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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천리마리더십

[허성원 변리사 칼럼]#177 키루스의 정의와 식민지 근대화론

by 변리사 허성원 2024. 8. 27.

키루스의 정의와 식민지 근대화론

 

페르시아 제국을 세운 키루스 대왕의 정의에 관한 에피소드가 크세노폰의 '키루스의 교육'에 기술되어 있다. 키루스는 12살 때 어머니 만다네와 함께 외할아버지를 방문하였다. 당시 외할아버지 아스티아게스는 강대국인 메디아의 왕이었고, 키루스의 페르시아는 메디아의 속국인 변방의 약소국이었다. 한동안 외할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며 즐거이 지낸 키루스에게 어머니는 더 머물고 싶은지 물었다. 그러자 키루스는 외할아버지의 궁궐에 남아 말 타기를 더 배우고 나서 돌아가겠다고 한다. 그러자 어머니가 물었다.

"얘야, 너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페르시아에 있는데, 여기서 정의는 어떻게 배울 수 있겠느냐?"

'정의를 배우는 것'이 아들에 관한 어머니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 그러니까 '정의'라는 개념이 페르시아에서 리더의 중대한 가치 혹은 덕목으로 존중되고 있었던 것이다. 기원전 600년경의 고대 국가에 그런 가치관이 정착되었음은 대단히 놀라운 일이다. 크세노폰의 '키루스의 교육'에 따르면, 페르시아의 어린 소년들은 반드시 학교에 가서 정의와 절제를 배워야 했다. 그렇게 하여, 다른 나라에서는 자녀를 각자의 방식으로 교육하고 원하는 대로 살아가다가 범죄를 저질렀을 때에야 처벌이 주어지는데 반해, 페르시아 법률은 국민들이 사악하거나 부끄러운 짓을 할 생각을 아예 처음부터 하지 못하도록 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정의를 어떻게 배울 것인지'를 묻는 어머니의 말에 키루스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어머니, 정의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이에 어머니가 "네가 그것을 어떻게 알고 있지?"라고 반문하자, 키루스는 "선생님은 제가 정의를 완전히 알고 있다고 판단해 다른 아이들과 관련된 일에 대해 재판하라고 하셨습니다."라고 하며, 그 사건을 설명하였다.

"어떤 몸집이 큰 소년이 작은 겉옷을 입고 있고 몸집이 작은 소년이 큰 겉옷을 입고 있었는데, 덩치 큰 소년이 자신의 겉옷을 작은 소년에게 주고 큰 겉옷을 뺏어 자기가 입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사건의 재판에서 두 사람 모두 자기에게 맞는 옷을 입게 되었으므로 모두에게 좋다고 판결했습니다."

덩치 큰 아이가 큰 옷을 갖게 되고 덩치 작은 아이가 작은 옷을 갖게 되었다. 모두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게 되어 공평해졌다. 그야말로 좋은 게 좋은 것이니,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도록 아이들을 이해시키기만 하면 될 것이다. 키루스의 판단은 별 문제가 없어 보이지 않는가. 그런데 키루스의 선생님은 그렇게 여기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저의 판결이 잘못 되었다고 하여 선생님께 매를 맞았습니다. 선생님은 저를 매질하며 말씀하셨지요. 네가 만약 그 옷이 맞는지 안 맞는지를 판단한다면 네 생각이 맞다. 하지만 그것이 누구의 옷인지를 판단해야 하는 경우에는, 그 겉옷을 가지고 있던 사람과 벗겨간 사람 중 누가 소유해야 정당한지를 고려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어머니가 말했다. "그래 키루스야, 너는 그 선생님의 매질로부터 무엇을 배웠느냐?" 키루스가 답했다. "법에 근거하는 것이 정의이고, 법에 근거하지 않은 것은 폭력이므로, 판결을 내리는 사람은 언제나 법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페르시아의 정의가 무엇인지 선명히 이해된다. 아무리 서로 혹은 상대에게 이로운 결과를 가져올지라도, 그 소유자의 뜻에 반하여서는 그 이로움조차도 실현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기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든 말든 그것은 오로지 그 소유자의 선택에 따라야 하며, 외부의 압력이나 타인의 폭력에 의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이는 개인의 사유 재산에 대한 처분권을 다른 가치보다 우선하여 존중하는 법사상이다.

처분권이란 것은 개인이 소유한 물건은 그 개인이 자유로이 이전하거나 이용할 수 있는 권리로서, 사적 자기결정권에 기초한다. 자기결정권은 국가권력 등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신의 삶과 관련된 사적인 결정을 스스로 내릴 수 있는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이다. 고대 국가인 페르시아에서 사유재산에 대한 처분권과 사적 자기결정권과 같은 매우 근대적인 개인의 고급 권리가 보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같이 우수한 사상적 혹은 법률적 시스템이 있었기에, 세계 최초의 거대한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정신적 문화적 에너지가 싹트고 자라날 수 있었지 않았을까.

'키루스의 정의' 에피소드를 보면, 우리에게 가끔 논란을 일으키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떠올리게 된다. '식민지 근대화론', 일제 식민 통치 때에 근대적 자본주의가 도입되고 철도 등 사회 간접자본이 확충되는 등 근대 문물이 이식되었기에 광복 후 한국의 경제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하는 논리이다. 식민사관(植民史觀)에 경도된 일부 학자나 정치인 등이 일제의 식민 지배를 긍정하거나 정당화하기 위해 이 논리를 종종 내세우고 있다.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해, 작가 황석영은 "우리 집에 도둑놈이 들어왔는데 이 자가 담에다 사다리를 걸쳐놓고 들어와서 물건을 훔쳐간 다음 사다리를 두고 간 것, 그게 식민지 근대화론이다.“라고 하였다. 시원한 직관적인 비유다. 이보다 더 적나라하고도 강렬한 비유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처녀가 겁탈을 당했는데 그 가족 중 하나가 '성적인 성숙을 경험하게 해주었으니 강간범에게 고맙다고 해야 한다!'라고 떠들어대는 것과 같다."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에게 묻고 싶다. '일제가 한반도의 근대화를 돕기 위해 식민 지배를 했던가?' '한반도의 주인이 근대화를 원했던가?' '근대화를 위해 그들의 도움을 간절히 원했던가?' '수탈과 탄압을 당하고서 그들이 남긴 근대화의 찌꺼기가 정녕 자랑스럽고 고마운가?' '그 식민 지배의 결과로 땅이 쪼개져 나뉘고 처참한 동족상잔의 비극까지 겪고서도 그런 말이 나오는가?'

이 같은 질문들을 아마도 키루스의 선생님이라면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에게 엄중히 물어보았을 것이다. 그러고서는 정의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였음을 지적하며 응당 그들에게 엄한 매를 들어 모진 벌도 내렸으리라.

 

 

Alexander at the Tomb of Cyrus the Great. 1796. Pierre-Henri de Valencien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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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의 질문들' 작가 황석영, 뉴라이트 논쟁에 대한 그의 생각은? - 폴리뉴스 Poli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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