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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천리마리더십

[허성원 변리사 칼럼]#103 당해도 싸다?

by 변리사 허성원 2023. 3. 24.

당해도 싸다?

 

학폭 이야기로 시끄럽지만, 우리 학창 시절엔 폭력이 예사였다. 선생들의 무지막지한 체벌도 일상이었고, 친구끼리의 주먹질 싸움도 많았다. 나는 공부도 어중간하고 힘도 약한데다 성질마저 뾰족한 편이라 누가 건드리면 버르르 대드니 이놈저놈들이 즐겨 집적거렸다. 하도 맞고 다니는 내 꼴에 속이 상할 대로 상한 엄마가 한번은 '맞지만 말고 제발 좀 때리고 와봐라. 뒷감당은 내가 할 테니.'라는 말까지 하셨다. 맞은 서러움에다 죄스러움마저 더해졌다.

고등학교 때 친구 몇 명과 중국 식당에 간 적이 있다. 가끔 골방에서 약간의 술 담배로 잠시 어른 흉내를 함께 내보곤 했던 여러 면에서 나처럼 어중간한 녀석들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재수가 없었다. 옆방에 주먹 자랑하는 교내 모임이 있었다. 선배가 그 무리 중에 있던 같은 반의 한 녀석에게 "쟤들 교육 좀 시켜라."라고 지시했다. 우리는 그 동기 놈에게서 한참 주먹질로 교육(?)을 받고서야, 억울함과 분노로 배를 채우고 그곳을 나왔다.

돌아와 하숙집 건넛방의 형에게 그 분한 이야기를 했다. 복싱을 해서 가끔 내게 글로브를 끼워주고 스파링을 빙자하며 가벼운 폭행을 즐기기도 했던 직장인 형이다. 그 형이 가르쳐준 주옥같은 싸움의 정석, '절대 눈을 감지 마라.' '복싱은 때리는 싸움이 아니라 피하는 싸움이다.' 등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내 말을 들은 그 형은 내 뒷머리를 치며 말했다. "쓸데없이 그딴 데나 돌아다니니, 그런 꼴을 당해도 싸다."

'당해도 싸다.' 이 말을 얼마 전 술자리에서도 들었다. 이태원 희생자들을 두고 '그 복잡한 곳에 놀러가서 희한한 복장으로 술 마시고 몰려다니다 지들끼리 밀고 자빠져 깔려 죽은 놈들'이라고 한다. 이런 사이코패스적인 소리를 스스럼없이 내뱉는 그에게 만정이 떨어졌다. 처음 뉴스를 접했을 때 내가 아내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우리 아들도 군에 가지 않았다면 저기 갔을 수도 있잖아?“ 얼마나 가슴 서늘한 상상이었던가. 누가 감히 저런 참사에서 자유롭다고 큰소리칠 수 있단 말인가.

지나고 나서 그 때 좀 더 쏘아붙이지 못한 게 후회되었다. 일단 '논다'는 것에 대해서라도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놀러가서 죽으면, 어울려 술 마시다 죽으면, 죽어도 싼가? 노는 게 죈가? 옛날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절, 성장 지상주의 시절에야 놀면 죄스런 마음이 들었었지. 이제는 시대가 변했다고. 일하고 돈을 버는 목적이 뭔가. 놀기 위해서야. 놀지 않고 벌기만 하는 건 먹기만 하고 싸지 않는 것과 같은 거야. 놀지 않으면 삶도 없고 행복도 없어. 친구도 연애도 없고, 결혼도 출산도 없다고. 결국 나라도 없고 미래도 없는 거야."

잘 놀 수 있는 사회가 옳은 사회다. 애들이든 누구든 이 땅 어디서나 마음 놓고 편히 놀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국가의 존재이유다. 놀다가 당한 불행을 그저 당사자의 불운이나 책임으로 떠넘겨서야 되겠나. 희생자를 비난하기보다 근원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찾아 해결해야 사회가 한 뼘이라도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개인들이 어찌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는 없는가, 누구 책임인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어떤 사회적, 정치적, 제도적 노력이 필요한가, 남은 사람들의 아픔은 어찌할 것인가 등을 챙기고 조치하는 것이 이 사회의 의무다. 그런 일이 또 일어나도 여전히 희생자를 비난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당해도 싸다'라는 말은 참 고약하다. 전형적인 피해자 비난의 언어이다. 피해자를 비난하면서, 한편으로 가해자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동시에 그의 비난받을 짓을 면죄한다. 이태원 희생자에게 하필 거길 왜 갔냐고, 강간 피해자에게 왜 그따위로 입고 다녔냐고, 맞은 자에게는 왜 맞을 짓을 했냐고 비겁하게 질책해대는 짓이 바로 그거다. 이런 접근 방식은 문제의 원인을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에게 덮어씌워 2차 가해를 하는 비열한 짓이다.

피해자 비난은 또한 약자는 당해도 싸다는 강자의 논리에 기초한 것이다. 바로 약육강식의 정글 룰이며, 지옥의 강자존이다. 강자존은 돌로 돌을 치는 것과 같아서, 결국 모두의 파멸로 귀결된다. 절대 강자는 존재할 수 없고 누구나 상대적으로는 누군가의 약자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약자는 부끄럽지 않다. 비난은 약자를 억압하는 강자를 향하여야 한다.

'당해도 싸다 주의자'들이 우리 과거 역사에 관련하여 요즘 종종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가 힘이 없어, 준비가 부족하여 일본에 당했다고 하며, 우리 자긍심을 누르고 가해자를 두둔한다. 한 세기도 더 이전에 이 나라를 팔아먹은 망령들의 요설을 버젓이 재현하고 있다. 이런 짓은 역사청산의 절호의 기회를 놓친 선대의 뼈아픈 실패 탓이니, '당해도 싸다'는 말은 이때 써야 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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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맞지만 말고 니도 좀 때리고 와봐라. 뒷감당은 내가 할테니'
라는 엄마의 소원을 풀어드린 적이 딱 한 번 있다.

중2 때 키가 작은 나는 맨 앞 줄에 앉았는데, 맨 뒷줄의 덩치 큰 한 녀석이 유독 나를 많이 괴롭혔다. 건드리면 버르르 대드는 나의 반응이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교실을 들락거릴 때마다 내 옆을 지나쳐야 하는데, 그럴 때마다 머리를 세게 치고 지나갔다. 환장할 노릇이었다. 종종 내 물건을 집어가서 놀리기도 일쑤였다. 

하루는 일과 수업이 끝나고 나가면서 또 내 머리를 주먹으로 치고 간다. 이번에 너무 아파서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화가 나 대들었는데 역시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일방적으로 당하는 그 분한 상황에 순간 눈앞에 어른거리는 그 녀석의 손가락이 보여 그것을 냅다 물었다. 꽉 물고는 놓지 않았다.

그 녀석은 처음엔 나를 주먹으로 때리며 겁박하며 욕을 해대었지만, 시간이 좀 지나자 제발 놓아달라고 사정했다. 그런데 난 놓아줄 수 없었다. 놓아주면 또 때리려 들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 녀석은 아파서 엉엉 울며 사정하고, 나는 놓아줄 수도 계속 그러고 있을 수도 없어 그저 물고만 있었다. 아마 한 시간은 족히 그러고 있었던 거 같다. 그러다 선생님이 나타나고, 그제서야 풀어줬다.

그리고 엄마도 불려오셨다. 내가 봐도 그 놈 손가락 상태가 심각했다. 물린 자국은 다른 곳보다 더 부풀어 올랐고 손가락은 전체적으로 두배는 커진 것 같았다. 색깔도 붉고 푸르고 하얗고 거무튀튀한 게 희한했다. 엄마는 선생님에게 연신 미안하다 잘못했다 하면서 그 놈을 병원에 데리고 갔다.

그 와중에 나를 힐끗바라보는 엄마의 눈빛에는, 내 마음인지는 몰라도, 대견스러움이 뭍어있는 듯했다. 
그날 이후 내 별명은 한동안 도사견이 되었다. 그리고 아무도 날 건드리는 놈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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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집에서 주먹질로 나를 교육(?)을 했던 그 친구는
고등학교 졸업 후 근 30년도 더 지나고 나서 우연히 동기회 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다.
심각한 건강의 위기를 넘겼다고 했다는데, 그래선지 눈빛에 다소 힘이 없었다.

모임 자리에서 좀 시간이 흐른 후에, 고등학교 2학년 때의 그 일을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전혀 기억을 못했다.
좀 당황스러웠지만, 따져볼 수도 그럴 필요도 없는 일이라 더이상 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친구는 진심인 듯했다. 그리고 '그랬다면 미안하다'고 하였다.

그 친구는 기억을 못하지만, 나는 그때까지 그리고 지금까지 그 일을 조금도 잊지 않고 있다.
친구에게 아무 이유도 없이 일방적으로 매질을 당한 그 굴욕적이고도 억울하고 분통터지는 일을 어찌 잊겠는가.
비록 그 친구 개인에게는 이제 어떤 감정도 남아 있지 않다.
그렇더라도 내가 저항할 수 없는 상황에 몰려 곱다시 폭력을 당해야만 했던 그 상황만은 결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이처럼 피해자의 기억과 가해자의 기억이 전혀 다를 수 있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기억도 그러하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겠다. 
가해자인 일본은 한반도를 침략한 기억을 쉬이 잊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침략을 당한 우리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상처다.
또 다시 당하지 않으려면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이기도 하다.
혹 누군가 잊으려 들면 반드시 다그쳐서 다시 일깨우게 만들어야 하는 과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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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과거는 잊고 미래만 보고 가자는 자들이 있다.
그런데 과거라는 것은 역사의 이정표와 같은 것이다.
잘못된 미래를 피하고 올바른 미래로 안내하는 표식 말이다. 
과거라는 이정표를 묻거나 없애버리면 이정표가 없는 길을 가야한다.
갈길을 잃고 방황할지 모른다.
그러나 아무 곳으로나 무작정 나아가다 보면, 뜻하지 않게 과거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
그래서 "과거를 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한다.
그러니 어찌 과거를 가벼이 잊을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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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1081780.html

 

일본에 책임 안 묻고…윤 “우리가 변화 준비 못해 국권상실”

윤 대통령 ‘삼일절 기념사’로 본 역사인식‘식민지배, 내부 책임론’ 주장 떠올리게 해

ww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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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v.daum.net/v/20221011083848407

 

정진석 "조선, 안에서 썩어 망해.. 日, 조선과 전쟁한 적 없어"

[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욱일기 한반도’를 언급한 것에 대해 ‘조선은 안에서 썩어 문드러져 망했다’고 반박했다. 정 위

v.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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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본에게 더 이상 새로운 사과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이미 누차 행한 사과에 부합하는 행동을 요구할 뿐입니다.
 
_ 노무현 <한·일 관계에 대한 특별 담화문> _ 2006.4.25  

https://athenae.tistory.com/1914

 

노무현 담화문 _ 한일관계, 독도 관련 _ 20060425

우리는 일본에게 더 이상 새로운 사과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이미 누차 행한 사과에 부합하는 행동을 요구할 뿐입니다. _ 노무현 _ 2006.4.25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독도는 우리 땅입니다. 그냥 우

www.dotomar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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