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술(券二 臣術)_설원(說苑) _ 유향(劉向)
** 역문은 동양고전DB에서, 원문은 說苑에서 가져옴.
** 이 篇은 신하 노릇하는 방법에 대해 각종 故事와 君臣間의 문답을 정리하여 提示하였다. 먼저 신하 된 사람이 추구해야 할 원칙인 六正과 행해서는 안 되는 六邪를 구체적으로 標榜하였다. 신하가 되면 국가에 유익하고 임금을 補助하는 도리를 闡明하고, 자기의 思想을 가지고 進賢과 讓賢의 德이 중요함을 提示하였다. 또한 자신의 독립적 인격을 지켜 임금의 부속물이 되지 않아야 됨을 강조하였다. 忠臣과 賊臣의 행위를 기술하여 ‘順’과 ‘柔’, ‘忠’과 ‘亂’의 표준을 구별하고, 諫‧諍‧輔‧弼의 준칙을 명확히 제시하였다. 이는 《荀子》 〈臣道〉의 영향을 받아 한층 발전시킨 論述이라 할 수 있다.
1. 何謂六正六邪?
人臣之術,順從而覆命,無所敢專,義不苟合,位不苟尊;必有益於國,必有補於君;故其身尊而子孫保之。故人臣之行有六正六邪,行六正則榮,犯六邪則辱,夫榮辱者,禍福之門也。何謂六正六邪?六正者:一曰萌芽未動,形兆未見,昭然獨見存亡之幾,得失之要,預禁乎不然之前,使主超然立乎顯榮之處,天下稱孝焉,如此者聖臣也。二曰虛心白意,進善信道,勉主以體誼,諭主以長策,將順其美,匡救其惡,功成事立,歸善於君,不敢獨伐其勞,如此者良臣也。三曰卑身賤體,夙興夜寐,進賢不解,數稱於往古之德行事以厲主意,庶幾有益,以安國家社稷宗廟,如此者忠臣也。四曰明察幽,見成敗早,防而救之,引而復之,塞其間,絕其源,轉禍以為福,使君終以無憂,如此者智臣也。五曰守文奉法,任官職事,辭祿讓賜,不受贈遺,衣服端齊,飲食節儉,如此者貞臣也。六曰國家昏亂,所為不道,然而敢犯主之顏面,言君之過失,不辭其誅,身死國安,不悔所行,如此者直臣也,是為六正也。六邪者:一曰安官貪祿,營於私家,不務公事,懷其智,藏其能,主饑於論,渴於策,猶不肯盡節,容容乎與世沈浮上下,左右觀望,如此者具臣也。二曰主所言皆曰善,主所為皆曰可,隱而求主之所好即進之,以快主耳目,偷合苟容與主為樂,不顧其後害,如此者諛臣也。三曰中實頗險,外容貌小謹,巧言令色,又心嫉賢,所欲進則明其美而隱其惡,所欲退則明其過而匿其美,使主妄行過任,賞罰不當,號令不行,如此者奸臣也。四曰智足以飾非,辯足以行說,反言易辭而成文章,內離骨肉之親,外妒亂朝廷,如此者讒臣也。五曰專權擅勢,持招國事以為輕重於私門,成黨以富其家,又復增加威勢,擅矯主命以自顯貴,如此者賊臣也。六曰諂言以邪,墜主不義,朋黨比周,以蔽主明,入則辯言好辭,出則更復異其言語,使白黑無別,是非無間,伺侯可推,而因附然,使主惡佈於境內,聞於四鄰,如此者亡國之臣也,是謂六邪。賢臣處六正之道,不行六邪之術,故上安而下治,生則見樂,死則見思,此人臣之術也。
臣下 노릇하는 방법은, 順從하여 맡았던 일의 결과를 보고하며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여 단행하지 않고, 義理를 지켜 구차히 영합하지 않으며 地位에 있으면서 구차히 尊大해지지 않아서, 반드시 나라에 도움이 있으며 반드시 임금에게 도움이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그의 몸은 높아지고 자손은 보존된다.
그 때문에 신하의 행위에 六正과 六邪가 있으니, 육정을 행하면 영화롭게 되고, 육사를 범하면 치욕스럽게 된다. 영화와 치욕은 행복과 재앙이 오는 문이다. 무엇을 육정과 육사라 하는가? 六正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일이 아직 싹트지 않고 형체와 조짐이 드러나지 않았을 때, 홀로 存亡의 징후와 得失의 요체를 밝게 알아서 일이 아직 그렇게 되기 전에 미리 방지하여, 임금을 顯榮한 자리에 높이 있게 하여 천하 사람들이 孝라고 칭찬하게 하니, 이와 같은 사람은 聖臣이다.
둘째, 마음을 비우고 가슴이 넓고 밝아 善言을 올리고 道義에 통하여 임금을 예의로 권면하고 좋은 정책으로 권유하여, 그의 아름다운 덕은 받들어 따르고 그의 나쁜 행위는 바로잡아, 事功이 이루어지면 좋은 공은 임금에게 돌리고 감히 자기만의 공로로 자랑하지 않으니, 이와 같은 사람은 良臣이다.
셋째, 자신의 몸을 낮추고 미천하게 처신하여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잠을 자면서 일하고 어진 이 천거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며, 옛 성현이 행한 일을 자주 칭송하여 임금의 마음을 격려하면 거의 도움되는 희망이 있어 國家‧社稷‧宗廟를 안정시킬 것이니, 이와 같은 사람은 忠臣이다.
넷째, 드러나지 않은 은미한 일을 밝게 살펴 실패를 예견하고 일찌감치 방지하여 구하고 인도하여 정상으로 회복해서, 좋지 못한 틈을 막고 화난의 근원을 끊음으로써 화난을 바꾸어 복이 되게 하여 임금이 끝까지 근심이 없도록 하니, 이와 같은 사람은 智臣이다.
다섯째, 예의를 지키고 법도를 奉行하여 맡은 직무를 잘 감당하고 많은 녹봉과 하사하는 상을 사양하며 남이 주는 물건을 받지 않고 의복을 단정히 하며 음식을 검소하게 하니, 이와 같은 사람은 貞臣이다.
여섯째, 국가가 혼란하여 임금의 행위가 도에 맞지 않거든, 감히 임금의 지엄한 얼굴을 거스르고 정면에서 임금의 잘못을 지적해 말하여 誅殺을 피하지 않고 죽더라도 나라가 안정되면 〈자기의〉 행위를 뉘우치지 않으니, 이와 같은 사람은 直臣이다.
이를 六正이라 한다. 六邪는 다음과 같다.
첫째, 벼슬에 안주하며 녹봉을 탐하여 자기 개인만을 도모하고 公務는 힘쓰지 아니하여 자기의 지혜를 숨기고 재능을 감춰, 임금은 政論에 굶주리고 政策에 목말라 하되 오히려 절의를 다하려 하지 않고 여러 사람과 附和하여 세상 따라 오르내리면서 이리저리 관망하니, 이와 같은 사람은 具臣이다.
둘째, 임금이 하는 말을 모두 좋다고 하고 임금이 하는 일을 모두 옳다고 하여, 암암리에 임금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 즉시 바쳐서 임금의 耳目을 즐겁게 하면서 구차하게 영합하고, 세상에 용납받기를 취하여 임금과 함께 즐겁게 지내며 뒤에 올 폐해는 고려하지 않으니, 이와 같은 사람은 諛臣(유신, 아첨할 諛)이다.
셋째, 마음에는 사악하고 不正한 생각이 가득 찼으나 겉모습은 소심하고 삼가서 듣기 좋은 말과 아첨하는 안색을 지으며, 또 마음에 어진 이를 질투하여 자기가 추천하려는 사람이면 그의 좋은 점은 드러내고 나쁜 점은 숨기며, 배제하려는 사람이면 그의 잘못은 드러내고 좋은 점은 숨겨서, 임금이 함부로 행동하고 잘못 임명하여 賞罰이 실제에 맞지 않고 號令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게 하니, 이와 같은 사람은 姦臣이다.
넷째, 智慧는 잘못한 일을 덮어서 그럴듯하게 꾸밀 만하고 口辯은 남에게 遊說를 펼칠 만하여 말을 여러 가지로 바꾸며 甘言利說로 화려하게 하여, 안으로는 骨肉間의 친한 정의를 이간하고 밖으로는 조정 사람을 질투하여 혼란하게 하니, 이와 같은 사람은 讒臣(참신, 참소할 讒)이다.
다섯째, 제멋대로 권세를 독점하여 國家의 政事를 장악해 좌지우지하고 개인적인 派黨을 만들어 자기 집을 부유하게 하며, 또다시 자기의 위세를 증강시키고 임금의 명령을 멋대로 속여서 스스로 顯貴하게 하니, 이와 같은 사람은 賊臣이다.
여섯째, 아첨하는 말로 간사한 짓을 하여 임금을 不義에 떨어뜨리고, 小人들과 朋黨을 지어 임금의 聰明을 가리며, 조정에 들어와서는 감언이설을 하고 조정을 나가서는 다시 앞에서 한 말을 바꾸어 黑白을 분별하지 못하고 是非를 분간하지 못하게 하며, 시기를 틈타 자기의 책임을 벗고 다시 기회를 이용하여 다른 세력에 빌붙어 임금의 악행이 나라 안에 퍼지고 사방의 이웃 나라에 전파되게 하니, 이와 같은 사람은 亡國之臣이다.
이를 六邪라 이른다. 賢臣은 六正의 도리로 처신하여 六邪의 나쁜 방법은 시행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위의 임금은 편안하고 아래의 백성은 잘 다스려져서, 살아서는 백성들이 즐거워하는 것을 보고 죽어서는 백성들이 사모함을 보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신하 노릇하는 방법이다.
2. 三公九卿大夫列士 道德仁義
湯問伊尹曰:「三公九卿大夫列士,其相去何如?」伊尹對曰:「三公者,知通於大道,應變而不窮,辯於萬物之情,通於天道者也;其言足以調陰陽,正四時,節風雨,如是者舉以為三公,故三公之事,常在於道也。九卿者,不失四時通於溝渠,修堤防,樹五穀,通於地理者也;能通不能通,能利不能利,如此者舉以為九卿,故九卿之事,常在於德也。大夫者,出入與民同眾,取去與民同利,通於人事,行猶舉繩,不傷於言,言之於世,不害於身,通於關梁,實於府庫,如是者舉以為大夫,故大夫之事常在於仁也。列士者,知義而不失其心,事功而不獨專其賞,忠政強諫而無有奸詐,去私立公而言有法度,如是者舉以為列士,故列士之事,常在於義也。故道德仁義定而天下正,凡此四者明王臣而不臣。」湯曰:「何謂臣而不臣?」伊尹對曰:「君之所不名臣者四:諸父、臣而不名,諸兄、臣而不名,先生之臣、臣而不名,盛德之士、臣而不名,是謂大順。」
湯王이 伊尹에게 물었다. “三公‧九卿‧大夫‧列士는 어떤 구별이 있소?”
伊尹이 대답하였다. “三公이 되는 사람은 지혜가 나라를 다스리는 큰 도리에 통하고 무궁한 변화에 순응하여 만물의 실정을 분변하고 天道에 통달해야 합니다. 그의 말은 陰陽의 변화를 조절하고 네 季節을 바로잡으며 風雨를 절제할 수가 있으니, 이와 같은 사람은 추천하여 삼공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삼공의 일은 항상 天道를 파악하는 데 있습니다.
九卿이 되는 사람은 네 계절의 변화를 어기지 아니하여 하천을 소통시키고 제방을 수축하며 오곡을 심어서 地理에 통달해야 합니다. 남이 소통시키지 못하는 것을 소통시키고 남이 이롭게 하지 못하는 것을 이롭게 하니, 이와 같은 사람은 추천하여 구경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구경의 일은 항상 덕을 베푸는 데 있습니다.
大夫가 되는 사람은 出入에 백성과 함께 어울리고 取捨를 백성과 이익을 같이하여 人情과 事理에 통달하고 행위는 자로 잰 듯 법도에 맞아, 하는 말에 해가 되지 않고 한 말은 세상 사람들에게 법이 될 만하여 자신을 해치지 않습니다. 관문과 다리를 놓아 통행하게 하며 창고를 가득 채워야 하니, 이와 같은 사람은 추천하여 대부로 삼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대부의 일은 항상 仁政을 펴는 데 있습니다.
列士가 되는 사람은 道義를 알아서 자기의 본심을 잃지 않고 일한 공로가 있어도 자기만 賞을 독점하지 않으며, 忠誠과 正直으로 힘써 諫하여 간사한 행위가 없고 사사로움을 버리고 公平함을 세워 말에 법도가 있으니, 이와 같은 사람은 추천하여 열사로 삼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열사의 일은 항상 道義를 행하는 데 있습니다.
때문에 道德仁義가 확정되어 천하가 바르게 다스려지니, 이 네 종류의 사람은 현명한 임금이 신하이지만 신하로 대하지 않습니다.”
탕왕이 말했다. “어찌하여 신하이지만 신하로 이르지 않는 것이오?” 이윤이 대답하였다. “임금이 신하로 부르지 않는 네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諸父(伯父‧叔父 등)는 신하지만 신하로 부르지 않고, 여러 兄은 신하지만 신하로 부르지 않고, 先王의 신하는 신하지만 신하로 부르지 않으며, 德이 훌륭한 사람은 신하지만 신하로 부르지 않으니, 이를 대단히 올바른 도리[大順]라고 하는 것입니다.”
3. 參而有參,是謂事宗
湯問伊尹曰:「古者所以立三公、九卿、大夫、列士者,何也?」伊尹對曰:「三公者,所以參王事也;九卿者,所以參三公也;大夫者,所以參九卿也;列士者,所以參大夫也。故參而有參,是謂事宗;事宗不失,外內若一。」
湯王이 伊尹에게 물었다. “고대에 三公‧九卿‧大夫‧列士를 둔 것은 무슨 까닭이오?”
이윤이 대답하였다. “삼공은 왕의 일에 참여하고, 구경은 삼공의 일에 참여하고, 대부는 구경의 일에 참여하며, 열사는 대부의 일에 참여합니다. 그러므로 참여하는 사람 중에 또 참여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를 일을 하는 근본이라 이릅니다. 일을 하는 근본을 잃지 않아야 朝廷의 內外가 하나처럼 됩니다."
4. 進賢為賢耶?用力為賢耶?
子貢問孔子曰:「今之人臣孰為賢?」孔子曰:「吾未識也,往者齊有鮑叔,鄭有子皮,賢者也。」子貢曰:「然則齊無筦仲,鄭無子產乎?」子曰:「賜,汝徒知其一,不知其二,汝聞進賢為賢耶?用力為賢耶?」子貢曰:「進賢為賢?」子曰:「然,吾聞鮑叔之進筦仲也,聞子皮之進子產也,未聞筦仲子產有所進也。」
子貢이 孔子께 여쭈었다. “현재의 신하 중에 누가 가장 賢明합니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알지 못하겠다. 전에는 齊나라에 鮑叔이 있고 鄭나라에 子皮가 있었으니 현명한 사람이다.” 자공이 말했다. “그렇다면 齊나라에 管仲이 없고 鄭나라에 子産이 없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賜야! 너는 단지 그 하나만을 알고 그 둘은 모르는구나. 네가 듣기에 어진 이를 추천하는 사람이 현명하냐? 나라를 위해 힘을 쓰는 사람이 현명하냐?” 자공이 말했다. “어진 이를 추천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나는 포숙이 관중을 추천했다는 말을 들었고, 자피가 자산을 추천했다는 말은 들었으나, 관중과 자산이 인재를 추천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5. 貴視其所舉,富視其所與,貧視其所不取,窮視其所不為
魏文侯且置相,召李克而問焉,曰:「寡人將置相,置於季成子與翟觸,我孰置而可?」李克曰:「臣聞之,賤不謀貴,外不謀內,疏不謀親,臣者疏賤,不敢聞命。」文侯曰:「此國事也,願與先生臨事而勿辭。」李克曰:「君不察故也,可知矣,貴視其所舉,富視其所與,貧視其所不取,窮視其所不為,由此觀之,可知矣。」文侯曰:「先生出矣,寡人之相定矣。」李克出,過翟黃,翟黃問曰:「吾聞君問相于先生,未知果孰為相?」李克曰:「季成子為相。」翟黃作色不說曰:「觸失望于先生。」李克曰:「子何遽失望於我,我於子之君也,豈與我比周而求大官哉?君問相於我,臣對曰:『君不察故也,貴視其所舉,富視其所與,貧視其所不取,窮視其所不為,由此觀之可知也。』君曰:『出矣,寡人之相定矣。』以是知季臣子為相。」翟黃不說曰:「觸何遽不為相乎?西河之守,觸所任也;計事內史,觸所任也;王欲攻中山,吾進樂羊;無使治之臣,吾進先生;無使傅其子,吾進屈侯附。觸何負於季成子?」李克曰:「不如季成子,季成子食采千鐘,什九居外一居中;是以東得卜子夏,田子方,段干木,彼其所舉人主之師也,子之所舉,人臣之才也。」翟黃方然而慚曰:「觸失對于先生,請自修,然後學。」言未卒,而左右言季成子立為相矣,於是翟黃默然變色內慚,不敢出,三月也。
魏 文侯가 장차 宰相을 임명하려고 할 적에 李克을 불러 물었다. “寡人이 장차 재상을 임명하려 하여 季成子와 翟觸 중에 임명하려고 하니 내가 누구를 임명하는 것이 좋겠소?”
이극이 대답하였다. “신은 들으니 ‘微賤한 사람은 尊貴한 사람의 일을 의논하지 않고, 外部 사람은 內部 사람의 일을 의논하지 않으며, 疎遠한 사람은 親近한 사람의 계획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신은 임금과의 관계가 소원하고 지위가 비천하여 감히 명령을 따를 수가 없습니다.”
문후가 말했다. “이것은 나라의 일이니, 선생은 일에 임하여 사양하지 마시오.” 이극이 말했다. “임금께서 잘 살펴보지 않아서이니, 〈잘 살펴보시면〉 알 수가 있습니다. 그 사람이 존귀했을 때에는 그가 추천하는 사람을 보며, 부유했을 때에는 그가 어울리는 사람을 보며, 가난했을 때에는 그가 취하지 않는 것을 보며, 곤경에 처했을 때에는 그가 하지 않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이 방법을 따라 관찰하시면 〈누구를 임명해야 할지〉 알 수 있습니다.”
문후가 말했다. “선생은 나가시오. 과인의 재상은 이미 결정하였소.” 이극이 나와서 翟黃을 방문하자 책황이 물었다. “나는 들으니, 임금께서 선생에게 재상에 선임할 사람을 물었다 하는데 과연 누가 재상이 되겠는지 모르겠소.” 이극이 말했다. “계성자가 재상이 될 것이네.” 책황이 얼굴색을 바꾸어 기뻐하지 않으면서 말했다. “저 觸은 선생께 실망하였소.” 이극이 말했다. “그대는 어째서 갑자기 나에게 실망하였나? 그대가 나를 그대의 임금께 추천하는 말을 한 것은 아마도 나와 함께 한패를 이루어 大官을 구하려는 것이었나 보군. 임금께서 나에게 재상에 합당한 사람을 물으시기에 나는 이렇게 대답하였네. ‘임금께서 잘 살펴보지 않아서이니, 그 사람이 존귀했을 때에는 그가 추천한 사람을 보며, 부유했을 때에는 그가 어울리는 사람을 보며, 가난했을 때에는 그가 취하지 않는 것을 보며, 곤경에 처했을 때에는 그가 하지 않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이 방법을 따라 관찰하시면 〈누구를 임명해야 할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랬더니 임금께서 ‘그만 나가시오. 과인의 재상은 이미 결정하였소.’ 하셨으니, 이 때문에 계성자가 재상이 될 것임을 알았네.”
책황이 기뻐하지 않으면서 말했다. “저 觸은 어째서 바로 재상이 되지 못합니까? 西河太守를 제가 추천하여 임명하였고 計事內史를 제가 추천하여 임명하였으며, 임금께서 中山國을 공격하려고 하시기에 제가 樂羊을 추천하였고 중산국을 다스리게 할 신하가 없기에 제가 선생을 추천하였으며, 임금의 아들을 가르치게 할 스승이 없기에 제가 屈侯鮒를 추천하였으니, 제가 어째서 계성자만 못합니까?”
이극이 말했다. “그대는 계성자만 못하네. 계성자는 采邑에서 나오는 千鍾의 수입이 있어서 10분의 9는 밖에 두어 남에게 쓰고 10분의 1은 집안에서 썼네. 이 때문에 동쪽에서 卜子夏‧田子方‧段干木을 얻었으니, 저 계성자가 추천한 사람은 임금의 스승이 될 만한 인재이고, 그대가 추천한 사람은 신하가 될 수 있는 인재일세.”
책황이 부끄러워하는 안색을 보이면서 말했다. “저 觸은 선생께 대답할 말이 없으니 스스로 수양하고 난 뒤에 선생께 배우겠습니다.” 말을 미처 끝내지 않았을 적에 곁에 있던 사람이 계성자가 재상에 임명되었다고 보고하였다. 이에 책황이 말없이 안색이 변하고 마음이 부끄러워 3개월 동안 감히 밖에 나오지 못했다.
6. 不敢專其智而委之屈春
楚令尹死,景公遇成公幹曰:「令尹將焉歸?」成公幹曰:「殆於屈春乎!」景公怒曰:「國人以為歸於我。」成公幹曰:「子資少,屈春資多,子義獲天下之至憂也,而以為友;鳴鶴與芻狗,其知甚少,而子玩之。鴟夷子皮日侍於屈春,損頗為友,二人者之智,足以為令尹,不敢專其智而委之屈春,故曰:政其歸於屈春乎!」
楚나라 令尹이 죽자 景公이 成公乾을 만나 말했다. “영윤 자리가 장차 누구에게 돌아가겠소?” 성공건이 말했다. “아마 屈春일 것이오.” 경공이 화를 내며 말했다. “국민들은 나에게 돌아올 것이라 생각하고 있소.”
성공건이 말했다. “그대의 人望은 적고 굴춘의 인망은 많으며, 子義獲은 천하의 지극히 염려스러운 사람인데 그대는 벗으로 삼았고, 鳴鶴과 芻狗는 지혜가 아주 적은데 그대는 玩臣(허물없이 희롱하며 총애하는 신하)으로 삼았소. 鴟夷子皮는 날마다 굴춘을 모시고 損頗는 친구가 되었으니, 두 사람의 지혜는 영윤이 되기에 충분하건만 감히 자기의 지혜를 제멋대로 쓰지 않고 굴춘에게 위임하였소. 그러므로 國政이 굴춘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한 것이오.”
7. 彼其所進,師也,友也,所敬者也,臣之所進者,皆守職守祿之臣也
田子方渡西河,造翟黃,翟黃乘軒車,載華蓋黃金之勒,約鎮簟席,如此者其駟八十乘,子方望之以為人君也,道狹下抵車而待之,翟黃至而睹其子方也,下車而趨,自投下風,曰:「觸」,田子方曰:「子與!吾向者望子疑以為人君也,子至而人臣也,將何以至此乎?」翟黃對曰:「此皆君之所以賜臣也,積三十歲故至於此,時以間暇祖之曠野,正逢先生。」子方曰:「何子賜車轝之厚也?」翟黃對曰:「昔者西河無守,臣進吳起;而西河之外,寧鄴無令,臣進西門豹;而魏無趙患,酸棗無令,臣進北門可;而魏無齊憂,魏欲攻中山,臣進樂羊而中山拔;魏無使治之臣,臣進李克而魏國大治。是以進此五大夫者,爵祿倍以故至於此。」子方曰:「可,子勉之矣,魏國之相不去子而之他矣。」翟黃對曰:「君母弟有公孫季成者,進子夏而君師之,進段干木而君友之,進先生而君敬之,彼其所進,師也,友也,所敬者也,臣之所進者,皆守職守祿之臣也,何以至魏國相乎?」子方曰:「吾聞身賢者賢也,能進賢者亦賢也,子之五舉者盡賢,子勉之矣,子終其次也。」
田子方이 西河를 건너 翟黃을 방문하니, 책황이 軒車에 타고서 화려한 수레 뚜껑을 덮고 황금으로 장식한 말굴레에 옥을 끈으로 묶어 대자리를 눌렀는데, 네 마리 말이 끄는 이와 같은 수레가 80채였다. 전자방이 바라보고 임금이라 여겨 길이 좁기에 내려서 수레를 밀어놓고 기다렸다. 책황이 당도하여 보니 전자방이었다. 수레에 내려 종종걸음으로 나아가 스스로 전자방의 아래에 몸을 낮추면서 말했다. “翟觸(翟黃)입니다.”
전자방이 말했다. “그대인가! 나는 조금 전에 그대를 바라보고 임금의 행차인가 하고 의심했었는데, 그대가 당도하고 보니 신하로구나. 도대체 어떻게 이런 대단한 지경에 이르렀는가?” 책황이 대답하였다. “이것은 모두 임금이 저에게 하사한 것인데, 30년 동안 모아 쌓았기 때문에 이처럼 되었습니다. 때마침 한가한 틈을 타 광야에 가다가 바로 선생을 만난 것입니다.” 전자방이 말했다. “무엇 때문에 그대에게 이 많은 수레를 하사하였는가?”
책황이 대답하였다. “전에 西河郡를 다스릴 太守가 없기에 제가 吳起를 추천하여 西河 이외 지역이 편안하였고, 鄴縣에 縣令이 없기에 제가 西門豹를 추천하여 魏나라에 趙나라가 침입하는 우환이 없어졌고, 酸棗縣에 縣令이 없기에 제가 北門可를 추천하여 위나라에 齊나라가 침입하는 우환이 없어졌고, 위나라가 中山國을 공격하려 하기에 제가 樂羊을 추천하여 중산국을 정복하였으며, 중산국을 이미 정복한 뒤에 위나라에 그곳을 다스리게 할 신하가 없기에 제가 李克을 추천하여 위나라가 잘 다스려졌습니다. 이 다섯 大夫를 추천한 일 때문에 벼슬과 녹봉이 배로 증가하니, 이 때문에 이렇게 많은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전자방이 말했다. “좋다. 그대는 노력하게! 위나라의 재상은 그대에게 가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갈 것이네.” 책황이 대답하였다. “임금의 동복아우에 公孫季成子가 있는데, 子夏를 추천하자 임금께서 스승으로 섬기셨고, 段干木을 추천하자 임금께서 벗으로 사귀셨으며, 선생을 추천하자 임금께서 존경하셨습니다. 저 사람이 추천한 사람은 임금의 스승이고 벗이며 존경하는 사람이고, 제가 추천한 사람은 모두 벼슬살이하며 녹봉을 받는 신하이니 어떻게 위나라의 재상에까지 오르겠습니까?”
전자방이 말했다. “나는 들으니 ‘자신이 賢明한 사람은 현명한 사람에 속하고, 현명한 사람을 추천하는 사람도 현명한 사람이다.’라고 하니, 그대가 추천한 다섯 사람은 모두 현명한 사람이니 그대는 노력할지어다. 그대는 결국 그 다음에 될 것이다.”
8. 舉此數良人者,王枕而臥耳,何患國之貧哉?
齊威王游於瑤台,成侯卿來奏事,從車羅綺甚眾,王望之謂左右曰:「來者何為者也?」左右曰:「成侯卿也。」王曰:「國至貧也,何出之盛也?」左右曰:「與人者有以責之也,受人者有以易之也。」王試問其說,成侯卿至,上謁曰:「忌也。」王不應。又曰:「忌也。」王不應。又曰:「忌也。」王曰:「國至貧也,何出之盛也?」成侯卿曰:「赦其死罪,使臣得言其說。」王曰:「諾」。對曰:「忌舉田居子為西河而秦梁弱,忌舉田解子為南城,而楚人抱羅綺而朝,忌舉黔涿子為冥州,而燕人給牲,趙人給盛,忌舉田種首子為即墨,而於齊足究,忌舉北郭刁勃子為大士,而九族益親,民益富,舉此數良人者,王枕而臥耳,何患國之貧哉?」
齊 威王이 瑤臺에서 놀 적에 成侯卿이 와서 政事를 보고하는데, 늘어서 따르는 수레가 매우 많았다. 威王이 바라보고 곁의 사람에게 물었다. “오는 사람이 누구인가?” 곁의 사람이 말했다. “성후경입니다.” 위왕이 말했다. “나라가 매우 困窮한데 어떻게 出行하면서 저렇게 성대하게 하는가?” 곁의 사람이 말했다. “남에게 물건을 준 사람은 따져 물을 이유가 있고, 남의 물건을 받은 사람은 바꿀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왕께서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물어보십시오.”
성후경이 당도하여 위왕을 뵙고 말했다. “鄒忌입니다.” 위왕이 대답하지 않자 또 말했다. “추기입니다.” 위왕이 대답하지 않자 또 말했다. “추기입니다.” 위왕이 말했다. “나라가 지극히 곤궁한데 어떻게 출행하면서 이렇게 성대하게 하는가?” 성후경이 대답했다. “신의 죽을죄를 용서하시고 신에게 설명할 말을 하게 해주십시오.” 위왕이 말했다. “좋다.”
성후경이 대답하였다. “저 鄒忌가 田居子를 추천하여 西河를 다스리게 하자 秦나라와 梁나라가 약화되었고, 제가 田解子를 추천하여 南城을 다스리게 하자 楚나라 사람이 비단을 안고 朝見하였고, 제가 黔涿子를 추천하여 冥州를 다스리게 하자 燕나라 사람은 犧牲을 보내왔으며 趙나라 사람은 粢盛(제사에 올리는 곡식)을 보내왔고, 제가 田種首子를 추천하여 卽墨을 다스리게 하자 齊나라의 재정이 충족되었으며, 제가 北郭刀勃子를 추천하여 大士로 삼자 九族이 더욱 친근해지고 백성은 더욱 부유해졌습니다. 제가 이 훌륭한 몇 사람을 추천하여 왕께서 베개를 높이 베고 누워 걱정이 없게 되었는데, 어찌 나라의 곤궁함을 걱정하십니까?”
9. 君不用賓相而得社稷之聖臣,君之祿也;臣見賢而讓之,臣之祿也
秦穆公使賈人載鹽,征諸賈人,賈人買百里奚以五羖羊之皮,使將車之秦,秦穆公觀鹽,見百里奚牛肥,曰:「任重道遠以險,而牛何以肥也?」對曰:「臣飲食以時,使之不以暴;有險,先後之以身,是以肥也。」穆公知其君子也,令有司其沐浴為衣冠與坐,公大悅,異日與公孫支論政,公孫支大不寧曰:「君耳目聰明,思慮審察,君其得聖人乎!」公曰:「然,吾悅夫奚之言,彼類聖人也。」公孫支遂歸取鴈以賀曰:「君得社稷之聖臣,敢賀社稷之福。」公不辭,再拜而受,明日,公孫支乃致上卿以讓百里奚曰:「秦國處僻,民陋以愚無知,危亡之本也,臣自知不足以處其上,請以讓之。」公不許,公孫支曰:「君不用賓相而得社稷之聖臣,君之祿也;臣見賢而讓之,臣之祿也。今君既得其祿矣,而使臣失祿可乎?請終致之!」公不許。公孫支曰:「臣不肖而處上位是君失倫也,不肖失倫,臣之過,進賢而退不肖,君之明也,今臣處位,廢君之德而逆臣之行也,臣將逃。」公乃受之。故百里奚為上卿以制之,公孫支為次卿以佐之也。
秦 穆公이 장사꾼을 시켜 衛나라에서 소금을 실어오게 하기 위하여 장사꾼을 불러들였는데, 장사꾼이 다섯 마리 숫양가죽으로 百里奚를 사서 수레를 몰고 秦나라로 가게 하였다. 진 목공이 소금을 살펴볼 적에 백리해의 수레를 끌고 온 소가 살진 것을 보고 말했다. “짐은 무겁고 길은 멀고도 험한데 소가 어떻게 살졌느냐?” 백리해가 대답했다. “신은 때에 맞춰 물과 여물을 먹이고, 사납게 부리지 않으며, 험한 곳이 있으면 제 몸으로 앞뒤에서 잘 보살폈는데, 이 때문에 〈소가〉 살진 것입니다.” 목공은 그가 君子인 줄을 알아보고 담당관에게 목욕을 시키고 衣冠을 차리게 한 다음 함께 坐談을 하고는, 목공이 크게 기뻐하였다.
다음날 公孫支와 政事를 의논했는데 공손지가 매우 불안해하면서 말했다. “임금께서 귀와 눈이 밝으시고 일에 대한 생각이 周到綿密하시니, 임금께서는 어쩌면 聖人을 얻으셨나 봅니다.” 목공이 말했다. “그렇소. 나는 백리해의 말을 기쁘게 생각하니, 저 사람은 성인이오.” 공손지는 마침내 돌아가 기러기를 가지고 와서 축하하면서 말했다. “임금께서 社稷을 편안히 할 聖臣을 얻으셨으니 감히 사직의 福임을 축하드립니다.” 목공이 사양하지 않고 두 번 절을 하면서 받았다.
이튿날 공손지는 곧 上卿 벼슬을 그만두고 백리해에게 양보하면서 말했다. “秦나라는 궁벽한 곳에 위치하고 백성은 견문이 좁아 愚昧無知하니 이는 나라가 危亡하는 근본입니다. 신은 높은 자리에 있는 것이 부족함을 스스로 알고 있으니 사양하겠습니다.” 목공이 하락하지 않자 공손지가 말했다.
“임금께서 賓相의 추천을 쓰지 않으시고 직접 社稷을 편안히 할 聖臣을 얻으셨으니 이것은 임금님의 복이고, 신은 賢人을 만나 제 벼슬을 양보하니 이것은 신의 복입니다. 지금 임금께서 이미 복을 얻으셨는데 신에게는 복을 잃게 하시면 되겠습니까? 저는 끝내 그만두고자 합니다.”
목공이 허락하지 않자 공손지가 말했다. “신이 현명하지 못한데 높은 지위에 있는 것은 바로 임금께서 정상적인 도리를 잃은 것이고, 신이 현명하지 못하고 임금께 도리를 잃게 하는 것은 신의 잘못이니, 賢人을 선발하여 임용하고 현명하지 못한 사람을 퇴출시키는 것은 임금의 밝은 덕목입니다. 지금 신이 높은 지위를 차지하여 임금의 덕을 폐기하면 이는 逆臣의 행위이니 신은 장차 도망가겠습니다.” 목공이 마침내 그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이 때문에 백리해가 上卿이 되어 國政을 처리하고 공손지가 次卿이 되어 보좌하였다.
10. 此安於之所為後也
趙簡主從晉陽之邯鄲,中路而止,引車吏進問何為止,簡主曰:「董安於在後。」吏曰:「此三軍之事也,君奈何以一人留三軍也?」簡主曰:「諾。」驅之百步又止,吏將進諫,董安於適至,簡主曰:「秦道之與晉國交者,吾忘令人塞之。」董安於曰:「此安於之所為後也。」簡主曰:「官之寶璧吾忘令人載之。」對曰:「此安於之所為後也。」簡主可謂內省外知人矣哉!故身佚國安,御史大夫周昌曰:「人主誠能如趙簡主,朝不危矣。」
趙簡主가 晉陽에서 邯鄲으로 가다가 중도에서 멈추니, 수레를 끌고 가던 관리가 앞에 와서 물었다. “主君은 무엇 때문에 멈추십니까?” 조간주가 말했다. “董安于가 뒤에 있기 때문이다.” 관리가 말했다. “이는 三軍의 일인데 주군은 어찌 한 사람 때문에 삼군을 멈추게 하십니까?” 조간주가 말했다. “옳다.”
백 보쯤 몰아가다가 또 멈추자 관리가 앞에 가서 諫하려고 하였는데, 마침 동안우가 도착하였다. 조간주가 말했다. “秦나라의 길이 晉나라와 통하는 곳을 내가 사람을 시켜 막는다는 것을 깜빡 잊었노라.” 동안우가 말했다. “이것이 저 安于가 뒤에 처진 원인입니다.” 조간주가 말했다. “관청의 보물을 내가 사람을 시켜 싣는다는 것을 깜빡 잊었노라.” 동안우가 대답하였다. “이것이 저 安于가 뒤에 처진 원인입니다.” 조간주가 말했다. “行人 燭過는 나이가 많고 그의 말은 일찍이 晉나라의 規範이 되지 않은 적이 없었는데, 내가 길을 떠나면서 사람을 시켜 하직과 안부를 묻는다는 것을 깜빡 잊었노라.” 동안우가 대답하였다. “이것이 저 安于가 뒤에 처진 원인입니다.”
조간주는 안으로는 자신을 반성하고 밖으로는 사람을 알아보고서 잘 임용했다고 이를 만하니, 그 때문에 몸은 편안하고 국가는 안정되었다. 御使大夫 周昌이 말했다. “임금이 진실로 조간주와 같으면 朝廷(국가)이 위태롭지 않을 것이다
11. 社稷之臣
晏子侍於景公,朝寒請進熱食,對曰:「嬰非君之廚養臣也,敢辭。」公曰:「請進服裘。」對曰:「嬰非田澤之臣也,敢辭。」公曰:「然,夫子於寡人奚為者也?」對曰:「社稷之臣也。」公曰:「何謂社稷之臣?」對曰:「社稷之臣,能立社稷,辨上下之宜,使得其理;制百官之序,使得其宜;作為辭令,可分佈於四方。」自是之後,君不以禮不見晏子也。
晏子가 齊 景公을 모시고 있었는데 경공이 말했다. “아침 기온이 차니 따뜻한 음식을 내오시오.” 안자가 대답하였다. “저 嬰은 임금의 수라를 관장하는 신하가 아니니 외람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경공이 말했다. “갓옷을 내오시오.” 안자가 대답했다. “저 嬰은 임금의 田澤을 관장하는 신하가 아니니 외람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경공이 말했다. “그렇다면 선생은 과인에게 어떤 사람이오?” 안자가 대답했다. “社稷의 신하입니다.” 경공이 말했다. “어떤 것을 사직의 신하라 하는가?”
안자가 대답했다. “사직의 신하는 사직을 바로 세워서 上下의 道義를 분별하여 情理에 합당하게 하고, 百官의 질서를 제정하여 職分을 알맞게 하며, 法令의 條例를 만들어 온 나라 사방에 반포할 수 있습니다.”
이 뒤로부터 경공은 예절에 맞지 않으면 안자를 접견하지 않았다.
12. 有難不死,出亡不送
齊侯問於晏子曰:「忠臣之事其君何若?」對曰:「有難不死,出亡不送。」君曰:「裂地而封之,疏爵而貴之;吾有難不死,出亡不送,可謂忠乎?」對曰:「言而見用,終身無難,臣何死焉;謀而見從,終身不亡,臣何送焉。若言不見用,有難而死之,是妄死也;諫而不見從,出亡而送,是詐為也。故忠臣者能納善於君而不能與君陷難者也。」
齊侯가 晏子에게 물었다. “忠臣은 어떤 도리로 그의 임금을 섬기는 것이오?”
안자가 대답하였다. “임금에게 危難이 있어도 따라 죽지 않고, 임금이 도망을 쳐도 전송하지 않습니다.”
제후가 말했다. “땅을 떼어서 봉해주고 벼슬을 나눠주어 顯貴하게 하였는데, 임금에게 위난이 닥쳤는데도 따라 죽지 않으며 도망을 치는데도 전송하지 않는다면 충신이라고 할 수 있는가?” 안자가 대답했다. “신하가 건의하는 말을 채용하면 죽을 때까지 위난을 만나지 않을 것이니 신하가 어찌 따라 죽으며, 신하가 간하는 말을 따르면 죽을 때까지 도망치는 일이 없을 것이니 신하가 어찌 전송하겠습니까? 만일 건의하는 말을 채용하지 않아 위난을 만나 따라 죽으면 이는 의미 없이 죽는 것이고, 〈바른 말로〉 諫하였으나 따르지 않아 도망치는데 전송하면 이는 속이는 행위입니다. 때문에 충신은 임금이 좋은 말을 받아들여 〈위난을 만나지 않게〉 하고, 임금과 함께 위난에 빠지지 않습니다.”
13. 臣亦乘之下,民之無義,侈其衣食而不顧其行者,臣無以禁之。
晏子朝,乘敝車,駕駑馬,景公見之曰:「嘻!夫子之祿寡耶!何乘不任之甚也!」晏子對曰:「賴君之賜,得以壽三族及國交遊皆得生焉,臣得暖衣飽食,敝車駑馬,以奉其身,於臣足矣。」晏子出,公使梁丘據遺之輅車乘馬,三返不受,公不悅,趣召晏子,晏子至,公曰:「夫子不受,寡人亦不乘。」晏子對曰:「君使臣臨百官之吏,節其衣服飲食之養,以先齊國之人,然猶恐其侈靡而不顧其行也;今輅車乘馬,君乘之上,臣亦乘之下,民之無義,侈其衣食而不顧其行者,臣無以禁之。」遂讓不受也。
晏子가 朝廷에 갈 적에 낡은 수레를 타고 변변찮은 말이 수레를 끄니, 景公이 보고는 말했다. “아, 선생의 祿俸이 적소? 어찌 이렇게 탈 수 없는 아주 나쁜 수레를 타는 게요?” 안자가 대답했다. “임금께서 하사하신 것에 의지하여 저의 三族이 보존되고 국내의 저와 交遊하는 사람들이 모두 생활하고 있습니다. 臣이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으며 변변찮은 말이 끄는 낡은 수레를 타면서 저의 몸을 유지하니, 신은 이것으로 만족합니다.”
안자가 나가자 경공이 梁丘據를 보내어 임금이 타는 큰 수레[輅車]와 네 필의 말[乘馬]을 주었는데, 안자는 세 차례나 이를 되돌려 보내고 받지 않았다. 경공은 기분이 좋지 않아 급히 안자를 불렀다. 안자가 도착하자 경공이 말했다. “선생이 이것을 받지 않으면 寡人도 수레를 타지 않겠소.”
안자가 대답했다. “임금께서 신이 모든 관리를 감독하게 하셨으니, 신이 衣服과 飮食의 공급을 절약하여 齊나라 백성들에게 앞장서 模範을 보이지만, 그래도 백성들이 사치하여 자신의 품행을 돌보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지금 네 필의 말이 끄는 큰 수레는 임금이 위에 계시면서 타는 것인데, 신도 아래에서 이것을 타면 백성들이 道義를 무시하여, 의복과 음식을 사치하며 자신의 품행을 돌보지 않는 자를 신은 금지할 방도가 없을 것입니다.” 끝내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14. 君賜卿位以顯其身,嬰不敢為顯受也,為行君令也;寵之百萬以富其家,嬰不敢為富受也,為通君賜也
景公飲酒,陳桓子侍,望見晏子而復於公曰:「請浮晏子。」公曰:「何故也?」對曰:「晏子衣緇布之衣,糜鹿之裘,棧軫之車,而駕駑馬以朝,是隱君之賜也。」公曰:「諾。」酌者奉觴而進之曰:「君命浮子。」晏子曰:「何故也?」陳桓子曰:「君賜之卿位以尊其身,寵之百萬以富其家,群臣之爵,莫尊於子,祿莫厚於子;今子衣布衣之衣,糜鹿之裘,棧軫之車而駕駑馬以朝,則是隱君之賜也,故浮子。」晏子避席曰:「請飲而後辭乎?其辭而後飲乎?」公曰:「辭然後飲。」晏子曰:「君賜卿位以顯其身,嬰不敢為顯受也,為行君令也;寵之百萬以富其家,嬰不敢為富受也,為通君賜也;臣聞古之賢臣有受厚賜而不顧其國族,則過之;臨事守職不勝其任,則過之;君之內隸,臣之父兄,若有離散在於野鄙者,此臣之罪也;君之外隸,臣之所職,若有播亡在四方者,此臣之罪也;兵革不完,戰車不修,此臣之罪也。若夫敝車駑馬以朝主者,非臣之罪也,且臣以君之賜,臣父之黨無不乘車者,母之黨無不足以衣食者,妻之黨無凍餒者,國之簡士待臣而後舉火者數百家,如此為隱君之賜乎?彰君之賜乎?」公曰:「善,為我浮桓子也。」
景公이 술을 마실 적에 陳桓子가 모시고 있다가 晏子를 바라보고 경공에게 보고하였다. “안자에게 罰酒를 먹이겠습니다.” 경공이 말했다. “무슨 까닭이오?” 진환자가 대답했다. “안자가 검은 베옷과 고라니가죽으로 만든 거친 갖옷을 입고, 앉는 자리를 대로 엮어 깐 수레에 변변찮은 말을 메워 끌게 하면서 朝廷에 나오니, 이는 임금께서 하사하신 것을 숨긴 것입니다.” 경공이 말했다. “좋다.” 〈안자가 도착하자〉 술을 따르는 사람이 술잔을 받들고 안자에게 나아가 말했다. “임금께서 당신에게 벌주를 들게 하셨습니다.”
안자가 말했다. “무슨 까닭인가?” 진환자가 말했다. “임금께서 卿의 벼슬을 주시어 당신의 신분을 존귀하게 해주시고 많은 녹봉을 주시어 당신의 가정을 부유하게 하시니, 群臣 중에 벼슬이 당신보다 높은 이가 없으며 녹봉이 당신보다 많은 이가 없소. 그런데 지금 당신은 검은 베옷과 고라니가죽으로 만든 거친 갖옷을 입고, 앉는 자리를 대로 엮어 깐 수레에 변변찮은 말을 메워 끌게 하면서 조정에 나오니, 이는 임금께서 하사하신 것을 숨긴 것이오. 이 때문에 당신에게 벌주를 들게 하는 것이오.” 안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벌주를 마신 뒤에 말씀을 드릴까요? 아니면 말씀을 드린 뒤에 벌주를 마실까요?” 경공이 말했다. “말을 한 뒤에 벌주를 마시시오.”
안자가 말했다. “임금께서 卿의 벼슬을 주시어 저의 신분을 높고 귀하게 해주셨으나 저 嬰은 감히 높고 귀한 벼슬을 위하여 받은 것이 아니라 임금의 명령을 받들어 행하기 위해 받은 것이고, 임금께서 많은 녹봉을 주시어 저의 집을 부유하게 해주셨으나 저 嬰은 감히 부유함을 위하여 받은 것이 아니라 임금께서 주신 것을 유통시키기 위하여 받은 것입니다. 신은 들으니 ‘예전의 어진 임금은 신하가 많은 녹봉을 받고도 鄕吏의 종족을 돌보지 않으면 책망하고, 일을 만나 벼슬만 지킨 채 자기의 임무를 감당하지 못하면 책망한다.’ 하였습니다. 宮 안에 예속된 신하는 신의 父兄이니 만일 임금 곁을 떠나 먼 지역을 유랑하는 이가 있으면 이는 신의 잘못이고, 宮 밖에 예속된 신하는 신이 관할하는 직책에 있으니 만일 사방에 떠돌아다니는 이가 있으면 이는 신의 잘못이며, 무기와 갑옷이 완비되지 않고 戰車가 수리되지 않았으면 이는 신의 잘못입니다. 변변찮은 말이 끄는 낡은 수레를 타고 朝見하는 것과 같은 일은, 생각건대 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또 신은 임금께서 주신 녹봉으로 아버지의 친족이 수레를 타지 않는 사람이 없고, 어머니의 친족이 입고 먹는 데 충분하지 않는 사람이 없고, 아내의 친족이 추위에 얼고 굶주리는 자가 없으며, 나라 안의 벼슬 없는 선비가 신의 도움을 기다린 뒤에 밥을 짓는 자가 수백 집입니다. 이와 같은 것이 임금께서 주신 것을 숨긴 것입니까? 아니면 임금께서 주신 것을 闡揚한 것입니까?”
경공이 말했다. “좋소. 나를 위해 대신 無宇에게 벌주를 먹이시오.”
15. 厚取之君而厚施之人,代君為君也,忠臣不為也;厚取之君而藏之,是筐筴存也,仁人不為也;厚取之君而無所施之,身死而財遷,智者不為也
晏子方食,君之使者至,分食而食之,晏子不飽,使者返言之景公,景公曰:「嘻,夫子之家若是其貧也,寡人不知也,是寡人之過也。」令吏致千家之縣一於晏子,晏子再拜而辭,曰:「嬰之家不貧,以君之賜,澤覆三族,延及交遊,以振百姓,君之賜也厚矣,嬰之家不貧也!嬰聞之,厚取之君而厚施之人,代君為君也,忠臣不為也;厚取之君而藏之,是筐筴存也,仁人不為也;厚取之君而無所施之,身死而財遷,智者不為也。嬰也聞為人臣,進不事上以為忠,退不克下以為廉,八升之布,一豆之食,足矣。」使者三返,遂辭不受也。
晏子가 막 밥을 먹을 때 임금이 보낸 使者가 오니, 밥을 나누어 먹어 안자가 배불리 먹지 못하였다. 사자가 돌아가서 景公에게 이를 말하자 경공이 말했다. “아, 선생의 집이 이와 같이 가난한가? 과인은 그런 정황을 알지 못했으니 이는 과인의 잘못이다.” 관리에게 명하여 천 戶가 사는 한 縣을 안자에게 주었는데, 안자는 再拜한 뒤에 사양하면서 말했다.
“저 嬰의 집은 가난하지 않아 임금께서 주신 녹봉으로 三族에게 두루 恩澤을 베풀고 交遊하는 친구에게까지 미쳤으며 백성들을 구제하였으니 임금께서 주신 것이 많습니다. 저 嬰의 집은 가난하지 않습니다. 저는 들으니 ‘임금에게 많이 받아서 남에게 많이 베풀면 이는 임금을 대신하여 임금 행세를 하는 것이니 忠臣은 이렇게 하지 않고, 임금에게 많이 받아서 자기 집에 저장하면 이는 상자에 담아놓는 것이니 仁人은 이렇게 하지 않으며, 임금에게 많이 받아서 남에게 베푼 것이 없어 죽고 난 뒤에 재산이 다른 사람에게 옮겨가면 이는 관리하여 저장만 하는 것이 되니 智慧로운 사람은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저는 들으니 ‘신하가 되어서 조정에 나아가 忠誠으로 임금을 섬기지 못하고, 조정에서 물러나 아랫사람을 淸廉으로 잘 대하지 못하면, 여덟 새[升] 베와 한 그릇[豆]의 밥이면 충분하다.’고 합니다.”
사자가 세 차례나 갔다가 돌아왔으나 끝내 거절하고 받지 않았다.
16. 君死吾不死,君亡吾不亡
陳成子謂鴟夷子皮曰:「何與常也?」對曰:「君死吾不死,君亡吾不亡。」陳成子曰:「然子何以與常?」對曰:「未死去死,未亡去亡,其有何死亡矣!
陳成子가 鴟夷子皮에게 말했다. “무엇으로 나를 도우려는가?”
치이자피가 대답하였다. “主君이 죽더라도 저는 죽지 않고, 주군이 도망치더라도 저는 도망치지 않겠습니다.”
진성자가 말했다. “그렇다면 그대는 무엇으로 나를 도우려는가?” 치이자피가 대답하였다. “주군이 죽지 않았을 때 죽게 될 우환을 제거하고, 주군이 도망치지 않았을 때 도망치게 될 우환을 제거할 것이니, 어찌 죽거나 도망칠 일이 있겠습니까!”
17. 諫諍輔弼之人,社稷之臣
從命利君謂之順,從命病君謂之諛,逆命利君謂之忠,逆命病君謂之亂,君有過不諫諍,將危國殞社稷也,有能盡言於君,用則留之,不用則去之,謂之諫;用則可生,不用則死,謂之諍;有能比和同力,率群下相與強矯君,君雖不安,不能不聽,遂解國之大患,除國之大害,成於尊君安國謂之輔;有能亢君之命,反君之事,竊君之重以安國之危,除主之辱攻伐足以成國之大利,謂之弼。故諫諍輔弼之人,社稷之臣也,明君之所尊禮,而闇君以為己賊;故明君之所賞,闇君之所殺也。明君好問,闇君好獨,明君上賢使能而享其功;闇君畏賢妒能而減其業,罰其忠,而賞其賊,夫是之謂至闇,桀紂之所以亡也。詩云:『曾是莫聽,大命以傾』,此之謂也。」
命令을 좇아 임금을 이롭게 하는 것을 順이라 이르고, 명령을 좇아 임금을 해롭게 하는 것을 諛(아첨할 유)라 이르고, 명령을 거슬러 임금을 이롭게 하는 것을 忠이라 이르고, 명령을 거슬러 임금을 해롭게 하는 것을 亂이라 이른다.
임금에게 잘못이 있으나 諫諍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라는 위태롭고 社稷은 망한다. 임금에게 할 말을 다하여 임금이 쓰면 머물러 있고 쓰지 않으면 떠나는 것을 諫이라 이르고, 임금에게 할 말을 다하여 임금이 쓰면 괜찮고 쓰지 않으면 죽는 것을 諍이라 이른다.
지혜를 합하고 힘을 함께하여 群臣을 거느리고 함께 임금의 잘못을 강력히 바로잡으면 임금의 〈마음은〉 비록 편안치 않으나 따르지 않을 수 없으니, 끝내 나라의 큰 患難을 해결하고 나라의 큰 弊害를 제거하여 임금을 존귀하게 하고 나라를 편안하게 하는 것을 輔라 이른다. 임금의 명령에 저항하고 임금이 하는 일을 반대하며 임금의 권력을 빌려서 나라의 위태로운 정세를 편안히 하고 임금의 치욕을 제거하며 공로는 나라의 큰 이익을 이루게 할 수 있는 것을 弼이라 한다.
그러므로 諫‧諍‧輔‧弼하는 사람은 사직을 편안히 하는 신하이니, 賢明한 임금은 존중하여 예우하고 昏君은 자기의 賊이라 여긴다. 그러므로 현명한 임금이 상을 주는 대상이고, 혼군이 살해하는 대상이다. 현명한 임금은 묻기를 좋아하고 혼군은 독단하기를 좋아하니, 현명한 임금은 賢人을 존중하고 재능 있는 사람을 사용하여 그들이 세운 功을 향유하고, 혼군은 현인을 꺼리고 재능 있는 사람을 시기하여 그들이 세운 공을 없애버린다.
忠臣은 벌을 주고 奸賊은 상을 주면, 이를 지극히 우매한 임금이라 하는 것이니 桀王과 紂王이 망한 원인이다. 《詩經》에 “일찍이 諫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여 국가의 命運이 기울어졌다.” 하였는데, 이를 이른 말이다.
18. 厥也愛君之丑而不愛君之過也,臣愛君之過而不愛君之丑
簡子有臣尹綽、赦厥。簡子曰:「厥愛我,諫我必不於眾人中;綽也不愛我,諫我必於眾人中。」尹綽曰:「厥也愛君之丑而不愛君之過也,臣愛君之過而不愛君之丑。」孔子曰:「君子哉!尹綽,面訾不譽也。」
趙簡子에게 尹綽과 赦厥이라는 家臣이 있었는데 簡子가 말했다. “赦厥은 나를 아껴서 반드시 많은 사람들이 있는 데에서 나에게 諫하지 않고, 尹綽은 나를 아끼지 않아서 반드시 많은 사람들이 있는 데에서 나에게 간하는구나.”
윤작이 말했다. “사궐은 임금의 추한 모습이 드러날까 봐 애석해하고 임금이 過誤를 범하는 것은 애석해하지 않았거니와, 저는 임금이 과오를 범하는 것을 애석해하고 임금의 추한 모습이 드러나는 것은 애석해하지 않았습니다.”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君子로구나. 윤작이여! 면전에서 비판은 하되, 치켜세우지는 않는구나.”
(* 丑 : 소 축, 추할 추. 訾 : 헐뜯을 자)
19. 未嘗弼吾過
高繚仕於晏子,晏子逐之,左右諫曰:「高繚之事夫子,三年曾無以爵位,而逐之,其義可乎?」晏子曰:「嬰仄陋之人也,四維之然後能直,今此子事吾三年,未嘗弼吾過,是以逐之也。」
高繚가 晏子 아래에서 벼슬하면서 3년 동안 아무 사고가 없었는데 안자가 내쫓았다. 안자의 측근들이 諫하였다. “고료가 3년간 당신을 섬기는 동안에 일찍이 爵位는 주지 않고 쫓아내니 이것이 옳은 도리입니까?”
안자가 말했다. “나 嬰은 식견이 천박한 사람이라, 四維로 표준을 세운 뒤에야 바른 道를 행할 수 있는데, 지금 이 사람은 나를 섬긴 3년 동안 일찍이 나의 잘못을 바로잡아 도운 적이 없기 때문에 쫓아낸 것이다.”
(* 弼 : 도울 필, 바로잡을 필)
20. 為人下者,其猶土乎
子貢問孔子曰:「賜為人下,而未知所以為人下之道也?」孔子曰:「為人下者,其猶土乎!種之則五穀生焉,掘之則甘泉出焉,草木植焉,禽獸育焉,生人立焉,死人入焉,多其功而不言,為人下者,其猶土乎!」
子貢이 孔子께 여쭈었다. “저 賜는 남의 아랫사람이 되었는데도, 남의 아랫사람이 되는 도리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남의 아랫사람이 된 사람은 흙의 역할과 같이 해야 할 것이다. 씨를 뿌리면 五穀이 나고 아래를 파면 샘물이 나오며, 그 위에 草木을 심고 짐승을 기르며, 산 사람은 그 위에서 살고 죽은 사람은 그 밑에 묻어서, 功이 많으면서도 공을 말하지 않으니, 아랫사람이 된 자는 흙과 같아야 될 것이다.”
21. 有人貴而不能為人上,賤而羞為人下,此奸人之心也
孫卿曰:「少使長,賤事貴,不肖事賢,此天下之通義也。有人貴而不能為人上,賤而羞為人下,此奸人之心也,身不離奸心,而行不離奸道,然而求見譽於眾,不亦難乎?」
孫卿이 말했다. “젊은이가 어른을 섬기고, 微賤한 사람이 尊貴한 사람을 섬기며, 不肖한 사람이 賢人을 섬기는 것은 바로 천하의 通行하는 도리이다. 사람이 존귀하면서도 남의 윗사람 된 도리를 하지 못하고, 미천하면서도 남의 아랫사람 된 것을 부끄럽게 여기면, 이것은 奸惡한 사람의 마음이다. 몸에서 간악한 마음을 떼어버리지 못하며, 행위에서 간악한 도리를 떼어버리지 못하고서, 많은 사람에게 칭찬받기를 구한다면 또한 어렵지 않겠는가?”
22.
公叔文子問於史叟曰:「武子勝事趙簡子久矣,其寵不解,奚也?」史叟曰:「武子勝,博聞多能而位賤,君親而近之,致敏以愻,藐而疏之,則恭而無怨色,入與謀國家,出不見其寵,君賜之祿,知足而辭,故能久也。」
公叔文子가 史臾에게 물었다. “武子 勝이 趙簡子를 섬긴 지 오래되었는데 그의 총애가 해이해지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이오?”
사유가 말했다. “武子 勝은 見聞이 넓고 才能이 많으면서 地位가 낮아 主君이 친근히 하면 민첩함을 다하면서 겸손하고 소원히 하면 공손하면서 원망하는 기색이 없으며, 조정에 들어와서는 함께 국가의 일을 의논하고 조정에서 나가서는 총애받는 것을 드러내지 않으며, 임금이 주는 祿俸에 만족할 줄을 알아서 많이 주는 것을 사양하였소. 이 때문에 총애가 오래 이어진 것이오.”
23. 附下而罔上者死,附上而罔下者刑
泰誓曰:「附下而罔上者死,附上而罔下者刑;與聞國政而無益於民者退,在上位而不能進賢者逐。」此所以勸善而黜惡也。故傳曰:「傷善者國之殘也,蔽善者國之讒也,愬無罪者國之賊也。」
《書經》 〈泰誓〉에 말했다. “낮은 사람에게 빌붙어 높은 사람을 속이는 자는 죽고, 높은 사람에게 빌붙어 낮은 사람을 속이는 자는 형벌을 받으며, 國政에 참여하면서도 백성에게 이익이 됨이 없는 자는 물러나야 하고,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 賢人을 추천하지 않는 자는 퇴출시킨다.”
이 말은 善한 사람을 권장하고 惡한 사람을 내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傳에 말했다. “선한 사람을 傷害하는 자는 국가를 해치는 사람이고, 선한 사람을 埋沒시키는 사람은 국가를 讒害하는 사람이며, 죄 없는 사람을 謀陷하는 사람은 국가를 危害하는 사람이다.”
24. 假於鬼神時日卜筮以疑於眾者殺
王制曰:「假於鬼神時日卜筮以疑於眾者殺也。」
《禮記》 〈王制〉에 말하였다. “鬼神‧時日‧卜筮 등을 빌려서 뭇사람을 의혹시키는 사람은 사형에 처해야 한다.”
25. 是汝不明君之惠,見汝之德義也,速已則可矣,否則爾之受罪不久矣
子路為蒲令,備水災,與民春修溝瀆,為人煩苦,故予人一簞食,一壺漿,孔子聞之,使子貢復之,子路忿然不悅,往見夫子曰:「由也以暴雨將至,恐有水災,故與人修溝瀆以備之,而民多匱於食,故與人一簞食一壺漿,而夫子使賜止之,何也?夫子止由之行仁也,夫子以仁教而禁其行仁也,由也不受。」子曰:「爾以民為餓,何不告於君,發倉廩以給食之;而以爾私饋之,是汝不明君之惠,見汝之德義也,速已則可矣,否則爾之受罪不久矣。」子路心服而退也。
子路가 蒲의 邑宰가 되어 水災를 대비하여 봄에 백성들과 함께 도랑을 정비하니,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하였기 때문에 사람마다 한 도시락의 밥과 한 병의 음료수를 지급하였다. 孔子께서 이를 들으시고 子貢을 보내 엎어버리게 하니, 자로는 화가 나고 기분이 좋지 못하여 가서 공자를 뵙고 말했다.
“저 由는 앞으로 暴雨가 오면 수재가 발생할까 걱정되었기 때문에 백성들과 함께 도랑을 정비하여 수재에 대비하였는데, 백성들이 대부분 먹을 것이 떨어졌습니다. 때문에 사람마다 한 도시락의 밥과 한 병의 음료수를 지급하였는데, 선생님께서 賜(子貢)를 보내어 저지하셨으니 무엇 때문입니까? 선생님께서는 저 由가 仁을 행하는 일을 저지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저에게 仁을 가르치시고 도리어 仁을 행하는 일을 금지하셨으니, 저는 수용하지 못하겠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백성들이 굶주리거든 어찌 임금께 보고하여 창고를 열어서 밥을 먹이지 않고 너의 개인 식량으로 먹이느냐? 이는 네가 임금의 은혜를 宣揚하지 않고 너의 恩德을 드러내는 것이니, 빨리 그만두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으면 너는 오래지 않아 죄를 받을 것이다.”
자로는 마음속으로 복종하면서 물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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