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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천리마리더십

[허성원 변리사 칼럼]#113 건빵 이론

by 변리사 허성원 2023. 6. 2.

건빵 이론

 

건빵은 군 생활 추억의 식품이다. 먹을 게 귀하던 그 시절에 군대에서 참 많이도 먹었다. 주로 간식으로 나눠주지만, 때론 전투식량이라고 해서 미숫가루와 함께 비상시의 식량이 되기도 했다. 건빵 배급이 넉넉했던 전방에서는, 굽고, 튀기고, 삶고, 졸이고, 불리는 등 온갖 짓으로 다양하게 조리를 해먹기도 했었다.

그런데 건빵에는 배꼽처럼 생긴 구멍이 두 개 뚫려있다. 왜 구멍이 뚫려있을까? 그 이유를 어느 제빵 전문가에게서 들었다. 건빵을 구울 때 내부에서 발생한 수증기가 적절히 배출되지 않으면 빵이 과도하게 부풀어서 터져버린다. 그 구멍은 수증기 배출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2개인가? 더 많을 수도 있지 않은가. 구멍이 많아 증기가 너무 빠지게 되면, 건빵이 비스킷처럼 납작해져버려서 그 특유의 바삭한 식감을 낼 수 없고 외견상으로도 볼품없이 되어 버린단다. 구멍이 두 개일 때 외관과 식감 등이 가장 적절하다는 것이다.

우리 삶도 그런 것 같다. 분통 터지는 일이나 슬픈 감정 등을 속에 너무 쌓거나 담아두어서는 온전히 살아갈 수가 없다. 수시로 입이나 코와 같은 배출공으로 크게 숨 한번 내쉬면서 조금씩 배출해버려야 폭발하지 않고 견디게 된다. 그런데 그런 구멍이 충분히 많아서 좋지 않은 감정을 모두 남김없이 배출하면 좋지 않겠느냐고? 잠이나 피로를 뿌리뽑아보겠다고 휴일 날 하루 종일 늘어지게 자고난 뒤를 생각해보라. 생기는 커녕 오히려 기운이 더 빠져나가 온통 나른하게 퍼져버렸지 않았던가. 우리 몸에 적절히 남겨둔 피로나 분통, 슬픔 등은 결국 건빵 속의 공기와 같은 것이다.

불안이란 것도 그렇다. 며칠 전 방영된 '어쩌다 어른' 이광민 정신과 전문의의 강의에서 들었다. 대충 정리하자면, 과도한 불안은 공황장애 등을 일으킬 수 있지만, 불안을 느끼지 않는 불안 불감증은 더 문제가 된다. 불안이란 인간의 본능으로서, 이것이 있기에 위험을 예방하거나 회피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들과의 공감을 통해 관계를 긍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사이코패스는 불안을 느끼지 못한다. 타인의 불안이나 반응에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공격적인 행동이 쉽게 표출된다. 이런 불안 불감증은 때론 스스로가 불안을 의식적으로 억압한 결과일 수도 있다. 그래서 불안이란 것도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말고 적절해야 하며, 너무 억압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스트레스에도 '건빵 이론'은 적용된다. 스트레스는 누구나 기피하려 한다. 스트레스에 심하게 노출되면 정신 건강뿐만 아니라 육체 건강까지 해치게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트레스가 너무 적어도 문제가 된다. 지루함을 느끼게 되고 지루함이 지속되면 우울증의 원인이 된다고 한다. “스트레스를 항상 나쁜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는 뇌의 각성 상태를 끌어올려 거동이나 인지 능력을 높여준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통합 생물학 부교수 다니엘라 카우퍼의 말이다.

카우퍼 교수의 연구팀은 스트레스가 동물에 미치는 영향을 알기 위해 쥐 실험을 수행하였다. 쥐에게 강력하지만 짧은 스트레스를 가하였더니, 뇌의 줄기 세포가 새로운 신경 세포로 증식되었고, 2주 후에 세포가 성숙되어 쥐의 정신 능력이 향상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카우퍼 교수는 "간헐적인 스트레스가 뇌를 더 각성시키고 그 각성에 의해 뇌의 기능이 더욱 향상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간헐적인 강한 스트레스'이다. 스트레스를 장기적으로 가하였을 때는 쥐의 세포 증식, 반응성 등에서 부정적인 결과가 나왔다. 한편 이 연구팀은 '스트레스 호르몬이 동물의 적응력을 증진'시키는 역할도 한다는 점도 발견하였다. 이는 큰 스트레스를 받은 장소나 일을 강하게 기억해 둠으로써 미래에 유사한 상황이 반복될 때 그 대처에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하였다.

마음이나 몸에 조금도 그리고 잠시도 담아두고 싶지 않은 불편한 것들이 많다. 아픔, 슬픔, 분노, 불안, 긴장, 갈등, 질투, 욕심, 스트레스, 질병 등이 그것이다. 이들을 훌훌 다 털어버리고 고고한 학처럼 살아가는 사람이 과연 존재할 수나 있을까? 아마 그럴 수 있다면 그 사람의 모습은 바람이 다 빠져 쭈그러진 건빵처럼 볼품없이 되어 있을지 모른다.

가까이에 다부지게 자신의 일에 매진하고 꾸준히 성장을 추구하면서 주변에 미소를 잊지 않고 씩씩하게 제 모습으로 사는 사람이 있는가. 그렇다면 필경 그 사람의 속에는 상당한 분노, 불안, 갈등, 스트레스 등이 적절히 채워져 있을 것이다. 그런 그는 아마도 건빵 이론의 가르침을 제대로 체득한 진정한 삶의 고수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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