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덕(券五 貴德)_설원(說苑) _ 유향(劉向)
** 역문은 동양고전DB에서, 원문은 說苑에서 가져옴.
** 이 篇에서 말하는 德은 統治者가 涵養해야 할 政治의 德을 말한다. 통치자는 時世의 어려움을 슬퍼하며 백성의 疾苦를 가엽게 여기는 마음으로 백성을 사랑하는 덕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德政을 行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대략 여덟 가지로 요약하여 제시하고 있다.
첫째 백성의 衣食을 해결해야 함, 둘째 백성을 사랑하되 보답을 구하지 않음, 셋째 遺亡을 당한 사람이 없이 모든 백성이 즐거워야 함, 넷째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됨, 다섯째 백성들과 즐거움을 함께 누려야 됨, 여섯째 刑罰을 너그럽게 시행해야 함, 일곱째 백성들의 농사철을 빼앗지 않아야 됨, 여덟째 貪慾을 경계하고 榮辱을 알아 소박하고 성실한 마음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끝으로 智伯이 멸망한 교훈을 제시하여 경계함으로써 德의 貴함을 천명하였다.
1. 聖人之於天下百姓也,其猶赤子乎
聖人之於天下百姓也,其猶赤子乎!饑者則食之,寒者則衣之;將之養之,育之長之;惟恐其不至於大也。詩曰:「蔽芾甘棠,勿剪勿伐,召伯所茇。」傳曰:自陝以東者周公主之,自陜以西者召公主之。召公述職當桑蠶之時,不欲變民事,故不入邑中,舍于甘棠之下而聽斷焉,陜間之人皆得其所。是故後世思而歌誄之,善之,故言之;言之不足,故嗟嘆之;嗟嘆之不足,故歌詠之。夫詩思然後積,積然後滿,滿然後發,發由其道而致其位焉;百姓嘆其美而致其敬,甘棠之不伐也,政教惡乎不行!孔子曰:「吾於甘棠,見宗廟之敬也。」甚尊其人,必敬其位,順安萬物,古聖之道幾哉!
聖人은 천하의 백성에 대하여 마치 어린아이를 대하는 것과 같이 한다. 굶주린 사람은 밥을 먹여주고 추운 사람은 옷을 입혀주며, 보살피고 살게 하며 길러주고 성장시켜서 長大하게 되지 못할까 걱정한다.
《詩經》에 “무성한 팥배나무를 자르지 말고 베지 말라. 召伯이 시골에서 묵던 집이다.” 하였고, 《春秋公羊傳》에 “陝縣에서 동쪽 지방은 周公이 주관하고, 섬현에서 서쪽 지방은 召公이 주관한다.” 하였다. 소공이 직무를 맡아서 뽕잎을 따 누에를 칠 때를 당해서는 백성의 농사일에 영향을 주지 않으려고 했다. 그 때문에 邑 안에 들어가지 않고 팥배나무 아래에 초막을 짓고 있으면서 訟事를 판결하여 陝 지방 사람들이 모두 살 곳을 얻으니, 이 때문에 후세 사람들이 그를 사모하여 칭송하는 노래를 하였다. 훌륭히 여겼기 때문에 稱讚하였고, 칭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게 여겼기 때문에 贊嘆하였고, 찬탄만으로는 부족하게 여겼기 때문에 노래를 지어 불러 칭송한 것이다.
詩는 사모한 뒤에 쌓이고 쌓인 뒤에 가득 차고 가득 찬 뒤에 터져 나오게 되니, 바른 도리를 따라 터져 나와서 그 노래가 정당한 지위에 이르는 것이다. 백성이 그의 미덕을 찬탄하며 그에 대한 恭敬을 지극히 하여 팥배나무까지도 베지 못하게 하였으니, 그의 政令과 敎化가 어찌 시행되지 않을 수 있으랴!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이 〈甘棠〉 詩에서 그들이 宗廟에서 매우 공경했다는 것을 알았으니, 그 사람을 존경하면 반드시 그의 神位를 존경하는 것이다. 만물을 和順하고 便安하게 하면 옛 聖人의 도에 가까울 것이다.”
2. 故其治天下也,如救溺人
仁人之德教也,誠惻隱於中,悃愊於內,不能已於其心;故其治天下也,如救溺人,見天下強陵弱,眾暴寡;幼孤羸露,死傷係虜,不忍其然,是以孔子歷七十二君,冀道之一行而得施其德,使民生於全育,烝庶安土,萬物熙熙,各樂其終,卒不遇,故睹麟而泣,哀道不行,德澤不洽,於是退作春秋,明素王之道,以示後人,恩施其惠,未嘗輟忘,是以百王尊之,志士法焉,誦其文章,傳今不絕,德及之也。詩曰:「載馳載驅,周爰咨謀。」此之謂也。
어진 사람이 펴는 德敎는 진실로 心中에 측은하고 內心에 至誠을 지녀 그 마음에 그만두지 못해서이다. 그래서 천하를 다스릴 때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내는 것처럼 하는 것이다.
천하의 强者가 弱者를 능멸하고, 多數가 少數에게 횡포를 부리며, 어린 고아가 수척하고 죽거나 다치고 포로가 된 사람을 보면 그런 고난을 차마 그냥 넘기지 못한다.
이 때문에 孔子께서 72명의 제후에게 두루 遊說하시어 자기가 지닌 道를 한번 실행하고 德政을 베풀어 백성이 보전되고 양육되어, 뭇 백성이 本土에서 편안히 살며 만물이 和樂하여 각기 즐겁게 마치도록 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끝내 이런 임금을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麒麟을 잡은 것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자기의 道가 실현되지 못하고 德澤이 충분히 미치지 못한 것을 슬퍼하셨다. 이리하여 물러나 《春秋》를 지어 素王의 道를 밝혀서 후세 사람에게 보여주셨으니, 德政을 펴 은혜를 베풀어야겠다는 생각을 중지하거나 잊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후세의 모든 帝王이 존경하고 志士들이 법도로 삼아 그 문장을 읽어서 지금까지 전승되어 끊어지지 않았으니, 그의 높은 德이 여기에 이른 것이다.
《詩經》에 “달리고 몰아서, 두루 묻고 의논했네.”라 하였으니, 이를 이른 말이다.
3. 有陰德者必有陽報,有隱行者必有昭名
聖王布德施惠,非求報於百姓也;郊望禘嘗,非求報於鬼神也。山致其高,雲雨起焉;水致其深,蛟龍生焉;君子致其道德而福祿歸焉。夫有陰德者必有陽報,有隱行者必有昭名,古者溝防不修,水為人害,禹鑿龍門,闢伊闕,平治水土,使民得陸處;百姓不親,五品不遜,契教以君臣之義,父子之親,夫婦之辨,長幼之序;田野不修,民食不足,后稷教之,闢地墾草,糞土樹穀,令百姓家給人足;故三后之後,無不王者,有陰德也。周室衰,禮義廢,孔子以三代之道,教導於後世,繼嗣至今不絕者,有隱行也。
聖王이 仁德을 펼치고 恩惠를 베푸는 것은 백성에게 보답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郊祀‧望祭‧禘祭‧嘗祭를 지내는 것은 귀신에게 보답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山이 일정한 높이에 이르면 구름과 비가 발생하고, 물이 일정한 깊이에 이르면 蛟龍이 생기고, 군자가 일정한 道德에 이르면 福祿이 절로 돌아온다. 남모르게 쌓은 德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공공연한 보답이 있고, 남모르게 행한 善行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드러난 명성이 있게 마련이다.
옛날 水路와 堤防을 정비하지 않아 물이 인간에게 재해를 끼쳤는데, 大禹가 龍門을 뚫고 伊闕을 열어 물과 땅을 고르게 다스려 백성들이 육지에서 편안히 살게 하였다. 백성이 서로 친애하지 않고 五品이 和順하지 않았는데, 契이 君臣간의 義理와 父子간의 親愛와 夫婦간의 分別과 長幼간의 次序를 가르쳤다. 田野가 정리되지 않아 백성의 양식이 부족하였는데, 后稷이 황무지를 개간하여 풀을 제거하고 거름을 주어 곡식을 심는 법을 가르쳐서 백성들이 집집마다 풍족하도록 하였다.
그래서 〈禹‧契‧后稷의〉 세 后의 후예가 王 노릇하지 못한 경우가 없는 것은 남모르게 쌓은 德이 있어서이다. 周나라 왕실이 쇠퇴하여 禮義가 폐기되니, 孔子께서 三代의 道로 후세를 敎導하시어 계승하는 사람이 지금까지 끊어지지 않는 것은 남모르게 행한 善行이 있어서이다.
4. 故聖人之於天下也,譬猶一堂之上也
周頌曰:「豐年多黍多稌,亦有高廩,萬億及秭,為酒為醴,烝畀祖妣,以洽百禮,降福孔偕。」禮記曰:「上牲損則用下牲,下牲損則祭不備物。」以其舛之為不樂也。故聖人之於天下也,譬猶一堂之上也,今有滿堂飲酒者,有一人獨索然向隅而泣,則一堂之人皆不樂矣;聖人之於天下也,譬猶一堂之上也,有一人不得其所,則孝子不敢以其物薦進。
《詩經》 〈周頌〉에서 “풍년에 기장과 벼가 많아서, 창고에 높이 쌓인 곡식이, 억만 섬이나 되네. 술을 빚고 단술을 만들어, 할아버지‧할머니께 올리고, 온갖 禮를 빠짐없이 갖추니, 내리는 福 두루 미치리.”라 하였고, 《禮記》에 “上牲이 부족하면 下牲을 쓰고, 下牲마저도 부족하면 祭祀에 祭物을 다 갖추지 않는다.” 하였으니, 이는 수확이 좋지 못한 때에 제사하면 神이 즐거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聖人이 천하를 다스릴 적에, 비유하면 한 堂 위에 있는 사람과 같게 여겼다. 지금 堂에 가득한 사람들이 술을 마시는데, 한 사람만 눈물을 흘리면서 한쪽 모퉁이를 향해 울고 있다면 온 堂의 사람들이 모두 즐겁지 않을 것이다. 성인이 천하를 다스릴 적에, 비유하면 한 堂 위에 있는 사람과 같게 여겨서, 한 사람이라도 살 곳을 얻지 못하면 孝子라도 감히 제물을 드리지 못할 것이다.
5. 在德不在險
魏武侯浮西河而下,中流顧謂吳起曰:「美哉乎!河山之固也,此魏國之寶也。」吳起對曰:「在德不在險。昔三苗氏左洞庭,右彭蠡,德義不修,而禹滅之;夏桀之居,左河濟,右太華,伊闕在其南,羊腸在其北,修政不仁,湯放之;殷紂之國,左孟門而右太行,常山在其北,太河經其南,修政不德,武王伐之。由此觀之,在德不在險。若君不修德,船中之人盡敵國也。」武侯曰:「善!」
魏 武侯가 西河에서 배를 타고 내려올 때에, 중간쯤에 이르러 吳起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좋구나. 강과 산의 견고함이여. 이것은 魏나라의 보물이로구나!”
그러자 오기가 대답하였다. “나라를 유지하는 것은 德에 있지, 地勢의 險固에 있지 않습니다. 예전에 三苗氏는 왼쪽은 洞庭이요 오른쪽은 彭蠡였으나, 德義를 修行하지 아니하여 禹王이 멸망시켰습니다. 夏나라 桀王의 거주지는 왼쪽은 黃河‧濟水요 오른쪽은 太華이며, 伊闕이 그 남쪽에 있고 羊腸이 그 북쪽에 있었으나, 仁政을 행하지 않아 湯王이 쫓아냈습니다. 殷나라 紂王의 국도는 왼쪽은 孟門이요 오른쪽은 太行이며, 常山이 그 북쪽에 있고 큰 黃河가 그 남쪽으로 흘러갔으나, 德政을 펴지 않아 周 武王이 토벌하였습니다. 이에 근거하여 살펴보면 나라를 유지하는 것은 德에 있지, 地勢의 險固에 있지 않습니다. 만일 임금께서 德政을 修行하지 않으시면 이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敵國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위 무후가 말했다. “좋은 말이오.”
6. 臣聞愛其人者,兼屋上之烏;憎其人者,惡其餘胥
武王克殷,召太公而問曰:「將奈其士眾何?」太公對曰:「臣聞愛其人者,兼屋上之烏;憎其人者,惡其餘胥;咸劉厥敵,使靡有餘,何如?」王曰:「不可。」太公出,邵公入,王曰:「為之奈何?」邵公對曰:「有罪者殺之,無罪者活之,何如?」王曰:「不可。」邵公出,周公入,王曰:「為之奈何?」周公曰:「使各居其宅,田其田,無變舊新,唯仁是親,百姓有過,在予一人!」武王曰:「廣大乎,平天下矣。凡所以貴士君子者,以其仁而有德也!」
周 武王이 殷나라를 토벌하여 이기고 나서 太公을 불러 물었다. “앞으로 은나라의 士大夫와 백성을 어떻게 처리해야 되겠소?”
태공이 대답했다. “臣은 들으니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은 그 집 지붕에 앉은 까마귀조차 같이 사랑하고, 누군가를 미워하는 사람은 그 집의 담벼락조차 같이 미워한다고 합니다. 敵人들을 모두 죽여서 남은 사람이 없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무왕이 말했다. “안 되오.”
태공이 나가고 召公이 들어오자 무왕이 말했다. “〈은나라의 사대부와 백성을〉 어떻게 처리해야 되겠는가?” 소공이 대답하였다. “죄 있는 사람은 죽이고 죄 없는 사람은 살려주면 어떻겠습니까?” 무왕이 말했다. “안 된다.” 소공이 나가고 周公이 들어오자 무왕이 말했다. “〈은나라의 사대부와 백성을〉 어떻게 처리해야 되겠는가?” 주공이 말했다. “그들이 각자 자기 집에서 살고 자기의 농토에서 농사짓게 하며 옛 백성과 새 백성을 변함없이 대하여, 오직 仁德으로 친근히 하며 백성에게 過失이 있거든 나에게 잘못이 있다고 여기십시오.”
무왕이 말했다. “도량이 넓고도 크구나. 천하를 태평하게 하겠다.” 士君子를 귀중하게 여기는 까닭은 그 사람이 仁愛하면서 德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7. 夫仁者,必恕然後行
孔子曰:「里仁為美,擇不處仁,焉得智!」夫仁者,必恕然後行,行一不義,殺一無罪,雖以得高官大位,仁者不為也。夫大仁者,愛近以及遠,及其有所不諧,則虧小仁以就大仁。大仁者,恩及四海;小仁者,止於妻子。妻子者,以其知營利,以婦人之恩撫之,飾其內情,雕畫其偽,孰知其非真,雖當時蒙榮,然士君子以為大辱,故共工、驩兜、符里、鄧析,其智非無所識也,然而為聖王所誅者,以無德而苟利也。豎刁、易牙,毀體殺子以干利,卒為賊於齊。故人臣不仁,篡弒之亂生;人臣而仁,國治主榮;明主察焉,宗廟大寧,夫人臣猶貴仁,況於人主乎!故桀紂以不仁失天下,湯武以積德有海土,是以聖王貴德而務行之。孟子曰:「推恩足以及四海;不推恩不足以保妻子。古人所以大過人者無他焉,善推其所有而已。」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마을은 仁厚한 풍습 있는 곳이 아름다우니 인후한 마을을 가려서 살지 않는다면 어찌 지혜롭다 하랴!” 仁은 반드시 恕한 뒤에 시행되니, 한 가지라도 不義한 일을 행하거나 한 사람이라도 죄 없는 이를 죽인다면 비록 높고 큰 벼슬을 얻을지라도 仁者는 하지 않는다.
큰 인자는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여 멀리 있는 사람에게 미치니, 和諧하지 못한 곳이 있으면 작은 仁을 희생하여 큰 仁을 이룬다. 큰 인자는 은택이 四海에 미치고 작은 인자는 은택이 아내와 자식에만 그치고 만다. 은택이 아내와 자식에만 그치고 마는 사람은 그의 지혜로 이익을 꾀하고 부인 같은 작은 은혜로 남을 다독이는 척하면서 마음속의 진정을 꾸미고 虛僞를 아름답게 수식하니, 그것이 진실이 아님을 누가 알겠는가? 당시에는 영광을 얻을지라도 士君子는 큰 치욕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共工‧驩兜‧符里‧鄧析 등은 그들의 지혜가 모르는 것이 없지만, 그럼에도 聖王에게 죽임을 당한 것은 어진 德은 없고 이익만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豎刁‧易牙는 자신의 신체를 훼손하고 자식을 죽여가면서 이익을 구하였으나, 끝내 齊나라에 危害를 당하고 말았다. 그 때문에 신하가 어진 마음이 없으면 찬탈하고 시해하는 환난이 일어나고, 신하가 어진 마음이 있으면 나라는 잘 다스려지고 임금은 영광을 누리며, 명철한 임금이 이런 사리를 잘 살피면 宗廟가 대단히 평안하게 된다.
신하 된 사람도 오히려 인후한 마음을 귀중히 여겨야 되는데 더구나 임금 된 사람이겠는가! 그래서 夏桀‧商紂는 인후하지 못했기 때문에 천하를 잃었고, 湯王‧武王은 仁德을 쌓았기 때문에 천하를 얻었다. 이 때문에 聖王은 인덕을 귀중히 여겨 실행에 힘을 쓰는 것이다.
孟子는 “恩德을 널리 베풀면 천하를 보유할 수 있고, 은덕을 베풀지 않으면 妻子도 보전할 수 없다. 옛사람이 남보다 크게 뛰어난 까닭은 다른 이유가 없다. 자기가 가진 어진 마음을 잘 베풀었을 뿐이다.” 하였다.
8. 今上樂其樂,下傷其費,是獨樂者也,不可
晏子飲景公酒,令器必新,家老曰:「財不足,請斂於民。」晏子曰:「止。夫樂者,上下同之,故天子與天下,諸侯與境內,自大夫以下各與其僚,無有獨樂;今上樂其樂,下傷其費,是獨樂者也,不可。」
晏子가 齊 景公을 청하여 술을 마시려 할 적에 필요한 그릇들을 반드시 새것으로 준비하게 하였다. 家臣이 말했다. “마련할 돈이 부족하니 백성들에게 징수하시기 바랍니다.”
안자가 말했다. “그만두게. 즐거움이란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함께하는 것이다. 그래서 天子는 천하 사람들과 함께 즐거움을 누리고, 諸侯는 경내의 백성들과 함께 즐거움을 누리며, 大夫로부터 이하 사람은 각기 자기에게 딸린 관료와 함께 즐거움을 누려서, 혼자만 즐거움을 누리는 일이 없어야 된다. 지금 윗사람만 즐거움을 즐기고 아랫사람은 그 비용으로 재산에 손해를 입으면, 이는 혼자만 즐기는 것이니 안 된다.”
9. 乃割燕君所至之地以與燕君
齊桓公北伐山戎氏,其道過燕,燕君逆而出境,桓公問管仲曰:「諸侯相逆固出境乎?」管仲曰:「非天子不出境。」桓公曰:「然則燕君畏而失禮也,寡人不道而使燕君失禮,乃割燕君所至之地以與燕君。」諸侯聞之,皆朝於齊。詩云:「靖恭爾位,好是正直,神之聽之,介爾景福。」此之謂也。
齊 桓公이 북쪽의 山戎氏를 정벌하러 갈 때 燕나라 길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연나라 임금이 국경 밖에까지 나와서 맞이하였다. 환공이 管仲에게 물었다. “諸侯끼리 서로 맞이할 때 본디 국경 밖에까지 나오는 것이오?” 관중이 말했다. “天子가 아니면 국경을 나가지 않는 것입니다.” 환공이 말했다. “그렇다면 연나라 임금이 나를 두려워하여 禮에 벗어난 것이오. 寡人이 正道를 행하지 못하여 연나라 임금이 禮에 벗어나게 하였구려.”
그러고는 곧 연나라 임금이 넘어온 만큼의 땅을 할양하여 연나라 임금에게 주었다. 제후들이 이 소문을 듣고 모두 齊나라에 와 朝見하였다. 《詩經》에 “네 職位를 공경히 수행하여, 이 정직한 사람을 좋아하면, 神이 이를 듣고서, 네게 큰 복을 주리라!” 하였으니, 이런 일을 이른 말이다.
10. 吾君有聖王之道矣
景公探爵鷇,鷇弱故反之,晏子聞之,不待請而入見,景公汗出惕然,晏子曰:「君胡為者也?」景公曰:「我採爵鷇,鷇弱故反之。」晏子逡巡北面再拜而賀之:「吾君有聖王之道矣。」景公曰:「寡人入探爵鷇,鷇弱故反之,其當聖王之道者何也?」晏子對曰:「君探爵鷇,鷇弱故反之,是長幼也;吾君仁愛,禽獸之加焉,而況於人乎?此聖王之道也。」
齊 景公이 참새 새끼를 잡았다가 새끼가 너무 어리기 때문에 도로 둥지에 넣어주었다. 晏子가 이 일을 듣고 부름을 기다리지 않고 들어가 뵙자, 경공은 긴장하여 땀을 흘리며 두려워하였다. 안자가 말했다. “임금께서는 어찌 그렇게 하고 계십니까?” 경공은 말했다. “내가 참새 새끼를 잡았다가 새끼가 너무 어리기 때문에 도로 둥지에 넣어주었소.” 안자는 뒤로 물러나 북쪽을 향하여 두 번 절하고 축하의 말을 올렸다. “우리 임금님께서는 聖王의 道를 지니셨습니다.”
그러자 경공이 말했다. “寡人이 들어오다가 참새 새끼를 잡았으나 새끼가 너무 어리기 때문에 도로 둥지에 넣어주었는데, 그것이 성왕의 도에 해당한다는 것은 무슨 뜻이오?” 안자는 대답하였다. “임금께서 참새 새끼를 잡았다가 새끼가 너무 어리기 때문에 도로 둥지에 넣어주셨으니, 이는 어린 새끼를 불쌍히 여겨 키워준 것입니다. 우리 임금님의 仁愛는 禽獸에까지 미쳤는데 더구나 사람이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성왕의 도인 것입니다.”
11. 君存何為無歸
景公睹嬰兒有乞於途者,公曰:「是無歸夫?」晏子對曰:「君存何為無歸,使養之,可立而以聞。」
齊 景公이 어린아이가 길에서 빌어먹는 것을 보고 公이 말했다. “이 아이는 돌아갈 곳이 없는가?”
晏子가 대답하였다. “임금께서 계시니 어찌 돌아갈 곳이 없겠습니까? 사람을 시켜 기르도록 하면 즉시 잘 기르고 보고할 것입니다.”
12. 聖王見賢以樂賢,見不肖以哀不肖
景公遊於壽宮,睹長年負薪而有饑色,公悲之,喟然嘆曰:「令吏養之。」晏子曰:「臣聞之,樂賢而哀不肖,守國之本也;今君愛老而恩無不逮,治國之本也。」公笑有喜色。晏子曰:「聖王見賢以樂賢,見不肖以哀不肖;今請求老弱之不養,鰥寡之不室者,論而供秩焉。」景公曰:「諾。」於是老弱有養,鰥寡有室。
齊 景公이 壽宮에서 놀다가 나이 많은 사람이 땔나무를 지고 가는데 굶주린 안색이 있는 것을 보고, 公이 슬퍼하면서 한숨을 쉬고 탄식하며 말했다. “관리를 시켜 봉양하게 하라.”
晏子가 말했다. “臣은 어진 이를 좋아하고 不肖한 사람을 가엾게 여기는 것은 나라를 지키는 근본이라고 들었습니다. 지금 임금님께서 노인을 사랑하여 은혜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으니, 이것이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입니다.” 경공이 이 말을 듣고 웃으면서 기쁜 안색이 있었다.
이에 안자는 말했다. “聖王은 어진 이를 보면 어진 이를 좋아하고, 불초한 이를 보면 불초한 이를 가엾게 여기셨습니다. 이제 봉양하는 사람이 없는 늙고 어린 사람과 집이 없는 홀아비와 과부를 찾아 그들의 실정을 평가하여 생활용품을 공급해주시기 바랍니다.” 경공이 말했다. “좋소.” 이리하여 늙고 어린 사람은 봉양하는 사람이 있게 되었고, 홀아비와 과부는 집이 있게 되었다.
13. 令國丈夫三十而室,女子十五而嫁
桓公之平陵,見家人有年老而自養者,公問其故,對曰:「吾有子九人,家貧無以妻之,吾使傭而未返也。」桓公取外御者五人妻之,管仲入見曰:「公之施惠不亦小矣。」公曰:「何也?」對曰:「公待所見而施惠焉,則齊國之有妻者少矣。」公曰:「若何?」管仲曰:「令國丈夫三十而室,女子十五而嫁。」
齊 桓公이 平陵에 가서 백성의 집에 나이 늙었는데도 자기 혼자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桓公이 그 까닭을 물었다. 노인은 대답하였다. “저는 아홉 명의 자식을 두었으나 집이 가난하여 장가들이지 못하고 품팔이를 보냈는데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환공이 잠자리를 함께하지 않은 궁녀 다섯 사람을 골라 노인의 아들에게 시집을 보냈다.
管仲이 들어와 환공을 뵙고 말했다. “公께서 베푸는 은혜가 너무 작지 않습니까?” 환공이 말했다. “무엇 때문이오?” 관중이 대답했다. “공께서 〈장가들지 못한 사람을〉 직접 보고 은혜를 베푼다면, 齊나라에는 아내가 있는 사람이 적을 것입니다.” 환공이 말했다. “어쩌면 되겠소?” 관중은 말했다. “전국의 남자는 스무 살이면 장가들고, 여자는 열다섯 살이면 시집가도록 명령하십시오.”
14. 鳥鷇之卵不毀,而後鳳凰集;誹謗之罪不誅,而後良言進,山藪藏矣,川澤納污。』國君含垢,天之道也。
孝宣皇帝初即位,守廷尉吏路溫舒上書,言尚德緩刑,其詞曰:「陛下初即至尊,與天合符,宜改前世之失,正始受之統,滌煩文,除民疾,存亡繼絕,以應天德,天下幸甚。臣聞往者秦有十失,其一尚存,治獄吏是也;昔秦之時,滅文學,好武勇,賤仁義之士,貴治獄之吏,正言謂之誹謗,謁過謂之妖言,故盛服先生,不用於世,忠良切言,皆鬱於胸,譽諛之聲,日滿於耳,虛美薰心,實禍蔽塞,此乃秦之所以亡天下也。方今海內賴陛下厚恩,無金革之危,饑寒之患,父子夫婦戮力安家,天下幸甚;然太平之未洽者,獄亂之也。夫獄天下之命,死者不可生,斷者不可屬,書曰:『與其殺不辜,寧失不經。』今治獄吏則不然,上下相驅,以刻為明,深者獲公名,平者多後患;故治獄吏皆欲人死,非憎人也,自安之道,在人之死,是以死人之血,流離於市;被刑之徒,比肩而立,大辟之計,歲以萬數,此聖人所以傷太平之未洽。凡以是也。人情安則樂生,痛則思死,捶楚之下,何求而不得;故囚人不勝痛,則飾誣詞以示之,吏治者利其然,則指道以明之,上奏恐卻,則鍛煉而周內之,蓋奏當之成,雖皋陶聽之,猶以為死有餘罪,何則?成鍊之者眾而文致之罪明也。是以獄吏專為深刻,殘賊而無理,偷為一切,不顧國患,此世之大賊也,故俗語云:『畫地作獄,議不可入;刻本為吏,期不可對。』此皆疾吏之風,悲痛之辭也。故天下之患,莫深於獄,敗法亂政,離親塞道,莫甚乎治獄之吏,此臣所謂一尚存也。臣聞鳥鷇之卵不毀,而後鳳凰集;誹謗之罪不誅,而後良言進,故傳曰:『山藪藏矣,川澤納污。』國君含垢,天之道也。臣昧死上聞,願陛下察誹謗,聽切言,開天下之口,廣箴諫之路,改亡秦之一失,遵文武之嘉德,省法制,寬刑罰,以廢煩獄;則太平之風可與於世,福履和樂,與天地無極,天下幸甚。」書奏,皇帝善之,後卒於臨淮太守。
孝宣皇帝가 처음 즉위했을 때 守廷尉史 路溫舒가 皇帝에게 上書하여 德政을 숭상하고 형벌을 너그럽게 하라고 말했다. 상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폐하께서 처음 至尊의 자리에 오르시니 하늘의 뜻과 부합합니다. 응당 전대의 잘못된 정사를 고치시고 처음 받으신 一統의 뜻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번잡한 법조문을 걸러내시고 백성의 고통을 제거하시며, 멸망한 이를 보존시키고 뒤가 끊어진 이를 이어주시어 天德에 호응하시면 천하 백성들이 매우 행복함을 느낄 것입니다. 臣은 들으니 ‘지난날 秦나라가 열 가지 잘못한 것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아직까지 남았다.’고 하니, 刑獄을 다스리는 관리가 바로 그것입니다. 옛날 秦나라 때에 文學을 없애고 武勇을 좋아하며 仁義를 주장하는 선비는 천시하고 형옥을 다스리는 관리는 귀중하게 여겨, 바른말을 誹謗이라 하고 罪過를 밝히는 말을 요망한 말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衣冠이 단정한 선비가 세상에 중용되지 못하였습니다.忠良하고 간절한 말은 모두 가슴속에 쌓여 나오지 않고, 칭찬하여 아부하는 말은 날마다 황제의 귀에 가득 들리게 되었습니다. 허위로 찬미하는 말이 마음을 미혹시키고 실제의 災禍는 가려져 드러나지 않았으니, 이것이 바로 秦나라가 천하를 잃은 까닭입니다. 지금 천하의 백성들이 폐하의 큰 은혜에 힘입어 전쟁의 위험과 굶주림과 추위의 근심이 없어서, 父子와 夫婦가 힘을 합해 집안을 편안하게 하니 천하 사람들이 매우 행복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太平이 되기에 미흡한 것은 형옥이 혼란을 조성하는 것입니다. 형옥은 천하 백성들의 목숨에 관계되는 일입니다. 죽은 사람은 다시 살릴 수가 없고, 끊어진 四肢는 다시 이을 수가 없으니, 《書經》에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는 차라리 법을 준수하지 않는 잘못을 범하는 것이 낫다.’ 하였습니다. 지금 형옥을 다스리는 관리는 그렇지 않아서, 위아래 사람이 서로 몰아붙여 엄혹하게 하는 것으로 명쾌함을 삼아, 더욱 엄혹한 사람은 공평하다는 명성을 얻고 공평한 사람은 많은 후환이 따릅니다. 그 때문에 형옥을 다스리는 관리들은 모두 죄인을 죽음에 몰아 넣으려고 하니, 이는 그 사람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편안히 보전하는 방법이 죄인을 죽이는 데 달렸기 때문입니다. 이래서 죽은 사람의 피가 저자를 적시고, 형벌을 받은 무리가 어깨를 부딪치면서 섰으며, 사형에 처해진 사람의 숫자가 해마다 만 단위로 헤아릴 정도입니다. 이것을 聖人이 슬퍼하는 것이고, 태평이 되기에 미흡한 것이 모두 이것 때문입니다. 사람의 보통 마음은 편안하면 즐겁게 살고 고통스러우면 죽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채찍과 몽둥이로 고문하는 아래에서 무엇을 구한들 얻지 못하겠습니까? 그래서 고문을 당하는 죄수가 고통을 이겨내지 못할 지경이면 사실이 아닌 말을 꾸며 보이게 됩니다. 형옥을 다스리는 관리는 그것이 유리하면 지시하고 인도하여 罪案을 명확히 하고, 죄안을 上奏하여 기각될까 걱정되면 없는 罪名을 꾸며 빈틈없이 만들어 바칩니다. 상주하여 죄를 판결할 案件이 완성되면 皐陶가 판결하더라도 오히려 사형에 처해도 남는 죄가 있다고 여길 것입니다. 이는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사실이 아닌 죄명을 꾸민 사람이 많고 法文을 적용하여 구성한 죄가 명확하기 때문입니다. 이러므로 형옥을 다스리는 관리는 오로지 〈형벌을〉 엄혹하게 하여 끝없이 잔인하고 포학하게 다루어 일체를 구차스럽게 처리하면서 나라의 근심은 고려하지 않으니, 이것이 세상의 크게 해로운 사람입니다. 그 때문에 속담에 “땅에 금을 그어 감옥을 만들더라도 들어가면 안 된다고 수군거리고, 나무를 깎아 獄吏라 해도 기필코 대면하지 않는다.” 하였으니, 이는 모두 옥리를 미워하는 諷刺이고 悲痛한 말입니다. 그래서 천하의 우환이 형옥보다 심한 것이 없고, 법이 파괴되고 정치가 혼란하여 친척을 離散시키고 正道를 막는 일이 형옥을 다스리는 관리보다 심한 경우가 없습니다. 이것이 臣이 이른바 아직 秦나라의 한 가지 잘못이 남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臣은 들으니 ‘새알을 훼손시키지 않은 뒤에야 鳳凰이 모이고, 비방한 죄를 벌주지 않은 뒤에야 忠良한 말이 나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春秋左氏傳》에 ‘山藪는 해독을 끼치는 짐승을 숨겨주고 川澤은 더러운 물건을 받아들이며 임금은 추악한 것을 포용해야 되니, 이것이 하늘의 법도이다.’라 하였습니다. 臣은 죽음을 무릅쓰고 이 말씀을 올립니다. 폐하께서는 비방하는 말을 밝게 살피시고 간절한 말을 따르시어 천하 사람들의 言路를 여시고 경계하여 諫하는 길을 여시며, 멸망한 秦나라가 행한 〈열 가지 잘못 중 아직도 남아 있는〉 한 가지 잘못을 고치시고 文王‧武王의 아름다운 德政을 따르소서. 法制를 줄이시고 刑罰을 완화하시어 번잡한 獄事를 폐기하시면, 천하가 태평한 기풍을 당세에 일으켜 福祿을 받고 화락한 생활을 천지와 함께하여 다함이 없을 것이니, 천하 백성들이 매우 행복을 느낄 것입니다.”
上書가 황제에게 올라가자, 황제는 이를 훌륭하게 여겼다. 路溫舒는 뒤에 臨淮太守로 재직 중에 죽었다.
15. 聖王貴德而務施,緩刑辟而趨民時
晉平公春築臺,叔向曰:「不可。古者聖王貴德而務施,緩刑辟而趨民時;今春築臺,是奪民時也。夫德不施,則民不歸;刑不緩,則百姓愁。使不歸之民,役愁怨之百姓,而又奪其時,是重竭也;夫牧百姓,養育之而重竭之,豈所以安命安存,而稱為人君於後世哉!」平公曰:「善!」乃罷臺役。
晉 平公이 봄에 樓臺를 修築하자, 叔向이 말했다.
“안 됩니다. 옛날 聖王은 德을 귀중히 여겨 덕을 베푸는 데 힘써서 刑罰을 완화하고 농사철에는 농사를 짓게 하였는데, 지금 봄에 누대를 수축하면 이는 농사철을 빼앗는 것입니다. 덕을 베풀지 않으면 백성들이 따르지 않고, 형벌을 완화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근심하고 원망합니다. 따르지 않는 백성을 부리고 근심하고 원망하는 백성을 사역시키며 또 농사철을 빼앗으면, 이는 거듭 백성의 힘을 고갈시키는 것입니다. 다스리는 것은 백성을 養育하는 일인데 거듭 그들의 힘을 고갈시키면, 어떻게 그들의 생명을 안정시키고 몸을 편안히 보존하여 후세 사람들이 임금이라 일컫겠습니까!”
평공이 말했다. “좋다.” 그러고는 이내 누대 수축하는 공사를 중지하였다.
16. 民以不為臺,故知吾之愛也
趙簡子春築臺於邯鄲,天雨而不息,謂左右曰:「可無趨種乎?」尹鐸對曰:「公事急,厝種而懸之臺;夫雖欲趨種,不能得也。」簡子惕然,乃釋臺罷役曰:「我以臺為急,不如民之急也,民以不為臺,故知吾之愛也。」
趙簡子가 봄에 邯鄲에 누대를 건축할 때 비가 그치지 않고 내리자 측근에게 말했다. “어찌 백성들에게 播種하라고 재촉하지 않는가?” 尹鐸이 대답했다. “누대를 건축하는 公事가 급하여 파종하는 일은 놔두고 누대를 건축하는 일에 매달려 있으니, 파종을 재촉하고 싶어도 되지 않습니다.”
이 말을 들은 조간자는 두려운 기색을 보이더니 이내 누대를 건축하는 일을 버려두고 공사를 중지시키면서 말했다. “내가 누대 건축을 급한 일로 여기는 것이 백성이 농사일을 급히 여기는 것만 못하다. 백성들은 내가 누대를 짓지 않는 연유로써 내가 백성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 것이다.”
17. 今子見無土而欲富者樂乎哉?
中行獻子將伐鄭,范文子曰:「不可。得志於鄭,諸侯讎我,憂必滋長。」卻至又曰:「得鄭是兼國也,兼國則王,王者固多憂乎?」文子曰:「王者盛其德而遠人歸,故無憂;今我寡德而有王者之功,故多憂。今子見無土而欲富者樂乎哉?」
中行獻子가 鄭나라를 토벌하려고 하자 范文子가 말했다. “안 됩니다. 정나라 토벌에 뜻을 이룬다면 諸侯들이 우리를 원수로 삼을 것이니, 근심이 반드시 더욱 커질 것입니다.”
그러자 郤至는 말했다. “정나라를 얻으면 이는 다른 나라를 兼倂하는 것이고, 다른 나라를 겸병하면 王 노릇할 수 있습니다. 왕 노릇하는 사람은 본디 근심이 많은 것입니까?”
범문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왕 노릇하는 사람은 성대한 德을 쌓아서 먼 지방의 사람들까지 歸附하기 때문에 근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덕이 부족한데 왕 노릇하는 사람의 功業을 소유하려 하기 때문에 근심이 많다는 것입니다. 지금 그대는 토지가 없으면서 부유하기를 바라는 자가 즐겁게 사는 것을 보았소?”
18. 譬子產之與夫子也,猶浸水之與天雨乎?
季康子謂子游曰:「仁者愛人乎?」子游曰:「然。」「人亦愛之乎?」子游曰:「然。」康子曰:「鄭子產死,鄭人丈夫舍玦珮,婦人舍珠珥,夫婦巷哭,三月不聞竽琴之聲。仲尼之死,吾不閒魯國之愛夫子奚也?」子游曰:「譬子產之與夫子,其猶浸水之與天雨乎?浸水所及則生,不及則死,斯民之生也必以時雨,既以生,莫愛其賜,故曰:譬子產之與夫子也,猶浸水之與天雨乎?」
季康子가 子游에게 말했다. “어진 사람은 남을 사랑합니까?” 자유는 말했다. “그렇습니다.” 계강자가 말했다. “그럼 남도 그를 사랑합니까?” 자유는 말했다. “그렇습니다.”
계강자가 말했다. “鄭나라 子産이 죽었을 때 정나라의 남자는 玦珮를 풀었고 부인은 귀걸이를 떼어놓았으며, 부부가 골목에 나와 哭을 하여 3개월 동안 樂器를 연주하는 소리를 듣지 못했었소. 그런데 仲尼(孔子)가 죽었을 때에 나는 魯나라 사람들이 孔子를 이렇게 사랑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으니, 이는 무엇 때문이오?”
자유는 말했다. “비유하면, 자산과 공자는 논에 대는 물과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같을 것입니다. 논에 대는 물이 미치는 곳은 벼가 生長하고, 미치지 못하는 곳은 벼가 죽고 맙니다. 이 백성들의 삶에는 반드시 때맞춰 비가 내려야 하나, 백성들이 이미 살게 되면 〈하늘이〉 내려주는 〈비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비유하면, 자산과 공자는 논에 대는 물과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같다고 말한 것입니다.”
19. 賞所甚惡,有失賞也
中行穆子圍鼓,鼓人有以城反者,不許,軍吏曰:「師徒不勤,可得城,奚故不受?」曰:「有以吾城反者,吾所甚惡也;人以城來,我獨奚好焉?,若所好何?不賞,是失信也,奚以示民?」鼓人又請降,使人視之,其民尚有食也,不聽,鼓人告食盡力竭而後取之,克鼓而反,不戮一人。
中行穆子가 鼓나라 城을 포위하고 공격하자, 고나라 사람이 성을 가지고 謀反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었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軍吏가 말했다. “군대를 고생시키지 않고도 성을 얻을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접수하지 않습니까?”
중항목자는 말했다. “우리의 성을 가지고 모반하는 사람이 있으면 우리도 그를 매우 미워할 텐데, 남이 성을 가지고 온다고 우리만 어찌 좋아하겠는가? 매우 미워하는 사람을 상주면 이는 상을 잘못 주는 것이니,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상을 주지 않으면 이는 信義를 잃는 것이니, 무엇을 백성에게 보여주겠는가!”
고나라 사람이 또 항복하겠다고 요청하자, 중항목자가 사람을 보내 〈정황을〉 살펴보게 하니, 성 안의 백성들이 아직 먹을 밥이 있기에 요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고나라 사람들이 먹을 것이 다 떨어지고 힘을 다 썼다고 알려오자, 그런 뒤에 고나라를 취하니, 고나라를 이기고 돌아오면서 한 사람도 죽이지 않았다.
20. 務施而不腐餘財者,聖人也
孔子之楚,有漁者獻魚甚強,孔子不受,獻魚者曰:「天暑遠市賣之不售,思欲棄之,不若獻之君子。」孔子再拜受,使弟子掃除將祭之,弟子曰:「夫人將棄之,今吾子將祭之,何也?」孔子曰:「 吾聞之,務施而不腐餘財者,聖人也,今受聖人之賜,可無祭乎?」
孔子께서 楚나라에 가셨는데 고기 잡는 사람이 잡은 물고기를 아주 억지로 드렸으나 공자께서 받지 않으셨다. 물고기를 드리는 사람이 말했다. “날씨는 덥고 시장은 먼데 팔아도 팔리지 않아 버리려고 생각했으나, 君子께 드리느니만 못하다고 여겨 드리는 것입니다.”
공자는 두 번 절한 뒤 받으시어 제자에게 땅을 쓸고 제사 지낼 준비를 하게 하셨다. 제자가 여쭈었다. “저 사람이 버리려고 하던 것인데 지금 선생님께서 제사를 지내려 하시니 무슨 까닭입니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들으니 〈남에게〉 베풀기를 힘써서 남은 재물을 썩게 하지 않는 사람은 聖人이라고 한다. 지금 성인이 주는 것을 받고는 제사를 지내지 않을 수 있겠는냐?”
21. 疇昔之羊羹,子為政;今日之事,我為政。
鄭伐宋,宋人將與戰,華元殺羊食士,其御羊斟不與焉,及戰,曰:「疇昔之羊羹,子為政;今日之事,我為政。」與華元馳入鄭師,宋人敗績。
鄭나라가 宋나라를 討伐하니 송나라 사람이 맞아 싸우려 할 적에, 華元이 羊을 잡아 군사들을 먹였으나 그의 마부 羊斟은 먹는 데 참여하지 못하였다. 접전할 때에 이르러 양짐이 말했다. “지난번 양고기 국물을 먹인 일은 그대가 주관하였으니, 오늘 兵車를 모는 일은 제가 주관하겠습니다.” 그러고는 화원과 함께 정나라 군대 속으로 달려 들어가니 송나라 사람은 크게 패배하였다.
(* 疇昔 밭이랑 주, 옛 석. 얼마 전. 羹 국 갱.)
22. 居不為垣牆,人莫能毀傷;行不從周衛,人莫能暴君
楚王問莊辛曰:「君子之行奈何?」莊辛對曰:「居不為垣牆,人莫能毀傷;行不從周衛,人莫能暴君。此君子之行也。」楚王復問君子之富奈何?對曰:「君子之富,假貸人不德也,不責也;其食飲人不使也,不役也;親戚愛之,眾人喜之,不肖者事之;皆欲其壽樂而不傷於患。此君子之富也。」楚王曰善。
楚王이 莊辛에게 물었다. “君子의 品行은 어찌해야 하오?”
장신이 대답하였다. “사는 집에 담을 만들지 않아도 傷害를 입히는 사람이 없으며, 다닐 때 주위를 호위하는 사람이 따르지 않아도 暴力을 행사하는 사람이 없어야 되니, 이것이 군자의 품행입니다.”
초왕이 다시 물었다. “군자가 富를 가진 경우는 어찌해야 하오?”
장신이 대답하였다. “군자가 富를 가진 경우는 남에게 물건을 빌려주고 난 뒤에 恩德으로 삼지 않고 무엇을 요구하지 않으며, 남에게 먹고 마시게 한 뒤에 일을 시키거나 부리지 않아야 됩니다. 그렇게 하면 친척들은 사랑하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며 不肖한 사람은 섬겨서 모두들 장수하고 즐겁게 살아서 은혜에 손상을 입히지 않기를 바랄 것이니, 이것이 군자가 富를 가진 경우의 태도입니다.”
초왕이 듣고 나서 말했다. “좋은 말이오.”
23. 為我高門,我治獄未嘗有所冤,我後世必有封者,令容高蓋駟馬車。
丞相西平侯于定國者,東海下邳人也,其父號曰于公,為縣獄吏決曹掾;決獄平法,未嘗有所冤,郡中離文法者,于公所決,皆不敢隱情,東海郡中為于公生立祠,命曰于公祠。東海有孝婦,無子,少寡,養其姑甚謹,其姑欲嫁之,終不肯,其姑告鄰之人曰:「孝婦養我甚謹,我哀其無子,守寡日久,我老累丁壯奈何?」其後母自經死,母女告吏曰:「孝婦殺我母。」吏捕孝婦,孝婦辭不殺姑,吏欲毒治,孝婦自誣服,具獄以上府,于公以為養姑十年之孝聞,此不殺姑也,太守不聽,數爭不能得,於是于公辭疾去吏,太守竟殺孝婦。郡中枯旱三年,後太守至,卜求其故,于公曰:「孝婦不當死,前太守強殺之,咎當在此。」於是殺牛祭孝婦冢,太守以下自至焉,天立大雨,歲豐熟,郡中以此益敬重于公。于公築治廬舍,謂匠人曰:「為我高門,我治獄未嘗有所冤,我後世必有封者,令容高蓋駟馬車。」及子封為西平侯。
승상 西平侯 于定國은 東海 下邳 사람이다. 그의 아버지는 于公이라 하니 縣 獄史의 決曹掾이 되어 소송을 법에 의해 공정하게 판결하여 억울하게 판결한 적이 없었다. 東海郡 안에서 법에 걸린 사람은 우공이 판결을 맡게 되면 아무도 감히 眞相을 숨기지 못했다. 그래서 동해군에 사는 사람들은 우공을 위해 그가 살아 있을 때 사당을 세워 于公祠라 이름하였다.
동해군에 孝婦가 있었는데 자식도 없고 일찍 과부가 되어 정성을 다해 시어머니를 봉양하니, 그 시어머니가 再嫁시키고자 하였으나 끝내 따르지 않았다. 그의 시어머니는 이웃 사람에게 말했다. “나의 효부가 정성을 다해 나를 봉양하고 있으나, 나는 며느리가 자식도 없고 과부로 지낸 지가 오래된 것을 애처롭게 생각한다. 나는 늙었는데 젊은 며느리가 나에게 얽매어 있으면 어쩌겠나?” 그런 뒤에 그의 시어머니는 목을 매어 자살해버렸다. 그러자 시어머니의 딸이 관리에게 고발하면서 말했다. “효부가 우리 어머니를 살해했습니다.”
관리가 효부를 체포하자, 효부는 시어머니를 살해하지 않았다고 진술하였으나 관리가 혹독하게 고문하려고 하자, 효부는 스스로 거짓 자백을 하고야 말았다. 관리가 사건의 결론을 문서로 꾸며 상부에 보고하니, 우공이 말했다. “효부가 시어머니를 10년 동안이나 봉양하여 효성으로 소문이 났으니 이 사람은 시어머니를 살해하지 않았다.” 그러나 太守가 그의 말을 따르지 않아 여러 차례 다투어 말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리하여 우공이 병을 핑계로 사직하고 떠나니, 태수는 끝내 효부를 사형에 처하였다. 그 뒤 동해군은 3년 동안 큰 가뭄이 들었다. 후임 태수가 부임하여 가뭄이 든 까닭을 점쳐 묻자, 우공이 말했다. “효부는 사형에 해당하지 않았는데 전임 태수가 억지로 죽였으니, 가뭄이 든 탓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에 소를 잡아 효부의 무덤에 제사를 지낼 때 태수 이하의 관리들이 직접 제사에 참여하였다. 그러자 바로 큰비가 내려 그해에 풍년이 드니, 郡民들이 이 때문에 더욱 우공을 공경하여 존중하였다.
우공이 집을 지을 적에 목수에게 당부하였다. “나를 위해 대문을 높게 지어라. 내가 소송을 판결하면서 일찍이 억울하게 판결한 일이 없다. 나의 후대에 반드시 흥성할 사람이 있을 것이니, 높은 덮개에 駟馬가 끄는 수레가 드나들게 하련다.” 그러더니 아들에 이르러 西平侯에 봉해졌다.
24. 吾不能以春風風人;吾不能以夏雨雨人
孟簡子相梁并衛,有罪而走齊,管仲迎而問之曰:「吾子相梁并衛之時,門下使者幾何人矣?」孟簡子曰:「門下使者有三千餘人。」管仲曰:「今與幾何人來?」對曰:「臣與三人俱。」仲曰:「是何也?」對曰:「其一人父死無以葬,我為葬之;一人母死無以葬,亦為葬之;一人兄有獄,我為出之。是以得三人來。」管仲上車曰:「嗟茲乎!我窮必矣,吾不能以春風風人;吾不能以夏雨雨人,吾窮必矣。」
孟簡子가 梁나라의 재상이 되어 衛나라를 합병하였으나, 죄가 있어 齊나라로 달아났다. 管仲이 맞이하여 물었다. “그대는 양나라의 재상이 되어 위나라를 합병할 때 門下에 부리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었소?” 맹간자가 대답하였다. “문하에 부리는 사람이 3천여 명이 있었지요.” 관중이 다시 물었다. “지금 몇 사람과 함께 왔소?” 맹간자가 대답했다. “저는 세 사람과 함께 왔습니다.”
관중은 또 물었다. “이들은 어떤 사람들이오?” 맹간자는 대답했다. “그중 한 사람은 아버지가 죽었으나 장례를 치를 형편이 못 되었기 때문에 내가 장례를 치러주었고, 한 사람은 어머니가 죽었으나 장례를 치를 형편이 못 되었기 때문에 내가 또 장례를 치러주었으며, 한 사람은 형이 감옥에 갇혀 있었는데 내가 나오게 해주었지요. 이 때문에 세 사람을 얻어 온 것이오.”
관중은 수레를 타면서 말했다. “아, 나는 반드시 困窮하게 되겠구나! 나는 봄바람처럼 남에게 불어주지 못했고, 나는 여름에 내리는 비처럼 남에게 적셔주지 못했으니, 나는 반드시 곤궁해질 것이다.”
25. 故君子羞言利名,言利名尚羞之,況居而求利者也。
凡人之性,莫不欲善其德,然而不能為善德者,利敗之也;故君子羞言利名,言利名尚羞之,況居而求利者也。
사람의 本性이 자기의 德을 善하게 하려고 하지 않는 이가 없다. 그러나 善한 德을 행하지 못하는 것은, 利益을 추구하는 마음이 그것을 깨뜨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君子는 利益과 名譽에 대해 말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 이익과 명예를 말하는 일도 오히려 부끄럽게 여기는데, 하물며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이랴!
26. 天子好利則諸侯貪,諸侯貪則大夫鄙,大夫鄙則庶人盜
上之變下,猶風之靡草也
周天子使家父毛伯求金於諸侯,春秋譏之;故天子好利則諸侯貪,諸侯貪則大夫鄙,大夫鄙則庶人盜,上之變下,猶風之靡草也,故為人君者明貴德而賤利以道下,下之為惡,尚不可止;今隱公貪利而身自漁,濟上而行八佾,以此化於國人,國人安得不解於義,解於義而縱其欲,則災害起而臣下僻矣,故其元年始書螟,言災將起,國家將亂云爾。
周나라 天子가 家父와 毛伯을 파견하여 제후에게 재물을 요구하니 《春秋》에서 이 일을 넌지시 비난하였다.
그래서 천자가 利益을 좋아하면 諸侯는 貪慾을 부리고 제후가 탐욕을 부리면 大夫는 鄙陋해지고, 대부가 비루해지면 庶民은 도둑질하게 된다. 위에 있는 사람이 아랫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마치 바람이 풀을 눕게 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임금이 된 사람은 德을 귀중히 여기고 이익을 천시함을 밝힘으로써 아랫사람을 인도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도〉 아랫사람의 나쁜 행위를 오히려 제지할 수가 없는데, 지금 隱公은 이익을 탐하여 몸소 濟水에서 물고기를 잡고 八佾舞를 거행하면서 이런 것을 가지고 백성을 敎化하였으니, 백성들이 어떻게 道義를 행하는 데에 게으르지 않겠는가?
도의를 행하는 데에 게으르면서 자기의 욕망대로 마구 하면 災害가 발생하고 신하는 邪僻해질 것이다. 그 때문에 그의 元年에 螟蟲의 재해를 기록하였으니, 앞으로 재해가 발생하고 국가가 어지러워질 것임을 예언한 것이다.
(* 鄙陋 비루 = 卑陋)
27. 夫鬥者忘其身者也,忘其親者也,忘其君者也
以為智乎,則愚莫大焉;以為利乎,則害莫大焉;以為榮乎,則辱莫大焉
孫卿曰:「夫鬥者忘其身者也,忘其親者也,忘其君者也;行須臾之怒,而鬥終身之禍,然乃為之,是忘其身也;家室離散,親戚被戮,然乃為之,是忘其親也;君上之所致惡,刑法上所大禁也,然乃犯之,是忘其君也。今禽獸猶知近父母,不忘其親也;人而忘其身,內忘其親,上忘其君,是不若禽獸之仁也。凡鬥者皆自以為是而以他人為非,己誠是也,人誠非也,則是己君子而彼小人也;夫以君子而與小人相賊害,是人之所謂以狐亡補犬羊,身塗其炭,豈不過甚矣哉!;人之有鬥何哉?比之狂惑疾病乎,則不可面目人也,而好惡多同,人之鬥誠愚惑夫道者也。詩云:『式號式呼,俾晝作夜』,言鬥行也。」
孫卿(荀子)이 말했다. “싸움을 좋아하는 사람은 자기의 몸을 잊은 사람이고, 자기의 부모를 잊은 사람이며, 자기의 임금을 잊은 사람이다. 잠시의 노여움을 풀어서 죽을 때까지의 禍亂을 모으게 되지만 그런데도 싸움질을 하니 이것은 자기의 몸을 잊은 것이요, 집안사람이 흩어지고 친척이 죽임을 당하지만 그런데도 싸움질을 하니 이것은 자기의 부모를 잊은 것이며, 임금이 싫어하며 형법에서도 크게 금지하는 것이지만 그런데도 이를 범하니 이것은 자기의 임금을 잊은 것이다.
지금 禽獸도 오히려 부모를 친근히 할 줄을 알아서 자기의 부모를 잊지 않는데, 사람이면서 아래로는 자기의 몸을 잊고 안으로는 자기의 부모를 잊으며 위로는 자기의 임금을 잊는다면, 이는 금수의 仁愛만도 못한 것이다. 싸움을 좋아하는 사람은 모두 자기는 옳고 남은 그르다고 여기니, 자기는 진실로 옳고 남은 진실로 그르다면 이는 자기는 君子이고 남은 小人이라는 것이다. 군자로서 소인과 서로 싸워 해친다면 이는 사람들이 이른바 여우 겨드랑이의 흰 털가죽으로 개나 양의 가죽을 꿰매고 몸에 숯가루를 바르는 격이니, 어찌 매우 잘못된 일이 아닌가? 〈이것을〉 智慧로 여긴다면 이보다 큰 어리석음이 없고, 利益으로 여긴다면 이보다 큰 손해가 없고, 榮光으로 여긴다면 이보다 큰 치욕이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싸움질을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정신이 착란한 병에 견준다면 옳지 않다. 얼굴 생김새가 사람이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대부분 똑같다. 그런데 사람들이 싸우는 것은 진실로 어리석고 미혹해서 도리를 잃어서이다. 《詩經》에 ‘부르짖고 외쳐서 낮을 밤으로 삼는다.’ 하였으니, 싸움질함을 이른 말이다.”
28. 不善 以忠化 寇暴以仁圍
子路持劍,孔子問曰:「由,安用此乎?」子路曰:「善,古者固以善之;不善,古者固以自衛。」孔子曰:「君子以忠為質,以仁為衛,不出環堵之內,而聞千里之外;不善以忠化寇,暴以仁圍,何必持劍乎?」子路曰:「由也請攝齊以事先生矣。」
子路가 劍을 지니고 있었는데 孔子께서 물으셨다. “由야! 이 검을 어디에 쓰려느냐?” 자로가 대답하였다. “저를 友好로 대하는 사람은 저도 진실로 우호로 대하고, 저를 우호로 대하지 않는 사람은 진실로 이것을 가지고 스스로 지키려는 것입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君子는 忠으로 바탕을 삼고 仁으로 自衛를 삼아, 담 안에서 나가지 않아도 천 리 밖에까지 이름이 난다. 우호하지 않는 사람은 忠으로 感化시키고 포학한 사람은 仁으로 막아야 되는데, 어찌 꼭 검을 지녀야 되느냐!”
자로가 말했다. “저 由는 옷자락을 여미고 공경한 자세로 선생님을 섬기겠습니다.”
29. 巧詐不如拙誠
樂羊為魏將,以攻中山,其子在中山,中山縣其子示樂羊,樂羊不為衰志,攻之愈急,中山因烹其子而遺之,樂羊食之盡一杯,中山見其誠也,不忍與之戰,果下之,遂為魏文侯開地,文侯賞其功而疑其心。孟孫獵得麑,使秦西巴持歸,其母隨而鳴,秦西巴不忍,縱而與之,孟孫怒逐秦西巴,居一年召以為太子侍,左右曰:「夫秦巴有罪於君,今以為太子傅,何也?」孟孫曰:「夫以一麑而不忍,又將能忍吾子乎?故曰:『巧詐不如拙誠』,樂羊以有功而見疑,秦西巴以有罪而益信;由仁與不仁也。」
樂羊이 魏나라의 장수가 되어 中山을 공격할 때 그의 아들이 중산에 있었는데, 중산 사람이 그의 아들을 높이 매달아서 악양에게 보여주었으나 악양은 투지가 약화되지 않고 더욱 급히 공격하였다. 중산 사람이 이 때문에 그의 아들을 삶아 보내니, 악양은 한 잔의 국을 다 마셔버렸다. 중산 사람들이 그의 誠心을 보고 차마 그들과 교전하지 못하여 결국 항복하자, 마침내 魏 文侯를 위해 영토를 개척하였다. 그런데 문후는 악양의 戰功에 대한 상을 내리면서도 그의 마음을 의심하였다.
孟孫은 사냥을 나가 어린 사슴 한 마리를 잡아 秦西巴에게 가지고 돌아가게 하였다. 그런데 사슴의 어미가 따라오면서 슬피 울자 진서파는 차마 볼 수가 없어서 놓아주고 말았다. 맹손이 노하여 진서파를 내쫓았다가 1년이 지난 뒤에 불러서 太子의 스승으로 삼았다. 그러자 측근이 물었다. “진서파는 主君에게 지은 죄가 있는데 지금 태자의 스승으로 삼은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맹손은 대답했다. “어린 사슴 한 마리도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는데, 또 어찌 내 아들에게 차마 하는 마음이 있겠느냐?”
그래서 “교묘하고 간사함은 졸렬하고 성실함보다 못하다.”라고 하는 것이다. 악양은 전공이 있는데도 의심을 받았고, 진서파는 죄가 있는데도 더욱 신임을 받았으니, 仁과 不仁에 연유한 것이다.
30. 怨不在大,亦不在小
智伯還自衛,三卿燕於藍臺,智襄子戲韓康子而侮段規,智果聞之諫曰:「主弗備難,難必至。」曰:「難將由我,我不為難,誰敢興之。」對曰:「異於是,夫郤氏有車轅之難,趙有孟姬之讒,欒有叔祁之訴,范中行有函冶之難,皆主之所知也。夏書有之曰:『一人三失,怨豈在明,不見是圖。』周書有之曰:『怨不在大,亦不在小。』夫君子能勤小物,故無大患;今主一謀而媿人君、相,又弗備,曰不敢興難,毋乃不可乎?嘻!不可不懼,蚋蟻蜂蠆皆能害人,況君相乎?」不聽,自是五年而有晉陽之難,段規反而殺智伯于師,遂滅智氏。
智伯이 衛나라에서 돌아오니 三卿이 藍臺에서 잔치를 열었다. 智襄子(智伯)가 韓康子를 희롱하고 또 段規에게 모욕을 주었다. 智果가 이를 듣고 諫하였다. “主君께서 災難을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반드시 재난이 닥칠 것입니다.” 그러자 지백이 말했다.
“재난은 나를 따라 일어나니 내가 재난을 일으키지 않으면 누가 감히 일으킨단 말이냐.” 지과는 대답하였다. “하신 말씀과는 다릅니다. 郤氏는 車轅의 災難이 있었고, 趙氏는 孟姬의 讒訴가 있었으며, 欒氏는 叔祁의 誣陷이 있었고, 范氏‧中行氏는 函冶의 災難이 있었으니, 모두 주군께서 아시는 바입니다. 《書經》 〈夏書〉에는 ‘한 사람의 잘못이 많은데 그 원한이 어찌 밝게 드러난 데 있으랴. 드러나지 않았을 때 미리 도모해야 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書經》 〈周書〉에는 ‘원한은 큰 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며, 작은 일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하였습니다. 君子는 작은 일을 부지런히 살피기 때문에 큰 환난이 없는 것입니다. 지금 주군은 한 번의 잔치에서 남의 주군과 家臣의 長을 부끄럽게 만들었는데도 미리 방비하지 않고 ‘감히 재난을 일으키지 못한다.’라고 말하시니, 옳지 않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아, 두려워하지 않으면 안 되니, 모기‧개미‧벌‧전갈도 모두 사람을 해치는데 더구나 주군과 가신의 長이겠습니까?”
智伯은 이 말을 따르지 않았다. 이로부터 5년 뒤에 晉陽의 난이 일어나 단규가 지백을 배반하여 軍中에서 지백을 죽이고 마침내 智氏를 멸망시켰다.
31. 高山浚源,不生草木,松柏之地,其土不肥
智襄子為室美,士茁夕焉,智伯曰:「室美矣夫!」對曰:「美則美矣,抑臣亦有懼也。」智伯曰:「何懼?」對曰:「臣以秉筆事君,記有之曰:高山浚源,不生草木,松柏之地,其土不肥,今土木勝,人臣懼其不安人也。」室成三年而智氏亡。
智襄子가 집을 아름답게 지었는데 士茁이 저녁에 〈지양자를〉 찾아뵈었다. 智伯(智襄子)이 자랑스레 말했다. “집이 아름답구나!” 그러자 사줄이 대답했다. “아름답기는 아름답습니다만 도리어 저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지백이 물었다. “무엇이 두려운가?” 사줄은 대답했다. “臣은 붓을 잡고 문서를 담당하는 일로 主君을 모시고 있습니다. 옛 기록에 ‘높은 산과 가파른 언덕에는 草木이 자라지 않고, 松柏이 자라는 땅은 그 토양이 기름지지 않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이 집은 흙과 나무가 〈사람을〉 압도하고 있으니, 신은 그것들이 사람을 편안히 해주지 못할까 걱정이 되는 것입니다.”
집을 완성한 지 3년 만에 智氏는 멸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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