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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천리마리더십

[허성원 변리사 칼럼] #9 천리마가 거름을 나르게 하라

by 변리사 허성원 2021. 1. 30.

천리마가 거름을 나르게 하라

 

발명가들은 어떤 꿈을 꿀까. 아마도 멋진 발명으로 특허를 취득하여 큰 기업들로부터 두둑한 로열티를 받는 모습이 많을 것이다. 굳이 위험을 무릅쓰며 사업을 벌이지 않고도 존중받으며 편히 돈을 벌 수 있으니 가히 꿈꾸어 볼 만하다. 실제로 이런 꿈을 업으로 하는 기업들이 있다. 소위 특허괴물(Patent Troll)’이라 불리는 회사들이다.

특허괴물은 특허를 보유하지만 그것을 이용하여 제품을 만들지는 않는다. 다른 기업에 특허 소송을 걸고 손해배상, 로열티 혹은 합의금을 받아 이익을 누린다. ‘특허괴물이라는 다소 불편한 표현보다는 특허전문회사 혹은 특허를 실시하지 않는 회사라는 뜻으로 ‘NPE’(Non-Practicing Entity)라고도 부른다. 이들은 세계에서 1천개 이상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특허괴물들의 주요 공격 대상은 우리나라의 대표 기업들이다. 우리 기업들이 그들로부터 제소당하는 소송 건수가 매년 근 100건에 육박한다. 이는 전 세계 특허괴물 소송의 약 70%에 달한다. 글로벌 특허 소송은 기업의 입장에서 무척이나 성가시고 괴로우며 소모적인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보면 그만큼 우리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죽은 개는 누구도 걷어차지 않기 때문이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달리는 말이 거름을 나르고, 천하에 도가 없으면 싸움말이 변방에서 태어난다’(天下有道 却走馬以糞 天下無道 戎馬生於郊 _ 도덕경 제46). 천하의 도가 구현되어 평화로우면 말이 전쟁터를 달릴 필요가 없다. 그러면 모든 말이 농사에 투입되어 거름을 나르는 등 생산적인 일에 종사한다. 그러나 전쟁이 일어나면 말들이 전쟁터로 차출되고 부득이 그곳에서 새로운 말들이 태어나며 그 말들이 다시 싸움말이 된다.

특허는 애초 발명자를 보호하는 일종의 방어 목적 무기였다. 창작한 발명에 대해 일정 기간 독점권을 부여하여, 남들이 모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특허제도의 본연의 취지이다. 특허제도의 도가 제대로 가동되면 특허는 발명 보호라는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여, 새로운 발명의 창출을 촉진하고 기술과 산업의 발전을 견인하는 생산적인 역할을 다할 것이다.

그러나 특허의 도가 무너지면 특허들은 특허괴물에게로 몰려가 싸움말이 되고 만다. 특허괴물의 관심은 특허의 생산력보다는 오직 그 전투력에 집중하고, 타겟 기업을 얼마나 곤경에 빠트릴 수 있는가에 따라 그 존재의 의미와 가치가 평가된다. 싸움말이 된 특허는 이익 추구를 위한 공격 무기가 되어 탐욕스럽게 희생자를 찾는다. 애초 전쟁을 예방하기 위해 무기를 만들었는데, 그 무기를 활용하기 위해 전쟁이 양산되는 아이러니 상황인 것이다.

변방에서 싸움말이 태어난다라는 문구를 다시 곱씹어본다. ‘변방은 전쟁터이기도 하지만, 서로 다른 가치가 만나는 접점이기도 하다. 그 접점은 고귀한 창의력의 산물이 인간의 비천한 욕망과 만나는 곳이다. 그곳에서 기술보호라는 특허제도 본연의 순수한 가치가 욕망을 에너지원으로 하는 자본주의와 야합하여 특허괴물이라는 사생아를 낳았다. 그렇게 탄생한 특허괴물은 특허제도와 자본주의의 경계 즉 변방에서 서식하면서 싸움말을 재생산한다. 그곳으로 많은 특허 소송 전문가들이 모여들고, 세계적인 연구소나 대학의 특허들뿐만 아니라 많은 패망한 기술 기업들의 특허도 몰린다.

특허괴물은 생태적으로 산업에 기생하는 존재이다. 세상을 위해 새로운 기술을 창출하거나 일자리를 만들어내지도 않으면서, 숙주인 혁신기업들의 활동을 방해한다. 동물의 몸속에 서식하는 기생충도 그 숙주에 치명적인 해는 끼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일종의 공생관계이기 때문이다. 드물게는 면역기능이나 질병 치료에 조력하는 우호적인 기여를 하기도 한다. 특허괴물도 그들의 욕망을 적절한 금도 아래에 절제하거나 산업에 우호적으로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강력한 사회적 저항에 직면하거나 숙주와 함께 공멸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될 것이다.

도덕경 제46장은 이렇게 덧붙이고 있다. ‘족함을 모르는 것보다 큰 화는 없고, 더 가지려는 욕심보다 큰 허물은 없다. 족함을 아는 데서 얻는 만족이 늘 누릴 수 있는 만족이다(禍莫大於不知足 咎莫大於欲得 故知足之足 常足矣).’

천하에 특허의 도가 지켜지도록 하라. 그리하여 천리마와 같은 우수한 발명이 전쟁터가 아닌 산업의 밭에서 거름을 나르도록 하라.

 

 

** 도덕경 제46
天下有道, 却走馬以糞, 天下無道, 戎馬生於郊
禍莫大於不知足, 咎莫大於欲得, 故知足之足, 常足矣

 

*천리마리더십 칼럼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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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원 변리사 칼럼]#2 천리마를 가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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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원 변리사 칼럼]#4 백락을 만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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