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본(券三 建本)_ 설원(說苑) _ 유향(劉向)
** 역문은 동양고전DB에서, 원문은 說苑에서 가져옴.
** 이 卷은 근본을 세워야 하는 문제를 提示하였다. 무슨 일을 하는 데 있어 근본 문제가 해결되어야 그 처리 결과가 좋은 것이므로 근본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일곱 가지로 일에 따른 근본을 나누어 제시하였다.
첫째는 시작을 신중히 해야 되니, 좋은 시작이 성공의 기초가 됨을 천명하였다. 다음은 사람을 만드는 근본은 孝이고, 셋째 成長의 근본은 勤學이며, 넷째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을 들었고, 다섯째 백성은 나라의 근본임을 들었다. 여섯째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으로 백성의 衣食을 해결한 다음 敎化를 행해야 하고, 일곱째 世子는 나라를 편안히 하는 근본임을 사례를 통하여 제시하였다.
1. 有正春者無亂秋
孔子曰:「君子務本,本立而道生。」夫本不正者末必倚,始不盛者終必衰。詩云:「原隰既平,泉流既清」。本立而道生,春秋之義;有正春者無亂秋,有正君者無危國,易曰:「建其本而萬物理,失之毫釐,差以千里」。是故君子貴建本而重立始。
孔子께서 “君子는 근본을 힘써야 하니 근본이 확립되면 道가 생긴다.” 하셨으니, 뿌리가 바르지 않으면 가지가 반드시 굽어지고, 처음이 성대하지 않으면 끝에 가서 쇠퇴하는 것이다.
《詩經》에 “높은 곳과 낮은 곳이 이미 고르게 되고 샘물이 이미 맑다.” 하였으니, 근본이 확립되면 道가 생긴다는 것이다. 《春秋》의 大義는 봄을 바르게 시작한 자는 혼란한 가을이 없고, 임금을 바르게 한 자는 위태로운 나라가 없다는 것이다. 《周易》에 “근본을 세우면 만물이 잘 다스려지니, 처음에 털끝만큼이라도 잘못되면 끝에는 천 리만큼이나 어긋나게 된다.” 하였다. 이 때문에 君子는 근본 세우는 일을 귀중히 여기고 처음 시작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2. 多聞而擇焉,所以明智也
魏武侯問元年於吳子,吳子對曰:「言國君必慎始也。」「慎始奈何?」曰:「正之」,「正之奈何?」曰:「明智,智不明,何以見正,多聞而擇焉,所以明智也。是故古者君始聽治,大夫而一言,士而一見,庶人有謁必達,公族請問必語,四方至者勿距,可謂不壅蔽矣;分祿必及,用刑必中,君心必仁,思民之利,除民之害,可謂不失民眾矣;君身必正,近臣必選,大夫不兼官,執民柄者不在一族,可謂不權勢矣。此皆春秋之意,而元年之本也。」
魏 武侯가 吳子에게 元年의 의미에 대해 묻자, 오자가 대답했다. “임금이 반드시 처음 시작할 때 愼重히 해야 함을 말한 것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처음 시작할 때 신중히 하는 것이오?” “일처리를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일처리를 바르게 하는 것이오?”
“밝은 智慧가 있어야 하니, 지혜가 밝지 못하면 어떻게 바른 것을 보겠습니까? 많은 의견을 들어 좋은 의견을 선택하는 것이 지혜를 밝게 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옛날 임금이 처음 政事를 처리할 때 大夫는 한 번 諫言을 하고 士는 한 번 만나고 庶人이 謁見하기를 요청하면 반드시 통하게 합니다. 公族이 물으면 반드시 말하며 사방에서 오는 사람들을 막지 않으면, 막고 가리지 않았다고 이를 만합니다. 祿俸을 반드시 公平하게 나눠주고 刑罰을 반드시 맞게 하며 임금의 마음은 반드시 仁慈하여 백성의 利益을 생각하고 백성의 害惡을 제거하면, 백성의 마음을 잊지 않았다고 이를 만합니다. 임금은 몸가짐을 반드시 바르게 하고 가까이 둘 신하를 반드시 嚴選하며 大夫는 兼職을 시키지 않고 백성을 다스리는 권력을 동일한 親族에 몰아주지 않으면, 權勢를 부리지 않는다고 이를 만합니다. 이것이 《春秋》에 들어 있는 뜻이고, 元年의 意義입니다.”
3. 行身有六本,本立焉,然後為君子立體有義矣
孔子曰:行身有六本,本立焉,然後為君子立體有義矣,而孝為本;處喪有禮矣,而哀為本;戰陣有隊矣,而勇為本;政治有理矣,而能為本;居國有禮矣,而嗣為本;生才有時矣,而力為本。置本不固,無務豐末;親戚不悅,無務外交;事無終始,無務多業;聞記不言,無務多談;比近不說,無務修遠。是以反本修邇,君子之道也。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몸을 바르게 하여 處世하는 데에 여섯 가지 根本이 있으니, 근본을 확립하여야 그런 뒤에 君子가 된다. 몸을 바르게 處世하는 데 準則이 있으니 孝가 근본이 되고, 喪을 치르는 데 禮儀가 있으니 슬픔이 근본이 되고, 전쟁에 임하여 隊伍가 있으니 勇敢함이 근본이 되고, 정치하는 데 條理가 있으니 農業이 근본이 되고, 나라를 유지하는 데 禮法이 있으니 後嗣를 세우는 것이 근본이 되고, 財物을 생산하는 데 時期가 있으니 부지런히 힘쓰는 것이 근본이 된다.
근본을 세우는 일이 견고하지 못하면 枝葉을 무성하게 하는 데 힘쓰지 말며, 친척이 기쁘게 따르지 않으면 외부 사람과 사귀는 데 힘쓰지 말며, 하는 일에 시작은 있으나 결말이 없으면 여러 가지 사업에 힘쓰지 말며, 기억하는 것은 많으나 말로 표현해내지 못하면 말을 많이 나누는 것에 힘쓰지 말며, 가까이 있는 사람이 좋아하지 않으면 먼 지방 사람과 교제하는 데 힘쓰지 말아야 한다.
이 때문에 근본을 돌이켜 가까운 신변을 修養하는 것이 君子가 처세하는 도리이다.”
4. 天之所生,地之所養,莫貴乎人, 人之道,莫大乎父子之親,君臣之義
天之所生,地之所養,莫貴乎人, 人之道,莫大乎父子之親,君臣之義;父道聖,子道仁,君道義,臣道忠。賢父之於子也,慈惠以生之,教誨以成之,養其誼,藏其偽,時其節,慎其施;子年七歲以上,父為之擇明師,選良友,勿使見惡,少漸之以善,使之早化。故賢子之事親,發言陳辭,應對不悖乎耳;趣走進退,容貌不悖乎目;卑體賤身,不悖乎心。君子之事親以積德,子者親之本也,無所推而不從命,推而不從命者,惟害親者也,故親之所安子皆供之。賢臣之事君也,受官之日,以主為父,以國為家,以士人為兄弟;故苟有可以安國家,利人民者不避其難,不憚其勞,以成其義;故其君亦有助之以遂其德。夫君臣之與百姓,轉相為本,如循環無端,夫子亦云,人之行莫大於孝;孝行成於內而嘉號佈於外,是謂建之於本而榮華自茂矣。君以臣為本,臣以君為本;父以子為本,子以父為本,棄其本,榮華槁矣。
하늘이 낳은 것과 땅이 기른 것 중에 사람보다 尊貴한 것은 없으니, 사람의 도리는 父子간의 親愛와 君臣간의 義理보다 중대한 것이 없다.
아버지의 도리는 슬기롭고, 자식의 도리는 사랑하고, 임금의 도리는 正義롭고, 신하의 도리는 忠誠하는 데 있다. 현명한 아버지는 자식에 대하여 사랑과 은혜로 기르고 가르치고 타일러 성취시켜, 도덕규범을 기르며 거짓된 행위를 단속하며 節操를 때에 맞게 하며 베풀기를 신중히 하게 한다.
자식의 나이 일곱 살 이상이 되면 아버지는 자식을 위하여 賢明한 스승을 가리고 善良한 벗을 뽑아 사악한 일을 보지 못하게 하고 조금씩 善에 물들어 조기에 교화되도록 한다. 그러므로 어질고 착한 아들이 부모를 섬길 때, 말을 하고 생각을 표현하는 사이에 대답하는 말이 부모의 귀에 거슬리지 않으며, 빨리 걷고 進退하는 사이에 용모가 부모의 눈에 거슬리지 않으며, 몸을 낮추고 겸손히 하여 부모의 마음에 거슬리지 않으니, 君子는 부모를 섬김으로써 德行을 쌓는 것이다.
자식은 부모의 근본이다. 미루면서 명을 따르지 않는 일이 없어야 되니, 미루면서 명을 따르지 않는 자는 부모를 해치는 자이다. 그 때문에 부모가 편안한 것을 자식은 모두 제공해야 한다. 현명한 신하가 임금을 섬길 적에 벼슬을 받는 날 임금을 아버지로 여기고 나라를 집으로 여기며 士人을 형제로 여긴다. 그러므로 만일 나라를 안정시키고 백성을 이롭게 할 만한 일이 있으면 어려움을 회피하지 않으며 수고로움을 꺼리지 않고서 신하로서의 의리를 이루는 것이다. 그 때문에 임금도 그를 도와서 德을 이루게 한다. 君臣과 백성은 서로서로 근본이 되어 돌고 돌아 끝이 없는 것이다.
孔子도 “사람의 행실이 孝道보다 위대한 일이 없다.” 하셨다. 孝行이 집안에서 이루어져 좋은 이름이 밖에 전파되니, 이것을 일러 뿌리를 북돋아 세우면 꽃이 저절로 무성해진다고 하는 것이다. 임금은 신하를 근본으로 삼고 신하는 임금을 근본으로 삼으며, 아버지는 자식을 근본으로 삼고 자식은 아버지를 근본으로 삼아야 되니, 뿌리를 폐기하면 꽃이 말라 시드는 것이다.
5. 負重道遠者,不擇地而休;家貧親老者,不擇祿而仕
子路曰:負重道遠者,不擇地而休;家貧親老者,不擇祿而仕。昔者由事二親之時,常食藜藿之實而為親負米百里之外,親沒之後,南遊於楚,從車百乘,積粟萬鐘,累茵而坐,列鼎而食,願食藜藿負米之時不可復得也;枯魚銜索,幾何不蠹,二親之壽,忽如過隙,草木欲長,霜露不使,賢者欲養,二親不待,故曰:家貧親老不擇祿而仕也。
子路가 말했다.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사람은 땅을 가려서 쉬지 않고, 집이 가난하고 늙은 父母를 모시는 사람은 祿俸의 많고 적음을 가리지 않고 벼슬하는 것이다. 예전에 내가 부모를 섬길 때 항상 명아주와 콩잎의 거친 음식을 먹고 부모를 위하여 백 리 밖에서 쌀을 지고 왔었다. 부모가 돌아가신 후에 남쪽의 楚나라에 가 벼슬하여 백 채의 수레가 뒤를 따르고 萬鍾의 곡식을 저장하여 여러 겹으로 깐 자리에 앉고 많은 음식을 벌려놓고 먹었으나, 명아주와 콩잎을 먹고 부모를 위하여 쌀을 짊어지고 싶어도 다시는 되지 않는다. 새끼에 꿰어놓은 마른 물고기는 얼마 동안이나 좀이 슬지 않겠는가? 부모님의 壽命은 말이 틈새를 지나가는 것처럼 빠르다. 草木이 크고 싶어도 서리와 이슬이 크지 못하게 하고, 어진 이가 부모를 봉양하고 싶어도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집이 가난하고 부모가 늙으면 녹봉의 많고 적음을 가리지 않고 벼슬하는 것이다.’ 하고 말한 것이다.”
6. 伯禽與康叔封朝於成王,見周公三見而三笞
伯禽與康叔封朝於成王,見周公三見而三笞,康叔有駭色,謂伯禽曰:「有商子者,賢人也,與子見之。」康叔封與伯禽見商子曰:「某某也,日吾二子者朝乎成王,見周公三見而三笞,其說何也?」商子曰:「二子盍相與觀乎南山之陽有木焉,名曰橋。」二子者往觀乎南山之陽,見橋竦焉實而仰,反以告乎商子,商子曰:「橋者父道也。」商子曰:「二子盍相與觀乎南山之陰,有木焉,名曰梓。」二子者往觀乎南山之陰,見梓勃焉實而俯,反以告商子,商子曰:「梓者、子道也。」二子者明日見乎周公,入門而趨,登堂而跪,周公拂其首,勞而食之曰:「安見君子?」二子對曰:「見商子。」周公曰:「君子哉!商子也。」
伯禽이 康叔 封과 함께 成王께 朝見하고 周公을 뵈었는데, 세 번 뵐 적마다 세 차례 매를 쳤다. 강숙 봉이 놀라는 안색을 띠면서 백금에게 말했다. “商子라는 사람이 있는데 賢人이다. 자네와 함께 만나보리라.” 강숙 봉이 백금과 함께 상자를 만나고 말했다. “저희들 아무 아무가 일전에 둘이서 성왕께 조현하고 주공을 뵈었는데, 세 번 뵐 적마다 세 차례 매를 쳤으니,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상자가 말했다. “두 분은 어찌 함께 남산 남쪽에 가보지 않습니까? 그곳에 나무가 있으니 이름을 橋라고 합니다.” 두 사람이 남산의 남쪽에 가서 살펴보니 橋木이 높이 솟아서 열매가 달려 위로 향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돌아와 상자에게 본 대로 보고하자, 상자가 말했다. “橋木은 아버지의 도리입니다.” 상자가 다시 말했다. “두 분은 어찌 함께 남산 북쪽에 가보지 않습니까? 그곳에 나무가 있으니 이름을 梓라고 합니다.” 두 사람이 남산의 북쪽에 가서 살펴보니 梓木이 무성하여 열매가 달려 숙이고 있는 것을 보았다. 돌아와 상자에게 본 대로 보고하자, 상자가 말했다. “梓木은 아들의 도리입니다.”
두 사람이 이튿날 주공을 뵐 때 문에 들어가면서는 종종걸음을 하고, 堂에 올라서는 무릎을 꿇었다. 주공이 머리를 쓰다듬고 위로하며 음식을 먹게 하고 말했다. “어떤 君子를 만났느냐?” 두 사람이 대답하였다. “상자를 만났습니다.” 주공이 말했다. “君子로구나, 상자여!”
7. 小棰則待,大棰則走
曾子芸瓜而誤斬其根,曾皙怒,援大杖擊之,曾子仆地;有頃蘇,蹶然而起,進曰:「曩者參得罪於大人,大人用力教參,得無疾乎!」退屏鼓琴而歌,欲令曾皙聽其歌聲,令知其平也。孔子聞之,告門人曰:「參來勿內也!」曾子自以無罪,使人謝孔子,孔子曰:「汝聞瞽叟有子名曰舜,舜之事父也,索而使之,未嘗不在側,求而殺之,未嘗可得;小棰則待,大棰則走,以逃暴怒也。今子委身以待暴怒,立體而不去,殺身以陷父,不義不孝,孰是大乎?汝非天子之民邪?殺天子之民罪奚如?」以曾子之材,又居孔子之門,有罪不自知處義,難乎!
曾子가 외밭의 풀을 매다가 잘못하여 외의 뿌리를 자르고 말았다. 그의 아버지 曾晳이 화를 내어 큰 몽둥이를 가지고 내리치니 증자는 땅바닥에 고꾸라졌다. 한참 후에 깨어난 증자는 벌떡 일어나 아버지께 말씀드렸다. “조금 전에 제가 아버님께 죄를 지어 아버님께서 힘을 써서 저를 가르쳐주셨습니다. 피곤하시지나 않으십니까?” 그러고는 물러나와 琴을 타며 노래를 불러 증석이 자기의 노래를 듣게 하여 자기의 평안함을 알게 하려고 하였다.
孔子께서 이 소문을 들으시고 門人에게 이르셨다. “曾參이 여기 오거든 들여보내지 마라.” 증자는 자신은 죄가 없다고 여겨 사람을 보내 공자에게 따지게 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瞽叟에게 舜이라는 아들이 있었음을 듣지 못했느냐? 순이 그의 아버지를 섬길 때 자기를 찾아 일을 시키려 하면 일찍이 곁에 없었던 적이 없었고, 자기를 찾아 죽이려고 하면 일찍이 찾을 수가 없었다. 작은 회초리로 칠 때는 그 매를 맞았고, 큰 몽둥이로 칠 때는 달아나서 아버지의 激怒에는 도망쳤다. 지금 너는 격노한 아버지에게 몸을 맡겨 몸을 곧추 세운 채 피해 가지 않아서 네 몸을 죽여 아버지를 不義에 빠뜨리려 하였으니, 이보다 큰 不孝가 어디 있겠느냐? 너는 天子의 백성이 아니더냐? 천자의 백성을 죽이면 그 죄가 얼마나 크겠느냐?” 증자의 材質로 게다가 공자 문하에 있었는데도 죄가 되는 것을 스스로 몰랐으니, 義理를 지키기는 어렵구나!
8. 父母怒之,不作於意,不見於色,深受其罪,使可哀憐,上也
伯俞有過,其母笞之泣,其母曰:「他日笞子未嘗見泣,今泣何也?」對曰:「他日俞得罪笞嘗痛,今母力不能使痛,是以泣。」故曰父母怒之,不作於意,不見於色,深受其罪,使可哀憐,上也;父母怒之,不作於意,不見其色,其次也;父母怒之,作於意,見於色,下也。
伯兪가 잘못을 저지른 일이 있어서 그의 어머니가 매질을 하자 흐느껴 울었다. 그의 어머니가 말했다. “전날에는 너를 때려도 우는 것을 볼 수 없었는데, 지금 우는 것은 무슨 까닭이냐?” 백유가 대답했다. “전날에는 제가 죄를 지어 매를 맞으면 아픔을 느꼈었는데 지금은 어머니의 힘이 쇠약하여 아픔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다. “부모가 화를 내시거든 마음에 원망을 일으키지 않고 顔色에 불만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깊이 자기의 죄를 받아들여 부모가 자기를 가엾게 여기도록 하는 것이 最上의 태도요, 부모가 화를 내시거든 마음에 원망을 일으키지 않고 안색에 불만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次善의 태도요, 부모가 화를 내시거든 마음에 원망을 일으키고 안색에 불만을 나타내는 것이 最下의 태도이다.”
9. 時過然後學,則勤苦而難成;雜施而不遜,則壞亂而不治;獨學而無友,則孤陋而寡聞
成人有德,小子有造,大學之教也;時禁於其未發之曰預,因其可之曰時,相觀於善之曰磨,學不陵節而施之曰馴。發然後禁,則扞格而不勝;時過然後學,則勤苦而難成;雜施而不遜,則壞亂而不治;獨學而無友,則孤陋而寡聞。故曰有昭辟雍,有賢泮宮,田里周行,濟濟鏘鏘,而相從執質,有族以文。
成年이 된 사람은 德을 이룸이 있고 어린아이는 학문을 익힘이 있는 것이 太學의 교육이다.
나쁜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때 금지하는 것을 預防이라 하고, 가능한 때를 따라 가르치는 것을 適時라 하며, 서로 좋은 점을 보고 따르는 것을 講磨라 하고, 배움에 절도를 넘지 않고 가르치는 것을 馴이라 한다.
나쁜 일이 발생한 뒤에 금지하면 서로 부딪쳐서 극복하지 못하고, 시기가 지난 뒤에 배우면 애만 쓰지 이루기 어려우며, 잡다하게 가르쳐서 순서를 따르지 않으면 혼란하여 다스려지지 않고, 혼자서 공부하여 도와주는 벗이 없으면 학식이 좁고 견문이 적다.
그 때문에 이런 말이 있다. “天子에게는 밝은 辟雍이 있고 제후에게는 좋은 泮宮이 있어서, 마을과 큰길에 威儀가 훌륭한 학자가 많아 폐백을 가지고 서로 따라 文學으로 同類를 모은다.”
10. 人皆知以食愈饑,莫知以學愈愚
周召公年十九,見正而冠,冠則可以為方伯諸侯矣。人之幼稚童蒙之時,非求師正本,無以立身全性。夫幼者必愚,愚者妄行;愚者妄行,不能保身,孟子曰:人皆知以食愈饑,莫知以學愈愚,故善材之幼者必勤於學問以修其性。今人誠能砥礪其材,自誠其神明,睹物之應,信道之要,觀始卒之端,覽無外之境,逍遙乎無方之內,彷徉乎塵埃之外,卓然獨立,超然絕世,此上聖之所游神也。然晚世之人,莫能閒居心思,鼓琴讀書,追觀上古,友賢大夫;學問講辯日以自虞,疏遠世事分明利害,籌策得失,以觀禍福,設義立度,以為法式;窮追本末,究事之情,死有遺業,生有榮名;此皆人材之所能建也,然莫能為者,偷慢懈墮,多暇日之故也,是以失本而無名。夫學者,崇名立身之本也,儀狀齊等而飾貌者好,質性同倫而學問者智;是故砥礪琢磨非金也,而可以利金;詩書壁立,非我也,而可以厲心。夫問訊之士,日夜興起,厲中益知,以分別理,是故處身則全,立身不殆,士苟欲深明博察,以垂榮名,而不好問訊之道,則是伐智本而塞智原也,何以立軀也?騏驥雖疾,不遇伯樂,不致千里;干將雖利,非人力不能自斷焉;烏號之弓雖良,不得排檠,不能自任;人才雖高,不務學問,不能致聖。水積成川,則蛟龍生焉;土積成山,則豫樟生焉;學積成聖,則富貴尊顯至焉。千金之裘,非一狐之皮;台廟之榱,非一木之枝;先王之法,非一士之智也。故曰:訊問者智之本,思慮者智之道也。中庸曰:「好問近乎智,力行近乎仁,知恥近乎勇。」積小之能大者,其惟仲尼乎!學者所以反情治性盡才者也,親賢學問,所以長德也;論交合友,所以相致也。詩云:「如切如磋,如琢如磨」,此之謂也。
周나라 召公의 나이 19세에 바른 품성이 드러나고 冠禮를 행하니, 관례를 하면 諸侯의 方伯이 될 수 있다. 사람이 어린 童蒙일 때에 스승을 찾아 근본을 바르게 하지 않으면, 수양하여 몸을 바르게 세우고 本性을 온전히 할 수가 없다. 어린이는 반드시 어리석으니 어리석은 사람은 함부로 행동하고, 어리석은 사람이 함부로 행동하면 몸을 보전하지 못한다.
孟子는 “사람은 모두 밥을 먹어서 배고픔을 면할 줄은 알지만, 배워서 어리석음을 고칠 줄은 모른다.”고 하였다. 그 때문에 좋은 재질을 가진 어린이는 반드시 부지런히 학문에 힘써서 본성을 수양해야 한다. 지금 사람이 진실로 자기의 재질을 갈고 닦아 스스로 자기의 精神을 성실히 하면 사물의 호응함을 보고 道義의 요체를 통하며, 사물의 처음과 끝의 端緖를 관찰하고 광대하여 끝이 없는 세계를 보게 되어, 한계가 없는 그 안에서 逍遙하고 세상의 티끌이 없는 밖에서 徘徊하여 우뚝 혼자 나아가고 초연히 세속에서 벗어나니, 이것이 최고의 성인이 마음이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것이다. 그러나 근세 사람은 잘하지 못한다.
한가롭게 거처하고 고요히 사색하면서 琴을 타고 책을 읽으며 上古의 성인을 돌이켜 관찰하여 현명한 大夫와 벗하며, 학문하고 강론‧변별하여 날마다 스스로 즐기며, 세상일을 멀리하여 利害를 분명히 하며, 得失을 헤아려서 禍福을 미리 관찰하며, 法度를 세워 法式으로 삼으며, 本末을 철저히 추구하여 사물의 실정을 찾으며, 죽어서는 事業을 남기고 살아서는 영광된 名聲이 있어야 되니, 이는 모두 인재라면 미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잘하지 못하는 이유는 소홀하고 게을러서 일없이 한가롭게 지내는 날이 많기 때문이니, 이러므로 근본을 잃어서 좋은 명성이 없는 것이다. 학문은 명성을 높이고 수양하여 몸을 바로 세우는 근본이다.
儀表와 容貌가 똑같은 경우라면 용모를 꾸민 사람이 더욱 아름답고, 資質과 品性이 같은 경우라면 학문한 사람이 더욱 지혜롭다. 이 때문에 연장을 가는 숫돌은 쇠가 아니지만 쇠를 날카롭게 할 수 있고, 《詩經》‧《書經》의 법도에 맞는 말은 내가 쓴 것이 아니지만 내 마음을 갈고 닦을 수 있다. 묻고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밤낮으로 마음을 진작하여 마음을 갈고 닦아 더욱 지혜로워져서 事理를 구별한다. 이 때문에 처신을 완전하게 하고 수양하여 몸을 바로 세워 위태로워지지 않는다.
사람이 만일 깊이 밝히고 널리 살펴서 영광된 명성을 전하려고 하면서 배우고 묻는 도리를 좋아하지 않으면, 이것은 지혜의 근본을 해치고 지혜의 근원을 막는 것이다. 어떻게 수양하여 몸을 바로 세우겠는가.
천리마는 빠르지만 伯樂을 만나지 못하면 천 리를 갈 수가 없고, 干將은 날카로운 劍이지만 사람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제 스스로는 물건을 자르지 못하고, 烏號는 아주 좋은 활이지만 도지개를 얻지 못하면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고, 사람은 재주가 높더라도 학문에 힘쓰지 않으면 聖人에 이르지 못한다. 많은 물이 모여 큰 내를 이루면 蛟龍이 생존하고, 많은 흙이 쌓여 산을 이루면 좋은 豫樟나무가 자라고, 많은 학문이 쌓여 성인을 이루면 富貴와 尊顯한 지위가 오게 된다.
千金의 값을 가진 갖옷은 한 마리 여우 가죽으로 만든 것이 아니고, 樓閣과 宗廟의 서까래는 한 나무의 가지로 지은 것이 아니고, 先王의 禮法은 한 지식인의 지혜로 제정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다. “묻고 배우는 것은 지혜의 근본이고, 思考를 잘하는 것은 지혜를 소유하는 길이다.” 《中庸》에 말했다. “묻기를 좋아하는 일은 智에 가깝고, 힘써 실천하는 일은 仁에 가깝고,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勇에 가깝다.”
작은 일을 쌓아 위대하게 된 사람은 孔子일 것이다. 학문을 탐구하는 것은 바른 性情을 회복하고 品性을 수양하며 재능을 다하는 것이다. 어진 이를 친근히 하여 배우고 묻는 것은 德이 자라게 하는 것이고, 친구와 토론하여 의기가 투합하는 것은 서로 도와 이루어주는 것이다. 《詩經》에 “자르듯이 갈듯이 하며, 쪼듯이 갈듯이 한다.” 하였는데, 이를 이르는 말이다.
11. 譬猶食谷衣絲,而非耕織者也;載於船車,服而安之,而非主匠者也;食於釜甑,須以生活,而非陶冶者也
今夫闢地殖谷,以養生送死,銳金石,雜草藥以攻疾,各知構室屋以避暑雨,累台榭以避潤濕,入知親其親,出知尊其君,內有男女之別,外有朋友之際,此聖人之德教,儒者受之傳之,以教誨於後世。今夫晚世之惡人,反非儒者曰:何以儒為?如此人者,是非本也,譬猶食谷衣絲,而非耕織者也;載於船車,服而安之,而非主匠者也;食於釜甑,須以生活,而非陶冶者也;此言違於情而行蒙於心者也。如此人者,骨肉不親也,秀士不友也,此三代之棄民也,人君之所不赦也。故詩云:「投畀豺虎,豺虎不食,投畀有北,有北不受,投畀有昊。」此之謂也。
토지를 개간하고 곡식을 심어 살았을 적에는 봉양하고 죽었을 적에는 후하게 장례를 치러 보내며, 쇠와 돌을 날카롭게 갈고 여러 藥草를 혼합하여 病을 치료하며, 사람마다 집을 지어 더위와 비를 피하고 누각을 쌓아서 습기를 피할 줄을 안다. 집에 들어와서는 부모를 親愛하고 조정에 나가서는 임금을 尊敬하며, 집 안에서는 남녀 사이의 분별이 있고 집 밖에서는 친구와 사귐이 있으니, 이것이 道德으로 사람을 인도하는 聖人의 가르침이다. 儒者는 이를 받아 전하여 후세 사람을 가르치고 깨우쳐주는 것이다.
근세 이후의 惡人은 도리어 儒者를 비난하여 “무엇하러 儒家를 하느냐?”라고 하니, 이와 같은 사람은 바로 근본을 비난하는 것이다. 비유하면 곡식을 먹고 織物을 입으면서도 농사짓고 길쌈하는 사람을 비난하고, 배나 수레를 타면서 사용하고 편안함을 누리면서도 工匠을 비난하고, 가마솥과 시루에 밥을 지어 이것에 의지하여 살면서도 陶工과 대장장이를 비난하는 사람과 같다. 이는 常情을 위배하고 마음이 蒙昧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람은 부자‧형제를 친애하지 않으며, 뛰어난 인재와 벗하지 않으니, 이것은 三代時代의 버린 사람으로 임금이 용서하지 않는다. 그래서 《詩經》에 “승냥이나 호랑이에게 던져주리라. 승냥이나 호랑이가 잡아먹지 않거든, 추운 북방에 던져버리리라. 추운 북방이 받아들이지 않거든, 멀리 하늘에 던져버리리라.” 하였으니, 이를 이르는 말이다.
12. 人知糞其田,莫知糞其心
孟子曰:人知糞其田,莫知糞其心;糞田莫過利曲得粟,糞心易行而得其所欲。何謂糞心?博學多聞;何謂易行?一性止淫也。
孟子가 말했다. “사람은 자기의 밭에 거름을 주어 가꿀 줄은 알되, 자기의 마음은 거름을 주어 가꿀 줄은 모른다. 밭에 거름을 주어 가꾸는 것은 곡식의 싹이 잘 자라 많은 곡식을 얻는 데 지나지 않으나, 마음에 거름을 주어 가꾸면 행실을 改善하여 원하는 바를 얻게 된다. 무엇을 마음에 거름을 주어 가꾼다고 하는가? 널리 배우고 많은 見聞을 하는 것이다. 무엇을 행실을 改善한다고 하는가? 純一한 본성을 지키고 邪惡한 행위를 금지하는 것이다.”
13. 學所以益才也,礪所以致刃也, 吾嘗幽處而深思,不若學之速;吾嘗跂而望,不若登高之博見
子思曰:學所以益才也,礪所以致刃也,吾嘗幽處而深思,不若學之速;吾嘗跂而望,不若登高之博見。故順風而呼,聲不加疾而聞者眾;登丘而招,臂不加長而見者遠。故魚乘於水,鳥乘於風,草木乘於時。
子思가 말했다. “배움은 재주를 높이는 수단이고, 숫돌은 칼날을 날카롭게 세우는 도구이다. 내 일찍이 깊고 고요한 곳에 처하여 깊이 사색해보았으나 배워서 빨리 효과를 얻는 것만 못하고, 내 일찍이 발뒤꿈치를 들고 바라보았으나 높은 곳에 올라가서 널리 보는 것만 못하였다. 그래서 바람이 부는 방향을 따라 소리치면 소리를 더욱 빠르게 하지 않아도 듣는 이가 많고, 높은 언덕에 올라 손짓하여 부르면 팔을 더욱 길게 하지 않아도 먼 곳에 있는 사람도 보게 된다. 그래서 물고기는 물을 타고 헤엄치며, 새는 바람을 타고 날며, 草木은 節氣를 타고 生長하는 것이다.”
14. 可以與人終日而不倦者,其惟學乎
孔子曰:可以與人終日而不倦者,其惟學乎!其身體不足觀也,其勇力不足憚也,其先祖不足稱也,其族姓不足道也;然而可以聞四方而昭於諸侯者,其惟學乎!詩曰:「不僭不亡,率由舊章」,夫學之謂也。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과 함께 온종일 이야기하여도 권태롭지 않은 것은 아마 學問일 것이다. 그의 身體는 볼 만한 것이 없으며, 그의 勇力은 두려울 만한 것이 없으며, 그의 先祖는 칭송할 만한 것이 없으며, 그의 門閥은 말할 만한 것이 없으나, 그럼에도 사방에 이름이 알려지고 제후에게 드러나는 것은 다만 학문일 것이다.”
《詩經》에 “잘못하지도 않고 잊지도 않아서, 先王의 옛 典章을 따른다.” 하였으니, 학문함을 이르는 말이다.
15. 君子不可以不學,見人不可以不飾
孔子曰:鯉,君子不可以不學,見人不可以不飾;不飾則無根,無根則失理;失理則不忠,不忠則失禮,失禮則不立。夫遠而有光者,飾也;近而逾明者,學也。譬之如污池,水潦注焉,菅蒲生之,從上觀之,知其非源也。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鯉야! 君子는 배우지 않으면 안 되고, 사람을 만날 때는 꾸미지 않으면 안 된다. 꾸미지 않으면 좋은 容貌가 없고, 좋은 용모가 없으면 恭敬함을 잃고, 공경함을 잃으면 마음을 다하지 않고, 마음을 다하지 않으면 禮를 잃고, 禮를 잃으면 세상에 서지 못한다. 먼 곳에 있으면서 빛이 나는 것은 꾸민 효과이고,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 더욱 밝은 것은 學問의 효과이다. 비유하면 학문은 연못과 같아서 빗물이 흘러들면 왕골이나 부들이 자라니, 물길의 위에서 볼 때 그 누가 源泉이 아님을 알겠느냐!”
16. 春秋,國之鑒也
公扈子曰:有國者不可以不學,春秋,生而尊者驕,生而富者傲,生而富貴,又無鑒而自得者鮮矣。春秋,國之鑒也,春秋之中,弒君三十六,亡國五十二,諸侯奔走不得保社稷者甚眾,未有不先見而後從之者也。
公扈子가 말했다. “나라를 소유한 君主는 《春秋》를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나면서부터 尊貴한 사람은 驕慢하고, 나면서부터 富裕한 사람은 傲慢하니, 나면서부터 富貴하고, 또 거울로 자신을 비춰보듯이 警戒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보전한 사람은 드물다. 《춘추》는 나라의 거울이다. 《춘추》의 기록 중에 임금을 시해한 사건이 36건이고, 멸망한 나라가 52국이며, 도망쳐서 社稷을 보전하지 못한 諸侯가 매우 많으니, 먼저 그런 나라들을 보고 난 뒤에 자기도 그 길을 따르는 자는 있지 않다.
17. 少而好學,如日出之陽;壯而好學,如日中之光;老而好學,如炳燭之明。炳燭之明
晉平公問於師曠曰:「吾年七十欲學,恐已暮矣。」師曠曰:「何不炳燭乎?」平公曰:「安有為人臣而戲其君乎?」師曠曰:「盲臣安敢戲其君乎?臣聞之:少而好學,如日出之陽;壯而好學,如日中之光;老而好學,如炳燭之明。炳燭之明,孰與昧行乎?」平公曰:「善哉!」
晉 平公이 師曠에게 물었다. “내 나이 70이니 배우고 싶으나 이미 늦지 않았을까 걱정된다.” 사광이 말했다. “어찌 촛불을 밝히지 않으십니까?” 평공이 말했다. “어찌 신하가 되어 그 임금을 희롱하느냐.” 사광이 말했다. “눈이 먼 신하가 어떻게 감히 임금님을 희롱하겠습니까! 臣은 들으니 ‘젊어서 학문을 좋아하는 것은 막 떠오르는 햇빛과 같고, 壯年에 학문을 좋아하는 것은 正午의 햇빛과 같고, 늙어서 학문을 좋아하는 것은 촛불을 켠 밝음과 같다.’고 합니다. 촛불을 켜서 밝히고 가는 것과 어둠 속에서 가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낫습니까?” 평공이 말했다. “훌륭한 말이다.”
18. 湯稱學聖王之道者,譬如日焉;靜居獨思,譬如火焉
河間獻王曰:「湯稱學聖王之道者,譬如日焉;靜居獨思,譬如火焉。夫捨學聖王之道,若捨日之光,何乃獨思火之明也;可以見小耳,未可用大知,惟學問可以廣明德慧也。」
河間獻王이 말했다. “湯王이 말하기를 ‘聖王의 道를 배우는 것은 비유하면 태양과 같고, 조용한 곳에 거처하며 홀로 사색하는 것은 불과 같다.’ 하였다. 성왕의 도를 배우는 일을 버리는 것은 마치 태양의 빛을 버리는 것과 같다. 어찌 불의 밝음과 같은, 홀로 사색하는 일을 하리오? 불의 밝음은 작은 것만을 볼 수 있을 뿐이고, 큰 지혜를 얻는 데는 쓸 수가 없다. 오직 學問이라야 도덕과 지혜를 넓히고 밝게 할 수 있다.”
19. 為者常成,行者常至
梁丘據謂晏子曰:「吾至死不及夫子矣。」晏子曰:「嬰聞之,為者常成,行者常至;嬰非有異於人也,常為而不置,常行而不休者,故難及也。」
梁丘據가 晏子에게 말했다. “저는 죽어도 선생께 미치지 못하겠습니다.” 안자가 말했다. “나는 들으니 ‘끊임없이 하는 사람은 항상 성공하고, 끊임없이 가는 사람은 항상 도달한다.’ 했소. 나는 남과 다른 점이 있지 않소. 늘 일을 하여 놓지 않았고, 늘 가면서 쉬지 않았기 때문에 나에게 미치기 어려운 것이오."
20. 人將休,吾將不休;人將臥,吾不敢臥
寧越,中牟鄙人也,苦耕之勞,謂其友曰:「何為而可以免此苦也?」友曰:「莫如學,學二十年則可以達矣。」寧越曰:「請十五歲,人將休,吾將不休;人將臥,吾不敢臥。」十五歲學而周威公師之。夫走者之速也,而過二里止;步者之遲也,而百里不止。今寧越之材而久不止,其為諸侯師,豈不宜哉!
甯越은 中牟의 시골 사람이다. 농사짓는 노고를 괴롭게 여겼는데, 그의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하면 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친구가 말했다. “공부하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으니 30년 동안만 공부하면 顯達할 것이다.” 영월이 말했다. “15년 동안만 공부하겠으니, 남이 쉬거든 나는 쉬지 않고 남이 누워 자거든 나는 감히 누워 자지 않고 공부할 것이다.”
영월은 15년 동안 공부하여 周나라 威公이 그를 스승으로 삼았다. 달리는 사람은 속도가 빠르지만 2리 길을 지나지 못하여 멈추고, 걸어가는 사람은 속도가 느리지만 백 리를 가도 멈추지 않는다. 지금 영월의 재능으로 오랫동안 멈추지 않고 공부하였으니, 그가 諸侯의 스승이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21. 括而羽之,鏃而砥礪之,其入不益深乎?
孔子謂子路曰:「汝何好?」子路曰:「好長劍。」孔子曰:「非此之問也,請以汝之所能,加之以學,豈可及哉!」子路曰:「學亦有益乎?」孔子曰:「夫人君無諫臣則失政;士無教交,則失德;狂馬不釋其策,操弓不返於檠;木受繩則直,人受諫則聖;受學重問,孰不順成;毀仁惡士,且近於刑。君子不可以不學。」子路曰:「南山有竹,弗揉自直,斬而射之,通於犀革,又何學為乎?」孔子曰:「括而羽之,鏃而砥礪之,其入不益深乎?」子路拜曰:「敬受教哉!」
孔子께서 子路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무얼 좋아하느냐?” 자로가 말했다. “저는 長劍을 좋아합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을 물은 게 아니다. 너의 타고난 재능으로 배우는 일을 더한다면 남이 어찌 너에게 미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자로가 말했다. “배우는 것도 이익됨이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임금에게 諫하는 신하가 없으면 정치를 잘못하게 되고, 士에게 가르쳐주는 친구가 없으면 좋은 말을 듣지 못한다. 미친 듯이 달리는 말은 채찍을 놓을 수 없고, 말려서 굳어진 활은 도지개에 되돌려 바로잡지 못한다. 나무는 먹줄을 받으면 곧아지고 사람은 諫하는 말을 받아들이면 거룩하고 슬기로워지니, 학문을 하고 묻는 일을 중시하면 누군들 순조롭게 이루지 않겠느냐! 仁을 헐뜯고 士를 미워하면 장차 형벌을 받는 데에 가까울 것이니, 君子는 학문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로가 말했다. “南山에 대나무가 있는데 바로잡지 않아도 절로 곧아서, 베어다가 화살을 만들어 쏘면 코뿔소의 가죽도 뚫는데 학문을 해서 뭐하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오늬를 만들어 깃을 붙이고 살촉을 박아 날카롭게 갈면 더욱 깊이 뚫고 들어가지 않겠느냐?” 자로가 절을 하며 말했다. “삼가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22. 今子欲釋古之學而行子之意,庸知子用非為是,用是為非乎!
子路問於孔子曰:「請釋古之學而行由之意,可乎?」孔子曰:「不可,昔者東夷慕諸夏之義,有女,其夫死,為之內私婿,終身不嫁,不嫁則不嫁矣,然非貞節之義也;蒼梧之弟,娶妻而美好,請與兄易,忠則忠矣,然非禮也。今子欲釋古之學而行子之意,庸知子用非為是,用是為非乎!不順其初,雖欲悔之,難哉!」
子路가 孔子께 여쭈었다. “옛사람의 학문을 버리고 저의 뜻에 내키는 대로 행하고자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안 된다. 예전에 東夷가 중국의 道義를 사모했었는데, 딸이 있어서 딸의 남편이 죽자 딸을 위해 私壻를 들이고 죽을 때까지 시집보내지 않았다. 그러니 시집을 가지 않은 것은 안 간 것이지만, 그러나 貞節에 맞는 도의는 아니다. 蒼梧의 아우가 장가를 들었는데 그 아내가 매우 아름답기에 형에게 아내를 바꾸자고 요청하였으니, 형을 위한 忠心은 충심이지만, 그러나 禮義에 맞는 일은 아니다. 지금 네가 옛사람의 학문을 버리고 너의 뜻에 내키는 대로 행하고자 한다면, 네가 그른 것을 옳다고 여기고 옳은 것을 그르다 여길는지 어떻게 알겠느냐? 처음 시작을 신중히 하지 않으면 뒤에 뉘우쳐도 만회하기 어려울 것이다.”
23.
豐牆磽下未必崩也,流行潦至,壞必先矣;樹本淺,根垓不深,未必橛也,飄風起,暴雨至,拔必先矣。君子居於是國,不崇仁義,不尊賢臣,未必亡也;然一旦有非常之變,車馳人走,指而禍至,乃始干喉燋唇,仰天而歎,庶幾焉天其救之,不亦難乎?孔子曰:「不慎其前,而悔其後,雖悔無及矣。」詩曰:「啜其泣矣,何嗟及矣」?言不先正本而成憂於末也。
높고 두터운 담이 밑바닥이 고르지 않더라도 반드시 무너지는 것은 아니지만, 땅바닥에 일렁이는 물이 닿으면 반드시 먼저 무너진다. 나무의 뿌리가 깊이 뻗지 않았더라도 반드시 쓰러지지는 것은 아니지만, 회오리바람이 일어나고 폭우가 쏟아지면 반드시 먼저 뽑혀버린다.
君子가 어느 나라에 살면서 仁義를 숭상하지 않고 賢臣을 존경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멸망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非常한 변고가 발생하여 수레와 사람이 우왕좌왕 내달려 갑자기 禍가 닥치면, 그제야 목구멍이 마르고 입술이 타들어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면서 행여 하늘이 구원해주기를 바란들 또한 어렵지 않겠는가?
孔子는 “처음에 삼가지 않고 뒤에 뉘우치면, 뉘우쳐도 미치지 못한다.” 하셨고, 《詩經》에는 “눈물을 삼키며 울더라도 어찌 미치리오!” 하였으니, 먼저 근본을 바로 세우지 않으면 끝에 가서 근심을 이루게 됨을 말한 것이다.
24. 今工者久而巧,色者老而衰
虞君問盆成子曰:「今工者久而巧,色者老而衰;今人不及壯之時,益積心技之術,以備將衰之色,色者必盡乎老之前,知謀無以異乎幼之時。可好之色,彬彬乎且盡,洋洋乎安托無能之軀哉!故有技者不累身而未嘗滅,而色不得以常茂。」
虞君이 盆成子에게 물었다. “지금 匠人의 기술은 시간이 오래될수록 정교해지고 美色은 늙으면 쇠퇴한다. 지금 사람이 壯年에 이르지 않았을 때 마음속에 기술을 더욱 축적하여 장차 늙어서 쇠퇴할 미색에 대비해야 한다. 미색은 반드시 늙기 전에 다하고 智謀는 어릴 때 닦은 것과 다를 것이 없게 된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미색은 매우 아름답지만 장차 다 쇠할 텐데, 어찌 일정함이 없는 無能한 몸뚱이에 의탁하겠는가! 그래서 기술이 있는 사람은 몸에 얽매이지 않고 명성이 없어지지 않으나, 미색은 항상 아름다움을 보존할 수 없다.”
25. 君人者以百姓為天
齊桓公問管仲曰:「王者何貴?」曰:「貴天。」桓公仰而視天,管仲曰:「所謂天者,非謂蒼蒼莽莽之天也;君人者以百姓為天,百姓與之則安,輔之則強,非之則危,背之則亡。」詩云:「人而無良,相怨一方」。民怨其上,不遂亡者,未之有也。
齊 桓公이 管仲에게 물었다. “王者는 무엇을 貴重하게 여기는가?” 관중이 말했다. “하늘을 귀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환공이 머리를 들고 하늘을 보자, 관중이 말했다.
“제가 말한 하늘은 푸르고 아득한 하늘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임금 노릇하는 사람은 백성을 하늘로 삼아야 합니다. 백성이 따르면 안정되고 백성이 도와주면 강대해지며, 백성이 비난하면 위태로워지고 백성이 배반하면 멸망합니다.”
《詩經》에 “사람이 선량하지 않은 이는 한쪽에서 서로 원망하네.”라 하였으니, 백성이 윗사람을 원망하는데 끝내 멸망하지 않는 자는 있지 않다.
26. 倉廩實,知禮節;衣食足,知榮辱
河間獻王曰:「管子稱倉廩實,知禮節;衣食足,知榮辱。」夫谷者,國家所以昌熾,士女所以姣好,禮義所以行,而人心所以安也。尚書五福以富為始,子貢問為政,孔子曰:富之,既富乃教之也,此治國之本也。
河間獻王이 말했다. “《管子》에 ‘창고가 가득 차야 禮節을 알고, 衣食이 풍족해야 榮辱을 안다.’고 하였다.”
곡식은 국가를 昌盛하게 하고 남녀가 아름다워지며 예의가 시행되고 민심이 안정되는 것이다.
《尙書》에서 말한 五福 중에 富를 제일 앞에 말하였고, 子貢(冉有)이 정치하는 방법을 묻자, 孔子는 “부유하게 해주어야 한다. 부유하게 되었거든 곧 가르쳐야 한다.” 하셨으니, 이것이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이다.
27. 一人有慶,兆民賴之
文公見咎季,其廟傅於西牆,公曰:「孰處而西?」對曰:「君之老臣也。」公曰:「西益而宅。」對曰:「臣之忠,不如老臣之力,其牆壞而不築。」公曰:「何不築?」對曰:「一日不稼,百日不食。」公出而告之僕,僕●首於軫曰:「呂刑云:『一人有慶,兆民賴之。』君之明,群臣之福也,乃令於國曰:毋淫宮室,以妨人宅,板築以時,無奪農功。」
晉 文公이 咎季를 찾아가서 만나봤는데, 그 집의 사당이 서쪽 담에 붙어 있었다. 문공이 말했다. “담 서쪽에는 누가 살고 있소?” 구계가 대답했다. “임금님의 늙은 신하가 살고 있습니다.” 문공이 말했다. “집을 서쪽으로 더 넓혀 지으시오.” 구계가 대답했다. “신의 충성이 임금님의 늙은 신하가 힘을 다하는 것보다 못하고, 그 집은 담이 무너졌는데도 수리하지도 못합니다.” 문공이 말했다. “어째서 수리하지 않는 게요?” 구계가 대답했다. “하루라도 농사일을 하지 않으면 100일을 먹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문공이 나와서 마부에게 그 말을 일러주었다. 마부는 수레 뒤쪽의 가로나무[軫]에 머리를 조아리면서 말했다. “《書經》 〈呂刑〉에 ‘〈王〉 한 사람에게 경사가 있으면 억만 백성이 의지한다.’ 하였으니, 임금의 현명함은 群臣의 복입니다.” 이에 문공은 전국에 명령하였다. “집을 과도하게 지어 남의 집을 방해하지 말며, 건축공사를 農閑期에 맞춰 하여 농사일 할 때를 빼앗지 말라.”
28. 夫一兔走於街,萬人追之;一人得之,萬人不復走
楚恭王多寵子,而世子之位不定。屈建曰:「楚必多亂。夫一兔走於街,萬人追之;一人得之,萬人不復走。分未定,則一兔走,使萬人擾;分已定,則雖貪夫知止。今楚多寵子而嫡位無主,亂自是生矣。夫世子者,國之基也,而百姓之望也;國既無基,又使百姓失望,絕其本矣。本絕則撓亂,猶兔走也。」恭王聞之,立康王為太子,其後猶有令尹圍,公子棄疾之亂也。
楚 恭王은 총애하는 아들이 많아서 世子의 자리를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屈建이 말했다.
“楚나라는 반드시 내란이 많을 것이다. 토끼 한 마리가 길거리를 달려가면 많은 사람이 잡으려고 쫓아갈 것이고, 한 사람이 토끼를 잡으면 많은 사람이 다시 잡으려고 달려가지 않을 것이다. 명분이 정해지지 않으면 달아나는 한 마리 토끼여서 많은 사람이 잡으려고 소란할 것이고, 명분이 이미 정해지면 탐욕스런 사람일지라도 그칠 줄을 알 것이다. 지금 초나라에는 총애하는 아들이 많아서 세자의 자리에 주인이 없으니 내란이 여기서부터 일어날 것이다. 세자는 국가를 이을 기틀이고, 백성의 희망인데, 나라에 기틀이 없고 또 백성이 실망하게 하면 국가의 근본을 끊어버리는 것이다. 근본이 끊어지면 혼란스럽게 되니 이는 토끼가 길거리를 달려가는 것과 같다.”
공왕이 이 말을 듣고 康王을 세워 太子로 삼았는데, 그럼에도 그 뒤에 令尹 圍와 公子 棄疾의 난이 일어났다.
29. 惡難也,故欲立長君,長君立而少君壯,難乃至矣。
晉襄公薨,嗣君少,趙宣子相,謂大夫曰:「立少君,懼多難,請立雍;雍長,出在秦,秦大,足以為援。」賈季曰:「不若公子樂,樂有寵於國,先君愛而仕之翟,翟是以為援。」穆嬴抱太子以呼於庭曰:「先君奚罪,其嗣亦奚罪,捨嫡嗣不立而外求君子。」出朝抱以見宣子曰:「惡難也,故欲立長君,長君立而少君壯,難乃至矣。」宣子患之,遂立太子也。
晉 襄公이 죽고 뒤를 이을 太子의 나이가 어리니, 趙宣子가 재상이 되어 大夫들에게 말했다. “어린 임금을 세우면 患難이 많을까 두려우니 雍을 세웁시다. 雍은 나이가 많고 秦나라에 볼모로 나가 있으니, 秦나라는 강대하여 후원이 되기에 충분할 것이오.” 賈季가 말했다. “公子 樂을 세우는 것만 못하니, 樂은 나라 사람의 사랑을 받고 先君께서 총애하여 翟(狄)에서 벼슬하게 하였으니, 翟이 바로 후원을 할 것이오.”
穆嬴이 태자를 안고 조정에 나와 부르짖었다. “先君은 무슨 죄이며, 그 뒤를 이을 태자는 무슨 죄인가? 嫡子인 태자를 세우지 않고 밖에서 임금을 찾느냐?” 그러고는 조정을 나와 태자를 안고 조선자를 만나서 말했다. “患難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나이 많은 임금을 세우려고 하는데, 나이 많은 임금을 세웠다가 어린 태자가 壯年이 되면 환난이 바로 닥칠 것이오.” 조선자가 이를 걱정하다가 마침내 태자를 임금으로 세웠다.
30. 是其人能為社稷忍辱
趙簡子以襄子為後,董安於曰:「無恤不才,今以為後,何也?」簡子曰:「是其人能為社稷忍辱。」異日,智伯與襄子飲,而灌襄子之首,大夫請殺之,襄子曰:「先君之立我也,曰能為社稷忍辱,豈曰能刺人哉!」處十月,智伯圍襄子於晉陽,襄子疏隊而擊之,大敗智伯,漆其首以為酒器。
趙簡子가 襄子를 후계자로 삼자 董安于가 말했다. “無恤은 재주가 없는데 지금 후계자로 삼은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조간자가 말했다. “이 사람은 社稷을 위해서 능히 侮辱을 참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뒤 어느 날 智伯과 襄子가 술을 마실 적에, 〈지백이〉 양자의 머리에 술을 부었다. 大夫들이 〈지백을〉 죽이자고 요청하니, 양자는 말했다. “先君이 나를 후계자로 세울 때 ‘능히 사직을 위하여 모욕을 참을 것이다.’라고 하셨지, 어찌 ‘능히 사람을 찔러 죽일 수 있다.’고 말씀하셨느냐?” 열 달이 지난 뒤에 지백이 晉陽에서 양자를 포위했는데, 양자가 군대를 나누어 공격해서 지백을 크게 패배시키고 그의 머리에 옻칠을 하여 술잔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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