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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토피카

오월춘추 _ 동주열국지

by 변리사 허성원 2023. 4. 30.

오월춘추 _ 동주열국지


동주열국지 중 오월전쟁 관련 부분만 원문을 옮겨왔습니다.
관심 가는 부분에 대해서만 번역문을 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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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출처 : 동주열국지 원문
번역문 출처 : 김영문 역 동주열국지

** 第七十九回

話說齊侯自會夾谷歸後,晏嬰病卒,景公哀泣數日,正憂朝中乏人,復聞孔子相魯,魯國大治,驚曰:「魯相孔子必霸,霸必爭地,齊為近鄰,恐禍之先及,奈何?」大夫黎彌進曰:「君患孔子之用,何不沮之?」景公曰:「魯方任以國政,豈吾所能沮乎?」黎彌曰:「臣聞治安之後,驕逸必生。請盛飾女樂,以遺魯君,魯君幸而受之,必然怠於政事,而疏孔子。孔子見疏,必棄魯而適他國,君可安枕而臥矣。」景公大悅,即命黎彌於女閭之中,擇其貌美年二十以內者,共八十人,分為十隊,各衣錦繡,教之歌舞。其舞曲名《康樂》,聲容皆出新製,備態極妍,前所未有。教習已成,又用良馬一百二十匹,金勒雕鞍,毛色各別,望之如錦,使人致獻魯侯。使者張設錦棚二處,於魯南門之外,東棚安放馬群,西棚陳列女樂。先致國書於定公,公發書看之。書曰:

    杵臼頓首啟魯賢侯殿下:孤向者獲罪夾谷,愧未忘心。幸賢侯鑒其謝過之誠,克終會好。日以國之多虞,聘問缺然。茲有歌婢十群,可以侑歡,良馬三十駟,可以服車,敬致左右,聊申悅慕。伏惟存錄!

(제경공의 미인계로 공자를 노나라에서 떠나게 만들다)
제경공이 협곡에서 노정공과 회맹을 하고 돌아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안영이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제경공은 며칠을 슬피 울며 조정에 인재가 부족함을 걱정했다. 그때 마침 공자가 노나라 군주를 보필하여 노나라가 매우 잘 다스려 지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주상께서는 노나라에서 공자를 등용한 것을 걱정하시면서 어찌하여 그를 막을 생각은 하지 않으십니까?"
"신이 듣건대 나라가 편안하게 다스려진 후에는 반드시 교만과 방탕이 생겨난다 합니다. 청컨데 여자 악사를 화려하게 꾸며 노나라 군주에게 보내십시오. 다행이 노나라 군주가 받으면 틀림없이 정사를 게을리 하고 공자를 멀리할 것입니다. 공자가 배척을 당하면 반드시 노나라를 버리고 다른 나라로 갈 것이니 주상께선 베개를 높이 베고 편안히 주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노래 잘하는 비첩 10대열을 보내오니 다소나마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이오. 그리고 명마 120필도 함께 보내오니 수레에 매어 쓰시기 바라오. 삼가 좌우 신료들에게도 나누어주시어 그분들을 흠모하는 과인의 마음을 전해주시오. 바라옵건데 잘 받아주시면 감사하겠소."

  且說魯相國季斯安享太平,忘其所自,侈樂之志,已伏胸中。忽聞齊饋女樂,如此之盛,不勝豔慕。即時換了微服,與心腹數人,乘車潛出南門往看。那樂長方在演習。歌聲遏雲,舞態生風,一進一退,光華奪目,如遊天上,睹仙姬,非復人間思想所及。季斯看了多時,又閱其容色之美,服飾之華,不覺手麻腳軟,目睜口呆,意亂神迷,魂消魄奪。魯定公一日三宣,季斯為貪看女樂,竟不赴召。至次日,方入宮來見定公,定公以國書示之。季斯奏曰:「此齊君美意,不可卻也。」定公亦有想慕之意,便問:「女樂何在?可試觀否?」季斯曰:「見列高門之外,車駕如往,臣當從行,但恐驚動百官,不如微服為便。」於是君臣皆更去法服,各乘小車,馳出南門,竟到西棚之下。早有人傳出:「魯君易服親來觀樂了!」使者吩咐女子用心獻技。那時歌喉轉嬌,舞袖增豔,十隊女子,更番迭進,真乃盈耳奪目,應接不暇,把魯國君臣二人,喜得手舞足蹈,不知所以。有詩為證:    一曲嬌歌一塊金,一番妙舞一盤琛﹔只因十隊女人面,改盡君臣兩個心。

한 곡조 고운 노래는 한 덩어리 금과 같고, 한바탕 예쁜 춤은 한 상의 보내 같네. 오로지 열 줄 미녀 아름다운 얼굴 앞에서, 임금과 신하 두 사람이 마음을 뺏겼네.

從人又誇東棚良馬。定公曰:「只此已是極觀,不必又問馬矣。」是夜,定公入宮,一夜不寐,耳中猶時聞樂聲,若美人之在枕畔也。恐群臣議論不一,次早獨宣季斯入宮,草就答書,書中備述感激之意。不必盡述。又將黃金百鎰,贈與齊使。將女樂收入宮中,以三十人賜季斯,其馬付於圉人餵養。定公與季斯新得女樂,各自受用,日則歌舞,夜則枕席,一連三日,不去視朝聽政。孔子聞知此事,淒然長嘆。時弟子仲子路在側,進曰:「魯君怠於政事,夫子可以行矣。」孔子曰:「郊祭已近,倘大禮不廢,國猶可為也。」及祭之期,定公行禮方畢,即便回宮,仍不視朝,並胙肉亦無心分給。主胙者叩宮門請命,定公諉之季孫,季孫又諉之家臣。孔子從祭而歸,至晚,不見胙肉頒到,乃告子路曰:「吾道不行,命也夫!」乃援琴而歌曰:    彼婦之口,可以出走。彼女之謁,可以死敗。優哉游哉,聊以卒歲!
歌畢,遂束裝去魯。子路冉有亦棄官從孔子而行。自此魯國復衰。史臣有詩云:    幾行紅粉勝鋼刀,不是黎彌巧計高。天運凌夷成瓦解,豈容魯國獨甄陶。

바로 미녀 악사를 궁중으로 맞아들인 뒤 30명을 계손사에게 하사했고 명마는 궁중 어인에게 맡겨 기르게 했다.
노정과 계손사는 각각 새 미녀 악사를 받아들인 뒤 낮에는 가무를 즐기고 밤에는 잠자리를 즐기며 연이어 사흘 동안이나 정무 처리를 위한 조회를 열지 않았다. 공자가 그 소식을 듣고 장탄식을 했다. 이때 제자 자로가 곁에 있다가 아뢰었다. "노나라 주상께서 정사를 태만히 하시니 스승님께서 이제 떠나실 때가 된 듯합니다."
"내 올바른 도를 펼치지 못하게 되었다. 이것도 천명인가!"

저 여자들 노래 때문에 내가 떠나게 되었구나. 저 여자들 아첨 때문에 내가 죽게 되었구나. 자유럽게 세상을 떠돌며 그렇게 세상을 마치리다. 彼婦之口,可以出走。彼女之謁,可以死敗。優哉游哉,聊以卒歲!

  孔子去魯適衛,衛靈公喜而迎之,問以戰陣之事。孔子對曰:「丘未之學也。」次日遂行。過宋之匡邑,匡人素恨陽虎,見孔子之貌相似,以為陽虎復至,聚眾圍之。子路欲出戰,孔子止之曰:「某無仇於匡,是必有故,不久當自解。」乃安坐鳴琴。適靈公使人追還孔子,匡人乃知其誤,謝罪而去。孔子復還衛國,主於賢大夫蘧瑗之家。

  且說靈公之夫人曰南子,宋女也,有美色而淫。在宋時,先與公子朝相通。朝亦男子中絕色,兩美相愛,過於夫婦,既歸靈公,生蒯瞶,已長,立為世子,而舊情不斷。時又有美男子曰彌子瑕,素得君之寵愛,嘗食桃及半,以其餘,推入靈公之口。靈公悅而啖之,誇於人曰:「子瑕愛寡人甚矣!一桃味美,不忍自食,而分啖寡人。」群臣無不竊笑。子瑕恃寵弄權,無所不至。靈公外嬖子瑕,而內懼南子,思以媚之。乃時時召宋朝與夫人相會,醜聲遍傳,靈公不以為恥。蒯瞶深恨其事,使家臣戲陽速因朝見之際,刺殺南子,以滅其醜。南子覺之,訴於靈公。靈公逐蒯瞶,瞶奔宋,轉又奔晉。靈公立蒯瞶之子輒為世子。及孔子再至,南子請見之。知孔子為聖人,倍加敬禮。忽一日,靈公與南子同車而出,使孔子為陪乘。過街市,市人歌曰:    同車者色耶?從車者德耶?

(위영공 부인 南子의 사통, 위영공의 미자하.)

孔子嘆曰:「君之好德不如好色!」乃去衛適宋,與弟子習禮於大樹之下。宋司馬桓魋,亦以男色得寵於景公,方貴幸用事,忌孔子之來,遂使人伐其樹,欲求孔子殺之。孔子微服去宋適鄭。將適晉,至河,聞趙鞅殺賢臣竇犨舜華,嘆曰:「鳥獸惡傷其類,況人乎?」復返衛。未幾,衛靈公卒,國人立輒為君,是為出公。蒯瞶亦藉晉援,與陽虎襲戚據之。是時,衛父子爭國,晉助蒯瞶,齊助輒。孔子惡其逆理,復去衛適陳,又將適蔡。楚昭王聞孔子在陳蔡之間,使人聘之。陳蔡大夫相議,以為楚用孔子,陳蔡危矣,乃相與發兵圍孔子於野。孔子絕糧三日,而絃歌不輟。今開封府陳州界有地名桑落,其地有臺,名曰厄臺,即孔子當時絕糧處。宋劉敞有詩云:    四海栖栖一旅人,絕糧三日死生鄰﹔自是天心勞木鐸,豈關陳蔡有愚臣。

뒷날 송나라 유창이 이 일을 시로 읊었다.
"천하를 정처 없이 떠도는 나그네가, 사흘 동안 식량 떨어져 생사기로에 놓였다. 이로부터 천심은 목탁(공자를 비유)을 수고롭게 하려는지, 진나라와 채나라의 우둔한 신하가 어찌 앞길을 가로막았나?"

  忽一晚,有異人長九尺餘,皂衣高冠,披甲持戈,向孔子大咤,聲動左右。子路引出與戰於庭,其人力大,子路不能取勝。孔子從旁諦視良久,謂子路曰:「何不探其脅?」子路遂探其脅,其人力盡手垂,敗而仆地,化為大鮎魚。弟子怪之。孔子曰:「凡物老而衰,則群精附焉。殺之則已,何怪之有。」命弟子烹之以充飢。弟子皆喜曰:「天賜也!」楚使者發兵以迎孔子。孔子至楚,昭王大喜,將以千社之地封孔子。令尹子西諫曰:「昔文王在豐,武王在鎬,地僅百里,能修其德,卒以代殷。今孔子之德,不下文武,弟子又皆大賢,若得據土壤,其代楚不難矣。」昭王乃止。孔子知楚不能用,乃復還衛。衛出公欲任以國政,孔子拒之。魯相國季孫肥亦來召其門人冉有,孔子因而返魯,魯以大夫告老之禮待之。於是諸弟子中,子路子羔仕於衛,子貢、冉有、有若、宓子賤仕於魯。這都是後話,敘明留作話柄。

공자는 초나라에서도 등용될 수 없음을 알고 다시 위나라로 돌아갔다.

  再說吳王闔閭自敗楚之後,威震中原,頗事遊樂。乃大治宮室,建長樂宮於國中,築高臺於姑蘇山。(山在城西南三十里,一名姑胥山。)於胥門外為徑九曲,以通山路。春夏則治於城外,秋冬則治於城中。忽一日,想起越人伐吳之恨,謀欲報之。忽聞齊與楚交通聘使,怒曰:「齊楚通好,此我北方之憂也!」欲先伐齊,後及越。相國子胥進曰:「交聘乃鄰國之常,未必助楚害吳,不可遽興兵旅。今太子波元妃已歿,未有繼室,王何不遣使求婚於齊?如其不從,伐之未晚。」闔閭從之。使大夫王孫駱往齊,為太子波求婚。時景公年已老耄,志氣衰頹,不能自振。宮中止一幼女未嫁,不忍棄之吳地。無奈朝無良臣,邊無良將,恐一拒吳命,興師來伐,如楚國之受禍,悔之何及!大夫黎彌亦勸景公結婚於吳,勿激其怒。景公不得已,以女少姜許婚。王孫駱回復吳王,工復遣納幣於齊,迎齊女歸國。景公愛女畏吳,兩念交迫,不覺流淚出涕,嘆曰:「若平仲穰苴一人在此,孤豈憂吳人哉?」謂大夫鮑牧曰:「煩卿為寡人致女於吳,此寡人之愛女,囑吳王善視之。」臨行,親扶少姜登車,送出南門而返。鮑牧奉少姜至吳,敬致齊侯之命﹔因慕子胥之賢,深相結納。不在話下。

오왕 합려는 초나라를 패배시키고 돌아온 뒤 그 위세가 중원까지 진동하자 유흥과 쾌락에 신경을 쓰면서 건물도 크게 짓기 시작했다. 도성 안에 장락궁을 짓고 고소산에는 높은 누대를 쌓았다.
제경공은 어쩔 수 없이 소강을 오나라 세자와 혼인시키기로 결정했다.
"만약 평중과 양저 중 한 사람만이라도 살아 있다면 과인이 어찌 오나라 놈들을 두려워하겠는가?"

  話說少姜年幼,不知夫婦之樂,與太子波成婚之後,一心只想念父母,日夜號泣。太子波再三撫慰,其哀不止,遂抑鬱成病。闔閭憐之,乃改造北門城樓,極其華煥,更其名曰望齊門,令少姜日遊其上。少姜凭欄北望,不見齊國,悲哀愈甚,其病轉增。臨絕命,囑太子波曰:「妾聞虞山之巔,可見東海,乞葬我於此,倘魂魄有知,庶幾一望齊國也!」波奏聞其父,乃葬於虞山頂上。今常熟縣虞山有齊女墓,又有望海亭是也。有張洪《齊女墳》詩為證。詩曰:

    南風初勁北風微,爭長諸姬復娶齊。越境定須千兩送,半途應拭萬行啼。望鄉不憚登臺遠,埋恨惟嫌起塚低。蔓草垂垂猶泣露,倩誰滴向故鄉泥?

太子波憶念齊女亦得病,未幾卒。闔閭欲於諸公子中,擇可立者,意猶未定,欲召子胥決之。太子波前妃生子名夫差,年已二十六歲矣,生得昂藏英偉,一表人材。聞其祖闔閭擇嗣,乃先趨見子胥曰:「我嫡孫也,欲立太子,舍我其誰!此在相國一言耳。」子胥許之。少頃,闔閭使人召子胥,商議立儲之事。子胥曰:「立子以嫡,則亂不生。今太子雖不祿,有嫡孫夫差在。」闔閭曰:「吾觀夫差,愚而不仁,恐不能奉吳之統。」子胥曰:「夫差信以愛人,敦於禮義,父死子代,經之明文,又何疑焉?」闔閭曰:「寡人聽子,子善輔之。」遂立夫差為太孫夫差至子胥家稽首稱謝。

  周敬王二十四年,闔閭年老,性益躁,聞越王允常薨,子句踐新立,遂欲乘喪伐越。子胥諫曰:「越雖有襲吳之罪,然方有大喪,伐之不祥,宜少待之。」闔閭不聽,留子胥與太孫夫差守國,自引伯嚭、王孫駱、專毅等,選精兵三萬,出南門望越國進發。越王句踐親自督師禦之,諸稽郢為大將,靈姑浮為先鋒,疇無餘胥犴為左右翼,與吳兵相遇於檇李。相距十里,各自安營下寨。兩下挑戰,不分勝負。闔閭大怒,遂悉眾列陳於五臺山,戒軍中毋得妄動,俟越兵懈怠,然後乘之。句踐望見吳陣上隊伍整齊,戈甲精銳,謂諸稽郢曰:「彼兵勢甚振,不可輕敵,必須以計亂之。」乃使大夫疇無餘胥犴督敢死之士,左五百人,各持長槍,右五百人,各持大戟,一聲吶喊,殺奔吳軍。吳陣上全然不理,陣腳都用弓弩手把住,堅如鐵壁。沖突三次,俱不能入,只得回轉。句踐無可奈何。諸稽郢密奏曰:「罪人可使也。」句踐悟。次日,密傳軍令,悉出軍中所攜死罪者,共三百人,分為三行,俱袒衣注劍於頸,安步造於吳軍。為首者前致辭曰:「吾主越王,不自量力,得罪於上國,致辱下討。臣等不敢愛死,願以死代越王之罪。」言畢,以次自剄。吳兵從未見如此舉動,甚以為怪,皆注目而觀之,互相傳語,正不知其何故。越軍中忽然鳴鼓,鼓聲大振。疇無餘胥犴帥死士二隊,各擁大楯,持短兵,呼哨而至。吳兵心忙,隊伍遂亂。句踐統大軍繼進,右有諸稽郢,左有靈姑浮,沖開吳陣。王孫駱捨命與諸稽郢相持。靈姑浮奮長刀左沖右突,尋人廝殺,正遇吳王闔閭,靈姑浮將刀便砍。闔閭望後一閃,刀砍中右足,傷其將指,一屨墜於車下。卻得專毅兵到,救了吳王。專毅身被重傷。王孫駱知吳王有失,不敢戀戰,急急收兵,被越兵掩殺一陣,死者過半。闔閭傷重,即刻班師回寨。靈姑浮取吳王之屨獻功,句踐大悅。

오왕 합려는 연로할수록 성격이 조급해졌다. 그는 월왕 윤상이 세상을 떠나고 그 아들 구천이 새로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월나라의 국상을 틈타 정벌군을 일으키려 했다. (오자서의 반대를) 합려는 듣지 않았다.
죄수의 대장인 듯한 자가 말을 전했다. "우리 주상 월왕은 자신의 역량도 생각지 않고 귀국에 죄를 지어 토벌을 자초했소. 신들은 죽음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지만 원컨대 목숨을 끊어 월왕의 죄를 대산할까 하오." 말을 마치고는 차례로 스스로 칼로 목을 찍러 죽었다.

영고부는 긴 칼을 휘두르며 좌충우돌 오나라 군사를 죽이려고 전장을 누볐다. 그러다가 오왕 합려와 마주치자 영고부는 긴 칼로 합려를 내리쳤다. 합려는 날쌔게 뒤로 몸을 피했지만 영고부의 칼에 오른발을 맞아 엄지발가락이 잘리면서 그의 신발 한 짝이 수레 아래로 떨어졌다. 때마침 전의가 군사를 이끌고 달려와 합려를 구했다. 그러나 전의는 그 와중에 중상을 당하고 말았다. 왕손 악은 오왕 합려가 승기를 놓쳤다는 것을 알고는 싸움에 미련을 두지 않고 황급히 군사를 거두었지만 이미 군사의 과반수가 월나라 군사들에게 살육을 당한 상태였다. 합려는 부상이 심해서 즉시 군사를 거두어 본영으로 돌아갔다. 영고부는 신발을 가지고 와서 구천에게 전공을 바쳤다. 구천은 매우 기뻐했다.

  卻說吳王因年老不能忍痛,回至七里之外,大叫一聲而死。伯嚭護喪先行,王孫駱引兵斷後,徐徐而返。越兵亦不追趕。史臣有詩論闔閭用兵不息,致有此禍。詩曰:    破楚凌齊意氣豪,又思吞越起兵刀﹔好兵終在兵中死,順水叮嚀莫放篙。

吳太孫夫差迎喪以歸,成服嗣位。卜葬於破楚門外之海湧山,發工穿山為穴,以專諸所用魚腸之劍殉葬,其他劍甲六千副,金玉之玩,棄牣其中。既葬,盡殺工人以殉。三日後,有人望見葬處,有白虎蹲踞其上,因名曰虎邱山,識者以為埋金之氣所現。後來秦始皇使人發闔閭之墓,鑿山求劍無所得,其鑿處遂成深澗,今虎邱劍池是也。專毅傷重亦死,附葬於山後,今亦不知其處矣。夫差既葬其祖,立長子友為太子。使侍者十人,更番立於庭中,每自己出入經由,必大聲呼其名而告曰:「夫差!爾忘越王殺爾之祖乎?」即泣而對曰:「唯!不敢忘!」欲以儆惕其心。命子胥伯嚭練水兵於太湖,又立射棚於靈巖山以訓射,俟三年喪畢,便為報仇之舉。(此周敬王二十四年事也。)

부차는 조부를 장사 지내고 나서 자신의 맏아들 우(友)를 세자로 세웠다.
그러고는 시종 열 명을 차례로 조정의 뜰 가운데 번갈아 세우고 자신이 출입할 때마다 반드시 큰 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이렇게 외치게 했다.

"부차야! 너는 월왕이 네 조부를 죽인 것을 잊었느냐?"
「夫差!爾忘越王殺爾之祖乎?」

그러면 부차는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다.
"어찌 감히 잊을 수 있겠습니까!"
「唯!不敢忘!」

且說周敬王二十六年春二月,吳王夫差除喪已久,乃告於太廟,興傾國之兵,使子胥為大將,伯嚭副之,從太湖取水道攻越。越王句踐集群臣計議,出師迎敵。大夫范蠡字少伯,出班奏曰:「吳恥喪其君,誓矢圖報者,三年於茲矣。其志憤,其力齊,不可當也。宜斂兵為堅守之計。」大夫文種字會,奏曰:「以愚見,莫若卑詞謝罪,以乞其和,俟其兵退而後圖之。」 句踐曰:「二卿言守言和,皆非至計。夫吳,吾世仇也,伐而不戰,以我不能軍矣。」

오앙 부차는 조부의 상례를 마친 지 오래 되자 종묘에 고유제를 올린 뒤 온 나라의 군사를 일으켰다. 그는 오자서를 대장으로 백비를 부장으로 삼아 태호에서 물길을 따라 월나라로 공격해 들어갔다. 월왕 구천은 신료들을 불러 모아 대책을 상의하고 적을 맞아 싸우기 위해 군사를 일으켰다. 대부 범여가 출정에 앞서 아뢰었다.

"오나라는 선군 합려가 전사한 것을 치욕으로 여기고 복수를 맹세한 지 3년이 지났습니다. 지금 저들의 마음은 울분으로 가득차 있고 저들의 힘은 하나로 모여 있으므로 우리가 감당할 수 없습니다. 군사를 거두어 튼튼하게 지키는 것이 상책입니다."

또 대부 문종(자는 會)도 아뢰었다.

"신의 어리석은 의견으로는 겸손한 말로 사죄하고 강화를 요청한 뒤 저들의 군사가 물러가길 기대려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구천이 말했다.
"두 경께서 한 분은 튼튼히 지키자 하고 한 분은 강화를 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는 모두 좋은 계책이 아닌 것 같소. 대저 오나라는 대대로 우리 원나라의 원수요. 지금 저들이 쳐들어왔는데도 싸우지 않는다면 과인은 군사를 거느릴 수 없을 것이오."

乃悉起國中丁壯,共三萬人,迎於椒山之下。初合戰,吳兵稍卻,殺傷約百十人。句踐趨利直進,約行數里,正遇夫差大軍,兩下布陣大戰。夫差立於船頭,親自秉枹擊鼓,以激厲將士,勇氣十倍。忽北風大起,波濤洶湧,子胥伯嚭各乘餘皇大艦,順風揚帆而下,俱用強弓勁弩,箭如飛蝗般射來。越兵迎風,不能抵敵,大敗而走,吳兵分三路逐之。越將靈姑浮舟覆溺水而死,胥犴中箭亦亡,吳兵乘勝追逐,殺死不計其數。句踐奔至固城自保,吳兵圍之數重,絕其汲道。夫差喜曰:「不出十日,越兵俱渴死矣。」誰知山頂之上,自有靈泉,泉有嘉魚,句踐命取魚數百頭,以饋吳王,吳王大驚。句踐留范蠡堅守,自帥殘兵,乘間奔會稽山。點閱甲楯之數,纔剩得王千餘人,句踐嘆曰:「自先君對於孤,三十年來,未嘗有此敗也!悔不聽范文二大夫之言,以至如此。」

구천이 탄식하며 말했다.
"선군으로부터 과인에 이르는 30여 년 동안 일찍이 이와 같이 패한 적은 없었다. 범여와 문종의 말을 듣지 않았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정말 후회막심이다."

吳兵攻固城益急,子胥營於右,伯嚭營於左,范蠡告急,一日三至。越王大恐。文種獻謀曰:「事急矣!及今請成,猶可及也。」句踐曰:「吳不許成,奈何?」文種對曰:「吳有太宰伯嚭者,其人貪財好色,忌功嫉能,與子胥同朝,而志趣不合。吳王畏事子胥,而暱於嚭。若私詣太宰之營,結其懽心,與定行成之約,太宰言於吳王,無不聽。子胥雖知而阻之,亦無及矣。」句踐曰:「卿見太宰,以何為賂?」種對曰:「軍中所乏者,女色耳。誠得美女而獻之,天若祚越,嚭當見聽。

오나라 군사는 더욱 세차게 고성을 공경했다. 오자서는 고성 오른쪽에서 군영을 세웠고 백비는 고성 왼쪽에 군영을 세웠다. 범려가 하루 세 차례씩 다급함을 알려왔고, 월왕이 매우 두려워하자 문종이 계책을 올렸다. 

"사태가 급박하지만 지금도 강화를 청해야 합니다.

구천이 말했다. "오나라가 강화를 거절하면 어찌하오?"

문종이 답했다. 
"오나라 태재 백비라는 자는 재물을 밝히고 여자를 좋아하며 공이 많은 사람과 능력 있는 사람을 심하게 시기합니다. 지금 오자서와 함께 오나라 조정에 있지만 서로 뜻이 맞지 않습니다. 오왕 부차는 와서를 두려워하며 백비와 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句踐乃連夜遣使至都城,命夫人選宮中之有色者得八人,盛其容飾,加以白璧二十雙,黃金千鎰,夜造太宰之營,求見太宰。嚭初欲拒絕﹔姑使人探其來狀,聞有所齎獻,乃召入。嚭倨坐以待之。文種跪而致詞曰:「寡君句踐,年幼無知,不能善事大國,以致獲罪。今寡君已悔恨無及。願舉國請為吳臣,而恐王見咎不納,知太宰以巍巍功德,外為吳之干城,內作王之心膂。寡君使下臣種,先叩首於轅門,借重一言,收寡君於宇下。不腆之儀,聊效薄贄,自此當源源而來矣。」乃以賄單呈上嚭。猶作色謂曰:「越國旦暮且破滅矣,凡越所有,何患不歸吳?而以此區區者啖我為耶?」種復進曰:「越兵雖敗,然保會稽者,尚有精卒五千,堪當一戰。戰而不捷,將盡焚庫藏之積,竄身異國,以圖楚王之事,安得遽為吳有耶?即使吳盡有之,然大半歸於王宮,太宰同諸將,不過瓜分一二。孰若主越之成,寡君非委身於王,實委身於太宰也,春秋貢獻,未入王宮,先入宰府,是太宰獨擅全越之利,諸將不得與焉。況困獸猶鬥,背城一戰,尚有不可測之事乎?」這一席話,說入伯嚭之心,不覺點頭微笑。文種又指單上所開美人曰:「此八人者,皆出自越宮,若民間更有美於此者,寡君若生還越國,常竭力搜求,以備太宰掃除之數。」伯嚭起立曰:「大夫舍右營而趨左,以某無乘危害人之意也。某來朝當引子先見吾王,以決其議。」逐盡收所獻,留種於營中,敘賓主之禮。次早,同造中軍,來見夫差。伯嚭先入,備道越王句踐使文種請成之意。夫差勃然曰:「越與寡人有不共戴天之恨,安得允其成哉?」

嚭對曰:「王不記孫武之言乎?『兵凶器,可暫用而不可久也。』越雖得罪於吳,然其下吳者已至矣。其君請為吳臣,其妻請為吳妾,越國之寶器珍玩,盡掃以貢於吳宮。所乞於王者,僅存宗祀一線耳。夫受越之降,厚實也,赦越之罪,顯名也。名實俱收,吳可以伯。必欲窮兵力以誅越,彼句踐將焚宗廟,殺妻子,沉金玉於江,率死士五千人,致死於吳,得無有所傷於王之左右乎?與其殺是人,孰若得是國之為利?」夫差曰:「今文種安在?」嚭對曰:「見在幕外候宣。」夫差乃命種入見。種膝行而前,復申前說,加以卑遜。夫差曰:「汝君請為臣妾,能從寡人入吳否?」種稽首曰:「既為臣妾,死生在君,敢不服事於左右!」

嚭曰:「句踐夫婦願來吳國,吳名雖赦越,實已得之矣,王又何求焉?」夫差乃許其成。早有人到右營報知子胥。子胥急趨至中軍,見伯嚭同文種立於王側。子胥怒氣盈面,問吳王曰:「王已許越和乎?」王曰:「已許之矣。」子胥連叫曰:「不可,不可!」嚇得文種倒退幾步,靜聽其說。子胥諫曰:「越與吳鄰,有不兩立之勢,若吳不滅越,越必滅吳。夫秦晉之國,我攻而勝之,得其地,不能居,得其車,不能乘。如攻越而勝之,其地可居,其舟可乘,此社稷之利,不可棄也。況又有先王大仇,不滅越,何以謝立庭之誓乎?」夫差語塞不能對,惟以目視伯嚭。

伯嚭前奏曰:「相國之言誤矣!先王建國,水陸並封,吳越宜水,秦晉宜陸。若以其地可居,其舟可乘,謂吳越必不能共存,則秦、晉、齊、魯皆陸國也,其地亦可居,其車亦可乘,彼四國者,亦將并而為一乎?若謂先王大仇,必不可赦,則相國之仇楚者更甚,何不遂滅楚國而遽許其和耶?今越王夫婦皆願服役於吳,視楚僅納羋勝更不相同,相國自行忠厚之事,而欲王居刻薄之名,忠臣不如是也。」夫差喜曰:「太宰之言有理,相國且退,俟越國貢獻至日,當分贈汝。」氣得子胥面如土色,嘆曰:「吾悔不聽被離之言,與此佞臣同事!」口中恨恨不絕。

只得步出幕府,謂大夫王孫雄曰:「越十年生聚,再加以十年之教訓,不過二十年,吳宮為沼矣。」雄意殊未深信。子胥含憤,自回右營。夫差命文種回復越王,再到吳軍申謝。夫差問越王夫婦入吳之期,文種對曰:「寡君蒙大王赦而不誅,將暫假歸國,悉歛其玉帛子女,以貢於吳,願大王稍寬其期。其或負心失信,安能逃大王之誅乎?」夫差許諾,遂約定五月中旬,夫婦入臣於吳。遂遣王孫雄押文種同至越國,催促起程。太宰伯嚭屯兵一萬於吳山,以候之,如過期不至,滅越歸報。夫差引大軍先回。畢竟越王如何入吳,且看下回分解。

** 第八十回 (제4권)

句踐泣謂群臣曰:「孤承先人餘緒,兢兢業業,不敢怠荒。今夫椒一敗,遂至國亡家破,千里而作俘囚,此行有去日,無歸日矣!」群臣莫不揮涕。文種進曰:「昔者湯囚於夏臺,文王繫於羑里,一舉而成王﹔齊桓公奔莒,晉文公奔翟,一舉而成伯夫艱苦之境,天之所以開王伯也。王善承天意,自有興期,何必過傷,以自損其志乎?

"옛날 상나라 탕왕은 하대에 갇혔고, 주나라 문왕은 유리에 구금되었지만, 떨쳐 일어나 왕업을 이루었습니다. 또 제환공은 거나라로 망명하였고, 진문공은 적나라로 망명하였지만 이를 떨치고 일어나 패업을 이루었습니다. 무릇 곤경은 하늘이 왕업과 패업을 열어주는 방법입니다. 대왕께서는 하늘의 뜻을 잘 받드셔서 스스로 부흥의 기약을 간직하십시오. 지나치게 슬퍼하며 미리 의지를 꺾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句踐於是即日祭祀宗廟,王孫雄先行一日,句踐與夫人隨後進發,群臣皆送至浙江之上。范蠡具舟於固陵,迎接越王,臨水祖道。文種舉觴王前,祝曰:
    皇天祐助,前沉後揚﹔禍為德根,憂為福堂。威人者滅,服從者昌﹔王雖淹滯,其後無殃。君臣生離,感動上皇﹔眾夫哀悲,莫不感傷!臣請薦脯,行酒二觴。

문종은 월왕에게 술잔을 올리며 이렇게 축원했다.

하늘이여 도움을 내려주시어, 
침몰했다 일어서게 하소서.
이 참화가 덕의 근본이 되게 하시고
이 우환이 복의 터전이 되게 하소서.
위세를 부리는 자 멸망시키고
천명을 따르는 자 일으키소서
대왕께서 지금 막히셨지만
이후론 재앙이 없게 하소서.
군신이 살아서 이별하오니
이 지성이 하늘이여 감동하소서
모든 이들 슬픔에 젖어 있으니
마음 무겁고 가슴이 아픕니다.
소신은 육포 안주 함께 곁들여
술 두 잔을 정성으로 올립니다.

句踐仰天嘆息,舉杯垂涕,默無所言。范蠡進曰:「臣聞『居不幽者志不廣﹔形不愁者思不遠。』古之聖賢,皆遇困厄之難,蒙不赦之恥,豈獨君王哉?

"신이 듣기로 '사는 곳이 궁벽하지 않은 자는 그 뜻이 넓지 못하고, 자신의 몸에 고초를 겪어보지 않은 자는 생각이 심원하지 못하다고 합니다. 옛날 성현들도 모두 곤경을 겪었고, 아울러 씻을 수 없는 치욕을 당했습니다. 어찌 대왕마마만 고초를 겪는 것이겠습니까?"

句踐曰:「昔堯任舜禹而天下治,雖有洪水,不為人害。寡人今將去越入吳,以國屬諸大夫,大夫何以慰寡人之望乎?」范蠡謂同列曰:「吾聞『主憂臣辱,主辱臣死。』今主上有去國之憂,臣吳之辱,以吾浙東之士,豈無一二豪傑,與主上分憂辱者乎?」

於是諸大夫齊聲曰:「誰非臣子?惟王所命!」句踐曰:「諸大夫不棄寡人,願各言爾志:誰可從難?誰可守國?」文種曰:「四境之內,百姓之事,蠡不如臣﹔與君周旋,臨機應變,臣不如蠡。」范蠡曰:「文種自處已審,主公以國事委之,可使耕戰足備,百姓親睦。至於輔危主,忍垢辱,往而必反,與君復仇者,臣不敢辭。」於是諸大夫以次自述。太宰苦成曰:「發君之令,明君之德,統煩理劇,使民知分,臣之事也。」行人曳庸曰:「通使諸侯,解紛釋疑,出不辱命,入不被尤,臣之事也。」司直皓進曰:「君非臣諫,舉過決疑,直心不撓,不阿親戚,臣之事也。」司馬諸稽郢曰:「望敵設陣,飛矢揚兵,貪進不退,流血滂滂,臣之事也。」司農皋如曰:「躬親撫民,弔死存疾,食不二味,蓄陳儲新,臣之事也。」太史計倪曰:「侯天察地,紀歷陰陽,福見知吉,妖出知凶,臣之事也。」句踐曰:「孤雖入於北國,為吳窮虜,諸大夫懷德抱術,各顯所長,以保社稷,孤何憂焉!」乃留眾大夫守國,獨與范蠡偕行,君臣別於江口,無不流涕。句踐仰天嘆曰:「死者,人之所畏,若孤之聞死,胸中絕無怵惕。」遂登船逕去。送者皆哭拜於江岸下,越王終不返顧。有詩為證:

    斜陽山外片帆開,風捲春濤動地回﹔今日一樽沙際別,但時重見渡江來?

越夫人乃據舷而哭,見烏鵲啄江渚之蝦,飛去復來,意甚閒適,因哭而歌之,曰:

    仰飛鳥兮烏鳶,凌玄虛兮翩翩﹔集洲渚兮優恣,奮健翮兮雲間﹔啄素蝦兮飲水,任厥性兮往還。妾無罪兮負地,有何辜兮譴天?風飄飄兮西往,知再返兮何年?心輟輟兮若割,淚泫泫兮雙懸!

越王聞夫人怨歌,心中內慟,強笑以慰夫人之心曰:「孤之六翮備矣,高飛有日,復何憂哉!」

"과인에게 날개가 있으니 높이 하능을 날 때가 있을 것이오. 뭘 그리 걱정하시오."

  越王既入吳界,先遣范蠡見太宰伯嚭於吳山,復以金帛女子獻之。嚭問曰:「文大夫何以不至?」蠡曰:「為吾主守國,不得偕來也。」嚭遂隨范蠡來見越王,越王深謝其覆庇之德。嚭一力擔承,許以返國,越王之心稍安。伯嚭引軍押送越王,至於吳下,引入見吳王。句踐肉袒伏於階下,夫人亦隨之。范蠡將寶物女子,開單呈獻於下。越王再拜稽首曰:「東海役臣句踐,不自量力,得罪邊境。大王赦其深辜,使執箕帚,誠蒙厚恩,得保須臾之命,不勝感戴!句踐謹叩首頓首。」夫差曰:「寡人若念先君之仇,子今日無生理!」句踐復叩首曰:「臣實當死,惟大王憐之!」

"신은 실로 죽어 마땅한 데 대왕께서 가련하게 생각해주신 것입니다."

時子胥在旁,目若熛火,聲如雷霆,乃進曰:「夫飛鳥在青雲之上,尚欲彎弓而射之,況近集于庭廡乎?句踐為人機險,今為釜中之魚,命制庖人,故諂詞令色,以求免刑誅。一旦稍得志,如放虎於山,縱鯨於海,不復可制矣!」

이때 오자사가 곁에 서 있다가 눈으로는 불길을 뿜고 입으로는 벽력같은 소함을 지르며 앞으로 달려나와 아뢰었다.
"대저 날아가는 새가 구름 위에 있을 때도 활을 당겨 쏘려 하는데, 지금 이처럼 조정 뜰 앞에 가까이 와 있는 경우에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구천은 임기응변에 능하고음험한 성격을 가졌습니다. 지금 솥 속의 물고기 신세가 되어 요리사에게 칼질을 당할 운명에 처했기 때문에 아첨을 늘어놓고 비굴한 표정을 지으며 주살을 면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어느 날 조금이라도 뜻을 얻게 되면 호랑이를 산속에 풀어놓은 것처럼, 고래를 바다에 풀어놓은 것처럼 제어할 수 없을 것입니다."

夫差曰:「孤聞誅降殺服,禍及三世。孤非愛越而不誅,恐見咎於天耳!」太宰嚭曰:「子胥明於一時之計,不知安國之道。吾王誠仁者之言也!」子胥見吳王信伯嚭之佞言,不用其諫,憤憤而退。夫差受越貢獻之物,使王孫雄於闔閭墓側,築一石室,將句踐夫婦貶入其中,去其衣冠,蓬首垢衣,執養馬之事。伯嚭私饋食物,僅不至於飢餓。吳王每駕車出遊,句踐執馬箠步行車前,吳人皆指曰:「此越王也!」句踐低首而已。有詩為證:

  堪嘆英雄值坎坷,平生意氣盡銷磨﹔魂離故苑歸應少,恨滿長江淚轉多。

句踐在石室二月,范蠡朝夕侍側,寸步不離。忽一日,夫差召句踐入見,句踐跪伏於前,范蠡立於後。夫差謂范蠡曰:「寡人聞『哲婦不嫁破亡之家,名賢不官滅絕之國。』今句踐無道,國已將亡,子君臣並為奴僕,羈囚一室,豈不鄙乎?寡人欲赦子之罪,子能改過自新,棄越歸吳,寡人必當重用。去憂患而取富貴,子意何如?」時越王伏地流涕,惟恐范蠡之從吳也。只見范蠡稽首而對曰:「臣聞『亡國之臣,不敢語政﹔敗軍之將,不敢語勇。』臣在越不忠為信,不能輔越王為善,致得罪於大王,幸大王不即加誅,得君臣相保,入備掃除,出給趨走,臣願足矣。尚敢望富貴哉?」夫差曰:「子既不移其志,可仍歸石室。」蠡曰:「謹如君命。」夫差起,入宮中。句踐與范蠡趨入石室。越王服犢鼻,著樵頭,斫剉養馬。夫人衣無緣之裳,施左關之襦,汲水除糞灑掃。范蠡拾薪炊爨,面目枯槁。夫差時使人窺之,見其君臣力作,絕無幾微怨恨之色,終夜亦無愁嘆之聲,以此謂其無志思鄉,置之度外。

구천이 석실에서 거주한 지도 2개월이 지났다. 그사이 범려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구천의 곁을 지키며 한 걸음도 떨어지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구천을 불렀다. 무릎을 꿇고 엎드렸고 범려는 그 뒤에 서 있었다. 부차가 범려에게 말했다.

"총명한 여자는 패망한 집에 시집가지 않고, 현명한 선비는 명망한 나라에서 벼슬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지금 구천은 무도하여 나라가 망해버렸고, 너희 군신은 모두 나의 노예가 되어 석실에 갇혀 살고 있다. .. 네가 개과천선하여 월나라를 버리고 오나라에 귀의한다면 과인은 너를 반드시 중용할 것이다. .."

이때 월왕은 땅에 엎드려 눈물만 줄줄 흘렸다. 그는 범려가 오나라에 귀의할까봐 몹시 두려웠다. 범려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신이 듣건대 '망한 나라의 신하는 감히 정치를 입에 담을 수 없고, 싸움에 패배한 장수는 감히 용기를 입에 담을 수 없다'고 합니다. 신은 월나라에 있을 때에 충성이 부족하고 신의도 부족하여 월왕을 선행으로 이끌지 못한 채 대왕께 죄를 짓게 했습니다. 다행이 대왕께서 우리를 죽이지 않으시고 군신끼리 서로 도우며 청소 일을 하라 하셨고, 또 대왕께서 외출하실 때 수레를 따를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신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하온데 어찌 감히 부귀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오왕 부차가 말했다.
"네가 마음을 바꾸지 않겠다면 그대로 석실에 거주하도록 하라."

  一日,夫差登姑蘇臺,望見越王及夫人端坐於馬糞之旁,范蠡操箠而立於左,君臣之禮存,夫婦之儀具。夫差顧謂太宰嚭曰:「彼越王不過小國之君,范蠡不過一介之士,雖在窮厄之地,不失君臣之禮,寡人心甚敬之。」伯嚭對曰:「不惟可敬,亦可憐也。」夫差曰:「誠如太宰之言,寡人目不忍見。倘彼悔過自新,亦可赦乎?」嚭對曰:「臣聞『無德不復。』大王以聖王之心,哀孤窮之士,加恩於越,越豈無厚報?願大王決意。」夫差曰:「可命太史擇吉日,赦越王歸國。」伯嚭密遣家人以五鼓投石室,將喜信報知句踐。句踐大喜,告於范蠡。蠡曰:「請為王占之。今日戊寅,以卯時聞信,戊為囚日,而卯復克戊。其繇曰:『天網四張,萬物盡傷,祥反為殃。』雖有信,不足喜也。」句踐聞言,喜變為憂。

"보답받지 못하는 덕은 없다"

  卻說子胥聞吳王將赦越王,急入見曰:「昔桀囚湯而不誅,紂囚文王而不殺,天道還反,禍轉成福,故桀為湯所放,商為周所滅。今大王既囚越君,而不行誅,誠恐夏殷之患至矣。

오자서는 오왕이 월왕을 사면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황급히 조정으로 들어와서 말했다.
"옛날 하나라 걸왕은 상나라 탕왕을 구금시켰다가 죽이지 않았고, 상나라 주왕은 주나라 문왕을 구금시켰다가 죽이지 않았습니다. 이에 천도(天道)가 뒤집혀 탕왕과 문왕의 재앙이 결국 복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때문에 걸왕은 탕왕에게 쫓겨났고 상나라는 주나라에 멸망되었습니다. 지금 대왕께서 월왕을 구금해놓고도 죽이지 않으시면 진실로 하나라와 상나라의 우환이 다시 닥칠까 두렵습니다."

夫差因子胥之言,復有殺越王之意,使人召之。伯嚭復先報句踐,句踐大驚,又告於范蠡。蠡曰:「王勿懼也。吳王囚王已三年矣。彼不忍於三年,而能忍於一日乎?去必無恙。」句踐曰:「寡人所以隱忍不死者,全賴大夫之策耳。」乃入城來見吳王,候之三日,吳王並不視朝。伯嚭從宮中出,奉吳王之命,使句踐復歸石室。句踐怪問其故,伯嚭曰:「王惑子胥之言,欲加誅戮,所以相召。適王感寒疾不能起,某入宮問疾,因言『禳災宜作福事。今越王匍匐待誅於闕下,怨苦之氣,上干於天。王宜保重,且權放還石室,待疾愈而圖之。』王聽某之言,故遣君出城耳。」句踐感謝不已。

"재난을 물리치려면 복을 지어야 합니다."

句踐居石室,忽又三月,聞吳王病尚未愈,使范蠡卜其吉凶。蠡布卦已成,對曰:「吳王不死,至己巳日當減,壬申日必全愈。願大王請求問疾,倘得入見,因求其糞而嘗之,觀其顏色,再拜稱賀,言病起之期。至期若愈,必然心感大王,而赦可望矣。」句踐垂淚言曰:「孤雖不肖,亦曾南面為君,奈何含污忍辱,為人嘗泄便乎?」

"그의 똥을 달라고 하여 맛을 보시고 그 안색을 살핀 뒤 재배하며 경하 인사를 올리십시오. 그런 다음 환후에서 일아날 날이 임박했다고 말하십시오."
"과인이 비록 불초하지만 일찍이 남면하고 임금 노릇을 했던 사람이오. 그런데 어찌 그런 치욕을 참고 똥까지 맛보며 사람들의 구설수에 오르내릴 수 있단 말이오?"

蠡對曰:「昔紂囚西伯於羑里,殺其子伯邑考,烹而餉之,西伯忍痛而食子肉。夫欲成大事者,不矜細行。吳王有婦人之仁,而無丈夫之決,已欲赦越,忽又中變,不如此,何以取其憐乎?

"옛날 은나라 주왕은 주나라 서백을 유리에 가둔 후 그의 아들 백읍 고를 죽여 고기를 삶아 맛을 보게 했습니다. 서백은 고통을 참으며 아들의 고기를 먹었습니다. 대저 큰일을 이루려는 사람은 사소한 행동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오왕에겐 아녀자 같은 동정심은 있지만 대장부의 결단력은 없습니다..."

句踐即日投太宰府中,見伯嚭曰:「人臣之道,主疾則臣憂。今聞主公抱痾不瘳,句踐心孤失望,寢食不安,願從太宰問疾,以伸臣子之情。」嚭曰:「君有此美意,敢不轉達。」伯嚭入見吳王,曲道句踐相念之情,願入問疾。夫差在沉困之中,憐其意而許之。嚭引句踐入於寢室,夫差強目視曰:「句踐亦來見孤耶?」句踐叩首奏曰:「囚臣聞龍體失調,如摧肝肺,欲一望顏色而無由也。﹍﹍」言未畢,夫差覺腹漲欲便,麾使出。句踐曰:「臣在東海,曾事醫師,觀人泄便,能知疾之瘥劇。」乃拱立於戶下。侍人將餘桶近床,扶夫差便訖,將出戶外。句踐揭開桶蓋,手取其糞,跪而嘗之。左右皆掩鼻。句踐復入叩首曰:「囚臣敢再拜敬賀大王,王之疾,至己巳日有瘳,交三月壬申全愈矣。」夫差曰:「何以知之?」句踐曰:「臣聞於醫師:『夫糞者,穀味也。順時氣則生,逆時氣則死。』今囚臣竊嘗大王之糞,味苦且酸,正應春夏發生之氣,是以知之。」

夫差大悅曰:「仁哉句踐也!臣子之事君父,孰肯嘗糞而決疾者?」時太宰嚭在旁,夫差問曰:「汝能乎?」嚭搖首曰:「臣雖甚愛大王,然此事亦不能。」夫差曰:「不但太宰,雖吾太子亦不能也。」即命句踐離其石室,就便棲止:「待孤疾瘳,即當遣伊還國。」句踐再拜謝恩而出。自此僦居民舍,執牧養之事如故。夫差病果漸愈,一一如句踐所刻之期。心念其忠,既出朝,命置酒於文臺之上,召句踐赴宴。句踐佯為不知,仍前囚服而來。夫差聞之,即令沐浴,改換衣冠。句踐再三辭謝,方纔奉命。更衣入謁,再拜稽首。夫差慌忙扶起,即出令曰:「越王仁德之人,焉可久辱!寡人將釋其囚役,免罪放還。今日為越王設北面之坐,群臣以客禮事之。」乃揖讓使就客坐,諸大夫皆列坐於旁。子胥見吳王忘仇待敵,心中不忿,不肯入坐,拂衣而出。

伯嚭進曰:「大王以仁者之心,赦仁者之過。臣聞『同聲相和,同氣相求。』今日之坐,仁者宜留,不仁者宜去。相國剛勇之夫,其不坐,殆自慚乎?」夫差笑曰:「太宰之言當矣。」酒三行,范蠡與越王俱起進觴,為吳王壽﹔口致祝辭曰:
    皇王在上,恩播陽春﹔其仁莫比,其德日新。於乎休哉!傳德無極﹔延壽萬歲,長保吳國。四海咸承,諸侯賓服﹔觴酒既升,永受萬福!

"대왕께서 어진 마음으로 어진 분의 과오를 용서해주셨습니다. 신이 듣건대 '같은 종류의 소리는 서로 어울리고, 같은 종류의 기운은 서로 찾는다'고 합니다. 오늘 자리는 어진 사람만 남고 어질지 못한 사람은 떠나가는 자리입니다."

吳王大悅,是日盡醉方休。命王孫雄送句踐於客館:「三日之內,孤當送爾歸國。」至次早,子胥入見吳王曰:「昨日大王以客禮待仇人,果何見也?句踐內懷虎狼之心,外飾溫恭之貌,大王愛須臾之諛,不慮後日之患,棄忠直而聽讒言,溺小仁而養大仇,譬如縱毛於爐炭之上,而幸其不焦,投卵於千鈞之下,而望其必全,豈可得耶?」

구천은 속으로 범이나 이리 같은 흉심을 품고 있으면서도 밖으로는 온화하고 공손한 모습을 가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왕께서는 일순간의 아첨을 좋아하시며 뒷날의 우환을 염려하지 않고 계십니다. 또한 충언은 버리고 참소는 들으시며 사소한 인정에 빠져 큰 원수를 기르고 계십니다. 비유컨대 타오르는 화로의 숯불 위에 깃털 하나를 올려놓고 그것이 타지 않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3만 근의 무게 밑에 계란을 놓아두고 그것이 온전하기를 바란다면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吳王咈然曰:「寡人臥疾三月,相國並無一好言相慰,是相國之不忠也﹔不進一好物相送,是相國之不仁也。為人臣不仁不忠,要他何用!越王棄其國家,千里來歸寡人,獻其貨財,身為奴婢,是其忠也﹔寡人有疾,親為嘗糞,略無怨恨之心,是其仁也。寡人若徇相國私意,誅此善士,皇天必不佑寡人矣。」

子胥曰:「王何言之相反也。夫虎卑其勢,將有擊也﹔狸縮其身,將有取也。越王入臣於吳,怨恨在心,大王何得知之?其下嘗大王之糞,實上食大王之心,王若不察,中其奸謀,吳必為擒矣。」

"대저 호랑이가 자세를 낮추는 건 장차 공격을 펴기 위함이요, 삵쾡이가 몸을 움츠리는 건 뭔가 잡아챌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월왕은 우리 오나라에 들어와 신하 노릇을 하고 있지만 마움속에 원한을 품고 잇습니다. 대왕께서 어찌하면 그자의 속마음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그자가 몸을 낮추어 대왕의 인분을 맛본 것은 기실 대왕의 마음을 잡아먹기 위한 행동입니다."

吳王曰:「相國置之勿言,寡人意已決!」子胥知不可諫,遂鬱鬱而退。至第三日,吳王復命置酒於蛇門之外,親送越王出城。群臣皆捧觴餞行,惟子胥不至。夫差謂句踐曰:「寡人赦君返國,君當念吳之恩,勿記吳之怨。」句踐稽首曰:「大王哀臣孤窮,使得生還故國,當生生世世,竭力報效。蒼天在上,實鑒臣心,如若負吳,皇天不佑!」夫差曰:「君子一言為定,君其遂行。勉之,勉之!」句踐再拜跪伏,流涕滿面,有依戀不舍之狀。夫差親扶句踐登車,范蠡執御,夫人亦再拜謝恩,一同升輦,望南而去。(時周敬王二十九年事也。)史臣有詩云:
  越王已作釜中魚,豈料殘生出會稽?可笑夫差無遠慮,放開羅網縱鯨鯢。

"월왕은 이미 솥 속의 물고기가 되었는데, 회계로 살아갈 줄 어찌 짐작했겠는가? 가소롭다 부차는 원대한 계획도 없이, 그물을 열어젖히고 고래를 풀어줬네."

 .. 越王自嘗糞之後,常患口臭。范蠡知城北有山,出蔬菜一種,其名曰蕺,可食,而微有氣息,乃使人採蕺,舉朝食之,以亂其氣。後人因名其山曰蕺山。句踐迫欲復仇,乃苦身勞心,夜以繼日。目倦欲合,是攻之以蓼﹔足寒欲縮,則漬之以水。冬常抱冰,夏還握火﹔累薪而臥,不用床褥。又懸膽於坐臥之所,飲食起居,必取而嘗之。中夜潛泣,泣而復嘯,會稽二字,不絕於口。

"구천은 조속히 복수를 하기 위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밤낮으로 괴롭혔다. 눈이 피로하여 서서히 감겨오면 독한 여뀌풀로 눈을 비볐고, 발이 시려 움츠리고 싶으면 오히려 찬물에 발을 담갔다. 겨울에는 늘 차가운 얼음을 안고 살았고 여름에도 뜨거운 불을 끼고 살았다. 장작을 겹쳐 쌓고 그 위에서 잠을 자면서 침대와 이불은 사용하지 않았다. 아울러 앉고 눕는 처소에 쓸개를 매달아 음식을 먹거나 기거할 때 반드시 쓸개를 잡고 맛을 보았다. 회계의 치욕이란 말을 끊임없이 되뇌었다."

以喪敗之餘,生齒虧減,乃著令使壯者勿娶老妻,老者勿娶少婦﹔女子十七不嫁,男子二十不娶,其父母俱有罪﹔孕婦將產,告於官,使醫守之﹔生男賜以壺酒一犬,生女賜以壺酒一豚﹔生子三人,官養其二,生子二人,官養其一。有死者,親為哭弔。每出遊,必載飯與羹於後車,遇童子,必餔而啜之,問其姓名。遇耕時,躬身秉耒。夫人自織,與民間同其勞苦。七年不收民稅。食不加肉,衣不重采。

지난번 전투에서 패배한 나머지 월나라의 인구가 많이 줄어었다. 이에 구천은 명령을 내려 젊은 남자가 늙은 아내를 얻지 못하게 했고, 늙은 남자가 젊은 아내를 맞지 못하게 했다. 또 여자 나이 17세가 되어도 시집을 가지 않거나 남자 나이 2-세가 되어도 장가를 가지 않으면 그 부모에게 벌을 내렸다. 임산부가 출산일이 다가와 관청에 알리면 의원을 보내 출산을 돕게 했다. 아들을 낳으면 술 한 병과 개 한 마리를 하사했고, 딸을 낳으면 술 한 병과 돼지 한 마리를 하사했다. 아들 셋을 낳으면 관청에서 둘을 키워줬고, 아들 둘을 낳으면 관천에서 그 하나를 키워주었다. 죽은 사람이 있으면 구천이 직접 가서 곡을 하고 조문을 했다. 

惟問候之使,無一月不至於吳。復使男女入山採葛,作黃絲細布,欲獻吳王﹔尚未及進,吳王嘉句踐之順,使人增其封。於是東至句甬,西至檇李,南至姑蔑,北至平原,縱橫八百餘里,盡為越壤。句踐乃治葛布十萬疋,甘蜜百壜,狐皮五雙,晉竹十艘,以答封地之禮。夫差大悅,賜越王羽毛之飾。子胥聞之,稱疾不朝。夫差見越已臣服不貳,遂深信伯嚭之言。

一日,問伯嚭曰:「今日四境無事,寡人欲廣宮室以自娛,何地相宜?」嚭奏曰:「吳都之下,崇臺勝境,莫若姑蘇,然前王所築,不足以當巨覽。王不若重將此臺改建,令其高可望百里,寬可容六千人,聚歌童舞女於上,可以極人間之樂矣。」夫差然之。乃懸賞購求大木。文種聞之,進於越王曰:「臣聞『高飛之鳥,死於美食﹔深泉之魚,死於芳餌。』今王志在報吳,必先投其所好,然後得制其命。」句踐曰:「雖得其所好,豈遂能制其命乎?

"높이 나는 새는 맛있는 먹이 때문에 죽게 되고, 깊은 연못에 사는 새는 달콤한 미끼 때문에 죽는다고 합니다. 이제 대왕께서 오나라에 복수할 마음이 있으시다면 먼저 그가 좋아하는 것을 던져준 연후에 목숨을 노리십시오."

"비록 그가 좋아하는 것을 던져준다 해도 어찌 그의 목숨까지 취할 수 있겠소?"

文種對曰:「臣所以破吳者有七術一曰捐貨幣,以悅其君臣﹔二曰貴糴粟槀,以虛其積聚﹔三曰遺美女,以惑其心志﹔四曰遺之巧工良材,使作宮室,以罄其財﹔五曰遺之諛臣,以亂其謀﹔六曰彊其諫臣使自殺,以弱其輔﹔七曰積財練兵,以承其弊。

"신에게 오나라를 깨뜨릴 수 있는 일곱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뇌물을 써서 저들의 임금과 신하를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둘째, 오나라의 곡식을 비싸게 사들여 저들의 창고를 비게 하는 것입니다. 셋째, 미녀를 보내 오왕의 마음을 미혹시키는 것입니다. 넷째, 솜씨 좋은 목수와 좋은 목재를 보내 궁궐을 지어주면서 저들의 재물을 고갈시키는 것입니다. 다섯째, 아첨하는 신하를 보내 저들의 계략을 혼란 시키는 것입니다. 여섯째, 간언을 올리는 저들의 신하를 자살하게 만들어 보필하는 힘을 약화시키는 것입니다. 일곱째, 우리 재물을 축적하고 군사를 잘 훈련하여 저들의 폐습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句踐曰:「善哉!今日先行何術?」文種對曰:「今吳王方改築姑蘇臺,宜選名山神材,奉而獻之。」越王乃使木工三千餘人,入山伐木,經年無所得。工人思歸,皆有怨望之心,乃歌《木客之吟》曰:

    朝採木,暮採木,朝朝暮暮入山曲,窮巖絕壑徒往復。天不生兮地不育,木客何辜兮,受此勞酷?

每深夜長歌,聞者淒絕。忽一夜,天生神木一雙,大二十圍,長五十尋,在山之陽者曰梓,在山之陰者曰楠。木工驚睹,以為目未經見,奔告越王。群臣皆賀曰:「此大王精誠格天,故天生神木,以慰王衷也。」句踐大喜,親往設祭而後伐之。加以琢削磨礱,用丹青錯畫為五采龍蛇之文,使文種浮江而至,獻於吳王曰:「東海賤臣句踐,賴大王之力,竊為小殿,偶得巨材,不敢自用,敢因下吏獻於左右。」夫差見木材異常,不勝驚喜。子胥諫曰:「昔桀起靈臺,紂起鹿臺,窮竭民力,遂致滅亡。句踐欲害吳,故獻此木,王勿受之。」夫差曰:「句踐得此良材,不自用而獻於寡人,乃其好意,奈何逆之?」遂不聽,乃將此木建姑蘇之臺。三年聚材,五年方成,高三百丈,廣八十四丈,登臺望徹二百里。舊有九曲徑以登山,至是更廣之。百姓晝夜并作,死於疲勞者,不可勝數。有梁伯龍詩為證:

    千仞高臺面太湖,朝鐘暮鼓宴姑蘇﹔威行海外三千里,霸占江南第一都。

越王聞之,謂文種曰:「子所云『遺之巧匠良材,使作宮室,以盡其財。』此計已行。今崇臺之上,必妙選歌舞以充之,非有絕色,不足侈其心志。子其為寡人謀之!」文種對曰:「興亡之數,定於上天,既生神木,何患無美女。但搜求民間,恐驚動人心﹔臣有一計,可閱國中之女子,惟王所擇。」不知文種說出甚計,且看下回分解。

** 제81회(第八十一回)

話說越王句踐欲訪求境內美女,獻於吳王,文種獻計曰:「願得王之近豎百人,雜以善相人者,使挾其術,遍遊國中,得有色者,而記其人地,於中選擇,何患無人?」句踐從其計。半年之中,開報美女,何止二十餘人。句踐更使人覆視,得尤美者二人,因圖其形以進。那二人是誰?西施,鄭旦。那西施乃苧蘿山下採薪者之女。其山有東西二村,多施姓者,女在西村,故以西施別之。鄭旦亦在西村,與施女毗鄰,臨江而居,每日相與浣紗於江,紅顏花貌,交相映發,不啻如並蒂之芙蓉也。句踐命范蠡各以百金聘之。服以綺羅之衣,乘以重帷之車,國人慕美人之名,爭欲識認,都出郊外迎候,道路為之壅塞。范蠡乃停西施鄭旦於別館,傳諭:「欲見美人者,先輸金錢一文。」設櫃收錢,頃刻而滿。美人登朱樓,凭欄而立,自下望之,飄飄乎天仙之步虛矣。美人留郊外三日,所得金錢無算,悉輦於府庫,以充國用。句踐親送美人別居土城,使老樂師教之歌舞,學習容步,俟其藝成,然後敢進吳邦。(時周敬王三十一年,句踐在位之七年也。)

  ..

  再說悼公有妹,嫁與邾子益為夫人。益傲慢無禮,與魯不睦。魯上卿季孫斯言於哀公,引兵伐邾,破其國,執邾子益,囚於負瑕。齊悼公大怒曰:「魯執邾君,是欺齊也。」遂遣使乞師於吳,約同伐魯。夫差喜曰:「吾欲試兵山東,今有名矣!」遂許齊出師。魯哀公大懼,即釋放邾子益復歸其國,使人謝齊。齊悼公使大夫公孟綽辭於吳王,言:「魯已服罪,不敢勞大王之軍旅。」夫差怒曰:「吳師行止,一憑齊命,吳豈齊之屬國耶?寡人當視至齊國,請問前後二命之故。」叱公孟綽使退。魯聞吳王怒齊,遂使人送款與吳,反約吳王同伐齊國。夫差欣然即日起師,同魯伐齊,圍其南鄙。齊舉國驚惶,皆以悼公無端召寇,怨言益甚。時陳乞已卒,子陳恒秉政,乘國人不順,謂鮑息曰:「子盍行大事,外解吳怨,而內以報家門之仇?」息辭以不能。恒曰:「吾為子行之。」乃因悼公閱師,進鴆酒,毒殺悼公,以疾訃於吳軍曰:「上國膺受天命,寡君得罪,遂遘暴疾,上天代大王行誅,幸賜矜恤,勿隕社稷,願世世服事上國。」夫差乃班師而退,魯師亦歸。國人皆知悼公死於非命,因畏愛陳氏,無敢言者。陳恒立悼公之子壬,是為簡公。簡公欲分陳氏之權,乃以陳恒為右相,闞止為左相。昔人論齊禍皆啟於景公。詩曰:

    從來溺愛智逾昏,繼統如何亂弟昆?莫怨強臣與強寇,分明自己鑿凶門。

  時越王教習美女三年,技態盡善,飾以珠幌,坐以寶車,所過街衢,香風聞於遠近,又以美婢旋波、移光﹍﹍等六人為侍女,使相國范蠡進之吳國。夫差自齊回吳,范蠡入見,再拜稽首曰:「東海賤臣句踐,感大王之恩,不能親率妻妾,伏侍左右,遍搜境內,得善歌舞者二人,使陪臣納之王宮,以供灑掃之役。」夫差望見,以為神仙之下降也,魂魄俱醉。子胥諫曰:「臣聞『夏亡以妹喜,殷亡以妲己,周亡以褎姒。』夫美女者,亡國之物,王不可受!」夫差曰:「好色,人之同心。句踐得此美女不自用,而進於寡人,此乃盡忠於吳之證也。相國勿疑。」遂受之。二女皆絕色,夫差並寵愛之,而妖豔善媚,更推西施為首。於是西施獨奪歌舞之魁,居姑蘇之臺,擅專房之寵,出入儀制,擬於妃后。鄭旦居吳宮,妒西施之寵,鬱鬱不得志,經年而死。夫差哀之,葬於黃茅山,立祠祀之。此是後話。

월왕이 3년 동안 가르친 두 미녀는 기예가 용모가 지극히 아름다웠다. 고운 수레에 구슬로 장식한 휘장을 치고 미녀들을 태운 채 거리를 지나가면 멀리까지 그 향기가 가듣 퍼져나갈 정도였다. 또한 구천은 아름다운 비첩 선파와 이광 등 여섯명을 두 미녀의 시녀로 삼고 상국 변려를 시켜 오나라에 바치게 했다.

"동해의 비천한 신하 구천은 대왕의 은혜에 감복하고 있으나 직접 처첩을 거느리고 대왕을 곁에서 모실 수 없습니다. 이에 월나라 경내를 두루 뒤져 가무에 뛰어난 두 미녀를 찾았습니다. 이제 근신을 보내 대왕께 바치오니 장차 청소나 하는 노비로 쓰시기 바라옵니다."

부차는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온 줄 알고 넋이 다 빠질 지경이었다. 그러자 오자서가 간언을 올렸다.

"신이 듣건대 하나라는 말희 때문에 망했고, 은나라는 달기 때문에 망했으며, 주나라는 포사 때문에 망했다고 합니다. 대저 미녀란 나라를 망치는 요물이니 왕께서는 저들이 바치는 미녀를 받아서는 안 됩니다."

부차가 말했다.
"미녀를 좋아하는건 인지상정이오. 구천은 이처럼 아름다운 여인을 얻고서도 자신이 즐기지 않고 과인에게 바쳤소, 이것은 그가 우리 오나라에 충성을 바치고 있다는 증거요. 상국은 의심하지 마시오."

且說夫差寵幸西施,令王孫雄特建館娃宮於靈巖之上,銅溝玉檻,飾以珠玉,為美人遊息之所。建「響屧廊」,(何為響屧?屧乃鞋名,鑿空廊下之地,將大甕鋪平,覆以厚板,令西施與宮人步屧繞之,錚錚有聲,故名響屧。)今靈巖寺圓照塔前小斜廊,即其址也。

오왕 부차는 서시를 총애하여 왕손 웅을 시켜 영엄산에 특별히 관왜궁(館娃宮)을 짓게 했다. 구리로 물도랑을 만들고 옥욿 넌간을 세워 주옥(珠玉)으로 장식한 후 서시가 쉬는 곳으로 해주었다. 또 향섭랑(響屧廊)이라는 회랑을 만들었다. 회랑의 밑에 땅을 파서 큰 독을 나란히 길게 묻고 그 위에 두꺼운 판자를 덮어놓았다. 그곳을 서시와 궁녀들이 섭(屧)이라는 신발을 신고 회랑을 따라 돌면 쟁~쟁~하는 소리가 난다고 하여, 향섭랑이라 이름을 붙인 것이다.

高啟《館娃宮》詩云:  館娃宮中館娃閣,畫棟侵雲峰頂開﹔猶恨當時高未極,不能望見越兵來!

王禹偁有《響屧廊》詩云:    廊壞空留響屧名,為因西子繞廊行﹔可憐伍相終屍諫,誰記當時曳履聲!

山上有翫花池,翫月池。又有井,名吳王井,井泉清碧,西施或照泉而妝,夫差立於旁,親為理髮。又有洞名西施洞,夫差與西施同坐於此。洞外石有小陷,今俗名西施跡。又嘗與西施鳴琴於山巔,今有琴臺。又令人種香於香山,使西施與美人泛舟採香。今靈巖山南望,一水直如矢,俗名箭涇,即採香涇故處。又有採蓮涇,在郡城東南,吳王與西施採蓮處。又於城中開鑿大濠,自南直北,作錦帆以遊,號錦帆涇。高啟詩云:

    吳王在日百花開,畫船載樂洲邊來﹔吳王去後百花落,歌吹無聞洲寂寞。花開花落年年春,前後看花應幾人?但見枝枝映流水,不知片片墮行塵。年年風雨荒臺畔,日暮黃鸝腸欲斷﹔豈惟世少看花人,從來此地無花看。

又城南有長洲苑,為遊獵之所。又有魚城養魚,鴨城畜鴨,雞陂畜雞,酒城造酒。又嘗與西施避暑於西洞庭之南灣,灣可十餘里,三面皆山,獨南面如門闕。吳王曰:「此地可以消夏。」因名消夏灣。張羽又有《蘇臺歌》云:

    館娃宮中百花開,西施曉上姑蘇臺。霞裙翠袂當空舉,身輕似展凌風羽。遙望三江水一杯,兩點微茫洞庭樹。轉面凝眸未肯回,要見君王射麋處。城頭落日欲棲鴉,下階戲折棠梨花﹔隔岸行人莫倚盼,干將莫邪光粲粲。

夫差自得西施,以姑蘇臺為家,四時隨意出遊,絃管相逐,流連忘返。惟太宰嚭王孫雄常侍左右,子胥求見,往往辭之

부차는 서시를 얻은 후 고소대를 집으로 삼고 사시사철 마음대로 사냥을 다녔다. .. 오자서가 뵙기를 청하면 왕왕 다른 핑계를 대고 만나주지 않았다.

  越王句踐聞吳王寵幸西施,日事遊樂,復與文種謀之。文種對曰:「臣聞『國以民為本,民以食為天。』今歲年穀歉收,粟米將貴,君可請貸於吳,以救民飢。天若棄吳,必許我貸。」句踐即命文種以重幣賄伯嚭,使引見吳王。吳王召見於姑蘇臺之宮,文種再拜請曰:「越國洿下,水旱不調,年穀不登,人民飢困。願從大王乞太倉之穀萬石,以救目前之餒,明年穀熟,即當奉償。」夫差曰:「越王臣服於吳,越民之飢,即吳民之飢也,吾何愛積穀,不以救之?」時子胥聞越使至,亦隨至蘇臺,得見吳王,及聞許其請穀,復諫曰:「不可,不可!今日之勢,非吳有越,即越有吳。吾觀越王之遣使者,非真飢困而乞糴也,將以空吳之粟也。與之不加親,不與未成仇,王不如辭之。」吳王曰:「句踐囚於吾國,卻行馬前,諸侯莫不聞知。今吾復其社稷,恩若再生,貢獻不絕,豈復有背叛之虞乎?」子胥曰:「吾聞越王早朝晏罷,恤民養士,志在報吳,大王又輸粟以助之,臣恐麋鹿將遊於姑蘇之臺矣。」吳王曰:「句踐業已稱臣,烏有臣而伐君者?」子胥曰:「湯伐桀,武王伐紂,非臣伐君乎?」伯嚭從旁叱之曰:「相國出言太甚,吾王豈桀紂之比耶?」因奏曰:「臣聞葵邱之盟,遏糴有禁,為恤鄰也。況越,吾貢獻之所自出乎?明歲穀熟,責其如數相償,無損於吳,而有德於越,何憚而不為也?」夫差乃與越粟萬石,謂文種曰:「寡人逆群臣之議,而輸粟於越,年豐必償,不可失信!」文種再拜稽首曰:「大王哀越而救其飢餒,敢不如約。」文種領穀萬石,歸越,越王大喜,群臣皆呼「萬歲!」句踐即以粟頒賜國中之貧民,百姓無不頌德。

"신이 듣건대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밥을 하늘로 삼는다'고 합니다. 올해는 곡식이 흉작이어서 곡식값이 비싸질 것입니다. 대왕께서는 오나라에 곡식을 빌려 백성의 배고픔을 구제하십시오. 하늘이 만약 오나라를 버릴 양이면 틀림없이 우리에게 곡식을 빌려줄 것입니다."

  次年,越國大熟,越王問於文種曰:「寡人不償吳粟,則失信﹔若償之,則損越而利吳矣。奈何?」文種對曰:「宜擇精粟,蒸而與之,彼愛吾粟,而用以布種,吾計乃得矣。」越王用其計,以熟穀還吳,如其斗斛之數。吳王嘆曰:「越王真信人也!」又見其穀粗大異常,謂伯嚭曰:「越地肥沃,其種甚嘉,可散與吾民植之。」於是國中皆用越之粟種。不復發生,吳民大飢,夫差猶認以為地土不同,不知粟種之蒸熟也。文種之計亦毒矣!(此周敬王三十六年事也。)越王聞吳國飢困,便欲興兵伐吳。文種諫曰:「時未至也,其忠臣尚在。」越王又問於范蠡,蠡對曰:「時不遠矣!願王益習戰以待之。」越王曰:「攻戰之具,尚未備乎?」

"좋은 곡식을 골라 쪄서 보내십시오.저들이 우리 곡식을 좋아하여 곡식을 파종하면, 우리의 계책이 맞아떨어지는 것입니다."

蠡對曰:「善戰者,必有精卒,精卒必有兼人之技,大者劍戟,小者弓弩,非得明師教習,不得盡善。臣訪得南林有處女,精於劍戟﹔又有楚人陳音,善於弓矢,王其聘之。」越王分遣二使,持重幣往聘處女及陳音。

  單說處女不知名姓,生於深林之中,長於無人之野,不由師傅,自然工於擊刺。使者至南林,致越王之命,處女即隨使北行。至山陰道中,遇一白鬚老翁,立於車前,問曰:「來者莫非南林處女乎?有何劍術,敢受越王之聘?願請試之!」處女曰:「妾不敢自隱,惟公指教!」老翁即挽林內之竹,如摘腐草,欲以刺處女。竹折,末墮於地,處女即接取竹末,以刺老翁。老翁忽飛上樹,化為白猿,長嘯一聲而去。使者異之。處女見越王,越王賜坐,問以擊刺之道。

處女曰:「內實精神,外示安佚,見之如好婦,奪之似猛虎。布形候氣,與神俱往,捷若騰兔,追形還影,縱橫往來,目不及瞬。得吾道者,一人當百,百人當萬。大王不信,願得試之。」越王命勇士百人,攢戟以刺處女。處女連接其戟而投之。越王乃服。使教習軍士,軍士受其教者三千人。歲餘,處女辭歸南林,越王再使人請之,已不在矣。或曰:「天欲興越亡吳,故遣神女下授劍術,以助越也。」

"안으로 정신을 가득 채워 밖에서 볼 때 편안하게 보여야 합니다. 겉으로는 아름다운 여인처럼 보이면서도, 서로 검술을 다툴 때는 사나운 호랑이같이 싸워야 합니다. 자세를 잡고 기운을 모은 뒤 정신과 함께 전진해야 합니다. 달리는 토끼처럼 민첩하게 움직이며 적의 형체와 그림자를 쫒아야 합니다. 그런 다음 종횡으로 오고 가면 적의 눈이 한순간도 나를 쫒아오지 못할 것입니다. 이 검술을 익힌 사람은 백 명의 적을 당해낼 수 있고 백 사람이 만 명의 적을 막아낼 수 있습니다."

  再說楚人陳音,以殺人避仇於越。蠡見其射必命中,言於越王,聘為射師。王問音曰:「請聞弓弩何所而始?」陳音對曰:「臣聞弩生於弓,弓生於彈,彈生於古之孝子。古者人民朴實,飢食鳥獸,渴飲霧露,死則裹以白茅,投於中野。有孝子不忍見其父母為禽獸所食,故作彈以守之。時為之歌曰:『斷木續竹,飛土逐肉。』至神農皇帝興,弦木為弧,剡木為矢,以立威於四方。有弧父者,生於楚之荊山,生不見父母,自為兒時,習用弓矢,所射無脫。以其道傳於羿,羿傳於逢蒙,逢蒙傳於琴氏。琴氏以為諸侯相伐,弓矢不能制服,乃橫弓著臂,施機設樞,加之以力,其名曰弩。琴氏傳之楚三侯,楚由是世世以桃弓棘矢,備禦鄰國。臣之前人,受其道於楚,五世於茲矣。弩之所向,鳥不及飛,獸不及走。惟王試之!」越王亦遣士三千,使音教習於北郊之外。音授以連弩之法,三矢連續而去,人不能防。三月盡其巧。陳音病死,越王厚葬之,名其山曰陳音山。此是後話。髯仙詩云:

    擊劍彎弓總為吳,臥薪嘗膽淚幾枯﹔蘇臺歌舞方如沸,遑問鄰邦事有無。

  子胥聞越王習武之事,乃求見夫差,流涕而言曰:「大王信越之臣順,今越用范蠡,日夜訓練士卒,劍戟弓矢之藝,無不精良。一旦乘吾間而入,吾國禍不支矣。王如不信,何不使人察之?」夫差果使人探聽越國,備知處女陳音之事,回報夫差。夫差謂伯嚭曰:「越已服矣,復治兵欲何為乎?」嚭對曰:「越蒙大王賜地,非兵莫守。夫治兵,乃守國之常事,王何疑焉?」夫差終不釋然,遂有興兵伐越之意

  話分兩頭。再說齊國陳氏,世得民心,久懷擅國之志。及陳恒嗣位,逆謀愈急,憚高國之黨尚眾,思盡去之。乃奏於簡公曰:「魯鄰國而共吳伐齊,此仇不可忘也。」簡公信其言。恒因薦國書為大將,高無平宗樓副之,大夫公孫夏、公孫揮、閭丘明等皆從。悉車千乘,陳恒親送其師。屯於汶水之上,誓欲滅魯方還。

"제나라의 진씨는 대대로 민심을 얻으며 오래전부터 나라를 빼앗을 마음을 먹고 있었다. 진항이 상국의 지위를 계승하고 나서는 역모의 마음이 더욱 급해졌다. 그는 고씨와 국씨의 파당이 아직 많이 있음을 시기하며, 그들을 제거할 마음을 먹고 제간공에게 아뢰었다."
"노나라는 우리 이웃임이도 불구하고 지난 번에 오나라와 힘을 합쳐 우리 제나라를 쳤습니다. 이것은 잊을 수 없는 원한입니다."

時孔子在魯,刪述《詩》《書》。一日,門人琴牢字子張,自齊至魯,來見其師。孔子問及齊事,知齊兵在境上,大驚曰:「魯乃父母之國,今被兵,不可不救!」因問群弟子:「誰能為某出使於齊,以止伐魯之兵者?」子張子石俱願往,孔子不許。子貢離席而問曰:「賜可以去乎?」孔子曰:「可矣。」子貢即日辭行,至汶上,求見陳恒。恒知子貢乃孔門高弟,此來必有遊說之語,乃預作色以待之。子貢坦然而入,旁若無人。恒迎入相見,坐定,問曰:「先生此來,為魯作說客耶?」子貢曰:「賜之來,為齊非為魯也。夫魯,難伐之國,相國何為伐之?」陳恒曰:「魯何難伐也?」子貢曰:「其城薄以卑,其池狹以淺,其君弱,大臣無能,士不習戰,故曰『難伐』。為相國計,不如伐吳。吳城高而池廣,兵甲精利,又有良將為守,此易攻耳。」恒勃然曰:「子所言難易,顛倒不情,恒所不解。」子貢曰:「請屏左右,為相國解之。」恒乃屏去從人,前席請教。子貢曰:「賜聞『憂在外者攻其弱,憂在內者攻其強。』賜竊窺相國之勢,非能與諸大臣共事者也。今破弱魯以為諸大臣之功,而相國無與焉,諸大臣之勢日盛,而相國危矣!若移師於吳,大臣外困於強敵,而相國專制齊國,豈非計之最便乎?」陳恒色頓解,欣然問曰:「先生之言,徹恒肺腑。然兵已在汶上,若移而向吳,人將疑我,奈何?」子貢曰:「但按兵勿動,賜請南見吳王,使救魯而伐齊,如是而戰吳,不患無詞。」陳恒大悅,乃謂國書曰:「吾聞吳將伐齊,吾兵姑駐此,未可輕動,打探吳人動靜,須先敗吳兵,然後伐魯。」國書領諾,陳恒遂歸齊國。

(노나라는 허약하니 정벌하기 어렵고難伐, 오나라는 강성하니 공략하기 쉬운 법이오此易攻耳.)

"바깥에 근심이 있는 사람은 약한 나라를 공격하고, 내부에 근심이 있는 사람은 강한 나라를 공격한다고 하오."
자공이 말했다. "아직은 군사를 움직이지 마시오. 내가 남쪽으로 가서 오왕을 만나 노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제나라를 정벌하라고 설득하겠소. 이와 같이 되면 오나라를 정벌해도 아무 말이 없을 것이오."

  再說子貢星夜行至東吳,來見吳王夫差,說曰:「吳魯連兵伐齊,齊恨入骨髓。今其兵已在汶上,將以伐魯,其次必及吳。大王何不伐齊以救魯?夫敗萬乘之齊,而收千乘之魯,威加強晉,吳遂霸矣。」夫差曰:「前者齊許世世服事吳國,寡人以此班師。今朝聘不至,寡人正欲往問其罪。但聞越君勤政訓武,有謀吳之心,寡人欲先伐越國,然後及齊未晚。」子貢曰:「不可!越弱而齊強,伐越之利小,而縱齊之患大。夫畏弱越而避強齊,非勇也﹔逐小利而忘大患,非智也﹔智勇俱失,何以爭霸?大王必慮越國,臣請為大王東見越王,使親櫜鞬以從下吏何如?」夫差大悅曰:「誠如此,孤之願也。」

"월나라는 약하고 제나라는 강합니다. 월나라를 정벌해서 얻는 이익은 작고, 제나라를 마음대로 놓아두는 우환은 큽니다. 대저 약한 월나라가 두려워 강한 제나라를 피하는 것은 용기 있는 행동이 아닙니다. 또 작은 이익을 좆아 큰 우환을 잊는 것은 지혜로운 행동이 아닙니다. 용기와 지혜를 모두 잃고 어찌 천하의 패권을 다툴 수 있겠습니까? 智勇俱失,何以爭霸?대왕께서 정히 월나라가 걱정된다면 신이 동쪽으로 건너가 월왕을 만나보고 그들에게 군장을 갖추어 대왕마마의 군사를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어떻습니까?"

子貢辭了吳王,東行至越。越王句踐聞子貢將至,使候人預為除道,郊迎三十里,館之上舍,鞠躬而問曰:「敝邑僻處東海,何煩高賢遠辱?」子貢曰:「特來弔君!」句踐再拜稽首曰:「孤聞『禍與福為鄰。』先生下弔,孤之福矣,請聞其說。」子貢曰:「臣今者見吳王,說以救魯而伐齊,吳王疑越謀之,其意欲先加誅於越。夫無報人之志,而使人疑之者,拙也﹔有報人之志,而使人知之者,危也。」句踐愕然長跪曰:「先生何以救我?」子貢曰:「吳王驕而好佞,宰嚭專而善讒,君以重器悅其心,以卑辭盡其禮親率一軍,從於伐齊,彼戰而不勝,吳自此削矣﹔若戰而勝,必侈然有霸諸侯之心,將以兵臨強晉,如此,則吳國有間,而越可乘也。」句踐再拜曰:「先生之來,實出天賜。如起死人而肉白骨,孤敢不奉教!」乃贈子貢以黃金百鎰,寶劍一口,良馬二匹。子貢固辭不受。還見吳王,報曰:「越王感大王生全之德,聞大王有疑,意甚悚懼,旦暮遣使來謝矣。」夫差使子貢就館,留五日,越果遣文種至吳,叩首於吳王之前曰:「東海賤臣句踐,蒙大王不殺之恩,得奉宗祀,雖肝腦塗地,未能為報!今聞大王興大義,誅強救弱,故使下臣種,貢上前王所藏精甲二十領,『屈盧』之矛,『步光』之劍,以賀軍吏。句踐請問師期,將悉四境之內,選士三千人,以從下吏。句踐願披堅執銳,親受矢石,死無所懼。」夫差大悅,乃召子貢謂曰:「句踐果信義人也。欲率選士三千,以從伐齊之役,先生以為可否?」子貢曰:「不可。夫用人之眾,又役及其君,亦太過矣。不如許其師而辭其君。」夫差從之。

"화와 복은 이웃이라고 하오. 선생께서 조문하신다니 이것은 과인의 복이오."
복수할 마음이 없는데도 의심을 살 행동을 한다면 그것은 졸렬한 짓입니다. 혹은 복수할 마음이 있는데 다른 사람이 눈치채게 한다면 그것은 위험한 짓입니다."
"귀한 보물로 저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시고, 겸손한 말로 저들을 섬기는 예절을 다하십시오."
"그리고 친히 군사 한 부대를 이끌고 오나라의 제나라 정벌에 참전하십시오. 만약 싸워서 이기지 못하면 오나라는 저절로 약화될 것입니다. 혹 싸워서 이긴대 해도 오나라는 틀림없이 제후들의 패자가 될 마음을 먹고 자신의 군사를 강력한 진나라에 보낼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오나라에 빈틈이 생길 것이니 월나라는 그 틈을 노릴 수 있게 됩니다."

子貢辭吳,復北往晉國,見晉定公,說曰:「臣聞『無遠慮者,必有近憂。』今吳之戰齊有日矣。戰而勝,必與晉爭伯,君宜修兵休卒以待之。」晉侯曰:「謹受教。」比及子貢反魯,齊兵已為吳所敗矣。不知吳如何敗齊,再看下回分解。

심모원려가 없는 사람은 반드시 가까운 데서 근심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지금 오나라는 조만간 제나라를 정벌할 것입니다. 만약 오나라가 그 싸움에서 이기면 틀림없이 진나라와 천하의 패권을 다툴 것입니다. 군후께선 군사를 잘 수습하여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십시오.

 

** 第八十二回

話說周敬王三十六年春,越王句踐使大夫諸稽郢帥兵三千,助吳攻齊。吳王夫差遂徵九郡之兵,大舉伐齊。預遣人建別館於句曲,遍植秋梧,號曰梧宮。使西施移居避暑,俟勝齊回日,即於梧宮過夏方歸。吳兵將發,子胥又諫曰:「越在,我心腹之病也﹔若齊,特疥癩耳。今王興十萬之師,行糧千里,以爭疥癩之患,而忘大毒之在腹心,臣恐齊未必勝,而越禍已至也。」夫差怒曰:「孤發兵有期,老賊故出不祥之語,阻撓大計,當得何罪?」意欲殺之。伯嚭密奏曰:「此前王之老臣,不可加誅。王不若遣之往齊約戰,假手齊人。」夫差曰:「太宰之計甚善。」乃為書數齊伐魯慢吳之罪,命子胥往見齊君,冀其激怒而殺子胥也。子胥料吳必亡,乃私攜其子伍封同行,至臨淄,致吳王之命。齊簡公大怒,欲殺子胥,鮑息諫曰:「子胥乃吳之忠臣,屢諫不入,已成水火。今遣來齊,欲齊殺之,以自免其謗。宜縱之使歸,令其忠佞自相攻擊,而夫差受其惡名矣。」簡公乃厚待子胥,報以戰期,定於春末。子胥原與鮑牧相識,故鮑息諫齊侯勿殺子胥也。鮑息私叩吳事,子胥垂淚不言,但引其子伍封,使拜鮑息為兄,寄居於鮑氏,今後只稱王孫封,勿用伍姓。鮑息嘆曰:「子胥將以諫死,故預謀存祀於齊耳。」不說子胥父子分離之苦。

"월나라가 우리 심장과 배 속의 고질병이라면, 제나라는 작은 종기에 불과합니다. 지금 대왕께선 10만 군사를 일으켜 천 리 먼길에 군량미를 운반하려 하십니다. 이는 작은 종기를 근심하느라 배 속에 든 심한 독을 잊으신 것과 같습니다. 신은 이제 우리 오나라가 제나라에 승리하지도 못한 채 월나라로부터 재앙을 맞을까 두럽습니다."

국서에 노나라를 치고 오나라를 업신여긴 제나라의 죄를 나열하고, 오자서에게 그 국서를 가지고 제나라 군주를 만나게 했다. 이것은 말할 것도 없이 제나라 군신의 분노를 촉발시켜 오자서를 죽이기 위한 계책이었다.
오자서는 오나라가 틀림없이 망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자신의 아들 오봉을 데리고 임치로 가서 오왕의 국서를 전달했다.

"오자서는 죽을 각오를 하고 오왕에게 간언을 올릴 준비를 하면서 우리 제나라에서 그의 제사가 이어지도록 하는구나"

  再說吳王夫差,擇日於西門出軍,過姑蘇臺午膳,膳畢,忽然睡去,得其異夢。既覺,心中恍惚,乃召伯嚭告曰:「寡人晝寢片時,所夢甚多。夢入章明宮,見兩釜炊而不熟﹔又有黑犬二隻,一嗥南,一嗥北﹔又有鋼鍬二把,插於宮牆之上﹔又流水湯湯,流於殿堂﹔後房非鼓非鐘,聲若鍛工﹔前園別無他植,橫生梧桐。太宰為寡人占其吉凶!」伯嚭稽首稱賀曰:「美哉!大王之夢,應在興師伐齊矣。臣聞:章明者,破敵成功,聲朗朗也﹔兩釜炊而不熟者,大王德盛,氣有餘也﹔兩犬嗥南嗥北者,四夷賓服,朝諸侯也﹔兩鍬插宮牆者,農工盡力,田夫耕也﹔流水入殿堂者,鄰國貢獻,財貨充也﹔後房聲若鍛工者,宮女悅樂,聲相諧也﹔前園橫生梧桐者,桐作琴瑟,音調和也。大王此行,美不可言。」夫差雖喜其諛,而心中終未快然。復告於王孫駱,駱對曰:「臣愚昧,不能通微。城西陽山,有一異士,喚做公孫聖,此人多見博聞,大王心上狐疑,何不召而決之?」夫差曰:「子即為我召來。」駱承命,馳車往迎公孫聖。聖聞其故,伏地涕泣。其妻從旁笑曰:「子性太鄙,希見人主,卒聞宣召,涕淚如雨。」聖仰天長嘆曰:「悲哉!非汝所知。吾曾自推壽數,盡於今日。今將與汝永別,是以悲耳。」駱催促登車,遂相與馳至姑蘇之臺。夫差召而見之,告以所夢之詳。公孫聖曰:「臣知言而必死,然雖死不敢不言。怪哉!大王之夢,應在興師伐齊也。臣聞:章者,戰不勝,走章皇也﹔明者,去昭昭,就冥冥也。兩釜炊而不熟者,大王敗走,不火食也。黑犬嗥南嗥北者,黑為陰類,走陰方也。兩鍬插宮牆者,越兵入吳,掘社稷也。流水入殿堂者,波濤漂沒,後宮空也。後房聲若鍛工者,宮女為俘,長嘆息也。前園橫生梧桐者,桐作冥器,待殉葬也。願大王罷伐齊之師,更遣太宰嚭解冠肉袒,稽首謝罪於句踐,則國可安而身可保矣。」伯嚭從旁奏曰:「草野匹夫,妖言肆毀,合加誅戮!」公孫聖睜目大罵曰:「太宰居高官,食重祿,不思盡忠報主,專事諂諛,他日越兵滅吳,太宰獨能保其首領乎?」夫差大怒曰:「野人無識,一味亂言,不誅,必然惑眾!」顧力士石番:「可取鐵鎚擊殺此賊!」聖乃仰天大呼曰:「皇天,皇天!知我之冤。忠而獲罪,身死無辜,死後不願葬埋,願撇我在陽山之下,後作影響,以報大王也。」夫差已擊殺聖,使人投其屍於陽山之下,數之曰:「豺狼食汝肉,野火澆汝骨,風揚汝骸,形銷影滅,何能為聲響哉!」伯嚭捧觴趨進曰:「賀大王,妖孽已滅,願進一觴,兵便可發矣。」史臣有詩云:    妖夢先機已兆凶,驕君尚戀伐齊功﹔吳庭多少文和武,誰似公孫肯盡忠!
夫差自將中軍,太宰嚭為副,胥門巢將上軍,王子姑曹將下軍,興師十萬,同越兵三千,浩浩蕩蕩,望山東一路進發。先遣人約會魯哀公合兵攻齊。子胥於中途復命,稱病先歸,不肯從師。

"과인이 잠깐 낮잠을 자는 틈에 꿈을 꾸었는데 참으로 많은 것을 보았소. 꿈속에 장명궁이라는 곳에 들어가니 두 솥에 불을 때는 데 음식이 익지 않았소. 또 검은 개 두 마리가 나타나 한 마리는 남쪽을 향해 짖고 한 마리는 북쪽을 향해 짖었소. 또 강철로 만든 가래 두 자루가 궁궐 담장에 꽂혀 있었소, 또 큰물이 도도하게 흘러 궁전까지 들어찼소. 또 후궁에 북도 아니고 종도 아닌 것이 있었는데 마치 쇠를 단련하는 것 같은 소리를 냈소. 그리고 앞 정원에 다른 나무는 없고 오동나무만 가득 늘어서 있었소."

  卻說齊將國書,屯兵汶上,聞吳魯連兵來伐,聚集諸將商議迎敵。忽報:「陳相國遣其弟陳逆來到。」國書同諸將迎入中軍,叩問:「子行此來何意?」陳逆曰:「吳兵長驅,已過嬴博,國家安危,在於呼吸。相國恐諸君不肯用力,遣小將至此督戰。今日之事,有進無退,有死無生,軍中只許鳴鼓,不許鳴金。」諸將皆曰:「吾等誓決一死敵!」國書傳令,拔寨都起,往迎吳軍。至於艾陵,吳將胥門巢上軍先到。國書問:「誰人敢衝頭陣?」公孫揮欣然願往,率領本部車馬,疾驅而出。胥門巢急忙迎敵,兩下交鋒,約三十餘合,不分勝敗。國書一股銳氣,按納不住,自引中軍夾攻。軍中鼓聲如雷,胥門巢不能支,大敗而走。國書勝了一陣,意氣愈壯,令軍士臨陣,各帶長繩一條,曰:「吳俗斷髮,當以繩貫其首。」一軍若狂,以為吳兵旦暮可掃也。胥門巢引敗兵來見吳王,吳王大怒,欲斬巢以狥。巢奏曰:「臣初至不知虛實,是以偶挫﹔若再戰不勝,甘伏軍法!」伯嚭亦力為勸解。夫差叱退,以大將展如代領其軍。適魯將叔孫州仇引兵來會,夫差賜以劍甲各一具,使為嚮導,離艾陵五里下寨。國書使人下戰書,吳王批下:「來日決戰」。次早,兩下各排陣勢,夫差命叔孫州仇打第一陣,展如打第二陣,王子姑曹打第三陣。使胥門巢率越兵三千,往來誘敵。自與伯嚭引大軍屯於高阜,相機救援。留越將諸稽郢於身旁觀戰。

  卻說齊軍列陣方完,陳逆令諸將各具含玉,曰:「死即入殮!」公孫夏公孫揮使軍中皆歌送葬之詞,誓曰:「生還者,不為烈丈夫也!」國書曰:「諸君以必死自勵,何患不勝乎?」兩陣對圓,胥門巢先來搦戰。國書謂公孫揮曰:「此汝手中敗將,可便擒之。」公孫揮奮戟而出,胥門巢便走,叔孫州仇引兵接住公孫揮廝殺。胥門巢復身又來,國書恐其夾攻,再使公孫夏出車。胥門巢又走,公孫夏追之,吳陣上大將展如,引兵便接住公孫夏廝殺。胥門巢又回車幫戰,惱得齊將高無平宗樓性起,一齊出陣,王子姑曹挺身獨戰二將,全無懼怯。兩軍各自奮力,殺傷相抵。國書見吳兵不退,親自執枹鳴鼓,悉起大軍,前來助戰。吳王在高阜處看得親切,見齊兵十分奮勇,吳兵漸漸失了便宜,乃命伯嚭引兵一萬,先去接應。國書見吳兵又至,正欲分軍迎敵,忽聞金聲大震,鉦鐸皆鳴。齊人只道吳兵欲退,不防吳王夫差自引精兵三萬,分為三股,反以鳴金為號,從刺斜裏直衝齊陣,將齊兵隔絕三處。展如姑曹等,聞吳王親自臨陣,勇氣百倍,殺得齊軍七零八落。展如就陣上擒了公孫夏,胥門巢刺殺公孫揮於車中,夫差親射宗樓,中之。閭邱明謂國書曰:「齊兵將盡矣!元帥可微服遁去,再作道理。」國書嘆曰:「吾以十萬強兵,敗於吳人之手,何面目還朝?」乃解甲沖入吳軍,為亂軍所殺。閭邱明伏於草中,亦被魯將州仇搜獲。夫差大勝齊師,諸將獻功,共斬上將國書公孫揮二人,生擒公孫夏閭邱明二人,即斬首訖,只單走了高無平陳逆二人,其他擒斬不計其數,革車八百乘,盡為吳所有,無得免者。夫差謂諸稽郢曰:「子觀吳兵強勇,視越何如?」郢稽首曰:「吳兵之強,天下莫當,何論弱越!」夫差大悅,重賞越兵,使諸稽郢先回報捷。齊簡公大驚,與陳恒闞止商議,遣使大貢金幣,謝罪請和。夫差主張齊魯復修兄弟之好,各無侵害,二國俱聽命受盟。夫差乃歌凱而回。史臣有詩曰:

    艾陵白骨壘如山,盡道吳王奏凱還。壯氣一時吞宇宙!隱憂誰想伏吳關?

  夫差回至句曲新宮,見西施謂曰:「寡人使美人居此者,取相見之速耳。」西施拜賀且謝。時值新秋,桐陰正茂,諒風吹至,夫差與西施登臺飲酒甚樂。至夜深,忽聞有眾小兒和歌之聲,夫差聽之。歌曰:

    桐葉冷,吳王醒未醒?梧葉秋,吳王愁更愁!

夫差惡之,使人拘群兒至宮,問:「此歌誰人所教?」群兒曰:「有一緋衣童子,不知何來,教我為歌,今不知何往矣。」夫差怒曰:「寡人天之所生,神之所使,有何愁哉?」欲誅眾小兒。西施力勸乃止。伯嚭進曰:「春至而萬物喜,秋至而萬物悲,此天道也。大王悲喜與天同道,何所慮乎?」夫差乃悅。在梧宮三日,即起駕還吳。吳王升殿,百官迎賀。子胥亦到,獨無一言。夫差乃讓之曰:「子諫寡人不當伐齊,今得勝而回,子獨無功,寧不自羞?」子胥攘臂大怒,釋劍而對曰:「天之將亡人國,先逢其小喜,而後授之以大憂。勝齊不過小喜也,臣恐大憂之即至也。」夫差慍曰:「久不見相國,耳邊頗覺清淨,今又來絮聒耶?」乃掩耳瞑目,坐於殿上。

"하늘이 장차 한 나라를 멸망시킬 때는 먼저 작은 기쁨을 선사하고 나중에 큰 우환을 내리는 법입니다. 제나라에 승리한 것은 작은 기쁨에 불과합니다. 신은 큰 우환이 닥쳐올까 두렵습니다."

頃間,忽睜眼直視久之,大叫:「怪事!」群臣問曰:「王何所見?」夫差曰:「吾見四人相背而倚,須臾四分而走,又見殿下兩人相對,北向人殺南向人。諸卿曾見之否?」群臣皆曰:「不見。」子胥奏曰:「四人相背而走,四方離散之象也。北向人殺南向人,為下賊上,臣弒君。王不知儆省,必有身弒國亡之禍。」夫差怒曰:「汝言太不祥,孤所惡聞!」伯嚭曰:「四方離散,奔走吳庭﹔吳國霸王,將有代周之事,此亦下賊其上,臣犯其君也。」夫差曰:「太宰之言,足啟心胸。相國耄矣,有不足採。」過數日,越王句踐率群臣親至吳邦來朝,并賀戰勝﹔吳庭諸臣,俱有饋賂。伯嚭曰:「此奔走吳庭之應也。」吳王置酒於文臺之上,越王侍坐,諸大夫皆侍立於側。夫差曰:「寡人聞之:『君不忘有功之臣,父不沒有力之子。』今太宰嚭為寡人治兵有功,吾將賞為上卿﹔越王孝事寡人,始終不倦,吾將再增其國,以酬助伐之功﹔於眾大夫之意如何?」群臣皆曰:「大王賞功酬勞,此霸王之事也。」於是子胥伏地涕泣曰:「嗚呼哀哉!忠臣掩口,讒夫在側,邪說諛辭,以曲為直。養亂畜奸,將滅吳國,廟社為墟,殿生荊棘。」夫差大怒曰:「老賊多詐,為吳妖孽,乃欲專權擅威,傾覆吾國,寡人以前王之故,不忍加誅,今退自謀,無勞再見!」子胥曰:「老臣若不忠不信,不得為前王之臣。譬如龍逢逢桀,比干逢紂,臣雖見誅,君亦隨滅,臣與王永辭,不復見矣。」遂趨出。吳王怒猶未息。伯嚭曰:「臣聞子胥使齊,以其子託於齊臣鮑氏,有叛吳之心,王其察之!」夫差乃使人賜子胥以「屬鏤」之劍。子胥接劍在手,嘆曰:「王欲吾自裁也!」乃徒跣下階,立於中庭,仰天大呼曰:「天乎,天乎!昔先王不欲立汝,賴吾力爭,汝得嗣位。吾為汝破楚敗越,威加諸侯。今汝不用吾言,反賜我死!我今日死,明日越兵至,掘汝社稷矣。」乃謂家人曰:「吾死後,可抉吾之目,懸於東門,以觀越兵之入吳也!」言訖,自刎其喉而絕。使者取劍還報,述其臨終之囑。夫差往視其屍,數之曰:「胥,汝一死之後,尚何知哉?」乃自斷其頭,置於盤門城樓之上﹔取其屍,盛以鴟夷之器,使人載去,投於江中,謂曰:「日月炙汝骨,魚鱉食汝肉,汝骨變形灰,復何所見!」屍入江中,隨流揚波,依潮來往,蕩激崩岸。土人懼,乃私撈取,埋之於吳山。後世因改稱胥山,今山有子胥廟。隴西居士有古風一篇云:

    將軍自幼稱英武,磊落雄才越千古﹔一旦蒙讒殺父兄,襄流誓濟吞荊楚。貫弓亡命欲何之?滎陽睢水空棲遲﹔昭關鎖鑰愁無翼,鬢毛一夜成霜絲。浣女沉溪漁丈死,簫聲吹入吳人耳﹔魚腸作合定君臣,復為強兵進孫子。五戰長驅據楚宮,君王含淚逃雲中﹔掘墓鞭屍吐宿恨,精誠貫日生長虹。英雄再振匡吳業,夫椒一戰棲強越﹔釜中魚鱉宰夫手,縱虎歸山還自嚙。姑蘇臺上西施笑,讒臣稱賀忠臣弔﹔可憐兩世輔吳功,到頭翻把屬鏤報!鴟夷激起錢塘潮,朝朝暮暮如呼號﹔吳越興衰成往事,忠魂千古恨難消!

"임금은 공이 있는 신하를 잊어서는 안 되고, 아비는 힘을 지닌 아들을 버려서는 안된다"
"내가 죽으면 나의 눈을 파내어 동문 위에 걸어두어라. 나는 월나라 군사가 오나라로 쳐들어오는 것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다."

  夫差既殺子胥,乃進伯嚭為相國。欲增越之封地,句踐固辭乃止。於是句踐歸越,謀吳益急。夫差全不在念,章益驕恣。乃發卒數萬,築邗城,穿溝,東北通射陽湖,西北使江淮水合,北達於沂,西達於濟。

太子友知吳王復欲與中國會盟,欲切諫,恐觸怒,思以諷諫感悟其父。清旦懷丸持彈,從後園而來,衣履俱濕,吳王怪而問之。友對曰:「孩兒適遊後園,聞秋蟬鳴於高樹,往而觀之,望見秋蟬趨風長鳴,自謂得所,不知螳螂超枝緣條,曳腰聳距,欲搏蟬而食之﹔螳螂一心只對秋蟬,不知黃雀徘徊綠陰,欲啄螳螂﹔黃雀一心只對螳螂,不知孩兒挾彈持弓,欲彈黃雀﹔孩兒一心只對黃雀,又不知旁有空坎,失足墮陷﹔以此衣履俱沾濕,為父王所笑。吳王曰:「汝但貪前利,不顧後患,天下之愚,莫甚於此。」

세자 우는 부왕 부차가 다신 중원의 제후국들과 회맹하려는 것을 알고 간절하게 간언을 올리려 했으니 부왕의 분노를 살까 두려워 은근히 풍자로 부왕을 깨닫게 하려 했다. 어느 날 이른 아침 세자 우는 탄궁과 탄환을 가지고 후원에서 나왔다. 세자의 옷과 신발이 모두 젖어 있는 것을 보고 오왕 부차가 이상하게 생각하고 연유를 물었다. 세자 우가 대답했다.

"소자가 후원으로 놀라 갔다가 높은 나무에서 매미가 우는 소리를 듣고 그것으로 가보았습니다. 밑에서 올려다보니 매미가 바람 속에서 길게 울고 있었습니다. 매미는 자신의 자리만 잘 잡았다고 생각했지 사마귀가 가지 너머로 기어오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사마귀는 허리를 길게 빼고 펄쩍 뛰어올라 매미를 잡아먹으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마귀는 매미를 노리느라 정신이 팔려 참새가 그늘 속에서 왔다 갔다 하며 자신을 쪼아 먹으려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참새는 사마귀를 노리는 데 정신이 쏠린 나머지, 소자가 탄궁을 들고 참새를 잡으려는 상황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또 소자는 참새를 잡으려는 일에 정신이 팔려서 바로 곁에 함정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발을 헛디뎌 함정에 빠졌고, 이 때문에 옷과 신발이 모두 젖어 아바마마의 비웃음을 사게 된 것입니다."
(장자 산목, 설원 정간)

"너는 눈앞의 이익만을 탐하다가 후환을 돌아보지 않았구나. 천하의 어리석음 중에서 이보다 더 심한 경우는 없을 것이다."

友對曰:「天下之愚,更有甚者。魯承周公之後,有孔子之教,不犯鄰國,齊無故謀伐之,以為遂有魯矣,不知吳悉境內之士,暴師千里而攻之。吳國大敗齊師,以為遂有齊矣,不知越王將選死士,出三江之口,入五湖之中,屠我吳國,滅我吳宮。天下之愚,莫甚於此!」吳王怒曰:「此伍員之唾餘,久已厭聞,汝復拾之,以撓我大計耶?再多言,非吾子也!」太子友悚然辭出。夫差乃使太子友同王子地,王孫彌庸守國,親帥國中精兵,由邗溝北上,會魯哀公於橐皋,會衛出公於發陽,遂約諸侯,大會於黃池,欲與晉爭盟主之位。

"노나라는 주공의 뒤를 이은 나라이고, 또 공자의 가르침이 베풀어진 나라여서 이웃 나라를 침범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제나라가 아무 까닭도 없이 노나라를 정벌하여 병탄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나라는 오나라가 국내의 모든 군사를 동원하여 천리 길을 치달려가 그들을 공격할 줄 몰랐습니다. 오나라는 제나라 군사를 크게 깨뜨리고 마침내 제나라를 병탄했습니다. 그러나 오나라는 월왕이 결사대를 뽑아 삼강 하구를 나서서 오호로 침입해 들어와 우리 오나라를짓밟고 그 궁전을 파괴하려는 걸 모르고 있습니다. 천하의 어리석음 중에서 이보다 심한 경우는 없습니다."

  越王句踐聞吳王已出境,乃與范蠡計議,發習流二千人,俊士四萬,君子六千人,從海道通江以襲吳。前隊疇無餘先及吳郊,王孫彌庸出戰,不數合,王子地引兵夾攻,疇無餘馬蹶被擒。次日,句踐大軍齊到。太子友欲堅守,王孫彌庸曰:「越人畏吳之心尚在,且遠來疲敝,再勝之,必走。即不勝,守猶未晚。」太子友惑其言,乃使彌庸出師迎敵,友繼其後。句踐親立於行陣,督兵交戰。陣方合,范蠡泄庸兩翼呼噪而至,勢如風雨。吳兵精勇慣戰者,俱隨吳王出征,其國中皆未教之卒,那越國是數年訓練就的精兵,弓弩劍戟,十分勁利,又范蠡泄庸俱是宿將,怎能抵當,吳兵大敗。王孫彌庸為泄庸所殺。太子友陷於越軍,衝突不出,身中數箭,恐被執辱,自刎而亡。越兵直造城下,王子地把城門牢閉,率民夫上城把守,一面使人往吳王處告急。句踐乃留水軍屯於太湖,陸營屯於胥閶之間,使范蠡焚姑蘇之臺,火彌月不息,其餘皇大舟,悉徙於湖中。吳兵不敢復出。

  再說吳王夫差與魯衛二君,同至黃池,使人請晉定公赴會,晉定公不敢不至。夫差使王孫駱與晉上卿趙鞅議載書名次之先後。趙鞅曰:「晉世主夏盟,又何讓焉?」王孫駱曰:「晉祖叔虞,乃成王之弟,吳祖太伯,乃武王之伯祖,尊卑隔絕數輩。況晉雖主盟,會宋會虢,已出楚下,今乃欲踞吳之上乎?」於是彼此爭論,連日不決。

忽王子地密報至,言:「越兵入吳,殺太子,焚姑蘇臺,見今圍城,勢甚危急。」夫差大驚。伯嚭拔劍砍殺使者,夫差問曰:「爾殺使人何意?」伯嚭曰:「事之虛實,尚未可知,留使者洩漏其語,齊晉將乘危生事,大王安得晏然而歸乎?」夫差曰:「爾言是也。然吳晉爭長未定,又有此報,孤將不會而歸乎?抑會而先晉乎?」王孫駱進曰:「二者俱不可。不會而歸,人將窺我之急,若會而先晉,我之行止,將聽命於晉﹔必求主會,方保無虞。」夫差曰:「欲主會,計將安出?」王孫駱密奏曰:「事在危急,請王鳴鼓挑戰,以奪晉人之氣。」夫差曰:「善。」

是夜出令,中夜士皆飽食秣馬,銜枚疾驅,去晉軍纔一里,結為方陳。百人為一行,一行建一大旗,百二十行為一面。中軍皆白輿,白旗,白甲,白羽之矰,望之如白茅吐秀,吳王親自仗鉞,秉素旌,中陣而立。左軍面左,亦百二十行。皆赤輿,赤旗,丹甲,朱羽之矰,一望若火,太宰嚭主之。右軍面右,亦百二十行。皆黑輿,黑旗,玄甲,烏羽之矰,一望如墨,王孫駱主之。帶甲之士,共三萬六千人。黎明陣定,吳王親執枹鳴鼓,軍中萬鼓皆鳴,鐘聲鐸聲,丁寧錞于,一時齊扣。三軍譁吟,響震天地。晉軍大駭,不知其故,乃使大夫董褐至吳軍請命。夫差親對曰:「周王有旨,命寡人主盟中夏,以縫諸姬之闕。今晉君逆命爭長,遷延不決,寡人恐煩使者往來,親聽命於藩籬之外,從與不從,決於此日!」董褐還報晉侯,魯衛二君皆在坐。董褐私謂趙鞅曰:「臣觀吳王口強而色慘,中心似有大憂,或者越人入其國都乎?若不許其先,必逞其毒於我﹔然而不可徒讓也,必使之去王號以為名。」趙鞅言於晉侯,使董褐再入吳軍,致晉侯之命曰:「君以王命宣布於諸侯,寡君敢不敬奉!然上國以伯肇封,而號曰吳王,謂周室何?君若去王號而稱公,惟君所命。」夫差以其言為正,乃歛兵就幕,與諸侯相見,稱吳公,先歃。晉侯次之,魯衛以次受歃。會畢,即班師從江淮水路而回。於途中連得告急之報,軍士已知家國被襲,心膽俱碎,又且遠行疲敝,皆無鬥志。吳王猶率眾與越相持,吳軍大敗。夫差懼,謂伯嚭曰:「子言越必不叛,故聽子而歸越王。今日之事,子當為我請成於越。不然,子胥『屬鏤』之劍猶在,當以屬子!」伯嚭乃造越軍,稽首於越王,求赦吳罪,其犒軍之禮,悉如越之昔日。范蠡曰:「吳尚未可滅也,姑許成,以為太宰之惠。吳自今亦不振矣。」句踐乃許吳成,班師而歸。(此周敬王三十八年事也。)

백비는 월나라 진영으로 가서 월왕 구천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오나라가 지은 죄에 대한 용서를 빌었다. 그리고 월나라가 지난날 오나라 군사에게 베풀었던 것처럼 이제 오나라가 월나라 군사들에게 위로의 잔치를 베풀겠다고 했다.

범여가 말했다. "오나라는 아직 멸망시킬 수는 없으니 잠시 강화를 허락하시고 오왕이 이번 강화를 태재 백비의 은덕이라고 생각하게 하십시오. 오나라는 이제 더 이상 국력을 떨칠 수 없습니다."

  明年,魯哀公狩於大野,叔孫氏家臣鉏商獲一獸,麕身牛尾,其角有肉,怪而殺之,以問孔子。孔子觀之曰:「此麟也!」視其角,赤紱猶在,識其為顏母昔日所繫,嘆曰:「吾道其終窮矣!」使弟子取而埋之。今鉅野故城東十里有土臺,廣輪四十餘步,俗呼為獲麟堆,即麟葬處。孔子援琴作歌曰:

    明王作兮麟鳳遊,今非其時欲何求?麟兮麟兮我心憂!

공자가 금을 끌어당겨 노래를 불렀다.
"밝은 임금 통치하면 기린 봉황 노니는데
지금은 때가 아닌데 무엇하러 나타났나?
기린이여! 기린이여! 내 마음 우울하네.

於是取《魯史》,自魯隱公元年,至哀公獲麟之歲,其二百四十二年之事,筆削而成《春秋》,與《易》、《詩》、《書》、《禮》、《樂》,號為「六經」。是年,齊右相陳恒知吳為越所破,外無強敵,內無強家,單單只礙一闞止,乃使其族人陳逆陳豹等,攻殺闞止,齊簡公出奔,陳恒追而弒之,盡滅闞氏之黨。立簡公弟驁,是為平公。陳恒獨相。孔子聞齊變,齋三日,沐浴而朝哀公,請兵伐齊,討陳恒弒君之罪。哀公使告三家,孔子曰:「臣知有魯君,不知有三家。」

陳恒亦懼諸侯之討,乃悉歸魯衛之侵地,北結好於晉之四卿,南行聘於吳越。復修陳桓子之政,散財輸粟,以贍貧乏,國人悅服。乃漸除鮑、晏、高、國諸家,及公族子姓,而割國之大半,為己封邑。又選國中女子,長七尺以上者,納於後房,不下百人,縱其賓客出入不禁,生男子七十餘人,欲以自強其宗。齊都邑大夫宰,莫非陳氏。此是後話。

진항..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산을 풀고 곡식을 나누줬다. 그러자 백성이 모두 기쁘게 복종하였다. 이후 점차 포씨, 안씨, 고씨, 국씨 가문 및 공족 가문을 제거하고 제나라의 절반을 갈라서 자신의 봉토로 삼았다. 뿐만 아니라 나라 안 여자들 중에서 키가 7척 이상 되는 사람 100여 명을 뽑아 뒷방에 들여놓고 빈객으로 오는 일가친척을 마음대로 출입하게 했다. 그렇게 해서 아들 70여명을 얻었다. 이는 모두 자신의 가문을 강성하게 하기 위한 수작이었다. 그러하여 제나라 도읍의 대부와 지방 읍재는 모두 진(陳)씨가 아닌 사람이 없게 되었다. 이것은 물론 뒷날의 이야기다.

** 第八十三回
是年,越王句踐探聽得吳王自越兵退後,荒於酒色,不理朝政,況連歲凶荒,民心愁怨,乃復悉起境內士卒,大舉伐吳。方出郊,於路上見一大鼃,目睜腹漲,似有怒氣,句踐肅然,憑軾而起。左右問曰:「君何敬?」句踐曰:「吾見怒鼃如欲鬥之士,是以敬之。」軍中皆曰:「吾王敬及怒鼃,吾等受數年教訓,豈反不如鼃乎?於是交相勸勉,以必死為志。國人各送其子弟於郊境之上,皆泣涕訣別,相語曰:「此行不滅吳,不復相見!」句踐復詔於軍曰:「父子俱在軍中者,父歸﹔兄弟俱在軍中者,兄歸﹔有父母無昆弟者,歸養﹔有疾病不能勝兵者,以告,給醫藥糜粥。」軍中感越王愛才之德,歡聲如雷。行及江口,斬有罪者,以申軍法,軍心肅然。

이해에 월왕 구천은 오나라에서 월나라를 퇴각시켜준 뒤 오왕 부차가 주색에 빠져 조정을 돌보지 않는다는 소식을 탐지했다. 게다가 오나라에서는 해마다 흉년이 들어 민심이 원망으로 가득차 있는 상태였다. 구천은 다시 나라 안의 병사들을 불러일으켜 대규모로 오나라를 정벌했다.
곧바로 군사를 이끌고 교외로 나서다가 길에서 큰 개구리를 만났다. 그 개구리는 눈을 부릅뜨고 배를 크게 부풀린 채 마치 화를 내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월왕 구천은 숙연한 자세로 수레 앞의 가로나무를 잡고 일어서서 경의를 표했다. 좌우 장수들이 무엇 때문에 경의를 표하는지 묻자, 구천이 답했다.
"내가 보기에 분노한 개구리가 마치 싸움에 임하는 전사와 같아서 경의를 표한 것이오."
"우리 대왕마마께서 분노한 개구리에게까지 경의를 표하시는데, 여러 해 동안 훈련을 받은 우리가 개구리만 못해서야 되겠는가?"
그들은 서로 격려하며 필사의 투지를 불태웠다.

"부자가 함께 군대에 동원된 자가 있으면 아버지는 돌아가고, 형제가 함께 동원된 자가 있으면 형은 돌아가라. 또 부모를 모실 형제가 없는 자는 돌아가 부모를 부양하라. 그리고 몸이 아파 무기를 들 수 없는 자도 사정을 이야기하면 의약과 미음을 제공해 줄 것이다."

吳王夫差聞越兵再至,亦悉起士卒,迎敵於江上。越兵屯於江南,吳兵屯於江北。越王將大軍分為左右二陣,范蠡率右軍,文種率左軍。君子之卒六千人,從越王為中陣。明日,將戰於江中。乃於黃昏左側,令左軍銜枚,遡江而上五里,以待吳兵,戒以夜半鳴鼓而進。復令右軍銜枚,踰江十里,只等左軍接戰,右軍上前夾攻,各用大鼓,務使鼓聲震聞遠近。吳兵至夜半,忽聞鼓聲震天,知是越軍來襲,倉皇舉火,尚未看得明白,遠遠的鼓聲又起,兩軍相應,合圍攏來。夫差大驚,急傳令分軍迎戰。不期越王潛引私卒六千,金鼓不鳴,於黑暗中,逕沖吳中軍。此時天色尚未明,但覺前後左右中央,盡是越軍,吳兵不能抵當,大敗而走。句踐率三軍緊緊追之,及於笠澤。復戰,吳師又敗。一連三戰三北,名將王子姑曹胥門巢等俱死。夫差連夜遁回,閉門自守。句踐從橫山進兵,即今越來溪是也。築一城於胥門之外,謂之越城,欲以困吳。越王圍吳多時,吳人大困。伯嚭託疾不出。夫差乃使王孫駱肉袒膝行而前,請成於越王,曰:「孤臣夫差,異日得罪於會稽,夫差不敢逆命,得與君王結成以歸。今君王舉兵而誅孤臣,孤臣意者,亦望君王如會稽之赦罪!」句踐不忍其言,意欲許之。范蠡曰:「君王早朝晏罷,謀之二十年,奈何垂成而棄之?

월왕이 오나라를 포위하고 오랜 시간이 흐르자 오나라 사람들은 심한 곤경에 빠졌다. ..
결국 부차는 왕손 낙을 시켜 어깨를 드러낸 채 ㅜ무릎걸음으로 기어가서 월왕에게 강화를 요청하게 했다. 

"미천한 신하 부차는 지난날 회계에서 대왕께 큰 죄를 지었습니다. 당시에 부차는 감히 대왕의 명령을 거역하지 못하고 대왕과 우호를 다진 뒤 대왕을 원나라로 돌아가게 했습니다. 지금 대왕께서 군사를 일으켜 미천한 신하를 토벌하시니 이 미천한 신하에게도 대왕을 회계에서 용서해준 것과 같은 은덕을 베풀어주시기 바랍니다."

"대왕마마께선 아침 일찍 일어나 저녁 늦게 주무시면서 20년 동안 복수를 도모해왔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강화를 받아들이시고 복수를 팽개치려 하십니까?"

遂不准其行成。吳使往返七次,種蠡堅執不肯。遂鳴鼓攻城,吳人不能復戰。種蠡商議欲毀胥門而入。其夜望見吳南城上有伍子胥頭,巨若車輪,目若耀電,鬚髮四張,光射十里。越將士無不畏懼,暫且屯兵。至夜半,暴風從南門而起,疾雨如注,雷轟電掣,飛石揚沙,疾於弓弩。越兵遭者,不死即傷,船索俱解,不能連屬。范蠡文種情急,乃肉袒冒雨,遙望南門,稽顙謝罪。良久,風息雨止,種蠡坐而假寐,以待天明夢見子胥乘白馬素車而至,衣冠甚偉,儼如生時。開言曰:「吾前知越兵必至,故求置吾頭於東門,以觀汝之入吳。吳王置吾頭於南門,吾忠心未絕,不忍汝從吾頭下而入,故為風雨,以退汝軍。然越之有吳,此乃天定,吾安能止哉?汝如欲入,更從東門,我當為汝開道,貫城以通汝路。」二人所夢皆同,乃告於越王,使士卒開渠,自南而東。將及蛇匠二門之間,忽然太湖水發,自胥門洶湧而來,波濤衝擊,竟將羅城蕩開一大穴,有鱄䱐無數,隨濤而入。范蠡曰:「此子胥為我開道也!」遂驅兵入城。其後因穴為門,名曰鱄䱐門,因水多葑草,又名葑門。其水名葑溪。此乃子胥顯靈古跡也。

한참 뒤에 바람이 잦아들고 비가 그치자 범여와 문종은 앉은 채로 선잠이 들어 여명을 맞이하게 되었다. 두 사람의 꿈에 오자서가 백마가 끄는 흰 수레를 타고 나타났다. 의관은 매우 위엄이 있었고 그 생생한 모습이 마치 살아있는 듯했다. 오자서가 입을 열었다.

  夫差聞越兵入城,伯嚭已降,遂同王孫駱及其三子,奔於陽山。晝馳夜走,腹餒口飢,目視昏眩,左右挼得生稻,剝之以進。吳王嚼之,伏地掬飲溝中之水,問左右曰:「所食者,何物也?」左右對曰:「生稻。」夫差曰:「此公孫聖所言,『不得火食走章皇』也。」王孫駱曰:「飽食而去!前有深谷,可以暫避。」夫差曰:「妖夢已准,死在旦夕,暫避何為?」乃止於陽山,謂王孫駱曰:「吾前戮公孫聖,投於此山之巔,不知尚有靈響否?」駱曰:「王試呼之。」夫差乃大呼曰:「公孫聖!」山中亦應曰:「公孫聖。」三呼而三應。夫差心中恐懼,乃遷於干隧。句踐率千人追至,圍之數重。夫差作書,繫於矢上,射入越軍。軍人拾取呈上,種蠡二人同啟,視其詞曰:「吾聞『狡兔死而良犬烹。』敵國如滅,謀臣必亡,大夫何不存吳一線,以自為餘地?」文種亦作書繫矢而答之曰:「吳有大過者六:戮忠臣伍子胥,大過一也﹔以直言殺公孫聖,大過二也﹔太宰讒佞,而聽用之,大過三也﹔齊晉無罪,數伐其國,大過四也﹔吳越同壤而侵伐,大過五也﹔越親戕吳之前王,不知報仇,而縱敵貽患,大過六也。有此六大過,欲免於亡,得乎?昔天以越賜吳,吳不肯受。今天以吳賜越,越其敢違天之命!」夫差得書,讀至第六款大過,垂淚曰:「寡人不誅句踐,忘先王之仇,為不孝之子,此天之所以棄吳也!」王孫駱曰:「臣請再見越王而哀懇之。」夫差曰:「寡人不願復國,若許為附庸,世世事越,固所願矣。」駱至越軍,種蠡拒之不得入。句踐望見吳使者泣涕而去,意頗憐之,使人謂吳王曰:「寡人念君昔日之情,請置君於甬東,給夫婦五百家,以終王之世。」

월왕 구천은 군사 1000명을 이끌고 오왕 부차를 추격하여 여러 겹으로 그를 포위했다. 오왕 부차는 서찰 한 통을 써서 화살 끝에 매달아 월나라 군영으로 쏘아 보냈다. .. 문종과 범려가 개봉해보니..

"교활한 토끼를 잡고 나면 영리한 사냥개는 삶아서 먹는다고 하오. 적국이 멸망하면 모사는 반드시 죽는다는 뜻이오. 대부들께선 어찌하여 우리 오나라에 한 가닥 활로를 열어주어 뒷날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으시오?"

문종이 답장을 보냈다.

"오나라는 여섯 가지 큰 잘못을 저질렀소. 충신 오자서를 죽인 것이 큰 잘못의 하나요, 직언을 했다고 공손성을 죽인 것이 큰 잘못의 둘이요, 태재 백비의 참소와 아첨을 들어준 것이 큰 잘못의 셋이오, 죄 없는 제나라와 진나라를 자주 정벌한 것이 큰 잘못의 넷이요, 오나라와 월나라는 같은 땅에 있는데도 침략하고 정벌했으니 큰 잘못의 다섯이요, 월나라가 오나라의 선왕을 죽였는데도 복수는 할 줄 모르고 마음대로 적을 석방하여 후환을 남겼으니 이것이 큰 잘못의 여섯이 되는 것이오. 이처럼 여섯 가지 큰 잘못을 저지르고도 지금 멸망을 면하려고 하다니 그것이 가능한 일이겠소? 지난날 하늘은 월나라를 오나라에 하사했지만 오나라는 받지 않았소. 지금은 하늘이 오히려 오나라를 우리 월나라에 하사하고 있소, 월나라가 어찌 감히 하늘의 명령을 어길 수 있겠소?"

夫差含淚而對曰:「君王幸赦吳,吳亦君之外府也。若覆社稷,廢宗廟,而以五百家為?臣,孤老矣,不能從編氓之列,孤有死耳!」越使者去,夫差猶未肯自裁。句踐謂種蠡曰:「二子何不執而誅之?」種蠡對曰:「人臣不敢加誅於君,願主公自命之!天誅當行,不可久稽。」句踐乃仗「步光」之劍,立於軍前,使人告吳王曰:「世無萬歲之君,總之一死,何必使吾師加刃於王耶?」夫差乃太息數聲,四顧而望,泣曰:「吾殺忠臣子胥公孫聖,今自殺晚矣!」謂左右曰:「使死者有知,無面目見子胥公孫聖於地下,必重羅三幅,以掩吾面!」言罷,拔佩劍自刎。王孫駱解衣以覆吳王之屍,即以組帶自縊於傍。句踐命以侯禮葬於陽山,使軍士每人負土一蔂,須臾,遂成大冢。流其三子於龍尾山,後人名其里為吳山里。詩人張羽有詩嘆曰:

    荒臺獨上故城西,輦路淒涼草木悲。廢墓已無金虎臥,壞牆時有夜烏啼﹔採香徑斷來麋鹿,響屧廊空變黍離﹔欲弔伍員何處所?淡煙斜月不堪題!

楊誠齋《蘇臺弔古》詩云:

    插天四塔雲中出,隔水諸峰雪後新,道是遠瞻三百里,如何不見六千人?

胡曾先生詠史詩云:

    吳王恃霸逞雄才,貪向姑蘇醉綠醅,不覺錢塘江上月,一宵西送越兵來。

元人薩都刺詩云:

    閶門揚柳自春風,水殿幽花泣露紅,飛絮年年滿城郭,行人不見館娃宮。

唐人陸龜蒙詠西施云:

    半夜娃宮作戰場,血腥猶雜宴時香﹔西施不及燒殘蠟,猶為君王泣數行。

  再說越王入姑蘇城,據吳王之宮,百官稱賀。伯嚭亦在其列,恃其舊日周旋之恩,面有德色。句踐謂曰:「子,吳太宰也,寡人敢相屈乎?汝君在陽山,何不從之?」伯嚭慚而退。句踐使力士執而殺之,滅其家,曰:「吾以報子胥之忠也!

句踐撫定吳民,乃以兵北渡江淮,與齊、晉、宋、魯諸侯,會於舒州,使人致貢於周。時周敬王已崩,太子名仁嗣位,是為元王。元王使人賜句踐袞冕、圭璧、彤弓、弧矢,命為東方之伯。句踐受命,諸侯悉遣人致賀。其時楚滅陳國,懼越兵威,亦遣使修聘。句踐割淮上之地以與楚,割泗水之東,地方百里以與魯,以吳所侵宋地歸宋。諸侯悅服,尊越為霸。越王還吳國,遣人築賀臺於會稽,以蓋昔日被棲之恥。置酒吳宮文臺之上,與群臣為樂,命樂工作《伐吳》之曲,樂師引琴而鼓之。其詞曰:

    吾王神武蓄兵威,欲誅無道當何時?大夫種蠡前致詞:吳殺忠臣伍子胥,今不伐吳又何須?良臣集謀迎天禧,一戰開疆千里餘。恢恢功業勒常彝,賞無所吝罰不違。君臣同樂酒盈巵。

臺上群臣大悅而笑,惟句踐面無喜色。范蠡私嘆曰:「越王不欲功歸臣下,疑忌之端已見矣!」次日,入辭越王曰:「臣聞『主辱臣死。』向者,大王辱於會稽,臣所以不死者,欲隱忍成越之功也。今吳已滅矣,大王倘免臣會稽之誅,願乞骸骨,老於江湖。」越王惻然,泣下沾衣,言曰:「寡人賴子之力,以有今日,方思圖報,奈何棄寡人而去乎?留則與子共國,去則妻子為戮!蠡曰:「臣則宜死,妻子何罪?死生惟王,臣不顧矣。」是夜,乘扁舟出齊女門,涉三江,入五湖。至今齊門外有地名蠡口,即范蠡涉三江之道也。次日,越王使人召范蠡,蠡已行矣。越王愀然變色,謂文種曰:「蠡可追乎?」文種曰:「蠡有鬼神不測之機,不可追也。」種既出,有人持書一封投之。種啟視,乃范蠡親筆。其書曰:

    子不記吳王之言乎?「狡兔死,走狗烹﹔敵國破,謀臣亡。」越王為人,長頸鳥喙,忍辱妒功﹔可與共患難,不可與共安樂。子今不去,禍必不免!

문대 위의 신료들은 모두 마음껏 기뻐하며 웃음꽃을 피웠다. 그러나 월왕 구천만은 얼굴에 기쁜 기색이 없었다. 범려는 몰래 탄식하며 중얼거렸다.

"월왕은 신하들에게 공로를 돌리려 하지 않고, 의심하고 시기하는 마음을 벌써 드러내는구나!"

범려는 다음 날 월왕에게 나아가 벼슬을 내놓으며 말했다.

"신이 듣건데 '임금이 치욕을 당하면 신하는 죽어야 한다(主辱臣死)'고 합니다. 지난날 대왕마마께서 회계에서 치욕을 당할 때 신이 죽지 않은 까닭은 은인자중하며 월나라를 다시 일으켜 새우려 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오나라는 이미 사라졌으니, 회계에서 죽었어야 할 신의 죄를 용서해주신다면 이 해골을 끌고 돌아가 강호에서 노년을 보내고 싶습니다."

월왕은 마음이 처연해졌다.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려 옷자락을 적셨다.
"과인은 경의 힘에 의지하여 오늘을 맞이했소, 이제 바야흐로 그 은덕에 보답할 생각을 하고 있는데 어찌하여 과인을 버리고 떠나려는 것이오? 이곳에 머물면 경과 나라를 함께 다스리겠지만 떠난다면 경의 처자식을 모두 죽일 것이오!"

문종이 조정을 나서자 어떤 사람이 서찰 한 통을 그에게 전해주었다.

"대부께선 지난번 오왕의 말을 기억하지 못하시오? '교활한 토끼가 죽으면 사냥개를 삶아 먹고, 적국이 망하면 모사는 죽는다'라고 했소. 월왕은 목이 길고 새 부리 같은 입을 갖고 있소. 치욕을 참고 공로를 다투며 환난은 함께할 수 있지만 안락은 함께할 수 없소. 대부께서 지금 떠나지 않으면 틀림없이 참화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오."

文種看罷,欲召送書之人,已不知何往矣。種怏怏不樂,然猶未深信其言,嘆曰:「少伯何慮之過乎?」過數日,

句踐班師回越,攜西施以歸。越夫人潛使人引出,負以大石,沉於江中,曰:「此亡國之物,留之何為?」後人不知其事,訛傳范蠡載入五湖,遂有「載去西施豈無意?恐留傾國誤君王」之句。按范蠡扁舟獨往,妻子且棄之,況吳宮寵妃,何敢私載乎?又有言范蠡恐越王復迷其色,乃以計沉之於江,此亦謬也。羅隱有詩辨西施之冤云:

    家國興亡自有時,時人何苦咎西施!西施若解亡吳國,越國亡來又是誰?

  再說越王念范蠡之功,收其妻子,封以百里之地,復使良工鑄金,象范蠡之形,置之座側,如蠡之生也。

  卻說范蠡自五湖入海,忽一日,使人取妻子去,遂入齊。改名曰鴟夷子皮,仕齊為上卿。未幾,棄官隱於陶山,畜五牝,生息獲利千金,自號曰陶朱公。後人所傳《致富奇書》,云是陶朱公之遺術也。其後吳人祀范蠡於吳江,與晉張翰,唐陸龜蒙為「三高祠」。宋人劉寅有詩云:    人謂吳癡信不虛,建崇越相果何如?千年亡國無窮恨,只合江邊祀子胥。

범여는 오호를 출발하여 바다로 들어갔다. 어느 날 몰래 사람을 보내 처자식을 데려와서 다 같이 제나라로 갔다. 그곳에서 이름을 차이지피로 바꾸고 제나라의 상경 벼슬을 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벼슬을 버리고 도산에 은거하여 다섯 가지 가축을 길로 번식에 성공해 천긍의 이익을 남기고 스스로 도주공이라고 불렀다. 후세 사람들이 전한 치부기서가 바라 도주공이 남긴 저술이라고 한다.

句踐不行滅吳之賞,無尺土寸地分授,與舊臣疏遠,相見益稀。計倪佯狂辭職,曳庸等亦多告老,文種心念范蠡之言,稱疾不朝。越王左右有不悅文種者,譖於王曰:「種自以功大賞薄,心懷怨望,故不朝耳。」越王素知文種之才能,以為滅吳之後,無所用之,恐其一旦為亂,無人可制,欲除之,又無其名。其時魯哀公與季、孟、仲三家有隙,欲借越兵伐魯,以除去三家,乃借朝越為名,來至越國。句踐心虞文種,故不為發兵,哀公遂死於越。

월왕 구천은 오나라를 멸망시킨 뒤에도 논공행상을 하지 않은 채 한 뼘의 땅도 나누어주지 않아 옛 신하들과 관계가 소원해졌고 얼굴 보는 일조차 더욱 드물어졌다.

계여는 미치광이를 가장하고 관직에서 물러났고 예용 등도 늙음을 핑계로 벼슬을 내놓았다. 문종도 병을 핑계로 조정에 나가지 않았다. 그때 월왕의 좌우 측근 중에 문종을 미워하는 자가 그를 참소하였다.
"문종은 자신이 큰 공을 세웠는데도 상이 박하다고 생각하고 원망을 품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조정에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再說越王忽一日往視文種之疾,種為病狀,強迎王入。王乃解劍而坐,謂曰:「寡人聞之:『志士不憂其身之死,而憂其道之不行。』子有七術,寡人行其三,而吳已破滅,尚有四術,安所用之?」種對曰:「臣不知所用也。」越王曰:「願以四術,為我謀吳之前人於地下可乎?」言畢,即升輿而去。遺下佩劍於座。種取視之,劍匣有「屬鏤」二字,即夫差賜子胥自剄之劍也。種仰天嘆曰:「古人云『大德不報。』吾不聽范少伯之言,乃為越王所戮,豈非愚哉!」復自笑曰:「百世而下,論者必以吾配子胥,亦復何恨!」遂伏劍而死。越王知種死,乃大喜,葬種於臥龍山,後人因名其山曰種山。葬一年,海水大發,穿山脅,冢忽崩裂,有人見子胥同文種前後逐浪而去。今錢塘江上,海潮重疊,前為子胥,後乃文種也。髯翁有《文種贊》曰:    忠哉文種,治國之傑!三術亡吳,一身殉越。不共蠡行,寧同胥滅,千載生氣,海潮疊疊。
句踐在位二十七年而薨,周元王之七年也。其後子孫,世稱為霸。

"과인이 듣기로 '지사는 자신의 죽음을 걱정하지 않고 자신의 도가 행해지지 않는 것을 걱정한다'고 하오. 경에게는 일곱 가지 방책이 있다고 했는데 과인이 그중에서 세 가지를 써서 오나라를 멸망시켰소. 그런데도 아직 네 가지 방책이 남아 있으니, 경은 그것을 어디에 쓸 작정이오?"
문종이 말했다. "신은 쓸 곳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뭘왕이 말했다.
"나를 위해 지하에 가서 그것을 오나라 선왕들을 물리치는 데 사용해줄 수 있겠소?"

월왕은 말을 마치고 수레를 타고 가버렸다. 자리에는 그가 풀어놓은 칼이 놓여있었다. 문종이 그것을 들고 자세히 보니 촉루(屬鏤)라는 두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오왕 부차가 오자서에게 자결하라고 하사했던 칼이었다. 문종을 하늘을 우러러 탄식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큰 은덕은 보답 받을 수 없다(大德不報)'더니, 내가 범려의 말을 듣지 않아 오늘 월왕에게 죽임을 당하게 되었구나! 이 어찌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
"백세 후에 논자들은 틀림없이 나를 오자서에 비견할 것이니 이제 다시 무슨 여한이 있겠는가?"

지금도 전단강에 조수가 겹겹이 밀어닥치면 앞의 파도는 오자서라 하고 뒤의 파도는 문종이라고 한다.

  話分兩頭。卻說晉國六卿,自范中行二氏滅後,止存智、趙、魏、韓四卿。智氏荀氏因與范氏同出於荀,欲別其族,乃循智罃之舊,改稱智氏,時智瑤為政,號為智伯。四家聞田氏弒君專國,諸侯莫討,於是私自立議,各擇便據地,以為封邑。晉出公之邑,反少於四卿,無可奈何。就中單表趙簡子名鞅,有子數人,長子名伯魯,其最幼者,名無恤,乃賤婢所生。有善相人者,姓姑布,名子卿,至於晉,鞅召諸子使相之。子卿曰:「無為將軍者。」鞅嘆曰:「趙氏其滅矣!」子卿曰:「吾來時遇一少年在途,相從者皆君府中人,此得非君之子耶?」鞅曰:「此吾幼子無恤,所出甚賤,豈足道哉?」子卿曰:「天之所廢,雖貴必賤﹔天之所興,雖賤必貴。此子骨相,似異諸公子,吾未得詳視也。君可召之。」鞅使人召無恤至。子卿望見,遽起拱立曰:「此真將軍矣!」鞅笑而不答。他日悉召諸子,叩其學問,無恤有問必答,條理分明,鞅始知其賢。乃廢伯魯而立無恤為適子。一日,智伯怒鄭之不朝,欲同趙鞅伐鄭。鞅偶患疾,使無恤代將以往。智伯以酒灌無恤,無恤不能飲。智伯醉而怒,以酒斝投無恤之面,面傷出血。趙氏將士俱怒,欲攻智伯。無恤曰:「此小恥,吾姑忍之。」智伯班師回晉,反言無恤之過,欲鞅廢之。鞅不從。無恤自此與智伯有隙。趙鞅病篤,謂無恤曰:「異日晉國有難,惟晉陽可恃,汝可識之。」言畢遂卒。無恤代立,是為趙襄子。(此乃周貞定王十一年之事。)時晉出公憤四卿之專,密使人乞兵於齊魯,請伐四卿。齊田氏,魯三家,反以其謀告於智伯。智伯大怒,同韓康子虎、魏桓子駒、趙襄子無恤,合四家之眾,反伐出公。出公出奔於齊。智伯立昭公之曾孫驕為晉君,是為哀公。自此晉之大權,盡歸於智伯瑤。瑤遂有代晉之志,召集家臣商議。畢竟智伯成敗如何,且看下回分解。

"하늘이 가로막으면 귀한 사람도 반드시 천하게 되고, 하늘이 흥하게 하면 천한 사람도 반드시 귀하게 되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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