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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천리마리더십

[허성원 변리사 칼럼]#174 특허통수권⑬ 특허는 적을수록 많은 것이다

by 변리사 허성원 2024. 8. 4.

특허통수권⑬ 특허는 적을수록 많은 것이다

 

"이제 그 상인의 가슴 살 1파운드는 당신의 것입니다. 이 법정이 판결하고 법률이 허용하는 바에 따라, 당신은 그의 살을 잘라 가시면 됩니다."

셰익스피어의 희극 '베니스의 상인' 중에서 나오는 '포셔의 판결'이다. 베니스의 상인 안토니오는 친구 바사니오의 청혼 여행을 돕기 위해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서 큰돈을 빌린다. 안토니오에게 원한이 있던 샤일록은 이자 대신에 돈을 갚지 못하면 그의 가슴 살 1파운드를 제공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런데 담보로 제시한 안토니오의 상선이 모두 침몰하여 돈을 갚지 못하게 되자, 안토니오 측은 다른 상환 방식을 제시하였으나, 샤일록은 오직 안토니오의 가슴 살 1파운드만을 요구하였다. 이에 재판이 벌어졌고, 재판관 석에 앉은 포샤는 계약 내용대로 그의 살을 잘라 가라고 판결한다. 샤일록이 재판관의 공정한 판결을 칭송하며 판결 내용을 집행하려 하는 순간, 포샤가 소리쳤다.

"아~ 잠깐만 기다리세요. 다른 조건이 있네요. 이 계약에 따르면 피는 한 방울도 가져가서는 안 되는군요. 문언대로 오직 '1파운드의 살'이어야 합니다. 그러니 당신은 살은 가져가더라도, 그것을 잘라 내면서 이 기독교인의 피는 단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 됩니다. 만약 그러면 법에 따라 당신의 모든 토지와 재산은 나라에 몰수될 것입니다."

살을 잘라내는 데 어찌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수 있으랴. 살을 떼어내는 계약을 했다면 응당 피가 흐를 수밖에 없다는 것은 당사자는 물론 누구든 당연히 예상했을 터인데, 재판관은 계약서의 문언에 기재된 그대로 판단하였다.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을 미워하는 독자들은 재판관 포샤가 계약 내용을 절묘하게 해석하여 안토니오를 곤경에서 해방시켜준 장면에서는 통쾌하게 무릎을 쳤을 것이다. 그런 한편 패소하여 재산마저 빼앗기고만 샤일록에게 너무 가혹한 처사가 아닌가 하는 약간의 연민도 느꼈을지 모른다.

계약이란 당사자들이 자유롭게 상반되는 의사를 표시하고 그것이 서로 합치되었을 때 성립되는 법률행위이다. 그래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계약의 문구 그대로의 내용으로 권리와 의무를 인정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계약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모든 상황에서 언제나 명쾌한 언어로 모두가 동의하는 완벽한 계약이 만들어지기는 힘든 일이기에, 계약 내용을 두고 당사자 간의 해석이 충돌하는 일은 왕왕 발생하여 분쟁이 된다. 그래서 판례에서는, 그 계약이 이루어지게 된 동기 및 경위, 당사자가 계약에 의하여 달성하려고 하는 목적과 진정한 의사, 거래의 관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사회일반의 상식과 거래의 통념에 따라 합리적으로 해석하여야 한다고 한다. 포샤가 이런 판례 태도를 따랐다면 그 판결은 달라졌을 것이다.

포샤의 판결에서 우리 특허통수권자들이 주목하여야 할 것은 그녀의 엄정한 '문언적 해석(Literal interpretation)'이다. 특허는 대세적 권리이기에 하나의 특허가 부여되면, 특허권자에게 새로운 독점배타적인 권리가 창출되는 한편, 전 국민에게는 그 특허를 침해해서는 안 되는 의무가 동시에 발생하게 된다. 특허는 바로 특허권자 한 사람과 전 국민 사이에 체결되는 계약과 같은 셈이다.

그러기에 특허권의 권리범위는, 토지 소유권을 명확히 구획하는 지적도처럼, 누가 보아도 오해나 다툼의 여지가 없도록 그 안팎의 경계가 분명하게 특정되어야 한다. 그래서 언어로 기재된 특허 명세서의 특허청구범위는, 아주 특별한 경우에 한해서만 균등론을 적용하기도 하지만, 원칙적으로 포샤의 판결처럼 엄격히 문구 그대로 해석된다. 특허권리의 '문언적 해석'이라는 말은 특허청구의 범위에 기재된 말 그대로 모두 실시하여야만 특허 침해가 성립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특허 침해라는 시비를 걸어오면 가장 먼저 그 특허의 특허청구범위를 반드시 읽어보시라. 그 기재 분량이 많고 촘촘하면 다소 마음의 여유를 가져도 된다. 계약 조건이 많고 까다로우면 그 계약을 제대로 지키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로, 특허청구범위의 말이 많으면 특허침해가 성립하기 어렵거나 회피가 용이하다는 뜻이다. 특허침해는 권리범위에 기재된 내용대로 일일이 빠짐없이 모두 다 사용하여야만 성립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실무에서 보면, 여러 페이지가 걸쳐 수많은 구성요소를 빽빽이 기재하고 있어, 실질적인 권리는 빈 깡통처럼 공허한 딱한 특허들을 종종 만난다. 그래서 필수적인 구성요소만이 최소한의 언어로 간결하게 기재된 특허가 강하고 좋은 특허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너무 한정적으로 기재되어선 안 된다는 점이다. 이 같은 특허가 실제로 있다. ".. 바닐라 향료 6.01 중량%, 복합조미료 3.76 중량%, 후추 3.73 중량 %, 연잎 분말 2.75 중량 %, .. 양파 31.99 중량 %, 마늘 7.85 중량 %, 생강 6.03 중량%를 준비하여.." 이들 재료도 아주 일부에 불과하다. 이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할 수 있을까? 아마 누구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것이다. 그 많은 재료를 모두 준비하고 각 함량을 정확히 계량하여 쓴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니, 이 특허를 일부러 침해하고 싶어도 침해가 불가능하다. 이런 특허도 엄연히 존재한다.

경쟁사의 특허를 보고서, "그 특허에는 온갖 가능한 요소들을 다 기재하고 있어 빠져나갈 틈이 없어요."라고 하소연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앞의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였다면, 그 특허를 두려워할 게 아니라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알 것이다.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권리범위의 구성요소들 중 일부를 빼거나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있는가?" 그게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냈다면, 그 특허를 성공적으로 회피한 것이다. 특허의 회피설계 요령은 이렇게 참 쉽고 간단하다.

"적을수록 많다(Less is more)." 이 형용모순의 말은 19세기 로버트 브라우닝의 시에 언급되었고, 독일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가 인용하여 유명하게 되었다. 간결함과 단순함이 복잡하게 수식하는 것보다 더 많은 영감과 의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뜻이니, 예술이나 건축 혹은 글쓰기나 수사학 등에서 중요한 화두가 되는 말이다. 이제 이 말은 강한 특허의 확보나 특허권의 권리 해석에 관련하여 명쾌한 지침이 된다. "특허는 적을수록 많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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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은 자유로운 상반된 의사표시의 합치
특허는 특허권자와 전 국민 간의 대세적 계약
특허의 권리범위는 매우 엄격한 문언적 해석
최소한의 구성요소로 기재된 특허가 강하다
일부를 빼거나 대체가능하면 특허 회피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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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중에서

PORTIA : "A pound of that merchant's flesh is yours. The court awards it, and the law gives it to you. And you must cut this flesh off of his breast. The law allows it, and the court awards this to you." 
SHYLOCK : "Such a wise judge! The right sentence! Come, get ready."
PORTIA : "Hold on a second. There's something else. This agreement doesn't give you any drop of blood. The literal words are "a pound of flesh." So take what is yours, take your pound of flesh, but if in cutting it off you shed one drop of Christian blood, your lands and goods will be confiscated by the state of Venice by the city's laws."

https://www.litcharts.com/shakescleare/shakespeare-translations/the-merchant-of-venice/act-4-scene-1

 

The Merchant of Venice Act 4, Scene 1 Translation | Shakescleare, by LitCharts

SHYLOCK I have possessed your grace of what I purpose, And by our holy Sabbath have I sworn To have the due and forfeit of my bond. If you deny it, let the danger light Upon your charter and your city’s freedom. You’ll ask me why I rather choose to hav

www.litcha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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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당사자 사이에 어떠한 계약내용을 처분문서인 서면으로 작성한 경우에 문언의 객관적인 의미가 명확하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문언대로의 의사표시의 존재와 내용을 인정하여야 하지만, 그 문언의 객관적인 의미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경우에는 그 문언의 내용과 계약이 이루어지게 된 동기 및 경위, 당사자가 계약에 의하여 달성하려고 하는 목적과 진정한 의사, 거래의 관행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사회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맞도록 논리와 경험의 법칙, 그리고 사회일반의 상식과 거래의 통념에 따라 계약내용을 합리적으로 해석하여야 하고," _ 대법원 2002. 5. 24 선고 2000다72572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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