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영과 세상살이/설원(說苑)_유향(劉向)

군도(券一 君道) _ 설원(說苑) _ 유향(劉向)

by 변리사 허성원 2022. 5. 5.

군도(券一 君道) _ 설원(說苑) _ 유향(劉向)

 

** 역문은 동양고전DB에서, 원문은 說苑에서 가져옴.

**   帝王 統治行爲와 규범을 論述 文章이다. 專制時代 최고 統治者 人品 能力은 국가를 다스리는 문제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를 차지한다. 이는 국가의 興亡盛衰 國民 安危에 직결되는 문제로서 統治의 근본이 여기에 있다.
人君之道 人君之事를 각 事例別로 제시하였는데, 이를 내용별로 分類하면, ① 임금은 愛民思想을 기본으로 敎化를 중시하고 형벌을 가볍게 할 것, ② 임금은 사람의 자질과 재능을 알아서 賢人 選任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任用할 것, ③ 임금은 品行 道德 修養할 것, ④ 임금은 독자적으로 결단할 것, ⑤ 간사하고 아첨하는 신하를 멀리할 것, ⑥ 임금은 敬天思想을 가질 것, ⑦ 임금은 자신의 言行 反省하는 일을 중요시할 것, ⑧ 임금은 천하가 公物임을 알아야 할 것, ⑨ 임금은 근본보다 말단이 커져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를 방지할 것 등이다. 이에 해당하는 事例 故事 問答으로 열거하였는데, 모두 46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1. 人君之道,清淨無為,務在博愛,趨在任賢,廣開耳目,以察萬方,不固溺於流俗

晉平公問於師曠楚詞章句:「師曠,聖人,字子野,生無目而善聽,主樂太師。」莊子駢拇篇釋文史記云:「冀州南和人,生而無目。」淮南主術篇文子精誠篇俱云:「師曠瞽而為太宰。」曰:「人君之道如何?」對曰:「人君之道,清淨無為,務在博愛,趨在任賢,廣開耳目,以察萬方,不固溺於流俗曰:「太平御覽六百二十『固』作『混』。」承周案:作「混」疑臆改,後漢書朱暉傳引仍作「固」,可證。劉恕通鑑外紀用此文,「固溺」作「牽掣」,亦不足據。不拘繫於左右,廓然遠見,踔然獨立,屢省考績,益稷:「屢省乃成。」以臨臣下。此人君之操也。」平公曰:「善。」

晉 平公師曠에게 물었다. “임금 노릇하는 도리는 어떠해야 하는가?”

사광이 대답하였다. “임금 노릇하는 도리는 政治를 간결하고 번거롭지 않게 하여 백성을 널리 사랑하는 데 힘쓰고 어진 이를 뽑아 맡기는 일을 서두르며, 귀와 눈을 넓게 열어 萬方의 일을 살펴야 합니다. 流俗에 단단히 빠지지 않고 측근에 얽매이지 않으며, 마음을 활짝 열어 멀리까지 내다보고 우뚝하게 자신의 주장을 세우며, 자주 官吏의 공적을 살펴서 신하 위에 군림해야 하니, 이것이 임금이 지켜야 할 조목입니다.

평공이 말하였다. “훌륭한 말이다.”

2. 人君之事,無為而能容下。夫事寡易從,法省易因,故民不以政獲罪也。大道容眾,大德容下,聖人寡為而天下理矣

齊宣王謂尹文曰:「人君之事何如?」尹文對曰:「人君之事,無為而能容下。夫事寡易從,法省易因,故民不以政獲罪也。大道容眾,大德容下,聖人寡為而天下理矣。《》曰:『睿作聖。』詩人曰:『岐有夷之行,子孫其保之!』」宣王曰:「善。」

齊 宣王尹文에게 말했다. “임금이 행하는 일은 어떠해야 하는가?”

윤문이 대답하였다. “임금이 행하는 일은 번거롭지 않은 정치를 하되 아랫사람을 잘 包容하는 것입니다. 일이 적으면 따르기 쉽고, 法이 간략하면 지키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政令 때문에 죄를 얻지 않습니다. 넓고 큰 길은 많은 사람을 용납하고, 높고 큰 德은 많은 아랫사람을 포용하니, 聖人은 간여하는 일이 적으나 천하는 잘 다스려집니다. 書經슬기로우면(포용하면) 성인이 된다.’ 하였고, 詩經岐山에 평탄한 도로가 있어서 자손이 보호된다.’ 하였습니다.” 선왕이 말하였다. “훌륭한 말이다.”

3. 文武俱行,威德乃成;既成威德,民親以服,清白上通,巧佞下塞,諫者得進,忠信乃畜

成王封伯禽為魯公,召而告之曰:「爾知為人上之道乎?凡處尊位者必以敬,下順德規諫,必開不諱之門,撙節安靜以藉之,諫者勿振以威,毋格其言,博采其辭,乃擇可觀。夫有文無武,無以威下,有武無文,民畏不親,文武俱行,威德乃成;既成威德,民親以服,清白上通,巧佞下塞,諫者得進,忠信乃畜。」伯禽再拜受命而辭。

成王伯禽魯公에 봉하고 불러서 말해주었다. 너는 백성의 윗사람이 되는 도리를 아느냐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반드시 아랫사람을 恭敬하여 그들이 規諫하는 말을 따르며, 반드시 꺼리지 않고 말하는 문을 열어서 謙遜히 물러나며, 마음을 안정시켜 그들을 편안하게 해야 한다간하는 사람을 위엄으로 두렵게 하지 말아서 그의 말을 막지 말고 그의 말을 널리 채취하여야 비로소 볼 만한 말을 선택할 수 있다文德만 있고 武威가 없으면 아랫사람에게 위엄을 세울 수 없고, 무위만 있고 문덕이 없으면 백성이 두려워하여 친근히 하지 않는다문덕과 무위를 함께 행하면 威嚴과 仁德이 비로소 이루어지고, 위엄과 인덕이 이미 이루어지면 백성이 친근히 하여 복종하며, 청렴결백한 사람이 위로 통하게 하면 교활하고 간사한 사람이 아래에서 막히게 되며, 규간하는 사람이 등용되면 忠信한 사람이 비로소 모일 것이다.

백금이 再拜하며 성왕의 명을 받고 하직하였다.

4. 樹曲木者 惡得直景

陳靈公行僻而言失,泄冶曰:「陳其亡矣!吾驟諫君,君不吾聽而愈失威儀。夫上之化下,猶風靡草,東風則草靡而西,西風則草靡而東,在風所由而草為之靡,是故人君之動不可不慎也。夫樹曲木者惡得直景,人君不直其行,不敬其言者,未有能保帝王之號,垂顯令之名者也。易曰:『夫君子居其室,出其言善,則千里之外應之,況其邇者乎?居其室,出其言不善,則千里之外違之,況其邇者乎?言出於身,加於民;行發乎邇,見乎遠。言行君子之樞機,樞機之發,榮辱之主,君子之所以動天地,可不慎乎?』天地動而萬物變化。詩曰:『慎爾出話,敬爾威儀,無不柔嘉。』此之謂也。今君不是之慎而縱恣焉,不亡必弒。」靈公聞之,以泄冶為妖言而殺之,後果弒於徵舒。

陳 靈公이 괴벽한 행위를 하고 사리에 맞지 않는 말을 하니 泄冶가 말했다나라는 장차 망할 것이다. 내가 여러 차례 임금에게 간했건만 임금께서 내 말을 따르지 않고 더욱 군주의 威儀를 잃고 있다윗사람이 아랫사람을 敎化하는 것은 마치 바람이 풀을 쓰러뜨리는 것과 같아서, 東風이 불면 풀이 서쪽으로 쓰러지고 西風이 불면 풀이 동쪽으로 쓰러져서 바람이 부는 곳을 따라 풀이 쓰러진다이 때문에 임금의 거동은 삼가지 않을 수 없다굽은 나무를 심은 사람이 어떻게 곧은 나무 그림자를 얻겠는가? 임금으로서 자기의 행동을 바르게 하지 않고 말을 공경히 하지 않는 자 중에는 帝王의 호칭을 보전하고 좋은 명성을 전하는 자가 있지 않다.

周易군자가 자기의 집에 있으면서 하는 말이 선하면 천 리 밖의 사람이 호응하는 것이니 더구나 가까이 있는 사람이겠는가자기의 집에 있으면서 하는 말이 선하지 못하면 천 리 밖의 사람이 위배하는 것이니 더구나 가까이 있는 사람이겠는가말은 자신의 입에서 나와 백성에게 미치며 행동은 가까운 곳에서 나와 먼 곳에서 나타나니, 말과 행동은 군자의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매우 중요한 부분을 드러내는 것이 군자의 榮辱을 주관한다군자가 天地를 감동시키는 것이니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였으니 천지를 감동시켜 만물을 변화하게 하는 것이다.

詩經너의 말을 삼가며 너의 威儀를 공경히 하여 溫柔하고 아름답게 할지어다.’ 하였으니 이런 뜻을 말한 것이다지금 임금께서 이를 삼가지 않고 제멋대로 하니 나라가 망하지 않으면 시해될 것이다.”

영공이 이 말을 듣고 설야가 요망한 말을 한다 하여 살해했었는데, 뒤에 정말로 夏徵舒에게 시해되었다.

5. 惡惡道不能甚,則其好善道亦不能甚;好善道不能甚,則百姓之親之也,亦不能甚

魯哀公問於孔子曰:「吾聞君子不博,有之乎?」孔子對曰:「 有之。」哀公曰:「何為其不博也?」孔子對曰:「為其有二乘。」哀公曰:「有二乘則何為不博也?」孔子對曰:「為行惡道也。」哀公懼焉。有間曰:「若是乎君子之惡惡道之甚也!」孔子對曰:「惡惡道不能甚,則其好善道亦不能甚;好善道不能甚,則百姓之親之也,亦不能甚。」詩云:『未見君子,憂心惙惙,亦既見止,亦既覯止,我心則說。』詩之好善道之甚也如此。哀公曰:「善哉!吾聞君子成人之美,不成人之惡。微孔子,吾焉聞斯言也哉?」

魯 哀公孔子에게 물었다. “나는 君子는 바둑(장기)을 두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이런 사실이 있습니까?” 공자가 대답하였다. “그런 사실이 있습니다.” 애공이 말했다. “무엇 때문에 바둑을 두지 않습니까?” 공자가 대답하였다. “그것은 二乘이 있기 때문입니다.” 애공이 말했다. “이승이 있으면 무엇 때문에 바둑을 두지 않습니까?” 공자가 대답하였다. “나쁜 도리를 행하기 때문입니다.” 애공이 놀라워하였다조금 지난 뒤에 애공이 말했다. “군자가 나쁜 도리를 몹시 미워함이 이와 같구려!” 공자가 대답하였다. “나쁜 도리를 몹시 미워하지 않으면 좋은 도리도 몹시 좋아하지 않고, 좋은 도리를 몹시 좋아하지 않으면 백성이 친근히 하는 태도도 심하지 않게 됩니다詩經군자를 만나지 못했기에 근심하는 마음이 불안했어라. 이미 만나며 그를 보면 내 마음은 기쁘리.’라 하였으니, 시경에서 좋은 도리를 몹시 좋아함이 이와 같습니다.”

애공이 말했다. “훌륭합니다. 나는 군자는 남의 아름다운 일을 이루어주고 남의 나쁜 일을 이루어주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그대가 아니면 내가 어떻게 이 말을 듣겠습니까?”

(* 二乘 : 바둑에서, 검은 바둑돌과 흰 바둑돌로 길을 나누어 나아가며 서로 속이고 침범하는 일이다. 乘은 ‘속이다, 침범하다’의 뜻이다.)

6. 故不賞而民勸,不罰而民治。先恕而後教

河間獻王曰:「堯存心於天下,加志於窮民,痛萬姓之罹罪,憂眾生之不遂也。有一民饑,則曰此我饑之也;有一人寒,則曰此我寒之也;一民有罪,則曰此我陷之也。仁昭而義立,德博而化廣;故不賞而民勸,不罰而民治。先恕而後教,是堯道也。

河間獻王이 말했다. “임금은 천하 백성을 잘 다스리는 데에 마음을 두었고 곤궁한 백성에게 더욱 마음을 썼으며, 만백성이 죄에 걸리는 것을 가슴 아파하였고 많은 백성이 생활을 이루지 못함을 근심하였다. 굶주리는 한 사람이 있으면 ‘이는 내가 그를 굶게 했다.’ 하고, 추위에 떠는 한 사람이 있으면 ‘이는 내가 그를 춥게 했다.’ 하며, 한 백성이 죄가 있으면 ‘이는 내가 죄에 빠뜨렸다.’고 하여, 어진 마음이 밝게 드러나 道義가 수립되고 恩德을 널리 베풀어 敎化가 멀리 전파되었다그러므로 상을 주지 않아도 백성이 善에 권면되고 벌을 주지 않아도 백성이 잘 다스려졌으니, 먼저 관대히 대한 뒤에 교화한 것이 바로 요임금의 천하를 다스린 방법이다.”

7. 諭教猶未竭也

當舜之時,有苗氏不服,其所以不服者,大山在其南,殿山在其北;左洞庭之波,右彭蠡之川;因此險也,所以不服,禹欲伐之,舜不許,曰:『諭教猶未竭也,究諭教焉,而有苗氏請服,天下聞之,皆非禹之義,而歸舜之德。』」

임금 시대를 당하여 有苗氏가 복종하지 않았으니, 그들이 복종하지 않은 까닭은 남쪽에는 大山이 있고 북쪽에는 殿山이 있으며, 왼쪽에는 洞庭湖의 물결이 있고 오른쪽에는 彭蠡湖의 큰 물이 있기에,  天然의 험한 지형에 의지하여 복종하지 않은 것이다.

임금이 정벌하려고 하자 임금이 허락하지 않고 말했다.아직 타이르고 가르치는 일에 힘을 다하지 않았다.” 타이르고 가르치는 일에 힘을 다하니 유묘씨가 복종하기를 요청하였다. 천하 사람들이 이 일을 듣고 모두들 우임금의 義理를 비난하고 순임금의 德政에 귀의하였다.

8. 近者親之,遠者安之

周公踐天子之位布德施惠,遠而逾明,十二牧,方三人,出舉遠方之民,有饑寒而不得衣食者,有獄訟而失職者,有賢才而不舉者,以入告乎天子,天子於其君之朝也,攝而進之曰:「意朕之政教有不得者與!何其所臨之民有饑寒不得衣食者,有獄訟而失職者,有賢才而不舉者?」其君歸也,乃召其國大夫,告用天子之言,百姓聞之皆喜曰:「此誠天子也!何居之深遠而見我之明也,豈可欺哉!」故牧者所以辟四門,明四目,達四聰也,是以近者親之,遠者安之。詩曰:「柔遠能邇,以定我王」,此之謂矣。

周公이 천자의 자리에 올라 德澤恩惠를 펴서 먼 지방일수록 더욱 밝게 나타났다열두 사람의 을 임명하여 각 방면마다 세 사람을 두고 나가서 먼 지방 백성의 실정을 살펴, 굶주리고 추위에 떠는데도 옷과 밥을 얻지 못하는 자가 있는지, 訟事가 있는데도 직책을 다하지 않는 자가 있는지, 어진 人才가 있는데도 추천하지 않는 자가 있는지 조정에 들어와 천자에게 보고하게 하였다천자는 제후국의 군주가 와서 朝見할 때 그들이 을 하고 조정에 나오게 하여 말했다.

아마도 의 정치교화에 합당치 못한 것이 있는가 보오. 어찌하여 다스리는 백성 중에 굶주리고 추위에 떠는데도 옷과 밥을 얻지 못하는 자가 있으며, 송사가 있는데도 직책을 다하지 않는 자가 있으며, 어진 인재가 있는데도 추천하지 않는 자가 있는 것이오?

그 군주는 본국에 돌아가서 곧 본국의 大夫를 불러 천자가 한 말을 일러주었다백성이 이 말을 듣고 모두들 기뻐하면서 말했다. “이분은 진실로 천자이시다. 어떻게 먼 수도의 깊은 궁궐에 살면서 우리의 실정을 밝게 아시는가? 어찌 속일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은 사방의 문을 활짝 열며 사방의 실정을 밝게 보며 사방의 말을 밝게 통해야 한다. 이 때문에 가까운 지방의 사람은 천자를 친근히 하고 먼 지방의 사람은 편안히 지낸다.

詩經먼 지방 사람은 按撫하고 가까운 지방 사람은 親善하게 하여 우리 왕을 안정하게 할 것이다.” 하였으니, 이 뜻을 이르는 말이다.

9. 民亦勞矣,然而不怨者,利歸於民也

河間獻王曰:「禹稱民無食,則我不能使也;功成而不利於人,則我不能勸也;故疏河以導之,鑿江通於九派,灑五湖而定東海,民亦勞矣,然而不怨者,利歸於民也。」

河間獻王이 말했다. “임금이 말하기를 백성이 먹을 것이 없으면 나는 그들을 부리지 못하고, 功業을 이루어도 백성에게 이롭지 못하면 나는 그들을 권면하지 못한다.’ 하였다이 때문에 黃河의 물을 소통시키고 長江을 파서 아홉 지류와 통하게 하며, 五湖의 물을 나누어 東海로 들어가게 하니 백성도 수고로웠다. 그런데도 원망하거나 괴롭게 여기지 않은 것은 백성에게 이로움이 돌아가기 때문이었다.”

10. 百姓有罪,在予一人

禹出見罪人,下車問而泣之,左右曰:「夫罪人不順道,故使然焉,君王何為痛之至於此也?」禹曰:「堯舜之人,皆以堯舜之心為心;今寡人為君也,百姓各自以其心為心,是以痛之。」書曰:「百姓有罪,在予一人。」

임금이 出行하다가 罪人을 보고 수레에서 내려 울자, 곁의 사람들이 말했다저 죄인은 법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저렇게 되었는데 君王께서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마음 아파하십니까?”

우임금이 말했다. “임금과 임금 시대의 사람은 모두 요임금과 순임금의 마음으로 자기의 마음을 삼았는데, 현재 寡人이 임금 노릇하자 백성이 각자 자기의 私心으로 마음을 삼고 있다. 이 때문에 내가 마음 아파하는 것이다書經‘백성에게 죄가 있는 것은 그 책임이 나 한 사람에게 있다.’라 하였다.”

11. 不動而變,無為而成

虞人與芮人質其成於文王,入文王之境,則見其人民之讓為士大夫;入其國則見其士大夫讓為公卿;二國者相謂曰:「其人民讓為士大夫,其士大夫讓為公卿,然則此其君亦讓以天下而不居矣。」二國者,未見文王之身,而讓其所爭以為閑田而反。孔子曰:「大哉文王之道乎!其不可加矣!不動而變,無為而成,敬慎恭己而虞芮自平。」故書曰:「惟文王之敬忌。」此之謂也。

나라와 나라의 두 임금이 境界를 다투다가 文王에게 是非를 판단하여 해결해주기를 요청하려고 문왕이 관할하는 경계에 들어가니 그곳의 백성은 士大夫 되기를 사양함을 보았고, 國都에 들어가니 사대부는 公卿 되기를 사양하는 것을 보았다.

두 나라의 임금이 서로 말했다. “이곳의 백성은 사대부 되기를 사양하고 사대부는 공경 되기를 사양하니, 그렇다면 이곳의 임금도 천하를 사양하고 그 자리에 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는 두 나라의 임금이 문왕 본인을 만나지 않고 서로 다투던 땅을 사양하여 閒田을 만들고 돌아왔다.

孔子께서 말씀하였다. “위대하다. 문왕의 도덕이여! 더할 수가 없구나. 움직이지 않아도 변화하고 한 일이 없는데도 자연히 이루어져서 공경하고 근신하며 자신을 공손히 지키자, 우나라와 예나라의 다툼이 저절로 그치게 되었다.”

그러므로 書經오직 문왕의 근신하고 두려워함으로 하라.” 하였으니, 이 일을 이른 말이다.

12. 天子無戲言

成王與唐叔虞燕居,剪梧桐葉以為珪,而授唐叔虞曰:「余以此封汝。」唐叔虞喜,以告周公,周公以請曰:「天子封虞耶?」成王曰:「余一與虞戲也。」周公對曰:「臣聞之,天子無戲言,言則史書之,工誦之,士稱之。」於是遂封唐叔虞於晉,周公旦可謂善說矣,一稱而成王益重言,明愛弟之義,有輔王室之固。

成王唐叔虞와 한가하게 있다가 오동잎을 오려 를 만들어 당숙우에게 주면서 말했다. “내가 이것을 가지고 너를 봉하겠다.” 당숙우가 기뻐서 이 말을 周公에게 말하였다주공이 성왕에게 뵙기를 요청하여 말했다. “천자께서 를 봉하시겠습니까?” 성왕이 말했다. “내가 우와 한 번 농담을 했습니다.” 

주공이 대답하였다. “신은 들으니 천자는 농담이 없어야 한다 하니, 천자의 말은 史官이 기록하고 樂工이 외우며 가 선양하는 것입니다.”

이에 마침내 당숙우를 에 봉하였다周公 旦은 말을 잘한다고 이를 만하다. 한마디 말에 성왕이 더욱 하는 말을 중시하여 아우를 사랑하는 도리를 표명하고 왕실의 근본을 공고히 하는 데 도움이 있게 하였다.

13. 是故知人者王道也,知事者臣道也,王道知人,臣道知事

當堯之時,舜為司徒,契為司馬,禹為司空,后稷為田疇,夔為樂正,倕為工師,伯夷為秩宗,皋陶為大理,益掌敺禽,堯體力便巧不能為一焉,堯為君而九子為臣,其何故也?堯知九職之事,使九子者各受其事,皆勝其任以成九功,堯遂成厥功以王天下,是故知人者王道也,知事者臣道也,王道知人,臣道知事,毋亂舊法而天下治矣。

임금 시대를 당하여 司徒가 되고, 司馬가 되고, 司空이 되고, 后稷田疇가 되고, 樂正이 되고, 工師가 되고, 伯夷秩宗이 되고, 皐陶大理가 되고, 山澤을 관장하니, 요임금의 체력이 민첩하고 뛰어났으나 그중 한 가지 일도 맡지 않았다.

요는 임금이 되고 아홉 사람은 신하가 되었으니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요임금이 아홉 가지 직무를 알아 아홉 사람으로 각기 담당할 직무를 받게 하자, 아홉 사람이 모두 각자의 직무를 훌륭히 감당하여 각자 맡은 아홉 가지 공업을 이루니, 요임금이 마침내 자기의 공업을 이루어 천하에 왕 노릇하였다.

이 때문에 사람을 알아보는 것은 君主의 바탕이고, 일처리를 아는 자는 臣下의 바탕이다. 군주의 바탕은 사람을 알아보고, 신하의 바탕은 일처리를 알아, 본래의 제도를 어지럽히지 않으면 천하가 잘 다스려진다.

14. 堯見人而知,舜任人然後知,禹以成功舉之

湯問伊尹曰:「三公九卿,二十七大夫,八十一元士,知之有道乎?」伊尹對曰:「昔者堯見人而知,舜任人然後知,禹以成功舉之。夫三君之舉賢,皆異道而成功,然尚有失者,況無法度而任己,直意用人,必大失矣。故君使臣自貢其能,則萬一之不失矣,

湯王伊尹에게 물었다. “3927大夫81元士어떤 이를 뽑아 맡겨야 되는지알아보는 방법이 있소?”

이윤이 대답하였다. “예전에 堯임금은 사람을 보기만 하면 알았고, 舜임금은 사람을 맡겨본 뒤에 알았으며, 禹임금은 일을 맡겨 공업을 이루어야 등용하였습니다. 세 임금이 어진 이를 등용한 것은 모두 방법이 달랐는데도 공업을 이루었지만 그런데도 잘못된 것이 있었습니다. 더구나 일정한 법도가 없이 자기의 주관적 의사로만 사람을 임용하면 반드시 크게 잘못될 것입니다그러므로 임금이 신하에게 자기의 재능을 바치게 하여 임용하면 만분의 일도 잘못됨이 없을 것입니다.”

15. 王者何以選賢? 夫王者得賢材以自輔,然後治也

王者何以選賢? 夫王者得賢材以自輔,然後治也,雖有堯舜之明,而股肱不備,則主恩不流,化澤不行,故明君在上,慎於擇士,務於求賢,設四佐以自輔,有英俊以治官,尊其爵,重其祿,賢者進以顯榮,罷者退而勞力,是以主無遺憂,下無邪慝,百官能治,臣下樂職,恩流群生,潤澤草木,昔者虞舜左禹右皋陶,不下堂而天下治,此使能之效也。」

君王은 무엇 때문에 어진 이를 뽑는가? 군왕이 어진 인재를 얻어 자기를 보좌하게 하여야 그런 뒤에 천하가 잘 다스려지기 때문이다. 堯舜 같은 현명함이 있어도 팔다리 같은 重臣이 갖춰지지 않으면, 임금의 은덕이 퍼지지 않고 교화와 혜택이 시행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현명한 임금이 위에 있으면 를 신중히 뽑고 어진 이를 구하는 데 힘써서, 보좌하는 네 벼슬을 만들어 자기를 보좌하게 하고 걸출한 인물을 두어 관직을 처리하게 하여, 그들의 벼슬을 높여주고 그들의 녹봉을 후하게 주니, 어진 이는 등용되어 榮華가 빛나고 무능한 사람은 퇴출되어 힘을 쓰는 일에 종사한다이 때문에 임금은 남은 근심이 없고 아랫사람은 사특한 사람이 없으며, 百官은 직무를 잘 처리하고 臣下는 직무를 즐겁게 맡아서, 은덕이 뭇 백성에게 퍼지고 은택이 草木까지 윤택하게 한다예전에 虞舜은 왼쪽에는 가 있고 오른쪽에는 皐陶가 있어서 朝堂을 내려가지 않고도 천하가 잘 다스려졌으니, 이는 賢能한 사람을 부린 효과이다.

16. 其失在君好用小善而已,不得真賢也

武王問太公曰:「舉賢而以危亡者,何也?」太公曰:「舉賢而不用,是有舉賢之名,而不得真賢之實也。」武王曰:「其失安在?」太公望曰:「其失在君好用小善而已,不得真賢也。」武王曰:「好用小善者何如?」太公曰:「君好聽譽而不惡讒也,以非賢為賢,以非善為善,以非忠為忠,以非信為信;其君以譽為功,以毀為罪;有功者不賞,有罪者不罰;多黨者進,少黨者退;是以群臣比周而蔽賢,百吏群黨而多姦;忠臣以誹死於無罪,邪臣以譽賞於無功。其國見於危亡。」武王曰:「善!吾今日聞誹譽之情矣。」

武王太公에게 물었다. “어진 이를 추천했는데도 危亡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오?” 태공이 말했다. “어진 이를 추천하였으나 중용하지 않으면 이는 어진 이를 추천했다는 虛名만 있고, 실제로는 진짜 어진 이를 얻지 못해서입니다.”  무왕이 말했다. “그 잘못에 어디에 있소?” 太公望이 말했다. “그 잘못은 임금이 작은 善行이 있는 이를 쓰기 좋아할 뿐, 진짜 어진 이를 얻지 못한 데에 있습니다.” 무왕이 말했다. “작은 선행이 있는 이를 쓰기 좋아함은 어떤 것이오?”

태공이 말했다. “임금이 칭찬하는 말을 듣기 좋아하고 참소하는 말을 싫어하지 않아서, 어질지 않은 이를 어진 이라 여기고, 좋지 못한 이를 좋은 이라 여기고, 忠誠하지 않는 이를 충성하는 이라 여기며, 信義를 지키지 않는 이를 신의를 지키는 이라 여깁니다. 그 임금이 자기를 칭찬하는 사람을 功臣으로 여기고 나쁘게 말하는 사람을 罪人으로 여기며, 공이 있는 사람을 상 주지 않고 죄 있는 사람을 벌주지 않으며, 黨與가 많은 사람을 등용하고 당여가 적은 사람을 내칩니다. 이 때문에 群臣이 당을 결성하여 어진 이를 막고 많은 관리가 떼를 지어 간악한 짓을 하며, 忠臣은 비방을 받아 죄 없이 죽고 奸臣은 칭찬으로 아부하여 공 없이 상을 받으니, 그런 나라는 危亡을 당하게 됩니다.”

무왕이 말했다. “훌륭합니다. 내가 오늘에서야 비방과 칭찬의 실정을 들었습니다.”

17. 不能獨斷,以人言斷者殃也

武王問太公曰:「得賢敬士,或不能以為治者,何也?」太公對曰:「不能獨斷,以人言斷者殃也。」武王曰:「何為以人言斷?」太公對曰:「不能定所去,以人言去;不能定所取,以人言取;不能定所為,以人言為;不能定所罰,以人言罰;不能定所賞,以人言賞。賢者不必用,不肖者不必退,而士不必敬。」武王曰:「善,其為國何如?」太公對曰:「其為人惡聞其情,而喜聞人之情;惡聞其惡,而喜聞人之惡;是以不必治也。」武王曰:「善。」

武王太公에게 물었다. “어진 이를 얻고 를 존경하여도 간혹 국가를 잘 다스리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오?” 태공이 대답했다. “혼자 판단하여 결단하지 못하고 남의 말에 의지하여 결단하는 자는 재앙을 받습니다.” 무왕이 말했다. “어떤 경우를 남의 말에 의지하여 결단한다 하는 것이오?”

태공이 대답했다. “제거할 것을 결정하지 못하여 남의 말에 의지하여 제거하며, 취할 것을 결정하지 못하여 남의 말에 의지하여 취하며, 해야 할 일을 결정하지 못하여 남의 말에 의지하여 하며, 처벌할 사람을 결정하지 못하여 남의 말에 의지하여 처벌하며, 상 줄 사람을 결정하지 못하여 남의 말에 의지하여 상을 줍니다이와 같으면어진 이를 굳이 등용할 필요가 없고, 불초한 사람을 굳이 퇴출시킬 필요가 없으며, 를 굳이 존경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무왕이 말했다. “훌륭합니다. 그런 임금은 나라를 어떻게 다스립니까?”

태공이 대답했다. “그런 임금은 사람됨이 자기의 실정은 듣기 싫어하고 남의 실정은 듣기를 좋아하며, 자기의 나쁜 점은 듣기 싫어하고 남의 나쁜 점은 듣기 좋아합니다. 이 때문에 반드시 잘 다스리지를 못합니다.” 무왕이 말했다. “훌륭합니다.”

18. 夫國之所以不能士者,有五阻焉

齊桓公問於甯戚曰:「筦子今年老矣,為棄寡人而就世也,吾恐法令不行,人多失職,百姓疾怨,國多盜賊,吾何如而使姦邪不起,民衣食足乎?」甯戚對曰:「要在得賢而任之。」桓公曰:「得賢奈何?」甯戚對曰:「開其道路,察而用之,尊其位,重其祿,顯其名,則天下之士騷然舉足而至矣。」桓公曰:「既以舉賢士而用之矣,微夫子幸而臨之,則未有布衣屈奇之士踵門而求見寡人者。」甯戚對曰:「是君察之不明,舉之不顯;而用之疑,官之卑,祿之薄也;且夫國之所以不能士者,有五阻焉:主不好士,諂諛在旁,一阻也;言便事者,未嘗見用,二阻也;壅塞掩蔽,必因近習,然後見察,三阻也;訊獄詰窮其辭,以法過之,四阻也;執事適欲,擅國權命,五阻也。去此五阻,則豪俊並興,賢智求處;五阻不去,則上蔽吏民之情,下塞賢士之路;是故明王聖主之治,若夫江海無不受,故長為百川之主;明王聖君無不容,故安樂而長久。因此觀之,則安主利人者,非獨一士也。」桓公曰:「善,吾將著夫五阻以為戒本也。」

齊 桓公甯戚에게 물었다管子는 현재 나이가 많아 늙었소만일 과인을 버리고 죽으면, 法令이 시행되지 않으며 사람들은 직무를 이행하지 않으며 백성은 미워하고 원망하며 나라에 도적이 많을까 봐 나는 걱정되오내가 어떻게 하면 간사한 일이 일어나지 않고 백성은 衣食이 풍족하게 할 수 있겠소?”

영척이 대답했다. “요체는 어진 이를 얻어 政事를 맡기는 데 달려 있습니다.” 환공이 말했다. “어찌해야 어진 이를 얻을 수 있소?” 영척이 대답했다. “어진 이를 추천하는 길을 활짝 열고 분명히 살펴서 임용하되, 地位를 존귀하게 하고 祿俸을 많이 주며 명성을 드날리게 하면 천하의 인재들이 떠들썩하게 발을 옮겨 올 것입니다.” 환공이 말했다. “이미 어진 인재를 선발하여 등용했으나 선생이 행여 와서 돕지 않으면 庶民 중의 뛰어난 인재들이 문에 와서 과인을 만나려 하지 않을 것이오.”

영척이 대답했다. “이는 임금께서 인재를 명확하게 살피지 못하고 인재의 선발을 분명하게 하지 않으며, 그를 임용하고는 의심하고 낮은 벼슬을 주며 적은 녹봉을 주기 때문입니다나라가 어진 인재를 얻지 못하는 까닭으로는 다섯 가지 障礙가 있으니, 임금이 어진 인재를 좋아하지 않고 아첨하는 사람이 곁에 있는 것이 첫 번째 장애요, 정사에 편리한 일을 말하는 사람이 등용되지 않는 것이 두 번째 장애요, 言路가 막히고 실상이 가려져서 인재가 반드시 측근의 친근한 사람을 통한 뒤에야 선발되는 것이 세 번째 장애요, 獄事를 신랄한 말로 끝까지 신문하여 과도한 법을 적용하는 것이 네 번째 장애요, 관리가 자기의 욕망을 따라 국정을 독단하고 권력을 부리는 것이 다섯 번째 장애입니다. 이 다섯 가지 장애를 제거하면 호걸과 뛰어난 인재가 모두 일어나고 어질고 지혜 있는 자가 와서 자리에 있을 것이고, 다섯 가지 장애를 제거하지 않으면 위로는 관리와 백성의 실정이 가려지고 아래로는 어진 인재가 진출하는 길이 막히게 됩니다이 때문에 현명하고 슬기로운 임금이 다스리는 국가는 마치 江海가 받아들이지 않는 물이 없기 때문에 영원히 모든 냇물의 主掌이 되는 것처럼, 현명하고 슬기로운 임금은 포용하지 않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백성을 안락하게 하여 오랫동안 유지됩니다이를 통하여 보면 임금을 편안히 하고 백성을 이롭게 하는 사람은 한 사람만의 어진 인재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환공이 말했다. “훌륭합니다. 나는 이 다섯 가지 장애를 기록하여 경계하는 근본으로 삼겠소.”

19. 先君能以人之長續其短,以人之厚補其薄

齊景公問於晏子曰:「寡人欲從夫子而善齊國之政。」對曰:「嬰聞之,國具官而后政可善。」景公作色曰:「齊國雖小,則何為不具官乎?」對曰:「此非臣之所復也。昔先君桓公,身體墮懈,辭會不給,則隰朋侍;左右多過,刑罰不中,則弦章侍;居處肆縱,左右懾畏,則東郭牙侍;田野不修,人民不安,則甯戚侍;軍吏怠,戎士偷,則王子成父侍;德義不中,信行衰微,則筦子侍;先君能以人之長續其短,以人之厚補其薄;是以辭令窮遠而不逆,兵加於有罪而不頓;是故諸侯朝其德而天子致其胙。今君之失多矣,未有一士以聞者也,故曰未具。」景公曰:「善。吾聞高繚與夫子遊,寡人請見之。」晏子曰:「臣聞為地戰者不能成王,為祿仕者不能成政;若高繚與嬰為兄弟久矣,未嘗干嬰之過,補嬰之闕,特進仕之臣也,何足以補君。」

齊 景公晏子에게 물었다. “과인은 선생의 건의를 좇아 나라의 정치를 잘하려고 합니다.” 안자가대답했다. “은 들으니 나라는 훌륭한 관리가 완전히 갖춰진 뒤에 정치를 잘할 수 있다고 합니다.” 경공이 안색을 바꾸면서 말했다. “제나라가 작지만 어떻게 훌륭한 관리를 갖추지 못했다 말하는 게요?”

안자가대답했다. “이것은 신이 대답하고자 하는 본의가 아닙니다예전에 先君 桓公은 몸이 권태롭고 말을 민첩하게 하지 못하면 隰朋이 모시고 보좌하였고, 측근에 잘못이 많고 집행하는 刑罰이 법에 맞지 않으면 弦章이 모시고 보좌하였고, 평상시 거처하는 태도가 방종하고 측근이 두려워하면 東郭牙가 모시고 보좌하였고, 농경지가 묵어 황폐하고 백성이 안정되지 않으면 甯戚이 모시고 보좌하였고, 軍吏가 나태하고 병사가 느즈러지면 王子成父가 모시고 보좌하였고, 행위가 德義에 맞지 않고 성실한 품행이 쇠잔해지면 管子가 모시고 보좌하였습니다선군은 남의 長點으로써 자신의 短點을 보완하였고, 남의 넉넉함으로써 자신의 부족함을 보충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아주 먼 곳까지 명령이 전해져서 거스르는 사람이 없었고, 군대를 동원하여 죄 있는 사람을 토벌하여도 좌절하지 않았습니다이 때문에 제후는 그 德行에 감복하여 朝見하였고 천자는 祭肉을 보냈습니다지금 임금께서는 잘못이 많은데도 한 사람도 와서 잘못을 들려주는 자가 없기 때문에 저는 훌륭한 관리를 갖추지 못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경공이 말했다. “훌륭합니다. 나는 들으니, 高繚가 선생과 교제한다 하니 과인이 만나기를 청합니다.”

안자가 말했다. “신은 들으니, 領土를 넓히기 위하여 전쟁을 하는 자는 王業을 이루지 못하고, 祿俸을 받기 위하여 벼슬을 하는 자는 政治的 業績을 이루지 못한다 합니다. 고료와 같은 사람은 저와 형제처럼 지낸 지 오래되었습니다만 일찍이 저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았고 저의 부족한 점을 보충해주지도 않았으니, 단지 녹봉을 받기 위하여 벼슬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어찌 임금을 보좌하겠습니까?”

20. 帝者之臣,其名,臣也,其實,師也;王者之臣,其名,臣也,其實,友也

燕昭王問於郭隗曰:「寡人地狹人寡,齊人削取八城,匈奴驅馳樓煩之下,以孤之不肖,得承宗廟,恐危社稷,存之有道乎?」郭隗曰:「有,然恐王之不能用也。」昭王避席請聞之,郭隗曰:「帝者之臣,其名,臣也,其實,師也;王者之臣,其名,臣也,其實,友也;霸者之臣,其名,臣也,其實,賓也;危國之臣,其名,臣也,其實,虜也。今王將東面,目指氣使以求臣,則廝役之材至矣;南面聽朝,不失揖讓之禮以求臣,則人臣之材至矣;西面等禮相亢,下之以色,不乘勢以求臣,則朋友之材至矣;北面拘指,逡巡而退以求臣,則師傅之材至矣。如此則上可以王,下可以霸,唯王擇焉。」燕王曰:「寡人願學而無師。」郭隗曰:「王誠欲興道,隗請為天下之士開路。」於是燕王常置郭隗上坐南面,居三年,蘇子聞之,從周歸燕;鄒衍聞之,從齊歸燕;樂毅聞之,從趙歸燕;屈景聞之,從楚歸燕。四子畢至,果以弱燕并彊齊;夫燕齊非均權敵戰之國也,所以然者,四子之力也。詩曰:「濟濟多士,文王以寧。」此之謂也。

燕 昭王郭隗에게 물었다. “과인의 나라는 국토가 좁고 인구가 적어, 나라는 우리의 여덟 을 탈취하고 흉노는 樓煩 아래 지역을 유린하였소. 그러니 나같이 불초한 사람으로서 先代宗廟를 계승하여 社稷을 위태롭게 할까 봐 걱정되니 국가를 보존하는 데 좋은 방법이 있겠소?” 곽외가 말했다. “방법이야 있지만 왕께서 사용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소왕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어떤 방법인지 듣기를 원합니다.” 

곽외가 말했다. “帝의 신하는 이름은 신하지만 실제는 스승이고, 王의 신하는 이름은 신하지만 실제는 친구이고, 霸者의 신하는 이름은 신하지만 실제는 손님이고, 위태로운 나라의 신하는 이름은 신하지만 실제는 포로입니다.
만일 왕께서 서쪽에 앉아 동쪽을 향하여 눈짓으로 지시하고 氣色으로 사람을 부리면서 신하를 구하면 奴隷 같은 재목이 올 것이고, 북쪽에 앉아 남쪽을 향하여 정사를 처리하여 揖讓의 예를 잃지 않으면서 신하를 구하면 人臣의 재목이 올 것이고동쪽에 앉아 서쪽을 향하여 서로 대등한 예를 행하고 기쁜 안색을 지어 권세를 부리지 않으면서 신하를 구하면 親舊 같은 재목이 올 것이고, 남쪽에 앉아 북쪽을 향하여 공손히 복종하고 머뭇거리며 겸양하는 태도로 신하를 구하면 스승 같은 재목이 올 것입니다이와 같이 하면 위로는 왕 노릇할 수가 있고 아래로는 霸者가 될 수 있을 것이니, 오직 왕께서 선택하십시오.”

燕王이 말했다. “과인은 배우기를 원하지만 스승이 없소.” 곽외가 말했다. “왕이 진실로 국가를 보존하는 방법을 일으키려고 한다면 저 는 천하의 인재가 몰려올 길을 열어주는 존재가 되겠습니다.” 이리하여 연왕이 항상 곽외를 윗자리에 앉게 하여 남쪽을 향하게 하였다3년이 지나자 蘇秦은 이 일을 듣고 東周로부터 연나라에 귀의하고, 鄒衍은 이 일을 듣고 제나라로부터 연나라에 귀의하고, 樂毅는 이 일을 듣고 나라로부터 연나라에 귀의하고, 屈景은 이 일을 듣고 나라로부터 연나라에 귀의하니, 이 네 사람이 모두 연나라에 와서 결국 약소한 연나라를 가지고 강대한 제나라를 兼倂하였다연나라와 제나라는 세력이 같고 전력이 대등한 나라가 아닌데 그렇게 된 원인은 이 네 사람의 역량이다.

詩經많은 인재들이여, 文王을 편안하게 하였다.” 하였으니, 이런 일을 이른 말이다.

21. 其君賢者也,而又有師者王;其君中君也,而又有師者霸;其君下君也,而群臣又莫若君者亡

楚莊王既服鄭伯,敗晉師,將軍子重,三言而不當,莊王歸,過申侯之邑,申侯進飯,日中而王不食,申侯請罪,莊王喟然嘆曰:「吾聞之,其君賢者也,而又有師者王;其君中君也,而又有師者霸;其君下君也,而群臣又莫若君者亡。今我,下君也,而群臣又莫若不穀恐亡,且世不絕聖,國不絕賢;天下有賢而我獨不得,若吾生者,何以食為?」故戰服大國義從諸侯,戚然憂恐聖知不在乎身,自惜不肖,思得賢佐,日中忘飯,可謂明君矣。

楚 莊王이 이미 鄭伯(襄公)을 굴복시키고 정나라를 구원하는나라 군대를 격파하였는데, 장군 子重이 세 번이나 부당한 말을 올렸다장왕이 돌아오면서 申侯封邑을 지날 적에 신후가 식사를 드렸으나 정오가 되도록 장왕이 먹지 않으니 신후가 죄를 줄 것을 요청하였다.

장왕은 한숨을 쉬고 탄식하며 말했다. “나는 들으니, 그 임금이 賢明하고 또 스승 같은 보좌가 있으면 왕 노릇하고, 그 임금이 中等에 해당하고 또 스승 같은 보좌가 있으면 霸者가 되고, 그 임금이 下等에 해당하고 群臣이 또 그 임금만도 못한 자는 망한다고 한다. 지금 나는 하등의 임금이고 群臣이 또 나만도 못하니 나는 나라가 망할까 걱정된다또 세상에는 聖人이 끊어지지 않고 국가에는 賢人이 끊어지지 않으니, 천하에 현인이 있는데 나만 얻지 못하고 있다나처럼 사는 사람이 어떻게 밥을 먹겠는가!”

전쟁하여 大國을 굴복시키고 의리를 세워 諸侯를 따르게 했으면서도 슬기롭고 지혜로운 사람이 자신에게 있지 않음을 서글피 근심하고 걱정하여, 자신이 불초함을 안타까워하면서 현명한 보좌역 얻기를 생각하여 정오가 되도록 밥 먹는 일을 잊었으니, 현명한 임금이라고 이를 만하다.

22. 明主者有三懼,一曰處尊位而恐不聞其過,二曰得意而恐驕,三曰聞天下之至言而恐不能行

明主者有三懼,一曰處尊位而恐不聞其過,二曰得意而恐驕,三曰聞天下之至言而恐不能行,何以識其然也?越王勾踐與吳人戰,大敗之,兼有九夷,當是時也,南面而立,近臣三,遠臣五,令群臣曰聞吾過而不告者其罪刑,此處尊位而恐不聞其過者也。昔者晉文公與楚人戰,大勝之,燒其軍,火三日不滅,文公退而有憂色,侍者曰:「君大勝楚,今有憂色,何也?」文公曰:「吾聞能以戰勝而安者,其唯聖人乎!若夫詐勝之徒,未嘗不危也,吾是以憂。」此得意而恐驕也。昔齊桓公得筦仲隰朋,辯其言,說其義,正月之朝,令具太牢進之先祖,桓公西面而立,筦仲隰朋東面而立,桓公贊曰:「自吾得聽二子之言,吾目加明,耳加聰,不敢獨擅,願荐之先祖。」此聞天下之至言而恐不能行者也。

현명한 임금은 세 가지 두려워하는 일이 있으니, 첫째는 尊貴한 자리에 있으면 자기의 잘못을 듣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것이고, 둘째는 자기의 뜻을 이루면 驕慢해질까 두려워하는 것이고, 셋째는 천하의 지극히 좋은 말을 듣고서 실행하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것이니, 무엇으로 그러함을 아는가?

越王 句踐나라와 전쟁하여 크게 패배시키고 九夷兼倂하니, 당시 남쪽을 향해 앉아 霸者 노릇을 할 적에 가까운 곳에 있는 세 나라가 臣服하고 먼 곳에 있는 다섯 나라가 신복하였다. 그러자 群臣에게 명령하였다. “나의 잘못을 듣고도 말하지 않는 자는 형벌에 처하겠다.” 이것은 존귀한 지위에 있으면 자기의 잘못을 듣지 못할까 두려워한 것이다.

예전에 晉 文公나라 군대와 전쟁하여 크게 승리하고 초나라의 軍營을 불태우니 3일 동안 불이 꺼지지 않았다문공이 철군하면서 근심하는 기색이 있자 모시는 신하가 말했다. “임금께서 초나라에 큰 승리를 거두었는데 지금 근심하는 기색이 있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문공이 말했다. “나는 들으니 전쟁에 승리하고 나서 나라를 안정시킨 사람은 오직 聖人뿐일 것이다.’ 하였다. 속임수로 승리하는 무리는 일찍이 위태롭지 않은 경우가 없었으니 나는 이 때문에 근심한다.” 이것은 뜻을 이루면 교만해질까 두려워한 것이다.

 예전에 齊 桓公管仲隰朋을 얻어 그들이 말을 잘하는 것을 알고 그들의 도리를 좋아하여 正月의 조회에서 太牢를 갖추게 하여 선조에게 올릴 적에 환공은 서쪽을 향하여 서고 관중과 습붕은 동쪽을 향하여 섰다환공이 祝辭를 말했다. “나는 두 사람이 건의하는 말을 들은 이래로 나의 눈은 더욱 밝아지고 귀는 더욱 총명해져서 감히 독단하지 못했으니, 先祖께 추천하기를 원합니다.” 이것은 천하의 지극히 좋은 말을 듣고 실행하지 못할까 두려워한 것이다.

23. 夫有賢而不知,一不祥;知而不用,二不祥;用而不任,三不祥也

齊景公出獵,上山見虎,下澤見蛇,歸召晏子而問之曰:「今日寡人出獵,上山則見虎,下澤則見蛇,殆所謂之不祥也。」晏子曰:「國有三不祥,是不與焉,夫有賢而不知,一不祥;知而不用,二不祥;用而不任,三不祥也;所謂不祥乃若此者也。今山上見虎,虎之室也,下澤見蛇,蛇之穴也,如虎之室,如蛇之穴而見之,曷為不祥也。」

齊 景公이 사냥을 나갔다가 산에 올라가 범을 만나고 늪에 내려와 뱀을 만났다돌아온 뒤에 晏子를 불러 물었다. “오늘 과인이 사냥을 나갔다가 산에 올라가서는 범을 만나고 늪에 내려와서는 뱀을 만났으니, 아마도 이른바 상서롭지 못한 일인가?” 

안자가 말했다. “국가에는 세 가지 상서롭지 못한 일이 있는데 이런 것은 그 안에 들지 않습니다어진 인물이 있는데도 알지 못하는 것이 첫 번째 상서롭지 못한 일이고, 알면서도 등용하지 않는 것이 두 번째 상서롭지 못한 일이고, 등용하고서도 신임하지 않는 것이 세 번째 상서롭지 못한 일이니, 이른바 상서롭지 못한 일은 이와 같은 것입니다. 지금 산에 올라가 범을 만난 것은 범이 사는 집에 이른 것이고, 늪에 내려와 뱀을 만난 것은 뱀이 사는 구멍에 간 것입니다범이 사는 집에 가고 뱀이 사는 구멍에 가서 그것들을 만났는데 어떻게 상서롭지 못한 일이 되겠습니까?”

24. 其榛藂刺虎豹者,吾是以知其勇也;其攫犀搏兕者,吾是以知其勁有力也;罷田而分所得,吾是以知其仁也

楚莊王好獵,大夫諫曰:「晉楚敵國也,楚不謀晉,晉必謀楚,今王無乃耽於樂乎?」王曰:「吾獵將以求士也,其榛藂刺虎豹者,吾是以知其勇也;其攫犀搏兕者,吾是以知其勁有力也;罷田而分所得,吾是以知其仁也。因是道也而得三士焉,楚國以安。」故曰:苟有志則無非事者,此之謂也。

楚 莊王이 사냥하기를 좋아하니 大夫가 간하였다. “나라와 나라는 敵國입니다. 초나라가 진나라를 도모하지 않으면 진나라가 반드시 초나라를 도모할 텐데, 지금 왕께서는 아마 사냥의 즐거움에 빠진 것이 아니겠습니까?”

왕이 말했다. “내가 사냥을 하는 것은 훌륭한 인재를 구하려 해서이니 초목이 우거진 곳에서 범과 표범을 찔러 죽이는 자는, 나는 이것으로 그가 용감함을 알고, 무소와 코뿔소를 때려잡는 자는, 나는 이것으로 그가 강력한 힘이 있는 줄을 알고, 사냥을 끝내고 자기가 잡은 짐승을 나누어주면, 나는 이것으로 그가 어진 사람임을 안다.”

이 방법을 통하여 세 사람의 훌륭한 인재를 얻어 초나라가 안정되었다. 그러므로 만일 지향하는 바가 있으면 좋은 일이 아닌 것이 없다.” 하였으니, 이런 경우를 이른 것이다.

25. 故天之應人,如影之隨形,響之效聲者也

湯之時大旱七年,雒坼川竭,煎沙爛石,於是使人持三足鼎,祝山川,教之祝曰:政不節耶?使人疾耶?苞苴行耶?讒夫昌耶?宮室營耶?女謁盛耶?何不雨之極也,蓋言未已而天大雨,故天之應人,如影之隨形,響之效聲者也。詩云:「上下奠瘞,靡神不宗。」言疾旱也。

湯王 때에 7년 동안 큰 가뭄이 들어 ()의 바닥이 갈라지고 하천이 말랐으며, 모래를 달구고 돌을 녹였다이에 사람을 시켜 세 발 달린 솥을 가지고 山川에 가서 기도하게 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로 빌게 하였다정치를 절도 없게 하였는가? 백성을 고통스럽게 하였는가? 뇌물이 유행하게 하였는가? 남을 참소하는 사람이 창궐하였는가? 궁실이 화려한가? 총애하는 여인의 청탁이 많았는가? 어찌하여 이다지도 비가 내리지 않습니까?” 그 말을 마치기도 전에 큰 비가 내렸다그러므로 하늘이 사람의 일에 호응함이 마치 그림자가 형체를 따라 생기는 것과 메아리가 소리를 받아 되돌아오는 것과 같다.

詩經하늘과 땅에 제사하며 존경하지 않는 이 없다.” 하였으니, 가뭄을 원망한 말이다.

君道26. 祥者福之先者也,見祥而為不善,則福不生;殃者禍之先者也,見殃而能為善

殷太戊時,有桑穀生於庭,昏而生,比旦而拱,史請卜之湯廟,太戊從之,卜者曰:「吾聞之,祥者福之先者也,見祥而為不善,則福不生;殃者禍之先者也,見殃而能為善,則禍不至。」於是乃早朝而晏退,問疾弔喪,三日而桑穀自亡。

나라 太戊 때에 뽕나무와 닥나무가 조정의 뜰에 났는데, 어스름할 때 나서 다음날 아침이 되자 한아름쯤 되었다. 史官湯王의 사당에서 점을 치자고 요청하자 태무가 그 말을 따랐다.

점치는 자가 말했다. “나는 들으니, 祥瑞는 복이 오기 전에 생기는 조짐이니 상서를 만났으나 선한 일을 하지 않으면 복이 생기지 않고, 재앙은 禍敗가 오기 전에 생기는 조짐이니 재앙을 만났으나 선한 일을 하면 화패가 오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이리하여 태무가 아침 일찍 조정에 나가 저녁 늦게 물러나와서 병든 사람을 위로하고 죽은 사람을 조문하니 3일 만에 뽕나무와 닥나무가 저절로 사라졌다.

27. 此之謂存亡繼絕之主

高宗者,武丁也,高而宗之,故號高宗,成湯之後,先王道缺,刑法違犯,桑穀俱生乎朝,七日而大拱,武丁召其相而問焉,其相曰:「吾雖知之,吾弗得言也。聞諸祖己,桑穀者野草也,而生於朝,意者國亡乎?」武丁恐駭,飭身修行,思先王之政,興滅國,繼絕世;舉逸民,明養老。三年之後,蠻夷重譯而朝者七國,此之謂存亡繼絕之主,是以高而尊之也。

高宗武丁이니 높여서 덕을 존숭하였기 때문에 廟號를 고종이라 하였다. 成湯 이후에 선왕의 도가 결핍되어 형법을 위배하니 뽕나무와 닥나무가 조정에 함께 나서 7일 만에 크기가 한아름이 되자 무정이 그의 재상을 불러서 길흉을 물었다.

재상이 말했다. “저는 알지만 저는 말씀드리지 못하겠습니다祖己에게 들으니 뽕나무와 닥나무는 들에서 자라는 식물인데 조정에 났다면 짐작컨대 나라가 망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무정이 두려워하여 몸을 바르게 단속하여 행실을 닦고, 선왕의 훌륭한 정치를 생각하여 멸망하려는 나라를 부흥시키고 끊어지려는 세대를 이어주며, 은거한 賢人을 천거하고 노인을 봉양하는 예절을 밝게 드러내었다3년이 지난 뒤에 蠻夷 중에 여러 번의 통역을 거쳐 朝見한 자가 일곱 나라였으니, 이를 ‘망하려는 나라를 보존시키고 끊어지려는 세대를 이어주는 임금’이라 이르니, 이 때문에 높여서 덕을 존숭한 것이다.

28. 過而改之,是猶不過

宋大水,魯人弔之曰:「天降淫雨,谿谷滿盈,延及君地,以憂執政,使臣敬弔。」宋人應之曰:「寡人不佞,齋戒不謹,邑封不修,使人不時,天加以殃,又遺君憂,拜命之辱。」君子聞之曰:「宋國其庶幾乎!」問曰:「何謂也?」曰:「昔者夏桀殷紂不任其過,其亡也忽焉;成湯文武知任其過,其興也勃焉;夫過而改之,是猶不過。故曰其庶幾乎!」宋人聞之,夙興夜寐,早朝晏退,弔死問疾,戮力宇內。三年,歲豐政平,嚮使宋人不聞君子之語,則年穀未豐而國未寧,詩曰:「佛時仔肩,示我顯德行。」此之謂也。

나라에 큰물이 지자 나라 사신이 와서 위문하였다. “하늘이 오래 비를 내려 계곡이 가득 차 넘치고 물이 임금이 거주하는 곳까지 미쳐서 執政을 근심하게 하므로 신을 파견하여 삼가 위문하게 하였습니다.” 송나라 임금이 응답했다. “과인이 재주가 없어서 齋戒를 경건히 하지 않고 封地를 잘 다스리지 못하며 백성을 제때에 부리지 않아 하늘이 재앙을 내렸는데, 도리어 귀국 임금님에게까지 근심을 끼쳐 위문하는 말씀을 받으니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君子가 이 말을 듣고 말했다. “송나라는 아마도 잘될 것이다.”

어떤 이가 물었다. “무슨 뜻으로 하는 말입니까?” 군자가 대답했다. “예전에 夏桀殷紂는 자기의 잘못을 책임지지 않아서 갑자기 망하였고, 成湯文王武王은 자기의 잘못을 책임질 줄을 알아서 왕성하게 일어난 것이다. 잘못한 일을 고치면 잘못하지 않은 것과 같기 때문에 나는 ‘아마도 잘될 것이다.’라 말했다.”

송나라 임금이 이 말을 듣고 새벽 일찍 일어나 밤늦게 잠자고 아침 일찍 조정에 나와 저녁 늦게 퇴청하면서, 죽은 이를 조문하고 병든 이를 위문하고 힘을 다해 국내를 다스리니, 3년 만에 농사는 풍년이 들고 정치는 태평을 이루었다가령 송나라 임금이 군자의 말을 듣지 못했다면 곡식은 풍년이 들지 않고 국가는 편안하지 않았을 것이다.

詩經나의 무거운 책임을 도와, 나의 드러난 德行을 보이게 하라.” 하였으니, 이 일을 이른 말이다.

29. 昭王可謂知天道矣,其不失國

楚昭王有疾,卜之曰:「河為祟。」大夫請用三牲焉。王曰:「止,古者先王割地制土,祭不過望;江、漢、睢、漳,楚之望也;禍福之至,不是過也。不穀雖不德,河非所獲罪也。」遂不祭焉。仲尼聞之曰:「昭王可謂知天道矣,其不失國,宜哉!」

楚 昭王이 병이 있어서 점을 쳤더니 점 치는 이가 말했다. “河神이 빌미가 된 것입니다.” 대부가 三牲을 써서 기도하기를 청하자 왕이 말했다그만두라. 옛날 선왕이 땅을 분할하여 봉해줄 때 산천의 제사는 望祭를 넘지 않았으니, 長江漢水雎水漳水가 초나라의 망제를 지내는 곳이다. 재앙과 복이 오는 것은 이 네 강을 넘지 않으니, 내가 덕이 없기는 하지만 하신에게 죄를 얻은 것은 아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하신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仲尼께서 이 일을 들으시고 말씀하셨다. “소왕은 天道를 안다고 이를 만하니, 그가 나라의 정권을 잃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

30. 匈脅有疾,轉之股肱,庸為去是人也

楚昭王之時,有雲如飛鳥,夾日而飛三日,昭王患之,使人乘驛東而問諸太史州黎,州黎曰:「將虐於王身,以令尹司馬說焉則可。」令尹司馬聞之,宿齋沐浴,將自以身禱之焉。王曰:「止,楚國之有不穀也,由身之有匈脅也;其有令尹司馬也,由身之有股肱也。匈脅有疾,轉之股肱,庸為去是人也?」

楚 昭王 때에 구름이 마치 새떼가 나는 것처럼 태양을 끼고 3일 동안 날았다. 소왕이 걱정하여 사람을 시켜 譯馬를 타고 동쪽으로 가서 太史 州黎에게 묻도록 하였다. 주려가 말했다. “왕의 몸에 해를 끼칠 것이니, 令尹司馬로 대신하여 기도하게 하면 괜찮을 것이오.” 영윤과 사마가 이 말을 듣고 목욕재계를 하고 스스로 자신이 기도하겠다고 청하였다.

왕이 말했다. “그만두라. 초나라에 내가 있는 것은 마치 신체에 가슴이 있는 것과 같고, 영윤과 사마가 있는 것은 신체에 팔다리가 있는 것과 같다. 가슴에 병이 들었는데 팔다리에 전가시키면 어찌 이 사람의 몸에서 병이 떠났다 하겠는가!

31. 利於民不利於君

邾文公卜徙於繹,史曰:「利於民不利於君。」君曰:「苟利於民,寡人之利也,天生烝民而樹之君,以利之也,民既利矣,孤必與焉!」侍者曰:「命可長也,君胡不為?」君曰:「命在牧民,死之短長,時也;民苟利矣,吉孰大焉。」遂徙於繹。

邾 文公嶧邑遷都할 일을 점쳤는데, 史官이 말했다. “천도하면 백성에게는 이롭고 임금에게는 이롭지 못합니다.” 邾君이 말했다. “만일 백성에게 이롭다면 바로 과인이 이로운 것이다. 하늘이 뭇 백성을 낳아 임금을 세운 것은 백성을 이롭게 하려는 것이다백성이 이미 이롭다면 나의 이익도 틀림없이 들어 있을 것이다.”

시종하는 사람이 말했다. “천도하지 않으면 임금님의 목숨을 연장할 수 있다는데 어찌 하지 않으십니까?” 주군이 말했다. “나의 목숨은 백성을 잘 기르는 데 있고, 목숨의 길고 짧음은 天時에 달렸으니, 백성이 만일 이롭다면 무슨 이로움이 이보다 크겠는가?” 마침내 역읍으로 천도하였다.

32. 能求過於天,必不逆諫矣,安不忘危

楚莊王見天不見妖,而地不出孽,則禱於山川曰:「天其忘予歟?」此能求過於天,必不逆諫矣,安不忘危,故能終而成霸功焉。

楚 莊王은 하늘이 요상한 일을 나타내지 않고 땅이 재앙을 내는 것을 보지 않으면 산천에 기도하면서 하늘이 나를 잊었습니까?”라 말했으니, 이는 하늘에 자신의 허물을 구한 것이다. 반드시 남이 간하는 말을 거스르지 않을 것이니, 편안한 처지에 있으면서 위태로워질 것을 잊지 않는 것이다. 때문에 끝내 霸業의 공을 이루었다.

33. 藥食先嘗於卑,然後至於貴;藥言先獻於貴,然後聞於卑
求道者不以目而以心,取道者不以手而以耳

湯曰:「藥食先嘗於卑,然後至於貴;藥言先獻於貴,然後聞於卑。」故藥嘗乎卑,然後至乎貴,教也;藥言獻於貴,然後聞於卑,道也。故使人味食然後食者,其得味也多;使人味言然後聞言者,其得言也少。是以明王之言,必自他聽之,必自他聞之,必自他擇之,必自他取之,必自他聚之,必自他藏之,必自他行之;故道以數取之為明,以數行之為章,以數施之萬物為藏。是故求道者不以目而以心,取道者不以手而以耳

湯王이 말했다. “약을 먹을 적에는 卑賤한 사람에게 먼저 맛보게 하고 나서 그런 뒤에 尊貴한 사람에게 올리고, 약이 되는 말은 존귀한 사람에게 먼저 바치고 나서 그런 뒤에 비천한 사람에게 들려준다.

약을 먹을 적에 비천한 사람에게 맛보게 하고 나서 그런 뒤에 존귀한 사람에게 올리는 것은 敎化이고, 약이 되는 말은 존귀한 사람에게 바치고 나서 그런 뒤에 비천한 사람에게 들려주는 것은 이다. 그러므로 남에게 음식 맛을 보게 한 다음에 먹는 자는 음식 맛을 느끼는 것이 많고, 남에게 좋은 말을 음미하게 한 다음에 좋은 말을 듣는 자는 듣는 말이 적게 된다.

이 때문에 현명한 군주는 약이 되는 말에 있어 반드시 자기가 듣고, 반드시 자기가 이해하고, 반드시 자기가 선택하고, 반드시 자기가 취하고, 반드시 자기가 모으고, 반드시 자기가 보존하고, 반드시 자기가 실행한다때문에 도는 여러 차례 취함으로써 분명해지고 여러 차례 실행함으로써 드러나고 여러 차례 만물에 실시함으로써 보존하게 된다.

이 때문에 도를 구하는 자는 눈으로 하지 않고 마음으로 하며, 도를 취하는 자는 손으로 하지 않고 귀로 한다.

34. 筦饒犯我以義,違我以禮,與處不安,不見不思,然吾有得焉

楚文王有疾,告大夫曰:「筦饒犯我以義,違我以禮,與處不安,不見不思,然吾有得焉,必以吾時爵之;申侯伯,吾所欲者,勸我為之;吾所樂者,先我行之。與處、則安,不見、則思,然吾有喪焉,必以吾時遺之。」大夫許諾,乃爵筦饒以大夫,贈申侯伯而行之。申侯伯將之鄭,王曰:「必戒之矣,而為人也不仁,而欲得人之政,毋以之魯、衛、宋、鄭。」不聽,遂之鄭,三年而得鄭國之政,五月而鄭人殺之。

楚 文王이 병이 있어서 大夫들에게 말했다. 管饒는 義로 나를 구속하고 禮로 나를 제재하니 함께 있으면 불안하여 그를 보지 않아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그에게 얻는 것이 있었으니 나는 반드시 때가 되면 벼슬을 봉해주겠다. 申侯伯은 내가 원하는 것을 나에게 하도록 권하고 내가 즐거워하는 것을 나보다 먼저 행하니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보지 못하면 그리워진다그러나 내가 그에게 잃는 것이 있었으니 나는 반드시 때가 되면 떠나게 하겠다.”

그러자 대부들이 허락하였다이에 관요는 대부 벼슬에 봉하고 신후백은 선물을 주어 가게 하였다. 신후백이 나라로 가려고 하자 왕이 말했다. “경계할지어다너의 사람됨이 仁義를 행하지 않는데 남의 정권을 얻고자 하니, 네 나라에 가지 말라.” 신후백이 따르지 않고 끝내 정나라에 가서 3년 만에 정나라의 정권을 얻었는데 5개월이 지난 뒤 정나라 사람이 그를 살해하였다.

35. 是進吾過而黜吾善也

趙簡子與欒激遊,將沈於河,曰:「吾嘗好聲色矣,而欒激致之;吾嘗好宮室臺榭矣,而欒激為之;吾嘗好良馬善御矣,而欒激求之。今吾好士六年矣,而欒激未嘗進一人,是進吾過而黜吾善也。」

趙簡子欒激과 놀러 나갔다가 난격을 黃河에 빠뜨리려 하면서 말했다.

내가 일찍이 음악과 여색을 좋아하면 난격이 찾아주었고, 내가 일찍이 화려한 궁실과 정자와 누각을 좋아하면 난격이 지어주었고, 내가 일찍이 좋은 말과 뛰어난 마부를 좋아하면 난격이 구해주었다. 지금은 내가 어진 인재를 좋아한 지 6년이나 되었건만 난격이 일찍이 한 사람도 추천하지 않으니, 이는 나의 잘못을 증가시키고 나의 선행은 감소시킨 것이다.”

36. 吾謂是諾,未必有過也,吾將求以來諫者也

或謂趙簡子曰:「君何不更乎?」簡子曰:「諾。」左右曰:「君未有過,何更?」君曰:「吾謂是諾,未必有過也,吾將求以來諫者也,今我卻之,是卻諫者,諫者必止,我過無日矣。」

혹자가 趙簡子에게 말했다. “당신은 어째서 잘못을 고치지 않습니까?” 조간자가 말했다. “옳소.” 조간자의 측근이 말했다. “당신은 잘못한 일이 없는데 무엇을 고친단 말입니까?” 

조간자가 말했다. 내가 ‘옳소’라고 말한 것은, 꼭 잘못한 일이 있는 것은 아니나 나는 앞으로 이것으로 간하는 사람을 오게 하려는 것이다. 만일 내가 그의 말을 물리치면 이는 간하는 사람을 물리친 것이다. 그러면 간하려는 사람이 필시 그만두고 말 것이니, 내가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몇 날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37. 范氏之亡也,多輔而少拂

韓武子田,獸已聚矣,田車合矣,傳來告曰:「晉公薨。」武子謂欒懷子曰:「子亦知君好田獵也,獸已聚矣,田車合矣,吾可以卒獵而後弔乎?」懷子對曰:「范氏之亡也,多輔而少拂,今臣於君,輔也;畾於君,拂也,君胡不問於畾也?」武子曰:「盈而欲拂我乎?而拂我矣,何必畾哉?」遂輟田。

韓武子가 사냥할 적에 짐승을 몰아서 이미 한군데 모았고 사냥하는 수레가 이미 포위하였는데, 전령이 와서 晉公이 죽었습니다.”라고 보고하였다한무자가 欒懷子에게 말했다. “내가 사냥을 좋아함은 그대도 알고 있소짐승을 몰아서 이미 한군데 모았고 사냥하는 수레가 이미 포위하였으니, 내가 사냥을 마치고 난 뒤에 弔問해도 괜찮겠는가?”

난회자가 대답했다. “范氏가 망한 것은, 돕는 사람은 많고 바로잡는 사람은 적었기 때문입니다지금 저는 당신에 있어 돕는 사람이고, 는 바로잡는 사람인데 당신은 어찌 뇌에게 묻지 않습니까?” 한무자가 말했다. “欒盈, 너는 나를 바로잡으려는 것이냐? 네가 나를 바로잡았는데 어찌 굳이 뇌에게 묻겠느냐!” 그리고는 마침내 사냥을 중지하였다.

38. 援琴而撞文侯
昔堯舜之為君也,唯恐言而人不違;桀紂之為君也,唯恐言而人違之。

師經鼓琴,魏文侯起舞,賦曰:「使我言而無見違。」師經援琴而撞文侯不中,中旒潰之,文侯謂左右曰:「為人臣而撞其君,其罪如何?」左右曰:「罪當烹。」提師經下堂一等。師經曰:「臣可一言而死乎?」文侯曰:「可。」師經曰:「昔堯舜之為君也,唯恐言而人不違;桀紂之為君也,唯恐言而人違之。臣撞桀紂,非撞吾君也。」文侯曰:「釋之!是寡人之過也,懸琴於城門以為寡人符,不補旒以為寡人戒。」

樂師 經을 연주하니 魏 文侯는 일어나 춤을 추면서 이렇게 읊었다. “내가 하는 말이 어김을 당하지 않도록 하라.” 그러자 악사 경이 금을 잡아 문후를 쳤는데 맞지 않고 문후의 면류관 줄이 맞아 끊어져버렸다문후가 돌아보며 측근에게 말했다. “신하가 되어 그 임금을 치면 무슨 죄에 해당하는가?” 측근이 말했다. “그 죄는 烹刑에 해당합니다.” 악사 경을 끌고 아래의 한 계단을 내려가니 악사 경이 말했다. “신이 한마디 말씀을 드리고 죽어도 되겠습니까?” 문후가 말했다. “해도 좋다.”

악사 경이 말했다. “옛날 堯‧舜이 임금이 되었을 적에는 자기가 한 말을 사람들이 어기지 않을까 봐 걱정하였고, 桀‧紂가 임금이 되었을 적에는 자기가 한 말을 사람들이 어길까 봐 걱정하였습니다. 그러니 신은 걸주를 친 것이고, 우리 임금을 친 것이 아닙니다.”

문후가 말했다. “석방하라. 이는 과인의 잘못이니, 은 성문 위에 걸어서 과인이 잘못을 저지른 증거로 삼고 면류관 줄은 수리하지 않고 그대로 두어서 과인이 경계하는 물건으로 삼게 하라.”

39. 百姓將誰告矣

齊景公遊於蔞,聞晏子卒,公乘輿素服,驛而驅之,自以為遲,下車而趨,知不若車之速,則又乘,比至於國者四下而趨,行哭而往矣,至伏屍而號曰:「子大夫日夜責寡人,不遺尺寸,寡人猶且淫泆而不收,怨罪重積於百姓。今天降禍於齊國,不加寡人而加夫子,齊國之社稷危矣,百姓將誰告矣?」

齊 景公에서 놀다가 晏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경공은 수레에 올라 소복을 입고서 역마를 바꿔가며 몰았으나 스스로 느리다 생각하여 수레에서 내려 달리다가, 달리는 것이 수레의 빠름보다 못함을 알고 다시 수레를 탔다國都에 이르도록 네 번이나 수레에 내려서 달려가며 한편 달리고 한편 곡을 하면서 갔다.

당도하여 안자의 시신에 엎드려 통곡하면서 말했다. “大夫께서는 밤낮으로 과인을 경계하여 조그만 잘못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는데, 과인은 아직도 방탕하여 心身을 단속하지 않아 원망과 죄책이 백성의 마음에 많이 쌓여 있습니다그런데 지금 하늘이 제나라에 재앙을 내리되 과인의 몸에 끼치지 않고 선생의 몸에 끼쳤으니 제나라의 社稷이 위태롭게 되었소. 백성들이 장차 누구에게 하소연하겠소.”

40. 此諸臣之不肖也,知不足知君之善,勇不足以犯君之顏色

晏子沒十有七年,景公飲諸大夫酒,公射出質,堂上唱善,若出一口,公作色太息,播弓矢。弦章入,公曰:「章,自吾失晏子,於今十有七年,未嘗聞吾過不善,今射出質而唱善者,若出一口。」弦章對曰:「此諸臣之不肖也,知不足知君之善,勇不足以犯君之顏色。然而有一焉,臣聞之:君好之,則臣服之;君嗜之,則臣食之。夫尺蠖食黃,則其身黃,食蒼則其身蒼;君其猶有陷人言乎?」公曰:「善!今日之言,章為君,我為臣。」是時海人入魚,公以五十乘賜弦章歸,魚乘塞塗,撫其御之手,曰:「曩之唱善者,皆欲若魚者也。」昔者晏子辭賞以正君,故過失不掩,今諸臣諂諛以干利,故出質而唱善如出一口,今所輔於君,未見眾而受若魚,是反晏子之義而順諂諛之欲也,固辭魚不受。君子曰:弦章之廉,乃晏子之遺訓也。

晏子가 죽은 지 17년 뒤에 景公이 여러 대부들을 초청하여 술을 마셨다경공이 화살을 쐈으나 과녁을 맞히지 못하고 빗나갔는데, 堂上大夫들이 일제히 훌륭하다고 소리치는 말이 마치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것 같았다경공은 안색을 바꾸면서 크게 탄식하고 활을 던져버렸다.

그때 弦章이 들어오자 경공이 말했다. “현장아, 내가 안자를 잃은 이래로 지금 17년이 되었으나 일찍이 나의 잘못과 좋지 못한 일을 지적하는 말을 듣지 못했는데, 지금 화살을 쐈으나 과녁을 맞히지 못하고 빗나갔는데도, 일제히 훌륭하다고 소리치는 말이 마치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과 같구나.”

현장이 대답했다. “이는 여러 신하들이 현명하지 못하여, 그들의 知慧는 임금의 좋지 못한 일을 알기에 부족하고, 勇氣는 임금의 안색을 거스르기에 부족하기 때문입니다그러나 한 가지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신은 들으니 임금이 어떤 옷을 좋아하면 신하들도 그 옷을 즐겨 입고, 임금이 어떤 음식을 즐기면 신하들도 그 음식을 즐겨 먹는다.’ 합니다자벌레가 노란 걸 먹으면 그 몸이 노랗게 되고, 파란 걸 먹으면 그 몸이 파랗게 되니, 임금께서는 그래도 아첨하는 사람의 말을 좋아하시겠습니까?”

경공이 말했다. “훌륭하다. 오늘 나눈 말은, 너 현장은 임금이 되어 말하고 나는 신하가 되어 듣는 처지인 것 같구나!” 이때에 바닷가의 漁夫가 생선을 바치자 경공이 50수레의 생선을 현장에게 주었다현장이 집에 돌아오니 생선을 실은 수레가 길을 가득 메우고 오자 마부의 손을 만지면서 말했다.

방금 훌륭하다고 소리친 자는 모두 이 어부처럼 하려는 자들이다옛날 안자는 주는 상을 거절하여 임금의 잘못을 바로잡았기 때문에 자기의 잘못을 숨기지 못하였다지금 여러 신하는 아첨하여 이익을 구하기 때문에 공의 화살이 과녁을 맞히지 못하고 빗나갔건만 마치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것처럼 일제히 훌륭하다고 소리친 것이다지금 나는 임금을 보좌하는 일을 대중 앞에서 드러내지 못하였는데, 이 생선을 받으면 이는 안자의 의리를 위반하여 아첨하는 무리의 욕망을 따르는 것이다.

그리고는 굳이 생선을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君子論評하였다. “현장의 淸廉한 행위는 바로 안자가 남긴 德行이다.”

41. 夫天之生人也,蓋非以為君也;天之立君也,蓋非以為位也

夫天之生人也,蓋非以為君也;天之立君也,蓋非以為位也。夫為人君行其私欲而不顧其人,是不承天意忘其位之所以宜事也,如此者,春秋不予能君而夷狄之,鄭伯惡一人而兼棄其師,故有夷狄不君之辭,人主不以此自省,惟既以失實,心奚因知之,故曰:有國者不可以不學春秋,此之謂也。

하늘이 백성을 탄생한 것은 임금을 위한 것이 아니고, 하늘이 임금을 세운 것은 임금의 地位를 위한 것이 아니다. 임금이 되어 개인의 私慾만 행하고 백성은 돌보지 않으면 이는 하늘의 뜻을 받들지 않고 임금의 지위에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잊은 것이다.

이와 같은 사람은 春秋에서 賢能한 임금이라 인정치 않고 夷狄으로 간주하였으니, 鄭伯이 한 사람을 미워하여 그의 군대까지 아울러 버렸기 때문에 이적으로 간주하고 임금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는 말이 있게 된 것이다. 임금이 이것으로 자신을 반성하지 아니하여, 行爲가 이미 하늘이 임금을 세운 실정을 잃으면 그의 마음은 무엇에 의하여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알겠는가이 때문에 나라를 소유한 사람은 春秋를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라 하였으니, 이런 경우를 이른 말이다.

42. 其臣已無道矣,其君亦不足惜也

齊人弒其君,魯襄公援戈而起曰:「孰臣而敢殺其君乎?」師懼曰:「夫齊君治之不能,任之不肖,縱一人之欲以虐萬夫之性,非所以立君也。其身死自取之也;今君不愛萬夫之命而傷一人之死,奚其過也。其臣已無道矣,其君亦不足惜也。」

나라 사람이 그 임금을 시해하자 魯 襄公이 창을 잡고 일어서며 말했다. “어떻게 신하가 감히 자기의 임금을 시해하는가?”

師懼가 말했다. “저 제나라 임금은 나라를 잘 다스리지 못하고 어질지 못한 사람을 관리로 임용하며 자기 한 사람의 욕망만 멋대로 채워 萬民의 생명을 학대하였으니 임금을 세운 뜻이 아닙니다그가 죽은 것은 스스로 취한 것인데, 지금 임금께서 많은 백성의 목숨은 아끼지 않으시고 한 사람의 죽음만 슬퍼하시니, 어찌 이다지도 지나치십니까그 나라의 신하가 이미 無道하니 그 임금도 애석할 것이 없습니다.”

43. 文王似元年,武王似春王,周公似正月

孔子曰:「文王似元年,武王似春王,周公似正月,文王以王季為友,以太任為母,以太姒為妃,以武王周公為子,以泰顛閎夭為臣,其本美矣。武王正其身以正其國,正其國以正天下,伐無道,刑有罪,一動天下正,其事正矣。春致其時,萬物皆及生,君致其道,萬人皆及治,周公戴己而天下順之,其誠至矣。」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文王元年과 같고, 武王春王과 같으며, 周公正月과 같다문왕은 王季를 아버지로 삼으셨고, 太任을 어머니로 삼으셨고, 太姒를 왕비로 삼으셨고, 무왕과 주공을 아들로 삼으셨으며, 泰顚閎夭를 신하로 삼으셨으니, 그 근본이 아주 좋았다무왕은 자기의 몸을 바르게 修行한 뒤에 나라를 바르게 다스리시고, 나라를 바르게 다스린 뒤에 천하를 바르게 통치하시어 무도한 사람을 토벌하시고 죄 있는 사람을 형벌하시어 한 번 움직여 천하를 바로잡으셨으니, 그 일이 正大하다봄은 봄의 時候를 다하여 萬物이 모두 생장하고, 임금은 자기의 道德을 다하여 萬民이 모두 다스려진다주공은 자신이 敎化를 힘껏 행하시어 천하 사람들이 순종하였으니 그의 誠意가 지극하다.”

44. 上不失而下得者,未嘗有也

尊君卑臣者,以勢使之也。夫勢失則權傾,故天子失道,則諸侯尊矣;諸侯失政,則大夫起矣;大夫失官,則庶人興矣。由是觀之,上不失而下得者,未嘗有也

임금은 尊貴하고 신하는 낮은 것은, 權勢가 그렇게 만든 것이니, 권세를 잃으면 權力을 잃게 된다그러므로 천자가 통치하는 正道를 잃으면 諸侯가 존귀해지고, 제후가 정치하는 권위를 잃으면 大夫가 일어나고, 대부가 벼슬을 잃으면 庶人興起한다이에 근거하여 살펴보면, 윗사람이 직분을 잃지 않았는데 아랫사람이 그것을 얻는 것은 일찍이 있지 않았다.

45. 權不兩錯,政不二門
脛大於股者難以步,指大於臂者難以把

孔子曰:夏道不亡,商德不作;商德不亡,周德不作;周德不亡,春秋不作;春秋作而後君子知周道亡也。故上下相虧也,猶水火之相滅也,人君不可不察而大盛其臣下,此私門盛而公家毀也,人君不察焉,則國家危殆矣。筦子曰:權不兩錯,政不二門。故曰:脛大於股者難以步,指大於臂者難以把,本小末大,不能相使也。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나라의 통치하는 가 망하지 않았으면 나라의 통치하는 이 일어나지 않았고, 상나라의 통치하는 덕이 망하지 않았으면 나라의 통치하는 덕이 일어나지 않았고, 주나라의 통치하는 덕이 망하지 않았으면 春秋를 짓지 않았을 것이다. 춘추를 짓고 난 뒤에 君子가 주나라의 통치하는 도가 망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손상시키는 일이, 마치 물과 불이 서로 소멸시키는 것과 같다. 임금은 이를 살피지 않으면 안 되니, 신하를 성대해지게 하면 이는 개인의 세력이 강대해져서 국가가 무너지니, 임금이 밝게 살피지 않으면 국가가 위태롭게 된다.

管子는 말했다. “權力은 두 사람이 가지면 안 되고, 政治는 두 집에서 나오면 안 된다.그러므로 종아리가 허벅지보다 크면 걷기 어렵고, 손가락이 팔보다 크면 물건을 잡기 어렵다.하였으니, 뿌리가 작고 지엽이 크면 서로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46. 魚不可脫於淵,國之利器,不可以借人

司城子罕相宋,謂宋君曰:「國家之危定,百姓之治亂,在君行之賞罰也;賞當則賢人勸,罰得則姦人止;賞罰不當,則賢人不勸,姦人不止,姦邪比周,欺上蔽主,以爭爵祿,不可不慎也。夫賞賜讓與者,人之所好也,君自行之;刑罰殺戮者,人之所惡也,臣請當之。」君曰:「善,子主其惡,寡人行其善,吾知不為諸侯笑矣。」於是宋君行賞賜而與子罕刑罰,國人知刑戮之威,專在子罕也,大臣親也,百姓附之,居期年,子罕逐其君而尊其政,故曰:無弱君無彊大夫。老子曰:「魚不可脫於淵,國之利器,不可以借人。」此之謂也。

司城 子罕나라의 재상 노릇을 할 때 宋君에게 말했다국가의 安危와 백성의 治亂은 임금이 을 시행하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상을 합당하게 주면 어진 이는 더욱 힘쓰고, 벌을 합당하게 주면 간사한 사람이 그치게 됩니다. 상과 벌을 합당하게 주지 않으면 어진 이는 힘쓰지 않고 간사한 사람이 그치지 않습니다간사한 사람이 徒黨을 결성하여 윗사람을 속이며 임금의 총명을 막아 가리고 벼슬과 녹봉을 다투는 것이니,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상을 주고 선물을 주는 일은 사람들이 좋아하니 임금께서 직접 시행하시고, 형벌하고 죽이는 일은 사람들이 싫어하니 신이 담당하겠습니다.”

송군이 말했다. “훌륭하다. 그대는 나쁜 일을 주관하고 과인은 좋은 일을 시행하면, 제후들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 것임을 안다.” 이리하여 송군은 상 주는 일을 시행하고 자한에게 형벌하는 권한을 주었다백성들은 형벌하고 죽이는 권력이 전적으로 자한에게 있음을 알아, 大臣은 그를 친근히 하고 백성은 그에게 빌붙었다1년이 지나자 자한은 자기의 임금을 축출하고 정권을 독점하였다.

그 때문에 임금을 약화시켜서 大夫를 강성하게 하지 말라.”는 것이고, 老子물고기는 연못을 벗어나면 안 되고, 나라를 다스리는 편리한 기구는 남에게 빌려주면 안 된다.” 하였으니, 이런 일을 이른 말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