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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과 세상살이/지혜로운삶

막말의 추억

by 변리사 허성원 2023. 4. 25.

2019년 4월 25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
4년만에 다시 보아도 아릿한 추억이다.
이 친구가 은퇴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조만간 전화라도 한 번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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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 유감..

대학 때 한 친구에게 두 번 다시 보지 말라고 절교를 선언한 적이 있다.
그러고 나서 이내 서로 군대를 어긋나게 다녀오고 졸업하여 각자 다른 곳에 취직하다 보니 만날 기회도 화해할 기회도 없이 세월이 흘러버렸다.

졸업후 30년쯤 지나서 우연히도 어느 골프장 사우나에서 만났다. 그저 반가운 마음에 몇 마디 의례적인 인사를 했다. 그 친구는 한 외국계 대기업의 고위 임원이 되어 있었다. 몇 마디 인사의 끝에 그 친구가 묻는다. 그 때 자기에게 왜 그랬냐고. 내가 그렇게 모질게 절교를 선언한 이유를 묻는 것이다. 그 친구에게는 지금까지도 지울 수 없는 큰 상처였던 것이다.

하~ 그런데.. 나는 그 이유.. 절교를 선언하게 된 이유를 전혀 기억해 낼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도..
고등학교 동기이면서 대학에서도 같은 과에 다니던 그 친구와는 항상 티격태격 잘 다투었다. 성격적으로 잘 어울리지 못했던 모양이다. 특히 그 친구의 좀 짓꿋은 장난 습관이 가끔 내 취약한 부분을 자극하는 경우가 많았었는데, 아마도 그때는 내가 제대로 열을 받아버렸던 모양이다.

그 사우나에서의 조우 이후에는 만날 일이 없었다.
'옛날 그렇게 된 이유는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이제 서로 잊어버리고 가끔 얼굴이나 보자'라는 말을 나누고 사우나에서 헤어졌었다. 그 뒤 만나보려고 다른 친구들과 엮는 등 기회를 만들어서 연락을 취해봤지만, 해외근무 등 수긍이 갈만한 이유들로 인해 자리가 만들어지지 못했다.

나는 지금도 단호한 판단이나 결정의 언어를 섣부르게 써버리고는 후회를 한다. 거래 관계에서나 심지어는 가족들에게도.. 가끔 오랜 전에 근무했던 옛 직원들을 만나서도 그런 지적을 듣는다.

막말의 힘은 정말 무섭다. 그리고 질기다. 40년의 세월이 흘러 그 원인은 까맣게 잊어버렸어도 내뱉어진 그 말의 영향력은 아직도 당사자들의 가슴에 시퍼렇게 살아 숨쉬고 있으니..
좀더 너그럽고 여유있어지자고 항상 다짐한다. 아무리 뜻이 맞지 않는 경우라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 상황이 바뀌었을 때 상대가 건너오거나 내가 건너갈 수 있는 작은 다리는 반드시 남겨놓아야 한다고.

카톡에도 이렇게 써다닌다. "너그러움은 나이듦의 훈장이다."

오늘 내가 속한 CEO단체에서 그 친구가 있는 회사를 견학하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