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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천리마리더십

[허성원 변리사 칼럼]#105 <아테나이9> 아킬레우스의 방패

by 변리사 허성원 2023. 4. 9.

<아테나이9> 아킬레우스의 방패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에는 아킬레우스의 방패에 관해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온다.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가 그의 방패를 만들며 장식들을 새겨 넣는 과정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특히 그 장식들은 그저 멈춰있는 조형이 아니라, 동영상처럼 풍부한 스토리로 실제 움직이는 것처럼 설명하고 있다.

아킬레우스에게는 본래 훌륭한 갑옷 등 무구가 있었다. 아가멤논과의 갈등으로 출전을 거부하여 그리스 군에게 큰 위기가 닥쳤을 때, 절친한 친구이자 시동인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우스의 참전을 설득하는 데 실패하자, 그의 무구를 빌려 입고 전장에 나갔다가 헥토르에게 죽임을 당한다.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에 분노한 아킬레우스는 참전하려 하지만, 그의 무구는 이미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으로 헥토르에게 빼앗겨버렸다. 이에 그의 어머니인 여신 테티스가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를 찾아가 부탁하고, 그녀에게 신세를 진 적이 있던 헤파이스토스는 그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여 무구 제작에 착수한다.

헤파이스토스는 먼저 다섯 겹의 가죽으로 만든 크고 튼튼한 방패를 만들고 가장자리에는 번쩍번쩍 빛나는 세 겹의 테를 두른 다음 은으로 된 멜빵을 달았다. 그리고 표면을 장식한다. 가운데에 대지와 하늘, 바다, 해와 달 및 온갖 별자리들을, 그 바깥에 두 개의 도시를 새겼다.

한 도시에서는 결혼 잔치가 벌어졌다. 휘황한 횃불 아래 사람들과 신부들이 도성 안으로 들어가고 있고, 흥겨운 음악에 맞춰 젊은이들이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춘다. 그 도시의 다른 쪽에서는 재판이 열렸다. 시비가 벌어져 죽은 사람의 보상 문제를 서로 다투는데, 백성들은 두 편으로 나뉘어 각기 응원한다. 원로들이 신성한 돌에 앉아 차례차례 판결을 내리며, 그들 한가운데에 놓인 황금은 가장 공정한 판결을 내리는 자에게 주어진다.

다른 도시에서는 도시를 포위한 쪽과 포위당한 쪽이 대치한 전쟁이 벌어져 있다. 포위한 쪽에서 도시의 재물을 나누자고 하였으나, 포위당한 자들은 듣지 않고 저항한다. 그들은 매복하여 적들의 가축 떼가 오는지 정탐하다가, 가까이 왔을 때 달려들어 목자들을 죽이고 가축 떼를 재빨리 약탈한다. 그러자 포위하고 있던 자들이 달려와 맞서 싸운다. 그들 속에 죽음의 여신이 섞여 있다가 죽은 자와 부상당한 자를 가리지 않고 끌고 다닌다.

농부들이 소를 몰아 밭갈이하는 모습도 있다. 밭가는 사람이 밭둑에 이를 때마다 한 사람이 달콤한 포도주를 따뤄 준다. 그러면 그들은 다시 포도주를 마시기 위해 얼른 다시 돌아오려 한다. 왕의 영지에서 곡식을 베는 사람들과 아름다운 포도밭에서 노래하며 일하는 사람들의 장면도 들어있다. 소 떼와 그들을 기르는 목자들도 있는데, 사자 두 마리가 황소 한 마리를 붙잡아 끌고 가고, 젊은이들이 개들과 함께 황소를 뒤좇는다. 사자들이 황소를 잡아먹고 있지만 목자들과 개들은 감히 덤비지 못하고 안타까워한다.

무도장도 교묘히 만들어 넣었다. 총각들과 그들의 구혼 선물을 받는 처녀들이 서로 손목을 잡고 춤을 춘다. 모두 멋진 옷을 입고 있고, 처녀들은 아름다운 화관을 쓰고 총각들은 은띠에 매달린 황금 칼을 차고 있다. 능숙한 걸음걸이로 경쾌하게 원을 그리며 돌다가 때로는 줄지어 서로 마주 달려가곤 한다. 군중들이 둘러서서 구경하고, 한가운데에서는 곡예사가 노래를 지휘하며 재주넘기를 한다. 방패의 맨 바깥쪽 가장자리에는 오케아노스 강이 만들어져 있어 그 위대한 힘이 방패를 보호한다.

이상, 아킬레우스의 방패 제작에 관한 일리아스의 해당 부분을 요약하였다. 방패 하나에 대지와 바다, 우주의 존재들을 표현하고 거기다 인간의 다양한 삶을 세세히 담았다. 그 정교함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특히 전쟁과 평화, 노동과 축제, 갈등과 화합, 삶과 죽음과 같은 서로 대립되는 삶의 가치들까지 세세히 나타내었다. ‘둘레에 공포가, 그 안에 불화, 무력, 소름 끼치는 추격이, 그리고 중앙에는 무시무시한 괴물 고르곤의 머리가 새겨져 있는, 아테나 여신의 방패 아이기스에 비하면 너무도 인간적이다.

방패에 왜 그토록 정교히 삶의 이야기를 표현했을까? 호메로스가 희망하는 이상향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창과 칼이 사람을 죽이는 죽음의 도구라면, 방패는 그들을 막아 사람을 살리는 삶의 도구이다. 그 귀한 삶의 도구에 인간의 삶의 모습들을 최대한 아름답게 새겨 두어, 죽음의 무기가 그 삶의 고귀함을 감히 침범하지 못하길 바라는 염원일 거라 나름 추측해본다. 마치 삶의 빛이 죽음의 어둠을 막을 수 있다고 소리쳐 외치는 듯하다.

 

아킬레우스의 방패. 안젤로 몬티첼리 작. 1820년. The shield's design as interpreted by Angelo Monticelli , from Le Costume Ancien ou Moderne , ca. 1820.
헤파이스토스로부터 아킬레우스의 무기를 받는 테티스. Thetis Receiving the Weapons of Achilles from Hephaestus by Anthony van Dyck , 1630~32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만드는 헤파이스토스. Hephaistos Forging Achilles&nbsp; Armor, by Giulio Romano, ca. 1492-1546, from the Sala di Troia, Palazzo Ducale, Mantua, Italy.

 

** 일리아드 제 18권 484~617  (천병희 역 일리아스에서 발췌)

그는 먼저 크고 튼튼한 방패를 만들었는데 사방에 교묘한 장식을 새겨 넣고 가장자리에는 번쩍번쩍 빛나는 세 겹의 테를 두르고 은으로 된 멜빵을 달았다. 방패 자체는 다섯 겹이었는데 그는 그 안에 훌륭한 솜씨로 여러 가기 교묘한 형상들을 만들었다.
거기에 그는 대지와 하늘과 바다와 지칠줄 모르는 태양과 만월(滿月)을 만들었다. 그리고 하늘을 장식하고 있는 온갖 별들을, 플레이아데스와 휘아데스와 오리온의 힘과 사람들이 짐수레라고도 부르는 큰곰을 만들었다. 큰곰은 같은 자리를 돌며 오리온을 지켜보는데 이 별만이 오케아노스의 목욕에 참가하지 않는다.

거기에 그는 또 필멸의 인간들의 아름다운 두 도시를 만들었다. 한 도시에서는 결혼식과 잔치들이 벌어졌는데 사람들이 휘황한 횃불 아래 신부들을 방으로 인도하여 도성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고, 축혼가가 높이 울려퍼졌다. 젊은이들은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었는데 그들 사이에서는 피리와 포르밍크스 소리가 드높았다. 여인들은 각자 자기 집 문간에 서서 감탄하고 있었다.

한편 백성들은 회의장에 함께 모여 있었다. 그곳에서는 시비가 벌어져 두 사람이 죽은 사람의 피값 때문에 서로 다투고 있었다. 한 사람은 백성들에게 내보이며 대사를 다 치렀다고 주장했고, 한 사람은 아무것도 받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재판관 앞에서 시비를 가리자고 했다. 백성들은 두 편으로 나뉘어 각기 제 편을 성원했고 전령들은 백성들을 제지했다. 한편 원로들은 반들반들 깍은 돌들 위에 신성한 원을 그리고 앉아 목소리가 우렁찬 전령들에게서 손에 홀을 받아 들었다. 그들은 홀을 들고 벌떡 일어나 차례차례 판결을 내렸다. 그 한가운데에는 황금 두 탈톤이 놓여 있었는데 그들 중에 가장 공정한 판결을 내리는 자에게 줄 것이었다.

또 하나의 도시 주위에서는 양군이 무구들을 번쩍이며 대치하고 있었다. 포위한 자들에게는 두 가지 계략이 마음에 들었으니, 한 가지는 도시를 약탈하자는 것이었고 또 한 가지는 사랑스런 도시 안의 모든 재물을 양분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포위당한 자들은 듣지 않고 매복을 위해 무장했다. 성벽 위에는 이를 지키기 위하여 사랑하는 아내들과 어린아이들이 서있었고 노인들도 그들과 함께했다. 그러나 나머지는 밖으로 나갔고, 아레스와 팔레스 아테나가 앞장섰다. 이 둘은 황금으로 만들어졌고 또한 황금 옷을 입고 있었다. 무구들을 갖춘 그들의 모습은 신들이 그러하듯 아름답고 커서 사방에서 뚜렷이 보였으나 그들 발아래 백성들은 작은 편이었다. 그리하여 매복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된 장소에 이르자 그들은 번쩍이는 청동으로 무장한 채 그곳에 자리 잡으로 그곳은 모든 가축들이 물을 마시는 냇가였다. 이어서 그들은 백성들 중에서 두 명의 정탐꾼을 멀리 내보내 작은 가축 떼와 뿔이 구부러진 소 떼가 오는지 살피도록 했다. 얼마 안 있어 가축 떼가 왔고 두 명의 목자가 목적(牧笛)을 불며 따르고 있었는데 그드른 간계를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복병들은 이들을 보자 달려들어 소 떼와 털이 흰 아름다운 양 떼를 재빨리 약탈해 갔고 목자들을 모두 죽였다. 그러자 포위하고 있던 자들은 회의장 앞아 앉아 있다가 소 떼 사이에 큰 소란이 이는 것을 듣고 지체 없이 날랜 전차에 올라 급히 달려 곧 그곳에 닿았다. 그리하여 그 둘은 강둑에서 맞서 싸웠고 청동 날이 박힌 창으로 서로 상대편을 쳤다. 그들 속에는 에리스와 소란과 잔혹한 죽음의 여신이 섞여 있었는데 그녀는 갓 부상당한 자를 산 채로 붙잡는가 하면 부상당하지 않은 자도 붙잡았고 또 죽은 자의 발을 잡고 혼전 속을 끌고 다녔다. 그리하여 죽음의 여신이 어깨에 걸치고 있던 옷은 사람의 피로 붉게 물들었다. 그들은 마치 살아 있는 사람들처럼 어우러져 싸웠고 서로 상대편 전사자들의 시신들을 끌고 갔다.

거기에 그는 또 부드러운 묵정밭을 넣었는데 세 번이나 갈아엎은 넓고 기름진 밭이었다. 그 안에서 여러 농부들이 소를 몰고 이리저리 돌고 있었다. 그들이 밭의 경계에 이르러 돌아서려고 할 때마다 한 남자가 다가가 각자에게 달콤한 포도주가 든 잔을 손에 쥐어주곤 했다. 그러면 그들은 깊숙한 묵정밭의 경계로 다시 돌아오기를 열망하며 밭고랑들을 따라 돌아서곤 했다.

거기에 그는 또 왕의 영지(領地)를 넣었는데 그곳에서는 일꾼들이 손에 예리한 낫을 들고 곡식을 베고 있었다. 밭이랑을 따라 곡식이 줄지어 한 아름씩 땅에 쓰러지면 묶는 자들이 그것을 새끼로 한 단씩 묶었다. 세 명의 묶는 자들이 곁에서 서 있었다. 한편 아이들은 베는 자들의 뒤를 따라가며 곡식을 주워 모아 한 아름씩 안고 와서 그것을 묶는 자들에게 쉴 새없이 건네주었다. 왕은 그들 사이에서 홀을 들고 흐뭇한 마음으로 밭이랑 가에 말없이 서 있었다. 저멀리 참나무 아래서는 전령들이 제물로 바친 큰 황소를 손질하고 있었고, 여인들은 일꾼들의 식사를 위해 흰 보릿가루를 듬뿍 뿌리고 있었다.

거기에 그는 또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달린 아름다운 황금 포도밭을 넣었는데 포도송이들은 검고 덩굴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모두 은 말뚝이었다. 그는 그 가에다 검푸른 법랑 도랑을 두르고, 또 그 주위에는 주석 울타리를 쳤다. 포도밭으로 들어가는 길은 하나밖에 없었는데 포도 따는 자들은 수확기가 되면 이 길로 해서 들어갈 수 있었다. 처녀 총각들은 신이 나서 엮은 바구니에 꿀맛 같은 과일을 담아 나르고 있었다. 그들 한가운데에서 한 소년이 소리가 낭랑한 포르밍크스로 유쾌한 가락을 뜯으며 섬세한 목소리로 감미로운 리노스의 노래를 불렀고, 나머지는 그 가락에 발을 맞춰 노래하고 환호하며 춤추고 있었다.

거기에 그는 또 뿔이 우뚝한 소 떼를 만들었다. 소들은 더러는 황금으로 또 더러는 주석으로 만들어졌는데, 크게 울부짖으며 외양간에서 뛰쳐나와 물결치는 갈대밭 옆 속삭이는 강가에 있는 풀밭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황금으로 된 목자 넷이 그들을 따르고 걸음 잰 개 아홉 마리가 또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사자 두 마리가 맨 앞에 가던 소 떼에게 덤벼들어 크게 울부짖는 황소 한 마리를 붙잡았고 황소는 끌려가며 크게 울었다. 그래서 개떼와 젊은이들이 황소를 뒤좇았다. 사자들은 큰 황소의 가죽을 찢고는 내장과 검은 피를 삼키고 있었다. 한편 목자들은 그들의 날랜 개들을 부추겨 덤벼들게 해보았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개들은 감히 사자들을 물지 못하고 가까이 다가가 짖다가는 도로 물러서곤 했다.

거기에 유명한 절름발이 신은 또 풀밭을, 아름다운 골짜기에 있는 흰 양 떼의 큰 풀밭과 농장들과 지분을 인 오두막들과 양 우리들을 만들었다.
거기에 절름발이 신은 또 무도장을 교묘히 만들었는데 다이달로스가 머리를 곱게 땋은 아리아드네를 위해 전에 넓은 크노소스에서 만들어준 것과 같은 것이었다. 무도장 안에는 총각들과 구혼 선물로 소를 받는 처녀들이 서로 손목을 잡고 춤추고 있었다. 처녀들은 고운 린네르 의상을 입었고, 총각들은 기름을 먹여 윤이 나는 곱게 짠 윗옷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처녀들은 아름다운 화관을 쓰고 있었고, 총각들은 은띠에 매달린 황금 칼을 차고 있었다. 때때로 그들은 마치 도공(陶工)이 자기 손에 맞는 녹로 옆에 앉아 그것이 잘 도는지 시험할 때와도 같이, 능숙한 걸음걸이로 경쾌하게 원을 그리며 돌았고 또 때때로 줄지어 서로 마주 달려가곤 했다. 많은 군중들이 둘러서서 이 사랑스런 춤을 재미나게 구경하고 있었다. 그리고 두 곡예사가 노래를 지휘하며 그들 한가운데에서 재주넘기를 하고 있었다.

거기에 그는 또 튼튼하게 만든 방패의 맨 바깥쪽 가장자리를 따라 오케아노스 강의 위대한 힘을 넣었다.
그는 크고 튼튼한 방패를 만들고 나서 아킬레우스를 위해 불빛보다 더 반짝이는 가슴받이를 만들었고, 또 그를 위해 관자놀이에 맞는 아름다운 정교하고 묵직한 투구를 만들어 그 위에 황금술을 달았다. 그는 또 그를 위해 유연한 주석으로 정강이받이를 만들었다.
유명한 절름발이 신은 무구들을 모두 만든 다음 그것들을 들고 가 아킬레우스의 어머니 앞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그녀는 헤파이스토스의 번쩍이는 무구들을 들고 눈 덮인 올림포스에서 매처럼 뛰어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