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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천리마리더십

[허성원 변리사 칼럼]#186 이런 신하를 정녕 삶아 죽인단 말입니까?

by 변리사 허성원 2024. 11. 22.

이런 신하를 정녕 삶아 죽인단 말입니까? 

 

춘추시대 2대 패자는 진문공(晉文公, 재위 BC636~628년)이다. 그는 공자 중이(重耳) 시절 정치적 핍박을 피해 19년 동안 망명의 유랑생활을 하다 62세의 나이가 되어서야 군주의 자리에 올랐다. 그의 유랑 행로는 북쪽의 융족(戎族) 땅에서부터 위(衛), 제(齊), 조(曺), 송(宋), 정(鄭), 초(楚), 진(秦)를 거치는 근 1만 리에 달했다. 그가 거쳐간 나라들은, 망명 공자를 국빈으로 후하게 대접하는 곳도 있었지만, 힘도 희망도 없는 그를 박대하거나 노골적으로 심한 모멸감을 주는 곳도 많았다.

공자 중이가 정(鄭)나라를 지날 때였다. 그가 정나라로 오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정문공은 그를 예우할 뜻이 없었다. 이를 본 상경 벼슬의 숙첨(叔詹)이 "중이는 하늘이 돕는 사람이니 그를 등한히 대해서는 안 된다"고 간언하였는데도, 정문공은 늙고 힘이 없는 그에게 예를 베풀려 하지 않았다. 이에 숙첨이 말했다. "주상께서 그를 극진한 예로 예우할 생각이 없으시다면 차라리 그를 죽여 원수로서의 후환을 남기지 마십시오." 그러나 정문공은 그 간언마저도 웃어넘기고 말았다.

그런 공자 중이가 훗날 진나라의 권좌에 올라 진문공이 되었다. 중원을 실질적으로 호령하는 강력한 힘을 가진 패자가 되자, 예전 유랑 시절 정나라에서 받은 서러움을 잊지 않고 그를 박대했던 정나라를 응징하려 했다. 먼저 정나라에 사람을 보내어 당시 권력자였던 숙첨을 바치라고 요구하였다. 그 요구에 응하면 필시 숙첨의 목숨이 위태로울 것이기에 정문공은 보내지 않으려 했으나, 숙첨은 자청하여 진문공의 요구에 응하여 그의 앞에 나섰다. 그 장면을 동주열국지는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진문공은 정나라 숙첨(叔詹)을 보자마자 크게 꾸짖었다. "네놈는 정나라의 국권을 좌지우지하면서 네 임금이 빈객에게 무례한 짓을 범하게 했다."라고 하고는, 거기다 다른 여죄들을 묻고서 좌우에 명하여 세발솥을 걸게 하고 그를 그 솥에다 삶아 죽이라고 하였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숙첨은 얼굴색도 변하지 않고 두 손으로 예를 올리며 진문공에게 말했다. "신은 할 말은 다하고 죽기를 원합니다." 진문공이 허락하자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군후께서는 방금 전 지난날의 어려웠던 시절을 들춰내셨습니다. 그 일로 말하자면, 어찌 신에게도 할 말이 없겠습니까? 그 옛날 군후께서 유랑하시다가 우리 정나라에 들르셨을 때 신은 우리 주공께 진공자 중이를 환대해야 한다고 간곡하게 권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공은 신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신은 다시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진공자 중이를 죽여 없애십시오." 신이 이 말을 한 까닭은 군후께서 현명한 분이며, 훗날 패업을 성취하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공은 그러한 저의 말을 또한 듣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이런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말을 덧붙였다. "남의 신하된 자로서 일을 잘 헤아려 미래를 바르게 맞힐 수 있는 것이 '지혜(智)'이며, 마음을 다하여 나라를 섬기는 것이 ‘충성(忠)’이며, 어려움이 닥쳐도 피하지 않는 것이 ‘용기(勇)’이며, 몸을 바쳐 나라는 구하는 것이 ‘인의(仁)’입니다. 지금 지혜(智), 충성(忠), 용기(勇), 인의(仁)를 모두 갖춘 이 같은 신하를 진나라의 국법에서는 정녕 삶아 죽인단 말입니까?" 그는 이제 세발솥의 귀를 잡고 소리쳤다. “이제부터 군주를 섬기는 자들은 이 숙첨의 죽음으로부터 가르침을 얻으라~"

숙첨의 외침을 들은 진문공은 너무도 놀라 모골이 송연해져서는, 죽이지 말고 그를 사면하라고 얼른 명하였다. "과인이 잠시 그대를 시험해본 것이오. 그대는 참다운 열사로다."라고 말하며, 숙첨을 후하게 예를 다하여 대접하고 정나라로 돌려보내게 했다. 그리하여 진문공은 지혜(智), 충성(忠), 용기(勇), 인의(仁)를 모두 갖춘 신하를 삶아 죽인 무도한 군주가 될 뻔한 위기를 넘겼다. 이처럼 진문공이 가진 진정한 리더십의 요체는 자신에게 거스르는 말을 듣고 받아들여 반성하고 자신의 행동을 바로잡는 데에 있었던 것이다.

최근 소위 "채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하여 박정훈 대령에게 군사법원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었다. 박 대령은 2023년 7월 홍수로 불어난 강을 수색 작업을 하다 희생된 채수근 상병 사건에 대해 수사하던 중 사건을 이첩하라는 명령과 사단장을 혐의자에서 빼라는 명령 등을 따르지 않았다고 하여 항명죄 등으로 기소되었었다. 그 과정에 군통수권자의 간섭 등 복잡한 사정이 개입되어 있기도 하지만, 이 사안의 핵심 논점은 '부하는 상관의 부당한 명령에도 무조건 따라야 하는가?'에 있었다. 군대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그리해야만 한다고 여기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공군 예비역 대령 출신의 지인에게서 배운 것이 있다. 그의 글을 옮겨왔다.

"사관학교에서 가르치는 [현대의 군대윤리]에는 군인이 충성해야 할 가장 큰 세 가지 대상을 이렇게 적시하고 있다. 첫째, 원칙(principles)에 대한 충성이다. 원칙에 어긋나는 맹목적 복종이 용납되지 않는 준거이며 이유가 되는 최상위 가치 즉, 헌법과 법률적 가치를 말한다. 모든 명령은 합법적이어야 한다는 원칙 때문에 합법적인 명령에는 복종해야 하지만, 불법적인 명령에는 복종하지 말아야 한다. 둘째, 목적(purpose)에 대한 충성이다. 명령-복종의 행위를 통해서 달성하려는 목적이 무엇이냐에 대한 충성이다. 그러나 이루려는 목적이 원칙에 어긋나는 부끄러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며, 설사 명예로운 목표라 하더라도, 그 목표를 성취하는 방법이 수치스러운 것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윤리적으로 볼 때, 목적이 원칙을 뒤집지 못함을 분명히 해야 한다. 셋째, 사람(person)에 대한 충성이다. 사람은 충성 대상의 위계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있다. 원칙이 목적에 앞서며, 목적이 사람에 앞서는 것이다."

그렇다. 충성의 대상은 원칙, 목적, 사람의 순이다. 많은 사람들이 충성이란 명령권자 즉 사람을 향한 것이라 오해하고 있다. 그러기에 여러 혼란이 생겨났고 또 그런 혼란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무릇 공직에 복무하는 자라면, 가장 기본적인 '원칙'인 대한민국 헌법 제 7조 "공무원은 국민 전체를 위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를 반드시 기억하여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번 박 대령의 판결은 군인이든 아니든 명령권자 '사람의 명령'을 맹목적으로 따를 것이 아니라 '원칙'과 '목적'을 반드시 스스로 점검한 후에 행동하여야 한다는 점을 명료히 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교육적인 지침이 된다 할 것이다.

박 대령이 겪은 이번 일을 가지고 숙첨의 말을 빌어서 이렇게 외쳐보고 싶다.

"그는 일을 잘 헤아려 잘못된 명령임을 바르게 인식한 지혜를 갖추었고, 마음을 다하여 사람이 아닌 원칙을 지키려 한 충성을 갖추었고, 온갖 압박이 닥쳐도 피하지 않고 꿋꿋이 맞서는 용기를 갖추었고, 몸을 바쳐 인간에 대한 사랑과 옮음을 실천하는 인의를 갖춘 진정한 군인이다. 이처럼 지혜, 충성, 용기, 인의를 모두 갖춘 군인을 진정 파멸시키려 했단 말인가? 이 나라에서 윗사람을 섬기는 자들이여, 이 일에서 가르침을 얻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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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신하된 자로서 
일을 잘 헤아려 미래를 바르게 맞힐 수 있는 것이 '지혜()'이며, 
마음을 다하여 나라를 섬기는 것이 충성()’이며, 
어려움이 닥쳐도 피하지 않는 것이 용기()’이며, 
몸을 바쳐 나라는 구하는 것이 인의()’입니다.
지금 
지혜(), 충성(), 용기(), 인의()를 모두 갖춘 이같은 신하를 
진나라의 국법에서는 정녕 삶아 죽인단 말입니까.

이제부터 군주를 섬기는 자들은 
 숙첨의 죽음으로부터 가르침을 얻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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且說晉侯見了叔詹,大喝:「汝執鄭國之柄,使其君失禮於賓客,一罪也;受盟而復懷貳心,二罪也。」命左右速具鼎鑊,將烹之。叔詹面不改色,拱手謂文公曰:「臣願得盡言而死。」文公曰:「汝有何言?」詹對曰:「君侯辱臨敝邑,臣常言於君曰:『晉公子賢明,其左右皆卿才,若返國,必伯諸侯。』及溫之盟,臣又勸吾君:『必終事晉,無得罪,罪且不赦。』天降鄭禍,言不見納。今君侯委罪於執政,寡君明其非辜,堅不肯遣;臣引『主辱臣死』之義,自請就誅,以救一城之難。夫料事能中,智也;盡心謀國,忠也;臨難不避,勇也;殺身救國,仁也。仁智忠勇俱全,有臣如此,在晉國之法,固宜烹矣!」乃據鼎耳而號曰:「自今已往,事君者以詹為戒!」文公悚然,命赦勿殺,曰:「寡人聊以試子,子真烈士也!」加禮甚厚。_ 東周列國志/第044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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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순직 사건을 조사하다가 군사재판에 넘겨진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의 법률대리인이었던 김경호 변호사는 12일 오전 "또 다시 돌아 온 12월 12일, 진정한 '충성'의 의미"란 제목의 글을 공유했다.

김 변호사는 현행 군인복무기본법에 나와 있는 '충성 의무'와 '복종 의무'를 거론하면서, 충성의 대상은 "국가와 국민"이고 복종의 대상은 "직무상 명령하는 상관"이라고 명백히 구별해 규정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충성의 목적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 및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을 보호하기 위함이고, 복종의 상황은 구체적인 직무수행 간에 상관의 명령과 지시라고 규정하고 있어, '충성'은 신성한 국방에 대한 희생을 의미하지만, '복종'은 법령에 정한 바에 따른다는 의미로 (서로) 다르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12·12 가담 군인들의 행위는 진정한 군인의 충성도, 진정한 군인의 복종도 아닌 단지 군사 반란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985395

 

박정훈 대령 전 변호인 "'충성'과 '복종' 진정한 의미 잘 새겨야"

"군인은 어떤 명령에 따라야 하고, 어떤 명령은 거부해야 할까." 12·12쿠데타 발생 44주년을 맞아 한 법률가가 던진 질문이다.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조사하다가 군사재판에 넘겨진 박정훈 전 해병

www.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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