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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천리마리더십

[허성원 변리사 칼럼]#175 키루스의 사랑론, 에로스를 극복하라

by 변리사 허성원 2024. 8. 5.

키루스의 사랑론, 에로스를 극복하라

 

페르시아 제국을 일으킨 키루스 대왕의 리더십은 타인에 대한 너그러운 관용과 자신에 대한 엄격한 절제에 기반하고 있다. 그러면 여성에 대한 애정관은 어떠했을까? 크세노폰이 쓴 '키루스의 교육'에는 여성, 사랑 혹은 그 절제에 대해 그가 어떤 가치관을 가졌는지를 알게 해주는 재미있는 장면이 나온다. 포로로 잡힌 아름다운 여성을 두고 부하 아라스파스와 나눈 논쟁이다.

키루스의 군대가 아시리아 대군을 물리친 후 전리품을 모아 동맹군들과 분배하였다. 그 전리품 중에는 수사의 왕비 판테이아가 있었다. 수사의 왕 아브라다타스는 아시리아 왕의 요청으로 박트리아에 사신으로 떠나 있었기에, 판테이아만이 그녀의 시녀들과 함께 포로로 붙잡힌 것이다. 키루스는 아브라다타스를 예우하여 그녀를 안전히 보호하기로 하고, 그의 친구이자 부하인 아라스파스에게 그녀를 지키도록 요청했다.

이에 아라스파스는 판테이아를 보고 와서, 키루스에게 말했다. "키루스시여, 저를 비롯해 거기에 있던 모든 사람은 아시아에서 태어난 여자 중 그녀보다 아름다운 여자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은 반드시 그녀를 직접 보셔야 합니다." 그 아름다운 여자를 취할 기회를 키루스에게 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자 키루스는 "자네가 말한 그런 여자라면 나는 더더욱 그녀를 보지 않겠네."라고 답했다. 아라스파스가 그 이유를 묻자 키루스는 이렇게 말했다.

"자네에게서 방금 내가 당장이라도 뛰어가서 보고 싶게 만들 정도로 그녀가 아름답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네. 그러니 내가 그렇게 그녀를 한번 보고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또 그녀를 보고 싶게 된다면 어찌 하겠나. 그렇지 않아도 시간이 부족한 내가 그녀를 보면서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낸다면, 내가 해야 할 중요한 과업들에 소홀하게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네." 키루스는 아름다운 여자가 과업 수행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에 아라스파스가 반박했다. "음식을 먹지 않고도 배고프지 않아야 한다거나 물을 마시지 않고도 목마르지 않아야 한다는 법이 제정된다면, 그런 법은 어느 누구도 복종하게 만들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은 본능이기에 어쩔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이성적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의 의지에 의한 선택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에게 맞는 옷과 신발을 선택하듯이 자신에게 맞는 것을 사랑합니다." 아라스파스는 의지에 따라 사랑을 할 것인지 여부를 선택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에 키루스는 이렇게 말했다.

"사랑이 선택의 문제라면, 자신이 원할 때 사랑도 그만둘 수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사랑의 괴로움 때문에 눈물 흘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사랑에 빠진 노예가 되기를 그토록 싫어했던 사람들조차 사랑의 노예가 되는 것을 많이 보았네. 자기가 소중히 여기는 귀한 물건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아낌없이 내주기도 하지. .. 마치 질병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처럼 사랑으로부터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원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쇠사슬로 묶인 것처럼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도 숱하게 보았네. 사랑의 노예가 되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고 그 사람이 시키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게 되지. 그런 꼴을 당하고서도, 사람들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도망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에게서 도망칠까 두려워한다네."

아라스파스가 말했다. "그런 사람들도 있긴 합니다만, 그들은 나약한 자들입니다. 아름다운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그녀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나약한 자들이 자신의 욕망을 다스리지 못해 스스로 사랑에 빠져놓고는 사랑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변명합니다. .. 어쨌든 저는 그녀를 보았고, 제게 그녀는 정말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게 명령하신 소임을 완수할 것입니다." 이에 키루스가 말을 이었다.

"자네는 본능적으로 사랑에 붙잡히기 전에 그 자리를 나왔을 것임에 틀림이 없네. 불을 만졌다고 해서 금세 화상을 입지도 않고 장작에 금방 불이 붙는 것도 아니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부러 불을 만지거나 미녀를 쳐다보지도 않을 것이네. 나는 자네에게도 미녀들을 오래 쳐다보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네. 아라스파스여, 불은 만질 때만 화상을 입게 되지만, 미녀들은 멀리서 쳐다보기만 해도 애욕의 불에 휩싸이기 때문이네."

이처럼 키루스가 우려하는 말을 듣고, 아라스파스는 자신의 이성이 욕망을 통제할 것이니 욕망에 굴복하여 일을 그르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고는, 판테이아를 지키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떠났다. 그러나 아라스파스는 자신의 말을 지키지 못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판테이아를 향한 애욕에 깊이 빠져버리고 만 것이다. 아라스파스는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간곡히 청혼하였지만, 그녀가 받아들이지 않자 강제로라도 자신을 뜻을 관철시키려 했다. 판테이아는 어쩔 수 없이 이를 키루스에게 알렸다. 키루스 앞에 불려간 아라스파스는 자기가 한 짓을 몹시 부끄러워하고 괴로워하며 눈물을 쏟았다. 이에 키루스가 말했다.

"아라스파스여, 자신의 행동을 너무 수치스러워 하지 않아도 되게. 신들도 사랑의 포로가 되고 아무리 현명하여도 사랑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네. 나 자신도 미인과 함께 있으면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만큼 의지가 강하지 않다는 걸 나는 진즉부터 잘 알고 있었네. 그런데도 자네를 궁지로 몰아넣은 것은 바로 내가 아닌가. 자네가 이렇게 된 데는 사실 내 책임이 크네." 이후 아라스파스는 키루스의 용서에 보답하기 위해 리디아 공략을 위한 반간계에 직접 투입되어 큰 공을 세웠다.

정리해보자. 사랑이란 자신의 의지에 따른 선택이며 나약한 자들이나 욕망을 다스리지 못해 사랑에 빠지는 것이라 주장한 아라스파스는 자신의 말이 틀렸음을 스스로 증명해보였다. 그러나 키루스는 애욕 즉 에로스의 위험을 잘 알고 있었다. 미녀는 불과 같은 존재라서 바라보기만 해도 불길에 휩싸이듯 화상을 입거나 애욕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불을 만져보려는 짓을 해서는 안 되듯 미녀는 아예 쳐다보지 않으려 했다. 에로스의 유혹은 항상 눈을 통해 먼저 들어오는 것이라 시험조차도 위험하기 때문이다. 미녀라면 아예 보는 것조차 회피하는 엄격한 절제, 이것이 바로 키루스의 에로스 극복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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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자신의 의지에 따른 선택이라면
자신이 원할 때 사랑도 그만 둘 수 있어야
미녀는 불과 같은 존재, 시험하지 마라
에로스의 유혹은 눈으로 들어오는 것이라
아예 보는 것조차 피하는 엄격한 절제가
키루스가 에로스를 극복하는 비결

 

판테이아, 키루스 및 아라스파스. 1630년 로랑 드 라 이르 작품. Panthea, Cyrus, and Araspas, 1630s painting by Laurent de La Hy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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