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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천리마리더십

[허성원 변리사 칼럼]#107 벗어나라, 지금 익숙한 그곳에서

by 변리사 허성원 2023. 4. 19.

벗어나라, 지금 익숙한 그곳에서

 

지하 동굴에서 500일 동안 생활하다 나온 사람에 관한 최근 기사가 있었다. 스페인 산악인 베아트리스 플라미니는, 극도의 고립이 인간의 신체와 정신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연구하기 위해, 202111월부터 그라나다에 있는 지하 70동굴에 헬멧, 라이트, 60, 필기구 등만 가지고 들어가, 식량 공급을 받으며 일체 문명과의 접촉을 끊고 혼자 생활하다 나왔다.

그녀는 독서, 글쓰기, 그림그리기 등을 하며 계획적으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나는 내 자신과 아주 잘 지냈다", "힘든 순간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매우 아름다운 순간도 있었다", "지금 닥친 그 순간을 사는 게 비결이었다"고 말했다. 두어 달 만에 시간 감각을 잃을 정도로 동굴 생활에 완벽히 적응하여 실험이 끝나고도 그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고 하며, "꿈이 있었고 그 꿈을 이룬다면 기분이 어떻겠냐"면서 그 체험이 가져다준 행복과 희열을 숨기지 않았다. 도대체 어떤 깨달음이 있었기에 그토록 좋았을까. 그런 희열을 나도 체험하고 싶다.

동굴 체험 이야기를 들으니,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가 떠오른다. 플라톤의 국가론에서 소크라테스는 글라우콘에게 인간의 본성이 교육에 의해 어떻게 계발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동굴의 비유를 들었다. 지하 동굴에 죄수들이 산다고 가정한다. 그들은 어렸을 때부터 묶여 꼼짝 못하고 안쪽 벽면만 바라볼 수 있다. 그들 뒤쪽에는 횃불이 타오르고 있고 사람들이 그 앞을 온갖 물품들을 치켜든 채 지나가며 벽면에 그림자를 만들고, 떠들기도 한다. 그러면 죄수들은 그 그림자가 실체이며 말도 한다고 여길 것이다.

그 중 죄수 한 사람을 풀어준다. 그는 실제 사물과 그림자를 비교하며 큰 혼란을 느끼게 된다. 특히 횃불을 바라보면 눈이 부셔 제대로 보이지 않으니, 오히려 벽면의 그림자가 더 명확하다 여길 것이다. 더 나아가 그를 동굴 밖으로 끌어내어 햇빛을 보게 한다. 눈이 부셔 사물들을 전혀 보지 못하다가, 처음에는 그림자가 눈에 편할 것이고, 이어서 물에 비친 영상, 실물의 순으로 보고, 밤의 별이나 달, 결국엔 태양까지 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곤 태양 때문에 낮밤과 사계절이 있다는 것, 태양이 모든 가시영역을 다스리며 그동안 동굴에서 봤던 모든 일의 원인도 태양이 제공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죄수는 자신의 과거와 그 동안의 지식이 얼마나 허망한지 깨달을 것이다. 스스로에 대해선 대견하게 생각하겠지만, 한편으론 과거 동굴의 동료들에 대해선 가엾게 여길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이 다시 동굴로 내려간다면 어떻게 될까? 그의 눈은 곧 어둠에 익숙해지겠지만, 전처럼 그림자를 잘 식별할 수가 없어 동료들로부터 비웃음을 사는가 하면, 나갔다 온 죄로 눈을 버렸다고 비난과 구박을 받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현실이 동굴의 감옥이라면, 지상은 감각을 넘어 지적 혹은 영적으로 사물의 본질이나 진리를 인지할 수 있는 지성의 영역이라고 하며, 그 지성 영역에서 깨달은 관념 혹은 진리의 근원을 이데아라 부른다. 이데아는 노자나 장자가 말하는 도()와 상통하는 개념일 것으로 생각된다. 동굴을 나가 이데아를 본 사람은 이제 어찌해야 하는가. 소크라테스는, 그들은 동굴로 다시 돌아와 옛 동료들과 함께 하여야 한다고 한다. 그들은 뛰어난 자질을 타고난 선택된 사람들이기에, 동굴 속의 어리석음에 머물고 있는 자들을 이끄는 리더가 되어 공공의 선에 이바지하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여하튼, 죄수와 플라리니는 모두 동굴 생활을 하였다. 다만 동굴로 들어갔는지 혹은 거기로부터 나왔는지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동굴 벽면의 그림자를 실재라 믿었던 죄수는 바깥에 나와 세상의 실체와 진리를 깨달았고, 플라미니는 동굴에 들어가 홀로 자신의 내면을 관조하고 성찰함으로써 자기 나름의 깨달음을 얻은 듯하다. 어느 쪽이든 모두 크게 깨우친 바가 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변화다. 자신만의 동굴을 만들어 스스로 걸어 들어가든, 혹은 지금 자신이 갇힌 각자 나름의 동굴을 빠져나오든, 지금 있는 그곳을 벗어나야만 비로소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빛의 세계나 어둠의 세계 어느 쪽으로든 옮겨갈 때 혼란은 불가피하고, 그것은 그릇된 시각을 갖고 있거나 진실을 외면하고 있었기 때문이며, 그 혼란을 견딜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육의 진정한 의미라고 하였다. 변화와 깨달음에 반드시 수반되는 혼란을 기피하여 현실의 그곳에 계속 머물러 있다가는, 결국 그 삶에 의해 배신당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의 삶을 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삶이 우리를 버리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부단히 현실을 벗어나는 노력해야 한다. 그러니 벗어나라, 지금 익숙한 그곳에서.

 

** KSI TV의 이수부 대표께서 오디오 파일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허변칼럼_벗어나라지금익숙한그곳에서.wav
14.64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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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자유도 사랑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