 앞에서 울부짖는 자들에 비하면, 그의 영혼은 얼마나 뜨거웠던가. 그로 인해 그에게는 가혹한 시련이 가해진다. 모든 리더는 시련을 통해 비로소 강해지며, 시련 없이 리더는 존재할 수도 성장할 수도 없다.

마르시아스의 가죽 벗김 즉 '혁신(革新)'의 형벌은, 여러 예술작품들을 보면 아폴론이 직접 행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명령하여 행해지기도 한다. 그 중에서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야콥 요르단스(Jacob Jordaens)의 그림 작품에서는 아폴론을 섬기는 9명의 뮤즈들이 그 형벌을 집행하고 있다. 이 뮤즈들은 각자 나름의 인문학적 전문 분야를 관장한다. 서사시의 칼리오페, 역사의 클리오, 서정시의 에우테르페, 비극의 멜포메테, 춤의 테르프시코라, 연애시의 에라토, 전쟁 찬가의 폴림니아, 천문학의 우라니아, 희극의 탈리아가 그들이다.

결국 마르시아스가 뮤즈들에 의해 당한 형벌은 다양한 인문학적인 혁신이다. 그가 비록 감히 신에게 도전할만한 탁월한 실력을 가졌지만 스스로 자신의 오만을 통제하는 인문학적, 철학적 소양이 미흡했었기에, 뮤즈들은 마르시아스에게 꼭 필요한 인문학적 소양을 채워주는 혁신을 감행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재능과 인문학에 결합되어 새로운 경지로 도약하며 새로운 인격체로서 새로이 태어나게 된다. 그의 갱생은 "과학과 인문학을 결합하라!"는 스티브 잡스의 철학이 구현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현대의 리더들도 다양한 시련과 좌절을 겪고 그것을 극복하면서 혹은 남다른 배움의 과정을 거쳐 철학적 내실을 강화하며 성장한다.

그리고 마르시아스는 후세의 사람들에게 거울이 되고 거름이 되었다. 그가 가죽이 벗겨지는 형벌을 받으면서 흘린 피와 그 동료들이 흘린 눈물은 강이 되어 흘렀다고 한다. 그 강은 마르시아스 강이라 불렸다. 레바논에서 발원하여 시리아와 튀르키예를 거쳐 지중해로 흐르는 지금의 오론테스 강이 그것이라 하기도 하고, 튀르키예 서쪽 고대 프리기아 지방을 지나는 멘데레스 강 지류가 그것이라고도 한다. 강은 흘러가면서 넓은 대지를 비옥하게 만들어 수많은 인간의 삶을 이롭게 하는 거름이 된다. 그런 한편 인간이 교만을 경계하여 겸허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지혜의 거울로서도 역할도 수행한다.

그렇게 마르시아스는 그의 행운과 성취, 도전과 좌절, 혁신과 갱생을 통해 후세의 리더들에게 묵직한 가르침을 주고 리더들을 위한 거름과 거울을 남겼다. 그러니 마르시아스를 예찬하라! 

 

<마르시아스의 살가죽을 벗기는 아폴론  by Antonio Corradini (1658–1752)>
<Giovanni Bilivert (Firenze 1584 - 1644)>
<Balthasar Permoser(1651~1732)>
< Jusepe de Ribera (1591-1652)>

 

<라파엘로,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서명의 방 천장화>

<이스탄물 유적지 박물관>

 

<티치아노, 16c>

Athena and Marsyas: the discovery of the aulos in an imaginative recreation of a lost bronze by Myron (Botanic Garden, Copenhagen)

Marsyas and Apollo, Paestan red-figure lekanis C4th B.C., Musée du Louvre

Torment of MarsyasLouvre Museum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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