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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천리마리더십

[허성원 변리사 칼럼]#102 <아테나이7> 비운의 카산드라

by 변리사 허성원 2023. 3. 13.

비운의 카산드라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예지력은 축복이다. 그러나 그 예언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면 그건 저주가 된다. 혈육들의 비참한 죽음과 나라의 파멸을 예지하고, 그것을 막아보려 절규하며 사람들을 설득하여도 그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그래서 미리 보았던 참혹을 곱다시 현실로 겪어야 한다면, 그보다 더 가혹한 불행이 있겠는가. 그 비운의 주인공이 카산드라이다.

카산드라는 트로이의 마지막 왕 프리아모스와 헤카베의 딸이다. '일리아스'에서 아프로디테에 비유될 정도의 뛰어난 미모를 가진 그녀는 예언의 신 아폴론의 사랑을 받아 미래를 내다보는 힘을 얻는다. 하지만 그녀는 아폴론의 사랑을 거부하여 배신한다. 아폴론은 그 보복으로 예지력은 남겨두되 설득력을 빼앗아버렸다. 그녀의 입을 막는 대신 사람들의 귀를 막아버렸으니, 어떤 진실로도 누구도 설득할 수 없게 되었다.

트로이 전쟁도 애초 막을 수 있었다. 헬레네를 유혹하여 전쟁을 유발시킨 파리스는 원래 태어나자마자 버려졌다. 트로이 왕비 헤카베가 임신 중에 트로이가 불타는 꿈을 꾸어 해몽해보니, 파리스로 인해 트로이가 멸망할 것이라 한다. 그래서 나라를 걱정한 프리아모스 왕은 지시로 그는 이다 산에 버려졌다. 그러나 파리스는 곰의 젖을 먹고 살아나 멋진 목동으로 성장하였다. 그러다 우연히 파리스가 제우스 신전으로 피신하였을 때, 마침 그곳에 있던 카산드라가 그를 알아보았다. 왕은 버렸던 아들을 되찾은 것을 기뻐하며 맞아들인다.

카산드라는 파리스의 위험을 예견하였다. 그래서 그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간청했지만, 프리아모스 왕은 그 말을 듣지 않고 거두었다. 파리스가 형 헥토르와 함께 스파르타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을 때에도 그 여행이 트로이의 재앙이 될 것이라고 소리치며 말렸다. 하지만 그것 역시 막지 못했다. 결국 파리스는 재앙의 원인인 헬레네를 데려왔고 그것이 파멸의 시작이었다.

트로이 목마의 위험에 대해서도 카산드라는 예지하였다. 그리스 군은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트로이 성을 함락시키지 못하자, 오디세우스의 계략에 따라 커다란 목마를 만들고 그 안에 군사들을 매복시켜 성 앞에 세워놓고는 퇴각하는 척하였다. 카산드라는 그 불길함을 경고하며 극구 말렸다. 하지만 트로이 사람들은 그 말을 무시하고 목마를 전리품이라 여겨 성안으로 옮기고 만다. 밤이 되자 목마의 문이 열리고 병사들이 쏟아져 나와 성을 유린하였다. 그리고 트로이는 멸망하였다.

카산드라의 비극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아가멤논의 전리품이 되어 아르고스 궁전에 이른 카산드라는 아가멤논의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가 일으킬 무시무시한 재앙을 예견하고 그것을 절규로 경고한다. 하지만 그 절규는 자신의 죽음을 애도하는 마지막 노래가 되었다. 클리타임네스트라와 그 정부에 의해 그녀는 아가멤논과 함께 싸늘한 시신으로 변하고 말았다. 아이스퀼로스의 '아가멤논'에서 클리타임네스트라는 그녀의 죽음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여기 그 노예 여인도 누워 있소. 그이의 충실한 첩이었고, 함선 위에서도 그이와 함께 잠자리를 했던 그 예언자 여인도 그의 곁에 누워 있단 말이오. .. 그녀는 백조처럼 스스로 자신의 마지막 죽음을 알리는 노래를 부르고 나서 죽은 것이라오."

카산드라의 고통이 어떠하였을지 생각해보라. 미래의 진실을 알고 이를 외쳐도 공감을 얻지 못하는 그녀의 고통을. 그녀는 절규하였다. "아아, 아아, 이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여~ 참다운 예언의 고통이 또다시 진군가를 부르며 사나운 기세로 엄습하는구나!"

그래서 카산드라 증후군이라는 정신심리학적인 용어가 생겼다. 자신의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호소하여도, 다른 사람 특히 가족 등 가까운 사람의 공감이나 믿음을 얻지 못할 때 겪게 되는 정서적 불편 상황을 의미한다. 이는 불면증, 우울증, 의욕상실 등의 증상으로 나타난다. 특히 상대방이 공감능력이 열악한 아스퍼거 증후군의 사람일 경우, 카산드라 증후군의 증상은 더 심하게 된다.

종종 카산드라 증후군의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은 발명가들이다. 남보다 앞선 예지력과 창의력으로 미래 유용하게 될 발명을 창안해내고 그것을 야심차게 세상에 내놓지만, 부푼 기대와 달리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 많은 창의적인 발명이 그렇게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불타는 트로이처럼 사멸해가고, 발명가들은 예지의 고통을 외롭고 고통스럽게 감내하여야 한다. 하지만 리더들이라면 그 발명가 카산드라의 말에 애써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들의 예지와 창작 중에 조직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보장하는 귀중한 미래의 역량이 가끔 숨어있기 때문이다.

 

 

불타는 트로이 성 앞의 카산드라. Cassandra ; Evelyn De Morgan ;(1898, London)
겁탈하려는 아이아스에 아테나 여신상을 붙잡고 저항하는 카산드라. Ajax draggs Cassandra away from the statue of the goddess at which she had taken refuge. Lycurgus Painter, Red figure pottery, c. 370-360 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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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산드라는 아르고스 성에 이르러 마차에 내리자 아폴론 동상을 만난다. 그녀는 흠칫 놀라며 부르짓는다.
"아폴론이여, 아폴론이여! 모든 길의 신이여. 그러나 나에겐 오직 죽음의 신이여, 나를 또 한 번 파괴하는 군요."
Apollo, Apollo!
God of all ways, but only Death's to me,
Once and again, O thou, Destroyer named,
Thou hast destroyed me, thou, my love of o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